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

劉琮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형주를 다스린 유표의 차남. 정사에서는 장남인 유기와는 한 어머니를 둔 친형제이다. 연의에서는 채부인의 친아들.

2 정사

본래 유표는 장자 유기를 총애했으나 유종이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의 조카를 부인으로 맞이했기 때문에 형주의 강력한 호족이었던 채씨 일족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유기를 강하태수라는 외직으로 밀어내[1] 유표의 후계자로 두각을 드러냈다.

조비가 쓴 전론에 따르면 유종과 채씨 일가는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여 유기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고 하며, 유기에 대해서 지극히 동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동생들과 치열한 암투 끝에 황제에 오른 조비 본인의 기록이기에 어느 정도 과장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교차되는 다른 기록들을 봤을 때 유종과 채모가 연합해 기존에 후계자로서 입지를 가지고 있던 유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린 것은 사실로 보인다.

마침 조조가 공격하자 형주와의 경계 지역에 조조가 다다랐을 무렵에 유표가 병으로 죽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유표의 지위를 물려받아 군주가 되었으니 통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일단 자기 자신은 끝까지 지켜보고자 하는 생각이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신하들, 무엇보다도 군권을 쥐고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 채씨 일족이 투항을 주장해 조조에게 항복한다.

조조가 형주에 입성했을때 유종의 부하였던 왕위는 조조가 방심하고 있으니 이를 틈타 습격해 조조를 죽인다면 천하를 평정하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진언했지만, 유종은 이를 거절하고 순순히 조조에게 귀부한다. 《자치통감》에 주를 단 호삼성은 이때 유종이 왕위의 진언을 받아들였더라면 조조는 그대로 끝났을 것이라 평했다. 내심 항복에 반대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그만큼 큰 일을 벌이기에는 담이 작았던 모양.

이후 청주자사로 부임한다. 조조는 그를 높이 평가했으며[2], 간의대부 찬동 군사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조조 본인은 나중에 유수구에서 손권의 군사가 엄정한 것을 보고 기량을 칭찬하면서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 정도는 되어야지. "유경승의 아들들은 돼지와 같다(生子當如孫仲謀 劉景升兒子若豚犬耳)."고 말한다(…). 공식적으로는 칭찬해줬지만 본심은 그렇게까지 높이 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력 호족들과 야합해 온갖 모략으로 형을 후계에서 밀어내고는 기껏 한다는 것이 호족들에게 휘둘리다 항복하는 것이니 높게 평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여담으로 이 고사 때문에 어리석은 아들을 이르는 '돈견(豚犬)'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조조가 유종을 높이 평가하며 대우한 건 항복한 형주 민심을 포섭하는 목적이 강한 전형적인 립서비스이자 겉치례일 뿐으로 보인다.

한편 유기는 반조조파인 유비에게 추대되면서 조조에 대한 저항 의지를 확고히 하고, 유종과 완전히 갈라선다. 유기와 유종은 원래 사이가 나빴으나 이렇게 갈라선 이후부터는 아예 형제관계도 정리하고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고 한다.

전론에 따르면 유기의 성격과 평판이 좋았기에 당시 사람들은 유종을 도왔던 채씨 일가를 비웃고 경멸했다고 한다. 서술에 편향성이 있긴 하지만 앞뒤 정황을 봤을 때 아예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닌 듯.

유종의 몰년은 불명이나 이토록 조비에게 단단히 밉보였기에조식 투영 조조 사후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매우 피곤하게 살았을 듯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채부인의 아들로[3] 매우 총명하다고 한다. 나이도 매우 어리게 설정되어 유표의 사망해인 208년 당시 14살(195년생)의 나이로 나온다. 채부인은 유기를 제거하고 자신의 아들인 유종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남동생인 채모와 이런저런 모략을 꾸미고, 유표가 죽은 뒤 유서를 조작하여 유종을 형주의 차기 군주로 옹립한다. 이후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은 역사상의 모습과 거의 같으나 청주자사로 부임받아 가는 도중에 정사와 달리 우금에 살해당한다.

비중은 안습한 편이지만 그래도 연의상으로는 은근히 큰 수혜를 입은 편에 속한다. 역사상의 서술은 정략결혼으로 유력 호족들과 연합하며 모략으로 형을 몰아내고 기껏 한다는 짓이 휘하 호족들에게 휘둘리다가 항복하는 찌질한 모습이고, 일단 순순히 항복했기에 공식적으로는 우대받았지만 조조는 사석에서 유종을 개돼지로 평했으며, 조비는 감히 형을 몰아내고 후계자가 됐다는 점이 괘씸해 보였는지 글까지 남겨가며 유종을 신랄하게 까는 등 매우 평가가 나쁜 반면, 연의에서는 유종이 후계 지위를 위해 욕심을 부렸던 것을 친아들을 후사로 밀어넣기 위한 채부인의 욕심으로 묘사했으며, 나중엔 형제관계도 정리하고 서로 원수로 여겼을 정도로 불화했던 유기와의 관계도 우애가 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전체적으로 매우 사려깊고 총명하지만 아직 한참 어린 나이로 어른들의 권력다툼에 희생된 비운의 군주로 묘사되는데, 정작 연의상 유종의 캐릭터와 거의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원상이 연의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버프를 받은 편.

