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양(1990)

동명의 승부조작 범죄자에 대해서는 이태양(1993)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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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숫자 2와 관련이 많다. 한화 2글스 선수이며, 성명은 2태양, 등번호는 2가 2개 있는 22번이다.
말년에 한국에서 투수로 전업하신 이치로

한화 이글스 No.22
이태양(李태양 / Tae-Yang Lee)
생년월일1990년 7월 3일
체격190cm, 98kg
출신지전라남도 여수시
학력여수서초 - 여수중 - 순천효천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2010년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한화 이글스)
소속팀한화 이글스(2010~현재)
등장음악애니메이션 출동 지구특공대 오프닝곡[1]
한화 이글스 등번호 68번
백성칠이태양(2010~2011)김원석(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55번
윤규진(2005~2011)이태양(2012~2013)윤규진(2014~현재)
한화 이글스 등번호 22번
한승택(2013)이태양(2014~현재)현역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는다.[2]
내 손에서 공이 떠나면 그 공과 결과는 더 이상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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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소속의 좌타자 우완 투수.

순천효천고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190cm라는 큰 체격이 가진 잠재력을 믿고 2010년 전면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로 지명했다. 그리고 몇년 후 기대는 적중, 입단 당시보다 구속을 무려 10km/h 이상 끌어올리며 2014년 한화 이글스에서 우완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평균 140km/h 초중반에 최고 구속은 159[3]151km/h. 평균구속 140 초중반, 최고 구속 151의 빠른 포심 패스트볼, 속구와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하강하는 스플리터와 포크볼, 스트라이크 존을 횡으로 가르는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던질 수 있다. 다만 팔꿈치 수술후 2016년에는 직구 평균구속이 140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무기는 포크볼. 2014시즌에는 제구가 잘되는 140 초중반의 속구와 낙폭이 큰 포크볼로 한 경기 9K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구위를 보였다. 시즌 후반에는 팔꿈치 통증을 느끼면서 포크볼이 아닌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다만 인대 부상으로 인해 구속 자체가 130대 중반으로 급격히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결정구 스플리터의 제구도 흔들리면서 대차게 얻어맞았던 바 있다. 국가대표 우완 정통파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받았지만 부상과 수술로 인해서 슬럼프를 겪었고, 수술 전의 구속을 회복하느냐 여부에 따라 향후 커리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승부조작한 피의자 이태양은 NC 이태양이지 한화의 이태양이 아니다 오해하지말자. 모 기사에서는 승부조작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화 이태양 사진을 썼다가 욕 처먹고 수정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2.1 2012 시즌

2012년 7월 13일 부상당한 유창식을 대신해서 1군 엔트리에 올라왔다.[4] 따라서 넥센 히어로즈에서 데뷔한 이태양보다 1년 늦게 1군에 데뷔하게 됐다.

2012년 7월 18일 대전 삼성전을 통해 1군에 데뷔했으며, 선발로 등판한 류현진강봉규, 최형우 등에게 홈런을 맞고 2이닝 8실점의 최악투로 조기 강판당한 경기에서 마지막 8, 9회 초에 패전 처리로 등판하였다.[5] 2이닝 동안 타자 12명을 상대로 1볼넷 1K 5피안타 3실점(3자책)하며 평균자책 13.50을 기록하고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간 후,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2.2 2013 시즌

김응용 감독이 취임한 2013년에는 주로 불펜으로 등판하여 삼진을 쏠쏠히 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응용 감독의 눈에 띄어 이 해부터 선발로도 나서게 됐고, 6월 30일에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하지만 이성열에게 만루홈런, 김민성에게 라인 드라이브성 솔로 홈런을 맞고 4이닝만 채운 뒤 강판당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군 31경기 60⅔이닝 평균 자책점 6.23에 승리, 세이브, 홀드 없이 3패.

2.3 2014 시즌

3~4월: 무명의 불펜 선수
5~6월: 대한민국의 우완 기대주이자 한화의 에이스
7월: 한화의 우완 기대주
8월: 한화의 에이스
9월: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10월: 그냥 우완투수

이태양의 본격적인 풀타임 1군 선발 첫 시즌. 방출된 케일럽 클레이를 대신해 선발로 전환한 후, 2014년 한화에서 유일하게 빛을 본 선수. 시즌 중반 혜성같이 떠올랐으나 부상으로 인해서 희노애락을 모두 맛보게 되었다.

