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남은 시체
주로 건조되어 썩지 않은 채로 말라서 보존된 시체를 말한다. 각 언어별 표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엔 포르투갈어 mirra에서 유래한 '미라', '미이라'로 알려져 있으며 '목내이'라고 쓰기도 한다.[2]
- 영어: mummy[3]
- 프랑스어: momie
- 독일어: Mumie
- 스페인어: momia
- 러시아어: мумия
- 그리스어: μούμια
- 터키어: mumya
- 에스페란토: mumio
- 중국어: 木乃伊[4]
- 일본어: ミイラ
크게 건조한 기후 때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와 시체에 내장을 제거한 후 방부제를 발라서 처리한 인공적인 미라가 있다. 주로 후자를 이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는 언젠가는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해서 시신을 온존하려고 미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이 붕대 좀 풀어줘요 이런 의식은 고대 잉카나 아즈텍에서도 행해졌지만, 이쪽은 방부기술이 부족한 탓인지 발견되는 대부분의 미라가 백골을 겨우 면하는 수준.
참고로 단순 미라 숫자로 따진다면 한국도 상당히 많을 거란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의 자동미라 제작무덤 제작 방식으로 묻힌 사람들 수는 많기 때문. 조선시대에는 무덤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자 사방을 두껍게 석회를 칠하는 회묘(灰墓)가 대부분이고, 거기에 숯을 넣기도 했는데 석회는 강력한 방수작용을 숯은 자동 방습작용을 하면서 뜻하지 않은(...) 미라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유교사상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미라를 발굴한다고 치더라도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해 발굴되어도 대부분 다시 묻히거나 화장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발굴된 미라 수는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유교적 덕목에서는 시체는 썩어서 없어져야 좋기 때문에, 미라가 생기는 매장법은 고의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내용은 후술한다.
1.1 실제 사례
1.1.1 이집트
이집트에서는 미라 제조 전문가들도 있었는데 미라로 만들 대상이 젊은 귀부인일 경우에는 시간(屍姦)을 방지하기 위해 며칠 방치하였다가 그들에게 건네주어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뇌를 제거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콧구멍을 통해 갈고리랑 주걱을 쑤셔넣어 휘저은 다음 조각내어 뽑아내는 방법이고[5], 하나는 드물긴 하지만 머리 뒤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뇌를 꺼내는 방법이 있다(일설에 의하면 투탕카멘의 미라가 이 시술을 거쳤다는 설이 있다.).이거야 원 부활하려 해도 뇌가 없으니 못하겠네. 미라들이 아직까지 부활 못하는 건 이유가 있다. 뇌를 제거하는 건 후대의 일로, 예전에는 그냥 냅뒀다고 한다. 그래서 흔들면 말라붙은 뇌가 두개골 안에서 움직여서 딸깍딸깍 소리가 난다고 한다. 람세스 2세 역시 시체가 그대로 오늘날까지 남았다.
왕족이나 귀족의 경우는 제거한 장기(간, 폐, 위, 소장/대장만)를 따로 방부처리하여 다른 용기(카노푸스 단지라고 부름)에 담았고, 중산층의 경우는 내장을 특수한 약물[6]로 다 녹여서(!) 겉만 남은 시신을 미라로, 형편이 안 되는 서민들은 그냥 건조한 토굴에 안치하여 자연적으로 건조되는 방식을 택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생각을 뇌로 하는게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사후 지하에서 오시리스가 저울에 심장을 달아 선악을 판별하고 저승 or 천국으로 보내는 증거로 삼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심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여서 꺼낸 다음 따로 붕대로 싸서 다시 넣거나 실로 꿰맸다고 한다. 내장을 빼낸 후에 안에 톱밥 등을 넣어 채우고, 몸을 탄산나트륨을 이용해 건조시키고 붕대[7]를 감는다. 그리고 관에 넣으면 끝.
심지어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거의 웬만한 동물은 미라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특수한 동물들은 별도의 무덤에 안치되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모셔지던 매, 따오기, 악어, 하마, 소의 미라는 살고 있던 신전의 묘지에 계속 쌓였고, 신성시되었을 뿐 아니라 애완용으로도 키워지던 고양이 미라[8] 같은 것은 한번에 수십 톤씩 발굴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베니하산에서는 20톤의 고양이 미라가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는데, 몽땅 갈아서 비료로 써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많이 만들었던 탓에 꾸준히 발견되고 있고,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등에 여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집트 북부에서 한번에 800만 마리'의 개 미라가 발견된 적도 있다. 성스럽다고 여긴 물고기들도 미라로 만들었기에 어포물고기 미라도 많이 발견되었을 뿐더러 원숭이, 양, 뱀, 당나귀 등등 이집트 박물관에 가면 진짜 여러가지의 미라가 놓여있다.
