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보컬 이석원, 기타 이능룡, 드럼 전대정
제 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부문 수상자 | |||||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2008년) | → |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2009년) | → | 서울전자음악단 《Life Is Strange》(2010년) |
목차
1 개요
대한민국 모던 록의 아버지이자 홍대 인디씬의 시작을 알린 밴드
공식사이트
한국 인디밴드의 모태이자 영미권 얼터너티브 록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했으며, 한국적인 감수성에 바탕을 둔 독창적인 음악성을 가진 밴드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찾아봐도 몇 안되는, 나이 40을 넘긴 음악활동의 후반기에 전성기 시절의 작품을 뛰어넘은[1] 한국을 대표할 만한 대단한 밴드지만 대중적으로는 전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비운의 밴드이기도 하다.[2][3][4]
2 역사
90년대 초반 당시 하이텔 음악 동호회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많았는데[5] 백수였다가 부모님이 사람구실이라도 하라고 차려준 음반가게 울랄라레코드의 사장 이석원은 이러한 음악인들을 엄청나게 까는 네티즌으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이석원은 혹시나 동호회 모임이라도 열리면 자신이 음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발각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게시판에 자신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고 구라를 쳤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구라가 먹혀들었다. 참고로 밴드명은 이석원이 본 성인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내용보다는 이름이 예뻐서라고 한다.
이후 이석원은 KBS 라디오 방송인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출연해서 공식적인 구라를 치면서 공연 일정까지 알렸고 공연을 해야 될 시점에 이르자 키보드 칠줄도 모르는 류한길을 키보드로, 하이텔 동호회 시샵인 류기덕을 베이스로, 팔이 길다는 이유로 유철상을 드럼으로 영입해서 밴드를 결성한다.[6] 노이즈가든의 이상문이 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악기 실력을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진짜로 언니네 이발관이 발족된 후, 공연을 하다가 이석원은 당시 홍대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연주력과 원곡의 재현도에만 중시한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작곡을 시작하였다. 1년 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다시 나간 이석원은 이렇게 만든 곡들을 틀었고, 라디오에서 이 곡들을 듣고 푹 빠진 정대욱이 기타리스트로 가입하였다. 정대욱은 2집을 마치고 탈퇴한 뒤 정바비라는 예명으로 줄리아 하트, 바비빌, 가을방학 등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렇게 만든 곡들을 모아 1996년 첫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했다. 이는 한국에서 발매된 최초의 인디 앨범으로 동시대의 얼터너티브 록을 한국에 도입하고 영국 런던의 메트로 폴리스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받는 등 음악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결과물을 담고 있었고,[7] 이후 수많은 인디밴드에 영향을 주면서 한국 인디신을 형성한 모태가 되었다.[8]
이후 1999년 2집 '후일담'을 발매하지만 가요의 형식과 사운드라는 이유로 스노비즘이 만연한 평론가들이 외면하면서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정대욱이 탈퇴하면서 밴드는 4년 동안 공백 기간을 가진다. 이석원은 취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요의 형식에 매몰된게 아니라 1집의 참신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듣기 쉽게 정제된 이석원의 멜로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재적소에 배치된 정대욱의 기타편곡의 조화는 뒤늦게 재평가 받으면서 앨범의 완성도만으로 한국인디의 시작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1집과 맞먹는 평가를 받았고, 나아가 현재까지도 언니네 이발관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2집 이후 3집에 대해 작업할 마음이 없었지만 인터뷰 도중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던 모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3집을 내게 된다. 3집을 내기 전 이석원은 정무진과 오디션을 봤었고 날고 긴다는 홍대 인디씬의 멜로디 메이커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이능룡을 멤버로 맞게 된다. 이석원은 도중에 OCN에서 김C 등과 함께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출연하기도 했었다. 김C는 이석원을 주인공으로 한 독립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으나 만들어지진 않았다.
이렇게 뒤늦게 재평가 받으면서 이석원은 새 멤버를 구성하여 2002년 3집 '꿈의 팝송'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인디 씬 역사상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으며, 평 역시 냉담했던 2집에 비해 따스했다. 이 여세를 몰아 2004년 4집 '순간을 믿어요'를 발매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소 엇갈리는 평을 받았다. 대체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못하다는 평이 많다.
