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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1월 29일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故 이형호 군이 유괴되어 3월 13일 한강 공원 잠실지구 인근 배수로에서 시체로 발견된 영구 미제 사건. 2007년에 개봉된 그놈 목소리가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것.
2 사건 발생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던 이형호는 1991년 1월 29일 저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그날 밤 서울, 경기 말씨를 쓰는 30대 남자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으며 43일 동안 60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3 사건 경과
범인은 마치 각본이 있는 양 철저하게 움직였다. 협박 전화를 처음 걸고 난 뒤에는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어 '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주세요' 라는 말을 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강남경찰서 형사의 유도로 이형호의 의붓어머니가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 라고 말해 무사히 넘어가는 듯 했다. 참고로 당시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재혼한 상태로 이형호의 친어머니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해 치밀하게 행동했다.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의 그랜저 승용차에 설치된 카폰으로 연락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으로 불러내 몸값을 받아내려 했는데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 2구역에 차를 세운 뒤 차키를 꽂아놓고 바로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범인은 정작 나타나지 않은 채 그 날 밤 전화를 걸어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습니다' 는 변명(?)을 했다. 물론 당시 강남경찰서 형사가 잠복해있었지만 트렁크에 타고 있었지 앞뒤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범인이 일부러 넘겨짚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범인은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우실의 카폰에 전화를 또 걸어 이번에는 대한극장 앞으로 불러냈고 인근 제과점 건너편에 차를 세운 후 제과점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제과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범인은 즉시 연락해 '제과점 문이 닫혔습니다. 근처에 치킨센터는 열려있으니 그 쪽으로 가시죠' 라고 말해 지루한 이동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이형호의 계모에게 '지금 누군가가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고 있네요.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잡아 떼실 건가요?' 라고 협박했다. 이때도 약속장소 주변에 형사들이 잠복해있긴 했지만 모두 일반인이나 상인 등으로 변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 범인이 넘겨짚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형호의 계모는 집요한 추궁에 삼촌이 같이 나간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경찰이 개입했음을 반 시인하고 말았다.
이에 범인은 직접 돈을 건네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은행 계좌를 개설해 돈을 받기로 한다.[1] 범인은 한일은행에 윤정수, 상업은행에 김주선이라는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특정 장소에 계좌번호를 적어둔 메모를 남겨 이우실이 그것을 보고 입금하도록 지시하는 이른바 무인 포스트 방식을 썼는데, 두 은행에 2천만원씩 총 4천만원을 입금하라는 지시를 했고 이우실은 경찰과 상의하여 한일은행에만 입금을 했다.
그리고 한일은행 전산센터에 형사들을 파견해 인출 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는데 정작 범인은 뜬금없이 2월 13일 저녁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군요. 형호 죽기를 바라죠?" 라는 협박을 했고 "88 도로를 타고 가시다보면 서울교라고 다리가 있습니다. 거기 밑에 철제 박스가 있고 메모를 돌로 눌러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고 잘 진행해주십시오."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메모의 종착점은 양화대교 인근 철제 박스였고 이우실은 이곳에 가짜 돈이 든 봉지를 둔 채 떠났다. 주변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고 잘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지만 이번에는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철제 박스의 위치를 혼동하는 바람에 범인이 돈을 집어갈 동안[2] 형사들은 우왕좌왕했다. 그 날 밤 범인은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있습니다.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죠. 다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범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갈 것에 대비하여 한일은행에 입금되었던 돈을 상업은행 계좌로 송금했고, 드디어 2월 19일, 상업은행 상계동지점[3]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은행원이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를 보고 당황해하자 발각된 것을 알아챘는지 남자는 황급히 달아났으며, 당시 해당 지점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끝내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만다. 물론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는 지문이 전혀 없었고 이렇게 범인의 행방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4 공개 수사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91년 3월 13일 한강 공원 잠실지구 인근 터널(일명 토끼굴) 옆 배수로에서 어린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확인 결과 유괴된 이형호였고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는 음식물이 실종 당일 친구네 집에서 먹은 음식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망 시점은 유괴된 직후로 추정되었다. 유괴 당일 살해해서 이미 아이가 죽은 상태에서도 계속 금품 요구 협박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즉, 애초에 이형호를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돈만 먹튀할 생각이었다.