몇몇 연의의 판본에서는 조조가 유수구에서 유종을 까는 발언을 "유경승이나 원본초의 은 개돼지와 같다."라고 고쳐서 원소의 아들들도 한 묶음이 되어 까이기도 한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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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삼국지연의를 따라 195년생으로 설정, 지력이나 정치력은 60대 중반에 머무르고 전투관련 능력치는 매우 낮다. 소년 이미지 때문인지 꽤나 귀여운 얼굴로 나온다. 쇼타 유종의 미 하지만 12편에서는 정사 보정인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보인다.

삼국지 9에서의 22/22/66/61. 지력은 형보다 높다지만 그래봤자 쓰레기이고 정치가 낮은 게 더 크다. 형은 투함을 띄울 수 있는 데 이 녀석은 누선 밖에 못 띄운다. 혼란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6/20/66/56/63에 특기는 기술, 명사 2개뿐. 등장하는 시나리오라곤 삼고초려 시나리오뿐인데 수명마저 짧고 영웅집결에서 쓰자니 유표군에 저 정도 능력치를 가진 인물은 널렸기 때문에 그저 안습.

삼국지 11의 능력치는 24/22/64/65/70의 평범한 문관형. 일러스트는 그나마 곱상하게 나온다. 콘솔판 추가 시나리오인 영웅난무에서는 유표에게서 독립하여 신야에서 군주로 나온다. 부하는 채씨, 채모, 채중, 채화, 장윤, 부손, 왕위, 왕찬. 도시도 작고 부하들 능력치도 안습한데 신야에는 재야도 없다. 더 문제는 양호, 유언, 마등, 순욱, 손권이 주변에 있다는 것. 정상적으로 해서는 답이 없는 세력이다.

드라마 삼국에서는 어머니인 채부인과 함께 살해되지는 않지만 형주의 지배권을 보장한다던 당초 약속과는 달리 반대파의 암살 우려를 핑계로 조조가 실권을 뺏고 허창에 보내 연금시킨다. 한국판 성우는 이지환. 극중 형주의 군사는 기병 5만, 보병 15만, 수군 18만. 도합 33만의 대군인데 조조는 형주군의 10분의 1도 안되는 병력만 가진 유비는 죽자사자 싸우는데 그렇게 많은 병마를 거느린 넌 왜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했냐며 질타한다.

창천항로에서는 유표가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맞아들여 화제거리가 유비에게 책략을 구하는 등 호들갑을 떨자 유비가 말하는 조조를 이길 책략이란 것을 너무 믿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등장. 이에 유표는 조조를 물리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이로서 유비의 성망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를 이용함으로서 우리들의 천하의 그림이 보일 것이라고 한다.[4] 이때 두 페이지 나오고, 이후의 행적은 나레이션이나 다른 인물의 대사를 통해 처리되는 완전한 엑스트라에 가깝지만 역사상의 유종이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적당히 푸짐하고 수염을 길게 길러 작중 유표와 비슷한 이미지로 나온다. 적게봐도 30대는 됐을 듯 하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유이라 그런지 종(鐘)으로 나온다.

파일:Attachment/채부인/Example.jpg

용랑전에서는 별 비중도 없이 채부인, 왕위와 함께 흑장호에게 살해당한다. 그 후 채부인과 함께 잘린 목이 화로에 담겨 조조에게 보내진다.
  1. 강하태수는 유기가 제갈량의 조언을 얻어 스스로 자청한 것이고, 강하는 형주의 후방이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로 1만의 군사가 주둔한 곳이었기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받는 유기에게는 몸의 안전을 지키고 여차하면 형주가 혼란에 빠졌을때 군사를 도모할 수 있는 재기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냥 밀려났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적인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당시 강하는 손권의 영역이었다는 함정이.. 삼국지 관련 작품에서 당시 유기의 근거지가 강하로 나와 강하가 아직 유표의 영역처럼 나오는데 강하는 황조의 죽음과 함께 손권이 장악해 버렸다. 때문에 유기의 진짜 근거지는 강하의 서쪽 변두리인 하구였다고 한다. 비록 손권이 강하를 완전히 장악하지 않았더라도 황조와 함께 강하의 군세도 괴멸했으므로 사실상 이미 아무 것도 없는 땅이다. 즉 진짜 명예직인 것이다.
  2. 위무고사의 조조명령서에는 유종을 지혜가 깊으며 사려가 넓고 신의와 덕성을 존중한다며 그를 아주 칭찬하고 있다.
  3. 채모의 조카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채씨 일가와 가까워졌다는 서술을 보면 확실히 친자식이 아니다. 만약 조카라는 서술이 같은 항렬의 먼 친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채부인의 친자식일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으나, 그렇다면 굳이 채모의 조카와의 혼인으로 채씨 집안과 가까워졌다는 서술을 할 필요가 없다.
  4. 작중 유표의 목표는 유비를 앞세워 조조와 맞서는 한편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조조와 교섭하려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