4집 발매 후, 이석원이 인사동에 카페 살롱 드 언니네이발관을 개업하면서 밴드의 이름을 이석원 개인의 사적인 사업에 썼다는 이유로 불거진 멤버간의 불화로 언니네 이발관은 또 한번 4년간 공백을 가지게 된다. 당초 이석원은 2006년 초 5집의 발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9] 이석원이 밴드 활동보다 살롱 드 언니네이발관 운영에 힘을 쏟는 것을 못마땅해한 이능룡이 밴드를 탈퇴하는 문제로 엎어졌다. 살롱 드 언니네이발관은 운영상의 이유로 폐점하게 된다. 이능룡이 탈퇴한 후 일부 공연에서는 정대욱이 언니네이발관의 기타 세션으로 대신 활동하기도 했다. 탈퇴 후 이능룡은 재주소년의 박경환과 함께 공연을 한적도 있다.
다행히 어떤 사건을 계기로 둘은 다시 뭉쳐서 5집인 가장 보통의 존재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석원의 광기에 가까운 편집증으로 인해 발매 연기가 계속되었다. 밴드는 2007년 12월에는 꼭 5집을 발매 한다며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위해 공연장까지 대관해놨는데 다시 앨범 발매는 연기되었고 공연장 대관은 취소할 수가 없어서, 사상 초유의 나오지도 않은 앨범의 발매기념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밴드는 '아름다운 것', '산들산들', '가장 보통의 존재', '인생은 금물'등의 곡을 선보였는데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는 가사가 상당히 달랐다. 이후로도 몇번이나 발매일이 나왔다가 또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5집은 2008년 8월 8일 드디어 발매 되었다. 그런데 그나마 그것도 급하게 작업한건지 초판에는 부클릿 가사에 틀린 부분이 여럿 보인다.
5집은 발매되자마자 2008년 최고의 한국 앨범으로 꼽혔으며 역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올해의 모던록 음반', '올해의 모던록 노래'부분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 현재도 1집, 2집에 버금가는 밴드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2.1 머나먼 6집 제작기
2010년부터 6집 작업을 시작한 듯 하다. 2012년 2월 13일자 일기[10]에서 이석원이 "새앨범 작업한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다"라고 하였다. 다만 "새 앨범은 아직은 오리무중"이라 하니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2012년 2월 15일자 일기에서는 새 앨범 전까지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2012년 12월 26일 연말콘서트때 작업중이라던 곡을 잠깐 틀어줬는데 굉장히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들려줘서 5집과는 또 다른 변화가 예상된다.
2013년 1월 현재, 여전히 6집 작업 중이다. 공식홈에 올라오는 일기를 보면 5집보다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다. 6집 발매 전 예정되었던 라이브 앨범은 결국 6집 이후로 미뤄진 듯하다. #
2013년 8월 7일, 이석원이 오랫동안 작업해 오던 소설 '실내인간'이 출판되었다. 예약주문을 한 사람에 한에서 2009년 출판한 산문집 '보통의 존재' 미니북과 이석원의 특별 연습장까지 같이 증정한다.
2014년 5월 13일 일기에서 더딘 작업속도에 심각성을 느끼고 사실상 기약이 없던 6집을 2015년 안에 무조건 내고 그 이듬해인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비정규 앨범을 한장씩 내기로 했다고 한다. 조만간 새 앨범을 만날 수 있을것 같다.
2015년 6월 1일 6집 "서울의 달", 2015년 9월 9일 7집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몸을 움직여"(줄여서 셰쿄바레부뵤바레[11]를 발매한다고 공지를 띄었다. 7집이 정규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한다. 5집처럼 계속 지연되는건 아니겠지? 물론 '정규' 앨범만 발매를 안하는 것이지 언니네이발관 음악 활동은 계속한다고 한다. 일기장에서도 언급하였듯 라이브 앨범, ep, 싱글 등으로 활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2015년 7월, 앨범 발매가 또 미뤄졌다. -아직 좀 더 만져봐야한다고. 5집보다 더하다. 곡 작업에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다는것을 이석원의 일기를 통해 절절히 느낄수 있다.[12]심지어 여태까지의 작업을 중단하고 아예 엎어버리자는 논의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다시 작업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화야구는 꼬박꼬박 보는듯
2015년 12월 17일 자정에 6집 발표에 앞서 싱글이 발매되었다. <애도>와 <혼자 추는 춤>이다.
네이버에 이번 싱글을 프로모션하면서 작업 과정을 남겼다 #
2016년 6월, 본격적인 녹음 준비를 시작하려는 듯 하다.
