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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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52
최용규(崔容奎 / Young-gyu Choi)
생년월일1985년 8월 31일
출신지충청남도 공주시
출신학교공주신관초 - 공주중 - 공주고 - 원광대
포지션2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8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2순위 (KIA 타이거즈)
소속팀KIA 타이거즈(2008 ~ 현재)
응원가냉정과 열정 사이 OST '1997 Spring'[1]

1 개요

KBO 리그 KIA 타이거즈야구 선수. 포지션은 내야수이지만, 입단 이후에는 별다른 고정 포지션이 없이 외야수 수비까지 본 적이 있다. 2015년에는 안치홍의 공백을 메우는 2루수로 출전하고 간혹 박기남, 브렛 필, 김민우, 김주찬[2] 등의 다른 2루수 가능 자원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3루수 수비도 가끔 보기도 한다.

2 플레이 스타일

입단 후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견실한 수비를 가지고 있고 대학 시절 타격왕을 기록했을 정도로 컨택 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 다만 여태까지 주전이 아니었던 탓에 1군 경험이 부족하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내지 못했고 이 점 때문에 여러 포지션을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1루 글러브를 가지고 외야 수비를 보다가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볼 수 있듯 상당히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 테이블 세터 혹은 하위타순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편이다. 간혹 의욕이 너무 넘친 탓에 주루미스를 저지르는 건 옥에 티.

한번씩 용규놀이도 한다. 응?

3 선수 경력

원광대학교 시절 타격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매서운 타격 실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으며 2차 신인지명 당시 나지완에 이은 2차 2순위 지명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데뷔 시즌에는 1할도 못 미치는 타격을 보여 주었고, 2009년에는 비교적 많은 기회를 잡으며 타율도 올랐으나 2010년에는 다시 부진에 빠졌다. 왜소한 체격과 그에 따른 체력 부족이 문제였고, 2010년 시즌 종료 이후 어깨 수술을 받았다. 상무에 지원했으나 탈락하면서 2011 시즌에는 선수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는 시련을 맞이했다. 결국 현역[3]으로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전역 후 2014 시즌 중반에 KIA 2군 선수단에 합류하여 다시 재기의 기회를 잡았고 2군에서 0.351의 타율로 부활의 여지를 남길 수 있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군 복무 중인 김선빈 - 안치홍 키스톤의 공백을 메울 기대주로 코치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어느덧 30살을 넘긴 나이가 걸림돌이다.

3.1 2015 시즌

개막 선발 엔트리에 들고 개막전에 선발 2루수로 출장했다. 7회말 공격에서 김원섭을 불러들이는 3루타를 기록하면서 시즌 자신의 첫 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 4월 1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있었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김광현을 상대[4]로 2루타를 뽑아내며 이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의 첫 안타를 신고했고 브렛 필의 선취타점이자 결승타점이 되면서 경기의 포문을 여는 역할을 했다.

4월 2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있었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무대에 등판한 메릴 켈리를 상대로 16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냈고, 포일을 틈타 2루까지 진루하여 브렛 필의 동점타에 한 몫을 했다. 안타깝게도 4회말 이후 비가 많이 내리면서 노게임이 선언되는 바람에 기록 자체는 말소되었지만 최용규의 16구가 아니었으면 0:1로 끌려가는 가운데 5회초까지 경기가 진행되어 강우콜드 패를 기록할 뻔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간절함의 표현이었다.

4월 1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는 장원삼을 상대로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했다. 김광현에게 홈런을 기록한 뒤 2145일만의 홈런.

하지만 데뷔 첫 풀타임 출장이라는 점 때문인지 점차적으로 체력적인 문제와 큰 무대 울렁증이 심해졌고, 그 결과 수비범실이 잦아지고 타격 슬럼프가 길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점차적으로 선발로 출장하는 횟수가 적어지고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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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중 5월 11일에는 이범호의 대주자로 교체되어 들어갔는데, 2루에서 3루로 도루하던 도중 김민성의 스파이크에 손등을 찍히는 부상을 입었다. 골절이나 인대손상은 없었지만, 이로써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주루플레이에 신경쓰는 모습에 일부 KIA팬들이 놀랐다고 한다.

