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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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국 제작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4시 뉴스집중, KBS 재난방송센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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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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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진행을 맡고 있는 황상무 기자와 김민정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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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송영석 기자와 이슬기 아나운서.

1 개요

KBS의 메인뉴스 프로그램. 매일 밤 9시에 방송, 평일에는 1시간, 주말에는 40분 진행한다. 읽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가 부활하여 KBS 9시 뉴스라고 읽는다.[1] 방송 중 표시되는 네모칸의 로고는 9.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한 밤 9시 뉴스로 종합뉴스로서는 KBS뉴스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매일 방송된다.

KBS 1TV 외에도 U-KBS STAR(DMB), KBS 제1라디오, KBS 제3라디오, KBS 한민족방송, KBS 월드(단파 라디오, 위성 TV)에서도 수중계된다.[2] 24시간 송출되는 뉴스전문채널(YTN, 연합뉴스TV)을 제외하고는 JTBC 뉴스룸과 더불어 팟플레이어tv팟을 통해 실시간 시청이 가능하다. 대한민국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이다.[3]

2 연혁

1970년 1월 5일부터 밤 9시에 KBS 뉴스라는 타이틀로 신설, 평일에는 20분, 주말에는 15분 진행했다. 4월 13일부터 평일 뉴스, 주말 뉴스 모두 밤 9시 40분으로 변경,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고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되었다. 6월 29일부터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8월 3일부터 밤 9시 30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다. 11월 30일부터 밤 9시 40분으로 환원되었고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1971년 1월 4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1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4월 5일부터 밤 9시로 환원,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5월 31일부터 밤 10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다가 8월 2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고 8월 28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10월 11일부터 평일 뉴스가 밤 9시 30분으로 변경되었고 10월 16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10분으로 단축되었다. 12월 26일부터 편성이 평일로 축소되었다. 1972년 1월 17일부터 평일 뉴스가 밤 9시 40분으로 변경되었다. 5월 22일부터 평일 뉴스가 밤 9시 30분으로 변경되었고 5월 27일부터 토요일까지 편성을 확대, 밤 9시 40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되었다. 6월 4일부터 일요일까지 편성을 확대, 저녁 8시 50분으로 변경되었다.

9월 16일부터 토요일 뉴스가 밤 9시 40분으로 변경,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되었고 9월 17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밤 9시로 변경되었다. 10월 23일부터 평일 뉴스, 토요일 뉴스 모두 밤 9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15분으로 단축되었다. 11월 26일부터 일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10분으로 단축되었다. 1973년 4월 14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연장되었고 4월 16일부터 평일 뉴스가 KBS 뉴스와 해설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6월 11일부터 KBS 뉴스와 해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 KBS 종합뉴스로 확대 개편, 종합뉴스로 전환, 메인뉴스로 격상되어 KBS에서 처음으로 메인뉴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6월 16일부터 토요일 KBS 뉴스(21:00)의 방송 분량도 30분으로 연장, KBS 종합뉴스로 확대 개편, 종합뉴스로 전환, 메인뉴스로 격상되었다. 8월 11일토요일 KBS 종합뉴스KBS 뉴스로 타이틀을 환원, 방송 분량이 10분으로 단축, 일반뉴스로 환원, 격하되었다. 8월 18일부터 토요일 KBS 뉴스(21:00)가 밤 9시로 고정, 방송 분량이 15분으로 연장되었다. 10월 8일부터 KBS 종합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1월 12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1974년 4월 1일에 봄개편으로 KBS 종합뉴스가 밤 10시로 변경,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고 4월 6일부터 주말 KBS 뉴스(21:00)도 밤 10로 변경되었다.

10월 1일부터 KBS 종합뉴스가 밤 9시로 환원,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고 10월 6일부터 주말 KBS 뉴스(22:00)도 밤 9시로 환원되었다. 1975년 2월 1일부터 주말 KBS 뉴스(21:00)KBS 종합뉴스로 확대 개편,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 종합뉴스로 전환, 메인뉴스로 격상되었다. 6월 9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10월 6일부터 밤 9시 30분으로 변경되었다. 1976년 1월 12일부터 평일 뉴스가 밤 10시로 변경되었고 1월 24일부터 토요일 뉴스가 밤 10시, 1월 25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밤 9시로 환원되었다.

4월 12일부터 평일 뉴스, 토요일 뉴스도 밤 9시로 환원했고 10월 18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 11월 6일부터 일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단축되었다. 1977년 4월 1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고 4월 9일부터 일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환원되었다. 10월 24일에 가을 개편으로 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1978년 12월 13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1월 12일부터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다. 1980년 3월 31일부터 평일 뉴스의 분량이 40분으로 단축되었다.

9월 22일부터 편성이 월요일 ~ 토요일로 축소되었고 9월 28일부터 일요일에 시사 프로그램인 뉴스파노라마로 대체되었다. 11월 22일부터 토요일 뉴스가 KBS 토요뉴스로 타이틀을 변경, 독립 편성했다. 1981년 8월 1일부터 KBS 토요뉴스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을 환원했고 9월 25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982년 3월 6일부터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다. 1983년 4월 18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984년 4월 2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환원, 연장되었다.

10월 29일에 가을 개편으로 KBS 뉴스센터 9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1985년 11월 18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다가 1986년 6월 2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환원했다. 11월 3일에 가을개편으로 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이 환원되었다. 11월 4일부터 화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가 1987년 2월 17일부터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단축되었다. 1988년 4월 25일부터 편성이 평일로 축소되었다. 5월 8일부터 일요일 뉴스가 다시 방송을 재개, KBS 뉴스·날씨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5월 2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7월 16일부터 "지구촌의 지금"이 밤 9시 25분으로 변경됨에 따라 토요일 뉴스가 다시 방송을 재개, 방송 분량이 25분으로 단축되었고 9월 11일부터 KBS 뉴스·날씨KBS 9시 뉴스·날씨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1989년 3월 6일부터 심층뉴스 코너인 "뉴스초점"이 KBS 9시 뉴스에서 분리, 독립 편성됨과 동시에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단축되었다. 3월 11일부터 토요일 KBS 9시 뉴스가 "지구촌의 지금"과 통합,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고 3월 12일부터 KBS 9시 뉴스·날씨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을 환원했다.

1990년 7월 21일부터 일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연장되었다가 1991년 5월 26일에 봄 개편으로 일요일 뉴스가 "르포 60"과 통합, KBS 일요 9로 타이틀을 변경,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1992년 4월 6일에 봄 개편으로 평일 뉴스가 "뉴스초점"과 통합, KBS 9시 뉴스현장으로 타이틀을 변경,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고 4월 11일부터 토요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4월 12일부터 "기동취재 현장"[4]이 일요일 밤 9시 20분으로 변경됨에 따라 KBS 일요 9가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10월 10일부터 "기동취재 현장"과 통합, KBS 일요 9 현장으로 타이틀을 변경, 방송 분량이 55분으로 연장되었다.