이러한 처리를 한 이유는 당시 이집트인들의 사후관 때문으로,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라)이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으며, 그럴려면 그때에 돌아올 육신이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지식 등을 동원하여 이러한 방부 처리를 한 것이었다. 다만 저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이집트 기후가 워낙 건조하다보니 바깥에 놔둬도 알아서 미라가 되었지만, 피라미드 등의 폐쇄적인 무덤 안에 시신이 안치되면서 시신이 부패할 가능성이 생겨나 결국 저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한다.
미라 풍습은 로마 점령 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졌지만 이집트 전통 신앙의 쇠퇴와 기독교/이슬람교의 박해로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후 중세시대에 접어들어 해부학의 발전과 그 필요성에 따라 이집트의 시신 처리법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부활하여 오늘날의 엠버밍으로 이어진다.
19세기 말에 왕가의 계곡 일대가 발굴되고 20세기에 투탕카멘 왕의 무덤 발굴과 관련된 이야기와 맞물려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도시전설로 발전하면서 호러물의 소재거리가 되어 종종 공포영화나 액션영화의 희생물로서 등장한다. 고전 영화에서는 그저 느릿느릿 걸어다녔지만, 최근작들에서는 잘 뛰어다닌다. 몸이 부러지지 않는 것이 신비하다.
1.1.2 한국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초기에 석회를 많이 써서 무덤을 봉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9][10] 이때 석회가 주위의 수분을 흡수하면서 굳어질 때 열을 방출, 내부를 섭씨 200도 가량으로 고온살균해버린 뒤 밀봉하게 되어 자연적으로 미라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부패가 진행될 리도 없고 말 그대로 몸이 바싹 말라 있어 모발 한 올까지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생성된 파평 윤씨 여성의 미라가 발견된 적이 있다. 친정에서 아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당시 조부가 거물이라[11] 제대로 관을 쓴 결과 미라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어린이 미라도 자주 발견되는 편이다.
2014년 11월 03일에는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동에 위치한 도솔산[12]에서 단양 우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시대 중종 때 궁중의 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에서 봉사직 등을 지낸 우백기의 미라와 습의 등이 발견되었다.[13] 막 발굴된 참이라 박물관에서 바로 보존처리를 하고 향후 연구자료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0월 17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379년 된 광주 이씨 문경공지파 덕열의 부인인 청풍 김씨의 미라가 발견됐다.#
다만 과거에는 미라가 발견되어도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다. 발견 자체가 후손들이 산소를 이장하느라 무덤을 발굴했을 때 이루어지는게 대부분이고, 연구자들에게 알릴 경우 시신의 뼈와 살을 분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후손들로서는 조상에 대한 모욕이자 불효라고 여겨 미라가 나와도 미라 발굴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태워버리는 경우가 잦다.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편.
1.1.3 중국
중국에서도 이런 미라는 종종 발견되는데 특히 마왕퇴한묘에서 발굴된 여성의 미라가 유명하다[14]. 습기찬 토양에서 관 속으로 물이 스며들었는데, 이 수분이 당시 풍습대로 매장직전 관에 부어진 에탄올과 반응하면서 관 자체가 방부액체로 채워진 결과가 되었다. 상상 이상으로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방금 죽은 시체처럼 부검도 가능했다고 한다. 무덤의 주인공인 신추[15]이고 사인이 심근경색이며 죽기 직전 참외를 먹었다는 점도 부검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물론 이 무덤 역시 대량의 석회와 흙으로 밀봉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부패가 억제된 것도 있다. 발굴 당시 여러 서적, 의복뿐만 아니라 부장품이었던 과일류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 때문.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여성의 아들[16]이 먼저 급사하였고 아들의 죽음을 본 이 여성이 자신이 죽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무덤을 건설하였기 때문에 이런 밀봉이 가능했다고 한다. 다만 남편 이창과 아들의 유해는 모두 썩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창의 무덤은 도굴되어 밀봉이 사라졌고 아들의 무덤은 모친의 무덤에 비해 밀봉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웨난이 쓴 '마왕퇴의 귀부인' 또는 '황제의 무덤을 훔치다'를 참조할 것.[17] 어린이대공원 주변에서도 이와 같이 미라화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다.
