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sary Symbiosis
1 의미
별명이 적대적 동반자인 냉전 시절 정치용어. 2016년 현재에도 지구 곳곳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원래의 의미는 소련과 미국의 강경파들이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위협하는 것을 이용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채우는 공생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가령 소련의 강경파가 소련 정치국에서 "미제를 쓸어버리기 위해 핵미사일 배치를 늘리자"고 하면, 미국의 강경파는 이를 가지고 최대한 선전하면서 "소련의 침략에 맞서 국방비를 늘리자"고 한다. 이번에는 미국의 강경파가 소련을 악의 제국 운운하며 비난하면, 소련의 강경파는 이를 통해 "미제의 침략에 맞서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하며 자국의 민주화운동을 탄압... 이러한 무한 루프가 반복이 되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정치인들은 콩고물을 챙기거나 최소한 정치적인 지위를 단단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미소의 강경파들이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적대정책을 취하면서 서로가 세력을 불린다는 이야기.
그러나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경우에 적대적 공생의 당사자들은 이 적대적 공생 관계를 딱히 인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진지하게 서로를 이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강경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행동이 상대를 돕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군비를 확대하고 정치적 입지를 확대했다. 실제로 소련이 미국에게 직접 망한 것은 아니지만 사라진 후 미국은 한동안 단독의 최강대국이 되어 경계를 풀게 되고 911 테러라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적대적 공생 관계라 볼 수 있다.
2 남북관계에서의 적대적 공생
적대적 공생이라는 용어는 미-소 관계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건 남북한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또한 이는 현재 진행형인 사항이다. 북의 김일성 정권은 6.25 전쟁 이후부터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선 일사분란한 유일지도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면서 비판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국민을 통제하면서 김씨왕조 체제를 완성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북한과 공산권의 위협을 내세워서 극단적인 반공 정서를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극우독재를 합리화하면서, 민주화 세력을 친북용공으로 몰아서 탄압하였다.[1]
지금도 북한에서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연례 군사 훈련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며 주민 통제와 세뇌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강경 보수우익세력들이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개발을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를 묻거나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이처럼 각각의 지도층(보수 강경파)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수십년동안 이어진 결과 상대방의 도발이나 위협이 될만한(이라고 자신들이 믿는) 사건이 오랫동안 없다면 체제의 안정이나 세력의 이익 확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위기가 없다면 위기 상황을 만들면 된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대한민국 희대의 스캔들인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총풍 사건.
당시 대한민국의 수권 세력은 선거 승리를 필요로 했으며 북한 정권은 돈을 필요로 했던 서로의 이익이 일치한 결과였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북풍이라는 대한민국 보수 강경파들이 매우 좋아하는 이슈가 시기 적절한 때에 터졌으며,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발이 아니더라도 국내외의 이슈에 대해 황당하며 부적절한 북한의 코멘트를 대한민국의 강경파가 확대하여 반대파를 탄압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NL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사회적으로 제 정신이라고 볼 수도 없는 사회 전체와 진보세력에 대한 테러리스트
대한민국의 극단주의자가 벌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에서 북한이 테러를 정당화하는 코멘트를 하고, 다시 그것을 대한민국의 강경파가 피습 사건을 공안 사건으로 확정하고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 좋은 사례. 박근혜 정부의 여러 실책성 정책으로 선거 승리가 불확실한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 터진 습격 사건은 보수 강경파에게 호재가 되지만, 북한의 뜬금없는 코멘트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대한민국 보수 강경파가 북한의 위협을 좋아합니다.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 보수를 트윗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자 임지현이 북한과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의 관계를 이 개념으로 설명했다. 다만 이쪽의 경우는 그 표현이 좀 더 과격해서 '적대적 공범자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적대적 공범자라는 표현 자체는 남북관계를 설명한 것이고 꽤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는데, 정작 2005년의 책은 원조로 돌아가서 이라크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기를 탄 것이기는 하지만.
2.1 비판
적대적 공존론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양비론으로 잘못 해석되서 물타기에 이용될 수도 있다.
아무리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한국이 북한하고 동급일 수는 없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이 정권의 지지도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북한의 도발은 남한 정권의 대응력을 테스트하고,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차기 선거에서 정권이 갈릴수도 있다. 한 예로 강릉 무장 공비 작전은 작전 기간도 기간이고, 철수 과정에서 병 1명을 누락하여 사망케 해서 정권이 타격을 입었다.
