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위에서부터 일본은행, 토요타 자동차[1], 니콘 카메라, 니콘 전자사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2 슬림[2]
목차
1 개요
이 문서는 일본 경제의 역사에 대하여 서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 역사
2.1 1960년대이전
일본은 에도시대 부터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16세기 후반 일본이 통일되고 임진왜란 이후의 경제호황으로 여러가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8세기에 불경기가 일어났는데, 17세기의 경제 발전 방법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것이었으며, 더 이상 개척할 땅도 없고 투자역시 안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결국 소비를 줄어들게 된다. 그러던 중 서구열강에 대해 개항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물가가 미친듯이 뛰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로 경제상황이 개선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은 공업화를 했지만 세계적인 공업국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수출로 만성 무역 적자국 이었던 일본은 수입이 늘고, 수출은 더늘어나 무역흑자국이 되었고, 이때부터 중진국 정도의 경제를 갖게 된다. 사실, 일본은 시계적으로 봤을때 못사는 나라였다. 물론 당시의 조선이나 중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보다야 잘 살았겠지만, 서구열강, 특히 미국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대략적인 수치로, 1인당 국민소득이 이들의 30%정도였다. 그나마 인구가 많아서 경제규모 자체는 작지 않았는데, 인구순위는 6위로 GDP는 9위 수준에 해당하는, 즉, 어느정도의 국민소득과 꽤많은 인구를 가진 오늘날 브라질 정도의 느낌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다시 무역 적자국이 되고 경제상황도 나빠진다. 그러던 중 1930년대 초엽의 세계 대공황이터지자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위해 만주를 점령하고, 이것이 경제 문제에 있어 효과가 있자 중국과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이후 진주만 공습을 통해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경제는 기존의 기반을 모두 잃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GHQ의 결정에 의해 일본은 농업국이 될 뻔 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미군이 일본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되면서 일본의 경제는 다시 호황을 맞게 된다.
2.2 1960년대
1960년대의 도쿄 |
충공갱
1960년 전세계 국민총생산의 2.8%에 불과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1965년, 일본은 국민 1인당 GNP가 760달러였다. 이것은 미국의 3,240달러 25% 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의 경제는 구미 선진국과 비교하여 미약하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무역장벽으로 인해 상당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그러하여 주변국들에게 상당한 압력과 비난을 받았다. 1969년에는 독일을 제치고 서구권 GDP 2위에 오르게 된다.
2.3 1970년대: 유류파동과 경제성장
1970년대의 신주쿠 |
1970년대 초반에는 국제통화위기(1971년)와 제1차 유류파동(1971년)이 발생하였다. 일본도 그에 따른 혼란을 겪었다. 유류파동 이후 일본은 경제구조를 3차산업 위주로 개편한다.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일본의 경제는 순조롭게 성장하게 된다. 그것은 구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것이였다. 마이크로 전자공학(microelectronics) 혁명이 발생하여 신기술 혁신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파급된 것은 산업구조에 들어가는 자원과 비용이 적어진 것이다. 1970년대 후반기의 일본은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였으며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였다. 사실 이전까지 일본은 중진국 수준 이었지만 이때부터 미국과 기타 선진국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미를 위협할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일본이 미래에 미국을 넘느냐의 분석도 나올 정도로...
2.4 1980년대: 거품경제
- 참고 항목: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일본어 BBC 다큐멘터리 80년대의 떠오른 태양 |
1980년 이후 일본의 출생률은 감소한다. 일본은 1980년대에 고도성장은 아니지만 연평균 4 ~ 5%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다. 1984년, 일본의 1인당 GNP는 1만 474달러에 달하였다. 동시기 미국은 1만 5,949달러의 GNP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일본은 1984년 기준으로 개인 소득에서 미국을 66%까지 추격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에 화력발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 발전량이 전체의 약67%에 달하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의 상승이 시작된다. 동시에 국내 금리가 하락하여 버블 경제를 초래하는 기반이 마련된다. 동시기 서구의 국가들은 실업과 인플레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85년 엔화 강세로 일시적인 위기를 겪는다. 일본의 거품 경제(バブル景気 ←버블 경기)의 기준을 1986년부터 1991년까지로 정하는 구분도 있다.[3] 수요감소와 설비과잉이 바로 그것이다. 1987년에 일본은 철강공업을 개혁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작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어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일본 정부는 엔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국내 수출산업과 제조업의 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작한다. 1987년 2월, 일본은행은 시준 은행들에게 정책금리를 2.5%까지 낮추었다. 시중 금리의 하락을 유도한 것이다. 일본의 저금리 정책으로 환리스크를 보유한 미국 채권 등이 일본 국내시장에 침투한다. 이로인하여 부동산과 주식이 급등한다. 1988년에는 소련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올라섰다.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평균주가(日経平均株價, にっけいへいきんかぶか)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38,915엔 87전 도달하였다.
2.5 1991년 ~ 2000년대 초반: 거품경제 이후
- 참고 항목: 잃어버린 10년/일본
Tokyo-1990 / 20년전의 도쿄(2010 전시 비디오) |
1990년, 일본은 440,124,900,000,000(약 440조)엔의 GDP를 달성하였다. 1인당 GDP는 미국의 81%까지 추격한다. 1991년 2월 닛케이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 10월 19일, 12,879엔 97전을 기록한다. 이것은 1989년 최고치에 비교하여 67%나 하락한 수치였다.
