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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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px 안경쓴 삐진 호나우지뉴

전체 이름엣하르 스티븐 다비츠[1]
(Edgar Steven Davids)
생년월일1973년 3월 13일
국적네덜란드
출생지수리남 파라마리보
신체 조건169cm, 68kg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유소년 클럽AFC 아약스 (1985-1991)
소속 클럽AFC 아약스 (1991-1996)
AC 밀란 (1996-1997)
유벤투스 FC (1997-2004)
FC 바르셀로나 (2004) (임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2004-2005)
토트넘 핫스퍼 FC (2005-2007)
AFC 아약스 (2007-2008)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0-2011)
바넷 FC (2012-2014)
지도자바넷 FC 플레잉코치 (2012)
바넷 FC 감독 (2012-2014)
국가 대표74경기 6골
EURO 2000 BEST XI
FW
파트릭 클라위베르트
FW
프란체스코 토티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엣하르 다비츠
MF
루이스 피구
DF
파올로 말디니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로랑 블랑
DF
릴리앙 튀랑
GK
프란체스코 톨도

싸움닭 왠지 이 문서를 다 이해해버린 것같은 기분이 든다

1 클럽

남미의 수리남 출신으로 1985년 AFC 아약스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1년 1군팀에 승격하였다. 1994-95 시즌에는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등과 함께 AC 밀란을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도요타컵에도 그레미우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하였다. 1995-96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유벤투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아약스에서 5시즌 동안 106경기에 출장해 20골을 기록하였다.

아약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6년 AC 밀란으로 이적, 입단 첫해 19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는 개막 직후 AC 페루자 전에서 골키퍼와 충돌한 뒤 부상을 당해 시즌을 날려버렸다. 그 후 1997년 시즌 중반 밀란 수뇌부가 불화를 이유로 그를 방출시켜버려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2]

1997-1998 시즌 유벤투스의 스쿠데토 획득에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동거녀 폭행 사건을 일으키며 유벤투스와 관계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2000년에는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본인은 "녹내장 치료제에 포함된 성분이 원인"이라고 변론했지만 네덜란드 대표였던 프랑크 데 부어도 같은 시기에 동일한 약물을 복용했다고 말했고, 그도 징계를 받았다. 2001-2002 챔피언스 리그 아스날 전에서 당시 감독인 마르첼로 리피가 그를 제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고르 투도르를 대신 출장시켜 문제가 발생하였다. 리피의 기용 방법에 분노를 표출한 그는 생방송 중 카메라에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면 나는 팀을 떠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발언에 유벤투스 수뇌부는 다비즈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였고 양자간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었다.

구단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진 다비즈는 절대로 재계약을 안할 것이라고 하며 AS 로마로의 이적을 감행하려 하였고 토티마저도 다비즈의 이적을 지원해주며 이적이 성사되는 줄 알았으나, 당시 유벤투스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의 반대로 이적이 무산되었다.[3] 그 이후 모지는 첼시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다비즈를 이적시키려고 하였으나 선발제외와 원했던 AS 로마 이적이 가로막혀 더욱 화가 난 다비즈는 유벤투스에게 "이적료를 안겨줄 수 없다"는 앙심을 품고 자유계약으로 나갈 생각으로 일부러 첼시에게 말도 안되는 주급을 요구하며 첼시행을 거절하고 빈정거리는 태도로 유벤투스에 남고 싶다고 했다. 유벤투스 측도 처음에는 놀랐으나 다비즈가 자유계약으로 나가려고 하는 거라면 우리도 자유계약 선수를 영입하면 된다고 하는 등 다비즈의 행동을 맞받아치면서 양측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이후 리피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다비즈의 행동을 비판하였는데 의도는 정말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다비즈가 이 말을 듣고 다시 돌아와주길 바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한 성격하는 다비즈가 이 말을 들을리 만무하였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는 다비즈가 선발 출장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해 유로 2004에서 폼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당시 FC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에게 다비즈 임대를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승인을 받게 되어 2004년 1월 11일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되었다. 1월 17일 아틀레틱 빌바오 전에서 프리메라 리가에 데뷔하였다. 이후에도 라리가에서 활약하며 부진했던 바르셀로나를 리그 2위로 끌어 올리는 공신이 되었다.

2004년 7월 계약 만료 후 FC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자유이적하였으나, 베론과 캄비아소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만치니 감독과 관계가 악화되며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5년 잉글랜드의 토트넘 핫스퍼 FC로 이적하였다. 입단 첫해는 31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확보하는 것 같았으나, 2006-07 시즌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디디에 조코라의 입단 후 주전자리에서 밀리며 출전 기회가 감소하며 9경기 출장에 그쳤다.