인디밴드 갤러리에 의하면 이렇게 된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8월 말, 수록곡의 비공식 라이브와 녹음을 위한 연습실 개조를 마쳤다. 이제 녹음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다시 말하면 녹음할 준비'만' 끝난다는 거다. 녹음은 시작도 안한 상태 과연 내년 이맘쯤 엔 녹음이 끝나있을지...
8월 30일, 드디어 녹음이 시작 되었다. 녹음이 일정대로 완료된다는 가정 하에, 10월이나 11월쯤 영국으로 음원을 보내 마스터링 할 계획인 듯.
3 멤버
- 이석원 -
엽문밴드의 리더이자 보컬, 기타, (그리고 댄스를 담당). 공식홈피에 올리는 일기가 인기가 많다. 엄청난 독서광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책을 많이 사놓는데 전혀 읽질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일기를 보면 요즘엔 읽기 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두가지는 새벽에도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말동무와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군것질거리라고 한다. 펫 샵 보이즈의 광팬이며 닐 테넌트의 창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이텔시절 아이디가 mypsb였을 정도. 공연 때 자주 하는 멘트로는 '처음 오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저 화난거 아니에요.', '여기 리버브 좀 더주세요' 등이 있다. 본인 왈, 단독콘서트에서 조차 처음 오신 분들 손 들어 보라고 하면 절반 넘게 손을 들기 때문에 화난거 아니라는 멘트를 매번 할 수 밖에 없다고.
- 작업에 있어서는 거의 정신이상에 가까운 광적인 완벽주의자다.[13] 2집까지는 든든한 후원이 있어 자유롭게 제작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지만, 3 4집만드는 동안 소속사와 계속 갈등을 겪었으며, 5집은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올때까지 수차례 발매지연된 후에 발매될 수 있었다.[참고] 그의 광기를 보여주는 일기들 링크1 링크2 링크3 링크4 링크5 마찬가지로 일기에 의하면 제작기간 5년을 넘기고 있는 6집 역시 이석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엎어버린 곡이 한 두개가 아니다. 본인도 이렇게 만들고 버리고 만들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는지 올해 안에 녹음을 끝내되, 성에 안차는 곡이 있을 시 그대로 버리고 살아남는 곡만 내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여태 버린 곡만 해도 앨범 세장 분량은 나올듯링크 - 골수 칰빠이다. 일기를 통해 자주 한화 야구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편. 2015년 8월 7일에는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미치 탈보트가 실패한 투수라고 하자 선수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흥국의 광팬이다.[14] 별명은 야간분만.
- 이능룡 - 기타. 자기소개는 자기가 쓰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쓰고 "동렬이형이 기아 감독으로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루도 안빼고 몇번씩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리더 이석원은 이날 일기에 오늘은 거의 이능룡 평생의 소원이 이뤄진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진정 대박. 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인디밴드 네스티요나의 보컬인 요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카더라 통신의 얘기 있지만 사실은 확인 불가능하다. 2006년 5월, 5집 제작이 표류하고 이석원이 카페 영업에 비중을 두어 잠시 언니네이발관을 탈퇴한 적이 있다. 이후 이석원이 5집에 대한 영감을 받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앨범 제작에 돌입하며 복귀하였다. 여담으로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라는 영화에 본인 역할로 영화주연을 맡은 적이 있다. 별명은 룡자, 톰슨가젤 등이 있다. - 전대정 - 드럼. 국내 최초의 블랙 메탈밴드 Kalpa[15]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메탈을 연주했음에도 팝 터치가 곱게 나온다고 이석원이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빠른 79여서 79가 까불면 미쳐버린다고.
3D영화를 2D로 두번씩 본다고 한다.별명은 금동이
3.1 전 멤버
리더 이석원의 독주 체제가 강해서 멤버가 자주 바뀌었다. 여기 출신들 중 크게 히트 한 멤버가 많다.
- 정대욱 - 줄리아하트와 바비빌로 활동한다. 이석원의 음악을 좋아해 들어온 스웨이드의 리처드 오크스와 비슷한 케이스. 하지만 이별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이석원은 그를 이혼한 전 부인라고 묘사했다. 같이 살 수 없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다는 의미. 사이가 나쁘다, 어색하다는 얘기는 옛날얘기로 이석원은 줄리아 하트 3집에 피처링까지 했고 1,2집 시절 이야기를 주제로 같이 인터뷰하기도 했다. 2006년 경에 이능룡이 잠시 밴드를 탈퇴했을 땐 잠시나마 복귀하여 공연에서 세션 기타리스트를 해주기도 했고. 요근래엔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해서 활동 중.