1993년 5월 1일에 봄 개편으로 토요일 KBS 9시 뉴스현장, KBS 일요 9 현장KBS 뉴스로 타이틀을 변경,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고 5월 3일부터 평일 KBS 9시 뉴스현장KBS 뉴스로 타이틀을 변경, "뉴스초점"도 다시 분리, 독립 편성됨과 동시에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단축되었다. 10월 18일에 가을개편으로 KBS 뉴스 9로 타이틀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4년 5월 7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고 1995년 2월 20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50분으로 연장되었다. 5월 1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환원, 단축되었고 10월 7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단축되었다.

1996년 5월 18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환원, 단축되었다가 1998년 10월 17일부터 방송 분량이 35분으로 연장되었다. 1999년 5월 29일부터 주말 뉴스가 KBS 스포츠뉴스와 통합,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가 7월 17일부터 방송 분량이 45분으로 연장되었다. 12월 22일부터 평일 뉴스도 KBS 스포츠뉴스와 통합, 방송 분량이 1시간으로 연장되었다. 2003년 6월 28일부터 주말 뉴스의 방송 분량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2008년 4월 26일부터 방송 분량이 40분으로 연장되었다. 2014년 5월 19일부터 KBS 파업으로 인해 평일 뉴스, 주말 뉴스 모두 방송 분량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가 6월 6일부터 평일 뉴스가 1시간, 주말 뉴스가 40분으로 모두 환원, 연장되었다.

3 상세

국영방송 시절에도 저녁뉴스는 존재[5]했지만 지금과 같은 TV 메인뉴스 개념은 1973년에 공사화되면서 시작되었으며 지금의 타이틀은 1977년 10월 24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 그 때의 속보 원고가 아닌, 하루 동안에 일어난 리포트를 정리해서 한 번에 방송하는 형식이다. 단, MBC 뉴스데스크, TBC 석간[6]과 같은 경우와는 달리 KBS의 경우는 아나운서가 원고를 읽어서 보도하는 유럽식 뉴스캐스터 방식을 1980년대까지, 상당 기간 유지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NHK, 본고장 유럽의 BBC, ARD가 이런 방식이었다.[7] NHK는 지금도 상당수의 뉴스 원고를 아나운서 읽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 점은 NHK보다 KBS가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KBS 종합뉴스의 신설과 동시에 MBC 뉴스데스크에서 시도한 리포팅 형식을 받아들였다.

KBS 뉴스센터 9 시절에는 오프닝의 형식이 1970년대 중, 후반 NHK 뉴스센터 9시와 비슷하다. 아예 대놓고 NHK 뉴스센터 9시를 베낀 티가 난다. '9'자의 둥근 부분이 블루스크린을 겸한 시계인데 바늘이 9시를 가리키면 화면이 합성되며 뉴스 타이틀이 뜬다. 다만 이건 KBS 9 뉴스 시절(81년경) 이야기이다. 1987년에 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을 환원한 후에도 기사의 질이 조선 중앙 텔레비죤과 자웅을 겨룰 수준이라는 건 바뀌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에 뒤져 시청률 콩라인이었던 KBS 뉴스 9는 1994년 10월 1일KBS 1TV의 상업광고가 폐지되고 보도 프로그램을 강화[8]하면서 기세를 얻고 덧붙여서 "당신이 그리워 질때", "바람은 불어도"의 시청률 상승까지 힘입어 MBC 뉴스데스크를 추월, 마침내 시청률 1위를 기록. 이 시청률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9] 2013년 현재 웬만한 주중 10시대 드라마나 타사의 일일극 또는 주말극이 20%를 넘기며 흥하지 않는 이상 주간시청률에서 KBS의 주말 드라마일일 드라마에 이어 3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며 2013년 하반기부터는 KBS 2TV의 일일 드라마가 가세하면서 4위를 고수하는 편이다.[10]

KBS 뉴스 9의 우산효과도 한 몫 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거의 매일 평일 시청률 1위를 유지하는 저녁 8시 20분 ~ 밤 9시에 방영되는 일일 연속극의 인기도 상당히 좋아서 아무리 못해도 시청률 20%이며 주 시청층이 중·노년층이라 웬만해서는 주 시청층이 이탈되는 현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막장 드라마들인 건 알고 있는 자랑. 오죽하면 KBS 뉴스 9 시작하기 기다리면서 평소에 안 보던 일일 연속극을 5분 내지 10분 정도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故 이낙훈 선생의 '옛날의 금잔디'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MBC나 SBS에게 일일연속극 시청률을 뺏긴 것 빼고는 KBS의 일일 연속극 방송 시간은 거의 절대시간이나 다름없다(...)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MBC 뉴스데스크가 드라마와 함께 경쟁에서 밀려나 2010년 11월 6일부터 주말 8시로, 이후 2012년 11월 5일부터 주중도 8시로 개편됨에 따라 지상파 방송에서는 유일한 9시 뉴스로 남게 되었다.덕분에 8시 30분이 넘어 일어난 2016년 경주 지진을 다른 8시 뉴스들과 달리 통째로 특집 보도했다. 지못미 뉴스데스크 한시간 느린 뉴스, 유일한 9시 뉴스, KBS 뉴스 9입니다. 2013년 10월 21일 가을개편에 JTBC 뉴스 9를 의식했는지 앵커와 스튜디오를 교체한 건 물론이고 통상적으로 20:58분에 방영하던 헤드라인을 9시 정각에 오프닝 음악 이후에 내보내고 있으며 개편 과정에서 KBS ID를 내보낸 뒤에 시보 영상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아날로그 형태의 시계가 나타나면서 9시를 알렸으나, 현재는 KBS ID를 배경으로 디지털 형식으로 시보를 안내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보 당시에는 맑은 음과 함께 5초 동안 보여줬으나(아래 참고), 지금은 영상 ID에 디지털 형식의 시계를 그대로 넣어서 내보내고 있으며 효과음도 예전의 "뚜- 뚜- 띠!"로 바뀌었다. 2013년 9월 6일 방영분 부터는 유튜브에서도 9시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

홈페이지에서 2000년 1월 2일 VOD부터 다시보기 가능하다.[11] KBS 뉴스 9의 VOD 서비스가 시작된 건 1997년부터이나, 홈페이지 개편 과정을 거치며 볼 수 없게 되었다. SBS 8 뉴스도 1997년부터 VOD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DB자체는 살아있어서, 내용자체는 알 수 있으나, 동영상이 올라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 1990년대말 - 2001년 8월 4일 자료의 영상 부분은 볼 수 없다. 하지만 1987년 자료부터 보여주는 MBC 뉴스데스크를 생각하면…

