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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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권기옥, 이상정

이상화
李相和
1901년 4월 5일 ~ 1943년 4월 25일

대한민국시인, 독립운동가. 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이다. # 본관은 경주(慶州).

본디 퇴폐주의 시인이었으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에 가담하였던 시인이다. 조선일보사 경북총국을 맡아 경영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외에 시〈나의 침실로〉등이 있다.

공교롭게도 소설가 현진건과 같은 도시인 대구에서 태어나 같은 해 같은 날에 사망했다. 거기다 둘 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붓을 꺾고 친일을 하려 하지 않은 점에서 굉장히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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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못에 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시에 나오는 '들'의 실제 배경이 수성못 북쪽의 현, 수성구 상동, 중동, 두산동, 황금동 일대에 있던 너른 들이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오거리 인근에 매일신문사와 계산성당 뒷편 계산성당에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까지 이르는 골목길이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대구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곳이 이 골목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구보통고등학교, 계성고, 대구신명학교(현 신명고) 학생들이 이 곳에서 3월 8일날 만세 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대구광역시에서 근대골목체험 코스로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에 쫓기느라 자택에 오는 날이 되게 드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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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건데, 이상화의 무덤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 13-1번지에 있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곡역 3번 출구에서 200m 정도 올라가거나 대곡역 항목의 환승 가능한 시내버스 문단에 있는 버스들을 타고 대곡역 정류장에서 하차 후 10분 정도 걸으면 동쪽에 야산이 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월성 이씨 재실과 제각이 보이고 바로 뒷편으로 문중 묘소가 있다. 이 곳에 이상화를 포함해 이상화의 아버지 이시우, 큰아버지 이일우, 형 이상정, 동생 이상백의 무덤이 있다. 또한 달서3번이나 달서5번을 타고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에서 내려서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 뒷산을 타고 올라가도 나온다. 참고로 달서3번은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 정문에, 달서5번은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 후문에 정차한다. 아니면 609번, 836번, 달서1번, 성서1(-1)번, 급행7번을 타고 유천교 정류장에서 하차 후 15분 정도 걷거나 성서2번을 타고 삼성래미안1차에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대구 동대구로 수성구민운동장역 근처의 아파트인 궁전맨션에는 이상화의 벽화가 이육사, 서상돈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상화 시인이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서신 등을 포함한 유물 2만여점을 가사도우미가 훔쳐다가 팔려다가 적발되어 이것을 사들인 장물업자와 함께 체포되었다.# 꼴좋다 이상화 시인과 관련된 중요한 사료들이었는데 하마터면 이 천하의 개쌍놈들 때문에 사료들이 영구 소실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