시즌 후 전체적인 평으론 강속구를 갖추며 제구가 되는 대형 우완 선발 투수가 오랜만에 등장했다는 평.

자세한 내용은 2014년 항목으로.

2.4 2015 시즌

당초 스프링 캠프 종료일인 3월 3일이 아닌 3월 6일까지 기간을 연장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았던 그는 병역 미필인 상태라 해외 체류 문제로 기존 귀국일에 이용규와 같이 귀국하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후문... 이지만 이태양의 스프링 캠프 훈련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평이다.

김성근은 한화에 들어온 뒤 투수들의 투구폼을 밥 먹듯 고쳐대다가 성적을 폭망시키고 부상을 당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태양도 그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김성근은 이태양을 비롯한 투수 8명에게 스프링 캠프 잔류조에서 매일 150구에 육박하는 투구를 명령하여 잔류조 기간에만 1000구에 달하는 투구수를 찍게 만들었고 이런 무식한 연습 투구 갯수는 이태양 본인이 부상당하기 직전에 한 "불펜투구 180구를 던졌다."는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아예 투수들만 남겨서 굴려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비록 이태양은 병역 문제로 인한 해외 체류 제한으로 3일 먼저 조기 귀국했긴 하다. 그러나 김성근 본인이 인터뷰에서 "잔류조 1000구 투구가 숙제"라고 밝혔고 2월 26일에서 3월 6일까지의 열흘 남짓한 잔류 기간에만 1000구김성근 “오키나와 잔류조, 1000구 던지고 귀국"를 던졌으니 스프링캠프 기간을 통틀어선 얼마나 많이 던져댔을 지 상상도 안 될 지경이다.[6]

여기 참가한 투수들은 거의 대부분 시즌 종료 후 나가떨어진 상태. 시즌 도중에 혹사를 시킨 송창식, 권혁 등과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혹사 사례다. 하지만 노리타들은 이걸 가지고 '작년에 김응룡이 혹사한 탓', '이태양은 캠프 기간 공 안 던졌다' 같은 식으로 또 다시 조작을 일삼았다. 이런 혹사를 당한 결과 이태양은 "처음에는 정말 안 아팠다. 시범경기 당시 불펜피칭 때도 괜찮았는데"라는 비참한 대사를 남기고 만다.

이태양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2군으로 내려갔는데, 4월 15일 2군에서 실전 피칭을 하고 1군에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오른쪽 팔꿈치 인대에 이상이 생긴 게 드러나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어 사실상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이태양이 빠진 선발진의 한 자리는 안영명이 채우게 되었다. 이후 선발진에서 이태양이 빠진 일은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물론 이태양이 그대로 선발진에 합류했더라도 결과가 어찌 나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태양의 시즌 아웃 이후 생긴 일은...

애초에 이태양은 팔꿈치 피로 진단이 나온 선수라 다른 선수들과 같이 무리시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7] 여기에 대해 김성근은 "이태양은 작년 가을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 했지만 트레이닝 파트에서 재활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마무리캠프 때 오키나와에서 공을 하나도 안 던지게 했다"라는 인터뷰를 시전하는데, 선수의 부상에 대한 김성근의 거짓말은 한 두번이 아닌 지라 절대로 신빙성이 가지 않는 상황. 게다가 마무리캠프에서만 공을 안 던진다고 그간 혹사한 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 감독님의 집중 관리 하에 열심히 구른 이태양


2015년 8월 27일 병역 특례에 따른 4주 기초군사훈련 이수를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마침 같은 날 입대한 박유천과 같은 분대 소속이 되었다.

"2월 실전 등판!" 한화 태양이 다시 뜬다
그리고 2015년 11월 3일. 내년 2월에는 실전 등판에 들어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잘 하면 내년 시즌에는 초반부터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15 시즌 김성근의 투수진 혹사로 수술복귀 선수인 이태양에 대해 걱정의 시선을 보내는 팬이 많다.

'롱토스 OK' 한화 이태양의 바람 "5~6월 1군 복귀 목표"
11월 18일. 현재 이태양의 상태는 25m 롱토스도 가능한 상태. 본인이 말하기를 5~6월에 1군 복귀를 목표로 두고 있다고 한다.