그래도 2015년부터 "그때 그 뉴스"라는 명칭으로 예전의 KBS 뉴스 9 자료를 일부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1988년대 - 1990년대 자료뿐만 아니라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는 2000년대 - 2010년대 자료도 사안에 맞추어 올라오는데다가 그나마도 방송자료 전체를 올려놓는 방식이 아니고 일부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실 다시 보여주고 싶어도 높으신 분들의 심기[12]나 모자이크나 실명처리 문제[13] 때문에 못 올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2014년 이래부터 전반적인 논조성향은 친여권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뉴스제작 실무진인 기자단은 보수 여권에 다소 비판적인 성향이지만 상층부(데스크 등)는 친정부적 성향이 있는만큼(공영방송의 특성이기도 하고), 뉴스 편집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층부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언론시민연합이 2016년 1월 6일부터 총선 전날인 4월 12일까지 공중파 3사의 프라임타임 뉴스 보도내용을 분석한 결과, 북한 관련 보도의 비중은 KBS 9시뉴스가 624건을 보도해서 기간 중 총 보도량 대비 31.3%를 차지해서 방송3사 중 1위를 할만큼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MBC는 19%인 374건, SBS는 17%인 377건이 북한 관련 보도였다. KBS는 98일간 하루 평균 북한 관련 보도를 6.4건씩 보도한 것이다. MBC는 3.8건, SBS가 3.5건을 전했다. 선거보도와 비교해보면 북한관련 보도가 얼마나 많은 보도량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분석 기간은 정확하게 총선 D-98일부터 D-1일이었다. 선거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심각하게 북한관련 보도에 편중되었다는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다.TV조선에 질수 없다는 KBS의 자존심 [1]

하지만 이처럼 집요했던 KBS의 북풍몰이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한동안은 북한 관련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분위기 파악을 하는 듯 했다. 그 이후 북한 관련 보도의 비중이 조금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하루에도 2, 3꼭지 이상은 할애하고 있는데, 보도 내용은 굉장히 심각하고 호들갑스럽다. 그러나 막상 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의미를 두기 힘들거나, 상투적이고 일상화 된 북한 관영매체의 호전적인 논평을 그대로 전해주는 수준에 그친다. MBC, SBS 등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 내용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하면(보도 성향이 크게 다르다고 보기 힘든데도) 그 보도의 영양가를 높게 쳐주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4 출연자

  • 앵커
    • 메인
    • KBS 스포츠 9
      • 평일 : 이승현 아나운서.
      • 주말 : 한상헌 아나운서.
  • 날씨

4.1 역대 앵커

전신들인 'KBS 종합뉴스', 'KBS 토요뉴스', 'KBS 뉴스센터 9', 'KBS 일요 9', 'KBS 9시 뉴스현장'/'KBS 일요 9 현장'도 포함된다. 그러나 1970년대는 방송 자료의 부족으로 누락된 앵커가 있다.

4.1.1 KBS 뉴스 9

  • 평일 남성
남성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박성범 기자1977년 12월 15일 ~ 1979년
1986년 11월 3일 ~ 1990년 4월 12일
1990년 6월 4일 ~ 1991년 12월 2일
김학영 기자1979년 ~ 1980년
김광일 기자1980년 ~ 1981년 4월 30일
1986년 2월 24일 ~ 11월 1일
최동호 기자1981년 5월 1일 ~ 1986년 2월 22일
1993년 5월 3일 ~ 7월 2일
양휘부 기자1990년 4월 13일 ~ 6월 2일
박대석 기자1991년 12월 3일 ~ 1992년 10월 3일
류근찬 기자1992년 10월 5일 ~ 1993년 4월 30일
1995년 5월 29일 ~ 1998년 5월 1일
[16]
이윤성 기자1993년 7월 5일 ~ 1995년 5월 26일
길종섭 기자1998년 5월 4일 ~ 8월 28일
김종진 기자1998년 8월 31일 ~ 2002년 3월 1일[17]
홍기섭 기자2002년 3월 4일 ~ 2008년 11월 14일[18]
박영환 기자2008년 11월 17일 ~ 2010년 12월 31일[19]
민경욱 기자2011년 1월 1일 ~ 2013년 10월 18일[20]
최영철 기자2013년 10월 21일 ~ 2014년 12월 31일[21]
황상무 기자2015년 1월 1일 ~ 현재[22]
  • 평일 여성
여성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이병혜 아나운서1979년 ~ 1981년 4월 30일
신은경 아나운서1981년 5월 1일 ~ 1987년 2월 28일
윤금자 아나운서1987년 3월 2일 ~ 8월 3일
정미홍 아나운서1987년 8월 4일 ~ 1988년 1월 8일
이규원 아나운서1988년 1월 11일 ~ 1992년 4월 4일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7일
[23]
유정아 아나운서1992년 4월 6일 ~ 1993년 4월 30일
홍지수 아나운서1993년 5월 3일 ~ 10월 15일
황현정 아나운서1994년 10월 10일 ~ 1997년 2월 28일
1998년 10월 12일 ~ 2001년 11월 2일
[24]
황수경 아나운서1997년 3월 3일 ~ 1998년 10월 9일
정세진 아나운서2001년 11월 5일 ~ 2006년 12월 29일[25]
김경란 아나운서2007년 1월 1일 ~ 2008년 11월 14일[26]
조수빈 아나운서2008년 11월 17일 ~ 2012년 7월 13일[27]
이현주 아나운서2012년 7월 16일 ~ 2014년 12월 31일[28]
김민정 아나운서2015년 1월 1일 ~ 현재[29]
  • 주말 남성
남성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김홍 기자일자 미상
이윤성 기자일자 미상
김광일 기자일자 미상
윤덕수 기자1993년 5월 8일 ~ 1995년 9월 3일
김종진 기자1995년 9월 9일 ~ 1996년 10월 13일
1997년 3월 8일 ~ 1998년 8월 30일
정창훈 기자1996년 10월 20일 ~ 1997년 3월 2일
백운기 기자1998년 9월 5일 ~ 1999년 10월 17일
김정훈 기자1999년 10월 23일 ~ 2000년 4월 30일
조재익 기자2000년 5월 6일 ~ 10월 8일
이선재 기자2000년 10월 14일 ~ 2002년 2월 11일
황상무 기자2001년 2월 17일 ~ 2002년 3월 3일[30]
김철민 기자2002년 3월 9일 ~ 2003년 11월 2일[31]
임장원 기자2003년 11월 8일 ~ 2009년 4월 19일[32]
박유한 기자2009년 4월 15일 ~ 2010년 12월 26일
이주한 기자2011년 1월 2일 ~ 2013년 4월 7일[33]
김도엽 기자2013년 4월 13일 ~ 10월 20일
최문종 기자[34]2013년 10월 26일 ~ 2016년 4월 24일[35]
송영석 기자2016년 4월 13일 ~ 현재
  • 주말 여성
여성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신은경 아나운서일자 미상
윤영미 아나운서일자 미상
공정민 前 아나운서1993년 5월 8일 ~ 1995년 9월 3일
장은영 아나운서1995년 9월 9일 ~ 1996년 10월 13일
이한숙 아나운서1996년 10월 20일 ~ 1997년 3월 2일
황현정 아나운서1997년 3월 8일 ~ 1998년 8월 30일
김성은 아나운서1998년 9월 5일 ~ 1999년 5월 2일
윤소희 아나운서1999년 5월 8일 ~ 10월 17일
정세진 아나운서1999년 10월 23일 ~ 2001년 11월 4일[36]
손미나 아나운서2001년 11월 10일 ~ 2003년 6월 22일[37]
노현정 아나운서2003년 6월 28일 ~ 12월 14일
최원정 아나운서2003년 12월 20일 ~ 2007년 3월 4일[38]
지승현 아나운서2007년 3월 10일 ~ 2008년 1월 27일[39]
김윤지 아나운서2008년 2월 9일 ~ 2010년 7월 11일
2015년 1월 3일 ~ 9월 27일
[40]
박지현 아나운서2010년 7월 17일 ~ 2013년 4월 7일[41]
김진희 아나운서2013년 4월 13일 ~ 10월 20일
장수연 아나운서2013년 10월 26일 ~ 2014년 12월 28일[42]
엄지인 아나운서[43]2015년 10월 3일 ~ 2016년 4월 24일
이슬기 아나운서2016년 4월 30일 ~ 현재[44]

