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텐

(카이텐에서 넘어옴)

정신나간 간부들이 만든 게이 10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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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이텐 1형

  • 전장 - 14.75m
  • 직경 - 1m
  • 배수량 - 8.30t
  • 출력 - 550hp
  • 속력 - 최고 30노트
  • 무장 - 폭약 1.55t
  • 잠항심도 - 80m
  • 승조원 - 1명

1.2 가이텐 4형

  • 전장 - 16.50m
  • 직경 - 1.35m
  • 배수량 - 18.17t
  • 출력 - 1,200마력
  • 속력 - 최고 40노트
  • 무장 - 폭약 1.8t
  • 잠항심도 - 100m
  • 승조원 - 2명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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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天, Kaiten. 구일본군이 제조한 사람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유인유도 어뢰. 말 그대로 사람이 타고 조종하여 표적에 들이받는 자폭 병기이다. 하늘에는 카미카제오카, 땅에는 자돌폭뢰, 대전차총검술 및 대전차 자폭조가 있었다면, 바다 수면엔 신요, 바닷속엔 이것과 카이류후쿠류가 있다.

비행기는 기지를 출발한 뒤 작전이 돌연 취소되거나 불시착(또는 이를 가장한 전열이탈)하는 방법 등으로 특공대원이 생환할 가능성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유인 어뢰라면 한번 발사하면 그걸로 . 설령 탄두가 불발되더라도 물속에 잠겨있어 수압때문에 출입구를 열 수 없으므로 100% 죽는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대원이니 살아 돌아오길 고려해서 만든 물건이 아니다. 탑승해서 발사가 이루어지면 얄짤없이 수장된다. 이름의 의미는 형세(天)를 되돌리려는(回) 것이었겠지만, 실상은 (탑승자를) 하늘(天)로 돌려보내는(回) 용도.아니지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라 용궁으로 내려간 거지 하늘로 가는게 맞을지도? 사람들의 어이도 하늘로 돌려보낸다

3 상세

3.1 93식 어뢰

가이텐의 모체가 된 일반적인 어뢰이다. 이쪽은 자폭 병기가 아니다.물론 전쟁 후기엔 가지고 있는게 자살 행위가 되어버렸지만.. 산소어뢰 항목 참조

3.2 개발

kaiten-kamikaze.jpg

93식 어뢰가 너무 많이 쌓인 것을 본 일본군은 이것을 개량해서 사용할만한 무기로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가이텐이다.

3.2.1 시초

자살특공병기답지 않게 일본 해군이 태평양 전쟁에 돌입할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인간어뢰를 추진한 기록이 있다.

일단 소형 잠수정 갑표적의 탑승원이었던 구로키 히로시(黑木博司) 해군대위, 니시나 세키오(仁科關夫) 해군중위가 일본과 미국의 공업력 차이에서 소모가 큰 함대끼리의 결전보다는 유인 수상병기에 의한 적 함대의 괴멸만이 승리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해군은 생환을 고려하지 않은 출격은 할 수 없다고 이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로키 일행은 해군 내부에서 고립되었다.

