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의 법정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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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구청 소재지. |
오금동 梧琴洞 / Ogeum-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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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기초자치단체 | 송파구 |
관할 행정동 | 오금동 |
면적 | 1.65km² |
인구 | 38,537명 (남-19,117 여-19,420) (2012. 12. 31.) |
세대수 | 14,173가구 (2012. 12. 31.) |
주민센터 | 오금동 홈페이지 |
梧琴洞 / Ogeum-dong
1 개요
마천로 이북, 양재대로에서 중대로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학원지구를 이루고 있으며 양재대로 가변에는 학원가와 함께 상가, 유흥가가 섞여 있다.그 이외는 거의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다. 현재
이곳은 방이동과 함께 송파동 최대의 학원지구로, 올림픽공원 남문 사거리에서부터 방이역까지 이르는 지역은 오금동이라기보다는 인근 주민들에게 방이동이라고 불리고 있다.
올림픽공원과 가깝고, 관내에 성내천, 오금공원이 있어서 운동하기에는 좋은 동네다.
2 역사
오금동은 이 지역에 자생하는 오동나무가 많아 거문고를 만드는 장인이 많이 살았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갈 때 백토고개[1]에서 잠시 쉬었다가 신하에게 무릎 안쪽의 ‘오금이 저린다’고 말하여 그 후 ‘오금골’이라 불리어 졌다는 설이 있다. 다른 설로는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신하의 등에 업혀서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는데 이 동네가 온통 진흙뻘이어서 인조를 업은 신하의 다리가 오금이나 잠겼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오금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오금리로 칭해 왔으며,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부제실시로 경기도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이곳의 오금골을 비롯하여 웃말, 안골, 개롱리 등 자연부락을 병합하여 오금리라 하였다. 해방 후 1963년 서울특별시의 대대적인 구역확장이 이루어질 때, 이 지역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오금동이 되었다. 이때의 행정동은 방이동과 함께 왕천동 관할이었다.
1970년 행정동 왕천동이 행정동 방이동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됨으로써 이에 속하게 되었다. 곧 이어 1979년 강동구가 신설되자 다시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85년 방이동에서 오금동이 분동되었다. 1988년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리 신설됨으로써 이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3 교육
관내 교육 시설 | ||||
고등학교 | 보인고등학교 | 오금고등학교 | ||
중학교 | 세륜중학교 | 오금중학교 | 오주중학교 | |
초등학교 | 서울거여초등학교 | 서울오금초등학교 |
인근 방산고등학교나 보성고등학교, 창덕여자고등학교, 잠실여자고등학교로도 많이 간다. 자율형사립고 보인고등학교도 오금동 관내에 있다.
4 교통
5호선 방이역, 3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오금역, 5호선 개롱역이 있다.
양재대로, 중대로, 동남로가 횡축도로이며, 위례성대로, 마천로, 오금로가 종축도로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가 오금동과 거여동의 경계를 지나지만 오금동과 연결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