- 류기덕 - 언니네 이발관의 베이시스트였다가 현재는 창천 온라인, 미르의 전설 등으로 유명한 게임회사 위메이드의 개발이사 자리에 있다가 부사장이 되었다. 1집에서 유일하게 이석원 작곡이 아닌 곡 상업 그런지는 류기덕이 작곡했다.
- 류한길 - 언니네 이발관 키보디스트 겸 데이트리퍼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한국 테크노 1세대 중 한명. 테크노 9단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뮤지션 겸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사운드 미디어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2집 이후 탈퇴라고 알려져있는데 사실 3,4집에도 내외로 많은 작업에 참여했다. 임주연이 세션으로 들어오게된 이후론 참여하지 않는듯 하다.
- 유철상 - 언니네를 떠난 뒤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바뀌어 흑인 음악으로 전향했다. 대표적으로 아소토 유니온과 윈디 시티 - 김반장이 바로 이사람이다.- 이 때문에 이석원하고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듯 하다. 요약하자면 김반장이 소위 백인 음악을 경멸하기 때문이라고[16] 이석원은 음악적 센스만은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처음에 언니네 이발관의 드러머가 된 이유가 "팔이 길어서"라고 한다.[17]
- 정무진 - 3집부터 4집까지의 베이시스트. 더캔바스라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 탈퇴하게 된다. 이석원은 3집 재결성 당시 세션으로 들어온 정무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18] 둘이서 나머지 멤버를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활동기간동안 작곡란에도 이석원 다음으로 이름을 많이 올렸다. 음악적 공헌이 큰 멤버.
- 이상문 - 노이즈가든에서 활동했던 2집 당시 베이시스트. 팀의 정신적 지주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4집 순간을 믿어요는 그에 대한 일종의 헌정 앨범이라고 한다.
- 김태윤 - 노이즈가든에서 활동했던 2집 당시 드러머. 후에 거리의 시인들의 리더 박기영이 만든 조이박스라는 팀에 들어간다.
- 이호준 - 2001년 잠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후에 존 두우라는 밴드를 재결성.
3.2 세션
고정 멤버는 보컬,기타,드럼 3인인 관계로 나머지 파트의 경우 세션 멤버와 함께 활동한다.
- 유정균 - 베이스 세션. 세렝게티의 베이시스트. 4집 활동 중간에 정무진 탈퇴 이후로 계속 세션으로 활동중이다. 5집에선 녹음에도 참여했고, 거의 반 멤버로 봐도 될지도. 물론 공연에서 멘트를 하거나 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세션인 만큼 노래를 다 외우는 건 아니라 월요병처럼 잘 안하는 곡 연주할 때는 곡 바뀔 때 마다 악보 넘기는 것이 인상적. 사실 월요병에선 이석원 본인도 가사 보고 할 때가 많다. 16년 2월 4일 이석원의 일기에 따르면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잠시 여행을 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리를 잡으려는 생각으로 갔다는 듯. 이발관 활동도 활동이지만 세렝게티 활동은 어떻게 되는건지... 아무튼 이석원은 이에 대해 음악 활동의 일단이 뭔가 매듭이 지어지는 것 같다고 표현을 했다... 이석원의 추후 일기를 보면 6집 녹음을 위해 7월에 잠깐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 임주연 - 키보드 세션. 4집까진 정규멤버 3인 + 유정균 4인 체제로 활동했으나, 5집 이후로는 임주연이 추가, 거의 고정 세션으로 참여중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쌍둥이를 출산했다.
- 이지형 - 예전 위퍼 보컬로 데뷔하여 토이 6집 등을 활동했던 그 이지형 맞다. 객원보컬 및 기타로 3-4집에 참여했었다. 이후 서울전자음악단 세션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솔로활동을 하고 있다.
- 정순용 - 마이언트메리의 보컬이자 토마스 쿡으로 활동하던 사람. 객원보컬로 참여했었다.