1.1.4 기독교 문화권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도 몇몇 성인들의 시체가 썩지 않고 보존된 경우가 있다. 부패를 막기 위해 엠버밍을 했거나, 엠버밍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체가 미라화/비누화해 썩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특히 기적으로 여겨져 공경받는 경우는 엠버밍을 하지 않았는데도 부패하지 않거나, 유해에서 자연적이지 않은 향기가 나거나, 사후경직이 발생하지 않거나, 사망 후 오랜 시간이 경과했는데도 유해에서 피가 흐르거나, 유해에 체온이 남아 있는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 유리관 안에 넣어서 순례자들이 기도와 경배를 올리거나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리관 안에 넣어져 공개되는 유해들 가운데 몇몇은 부패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밀랍이나 실리콘 등으로 얼굴, 손 등을 덮는다. 교황들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으로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성 비오 10세, 성 요한 23세가 있다. 이름 앞에 덧붙여진 복자나 성인의 칭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시복이나 시성 절차를 위해 관을 열었을 때 시체가 썩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존된 게 발견된 경우이다.
관련 영상 아래의 표는 선종일을 기준으로 정리.
복자·성인 | 출생 | 사망 | 축일 | 신분 | 매장지 | 사진 |
성녀 체칠리아 | 2세기 경 | 2세기 경 | 11월 22일 | 동정 순교자 |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로마) | |
성 쿠르베르토 | 634 | 687.3.20 | 3월 20일 | 주교·수도승 | 던햄 대성당(던햄) | |
성 구틀락 | 673 | 714 | 4월 11일 | 수도승 | 크로일랜드 수도원(크로일랜드) | |
성 콜만노 | 10세기 | 1012.8.13 | 8월 13일 | 순교자 | 멜크 수도원(멜크) | |
성 이시도로 | 1070 | 1130.5.15 | 5월 15일 | 농부 | 산 이시도로 성당(마드리드) | # |
성 베네딕토 베네젯 | 1163 | 1184 | 4월 14일 | 평신도 | 성 디디에 성당(아비뇽) |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 1195 | 1231.6.13 | 6월 13일 | 신부·교회학자·설교가 | 혀:성 안토니오 대성당(파도바) | # |
성 에드문도 리치 | 1175.11.20 | 1240.11.16 | 11월 16일 | 대주교·증거자 | 팔:성모승천 성당(코네티컷) | # |
포르투갈의 복녀 마팔다 | 1197경 | 1256.5.1 | 5월 2일 | 공주·수녀 | 아로카 수녀원(아로카) | # |
성녀 지타 | 1212 | 1272.4.27 | 4월 27일 | 동정녀·하녀 | 산 프레디아노 대성당(루카) | # |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 | 1247 | 1297.2.22 | 2월 22일 | 3회원 | 성 프란치스코 성당(코르토나) | # |
몬테팔코의 성녀 클라라 | 1268 | 1308.8.18 | 8월 17일 | 동정녀·수녀원장 | 산타 클라라 대성당(몬테팔코) | |
몬테풀치아노의 성녀 아녜스 | 1268.1.28 | 1317.4.20 | 4월 20일 | 수녀원장 | 오르비에토의 도미니코회 성당 | # |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 1347.3.17 | 1380.4.29 | 4월 29일 | 수녀·교회학자·신비가 | 몸: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로마) 머리:산 도메니코 성당(시에나) | # |
성녀 프란치스카 로마나 | 1384 | 1440.3.9 | 3월 9일 | 설립자 | 산타 마리아 노바 성당(로마) | # |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 1380.9.8 | 1444.5.20 | 5월 20일 | 신학자·설교가 | 산 베르나르디노 성당(라퀼라) | # |
피렌체의 성 안토니노 | 1389.3.1 | 1459.2.5 | 5월 10일 | 대주교 | 산 마르코 성당(피렌체) | # |
볼로냐의 성녀 가타리나 | 1413.9.8 | 1463.3.9 | 3월 9일 | 수녀원장 | 클라라 수녀회 경당(볼로냐) | # |
성 디다코 | 1400 | 1463.11.12 | 11월 12일 | 수사·증거자 | 에르미타 데 산 디에고(세비야) | |
성녀 에우스토키아 스메랄도 칼라파토 | 1434.3.25 | 1485.1.20 | 1월 20일 | 수녀·설립자 | 몬테베르지네 수도원(메시나) | # |
파울라의 성 프란치스코 | 1416.3.27 | 1507.4.2 | 4월 2일 | 은수자·설립자 | [18] | |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 | 1447 | 1510.9.15 | 9월 15일 | 과부·신비가 | 성 안눈치아타 디 포르토리아 성당(제노바) | # |
성 안토니오 마리아 즈카르야 | 1502 | 1539.7.5 | 7월 5일 | 신부·설립자 | 성 바르나바 성당(밀라노) | # |
성녀 안젤라 메리치 | 1474.3.21 | 1540.1.27 | 1월 27일 | 동정녀·3회원·설립자 | 산타 아프라 성당(브레시아) | # |
천주의 성 요한 | 1495.3.8 | 1550.3.8 | 3월 8일 | 설립자 | 승리의 성모 성당(그라나다) |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1506.4.7 | 1552.12.3 | 12월 3일 | 신부·선교사 | 봉 제수스 대성당(고아) | # |