2.5 2016 시즌

후반기 한화의 1선발[8]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마치고 퓨처스 리그에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다[9] 공에 힘이 생겼다는 판단 하에 1군 선수단과 동행해 불펜 피칭을 가졌고 553일만에 1군 선발 등판 기회를 갖게 됐다.

4월 23일 두산전 선발 등판해 투구 수 54개, 3⅓이닝 4피안타 1K 1볼넷 3실점한 뒤 교체됐다. 나쁘지 않은 피칭 중에 교체되었기 때문에 사전에 한계 투구 수를 50여개로 정해둔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타선이 2점 밖에 못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공을 던질 수록 구속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3⅓이닝밖에 던지지 못한 탓에 필승조를 거의 전원 투입하고도 진 경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선발로 최소 5이닝을 던질 컨디션이 안되는데 내보낸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4월 30일 삼성전 선발로 나와 4⅔이닝 동안 69구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1탈삼진 2실점(0자책)을 기록했다.[10]

5월 11일 NC전 선발로 등판해 4이닝 4피안타 4볼넷 3실점으로 승패 상관 없이 퀵후크 당하며 물러났다. 5회 강판전 연속 2안타 빼고는 4회까지 2안타를 잘막았지만, 보낸 주자들이 모두 홈으로 들어오면서 1실점에서 3실점으로 늘어났다.

5월 17일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2016 시즌 한화 국내 선발 투수로는 심수창 이후로 두 번째로 승리 투수 요건을 달성했으나 역전 패로 인해 첫 승은 다음기회로 미뤄졌다. 그 사이 최초 타이틀을 무려 송은범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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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뜬금없이 kt와의 경기에서 타자로 출장했다. 12회 말, 3번 타자 로사리오고의사구로 출루한 상황에 지명타자 말소로 인해 장민재가 4번 타자로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대타로 나왔다. 팬들은 내셔널 리그 출신이라 타자 경험이 있는 로저스가 대타로 나오리라 예상했으나 로저스는 오늘 경기 출전 불가 선수였다. 결과는 비겁한[11] 변화구에 헛스윙을 포함하여 삼구 삼진으로 결국 경기는 최장시간 혈투 끝에 8:8 무승부로 끝이 나고 말았다. 영상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22일 선발로 등판했다. 화요일 등판 이후로 4일 휴식 후 등판이다. 수술한 선수를 땡겨쓴 탓이었을까, 이태양은 홈런만 3개를 맞으면서 강판당했다.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가 공 실밥으로 인한 손가락 피부 염증 치료를 위해 6월 12일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콜업된 선수는 차일목-조인성-로사리오의 포수 라인업을 이어줄 허도환. 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는 와중에 팬들은 아예 제대로 재활 치료까지 받고 올라오길 기대하는 상황. 그렇게 정범모는 잊혀졌다 카더라 혜자경언은?

선발로 꾸준히 등판하였으나 선발승이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지 못한 채 6패를 기록하던 중 7월 2일 두산전에서 송신영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한 심수창이 제구가 흔들리며 볼넷을 내줘 무사 1, 2루 상황을 만든 뒤 불펜으로 등판하였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된 탓인지 또다시 볼넷을 내주었고 공을 10개도 던지지 못한 채 장민재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고 내려왔다. 김성근의 투수운용이 얼마나 막장인지를 한화 팬들이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1병살 1삼진이라는 미친 피칭으로 다행히 본인 자책점은 안 나왔지만...

7월 9일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6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여 665일만의 QS를 기록했으나 정우람의 블론으로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하였다.[12]

7월 21일에는 같은 투수이자 동명이인인 어떤 놈의 승부 조작으로 인해 한화 팬들이 '설마!?'하면서 깜짝놀랬다가 안도하기도 했다. 여친도 주변사람들이 승부조작범과 착각해 "왜 그런 놈과 사귀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언급. 본인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만하다.[13] 승부조작을 시도한 것이 2015년인데 이 당시 이태양은 부상으로 인해 초반에 일찌감치 시즌아웃 된 상태였다.