4 음반 목록
4.1 정규 앨범
4.1.1 비둘기는 하늘의 쥐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푸훗 | 이석원 | 이석원 | 정대욱, 류기덕 |
2 | 동경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3 | 보여줄 순 없겠지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류기덕 |
4 | 쥐는 너야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류기덕, 유철상 |
5 | 생일기분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류기덕, 유철상 |
6 | 산책 끝 추격전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류기덕, 유철상 |
7 | 팬클럽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류기덕 |
8 | 로랜드 고릴라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류기덕 |
9 | 상업그런지 | 이석원 | 류기덕 | 정대욱, 유철상 |
10 | 미움의 제국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류기덕, 유철상 |
11 | 소년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유철상 |
12 | 우스운 오후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
4.1.2 후일담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유리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2 | 어제 만난 슈팅스타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3 | 실락원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4 | 꿈의 팝송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
5 |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이석원, 정대욱 |
6 | 다음곡은 뭐죠? | 정대욱 | 정대욱 | |
7 | 어떤날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8 | 무명택시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9 | 인샬라 | 정대욱 | 정대욱 | |
10 | 인생의 별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11 | 청승고백 | 이석원 | 이석원, 정대욱 | 정대욱 |
12 | 너의 비밀의 화원 | 정대욱 | 정대욱 |
4.1.3 꿈의 팝송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헤븐 (단 한번의 사랑)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류한길 |
2 | 나를 잊었나요?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정무진 |
3 | 괜찮아 | 이석원 | 이석원, 류한길 | 이석원, 이능룡, 류한길 |
4 | 남자의 마음 | 이석원 | 정무진 | 정무진 |
5 | 울면서 달리기 | 이석원 | 이석원, 류한길, 정무진 | 정무진 |
6 | 2002년의 시간들 | 이석원 | 이석원, 정무진 | 이능룡 |
7 | 지루한 일요일 | 류한길 | 류한길 | |
8 | 불우스타 (不遇STAR)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석원, 이능룡 |
9 | 안녕 | 이능룡 | 이능룡 | |
10 | 표정 | 이석원 | 이석원, 정무진 | 이능룡, 정무진 |
11 | 언젠가 이발관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정무진 | 정무진 |
4.1.4 순간을 믿어요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바람이 부는대로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정무진 |
2 | 태양없이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정무진 |
3 | 셋넷 | 이능룡, 정무진 | 이능룡, 정무진 | |
4 | 꿈의 팝송[19] | 이석원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정무진 |
5 | 순간을 믿어요 | 이석원 | 이석원, 정무진 | 이능룡, 정무진 |
6 |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 | 이석원 | 이석원, 정무진 | 이석원, 이능룡 |
7 | #1[20] | 이석원 | 정무진 | 정무진 |
8 | 깊은 한숨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9 | 키다리 아저씨[21] | 이석원 | 정무진 | 정무진 |
10 | 해바라기 | 이능룡 | 이능룡 | |
11 | 천국의 나날들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정무진 | 정무진 |
4.1.5 가장 보통의 존재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가장 보통의 존재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2 |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3 | 아름다운 것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4 | 작은 마음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5 | 의외의 사실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6 | 알리바이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7 | 100년동안의 진심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8 | 인생은 금물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9 | 나는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10 | 산들산들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당초 계획대로라면 2006년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이석원의 카페 영업, 이능룡의 일시 탈퇴, 작업의 지지부진으로 부침을 겪다, 이석원의 어느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어 재개, 수많은 발매연기를 겪다 2008년 8월 발매되었다. 당초 2007년 12월을 발매일로 잡고 앨범 발매기념공연까지 공지하였으나 정작 앨범이 나온 건 9개월 후. 공연장 대관 취소는 곤란하여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일단은 5집 발매기념 공연인만큼 앨범에 수록될 5곡을 미리 선보이기도. 500장의 일련번호와 신비로운 홀로그램 새가 새겨진 한정판이 존재한다. 2014년 역시 한정수량으로 LP도 발매.
4.2 비정규 앨범
4.2.1 혼자 추는 춤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1 | 애도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2 | 혼자 추는 춤 | 이석원 | 이석원, 이능룡 | 이능룡 |
15년 12월 17일 드디어 7년만에 귀환했다. 17일 현재 네이버차트 20위로 차트에서도 순항중이다. 네이버뮤직에서도 프로모션을 해주는등 밴드 역사상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7년간 고심끝에 내놓은 결과물답게 평가도 호평.
무려 두 곡 모두 러닝타임이 6분이 넘는 곡이다. 밴드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곡으로 채우려고 했다는데, 어쩌다보니 실패했다고 한다.
