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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 1988
1 소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평양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1920년 이후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중국군에 들어가 10여 년간 복무하면서 항일 활동을 계속했다.[1]
2 일생
1901년 1월 11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 졸업반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3주 동안 구류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인 김순일(金淳一)·김정직(金鼎稷)·김재덕(金在德)·임득삼(林得三) 등과 임시정부 공채 판매 및 군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 간 복역하였다.
출옥한 후 1920년 8월 광복군 총영의 대한청년단연합회 소속 문일민(文一民) 장덕진(張德震) 등을 도왔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애국 동지들과 접선하기 위한 방편으로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단을 조직, 여자전도대장으로서 전국을 순회·강연하며 비밀 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20년 9월 상하이로 망명, 이승만(李承晩)·안창호(安昌浩) 등을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임시정부 추천을 받아 윈난(雲南) 육군항공학교의 제1기생으로 입학하고, 1925년에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후 중국군 혁명 장군 펑위샹(馮玉祥) 휘하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복무하였다. 1927년 장제스의 북벌(北伐) 때 최용덕(崔用德)과 동로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가담하는 등 10여 년 동안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였으며, 1928년 5월에는 난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같은 해에는 독립운동가 이상정[2]과 결혼하였으며,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자 충칭에 있는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에는 김순애(金淳愛)·방순이(方順伊)·최선화(崔善燁)·최애림(崔愛林)· 최형록(崔亨祿) 등과 충칭 임시정부 산하에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 사교부장(社交部長)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광복 후인 1949년에 귀국하였다. 하지만 귀국 2년 전에 남편 이상정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전쟁시기 국회 국방위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귀국 후에는 전 재산을 장학 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장충동2가의 낡은 목조 건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88년 4월 19일에 타계했다.
3 기타
-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두산 김) 10과 본문에 권기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문의 제목은 "I want to fly"이다. 권기옥의 출생, 어린 시절, 비행사를 꿈꾸었던 계기 등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다.
- 2015년 11월 22일자 골든벨 문제의 정답으로 등장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