이후 인간어뢰의 구상은 과달카날 전투의 패배 후 일본 해군 내부에서도 여러 안이 나왔다. 그 중 하나는 다케마 타다미(竹間忠三) 대위가 주장한 "전세를 돌리기 위해선 필중필살의 육탄공격이 필요하다"로 인간어뢰의 생각을 군령부의 이우라 쇼지로(井浦翔二郞) 해군중좌에게 건의해 이우라 중좌가 실현성을 타진했지만 해군본부는 소극적이었고 군령부 수뇌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1943년 12월에 伊 165 잠수뢰장(潛水雷長) 이리사와(入澤) 대위와 항해장 고노에(近江) 중위가 전국타개를 위해 인간어뢰의 독자연구 성과를 군령부와 연합함대에 제출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로키 대위와 니시나 중위가 1943년과 1944년에 걸쳐 군령부를 두 번 방문하여 군령부와 군무국 제 1과장 야마모토(山本) 대좌를 만나 상담했는데 이에 1944년 2월 26일에 "승조원의 탈출장치가 없는 병기는 절대 채용불가"라는 조건을 달고 시험제작을 허락하였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마치 소수의 똘아이들이 계획을 주도하고, 일본 해군의 수뇌부는 어쩔 수 없이 승인했다는 인상을 주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식으로 소수의 똘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일본이 패전한 이후 지속적으로 벌어진 일이며, 이는 수뇌부는 잘못이 없다를 입증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게다가 저런 식의 똘아이는 당시 추축국의 군인들 중에서는 어디서나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일본군이 그런 증상이 심한데,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수뇌부가 받아들일 때부터 수뇌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애초에 지휘책임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의 회의란 것이 미리 결론은 정해진 상태에서 회의의 형식 유지와 체면 유지를 위해 각본에 따라 정해진 하급자가 계획을 제안하면 상급자가 못이기는 척 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볼 때, 과연 수뇌부가 똘아이들에게 휘말렸는지도 의문이다. 근데 사실 휘둘렸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2014년에 NHK에서 방송된 일본해군반성회 스페셜에서 구로키와 니시나의 일화는 '신화'일뿐, 실상은 군령부와 해군성에서 그 전에 이미 자폭병기의 제작에 나섰다는 것이 밝혀졌다.그러면 그렇지

즉, 다들 속마음은 똑같은데 겉으로는 짐짓 말리는 척, 장병들을 위하는 척 가식을 떨어댔다는 말. 그렇지 않으면 왜 이딴 물건이 결국 개발승인이 났을까?

3.2.2 초창기

최초 개발품은 인간 자폭 병기가 아니었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후에는 조준을 고정한 후 승조원이 탈출하는 방안도 고려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른나라도 했던 수준인지라 여기서 끝났다면 이 항목이 만들어질 이유도 없었겠지만...

그러나 멀쩡하면 일본군 병기가 아니다.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딴지를 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딴지가 들어온 것은 500kg짜리 어뢰용 탄두로, 위력이 모자라잖아 더 큰 탄두를 달란 말이야라고 징징대는 바람에 더 큰 탄두를 달았고[1], 그 때문에 어뢰가 불안정해져서 적함에 들이받을 때까지 계속 조종해줘야 했다. 공돌이를 조금만 갈아넣어서 탑승원이 탈출할 기회를 마련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 빗나가면 어쩔래 바다에는 파도가 친단 말이야라고 징징대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줄여서 사람 생명은 쓰레기란 지랄논리 사실 탈출 장치를 만들어봤자 대양 한가운데 적함 근처에서 탈출한 승조원은 그 적 함대에게 구조받기를 기대하거나(...)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살릴 생각을 안하는 것과의 차이는 크다.

사실상 가이텐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기존 500kg 탄두도 조종하기에는 벅차고, 일본군의 물자부족 문제도 있는지라 차라리 400kg급이나 그 이하로 줄이면 조종성도 나아져서 승조원이 탈출할 수 있거나, 아니면 차라리 명중률이라도 높일수 있었을 것이다.[2] 설령 300kg대로 줄인다고 해도 이론상 중순양함 격침까지는 충분히 가능했다.[3] 대본영이 오매불망 바라던 미 해군 모함 격침은 한발로는 요원해지겠지만, 어차피 역사대로 만들어진 가이텐이 얼마나 형편없었는가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1944년 7월 25일의 시험제작기의 실험이 오오이리시마(大入島)의 발사장에서 이루어졌다. 탈출장치는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장비하지 않았고 병기로서의 특성에도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주된 결함사유는 어뢰를 개조한 물건이라 후진이 불가능한 점과 선회반경이 너무 크고, 잠항 심도가 최대 80m밖에 되지 않아 모함인 대형잠수함의 심도를 약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인명의 희생에 대해서는 지적도 이루어지지 않는 엄청난 사태 그런데 당시 일본 해군 잠수함의 잠항심도래봐야 100미터짜리가 흔했다.

