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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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敏雨
1915년 9월 5일 - 2004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인석(仁石)이다. 종교불교다.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중퇴하였다. 이후 언론계에 종사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유진산 등과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초 민주당 구파가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할 때 이에 따라갔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태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청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민기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신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74년 신민당 유진산 총재가 별세하자 유치송 등과 견지동우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였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통일당 김현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그러자 김영삼, 김동영 등과 민주산악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신한민주당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종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6년 전두환 정권과의 타협책이었던 이민우 구상[1]이 밝혀져서 파문이 일자 이듬해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 의원 내각제 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