4.1.2 KBS 스포츠 9

  • 평일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김병찬 아나운서1994년 10월 10일 ~ 1996년
성세정 아나운서1996년 일자 미확정 ~ 1998년 일자 미확정
1999년 12월 27일 ~ 2001년 4월 27일
김홍성 아나운서1998년 8월 31일 ~ 2002년 3월 1일
김현태 아나운서2002년 3월 4일 ~ 2008년 11월 14일[45]
이재홍 아나운서2008년 11월 17일 ~ 2010년 12월 31일[46]
엄지인 아나운서[47]2009년 1월 1일 ~ 2013년 10월 18일[48]
정지원 아나운서2013년 10월 21일 ~ 2014년 12월 31일
이승현 아나운서2015년 1월 1일 ~ 현재
  • 주말
진행자진행 기간비고
김홍성 아나운서1999년 12월 26일 ~ 2001년 1월 14일
김현태 아나운서2001년 1월 20일 ~ 4월 29일
이재후 아나운서2001년 5월 5일 ~ 2002년 10월 27일
김태규 아나운서2002년 11월 2일 ~ 2003년 6월 22일
이재홍 아나운서2003년 6월 28일 ~ 2004년 5월 2일
김희수 아나운서2004년 5월 8일 ~ 2005년 5월 1일
이승연 아나운서2005년 5월 7일 ~ 10월 30일
박지윤 아나운서2005년 11월 5일 ~ 2007년 11월 4일
이지애 아나운서2007년 11월 10일 ~ 2009년 4월 19일[49]
이영호 아나운서[50]2009년 4월 25일 ~ 2013년 10월 20일
김승휘 아나운서2013년 10월 26일 ~ 2014년 12월 28일
한상헌 아나운서2015년 1월 3일 ~ 현재

5 코너

5.1 헤드라인

오늘의 주요뉴스를 보여주는 코너. 2013년 10월 20일까지는 오프닝 전에 내보냈으나 10월 21일부터는 오프닝 후에 내보낸다.

5.2 집중진단

주요 기사를 골라 집중적으로 진단하는 코너.

5.3 현장추적

1995년에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과의 경쟁 차원에서 '현장추적 1234'[51]로 출발, 2003년에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5.4 앵커&리포트

주요 기사를 골라 앵커가 리포트하는 코너.

5.5 심층리포트

심층이 되는 보도를 리포트하는 코너.

5.6 이슈&뉴스

이슈가 되는 뉴스를 전하는 코너.

5.7 생생과학

과학 관련 코너.

5.8 간추린 단신

단신을 간추려 전하는 코너.

5.9 KBS 스포츠 9

스포츠뉴스 코너. 평일 밤 9시 45분, 주말 밤 9시 30분에 방송, 평일에는 15분, 주말에는 10분 진행한다. 대표적인 스포츠 소식을 보도한다. 9시 뉴스가 특집으로 방송을 해야 하는 경우, 뉴스 편성 상황에 따라 방송을 하지 않는다. 1994년 10월 10일부터 KBS 스포츠뉴스가 신설, 평일 밤 9시 45분에 방송, 10분 진행했다. 첫 방영 당시에는 KBS 뉴스 9와 별도로 편성되었다. 1995년 2월 20일부터 밤 9시 50분으로 변경되었고 2월 25일부터 주말에도 편성을 시작, 주말 밤 9시 40분에 방송 5분 진행했다. 5월 1일부터 평일 뉴스의 방송 분량이 15분으로 연장되었고 10월 7일부터 밤 9시 35분으로 변경되었다가 1996년 5월 18일부터 밤 9시 30분으로 변경되었다.

1998년 10월 17일부터 밤 9시 35분으로 환원되었다. 1999년 5월 29일부터 주말 뉴스가 KBS 뉴스 9와 통합되었고 12월 22일부터 평일 뉴스도 KBS 뉴스 9와 통합, 주말 뉴스와 함께 KBS 스포츠 9로 타이틀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5.10 KBS 날씨

일기예보 코너.

6 지역 뉴스

주중에는 밤 9시 35분, 주말에는 밤 9시 20분에 방송된다. 각 지역별 뉴스 9 예고 자막은 평일에는 KBS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의 방송 중 내보낸다.[52] 2인 진행 체제를 채택한 방송국은 각 총국들과 울산방송국이 있고, 1인 진행 체제를 채택한 방송국은 울산방송국을 제외한 각 지국들과 경인방송센터가 있다.