5월 24일 손등부상을 회복하고 1군으로 콜업됐다. 하지만 최용규 개인에겐 현재 활약하고 있는 김민우와 주전2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7월 8일 목동야구장에서 있었던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8회부터 교체 출장했다. 8회 말 윤석민의 평범한 플라이볼 타구를 잡지 못 해, 실책을 하였고, 이 실책이 빌미가 되어, 그대로 실점으로 이어졌다. 12회 말에 고종욱과 정면 충돌하여, 왼팔이 꺾이는 부상을 입었다. 정확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1루에서 루상으로 손을 뻗어 주자의 진로를 방해해, 오히려 주자가 부상당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과 함께 인터넷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냉담하다. [5]

7월 9일 결국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1군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최용규에 대한 반응은 냉대했다.

재활로 시즌 아웃이 되는가 했지만, 그래도 9월 확대 엔트리에 맞춰서 1군에 등록되었다. 그러나 9월 2일 청주 한화전에서 신종길의 대주자로 교체되어 들어온 상태에서 얼빠진 견제사를 당하면서 모처럼 잡은 기회를 날려버렸고, 결국 그 다음날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백업의 처절함과 야구재능은 꼭 비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안타까우면서도 냉정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9월 26일 경기에선 실책으로 판정만 안났을뿐 혼자서 팀의 3실점을 책임지며 제대로 역적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타석에선 번트 실패, 삼진 게다가 번트 실패로 출루해서는 도루실패까지, 공수주 모든 부분에서 얼빠진 모습을 보이며 간절함이란게 있긴한지 의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무툴 김다원은 가끔 터지는 장타라도 있지, 최용규는....

9월 28일 26일의 실수때문인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수비보강 차원인지, 김호령이 대신 콜업되었다 이로써 최용규의 2015 시즌은 끝.

3.2 2016 시즌

2군 31경기에 나와 0할 9푼대의 타율을 보여 주고 있다. 0점대 방어율 결국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4 여담

팬들이 붙인 별명으로 당시 같은 팀에 있었던 동갑내기이자 먼저 KIA에 있던 이용규와 이름이 같다[6]는 의미에서 '짭용규'가 있었으나, 그 이용규가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이후 진정한 용규라는 의미로 '참용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2015 시즌부터는 타격과 수비까지 답이 없어지며, 못할 때마다 짭용규로 불리며, 부정적인 의미로 바뀐 듯.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바닥돌을 신청받을 때 한 팬이 '용규야 기아에서 오래오래 함께하자'라는 바닥돌을 남겼고 이 문구에서 말하는 용규가 바로 최용규다!(...) 라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 1차 지명된 대전고 외야수 박상규와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북일고 투수 윤기호와 함께 전체 선수 중 딱 세명있는 충청도 출신 선수이다. 위의 둘은 고졸 선수인데 반해, 최용규는 대졸 선수이다. 그해 충청팜은 유래없는 흉작을 거두었다.[7]
  1. (기아의 최용규 워어 워어어어어어어) 기아의 최용규 안~타~ 워어어어어어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전부 다 불렀는데, 이후에는 괄호 부분을 뺀 부분부터 시작한다. 다시 돌아올 때는 괄호 부분부터 시작.
  2. 2015 시즌 2루수 겸업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거의 외야수로 출전중이다.
  3. 제30기계화보병사단 수색대로 제대했다.
  4. 군에 입대하기 전 통산 홈런을 1개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문학 야구장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뽑아 낸 것이었다.
  5. 사실 이렇게 냉담한 이유가 그 동안 최용규가 보여준 실적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수비 범실이 잦아지고, 타격은 1할대로 안 그래도 못 치는데 답이 없어졌기 때문.
  6. 나이도 동갑이고, 생일도 겨우 5일 차이밖에 안 난다.
  7. 최용규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