성 가롤로 보로메오 | 1538.10.2 | 1584.11.3 | 11월 4일 | 추기경 | 밀라노 대성당(밀라노) | # |
리치의 성녀 카타리나 | 1522.4.23 | 1590.2.1 | 2월 13일 | 수녀 | 성 빈첸시오와 성녀 가타리나 대성당(프라토) | # |
십자가의 성 요한 | 1542 | 1591.12.14 | 12월 14일 | 신비가·교회학자 | 머리,몸:카르멜회 수도원(세고비아) 손,발:산 후안 데 라 크루스 수도원(우베다) | # # |
성 필립보 네리 | 1515.7.22 | 1595.5.25 | 5월 26일 | 신부·설립자 | 산타 마리아 인 발리첼라 성당(로마) | # |
성녀 제르마나 쿠쟁 | 1579 | 1601 | 6월 15일 | 동정녀·목동 | 피브락 성당(피브락) | # |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 1566.4.2 | 1607.5.25 | 5월 25일 | 수녀 |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데이 파치 수도원(피렌체) | # |
성 가밀로 데 렐리스 | 1550.5.25 | 1614.7.14 | 7월 14일 | 신부·설립자 |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로마) |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 1567.8.21 | 1622.12.28 | 1월 24일 | 주교·설립자·교회학자 | 성모 마리아의 방문 대성당(안시) | # |
성 요사팟 쿤체빅 | 1580경 | 1623.11.12 | 11월 12일 | 대주교·순교자 | 성 베드로 대성당(바티칸) | #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 1572.1.28 | 1641.12.13 | 8월 12일 | 설립자·수녀 | 성모 마리아의 방문 대성당(안시) | # |
성 요한 사우스워스 | 1592 | 1654.6.28 | 6월 27일 | 신부·순교자 | 웨스트민스터 대성당(런던) | # |
성 안드레아 보볼라 | 1591 | 1657.5.16 | 5월 16일 | 순교자 | 성 안드레아 보볼라 성당(바르샤바) | |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 | 1591.8.12 | 1660.3.15 | 3월 15일 | 과부·설립자 | 뤼뒤박 대성당(파리) | # |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 1581.4.24 | 1660.9.27 | 9월 27일 | 신부·설립자 | 나자로 성당(파리) | # |
아그레다의 가경자 마리아 데 헤수스 | 1602.4.2 | 1665.5.24 | - | 동정녀·수녀 | 콘셉시온 수도원(아그레다) | # |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 1611.5.19 | 1689.8.12 | 8월 12일 | 교황 | 성 베드로 대성당(바티칸) | # |
레온 이 델가도의 하느님의 종 예수의 마리아 | 1643.3.23 | 1731.2.15 | - | 동정녀 |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 (산 크리스토발 데 라 라구나) | # |
성녀 루치아 필립피니 | 1672.1.16 | 1732.3.25 | 3월 25일 | 동정녀·설립자 | # |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 1696.9.27 | 1787.8.1 | 8월 1일 | 설립자·주교·교회학자 |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 대성당(파가니) | # |
성녀 호아퀴나 데 베드루나 데 마스 | 1783.4.16 | 1854.8.28 | 5월 19일 | 설립자 | 애덕의 카르멜회 본원(비크) | # |
성 도미니코 사비오 | 1842.4.2 | 1857.3.9 | 5월 6일 | 증거자 |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토리노) | #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 1786.5.8 | 1859.8.4 | 8월 4일 | 신부 | 아르스 대성당(아르스) | # |
성 요한 노이만 | 1811.3.28 | 1860.1.5 | 1월 5일 | 주교 | 성 요한 노이만 성당(필라델피아) | # |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 | 1779.12.12 | 1865.5.25 | 5월 25일 | 설립자·수녀원장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파리) | # |
성녀 나르시사 데 헤수스 | 1832.10.29 | 1869.12.8 | 8월 30일 | 동정녀 | 산타 나르시사 데 헤수스 성당(노볼) | # |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 | 1806.5.2 | 1876.12.31 | 11월 28일 | 수녀·환시자 | 뤼뒤박 대성당(파리) | # |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19] | 1844.1.7 | 1879.4.16 | 4월 16일 | 수녀·환시자 | 생질다르 수도원(느베르) | # |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 | 1809.3.3 | 1882.6.11 | 6월 11일 | 설립자 | 산타 도로테아 수녀원(로마) | # |
성 요한 보스코 | 1815.8.16 | 1888.1.31 | 1월 31일 | 신부·증거자·설립자 |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토리노) | # |
