아케나톤

(아멘호테프 4세에서 넘어옴)

아케나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에 대해서는 아크나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고대 이집트파라오

아케나톤(Akhenaton)! 또는 아크나텐(Akhnaten)이나 아케나텐(Akhenaten), 이크나톤(Ikhnaton)이라고도 한다. 이집트 상형문자히브리어처럼 모음을 생략해버린 구조인지라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 조금씩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아텐(Aten), 아톤(Aton)이 모두 동일한 신의 이름.

신왕국 18 왕조의 파라오로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의 아들. 재위기간은 기원전 1353년에서 1336년으로 추정된다.

1.1 개요

원래는 아멘호테프 4세[1]로서 즉위했으나, 즉위 초부터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실시하여 새로운 태양신 "아톤"을 믿는 종교를 선포했다. 즉위 초에 아톤이라는 새로운 신앙을 선포했을때만 해도 아톤은 아문-라의 다른 모습이라고 선언되었지만, 즉위 9년에는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부인하고 아톤을 유일신으로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아톤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에서 인격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둥근 태양에서 끝에 손이 달린 빛살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으로만 묘사하게 하였다. 이는 역사 상으로 확인 가능한 세계 첫번째 일신교이다.

사실 "하나"와 "여럿"을 대조하는 형태의 이원론은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신앙에서 이러한 이원론이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 비해 아케나톤의 경우에는 이를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오직 "하나"만을 선한 개념으로 규정했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여럿"이라는 개념은 신학적으로 신성(神性)의 물리적 현현과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아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못하게 금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2]

아톤 신앙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도 "아톤의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의미의 아케나톤으로 고쳤으며, 기존의 수도였던 테베 북쪽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여 "아톤의 지평선"이라는 뜻인 아케타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3] 이 수도는 현재의 아마르나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흔히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른다.

아케나톤네페르티티

아마르나 시대는 답답할 정도로 경직된 틀에 박혀 있던 기존의 예술사조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사실주의를 받아들여 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때 만들어진 그의 조각상은 전반적으로 길쭉한 말상 베네딕트 컴버배치생김새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높게 평가받으며, 아내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현재 소유중인 독일에 대해 이집트가 본국으로 반환할 것을 해마다 요구하는 걸작이다.

아케나톤의 아톤 신앙은 어린 투탕카멘이 즉위한 후 아톤 신앙을 부인하고 다시 전통적인 신들에게 돌아감으로써 끝나게 된다. 참고로 투탕카멘도 원래 이름은 투탕카톤으로, 아문-라 신앙으로 돌아가면서 투탕카문[4]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1.2 아마르나 개혁에 대한 평가

아케나톤이 이러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던 사제 계급을 일소하고 권력을 파라오에게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였으리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는 거위 그림, '어머니'라는 말 등을 금지시켰는데 거위는 아멘의 사자를 상징했고 '어머니'라는 말은 아멘의 아내 무트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때를 공포정치로 보기도 한다.

예전에는 아케나톤을 정체된 국가를 개혁하려다 실패한 비운의 왕으로 동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근년에 들어서는 이들을 이은 19왕조(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람세스 2세가 있다.)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시각이 강해지면서 그에 반비례해서 아케나톤의 평가는 많이 내려간 편이다.

아케나톤이 기본적으로 정복왕조 성격을 가진 제국인 이집트를 약체화시킴으로서 히타이트 등 외세의 침입을 방조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또한 막상 위에 서술한 것처럼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삼았다기에는, 기존의 사제 계층을 약체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남겨둠으로서 결국 그가 죽자마자 기존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버렸다는 점 등을 들어 어떤 실질적 목적으로 이뤄진 개혁이 아니라 파라오 개인의 변덕에 불과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예술 면에서 볼 때 아케나톤의 시대는 다른 시대와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어색하고 인위적이며 밋밋하던 미술품들이 이 때 만큼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었기 때문. 그 영향이 투탕카멘의 유품에서 잘 드러난다.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조각상에 남아있는 모습이 워낙 특이하고 인상적이다보니, 그의 이단아적인 행동이 유전적 기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2010년 아케나톤의 것으로 판명된 미라를 연구해본 결과 정신이상을 의심할만한 심각한 유전병의 징후는 발견되지 읺았다고 한다.

1.3 사후

결국 아케나톤의 뒤를 이어 투탕카멘[5]이 즉위하면서 아톤 신앙은 종말을 고했고, 호렘헤브를 거쳐 19왕조가 들어서면서 아케나톤은 철저하게 이단아로 기록이 말살되었다. 아마르나에 있는 아케나톤의 묘로 추정되는 곳은 이름이 모두 지워져버렸고, 19왕조 세티 1세의 신전에 있는 역대 파라오의 왕명록[6]에서도 아멘호테프 3세에서 호렘헤브로 바로 넘어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투탕카멘도 같이 짤렸다. orz [7]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더 안습 내 이름은 왜 지워?