방송국제목진행자
평일주말
KBS경인방송센터뉴스 9 인천 경기강승희 아나운서본사 수중계
KBS춘천방송총국뉴스 9 강원최현서 기자박소현 아나운서무작위
KBS원주방송국뉴스 9 강원안주연 아나운서춘천 수중계
KBS강릉방송국뉴스 9 강원정은지 아나운서춘천 수중계
KBS청주방송총국뉴스 9 충북이해수 아나운서백선일 아나운서무작위
KBS충주방송국뉴스 9 충북김지원 아나운서청주 수중계
KBS대전방송총국뉴스 9 대전 세종 충남박해평 기자전유미 아나운서무작위
KBS대구방송총국뉴스 9 대구 경북김명환 기자손지민 아나운서무작위
KBS안동방송국뉴스 9 경북이현정 아나운서대구 수중계
KBS포항방송국뉴스 9 경북이영화 아나운서대구 수중계
KBS창원방송총국뉴스 9 경남심인보 아나운서신유진 아나운서무작위
KBS진주방송국뉴스 9 경남신재연 아나운서창원 수중계
KBS광주방송총국뉴스 9 광주 전남박상훈 기자이혜성 아나운서무작위
KBS목포방송국뉴스 9 전남김지현 아나운서광주 수중계
KBS순천방송국뉴스 9 전남변정연 아나운서광주 수중계
KBS전주방송총국뉴스 9 전북권박형규 기자봉효정 아나운서무작위
KBS부산방송총국뉴스 9 부산김평래 아나운서이지현 아나운서무작위
KBS울산방송국뉴스 9 울산서명균 아나운서오보람 아나운서무작위
KBS제주방송총국뉴스 9 제주한승훈 아나운서현송희 아나운서무작위

7 타이틀 및 그래픽

1980년부터 현재까지 쓰는 오프닝 변천사.[53] 뉴스파노라마의 오프닝도 섞여있다.

1982년 당시 오프닝1982년 당시 엔딩

저 둥근 "9"로고를 보라! 지금과는 다르게 매우 건전한(?) 뉴스 시그널이 특징. 6 - 70년대 뉴스 시그널을 듣는 느낌이다.[54] 전두환의 만국순방소식 특집뉴스(...)가 나온다.

1986년 당시 "KBS 뉴스센터 9."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KBS 뉴스센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대놓고 대통령 외국 순방 일정 찬양 뉴스 보도하는 건 덤

1987년도 후반 오프닝.[55] KBS 9시 뉴스는 이 즈음부터 대략 'NHK 뉴스센터 9시'의 영향과 80년대의 '못해도 2등'이라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자체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87년 후반부터는 제대로 된 3D 그래픽도 쓰인다. 하지만 뉴스 내용은 아직 땡전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8년 초 ~ 1990년 초반 오프닝. 약 2년 간 사용한 오프닝으로 당시 세계 수준을 고려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수준급으로 상당히 잘 뽑혀져 나왔다. 이 당시 KBS는 1) 군사정권 방송 이미지 벗기, 2) 서울 올림픽을 대비한 방송 퀄리티 상승이라는 2가지 아젠다 때문에 쇄신을 요구받고 있었다. 덤으로 1988 - 89년 초의 뉴스데스크 도입부에 앵커 모습 뒷 부분 화면에 KBS 뉴스 9의 당시 오프닝도 화면에 잡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8년초 ~ 1990년 초반 클로징(1989년 녹음)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오프닝 일부. 김수녕 선수의 시상 장면이 오프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오프닝 완전판. 폐막식이 거행된 1988년 10월 2일 밤의 방영분으로 3:14초까지는 당시 뉴스 영상 일부 이후는 올림픽 하이라이트 영상이다.

1990년 한 해 동안 사용된 오프닝이다.(당시 1990년 5월 24일.) 기존 CG는 그대로 사용하고 동시에 스튜디오를 추가로 비추고 있으며 BGM도 변경되었다.

1991년 오프닝. 종전하고는 다르게 '9'가 필기체로 쓰인 건 덤이다.

1992년 오프닝. 1992년 4월부터 1993년 5월까지 평일은 KBS 9시 뉴스현장, 주말은 KBS 일요 9 → KBS 일요 9 현장이라는 명칭이었다.

1993년 5월 1일 ~ 10월 17일 오프닝. 이 시기에는 KBS 뉴스라는 일반뉴스의 명칭을 사용했다. 이 오프닝은 KBS 뉴스(9:40), KBS 뉴스(19:00), 그 외 일반뉴스 프로그램의 오프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10월 18일 ~ 1995년 오프닝. KBS 뉴스 9라는 명칭이 드디어 정착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그래픽이 묘하게 1980년대 중반 BBC 9 o'clock News 짝퉁 이 당시부터 사용된 시그널 음악은 2008년까지 사용되었다.[56] 2008년 이후에 쓰이는 음이은 이 버전을 관현악으로 어레인지한 것이다. 구버전은 개그콘서트동물본부 24시, 9시 언저리뉴스, 9시쯤 뉴스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1999년 오프닝.

2010년 5월부터 2014년 12월 31일까지 사용되었던 오프닝. 음악은 이미 2008년에 어레인지 되었고, 오프닝 효과도 2010년 이후로는 별 다른 변화가 없다.[57] 심플하고도 세련된 SBS 8 뉴스의 시그널, 스튜디오에 가상 효과까지 이용한 MBC 뉴스데스크 시그널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다. 이 영상은 당시 2014년 1월 27일자.

2015년 1월 1일 새해특집 오프닝 #

2015년 1월 2일부터 2016년 4월 24일까지 사용한 오프닝. 시그널은 그대로이며 9 로고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어쩐지 1991년 오프닝을 떠올린다. 이 시기부터 KBS 뉴스 9 로고를 백스크린에 비춘다. 2000년대부터 KBS1 채널 전반에 사용하고 있는 블루+화이트+유리질감 큐브 CI를 전면적으로 채용했다. 타이틀 플레이 직전에 나오는 '한국인의 중심채널' 슬로건 옆 CI랑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2016년 4월 25일부터 봄 개편을 맞아 오프닝과 주요뉴스 부분이 다소 변했다. 시그널은 그대로로 오프닝에 나오는 가상 그래픽이 일품이다.

2016년 5월 30일을 기점으로 오프닝이 증강현실을 추가하여 한 번 더 바뀌었다. 다만 주말에는 위의 오프닝이 아닌 4 ~ 5월판을 그대로 사용한다. 언제부터인지 클로징에 DLP에다가 9 KBS NEWS를 띄운다. 오프닝에서 DLP에서 파란블럭이 막 움직이다가 KBS 뉴스 9 타이틀이 떴는데 KBS 뉴스 9 타이틀부터 시작해서 파란블럭이 막 움직이고나서 KBS 뉴스 9 타이틀이 뜨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쓰다가 최근에는 그냥 아무것도 안 움직이고 KBS 뉴스 9 타이틀이 그냥 고정되어서 DLP에 띄웠다.