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푸 | 1828.5.8 | 1898.12.24 | 7월 24일 | 은수자 | 성 마로 수도원(안나야) | # |
예수 성심의 복녀 마리아 | 1863.9.8 | 1899.6.8 | 6월 8일 | 수녀 | 예수 성심 성당(Ermesinde) | # |
성녀 마리아 고레티 | 1890.10.16 | 1902.7.6 | 7월 6일 | 동정 순교자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에 산타 마리아 고레티 성당(네투노) | # |
성 비오 10세 | 1835.6.2 | 1914.8.20 | 8월 21일 | 교황 | 성 베드로 대성당(바티칸) | # |
성녀 프란치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 1850.7.15 | 1917.12.22 | 11월 13일 | 설립자 | 성녀 프란치스카 카브리니 성당(뉴욕) | # |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 1851.7.5 | 1927.6.1 | 6월 1일 | 신부·설립자 | 예수 성심의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메시나) | # |
성 루이지 오리오네 | 1872.6.23 | 1940.3.12 | 3월 12일 | 신부·설립자 | 안전한 보호자이신 성모 성당(토르토나) | # |
성 제오르지오 프레카 | 1880.2.12 | 1962.7.26 | 5월 9일 | 신부·설립자 | 기적의 패 성모 성당(함룬) | # |
성 요한 23세 | 1881.11.25 | 1963.6.3 | 6월 3일 | 교황 | 성 베드로 대성당(바티칸) | #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 1887.5.25 | 1968.9.23 | 9월 23일 | 신부 | 산 조반니 로톤도 성당(산 조반니 로톤도) | # |
대체로 오래 된 미라일수록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반대로 최근에 만들어진 미라는 잠든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수준의 착각에 빠질 정도로 부패되지 않은 게 특징. 예를 들어 성녀 지타의 시신을 비롯하여 수백년 전 사망한 사람의 미라는 검게 변색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수분이 빠져나가고 어느 정도 사후 변화가 진행되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무덤 속 시신과 거의 비슷한 형태인 반면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시신은 한 마디로 살아서 잠든 사람과 거의 비슷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는 엠버밍 기술이 시신을 좀 더 온전하게 보전하는 쪽으로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1.5 불교 문화권
불교에는 썩지 않고 살아 생전처럼 남아 있는 승려의 시신을 전신사리, 육신보살, 혹은 등신불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즉신불이라고 하여 일부러 토굴 등에 들어가 미라화되는 것을 기다리는 수행도 존재한다. 기껏 죽어도 시신이 부패하면 실패 지못미. 당연하지만 현재는 시도하는데 안 말리면 자살방조죄. 거기다 서브컬쳐계에서는 즉신불을 무슨 리치처럼 표현하기도 해서 이 쪽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나오게 됐다. 중국에서는 등신불에 금을 입혀 소중하게 모셔왔는데 문화대혁명때 문화재와 함께 죄다 개발살나서 현재 남은 것은 10구 정도밖에 안 된다.
'옻나무를 달인 물을 마시면 몸속이 옻칠되어서 썩지 않는다'는 괴담이 도는데 그거 안 된다. 옻칠은 옻물이 아니라 옻나무의 수액을 이용해 10번 이상의 공정을 거치는 일이다. 옻물 마신다고 몸속에 옻칠이 되면 죽으란 소리. 즉신불이 되기 위해 신체의 수분을 줄이는 과정 중에 비소가 섞인 물이나 옻물을 마시는 일이 있는데 와전된 듯. 어차피 될 일은 없긴 하다
1.1.6 현대
그냥 썩지 않은 시체를 미라의 범주에 둔다면 산소가 없는 늪에 빠진 시체는 가장 간단한 미라 제조법일지도. 미라 전문 서적을 뒤져보면 토양이나 기후 등 천혜의 조건에 의해 네덜란드부터 스칸디나비아쪽 북유럽에서 이런 늪지대 미라가 많이 나온다고.[20] 국내에서도 자살한 사람이 마침 자살한 곳이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라서 자연 미라가 되어버렸다는 사건이 있다.[21] 그 외에도 추운 지역에서 죽은 시체가 얼음 속에 보존되어 발견되는 경우도 미라라 부르곤 한다. 수천년전의 원시인의 사체가 얼음에 둘러싸여 보존된 것이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다.
따지면 방부처리를 해서 아직도 썩어 없어지지 않은 공산권의 지도자들인 레닌, 호찌민, 마오쩌둥이나 김일성의 시체도 미라의 범주에 든다. 이쪽은 정확히 말하자면 약품처리한 시체를 공기대신 각종 가스를 주입한 밀봉 유리관 속에 안치한 것. 레닌 미라의 경우 최초엔 기술이 완벽치 않아 유리관 속에서 얼굴 등에 부패 얼룩이 생기는 등 난리가 나서 다시 꺼내 재처리하고, 기술자들은 시베리아행 익스프레스에 처해질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는 증언도 있다. 스탈린도 죽은 뒤 마찬가지 방법으로 미라가 되었지만, 이후 집권한 흐루쇼프에 의해 독재자로 규정된 이후 매장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재자의 경우가 아니라 일반인이 일반인의 시체를 미라로 보존해서 살아온 믿기지 않는 해프닝이 밝혀졌다. 2014년 한국에서 죽은 남편을 미라처리한 채로 7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있었다. 자세한 것은 방배동 미라 남편 사건 참조.
