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 주민들을 홀리는 마법의 문장. 그리고 맥거핀이다.
김일성이 1964년 천리마 운동 당시 선언했던 캐치프레이즈구호. 참고로 이팝은 '(흰)쌀밥'을 뜻한다. 따라서 본 문구 자체가 한국에서는 '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식으로 알려지는 경우도 잦았다.[1] 북한의 온 인민들이 쌀밥과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였다.
김일성 및 김정일을 넘어 김정은 집권기까지도 이 구호가 쓰이는 모양이나, 김일성 시절이었다면 몰라도 현재 이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는 북한 주민은 이제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이는 탈북 이주민의 추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한 탈북민이 삼대 세습 결정 이후로 급증했다는 점만 봐도...
사실 예전이랑 시대가 달라지다보니 저 표현 자체가 구시대적이라 계속 쓰기도 애매하게 된 건 사실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북한도 기왓집이랑 비단옷보다 가성비 면에서 훨씬 나은 물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면 슬레이트나 나일론 같은 것만 해도 그렇다.[2] 그 언제 실현될지 알 길 없는 지상락원이 오더라도 굳이 기와랑 비단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앞문장인 '이팝에 고깃국'은 계속 써도 될 것이다.(...)
2 전개
김일성은 이 발언 이후 심심하면 이 문장을 되풀이 하며 곧 있으면 진정한 지상락원이 올거라며 선전했다. 김정일 또한 김일성의 유훈을 잇는다며, 곧 있으면 진정한 강성대국이 되어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각종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고난의 행군 때도 같은 말을 반복하였으나, 오히려 쌀 등의 배급량은 이전보다도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시대로 오면서 배급량이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이건 눈속임에 불과했고 그것마저도 4인 가족이 하루 한 끼로 요기나 할까말까 한 양으로 확 줄었다.
이후 김정은 통치 시대로 오면서 2010년 당시 3년내로 실현시키겠다고 했다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진짜로 삼대가 망했어요. 6년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도 이팝에 고깃국은커녕 강냉이도 제대로 못 먹어서 안달이다. 결국 현실은 시궁창 그 자체.
2016년 시점에서 북한주민 1인당 식량배급량은 UN에서 권장하는 배급량의 60%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김씨 삼부자와 그 친인척과 측근들은 잘만 먹고 살고 있다는 점이 개그. 오히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국가의 부와 자원 자체를 독점하고 있다. 일례로 야간지도를 보면 북한에서 조명이 꺼지지 않는 지역이 평양에 딱 한 곳 있는데, 그곳이 다름아닌 금수산태양궁전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체가 주체사상의 상징이라 이를 밝게 비춘답시고 북한 국내에 얼마 없는 전기까지 다 끌어다가 호화 궁전에 낭비하는 것이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당장 김씨 삼부자의 외제품 사랑을 열거하기만 하면 이 구호가 얼마나 큰 기만인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3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지상락원, 강성대국 등과 함께 북한의 실태를 비꼴 때 많이 사용한다. 쌀이 남아나서 문제인데다가(쌀로별 같은 쌀과자나, 밥버거나 삼각김밥 같은 쌀을 이용한 패스트푸드가 왜 나오는가를 생각해 보자) 정부 욕만 하면 나라에서 무료로 고깃국을 먹여줄 정도로 고기도, 의류도 풍족하기 그지없는 나라에 살면서 저런 쌍팔년도 시절 선전문구를 보자니 그저 유머 소재일 뿐이다.
먹는 부분에서만 보더라도 이팝, 즉 쌀밥은 영양가가 별로 없다면서 오히려 잡곡밥, 현미밥을 먹고, 고기로 우린 고깃국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고기나 삼겹살,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특별한 날엔 소고기 등심, 안심 스테이크, 소갈비 등을 먹으며, 도시의 번화가는 물론이고 시골 읍내에 가도 넘치는 것이 고깃집에 시골 읍내 장터만 가도 고기가 들어간 국밥 한 그릇 정도는 충분히 사먹을 수 있는데다가 하다 못해 노숙자 무료급식에도 쌀밥과 고기가 들어간 고깃국과 고기반찬이 나오는 지경이다.
주거 면에서 보면 북한의 날림공사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게 좋은 주거시설이 많아서 옛날식 기와집은 정말 두메산골 시골깡촌, 아니면 안동의 하회마을 같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고, 예전 양식 기와집이 보존되어 있는 곳은 작정하고 조성한 관광지 정도라 아예 겨우 찾아가서 관광 목적으로 둘러보는 정도가 되었다. 다만 도심의 단독주택에서도 옛날 기와집의 모습을 차용해서 집을 짓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대 건축에 기초해서 지으며 당연히 순수한 옛날식 기와집보다 훨씬 낫다. 건강을 위해 전통 방식과 현대 방식을 조화롭게 섞어서 짓는 것.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외쳐대는 기와집 따위는 한국인들은 돈을 받고 살라고 해도 안 산다.[3] 못 사는 사람도 최소한 북한 기준으로는 초호화로 느껴질 주거시설에서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입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단옷은 광택이 너무 심하고 착용감도 별로 좋지 않아 더욱 몸에 편하고 기능성이 좋은 다른 소재의 옷을 입고 개발하고 있다.[4] 물론 여전히 비단옷은 그 나름대로 여러 장점이 있긴 하나[5] 가성비는 면이나 나일론 소재의 옷에 비해 확실히 떨어지기에 비단옷을 쉽게 구할 수 있더라도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굳이 찾지는 않는다.
다만 여전히 한국에서도 빈민층은 분명 존재한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도, 경제난에 시달리다가 범죄나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진짜 유토피아라도 건설되지 않는 한 이건 그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는 문제고, 그나마 한국은 세계적으로 봐도 복지혜택이 제법 높은 편이라 북한이랑 비교하는 건 부끄러울 정도다. 그리고 그런 빈민층이더라도 필요한 게 있을지언정 저 선전문구에서 언급되는 이팝, 고깃국, 기왓집, 비단옷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대한민국은 선진국 중에서 빈부격차가 작은 수준이다.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도! 흔히 말하는 흙수저 생존법에 나오는 돼지 뒷다리 덮밥 같은 것도 뒤집어 보자면 서민이나 그보다 더 가난한 하층민도 쉽게 쌀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미 한국 내의 하층민도 북한에서는 플래티넘 수저, 못해도 은수저 수준은 된다.
헌데 북한은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한국의 실상을 철저히 숨기고 아직도 한국이 1950~60년대 수준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으며, 저 중 어느 하나에라도 근접하지 못한 북한을 지상락원이니, 강성대국이니 하면서 주민들을 세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한심함을 넘어 경멸감이 느껴질 것이다.
4 같이보기
- ↑ 현재 이 이름으로 검색하여도 들어올수 있다.
- ↑ 물론 석면은 실제로는 엄청나게 위험한 발암물질이고 북한에선 저 둘조차도 그리 흔하지 않다만 어디까지나 예를 들어서.
- ↑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기와집은 부와 권세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프라이버시가 좋지 않고 수도, 전기, 난방, 취사 등에서 이런저런 불편한 점이 있는 데다 신축, 보수할 수 있는 인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현대인들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한지 오래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 경주, 안동 등 한옥 보존지구의 기와집들도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지, 그런 게 없었으면 진작 현대식 주택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다.
- ↑ 실제로 한국의 섬유 및 섬유소재 관련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다.
- ↑ 가볍고 부드럽고 질기고 튼튼하며 방한성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