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일자
讀賣新聞. 読売新聞. よみうりしんぶん. Yomiuri Shimbun. 일본의 신문으로 세계 최대 발행부수 신문이기도 하다. 한때는 프라우다가 발행부수가 더 많기도 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발행부수가 급감하면서 요미우리 신문이 1위를 차지했다. 2013년 상반기 기준으로 조간 부수는 988만부, 석간은 338만부 수준이다. 우익 성향의 언론으로 미국의 의중을 잘 표현하는 신문이란 평가다. 산케이신문처럼 대놓고 극우적으로 나오지는 않고 반공우익에 가깝다. 미일관계를 중시하고 대체로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냉대하는 편.
1 역사
1874년에 창간됐다. 1945년 미군이 일본에 들어서자 한자를 폐지하라며 상용한자 제한과 약자 사용 등을 주장했다. 사장이었던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 1885-1969)[1]가 A급 전범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1994년엔 조간이 1천만부를 넘기도 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좌익 성향의 기자들이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사장이었던 쇼리키는 면담을 거부했고 기자들 중 선두격인 5명을 퇴사시켰다. 일본 공산당이 이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노동 문제 등에서 전범들을 몰아내던데 몰두하던 GHQ도 관심을 보이면서 일은 커지고 쇼리키가 전범으로 기소되면서 감방에 가는 바람에 경영진과 직원은 합의를 한다. 그러나 1948년에 이르면 GHQ가 중국 공산당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다시 재무장[2]하는 방침을 잡으면서 레드 퍼지가 이뤄지고 요미우리 쟁의는 흐지부지된다. 신임 사장은 좌익 성향의 직원들을 솎아내 퇴출시킨다.
2 성향
지금이야 친미보수에 우익적인 성향이지만 1920년대에는 아사히(朝日)신문과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신문이 인기를 끌자 아카(アカ)[3]를 채용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고 1950년대 넘어가면서 퇴출되지만. 다만 1970년대까지는 자유주의 논조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리버럴이란 표현도 있는데 1979년에 이르면 와타나베 츠네오(渡邉恒雄, 1926-)[4]가 논설위원이 되면서 친미보수 성향으로 변화한다. 게이단렌[5]과 신자유주의, 자위대의 국군화를 옹호하며, 노조, 평화운동, 원전반대운동 등에 부정적이다. 다만 와타나베 츠네오는 2차 대전 참전용사 출신이라 전쟁 문제에 부정적이라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했다. 2013년 아베 신조 2차 내각의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묘지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프로 스포츠에서 지역명을 붙이는 걸 엄청나게 싫어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보듯 자이언츠 구단 주인이 된 이후 도쿄를 빼버린 것도 있지만, J리그에서 팀명을 지역 중심으로 바꾸라고 하자 '그럴 거면 축구단 운영 안 해'하며 J리그에서 손을 떼버린 사례를 보면 확실하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팀이 바로 도쿄 베르디로, 요미우리 산하이던 시절에는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었으나 요미우리에서 손을 뗀 후에는 최약체로 전락한 상황이다.
3 대주주 현황
이 부분은 일본어 위키페디아의 요미우리그룹본사 항목의 대주주의 현황란에서 가져왔다.
2012년 3월 31일 시점
1. 読売新聞グループ本社役員持株会 31.69%
2. 公益財団法人正力厚生会 20.96%
3. 社会福祉法人読売光と愛の事業団 9.78%
4. 関根達雄(正力松太郎の孫) 7.83%
5. 学校法人読売理工学院 6.03%
6. 正力源一郎(正力松太郎の孫、正力亨の子) 4.97%
7. 正力美緒 4.94%
8. 小林梅子(正力松太郎の娘、小林與三次元社長の妻) 4.25%
9. 小島あき 2.77%
10. 正力峰子 1.96%
주식 지분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요미우리 신문의 오너는 쇼리키 가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