1.2 기타
한때 서양에서는 미라 가루가 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미라 가루가 인기를 끌자 그냥 시체를 가루내서 미라 가루라고 속이고 파는 일도 있었다고 식인 아니 미라만 먹어도 식인 맞잖아. 좀더 나가면 미라를 가루내어 물감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그 미묘한 노란색이 화가들에게 인기였다나... 때로는 미라는 갈아서 비료로 쓰고 겉을 싼 붕대는 벗겨내서 종이 만드는 원료로 쓰기도 했다.[22] 심한 경우에는 장작 대신으로도 사용했다[23]하니 정말로 흠좀무. 이걸 패러디해서 퓨쳐라마에선 아예 외계인의 미라가 육포로 취급된다. 데리야키 소스 맛이 인기인 듯.
영화 미이라 시리즈를 필두로 한 왜곡으로 인해 고대 이집트에는 대죄인을 산 채로 붕대 둘둘 감고 묻어버리는 등 생미라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극형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허나 실상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처리란 것은 돈도 꽤 드는, 죽은 이의 시신에 대한 최고 최상의 처리 방법이었다고 한다.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했고. 대죄인이나 범죄자들은 평범하게 참형 등으로 처형한 후 시신을 그대로 썩게(부활을 못하도록) 내버려뒀다 한다[24][25]. 돈없는 서민들은 자연 미라가 되길 바라며 건조한 모래사막이나 동굴에 시신을 안치했다고.
한 마디로 아무나 못하는 꽤 고급 장례방법이었지 끔찍한 처형법은 절대 아니란 소리. 속지 말자.[26][27]
여담으로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의 마지막 황제인 아타우알파에게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라고 했는데 아타우알파는 끝까지 거부해서 처형하게 되었다. 이때 미라 관습을 악용하여 화형에 처한다고 했고, 이에 시체 훼손을 걱정한 황제 아타우알파는 어쩔 수 없이 기독교로 개종한뒤 교수형으로 처형당했다. 그리고 피사로는 아타우알파의 시신을 참수하여 훼손하는 비열한 짓을 저지른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는 이집트의 최종테크중 오시리스 숭배에서 사용할수 있는 신화 유닛으로 나온다. 특수기술은 적의 인간 보병을 한방에 죽이고 아군 언데드로 되살리기.
2 1을 모티브로 한 언데드 캐릭터의 통칭과 예시
미라(Mummy)의 정확한 뜻은 1의 부패되지 않은 시체이지만, 어째서인지 보통 '미라'라고 하면 저 시체가 다시 살아나서 돌아다니는 언데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언데드로서의 미라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1. 온 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다.
2. 어째서인지 눈은 멀쩡하며, 그 부분만을 드러내 놓고 있다.
3. 불에 약하다.
4. 파라오같은 높으신 분들인 경우엔 이렇다할 약점이 없으며 도술에 능하다. 이런 경우 스피릿 오브 파라오처럼 악역이 아닌 캐릭터도 다수 존재한다.
이외에도 등장하는 매체에 따라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적인 특징인 붕대를 두르고 있으면 보통 미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강시, 유럽과 아메리카 문화권의 좀비, 서남아시아, 이슬람 문화권의 구울이라는 특징적인 언데드와 비교하여 고대 이집트가 배경인 매체에 등장하는 언데드로 미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28]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인데, 정작 이집트 신화에는 이러한 언데드로서의 미라라는 크리처는 등장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든 이유는 부활할 때를 대비할 육신이 필요해서였지 절대 저런 언데드 캐릭터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는 미라라는 언데드 캐릭터는 사실상 서구에서의 왜곡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한다.
아래에 후술할 예시 역시 사전적인 미라의 의미보다는 이 캐릭터로서의 특징을 따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법전대 마지레인저의 중반부 악역이자 중간보스인【전】('천공성자 라이젤')=마도신관 메미가 여기의 캐릭터 모티브다. 잘 보면 미이라+신관의 이미지 바탕이 섞인 모습이다.
2.1 메탈슬러그 시리즈의 적
메탈슬러그 시리즈/적#s-5.1 문서 참조.
2.2 유희왕에 등장하는 미라들
미라(유희왕) 항목 참조.