2016년 6월 27일, 신보 녹음을 위해서 스튜디오와 공식 미팅을 했다고 일기에서 밝혔다. 이제 엎지만 않으면 1~2년만 기다려보면 나올지도?[22]
5 다른 뮤지션과의 관계
한때 이석원은 신해철을 까기도 했다. 진짜 현피를 떴는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석원은 당시 90년대 초반 한국의 메탈 강세였던 것에 반발감을 가졌다라고 밝혔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는 백화점식 앨범 구성과 아티스트 의식 부족 때문이라고 비판했다.[23] 오직 메탈만이 이유가 아니다. 메탈 자체를 싫어하진 않은데, 메탈만 추종하는 당시 한국 음악 배경이 마음에 안들었다고.(일례로 모 웹진과 인터뷰에서 5집 이후 메탈리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5집 이전의 메탈리카는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PC통신 활동시절(이 시절에 활동하던 사람 중에 김진표나 이적, 이한철같이 나중에 전업 음악가가 된 사람도 많고, 당시에도 이름 날리던 정석원, 신해철같은 아티스트도 있었다)에 여러 밴드의 비평글을 썼는데, 넥스트의 음악을 해외음악에 비해 구성이 구리다는 부분을 이유로 따라잡기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석원 생각에는 앨범은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에 유기적인 구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넥스트 앨범은 백화점식 구성이라고 비판했고 신해철이 이 글에 반박글을 썼다. 그 이후로 '서로 만나서 풀었다' 등의 말을 했는데 여기에서 현피떴다는 말이 나온 듯... 메탈리카 이야기는 신해철이 아니라 다른 회원들과의 열띤 논쟁을 끌어냈다. -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껄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어딜가나 언니네 이발관과 이석원을 칭찬하고 다녔다. 사이가 좋아진 현재에는 상호간에 이런저런 도움도 많이 주고 있다. 훈훈한 결말.
이 두사람은 당시로서도 "말빨"로는 어디가도 밀리지 않는 달변가였다. 이후 위처럼 여차저차 잘 풀려서 언니네이발관이 꿈의팝송을 발매할 때, 신해철이 진행하는 고스트네이션[24] 인디온스포트라이트에 언니네 이발관이 출연하기도 했고 위의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라디오에서 앨범 광고가 나올 때 나레이션을 신해철이 맡았다. "언니네 이발관, 꿈의 팝송" ...하면서 느끼하게.
이석원의 일기 2014년 10월 23일, 10월 24일, 10월 26일, 10월 29일의 일기를 보면 신해철이 심정지로 쓰러지고 난 후의 심정을 적어 놓았는데, 신해철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주 연락을 못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언니네 이발관의 전 베이시스트 이상문을 떠나 보낼 때 만큼 안타까워 하는 것이 느껴진다.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루시드 폴,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 모노톤즈의 차승우 등과 친분이 있다.친구가 적다는 말은 역시 개드립
언니네이발관 공식 홈페이지 - 일기 中
KBS 라디오프로그램인 이적의 음악공간에 함께 출연했던 거의 마이앤트메리의 정순용을 반쯤 울렸다고 한다. 하도 방송에서 갈궈대서;;;
6 평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까지 이만한 멜로디와 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이석원 밖에 없다.
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현존 국내 최고의 록 밴드 중 하나.
들국화 헌정 앨범에 '솔직할 수 있도록'을 트리뷰트 했는데 평론가 박모씨 왈 “들을 만한건 언니네 이발관 밖에 없네.”자기들은 이건 100%가 아니라고 낙담하며 제작사에 곡을 갖다줬는데 뜻밖에도 잘했다고 칭찬받아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정규앨범 중에는 1,2,5집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직 우리나라 음악을 대상으로 한 리스트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몇 안되는 리스트에서 이 세 앨범은 빠지지 않고 선정되는 편이다.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 1집이 34위, 2집이 68위에 선정되었으며 1998년 동 리스트에서도 1집이 3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1년에 백비트에서 선정한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 국내 순위에서는 2집이 10위, 1집이 14위에 올랐으며 2000년대 베스트에서는 5집이 무려 2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7 기타
이석원씨는 이혼이라는 아픈 경력이 있다.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앨범의 '꿈의 팝송'이란 곡은 당시 부인이었던 이에게 헌정하는 노래다. 그러나 이혼 후 4집 '순간을 믿어요' 앨범의 '꿈의 팝송'이란 노래는 똑같은 가사지만 그녀와 이혼 후 역시 '그녀'에게 잘살라는 의미로 바쳤던 노래. 4집의 꿈의 팝송은 그래서 조금 더 애절하다.