하지만 이런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1944년 8월 1일에 해군대신 요나이 미츠마사의 결재에 의해 정식병기로 채용되었다. 명칭은 구로키 대위의 제안에 의해 가이텐(回天)이라 명명되었다. 그러나 운반용으로 쓰일 대형잠수함이 대부분 격침된 상황이라 이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탈출장치는 끝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3.2.3 설계 변경

일단 가이텐은 길이 14.7미터, 직경 1미터짜리 동체에 780kg의 탄두를 장착한다. 크기에 비해 탄두가 크고, 중심에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웅크리고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다 자폭하기도 전에 꽉 끼어서 숨 못 쉬겠어서 질식사할 듯 위에는 작은 잠망경도 달아서 외관상으로는 마치 소형 잠수정 같은 모양.


201209haya033.jpg
크기가 크기이니 만큼 모선이 될 잠수함의 어뢰발사관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갑판 위에 설치한다. 탑승자는 잠수함 내에 특별히 설치한 연결통로를 통해 탑승했으며 가이텐에 탑승하기 위해 잠수함이 굳이 부상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잠수함의 선체를 개조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가이텐 작전을 위한 전용 잠수함이 따로 준비되었으며 보통 4~6척의 가이텐을 싣고 작전에 투입되었다. 다만 일부 작전사례에서 잠수함을 부상시킨 후 가이텐에 옮겨 탄 사례가 없지는 않다.

Kaiten_Type_1_launch_test_from_starboard_of_Japanese_cruiser_Kitakami.jpg
잠수함 말고도 수상함을 가이텐 모함으로 개조시키기도 했는데, 쿠마급 경순양함 3번함 키타카미가 가이텐모함으로 개조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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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전쟁 후반에 가서 만들어진 양산형 구축함인 마츠급에도 가이텐을 장착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군의 막장전설의 끝인 1945년 8월의 일러스트다.

3.3 양산

1944년 9월 5일에는 야마구치 현의 오오츠시마(大津島) 기지가 새로 오픈하여 본격적인 전력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가이텐은 8월말까지 1형 100기를 생산하려던 계획이 9월중순에는 2기, 이후엔 하루 3기 생산만의 한계에 부딪쳤다. 이는 미군에 의해 수송물자의 봉쇄로 인한 자재부족과 늘어나는 피해함선의 수리 및 숙련공 부족과 식량의 부족으로 인해 생산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또 가이텐의 모체가 된 93식 3형 어뢰는 산소를 사용하기 위해선 정비에 시간이 상당히 걸렸는데, 한 번 발사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3일간 정비를 요구했다. 그 때문에 특공대원의 충분한 연습시간이 부족해 가이텐의 정비대원들은 3일에 2개씩 정비하도록 상부의 닥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9월 6일 훈련도중 가이텐의 창안자였던 구로키 대위가 정비불량에 의한 사고로 사망했는데 자업자득 오히려 이것이 "우리는 답이 없으니 같이 죽자구로키를 뒤따르자"라고 특공대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퍽이나

3.4 특징

3.4.1 장점

그딴 거 없다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수면 아래서 접근하므로 멀리서 탐지할 수 있는 카미카제보다는 더 위협적이었다.[4] 게다가 조종성을 개판으로 만든 거대한 탄두는 명중할 경우 정말로 치명적인 수준이다, 명중을 한다면.

3.4.2 단점

그런데 그 명중이란게 잘 안 된다. 한대만 그럼 남는건 바다속의 금속제 관

조작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하며, 생존 특공대원(훈련은 받았으나 출격하기 전 전쟁이 끝나 출격하지 않고 살아남은 경우)의 증언에 따르면 "눈이 6개에 손이 6개여도 조종하기에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훈련중 사망자도 7명이나 있었으며, 그중 1명은 최초 개발자였다.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흠좀무. 원래 태생부터 잠수함이 아니고 원래 조타기능이 없는, 무유도 직진 어뢰였는데 이걸 조종가능하도록 급하게 개조했다. 그래서 좌우, 상하 운동용 타륜을 동시조정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자동차에 핸들이 2개 달려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엑셀레이터 페달이 밟았다 때도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당겨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잠망경 역시 조정해서 자기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데 승조원의 조종편의성을 고려했다면 아마 일본은 잠수함 째로 들이박는 전술을 택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건 이것대로 흠좀무.

