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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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在植
1935년 01월 19일 ~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호는 인산(仁山)이다. 그의 자녀들 중 장남 장하준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다.

1935년 독립운동가 장병상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주부(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이후 광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관료로 근무하였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부터 1979년까지 국세청 차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부터 1980년까지 한국주택은행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김대중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한국주택은행장직에서 해직되었다. 1983년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으나 전국구 국회의원의 자진탈당시 국회의원직 상실이라는 관련법에 따라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에 잔류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지원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야 통합민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해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정두언 후보, 자유민주연합 김득수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자유민주연합에 대한 의원 꿔주기로 송영진, 배기선, 송석찬 등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가 DJP연합이 붕괴되자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한편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