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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喆
1893년 00월 00일 - 1979년 11월 27일
1893년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가서 메이지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등에서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인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당시 민주당 신파 소속이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1960년 8월부터 9월까지 체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같은 해 9월부터 10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당 후보로 충청남도 청양군-홍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는 민중당, 신민당 소속으로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국회부의장으로 재임 중이던 1966년 김두한이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일으킬 때 사회를 보고 있었다. 이후 1969년 신민당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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