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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신한민주당
신정사회당
신민주당
무소속, 기타
148석35석20석67석1석1석4석
제12대 국회의원 목록

1 개요

1985년 2월 12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84.6%를 기록했다.

선거 역사상 최대의 반전 드라마.

2 배경

의원 정수는 276명으로 11대 총선과 같았다.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였다. 184명의 지역구, 92명이 전국구였다.

3 과정

당초 상당수 정치인들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규제가 풀리자 김영삼과 김대중 등 구 신민당 출신 인사들은 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어떻게든 신한민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는데, 애초에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되려던 것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약칭조차 신민당을 쓰지 못하게 딴지를 걸었고[1] 무엇보다도 관행상 3~4월에 치러지던 국회의원 선거를 2월 12일로 앞당겼다.[2] 이로 인해 신한민주당은 사실상 창당한지 불과 보름도 채 안되어 선거를 맞이하는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관제 야당인 민주한국당신상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주요 인사들은 정권의 협박으로 인해 신한민주당 합류를 못하는 등의 정치 공작도 있었다. 신상우의 경우 안기부 서울분실장 방준필이 불러서 나갔더니만, "신한민주당에 입당하면 구속시켜 버리겠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공권력은 아주 많고, 당신의 사돈에 팔촌까지 죄는 만들면 된다."는 말로 탈당을 못하게 했다고.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태도에 염증을 느낀 대도시 유권자를 중심으로 신한민주당의 지지세는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양대 방송사에서 아예 대놓고 땡전뉴스를 비롯하여 정권에 유리한 편파보도도 모자라 전비어천가 드라마를 편성했다. KBS와 권력(강동순 저) 참조. 결국 KBS 사장 이원홍과 MBC 사장 이웅희는 신한민주당 김재광 선거대책본부장에 의해 선거법 위반으로 피소되었다. 이런 편파적 태도가 도리어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면서 결국 판세는 신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다.

선거 결과 신민당은 29.3%의 지지율로 지역구 50석에 전국구 17석를 얻어 총 67석으로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등극하는건 물론 서울 및 부산, 대구, 인천 등 대도시 지역에서 민정당과 호각을 다투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서울에서 민정당은 꼴랑 27%를 얻는데 그치는데 반해 신민당은 42.7%의 득표율을 올렸다. 말이 호각이지 실상 소선거구제로 치러졌으면 대도시 지역의 의석수를 대거 싹쓸이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당시 전국구 배분은 지역구 1당에게 2/3을 몰아주는 편법의 극치였는데 당시 신민당과 민한당의 득표율 총합이 49%였으며 이에 맞춰 전국구를 고르게 배분했다면 신민+민한 120석 VS 민정 119석으로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이 나올 수도 있었고, 심지어 13대 총선 수준으로 전국구 선거제도를 조정하는것 만으로도 여소야대가 되는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선거 결과를 들은 전두환 대통령은 탁자를 툭툭 치며 허탈한 반응을 보이다가,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는 노신영 안기부장의 보고에 "전국구가 있으니 그 정도 얻은거잖소!"라면서 역정을 냈다. 그리고 노신영 안기부장 경ㅋ질ㅋ[3]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신민당 돌풍에는 김대중이 선거 사흘 전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과감한 귀국을 한 것이 큰 요인이 되었다.[4] 약 2년 전인 1983년에 필리핀의 야당 인사 베니그노 아키노가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다가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김대중 또한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을 우려한 미국의 정치인, 언론인 등이 비행기에서부터 그를 에워싸 김포국제공항 입국장까지 동행했으며 이 모습은 국민들에게 아직 민주투사들의 활동은 죽지 않았으며 미국이 지지한다는 것을 내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 때 입국장에는 김대중을 동교동 자택으로 데려가기 위해 안기부 요원 및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미국 인사들에게 무력을 휘두르면서까지 김대중을 끌고 갔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시 동행했던 전직 외교관인 로버트 화이츠 왈, "한국 경찰들이 우리한테 폭력을 휘두르는데, 3년 뒤에 미국인들이 안심하고 서울에 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편, 민주정의당은 예상보다 적은 의석을 얻었으나 여당에게 지극히 유리하게 짜여진 선거제도 탓에 과반은 유지했다. 하지만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은 제도상으로도 불리한 마당에 신한민주당에 밀리면서 제대로 유탄을 맞아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어 참패를 면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민주정의당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앞서 말했듯 선거 결과에 격분했던 전두환은 총선 판세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국가안전기획부노신영을 해임했고[5] 민주한국당 의원 상당수가 신한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신민당은 103석의 거대야당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는 KBS 시청료 거부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후일 신민당은 내각제 개헌(이민우 구상)파문으로 양김계에 속한 대다수 의원들이 통일민주당으로 옮겨졌으나 어찌되었든 6월 항쟁 발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전두환에게 여러모로 밉보였던 재벌인 국제그룹이 분풀이격으로 해체되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있었다. 국제그룹이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대기업이니만큼 양정모 회장이 여당의 승리를 도와달라는게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이었는데, 여당 의석수가 고작 3석밖에 안 나오는 바람에.....부산의 6개 선거구 총 12석중에 신민 6, 민한 2, 국민 1, 민정 3석으로 3개 선거구에서는 민정당이 3위로 낙선했다!

4 결과[6]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민주정의당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신한민주당신정사회당신민주당무소속합계
서울13101400028
인천20020004
경기1033400020
강원614000112
충남840400016
충북41120008
전남1150510022
전북713201014
부산321600012
경남1041500020
대구21120006
경북1031400220
제주10000012
지역구87261550114184
전국구62(35.2%)9(19.7%)5(9.2%)17(29.3%)0(1.4%)0(0.6%)091
합계148352067114276
  1. 하지만 민한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부터가 민정당이라는 약칭을 쓰고 있었던지라 결국에는 흐지부지되었다.
  2. 참고로 그 이전까지 음력이 휴일이 아니었지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1985년 2월 20일)을 하루짜리 공휴일로 지정한다. 결과적으로는 땡큐 29만원. 그리고 민정당의 후예들31년 후 총선에서 역대 총선 역사상 여당 최악의 참패를 당하자 성난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불과 8일 전에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실로 어이없는 정치쇼를 선보였다.
  3. 다만 이 때의 삽질만 빼면 워낙 일을 잘해왔기에 전두환은 노신영을 국무총리에 임명한다. 사실상 경질의 탈을 쓴 영전인 셈.
  4. 다만 김대중 본인은 신생 야당인 신한민주당보다는 비록 관제 야당이지만 조직 자체는 어느 정도 굳건한 민주한국당이 제1 야당으로 유력하다 생각하여 민주한국당에 좀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김대중과 막역했던 정일형-이태영 부부의 아들인 정대철이 종로.중구에 민한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5. 하지만 총선 건을 제외하면 노신영이 워낙 일을 잘했기에 국무총리로 발탁하는 식으로 물러나게 했다. 예전 직책인 외무부 장관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부총리급인 안기부 장관과 격이 안 맞아서 고민했다고.
  6.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 선거 결과에는 충북과 경남의 신한민주당 당선인 2명을 신민주당으로 잘못 적어 신한민주당 48, 신민주당 3으로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