7월 28일 SK전 6⅓이닝 6피안타 6K 2자책, 시즌 개인 최다 이닝 타이 기록을 세우며 승리투수가 됐다. 참고로 2014년 8월 27일 이후 701일만의 승리투수다.

8월 3일 기아전 선발 등판해 5이닝 2피안타 1볼넷 3K 무실점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8월 9일 삼성전 5⅔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2K 3실점 역투로 데뷔후 첫 선발 3연승을 달렸다. 시즌 초 한계투구수가 50여개였다면 후반기가 되어가며 80여개정도로 조정되어 보살핌받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주는 장한 소년가장.

8월 14일 기아전 6이닝 2피안타 3볼넷 1사구 4K 1실점 QS로 호투했다. 2:0 리드 상황에서 내려가 선발승 요건을 갖췄지만 구원으로 나온 권혁의 블론으로 선발 4연승은 불발됐다.

8월 14일 기준 방어율이 5.43이다. 5월까지만 해도 8점대였던 방어율이 엄청나게 내려갔다.

8월 19일, 4일 휴식 이후 LG전에 등판해 5이닝 3K 2실점을 기록하며 무난한 피칭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패배를 떠안고 만다. 시즌 6패째. 투구수는 딱 80구로 그나마 이 팀에서 가장 관리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평균자책점은 5.29로 내려갔다. 4점대 방어율 진입과 더 많은 승리를 따내는 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재활을 하며 시즌을 소화하기 때문에 한계 투구수가 80개 정도밖에 안 되며, 그 탓에 7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것은 힘들다는 한계가 있지만, 한화 선발진 중에서 이태양만큼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투수는 카스티요밖에 없다(...).

8월 23일 김성근이 혹사논란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다음날 선발투수를 알려달라하자 감독 기준으로 혹사 안한 투수라고 대답했으며 다음날 선발로 이태양이 나왔다. 하지만 계속된 4일 휴식 후 등판을 버티지 못하고 2이닝동안 볼넷을 6개나 주는 제구 난조 끝에 강판되었다.

9월 4일 고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선발 이재우의 뒤를 이어 등판해서 전날의 호투[14]와는 달리 2⅔이닝 3실점(3자책)의 개똥같은 투구로 깝죽거리다가 패전을 기록하였다. 네이버 댓글창의 혹자는 '불나방이 촛불에 제 몸 타는지 모르고 설치다가 훅갔다'라고 칭했다. 딱 맞는 표현. 그런데 사실 이태양의 통산 기록을 살펴보면 넥센에 매우 약하긴 했다(...). 당시 이태양 상대로 강했던 타자들 대부분이 팀을 나가긴 했지만...

9월 6일 마산 NC전에서도 등판하여 한 타자를 상대하고 내려갔다. 월요일이 끼어있어서 그렇지 은근슬쩍 3경기 연속 등판이다. 수술을 받은 투수를 땡겨쓰는 것도 모자라서 잘 던진다고 막 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펜 등판 후 하루 쉬고 9월 8일 대전 kt전에서 등판하여 6이닝 1실점 97구로 승리. 투수였으면 좋겠으나 마지막에 끝내기 승리로 장식하였기에 노디시전을 기록했다.

9월 13일 대구 삼성전에서 6이닝 2실점 101구로 호투했으나 패전 위기에 처했고, 결국 이양기의 역전 적시타로 인해 노디시전을 기록했다. 기존에는 투구수가 적어서 4일 휴식으로도 충분했으나, 최근 투구수가 크게 불어났음에도 5일 휴식이 아닌 4일 휴식 로테이션을 받고 있다. 살려조에 편입될 정도의 불펜 알바는 덤.

9월 18일 대전 KIA전에서 6이닝 1실점 105구로 호투했으나 팀은 패배했다.[15] 이로써 이태양은 3연속 QS를 기록하지만 단 한 번도 승리투수가 되지못했다.

9월 24일 LG전에 4이닝까지 잘 막았으나 5회 2아웃을 잡고 3실점을 하며 무너져 심수창과 교체되었다.