요즘 KBS가 그래픽 개선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의 단순하고 딱딱한 타이틀 그래픽이 강했는데 2015년부터 그래픽에 신경을 쓰기 시작해 점점 개선되기 시작하자 2016년 4월 말에는 봄 개편으로 전보다 더욱 개선된 그래픽으로 갈아엎었다. 그것도 모자라 클로징에 DLP에 큼지막한 9 KBS NEWS 타이틀을 추가하고 최근에는 증강현실을 추가하고 조금은 엉성했던 자막 디자인을 조금 더 다듬어서 깔끔해지고 DLP에 나오는 그래픽 타이틀도 개선시키고 KBS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예전 같지 않고 2014년까지와 현재랑 비교하면 정말 많이 개선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것이 바뀔지 궁금하다 KBS는 이렇게 잘하면서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 이제 KBS 뉴스 그래픽이 단순하고 딱딱하다는 건 옛말이 되었다.

8 시보

2013년 10월 21일에 가을개편으로 ID가 끝난 뒤 꽤나 간지나는 시계를 배경으로 시보 영상을 사용한 적 있으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얼마 안 가 이는 사라지고 시보를 ID에 디지털 시계를 넣고 "뚜- 뚜- 삐!" 하는 형식으로 교체했다. 2014년 10월까지 헤드라인을 아나운서가 녹음해 내보냈지만 2014년 11월 가을 개편 이후로 기자가 헤드라인을 진행한다. 상위 오프닝 영상과 현재를 비교하면 밑의 자막도 살짝 바뀌었다.

9 방송사고

2012년 11월 28일 방송 도중 약 15분 가량 화면송출이 끊기고 소리만 나오는[58] 초대형 방송사고가 터졌다. 대체적인 반응을 살펴보면, 아날로그와 DMB쪽은 괜찮았다고 하는데 디지털 송출만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에 올라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9시 20분부터 25분까지 약 5분 간 사고가 발생했다고 언급하는데 틀렸다. 약 15분 간 장애가 발생하였다. 축소의혹

2014년 2월 3일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선고 보도를 하던 도중, 다른 기자의 VCR 보도로 이어지자 최영철 앵커가 "어우 깜짝이야"라고 말하는 방송사고가 벌어졌다.

10 흑역사

10.1 땡전뉴스

그야말로 우리나라 뉴스계의 흑역사.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10.2 1990년 방송중단 사태

약 40여 년의 9시 뉴스 역사 중 방송이 중단된 적이 딱 한 번 있다. 바로 1990년 KBS 파업박성범 보도본부장이 송출 중단을 지시하면서 9시 뉴스가 20분 만에 중단된 것이다. 1990년 삼당합당 직후 정부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의 서영훈 사장을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압력을 가해서 끌어내리고, 정치권 출신의 서기원을 낙하산으로 내리꼽자 이에 반대하는 노조와 정면충돌한 것이 원인이다. KBS 노조의 폭력성을 검증하기 위해 낙하산 사장을 임명 해보겠습니다. 뉴스가 특집으로 편성되거나 혹은 뉴스특보로 대체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2014년에도 길환영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노조쟁의가 일어나 단축뉴스는 계속되었다.(후술하는 내용 참고바람) 뉴스 자체가 중단되었던 것은 저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KBS 노조가 6개월 만에 한계를 느끼고 파업을 자체 종료하면서, 다시 친정부적인 논조로 회귀했으며 서기원 사장은 3년 임기를 꼬박 채웠다. 자세한 내용은 1990년 KBS 파업 문서 참고.

10.3 2014년 길환영 사장의 청와대 유착 의혹

2014년 5월 6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밝혀져 큰 물의를 빚었다. 결국 5월 8일 팽목항의 유족들이 서울로 올라와 KBS 사장을 불러내었고[59], 이윽고 이들이 청와대까지 몰려가는 등 사태가 험악해지자, 길환영 KBS 사장은 유족에게 사과하였고 김시곤 보도국장은 사임했다. 그런데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임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사장의 청와대와의 유착을 주장하며 사임을 요구하는 깜짝 발언이 나왔고,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 결국 언론장악을 시도하는 청와대 규탄과 KBS 사장 사퇴 요구가 거세지게 된다.

결국 5월 19일부터 KBS 기자협회가 친정부 보도를 강요하는 등 뉴스 제작에 개입한다는 혐의를 받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그 날부터 방송시간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이 기간동안 9시 뉴스를 비롯한 모든 KBS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자협회원이나 노조원이 아닌 기자를 동원하기 힘든 경우에 한해 NHK 뉴스처럼 앵커가 기사내용을 읽어줬다. 제작거부는 이후 PD와 아나운서 직군까지 확대되었으며, 결국 길환영 사장의 해임이 가결된 후 6월 6일부터 다시 정상적인 뉴스가 나가고 있다. 길환영 사장이 떠난 직후인 6월 11일 KBS 뉴스 9는 첫 뉴스부터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부적절한 발언을 터뜨리면서 근래의 관변 뉴스의 스탠스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KBS 기자협회의 변7월 30일에는 3개월 동안 묵혀놓았던 윤일병 구타살해 사건의 전말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2년 후인 2016년 6월 30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직접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박근혜정부 비판 보도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한편, 보도 방향도 지시하는 것이 녹음된 파일이 언론 관련 시민단체를 통해 공개되어, 박근혜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는 사실로 드러났다.기사공개한 녹음 파일 중 일부녹취록 전문