2.3 두치와 뿌꾸의 등장 캐릭터
미라(두치와 뿌꾸) 항목 참조.
2.4 BDSM 플레이의 일종
미라화 참조.
2.5 액션 어드벤쳐 영화 미이라 시리즈
3 고래자리의 별 Mira
바이어 명명법으로는 오미크론별이며, 고래자리 방향으로 지구에서 4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변광성이다. 미라 변광성의 표준형이다. 변광 주기가 330일 정도이며, 별의 등급이 2등급에서 10등급까지 달라질 정도로 변광 양태가 매우 다이나믹하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아 왔다. 미라의 의미도 한 천문학자가 별의 밝기 변화가 놀라웠기 때문에 '놀랍다'라는 의미의 미라(Mira)라는 의미를 붙여준 것으로, 흔히 아는 영단어인 Miracle과 뿌리가 같은 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짝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 다이하츠의 자동차
200px
다이하츠 미라는 1981년부터 일본의 다이하츠에서 생산한 경차의 명칭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이하츠 미라 항목으로.
5 Mirror(거울)의 일본어 발음
ミラー 일본에서 말장난 소재중 하나.
6 인명
흔히 쓰이지는 않지만 한국이나 일본, 혹은 서양권에서도 간혹 찾아 볼 수 있는 인명. 어감상 여성 이름으로 쓰인다. 물론 이름의 유래는 1이 아니다. 한자는 일단 아름다울 미에 비단 라, 혹은 아름다울 미에 아리따울 나 등 여러 (반어법이 아니라) 주옥같은 한자들을 쓸 수 있다. 서구권에서 쓸 때는 5의 별 이름에서 따왔다는 형식으로 쓸 수도 있고.
6.1 이 이름을 사용하는 인물
- 한국의 만화가 이미라
- 한국의 前 테니스선수 전미라, 가수 윤종신의 부인.
- 영화배우 미라 소르비노
- 게임 Zero Escape 시간의 딜레마 - 미라(극한탈출)
6.2 스타크래프트2의 미라 한
6.3 블리치의 아란칼
프란체스카 미라 로즈 참조. 원래는 '프란체스카 밀라 로즈'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6.4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의 류드밀라 루리에의 애칭
6.5 디멘션 W의 유리자키 미라
- ↑ 정 보고 싶다면 검색을 하자. 애초에 사람의 시체 사진이니 웬만해선 볼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물론 평온하게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든 경우는 그래도 사고 현장 등에서 흔히 나오는 잔혹한 시신 사진들에 비하면 거부감이 덜하긴 하다. 그러나 그런게 아닐 경우엔.... 밑의 각주에도 적혀있는 양가죽에 싸여있던 미라의 경우는 표정이 상당히 참혹한데다 으레 미라가 그렇듯 흉측하게 변이되어 있기에 잔혹한 시신 사진 못지 않게 무섭다.
- ↑ 木乃伊, 영어발음을 한자로 음차한 표기. 1922년 시인 김형원이 발표한 <숨쉬는 목내이>란 시가 있다.
- ↑ 이 단어는 영국식 영어에서는 일상적으론 미국식 영어의 mommy에 해당되는 뜻으로도 사용하므로 갑자기 엄마가 들어갈 곳에 mummy라고 써도 놀라지(...)말자.
- ↑ 여기서 제목을 따온 <숨쉬는 목내이> 라는 시가 있다.
- ↑ 그 당시 뇌는 별로 좋은 취급을 받지는 못했다. 이집트에서는 콧물을 만드는 장기로 여겨졌고, 그리스에서 뇌는 심장에서 나온 피의 온도를 낮추는 장기로 인식되었다. 마음의 진정한 거소는 뇌가 아닌 심장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하긴, 차이거나 옆구리가 썰렁해 마음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긴 하니까. - ↑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삼나무 기름을 주입했다고 한다.
- ↑ 정확히 말하면 아마포
- ↑ 여신 바스테트가 변신한 동물로 역시 성스럽게 여겨졌다.
- ↑ 이는 정통 성리학적 무덤 양식이다. 시신은 썩어야만 하나 시신이 썩기 전까지, 즉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기까지 벌레나 나무 뿌리와 같은 외부 요소로부터 무덤이 침투당하는 것을 방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만 번거로워서 초기 이후엔 잘 행해지지 않았을 뿐. 오히려 이점이 시신을 썩지 않게 했다는 점이 조금은 아이러니.
- ↑ 초기는 아니지만, '오페르트 도굴사건' 당시 도굴당할 뻔했던 흥선 대원군의 선친 '남연군'의 묘가 이런 방식으로 매장되어 화를 면한 바가 있다. 이 때 석회를 조금도 아니고 평균 사용량의 몇 배나 썼기 때문에 관을 둘러싼 땅 전체가 콘크리트 이상의 강도가 돼버려서 도저히 도굴할 수 없었다고.