사실 일본의 불황이 오래 이어진 만큼, 불황에 진입하는 속도도 상당히 느렸다. 당장 1990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5.6%, 1991년에는 3.3%였다. 이후 1992년부터 0%대로 진입하기는 하였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어차피 미국이나 유럽도 불황[4]이었고,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구 소련(이제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일 지경이었으니, 일본의 경제 불황이 딱히 부각되지는 않았고, 40년간 세계 경제의 최우수 모범생이었던 일본 경제는 곧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괜히 199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본의 위협이나 일본적 색채가 강조된 것이 아니다.
일단 90년대 중반에 들어서 일본 경제는 1995년 1.9%, 1996년 2.6% 성장하면서 느리게나마 회복세에 접어들긴 하였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불황이 아예 장기화되어 버리고 만다(...)
일본도 1997년~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큰 타격을 입었는데, 한국이나 동남아처럼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는 일은 없었다. 비록 불경기였다고는 하지만 쌓아올렸던 세계 2위의 경제력과 넘사벽급의 외환보유고로 버텨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 경제가 체급이 크지 않았거나 외환보유고가 부족했다면 일본도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 경기의 1990년 버블 붕괴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일본 사회에 본격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위기의식이 도래한 것은 1996년부터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일본 제조업은 최고 실적을 누렸고 이러한 제조산업이 경제구조의 안정성을 지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 문제도 본격적으로 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의 일본 경제는 주가하락, 실업률 폭등, 아시아 금융위기 주범이라는 지탄을 받았고 그로인해 미국 클린턴 정부로부터 일본의 시장경제 개방에 대한 강한 압력을 받았기도 하다. 1998년부터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 악화를 겪었지만 이후 오부치 게이조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잃어버린 10년 극복이 시작되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고이즈미 개혁'이라 불리는 강력한 개혁정책과 큰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서비스업 중심으로 체제가 개편되며 잃어버린 10년에서 서서히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만 답이 없는 내수는 일본 정부도 포기한듯.
일본의 엔 달러화가 1998년 6월 15일, 사상 최악인 145엔대까지 폭등하여 심각한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을 대변해주었다.
1997년은 당시 일본의 암울했던 경제상황을 보여준 것인지 당시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한자도 '倒(넘어질 도)'였다.
2.6 2010년대: 장기화되는 불황 해소를 위한 아베노믹스 정책
(31분 35초에 일본 경제에 대한 내용이 있다.)
2002년~2011년 10년간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4%에 불과했다.[5]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5.8%로 하락했다. 2011년 8월, 무디스는 일본의 국채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강등해 일본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6]
그러나 아베 신조가 엔저정책을 펴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물가 급상승을 각오하고 시중에 돈을 푸는 한편 수출에 힘쓴 것이 아베노믹스의 특징인데 그 결과 1980년대 수준은 아니지만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기업을 골라가는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 2015년 7월 기준 일본의 대학생 취업률은 무려 96.7%에 이르러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이며 고교생도 그보다는 조금 낮지만 비슷한 취업률을 보여 자기가 맘만 먹으면 취업 자체에는 문제가 전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취직의 질도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어 그야말로 1990년대 한국을 연상하게 하는 상황이다. [7]
한편 아베노믹스와 함께 GDP가 폭락하여 32,000달러대까지 추락했다. 다만 달러가치 GDP가 떨어진 거지 PPP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경제 규모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증가했다.[8]
하지만 2016년 들어서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엔화가 상승하고 있다...아베 신조 총리는 더 강한 아베노믹스로 대처 하겠다고 했지만 잘 될지는 아직 의문... 단, 이론상으로 보면 지금 상태가 옛날 고평가 시절보다는 더 유리하기는 하다.[9]
그런데 핵폭탄이 터졌다. 브렉시트의 여파로 4년동안 낮춰둔 엔화가 급등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브렉시트/반응 문서 참조. 일본은 이번 브렉시트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국가중 하나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가 끝난게 아니냐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사태를 잘 수습하지 못하면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3 관련 문서와 자료
(브리태니커)일본의 경제
(영어위키)Economic history of Japan
일본의 고도경제성장
(네이버 지식백과)일본의 경제
4 관련 항목
- ↑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타의 고급형 브랜드인 렉서스이다.
- ↑ 하나같이 일본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제품들이다. 다만 니콘 전자사전을 제외한 자동차, 카메라, 그리고 비디오 게임기는 전세계적 지배력이 높은 상품들이다.
- ↑ [1]
- ↑ 사실 미국의 90년대 초반은 지나가는 산들바람마냥(...) 짧고 가볍게 끝나서 이후 미국이 황금의 10년을 맞게 되었지만, 유럽의 불황과 높은 실업률은 몇 년 더 오래 갔다.
- ↑ 다만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연평균 2.3%의 성장률을 보이며 나름 선방했다. 문제는 일본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제대로 받고는, 2010년에 그나마 일어서나 했더니 도호쿠 대지진으로 떡실신...
- ↑ [2]
- ↑ 다만 이쪽은 대학진학률 자체가 낮을 뿐더러, 한국과는 달리 4학년때 사실상의 취업 활동이 마무리되고(내정) 그 시점에 중소기업 공장 중규직이라도 불만없이 가야 하는 문화도 같이 고려해 봐야 한다. 한국처럼 졸업 후 일자리를 계속 찾을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3]
- ↑ 한국도 이 점은 마찬가지. 2016-06 현재 25,000대까지 추락했지만 PPP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사실 일본도 경제 위기를 겪던 시절에도 PPP는 계속 성장을 하는 편이었다.
- ↑ 문제는 대부분 국가가 희대의 삽질을 하고 있던 시절이 끝나서 경쟁이 더 힘들어졌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