3 적대적 공생의 문제점
짤방은 현재 시리아 내전의 상황
적대적 공생 관계가 지속되면 각국의 보수 강경파 이외의 국민 대부분이 피해자가 된다. 군사적인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 만큼 국민의 세금 부담은 커지고 복지는 줄어들게 되는 경제적인 부담은 기본이다. 많은 경우 각국의 보수 강경파들은 상대방의 도발과 위협을 자국 안에서의 정권 체제 안정 목적으로 활용한다. 작게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를 덮는 물타기 효과부터 인권 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아예 심해지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활용하고 국가의 이익에는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쓰는 욥제리 저리가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윗땅의 세 뚱뚱이가 좋은 사례다.
4 그밖의 적대적 공생 관계
냉전시기 미국-소련,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북한의 관계 이외에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세력들 사이에는 이러한 적대적 공생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도 이러한 관계가 보인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모든 아랍인, 모든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다!라면서 민간인과 테러리스트 가리지않고 무차별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고, 여기에 반응해서 아랍-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보아라 이스라엘과의 평화는 헛된 환상이다. 이스라엘과 그 뒤를 봐주는 미국놈들을 다 죽여라!식의 무차별적인 테러전술로 나온다. 그럼 여기에 반응해서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고...50년 넘게 이러고 있다...[2]
4.1 극단주의
상대방의 극단적인 주장을 이유로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 예를 들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같은 혐한 단체가 한국인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면 혐일 단체들이 수위를 높여 있는 것 없는 것을 더해 무고한 일본인까지 싸잡아 모욕하는 주장을 내세우고, 다시 그 주장을 혐한 단체가 받아 살을 더 붙여 혐오스러운 주장을 하는 것의 무한 루프. 이렇게 하면 혐한/혐일 세력은 각국에서 정치적인 힘을 얻고 경제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양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여러모로 피해를 보게 된다. 국내의 예시를 보자면 정치적 성향으로 논란이 많은 극우와 극좌 성향의 모 커뮤니티들의 예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사이트는 상대를 진심으로 싫어하지만 그 상대를 이기려는 병림픽 무의미한 경쟁심과 단결로 인해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다른 커뮤니티들에도 피해를 입힌다.
4.2 라이벌
서로간의 피터지는 경쟁속에서 링 위의 선수들처럼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고 양측 모두 성장한다.
- 삼성전자 VS. 애플 = 스마트폰 시장 파이의 성장과 양강구도의 형성.
- 주인공 VS. 악역 = 시청률 상승.
싸대기를 날릴수록 더욱 - 임요환 VS. 홍진호 = 임진록#s-4
- 연세대 VS. 고려대 = SKY라는 브랜드 확립
- 각종 더비 매치
- 그리고 현실에서 라이벌 관계가 될 수 있는 모든 경쟁체제.
4.3 자연계에서
서로 경쟁 관계나 포식-피식 관계에 있는 생물들도 어찌보면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쉬운 예를 들자면 토끼와 여우만 사는 지역에서 이 둘은 마주치기만 하면 죽이려고,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적대 관계이다. 그러나 토끼가 없다면 여우는 굶어죽게 되며 여우가 없다면 토끼는 개체수가 과도하게 늘어났다가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으며 개체수가 다시 급감하게 된다.
5 관련 항목
- 1984- 적대적 공생의 어찌보면 가장 끔찍한 사례. 3개의 독재국가는 서로를 절대 멸망시키지 않을 정도의 저강도 분쟁만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빌미로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쟁은 잉여생산물이 생겨 국민 불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딱 국력이 성장하지 않을 정도로만 일어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책 결정자들은 이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이 상황을 잘 이용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저강도 분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3국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더 끔찍한 추측으로, 이 분쟁조차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형태일 수도 있다. 작중 '오세아니아' 외에 다른 국가가 과연 존재하기는 한지도 의심스럽고 작품 내에서도 독재 정권이 고의로 로켓 폭발 등의 행위를 자행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 더비 매치
- 단두대 매치 - 적대적 공생의 반대 사례
- ↑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 군사 충돌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봄.
- ↑ 이런 적대적공생 관계를 깨기 위해서 1994년 10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땅과 평화의 교환이란 원칙하에 오슬로 평화협정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라빈은 1995년 이스라엘 강경파한테 암살당했으며,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 정치권의 방해속에 협정은 휴지조각이 되버렸다.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현세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