범인에 대해서는 한국상업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며 다소 길게 대화를 나눈 은행원의 기억을 토대로 몽타주가 작성되었고 그동안 이형호의 안전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되던 수사는 유괴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바뀜에 따라 공개 수사로 전환되었다. 전국에 몽타주를 지명 수배한 뒤 여러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시체가 발견된 곳 바로 옆에 있는 잠실주공1단지에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제보와 한강 공원에서 역시 이형호와 20대 남자를 봤다는 매점 상인들의 제보가 들어오면서 한때 수사에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잠실주공1단지에 나타난 어린이와 청년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일반 주민으로 확인되면서 수사는 서서히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났는데 범인의 목소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성문 분석을 한 결과 이형호의 친척인 이상재(가명)의 성문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이상재는 이형호의 생모와 가까운 인척으로 이우실과 이형호 생모가 이혼할 당시 생모 쪽에 서서 여러 일에 개입해서 대립했기 때문에 이우실과는 사이가 굉장히 나빴고 당시 하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돈이 궁해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고 다닐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범인은 이형호의 형(당시 초등학교 6학년으로 헤어진 생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형호의 조부가 자산가이므로 돈을 충분히 줄 수 있지 않냐는 등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이상재에 대한 의심은 증폭되었다.
90년대 초는 어린이 유괴 사건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로 학교에서 유괴 방지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리가 밝고 집 주소나 사는 지역 등을 말할 수 있는 나이인 9살의 이형호가 그렇게 아무나 무방비하게 따라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안면이 있으며 친어머니의 친척이기까지 한 이상재가 아이를 쉽게 유인할 수 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실제로 유괴된 날 당일 시간이 흐르자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형호만이 유독 놀이터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형호를 목격한 이형호의 친구는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으니 '엄마한테 혼나' 라는 답을 했다고.
경찰은 이형호가 생모 쪽 친척인 이상재를 만나는 것에 대해 아버지와 계모의 눈치를 보아서 한 대답이 아닌가, 등을 돌리고 놀이터에 계속 앉아 있었다던 낯선 남자는 이형호가 놀이터에 남아있는지 감시하던 감시역이 아닌가 하고 추리하기도 했다.
게다가 범인이 개설된 은행 통장의 명의 이름 역시 이상재의 주변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경찰은 이상재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상재는 서울의 공중 전화를 통해 협박 전화가 걸려온 날에 경주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사용한 고속도로 통행 영수증을 증거물로 제시하였고 실제 수사 결과 경주에 이상재가 머무른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성문 분석 결과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던 경찰은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이상재가 경주에서 전화를 걸고 서울의 공범이 이를 이형호의 집에 연결하는 형태로 얼마든지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 특히 이상재가 대학에서 전기 통신을 전공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다. 게다가 이상재는 다른 날의 기억은 흐릿한 반면 유독 사건 당일의 일정만은 뚜렷이 기억하고 여러 물증까지 확보하고 있어 알리바이를 조작하려고 하는 듯해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강도 높게 진행된 보강 수사에서도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5 경찰의 실책
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 경찰서는 범인을 검거할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 차례 날렸다. 바로 위에서 말한 양화대교 철제 박스건 외에도 범인이 교보빌딩 앞으로 이우실을 불러냈을 때 인근 지하도를 나온 점퍼 차림의 20대 남자가 차를 유심히 살펴보자 이우실이 형사들에게 추적을 요구했는데 경찰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다가 범인을 놓치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로 돈을 입금했을 때도 범죄에 이용된 것임을 밝히는 문구만 넣었을 뿐 은행 직원이 주도면밀하게 대처할 만한 문구를 넣지 않는 바람에 범인이 그대로 달아나버리기도 했다. 또 시체 발견 직후 부검 결과 위에 남아있던 음식물이 잡곡과 나물이라는 것에 착안, 송파 및 강남지역 보리밥 식당을 돌며 수사를 했는데 문제는 이형호가 실종 당일 친구 집에서 먹었던 게 바로 잡곡밥과 나물이었다는 것이다. 행적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괜히 헛다리만 짚은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러한 상황을 상부에 아예 보고조차 않고 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망신살을 샀다는 것.
6 결말과 의혹
몇 차례 굵직한 제보가 접수되면서 사건이 해결될 듯 말 듯 했지만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말았다. 그러나 몇가지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영된 내용이다.
1992년 3월 31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첫 회 방송에서는 성문 분석 결과 범인이 1명으로 추정되었지만 양화대교 철제 박스에서의 상황을 보면 석연치 않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철제 박스 위의 돈을 가져갈 때 범인이 1명이라면 스스로 운전을 하다가 차를 세우고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사건 당시에는 정차한 차량이 한 대도 없었던 상황에서 돈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특히 올림픽대로는 갓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갑자기 차량을 정차시킬 경우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더 범인이 1명이라는 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시 방송분에서는 범인이 2명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즉 범인 2명 중 1명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1명이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팔을 길게 뻗어 돈을 낚아채갔다는 추측이다.