3,4집은 이석원이 곡을 만들고 이능룡이 같이 작업하는 방식으로 했었는데, 5집만큼은 이능룡이 먼저 곡을 만들고 거기에 이석원이 덧붙이는 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멜로디만 듣고 이게 타이틀곡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4집은 라이브를 고려해 작곡하고, 5집은 스튜디오앨범으로 생각하고 작업했는데 되려 라이브에선 5집 곡을 더 많이했다고 한다. 6년이나 앨범이 안나와서 그렇지 이놈들아
밴드 공식 홈페이지의 도메인이 꽤나 아스트랄하다. [1] 일명 쉐쿄바레 무뵤바레 그나마 외우기는 쉽다
2008년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출연.
원래 타임테이블에는 꽤 이른 순서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자꾸 뒤로 밀려났고 결국 한참 나중에 공연 시작. 이석원은 주최측의 만행에 심히 빡쳤는지 딱 두 곡만 부르고 곧바로 퇴장. 이 모습을 본 이능룡이 급히 따라 나갔고
무대에 혼자 남은 드러머 전대정이 즉흥적으로 드럼을 치며 팬서비스 겸 지원요청을 날렸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석원 일기에 의하면 2008년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작업 이후 몸이 (특히 위장이) 혹사되어 버린 듯 하다. 밀가루 같은 특정 재료가 들어간 빵같은 음식은 먹으면 출혈을 동반한 장 트러블이 생겼으며, 그래서 2015년에는 히로시마까지 날아가 약을 얻기도 했다고. 그런데 하필 히로시마
2015년 싱글 [혼자 추는 춤] 공개 일주일여 전 녹음을 끝내고 들린 광화문광장에서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가사와 멜로디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 이석원 일기)
참고로 유희열의 스케치북 1회에 출연했다
줄리아하트 음반에 당신을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라는 곡 보컬로 이석원이 피처링 했었다.
스위트피 음반에 데쟈뷰라는 곡 보컬로 이석원이 피처링 했었다.
GMF 강아지 이야기 음반에 거북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음반 트랙으로 실렸다. 키우던 강아지가 거북이 수명처럼 오래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곡이라고 한다. 언니네이발관이 아닌 이석원씨 이름으로 참여했다.
네스티요나 음반 중 사라지지 않는 밤, 꿈 속에서, 잠들때까지 이상 세 곡에 이능룡은 기타세션으로 참여한 바 있다.
- ↑ 언니네이발관 5집은 지금까지 15만 장이 팔렸는데 이발관과 비슷한 스타일의 일본의 스핏츠와 비교해보면, 일본의 음반시장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고 스핏츠 자신도 한때 백만장도 팔아본 메이저 밴드임에도 2013년 발매한 정규앨범은 12만 장까지 몰락했다. 한국의 인디밴드가 현재 15만 장을 팔았다는 건 한국에서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은 다 샀다고 봐도 무방한 수치이다.
- ↑ 영미권이라면 락스타가 될만한 커리어임에도 리더인 이석원은 서울 중랑구 20평짜리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방송 활동 없이 서울에 아파트 사는 것도 대단 - ↑ 생활에 대해서는 이석원의 아버지가 고위공직자에, 백수로 놀고 있던 이석원을 위해 레코드 가게를 차려주기도 했던 금수저임은 생각해야 한다. 이능룡이 5집의 성공 후에도 간간히 기타레슨 알바 뛰는 걸 생각하면 수입은 처참할 것이다.
- ↑ 금수저 집안 외에도, 이석원은 자신이 낸 책 '보통의 존재'가 출간된 지 7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니까 책 인세도 많이 받을 것이므로 저정도 생활이 가능하다. 또 언니네이발관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했으니 저작권료도 받을 거고...
- ↑ 신해철, 정석원, 이적, 이승환, 유희열 등
- ↑ 이석원만 구라를 친 것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실제로 악기 연주를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경력자인 것처럼 말을 하고 합류를 했다는 뜻이다! 즉, 멤버 전원이 구라를 친 것.