이 후 현대에 들어와서 왕가의 계곡 KV55 분묘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미라의 자세[8]와 골반 모양만 보고 티이[9]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관의 얼굴이 심하게 파손되고(좀 음산하다.) 카르투슈 안의 이름이 파내어져 있는 등[10]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훼손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미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케나톤 설, 스멘크카레 설, 하트셉수트 설 등 다양했는데, 유골이 확실히 남성의 것이라는 점에서 하트셉수트는 가능성이 낮고[11], 사망연령이 40대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 스멘크카레(20대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보다는 아케나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결국 2010년 투탕카멘 미라와의 DNA 감정 결과 아케나톤 본인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투탕카멘도 그의 아들로 확인되었다. 기사링크

이래저래 죽은 뒤 안습한 왕이지만 그래도 역대 파라오 중에는 정상급의 네임드에 속하는 인지도를 가지게 됐으니 그점은 위로가 될지도?

1.4 여담

세계 최초의 일신교를 만들었다는 점과 그의 치세가 출애굽기의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와 가깝다는 점에서, 유대교의 기원(나아가 기독교의 기원)을 그에게서 찾는 시각도 있다. 사실 이집트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한 뿌리깊은 가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는 이런 관점을 차용하여 람세스 2세의 친구이자 신하였던 히브리인 모세가, 지하에 숨어든 아톤 신도들의 영향을 받아 결국 람세스와 대적하는 것으로 그렸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다. 출애굽 전기설에 따르면 투트모세 3세 혹은 아멘호테프 2세 때 출애굽이 시작되었다고들 하니... 이쪽은 워낙 출애굽기의 역사적 해석에 대한 설이 많으므로 출애굽기 항목을 참조하자.

그 외에도 아케나톤이 이러한 유일신 신앙을 내세운 것은 성경의 인물 요셉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근본주의 기독교계에서 하는 주장이다. 이 설을 지지하는 측에선 아케나톤의 외할아버지 "유야"[12]가 요셉과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을 한다.
유야는 당시 파라오에 이어 서열 2위였으며, 거의 파라오에 버금가는 권력이 있었다.[13] 또한 파라오도 아니었으면서 왕가의 계곡에 시신이 안장되었다. 유야와 요셉이 동일인물이라는 근거는 이러한 유야의 독특한 위치 외에, 유야의 미라가 팔을 가슴 위에 교차하는 이집트 방식과 달리 셈족의 그것처럼 턱 밑에 손을 두고 있는 포즈며, 이집트의 관료가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금기였지만[14] 유야는 멀쩡히 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야=요셉 설은 역사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와 모순되는 점이 많다. 시신이 왕가의 계곡에 있다거나,[15] 무엇보다도 요셉 이후의 세월이라는 것도 있어서...사실 아케나톤은 아멘호테프 3세의 차남으로 그의 형 투트모세 왕자가 요셉이라는 설도 있기도 하다.

1.5 문화 속의 아케나톤

  • 필립 글래스가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 아크나텐을 작곡했다.
  • 2011 이집트 혁명 때 카이로에 위치한 이집트 박물관에 폭도들이 난입해 고대 유물 수십 점을 훔쳐 달아났는데, 이때 아케나톤의 석회석상, 네페르티티 상, 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공주 입상 등이 사라졌다. 투탕카멘의 목상 2점도 같이 사라졌으니...가족이 단체로 화를 당한 셈이다.
  • 유희왕 듀얼몬스터즈의 주인공인 어둠의 유우기의 '기록이 말살되었다'라는 설정은 아케나톤에게서 따왔다.[16]

2 악튜러스의 등장인물

옛 발켄스발드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 신세기력 1255년 대륙의 혼란기를 틈타 대륙 서부를 다스리던 영주들을 모아 칠인공화정 건국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 이후 8년으로 지정되어 있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시키기 위해 헌법 개정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다른 여섯 영주와의 마찰을 빚다가 결국 제국의 지원을 받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꾀하게 된다. 여섯 영주와의 전투에서 패한 아케나톤은 결국 제국력 15년 발켄스발드 성에 감금되어 죽는다. 초선임기 8년과 재임 8년, 그 이후 3년 간의 내전까지 포함하여 모두 19년 간의 장기집권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이후 공화국은 내각제 도입으로 수상을 선출하게 되었다.

위의 내용을 간단히 추리자면, 원래는 공화국의 7인위원회 중 한명이었지만 제국과 결탁해 공화국을 팔아버리려는 배신 행위가 발각되어 발켄스발드 고성에 유폐되었다가 몇 년 후 사망했다는 이야기. 이 사건으로 아케나톤이 없어진 7인위원회는 6인위원회로 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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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이 지난 게임 진행 시점에서 아케나톤의 힘으로 자신의 복수를 하려던 마티아스 비얀슨에 의해 원혼이 소환되어 부활한다. 하지만 아케나톤은 마티아스가 자기 눈 앞에서 깝죽대니 귀찮아서(...) 죽여버리고, 모든 것을 기억해낸 뒤에는 분노의 힘에 불탄다.