출전 기회를 찾기위해 2007년 1월에 친정팀 아약스로 이적하며 11년만에 복귀하였다. 2007-2008 시즌 개막전이었던 고 어헤드 이글스 경기에 보호대 없이 출전하였는데 왼발 골절 부상을 입으며 장기간 이탈하며 11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후 경기 출장이 없었고 방출되었다.

이후 2년간의 공백기간이 있었다가 2010년 8월 풋볼 리그 챔피언십 소속의 크리스탈 팰리스 FC로 이적하였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도 6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0년 11월 팀을 탈퇴하였다.

2012년 10월 풋볼 리그 2 소속의 바넷 FC에 플레잉코치로 이적하였다. 2012-13 시즌 28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의 컨퍼런스 프리미어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2013-14 시즌 8경기에 출장하였다. 2013년 12월 28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 국가대표

1994년 4월 20일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네덜란드 대표 선수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Hiddink should stop putting his head in some players' asses."("히딩크는 몇몇 선수들한테 병신같은 짓을 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 라는 발언을 하며 대표팀 감독이던 거스 히딩크에게 공개적으로 항명을 했고, 유로 1996 대회 도중 대표팀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이후 자숙(?)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16강전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전에서 중거리슛으로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으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공동 개최한 유로 2000에서도 대회 개최 전부터 대회 광고 모델로 주목을 받았으며, 팀은 4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석패했으나 UEFA Team of the Tournament에 선정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부진하여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유로 2004에서는 팀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에는 대표팀과 멀어져갔다.

3 은퇴이후

2012년 바넷 FC의 플레잉코치로 나서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2년 10월부터는 바넷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5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고, 5부리그에서도 10위에 머무는 등 부진이 이어지자 2014년 1월 19일 바넷 FC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 플레이 스타일

타고난 체력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잠식하는, 젠나로 가투소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미드필드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이며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뛰어난 운동능력에 대한 일화로는 98 프랑스 월드컵 4강 브라질전에서 당시 신체적으로 최전성기였던 호나우두를 쫒아가 공을 커트해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안드리 셰브첸코는 따라잡지 못했다.[4]

아약스 시절 레이카르트의 후계자라 불리며 기대를 받았고, 1995년 아약스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돌풍의 핵심에 위치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대표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으나, 부상과 녹내장, 약물파동 등으로 인해 전성기가 길지는 못했다. 후임이였던 마르크 반 봄멜이 성질이 워낙 지랄맞아 카드캡터질을 자주 보여준지라[5] 다비즈의 공백을 네덜란드인들이 많이 아쉬워 한 편.

5 여담

국적은 네덜란드이지만 남아메리카수리남에서 태어났다. 대표팀 동료인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지미 하셀바잉크도 수리남 출신이다.

2000년 왼쪽 눈에 녹내장이 발병해 실명의 위험이 있었지만, 수술을 통해 극복하고 경기중에는 FIFA의 공식 허가 속에 특수 보호 고글을 착용하게 되었다. 그 고글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안경을 쓴 몇 안되는 축구 선수중 하나다.
  1. 영어식 발음으로 철자가 비교적 영어에서도 흔한 이름이라 자연스럽게 영어식 발음이 국내에 정착.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발음은 엣하르 다비츠. 출처는 영문 위키. 그런데 국내에서는 네덜란드어와 영어의 짬뽕인 엣하르 다비즈로도 불린다(...).
  2. 사생활 문제도 있었으며 밀란 선수들과 사이가 안좋았던 편이었고 특히, 밀란의 레전드 중 한 명이었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는 욕설을 주고 받을 정도로(코스타쿠르타는 다비즈를 썩은 사과에 비유할 정도였다.) 사이가 매우 안좋았었다고 한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팬과 시비가 붙어 다투다 팬에게 폭행위협을 하는 사건을 계기로 밀란 측은 다비즈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3. 모지와 당시 AS 로마 구단주였던 프랑코 센시는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대표적인 앙숙이었고, 모지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로 로마에 선수를 이적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때 유벤투스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상황이라서 이적료가 얼마 안되더라도 받을 만했는데도 모지가 이 이적을 반대함으로서 축구팬들에게 모지와 센시가 얼마나 사이가 안좋은 지를 보여주게 되었다.
  4. 셰브첸코의 피지컬과 운동능력은 축구판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히는 괴물이다. 호나우두도 폭발력 있는 드리블이 주무기였지만 미친 운동능력으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테크닉을 커버했던 셰브첸코에겐 한 수 접어줘야 했다.
  5. 그런데 그 반 봄멜도 다비즈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