- ↑ 문정왕후의 오빠이자 윤원형의 형인 윤원량이다. 동생인 윤원형에 비해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정3품 벼슬을 한데다 그의 딸은 인종의 후궁이 되기도 하는 등 거물이라면 거물. 출처
- ↑ 이쪽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겐 원래 평범한 동네 산책 코스다.
- ↑ 기묘사화때 화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 ↑ 의학자들이 해부한 뒤 보고서도 작성되었다.
- ↑ 전한의 공신인 대후 이창의 부인
- ↑ 이희는 아닌 게, 이희는 기원전 165년에 죽었는데 묘의 연대가 기원전 168년이다. 이는 이승률의 '죽간 · 목간 · 백서, 중국 고대 간백자료의 세계에서 인용했다. 이전 버전에서는 이희라고 했는데, 마왕퇴의 귀부인이나 황제의 무덤을 훔치다에서 실제로 이 여성의 아들이 이희라고 서술되어 있는지, 이희라면 왜 그렇게 추정했는지를 추가바람
- ↑ 춘추전국시대 초평왕은 사후 자신의 시체를 당시 불로장생약으로 여겨진 수은에 담가서 매장하라고 유언하였는데 수은의 유독성이 미생물의 부패작용까지 억제하여, 이런 부드러운(…) 미라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초평왕에게 원수를 진 오자서가 오나라 대군을 데리고 초를 초토화시키는 와중에 이 무덤을 파내 볼링공 잡듯이 눈알을 파내고 구리 채찍으로 시체를 쳐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 ↑ 1562년 위그노들이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파헤쳤을 때 부패하지 않은 유해를 발견했고, 그들은 유해를 끌어내 불태워버렸다.
- ↑ 위 '관련 영상'에서는 시신 표면에 얇은 밀랍층을 더한 듯하다고 한다. 그래도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은 변함 없다.
- ↑ 수백년전의 시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살인사건으로 오인당하기도 한다.
- ↑ 모 사이비 종교에서 시신의 부활(!)을 기다리며 계속 물수건으로 시체를 닦아주었는데, 그 물과 시신의 지방이 비누화 반응을 일으켜 미라비누(…)가 되어버린 사례도 있다.
- ↑ 19세기에 미국에서 유행한 콜레라의 원인이 미라를 쌌던 붕대라 카더라라는 소문이 돌면서 중단되었다. 진위 여부는 불명.
- ↑ 마크 트웨인의 이집트 여행기에서 기관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영 화력이 안오르는데?" "평민 녀석들 말고 왕 좀 태워봐!" 미라는 바짝 마른데다, 제작과정에서 기름과 역청(아스팔트) 등을 다량으로 사용했으므로 잘 타긴 했을 듯.
- ↑ 이때는 사후의 눈/귀를 열어주는 종교적 의식도 취하지 않았고, 매장직전 혀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집트의 사후 세계관에서 절대 부활할 수 없도록. 죽으면 영혼이 신들과 지옥의 관문들에서 심판을 받는데, 이 때 자기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혀를 잘라버리면 말을 할 수 없다. 눈과 귀를 열어주지 않으면 재판장까지 가는 저승길에서 길을 잃고 괴물들에게 잡아먹힌다. 그들의 종교관을 생각할 때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으로 던져버리는 방법.
- ↑ 참고로 오늘날 잘 알려진 잔혹한 처형법은 이집트보다는 오히려 고대 로마 및 중국, 중세 시대 유럽에서 주로 나온 것이고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 ↑ 굳이 저렇게 하려고 한다면 부활 이후에 다시 한번 고통을 가해 죽이려고...정도겠지만 솔직히 언제 부활할지도 모르는 일에 돈처바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과 좀 비슷하게 처리된 미라가 발견된 적이 있긴 있다고 한다. DB320(왕가의 계곡 항목에도 있듯 다른 털린 무덤에서 수습한 미라들을 몰아넣은 무덤)에서 무더기로 나온 미라중에서 Unknown man E 라는 미라는 마치 고통에 찬 듯한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양가죽에 싸여 있었다는데(고대 이집트에서 양가죽은 불길한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같은 곳에서 발견된 람세스 3세하고 유전자가 비슷해서 람세스 3세 시대에 궁정에서 있었던 왕위 찬탈 음모의 일원인 Pentawer로 여겨진다. 람세스 3세는 목구멍이 칼에 찔려 죽었다.영어 위키피디아 내서널 지오그래픽 기사
- ↑ 실제로 미라와 같이 등장하는 배경은 사막이며, 높은 확률로 고대 이집트에 자주 보이는 금색 관에서 뚜껑을 열고 등장하는 연출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