11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12 같이 보기

  1. 뉴스 9, 뉴스 7식으로 쓰는 제목은 원래 NHK가 원조로 이쪽은 NHK 뉴스 나인, 뉴스 세븐이라고 읽는다. 1980년대 초까지는 '뉴스센타 구지'라고 읽었지만 1980년대 후반쯤에는 NC9로 쓰고 NC나인으로 읽는다.
  2. 한 때는 KBS 제2라디오로도 동시 방송된 적이 있었다.
  3. KBS뉴스 프로그램 시청률 순위는 KBS 뉴스 9 > KBS 뉴스광장/KBS 뉴스 7 > KBS 뉴스라인 > KBS 뉴스 5 > KBS 뉴스 12 순으로 한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다른 메인뉴스와는 달리 20%에 육박하며 현재는 대략 15%를 넘나들고 있다.
  4. KBS 2TV의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 1991년 5월부터 뉴스비전 동서남북을 일일 시사 프로그램으로 전환하였다가 1년 만에 주간 시사 프로그램으로 변경되었다.
  5. 이 흔적이 현재 KBS 제1라디오의 7시 저녁종합뉴스로 남아있다. 20세기 중반의 느낌이 물씬 나는 클래식 음악을 2009년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가 2010년 KBS 뉴스 CI를 대대적으로 변경하면서부터 KBS 2TV 뉴스 7(2001년 ~ 2002년, 현재의 KBS 1TV 뉴스 7와 다르다.)의 엔딩 뒷부분 음악을 편곡해서 사용하고 있다.
  6. TBC 동양방송의 메인뉴스 프로그램. 지금의 JTBC 뉴스룸에 해당된다.
  7. 그래서 ARD의 '슈프레헤만(Sprechemann)'의 권위는 아직도 상당하다. 물론 요새는 오후 8시 뉴스(Tagesschau, 15분 분량 뉴스 프로그램)에 방송되는 기사는 취재한 기자가 직접 읽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으며, 심층 취재(?)는 Tagesthemen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ARD 뉴스는 2009년까지도 프롬프터를 쓰는 일이 없었는데 이는 슈프레헤만의 직업적 긍지(?)와 관련있다고 한다. 물론 요즘은 유럽도 기자를 동원하는 미국식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8. 그 이전에는 주말 9시 뉴스 전후에 블록광고를 편성했고, 토요일 아침마당, KBS 뉴스(9:45), KBS 뉴스(12:00), 전국노래자랑 사이에도 블록광고를 편성했다. [2] KBS 9시 뉴스 시그널 나오기 전과 클로징 멘트가 나온 뒤에 광고가 나온다니 지금이라면 가히 상상도 안되는 풍경이다.
  9. 이 때부터 메인뉴스 콩라인에 머물던 MBC 뉴스데스크는 2012년 김재철이 MBC 사장직에 취임한 이후 SBS 8 뉴스 시청률에도 크게 뒤쳐지며 꼴찌로 자리를 굳혀버렸다.
  10. 2013년 1월 14일주부터 2월 25일주까지 7주 연속으로 3위 고정이었다.
  11. 다만, 2000년 1월 3일부터 3월 21일은 빠져있으며, 본격적으로는 3월 22일부터 볼 수 있다.
  12. 실제로 KBS 새노조에서 김모 사장의 기자였을 시절의 모습을 한번 올려놓았다가 징계를 먹은 적이 있다. 근데 옛날 뉴스 프로그램 살사람이 얼마나 될려는지 보면...
  13. 사실 이게 의외로 심각한 문제인게 19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모자이크 처리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건 당사자도 실명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14. 1991년 KBS 공채 18기 기자. 2001년에는 KBS 뉴스 9의 주말 앵커를 담당한 적이 있었으며 이후 2002년부터 5년 동안 KBS 뉴스광장의 평일 앵커를 담당해왔기에 진행에는 일가견이 있고 뉴욕 특파원 경력으로 시청자에게도 익숙한 앵커. 2015년 1월 1일부터 평일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무려 14년 만에 KBS 뉴스 9로 복귀했다.
  15. 2011년 공채 38기 아나운서. 황상무 앵커와 함께 2015년 1월 1일부터 KBS 뉴스 9의 평일 앵커로 합류하였다.
  16. 1995년부터 2년 여만에 평일 재진행. 류근찬 前 기자(現 국회의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1997년 8월 4일 ~ 8월 8일 방송분은 길종섭 前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17. 마지막 주말 진행 다음 날 바로 평일로 옮겨서 진행.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1999년 7월 13일 ~ 7월 23일 방송분은 백운기 기자가 대신 진행하였다. 김종진 기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0년 7월 31일 ~ 8월 4일 방송분은 조재익 기자, 2000년 9월 4일 ~ 2000년 9월 15일 방송분은 고수웅 前 기자, 2001년 8월 6일 ~ 8월 10일 방송분은 유연채 前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18. 홍기섭 前 기자(現 KBS광주방송총국 총국장)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2년 8월 5일 ~ 8월 9일 방송분은 민경욱 前 기자(現 국회의원), 2003년 8월 4일 ~ 8월 8일 방송분은 김철민 기자, 2004년 8월 2일 ~ 8월 6일, 2005년 8월 8일 ~ 8월 9일, 2006년 5월 29일 ~ 5월 31일, 2006년 8월 7일 ~ 2006년 8월 11일 방송분은 임장원 前 기자(現 KBS경인방송센터 센터장)가 대신 진행하였다. 홍기섭 前 기자(現 KBS광주방송총국 총국장)의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의한 중국 베이징 현지 파견 및 올림픽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8년 8월 6일 ~ 8월 8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임장원 前 기자(現 KBS경인방송센터 센터장)가 진행하였다.
  19. 박영환 기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9년 2월 17일 ~ 2009년 2월 18일 방송분은 임장원 前 기자(現 KBS경인방송센터 센터장) 2009년 8월 3일 ~ 2009년 8월 6일, 2010년 8월 27일 방송분은 박유한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0. 민경욱 前 기자(現 국회의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1년 8월 22일 ~ 8월 25일, 2012년 1월 30일 ~ 1월 31일 방송분은 이주한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1.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14년 5월 29일 ~ 6월 5일 방송분은 이창진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진행하였다.
  22. 마지막 주말 진행 다음 13년 10개월 여만에 평일로 옮겨서 진행. 황상무 기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6년 8월 8일 ~ 8월 12일 방송분은 최문종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3. 1993년부터 1년 6개월 여만에 평일 재진행.
  24. 1998년부터 1년 8개월 여만에 평일 재진행.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1999년 7월 13일 ~ 7월 23일 방송분은 박경희 前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황현정 前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0년 4월 17일 ~ 2000년 4월 21일, 2001년 6월 28일 ~ 2001년 7월 6일 방송분은 이규원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5.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할때 마지막 멘트에서 "안녕히계십시오"를 엔딩 멘트로 했다. 마지막 주말 진행 다음 날 바로 평일로 옮겨서 진행했다.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00년 6월 3일 ~ 6월 4일 방송분은 정세진 아나운서 대신 윤영미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정세진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3년 8월 25일 ~ 8월 29일 방송분은 지승현 前 아나운서, 2004년 7월 5일 ~ 7월 9일, 2005년 7월 4일 ~ 7월 8일, 2006년 2월 23일 ~ 2월 24일, 2006년 9월 4일 ~ 9월 8일 방송분은 최원정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6. 김경란 前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7년 8월 27일 ~ 2007년 8월 31일 방송분은 지승현 前 아나운서, 2008년 10월 13일 ~ 10월 17일 방송분은 김윤지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김경란 前 아나운서의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의한 중국 베이징 현지 파견 및 올림픽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8년 8월 6일 ~ 8월 8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김윤지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27.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09년 7월 22일, 2011년 12월 19일 ~ 12월 20일 방송분은 이규원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하였다. 