몬스터 설명 : 수백년 전 발켄스발드에 감금되어 죽었던 사람의 혼이 부활해 실체를 띤 것이다.
아케나톤은 그 옛날 공화국을 창건했던 칠인공화정 건국위원회 중 한 사람인데 모두의 뜻을 저버리고 혼자 반역을 꾀하다 나머지 여섯 명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다.
마티아스 비얀슨이라는 청년에 의해 부활하게 되어 그 동안의 복수심으로 인한 강력한 마력을 손에 넣게 된다.

6인위원회에게 복수를 다짐한 그는 달란트를 찾으러 예배당까지 들어온 시즈 일행과 조우하고, 간만에 몸을 풀기 위해(...) 싸움을 걸어온다.사실 엘류어드가 어그로를 끌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우세를 보였으나, 예상치 못한 셀린의 은화살에 맞아 결국 다시 한 번 죽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안구 모양의 달란트가 떨어진다.

1장의 중간보스 중 하나. 언데드 속성 몬스터이기 때문에 성속성 무기에는 매우 빈약하다. 특히나 고성에서 얻는 홀리 휩은 아케나톤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잡는데는 무리가 없다.

3 마블 코믹스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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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 디 엔드(마블 유니버스 분류법으로는 지구-4321)에서 나왔다. 이집트의 파라오였으나, 어느날 셀레스티얼 오더[17]에게 납치돼 그들이 가진 하트 오브 더 유니버스의 힘의 일부를 받고 그 힘으로 깽판을 쳐 스카이 파더와 슈퍼 히어로들을 무찌른다. 그러나 결국 완전한 하트 오브 더 유니버스의 힘을 가진 타노스에게 패배하고 만다. 이후 타노스는 그를 나비로 만드는 작은 친절을 배푼다. 끔살나는것보다 낫지.
  1. 이름은 아멘호테프이지만 아멘호테프라는 동명이인 파라오들이 이전에 3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멘호테프 1세는 18왕조의 2번째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는 그의 증조할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는 그의 아버지이다.
  2. David, Rosalie. <Religion and Magic in Ancient Egypt>. Harlow: Penguin UK, 2002
  3. 이전, 혹은 아마르나 이후의 시대에는 이 곳을 '엘 아마르나', '텔 엘 아마르나'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4. Aton=Aten과 마찬가지로 Amon=Amun=Amen 모두 이집트의 최고신 아문=라를 가리킨다.
  5. 중간에 "스멘크카레"가 있는데, 이 또한 기록이 없어서 정체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투탕카멘의 형으로 보기도 하고, 왕비 네페르티티의 다른 이름으로 보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 뒤에 네프루네프루아텐이라는 여성 파라오도 있는데 이 사람도 네페르티티 혹은 메리타텐(스멘크카레의 아내)과 동일인물인지 아니면 스멘크카레와 동일인물인지(스멘크카레가 여성이라는 가정 하의 주장) 혹은 Neferneferuaten Tasherit 공주인지 정체가 불확실하다.
  6. 흔히 "아비도스 왕명록"이라고 부른다. 세티 1세가 왕자인 후일의 람세스 2세에게 이집트의 역대 왕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7. 다만 투탕카멘의 경우는 일찍 사망했기때문에 그다지 치세가 길지도 않았으며 삭제해봤자 대부분 내용들이 별다른 건덕지가 없는 것들이라 어떤 의미로는 아버지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8. 일반적으로 파라오의 미라는 양손을 교차한 상태로 가슴에 올려져 있고 왕비의 미라는 왼손만 가슴에 올려져 있다. 이 미라는 왼손만 가슴에 올려져 있었다.
  9. 티이의 경우 아멘호테프 3세의 할아버지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정확히는 미확인 여성미라였는데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티이'의 상자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대조한 결과 티이로 확인되었다.
  10.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름을 파괴하면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단순한 저주나 기록말살형을 뛰어넘아 존재 자체가 완전히 잊혀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11. 사실 하트셉수트는 2007년 KV60 분묘의 미라가 하트셉수트의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12. 아멘호테프 3세의 장인으로 왕가의 계곡 KV47 무덤에 부인 투야와 매장된 만큼 권력과 지위가 높았다.
  13. 이집트 역사에 유야 외에 유야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없다.
  14. 오직 파라오만이 진짜 턱수염을 길렀다.
  15.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선 창세기 종반부에는 요셉이 죽기 전 자손들에게 나중에 때가 되면 자신의 유해를 가지고 나가라고 유언했다. 또 출애굽기 중반에 보면 모세가 출애굽할 때 무덤에서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나갔으며 여호수아 종반부에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요셉의 유해를 그 곳에 안장했다고 나온다.
  16. 이전에는 이 문단에 아케나톤이 어둠의 유우기의 모티프가 됐다고 적혀있었으나, 사실은 그의 아들인 투탕카멘이 어둠의 유우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어둠의 유우기 참고.
  17. Celestial order. 셀레스티얼들과는 다른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