9월 30일 NC전에 선발로 나와 5⅔이닝 동안 6피안타 2볼넷 4K로 호투하며 이닝을 박정진에게 넘겼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4회말 중견수 양성우의 실책과 볼넷으로 무사만루를 내준 상황에서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피칭이었다. 모창민, 조영훈, 손시헌을 모두 뜬공으로 막아내면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시즌초였으면 교체됐겠지만 진짜로 투수없어진 시즌말이라 5회 2아웃을 잡아놓고 내려간 이후 박정진, 심수창,[16] 정우람의 도움으로 시즌 4승을 챙기게 됐다.

10월 5일 수원 kt전 선발등판해 5이닝동안 8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째를 따냈다. 그리고 전반기에 7까지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을 4점대까지 내리는데 성공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0한화 이글스1군 기록 없음
2011
20121200000.00013.505011333.000
20133160⅔03000.0006.237510293944421.615
201430153710000.4125.29183274896100901.464
20151군 기록 없음
201629112⅓58100.3854.9712815656066621.690
KBO 통산(7시즌)913281221100.3645.41391521431962131971.58

4 투구폼

inverted-W 투구 폼[17][18]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결정구는 포크볼. 즉, 폭탄을 2개나 달았다. 아직 젊은 선수이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부상에 대한 우려가 다소 높은 선수. 이태양 본인은 전혀 부담이 없고 편하다고.#

결국 팔꿈치 수술후 2016년 직구 평균 구속이 140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포크볼도 줄창 던지는 중. 덕분에 2016년 한화의 토종 에이스로 우뚝 섰지만 여러모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다만 팀에서도 이런 불안을 알고 있어서 나름 투구수 관리를 하고 있다.[19]

