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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允盛
1944년 10월 2일 ~
1944년 함경북도 청진부에서 태어나 월남하여 인천에서 자랐다. 제물포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KBS에 입사하여 기자로 재직했고, 80년대 들어 보도본부 24時, KBS 2TV 뉴스쇼를 거쳐 1993년 KBS 뉴스 9 앵커에 올랐다.
앵커맨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KBS 보도본부 24시 재직 당시의 진행 스타일 때문이었는데, 당시 정가에서는 KBS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보도본부 이윤성이처럼 마음대로 휘두르면(?) 내 인터뷰 안하겠소"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던 당시 방송계에서 미국식 진행 스타일을 고수하며, 특히 정치인을 스튜디오에 초대하거나 전화인터뷰 걸어놓고 질문지도 없이 날선 공격[1]을 시도때도 없이 날려댔기 때문. 물론 정치인들과 달리 이러한 시도가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땡전뉴스 등을 포함하여 다른 KBS 정치부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편파적인 방송 진행을 하였다는 지적이 있다. 다만 KBS 2TV 뉴스쇼, KBS 뉴스 9 앵커를 맡았을 시의 편파성에 대한 지적은 별로 없는 편인데 이때는 KBS에서 문민정부 시대를 맞아 수신료 인상에 나름 공을 들였던 시점이었던지라 보도 프로그램의 편파성을 어느정도 완화는 시켰기 때문이다.[2]
1995년 KBS 퇴사 후 정계 진출을 선언하였고,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남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국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에 속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천안함 피격사건이 (한나라당의 선거 결과에 도움이 되어) 다행일 것이라는 망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2011년 공무원 평균연봉을 과잉 산출해서 물의를 빚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남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정계 은퇴 후에는 2013년부터 2015년 1월까지 프리랜서 자격으로 MBN 뉴스 8 앵커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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