실제로 이것은 수사 과정에서도 인지된 부분이었으나, 성문 분석 결과와 일치하지가 않아 수사 혼선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4월 21일 다시 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성문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음을 밝혀냈고 결국 이 사건의 범인이 2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2011년 5월 21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800회를 맞이하며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으로 전화를 걸어온 범인 외에 공범이 있고 이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 따로 있다는 것.
우선 이번에도 성문 분석을 여러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전화 통화 목소리는 모두 1명의 동일한 목소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10년 전 2차 방송에서는 2명이라며? 일부 다르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긴 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두꺼운 마스크를 쓰는 등의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다는 것.
주범이 직접 전화를 걸지 않고 타인을 시켜 협박 전화를 건 사실로 미루어볼 때 주범은 이형호와 면식이 있는 사이이며 형호의 집안에 대해 정확한 지식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은행원의 증언에 따라 만들어진 몽타주 속 인물과 실제 협박전화를 건 인물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목소리를 통해 범인의 하관을 분석한 결과 전화를 건 범인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 짧고 좌우로 잘 발달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몽타주 속 인물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길고 계란형 얼굴이었다. 음성분석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전화를 건 협박범은 아나운서 같이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데 몽타주 속 인물의 하관 구조로는 그렇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몽타주 속 남자는 주범이었을까? 아님 또 다른 공범이었을까?
그리고 범인이 '저희' 혹은 '우리'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 점, 또한 앞서 말한 무인 포스트 방식에서 타인에게 메모지를 들키지 않고 오로지 이우실만이 메모지를 발견하게 하려면 때 맞춰 메모지를 갖다놓는 역할의 인물이 따로 있어야 앞뒤가 맞다는 점, 이우실의 동선을 파악하는 감시 역할의 인물도 따로 있어야 범인과의 접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점, 그 외 목소리 심리 분석[4] 등이 근거로 제기되었다. 여러모로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상재 범인설을 밀고 있는 듯하다.[5]
사건의 규모나 내용 면에서 다르긴 하나 사건의 수법으로만 놓고 본다면 물 건너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인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에서 범인들이 쓴 수법이 이 사건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는 점, 무인 포스트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유사한데 범인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황에서 이 모든 내용은 그저 허공에 대한 메아리나 다름없을 뿐.
7 기타
-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2011년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범인을 만나면 처벌보다도 왜 아들을 죽였는지를 물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사건 발생 이후 한동안 술에 의지하며 살고 사업 실패를 겪는 등의 안타까운 삶을 겪었지만 다행히 건설 관련 사업을 현재도 하면서 비교적 건강하게 사는 듯.[6]
'형호를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습니까?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형호를 살해하고 나서 꿈에 형호가 나오지 않던가요? 뭐라고 하던가요?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당신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꼭 찾아내야 하고 꼭 찾아낼 것입니다.'
- ↑ 1991년 당시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이라 신분증 없이도 자유롭게 아무 이름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 ↑ 대략 저녁 8시경이었다.
- ↑ 현재 우리은행 상계동지점. 동일로 1373번.
- ↑ 통화시 자신도 곤란하다는 어조와 내용으로 말하여 누가 시켰다는 걸 은연중에 내보이고 싶어하는 듯한 부분이 있었고, 실제 목소리도 후반 통화로 갈수록 피곤한 음색이 나오면서 힘들어 하는 상태로 추정되었다.
- ↑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해 보면 굉장히 가능성이 높은게 심증이 너무 많다. 일단 범인은 상술한 대로 혼자가 아님을 은연중에 드러냈으며 이상재의 알리바이도 이 사건에 여러 명이 가담했다고 하면 논파가 되기 때문이다. 유괴 및 돈 갈취 등 행동은 다른 사람이 하고 이상재는 경주에서 통화만 했다고 가정해 보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독 이상재가 다른 날의 기억은 흐릿하면서 사건 당일 기억만 또렷한 것도 심증이 된다. 이상재가 처한 상황도 역시 심증을 굳히게 한다. 다만 매우 안타까운 것은 역시 심증은 이처럼 많으나 가장 중요한 물증이 없다는 것.
- ↑ 바로 같은 해에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부모 중 한 명인 김철규가 술에 의지하며 살다 간암으로 2001년에 사망한 것을 생각하면 이우실의 근황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 ↑ 91년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였으니 현재는 50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