5 기타 사항

2016년 내 질문을 부탁해.
  • NC 다이노스 소속 투수 이태양과는 동명이인이다. 당초엔 NC의 이태양이 더 유명했기에 '이태양' 항목으로 검색 시 NC 이태양 선수 항목으로 리다이렉트 되었고, 한화 이태양의 항목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14년 중반 한화 이태양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자 이 쪽이 본가가 되고 NC 이태양이 따로 분리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20] 유명세로 인해 항목의 개설은 NC 이태양이 빨랐지만 엄연히 한화 이태양 쪽이 선배다. 그리고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자 애꿎은 이 쪽이 욕을 먹었다.
  • 한자가 없는 한글 이름이다. 그러나 2010년에 KBO가 펴낸 가이드북에는 李太陽이라고 적혀있었기에 아직까지도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조부모에 대한 효심이 각별하다. 맞벌이로 인해 따로 돌봐줄 시간이 부족했던 부모를 대신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이태양을 뒷바라지 해주었고, 이 때문에 이태양은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고 한다. 인터뷰 등에서 특히 조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자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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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어려워하는 김응용 감독과도 친근하게 지내는 편이다. 코감독 본인 역시 이태양과 친구라고 할 정도(...).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며 말을 걸거나, 스승의 날에 따로 연락을 하는 등 노인을 대하는 태도에 스스럼 없이 적극적인 편.### 본인 말로는 조부모와 같이 자라서 노인들이 익숙하다고.
  • 김응용 감독 역시 이태양의 이런 배짱있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눈여겨 보았던 것 같다. 강영식, 채태인, 조동찬처럼 직접 찍어서 밀어줄 선수로 생각했었는지 본격적으로 1군 커리어를 시작한 2013년에 털리면서도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2014 시즌에 제대로 포텐이 터지며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런 김응용의 선택이 우연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 위의 세 선수 역시 당시엔 현재처럼 대성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코감독의 감식안이 빛을 발한 좋은 사례.
여담이지만 정민철의 팬이다. 툭하면 정민철같은 투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2군 시절에도 기술적,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등번호도 정민철을 따라서 55번[21] 달았다가 공익근무 마치고 돌아온 윤규진에게 돌려주고 상의 끝에 55번을 뒤집은 22번으로 정했다고.
2014년 9월 14일 조인성이 대전구장에서 시구한 날, 이태양과 같이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조인성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외모로 인해 각종 인터넷 신문의 연예·스포츠면 기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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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기럭지와 (키가 190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훈훈한 외모로 터지고 난 후 얼빠들도 상당히 많이 양산해내고 있다. 우완 투수에다가 살찐 류현진에 비교하면 포스트 류현진이 아닌 포스트 정민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훈훈한 외모에 투구폼도 완전 판박이. 이글스 올드 팬 중에는 정민철정민철 2호기를 만들어냈다는 반응도 있다. 소수 의견으로 멍때리거나 인상을 쓸 때는 이치로, 한민관을 닮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 2016 시즌 앞두고 전지훈련 때 셀카를 찍어올린 적이 있는데, 하필 뒤쪽에 모자를 벗은 정우람송창식이 나란히 찍히다보니 이태양 풍성하다고 그러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가 팬들에게서 나왔다.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한화에서는 이태양이 뽑혔다.
  1. 가사 첫 소절이 "태양이 눈부시는 지구는 하나 우리가 지킨다"이다.
  2. 직접 한 말은 아니고 해당 인터뷰의 제목. 하지만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이태양을 잘 표현해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그맨 김병만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3. 2014년 8월 27일 NC 다이노스전에서 방송사 스피드건의 오류로 159km/h가 찍혔다. 같은 공이 KBO 어플에는 144km/h로 나왔다.
  4.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릴 2012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1군에 올라오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리고 연이틀 비가 오는 바람에 마산에서 열릴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은 취소됐다.
  5. 여담으로 이날 경기의 7회에 정대훈이 경찰청 제대 후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올라왔다. 한화 팬들은 사이버 투수 둘을 드디어 봤다면서 경악(...). 사실 정대훈은 2009년에 교통 사고를 당한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사이버화되긴 했지만.
  6. 노리타들은 이태양이 3월 3일 조기 귀국한 것을 가지고 이태양은 잔류조 참가 안했으니 1000구 안던졌다는 식으로 왜곡을 일삼는다. 그러나 김성근의 발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6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구장에서 훈련을 하면서 “투수들이 ‘과정’ 중에 있다. 폼도 제구도 최대한 만들어놓고 들어가야하는데 아직 모자라다. 지금 들어가면 많이 던지기 어렵다. 남은 기간 가급적 1000개씩은 던지며 부족한 부분을 잡아보겠다”고 말했다.' 김성근은 인터뷰 시점인 2월 26일부터 3월 6일까지의 남은 기간동안 1000구 투구를 계획했던 것이다. '150개 전후로 던지다 보면 투구수가 900~1000개에 이를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라는 기사 내용에서도 확인되는 부분. 이태양은 3일 먼저 귀국했으니 3일 분량의 투구만 하지 못한 것이지 그 이전까지는 다른 잔류조 투수들과 똑같은 150구 수준의 투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물론 다른 선수들도 혹사당해선 절대 안 된다!
  8. 전반기 1선발은 믿기 어렵겠지만 송은범.
  9. 퓨처스 리그 성적은 2경기 6⅔이닝 15피안타 11실점 평균 자책점 14.85
  10. 하주석의 행복수비 때문이다.
  11. 이태양과 승부중이던 김사율이 변화구로 헛스윙을 이끌어내자 해설이었던 김진욱"김사율 선수 비겁합니다 투수한테 변화구를 던지다니." 당연히 비판조로 이야기한게 아니고 웃으면서 농담으로 한말이다.
  12. 이 날 경기는 4대 4로 무승부.
  13. 참고로 이태양은 따로 여친이 있다. 물론 승부조작 이태양.
  14. 전날 뜬금없이 마무리 투수로 올라와서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15. 패전투수는 윤규진.
  16. 사실 오늘 심수창은 제구난조를 드러내면서 3피안타 1실점을 한 후 강판됐다.
  17. 역W라고도 부르며 이 폼을 가진 대표적인 선수로는 애덤 웨인라이트, 마크 프라이어 등이 있다. 특히 마크 프라이어의 몰락으로 이 투구폼의 위험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8. 하지만 꼭 인버티드 W라고 부상위험이 높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또한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9. 8월 이후로 폼이 올라오는 것 같자 50구, 80구씩 관리해주던 투구수를 100구 넘게 끌어 올렸다. 물론 5일휴식 따윈 드물다(...).
  20. 나무위키의 방침 1.11에 따라 동명이인의 경우는 퇴적순으로 배치하게 되어있다. 그 때문에 NC 이태양이 1번에, 한화 이태양이 2번에 오게 된다.
  21. 정민철의 영구결번은 일본에서 국내로 복귀 후 사용했던 23번으로 되어있지만, 일본 가기 전에는 55번을 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