조수빈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9년 9월 21일 ~ 9월 25일 방송분은 김윤지 아나운서, 2010년 9월 27일 ~ 10월 1일 방송분은 김진희 아나운서, 2011년 1월 14일 ~ 2011년 1월 17일, 2011년 6월 13일 ~ 6월 21일, 2012년 6월 8일 ~ 6월 12일 방송분은 박지현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8.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14년 5월 19일 ~ 2014년 5월 28일 방송분은 단독으로 진행하였으며, 이현주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4년 7월 21일 ~ 2014년 7월 25일 방송분은 유지원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29. 김민정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6년 10월 10일 ~ 10월 14일 방송분은 이지연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0. 황상무 기자의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 의한 부산 벡스코 현장 파견 및 월드컵 본선 조추첨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1년 12월 1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손미나 前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31. 김철민 기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2년 6월 29일 ~ 6월 30일 방송분은 민경욱 前 기자(現 국회의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2. 임장원 前 기자(現 KBS경인방송센터 센터장)의 2006년 FIFA 월드컵에 의한 독일 현지 파견 및 월드컵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6년 6월 3일 ~ 2006년 6월 4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박영환 기자가 진행하였고, 2006년 6월 10일 ~ 2006년 6월 25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박영환 기자가 진행하였다. 임장원 前 기자(現 KBS경인방송센터 센터장)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8년 11월 8일 ~ 2008년 11월 9일 방송분은 박영환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3. 이주한 기자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2년 7월 14일 ~ 2012년 7월 15일 방송분은 박상범 기자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4. 2004년 KBS 공채 30기 기자. 2011년KBS 아침뉴스타임을 2년 여간 진행하고 2013년 가을개편부터 2016년 봄개편까지 KBS 뉴스 9의 주말 앵커를 맡았다.
  35.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14년 5월 31일 ~ 6월 1일 방송분은 이창진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진행하였으며, 광복절 70주년 특집 방송으로 인하여, 2015년 8월 15일 방송분은 평일 앵커인 황상무 기자가 진행하였다.
  36. 정세진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0년 8월 26일 ~ 2000년 8월 27일 방송분은 황현정 前 아나운서, 2001년 8월 25일 ~ 2001년 8월 26일 방송분은 지승현 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7. 황상무 기자의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 의한 부산 벡스코 현장 파견 및 월드컵 본선 조추첨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1년 12월 1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김종진 기자와 같이 진행하였다. 손미나 前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2년 9월 7일 ~ 9월 8일, 2003년 2월 22일 ~ 2003년 2월 23일 방송분은 지승현 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38. 최원정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4년 9월 11일 ~ 2004년 9월 12일, 2005년 9월 3일 ~ 9월 4일, 2006년 9월 30일 ~ 2006년 10월 1일 방송분은 평일 앵커인 정세진 아나운서, 2007년 2월 10일 방송분은 김경란 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최원정 아나운서의 2006년 FIFA 월드컵에 의한 독일 현지 파견 및 월드컵 관련 뉴스 생중계로 인하여, 2006년 6월 3일 ~ 2006년 6월 4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정세진 아나운서, 2006년 6월 10일 ~ 2006년 6월 25일 방송분 내 본사 데스크에서의 뉴스는 정은승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39. 지승현 前 아나운서의 갑작스러운 하차로 인하여, 2008년 2월 2일 ~ 2008년 2월 3일 방송분은 김경란 前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하였다.
  40. 김윤지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9년 10월 3일 ~ 2009년 10월 4일, 2010년 2월 6일 방송분은 조수빈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하였다. 2015년부터 4년 5개월(1,755일) 여만에 주말 재진행. 광복절 70주년 특집 방송으로 인하여, 2015년 8월 15일 방송분은 평일 앵커인 김민정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41. 박지현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2년 12월 22일 ~ 2012년 12월 23일 방송분은 김지윤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42. 장수연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3년 11월 16일 ~ 2013년 11월 17일 방송분은 김윤지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으며,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14년 5월 24일 ~ 5월 25일 방송분은 장수연 아나운서가 단독으로 진행하였다.
  43. 2007년 KBS 공채 33기 아나운서. 9시 스포츠 뉴스의 평일 진행자였으며, 가을개편으로 빠진 김윤지 아나운서의 후임이다.
  44. 이슬기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16년 9월 3일 ~ 2016년 9월 11일 방송분은 유지원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45. 마지막 주말 진행 다음 날 바로 평일로 옮겨서 진행.
  46. 마지막 주말 진행 다음 날 바로 평일로 옮겨서 진행. 이재홍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방송분은 이지애 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47. 평일 최초의 여성 진행자. 마지막 방송에서 눈물을 보였다.
  48. KBS 노조파업으로 인하여, 2009년 7월 22일 방송분은 이형걸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고, 2011년 12월 20일 방송분은 조건진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으며, 엄지인 아나운서의 휴가 또는 출장으로 인하여, 2009년 9월 7일 ~ 2009년 9월 11일 방송분은 이영호 아나운서, 2010년 8월 30일 ~ 9월 3일 방송분은 김솔희 아나운서, 2011년 3월 22일 ~ 2011년 3월 25일 방송분은 이선영 아나운서, 2011년 8월 15일 ~ 8월 19일 방송분은 박은영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49. 이지애 前 아나운서의 KBS 연예대상 MC 진행으로 인하여, 2008년 12월 27일 방송분은 오정연 前 아나운서가 대신 임시 진행했다.
  50. 역대 주말 진행자 중 가장 오래 진행했다.
  51. 1234는 제보전화 번호인 781-1234에서 유래한다.
  52. 단, 경인방송센터에서는 자체 뉴스의 예고 자막을 방송하지 않는다.
  53. 10년 먼저 시작한 MBC 뉴스데스크는 워낙 오프닝 변천사가 많고 광고 자막이 붙어 있는 관계로 모음집이 20분이 다 되간다. 반면 KBS 뉴스 9는 광고방송이 없는 관계로 5분도 안 된다(…)
  54. MBC는 70년대 중후반 '뉴스의 현장' 시그널은 상당히 호러스러운 음악을 썼었고 80년대 초반 뉴스데스크 시그널은 베꼈지만 신디사이저를 가미한 오프닝을 썼다.
  55. 첫 번째 동영상에서 나왔듯 1987년 초에는 9시의 '시'자가 한자(時)로 나온다.
  56. 보도국 내부의 제보에 따르면 현재 KBS의 모든 뉴스 시그널 음악은 음대 출신 기자 한 분에 의해 편곡되고 있다고... 안습. 단, 실제 음원제작은 프로 음악가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57. 맨 위 동영상은 폰트가 바뀐 영상이다.
  58. 15분 간 계속 그랬던 것은 아니고 10여 초 정도 영상은 제대로 나오는데 소리가 아주 작게 나오다가 화면이 다시 몇 분 동안 끊기는 증상 반복.
  59. 나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