본격 멤버 전원이 악기 연주를 못하는 밴드의 탄생진중권의 문화다방 47회에서 이석원 본인이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 ↑ 이전 버전까지만 해도 신해철보다 먼저 메트로 폴리스에서 마스터링을 받았다고 써 있었지만, 실제로는
예상대로신해철이 먼저 메트로 폴리스에서 작업을 했다. 이발관의 1집은 96년 11월에 발매됐으나 신해철이 작업했던 영화 <정글스토리>의 OST 앨범은 96년 5월에 발매됐다. 이 앨범에서 신해철은 이미 메트로 폴리스에서 마스터링을 받았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발관과 신해철의 마스터링을 진행한 엔지니어는 동일인물(이안 쿠퍼)이다. - ↑ 같은 1세대인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부터 언니네이발관에 자극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고, 이후 이발관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갔다
- ↑ 2005년 월요병 콘서트에서 작업중인 신곡이라며 '인생은 금물과 알리바이'를 부른 적이 있는데, '인생은 금물'의 경우 '지금의 인생은 금물'과는 전혀 달랐다. 가사도, 멜로디도.
- ↑ http://www.shakeyourbodymoveyourbody.com/diary.asp?yy=2012&mm=2&dd=13&yyy=2012&mmm=2&ddd=13
- ↑ 언니네 공식 사이트 도메인이름.
- ↑ 일기에 따르면 가장 하드했다고 자평한 5집 작업의 악몽때문에 6집은
불가능한 도전인1년내에 작업물 내기로 계약을 잡고, 언니네이발관 역시 잘 팔리만한 곡으로 쉽게쉽게 가보자 하는 마인드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다고 한다. - ↑ 근데 사람 자체가 까칠하고 예민한 편이다. 특히 온도에 민감해서 여름이나 겨울땐 에어컨(히터)를 5분마다 껐다 켰다 해서 애먼 처제에게 욕까지 얻어먹을 정도였다.
- ↑ 본인의 일기에서 여러번 말한적이 있는데 애정이 상당한듯하다...
흥궈신 예능감에 빠진 사람이 한둘이겠냐만...무가지에 손대던 시절 김흥국과 전화 인터뷰를 한적도 있고 하얏트호텔에서 우연히 김흥국을 발견해 숨죽여 보았다는 글로보아 거의 확정적인듯. 음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런걸 다 떠나 예능에서의 김흥국의 스타일을 상당히 좋아하는듯. - ↑ 여러 의미에서 전설적인 밴드인데, 예를 들면 리더인 보컬이 평소에도 분장한채로 등뒤에 장검을 차고 다녔다던가.. 음악 자체는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 ↑ 전에 엔하위키는 서로 듣보잡 취급한다고 서술했지만 사실 이석원은 흑인 음악도 존중한다고 밝혔으며 김반장의 경우는 흑인음악을 한 이후로 꾸준히 백인음악을 굉장히 배척, 싫어해왔고 방송에서 이석원이 밝히길 연락이 안되는 이유는 이 부분이 크다고 했다.
- ↑ 변변찮은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이석원을 씹고다닌다는 잘못된 소문이 있지만 대중음악상에서 상도 타고 상당히 알아주는 밴드다.
- ↑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절친 이상문이 '내가 베이스할게' / 'ㄴㄴ' 하는 식의 얘기도 했었다고 한다.
- ↑ 2집에 수록된 꿈의 팝송의 다른 편곡 버전. 2집의 꿈의 팝송이 만남이라면 4집의 꿈의 팝송은 이별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원래 4집 꿈의 팝송의 후주는 이석원과 이능룡이 기타 솔로 배틀을 벌이는 것으로 구상하였고, 어느날 이능룡이 죽이는 기타 솔로를 녹음했으나 그날 따라 모종의 일로 화가 나있던 이석원이 왜 내 와이프에게 보내는 노래의 기타 솔로를 이능룡이 치나 싶어서 지워버렸다 한다. 나중에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고...
- ↑ 정무진 노래. 아주 가끔 공연에서 이석원이 부르기도 한다. 정말 안부르는 편이니 들었다면 그날은 계탄 날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 ↑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 노래.
- ↑ 취소선이 그어졌지만, 가장 작업이 하드했던 5집 때는 '아름다운 것' 한 곡만 믹싱만 14번을 거치다가 결국 빼버리려고 했다가 만류와 엔지니어가 빌듯이 설득해서 수록곡으로 남기는데 성공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녹음이 끝나도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 ↑ 이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이석원이 음악을 해보니까 이럴수도 있구나 라고 납득했다고 한다.
- ↑ MBC에서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의 후속프로그램격이나 실질상 이름만 조금 다르고 같던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