또한, 장시간 운행할 경우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컴퓨터 등을 이용해 유도하는 기술이 없던 시대에 유도를 위해 관련 전자장비 대신 사람을 넣은 것인데 그 사람의 의식을 잃게 만드는 가스가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 전지어뢰 개조형은 축전지에서 가스가 발생하고, 산소어뢰 개조형은 엔진부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원래 어뢰란 것이 승조원을 탑승시킬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다가 전쟁 말기로 갈수록 조악해지는 제조기술까지 합해진 결과였다. 그래서 실제 운용시에는 쏘는 놈이 목표에 최대한 접근한 다음에 가이텐을 출진시켜야 했다. 즉, 사냥하려고 접근하다 역으로 들켜 사냥당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의미. 실제로도, 멀리 있어도 모선이 포착되기 쉬운 판국에 스스로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해주니 발진도 못시켜보고 모선과 함께 사이좋게 수장되는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이래저래 답이 없다.

4 유사품

크릭스마리네이탈리아 해군, 영국 해군도 이와 비슷한 인간어뢰를 운용했지만 자살용은 아니었고 어뢰 외부에 손잡이가 있어서 그냥 잠수복을 입고 어뢰 외부에서 조종하는 방식을 채용했으므로 어뢰에 이상이 발생하면 그냥 어뢰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멀리 헤엄치면 끝이었으므로 사용자의 안전을 크게 도모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어뢰에 탑재되는 탄두는 어뢰 자체를 돌격시켜서 터뜨리는 용도가 아니었고, 목표물 근처에서 수동으로 탄두를 분리한 후, 폭탄처럼 설치가 가능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어뢰 자체는 사용자와 탄두를 운반하는 이동 수단으로 사용했으므로 작전을 끝낸 후에 다시 어뢰를 조종해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이탈리아 해군소속 부대인 Decima Flottiglia MAS는 1941년 알렉산드리아의 영국 해군의 전함 HMS 발리안트와 HMS 퀸 엘리자베스에 폭탄을 설치한 후 탈출하려다가 영국 해군에게 발각당해 잡혔고[5], 그들이 폭탄을 설치한 바로 그 배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때 이탈리아 해군 장교의 한 마디가 "5분 후 이 배는 폭발한다!"였고, 곧바로 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이 작전에서 이탈리아 해군은 3기의 유인어뢰를 소모하고 6명의 운용요원이 포로로 잡히는 경미한 피해만을 입었지만, 영국군은 전함 2척과 대형 유조선 1척이 항구내에 착저해서 고정포대 이하의 존재로 전락하는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덕분에 영국군은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할 뻔했고, "이탈리아군의 용기는 타고 있는 배의 크기에 반비례한다."[6]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작전에 참여한 이탈리아 해군은 잘 살아남았다. 총 6명중 2명은 위에서 언급된 포로들이며, 나머지 4명은 알렉산드리아 인근에 상륙한 후 접선책과 만나 탈출하려다 그 전에 붙잡혔다. 폭발한다고 말한 그 포로들도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남아서 나중에 이탈리아로 귀국했다. 또한 이 부대는 43년까지 유인어뢰를 동원한 침투, 파괴 공작으로 통상파괴작전을 시행, 상당한 전과를 기록했다. 나중에 이런 방식의 공격법이 발전해서 '수중 침투-파괴 전략'이 되었다.

덕분에 영국에선 비슷한 물건인 채리엇의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7] 그러나 가이텐은 그딴거 없다. 한마디로 전자가 위험하긴 하지만 살아서 돌아올 수는 있다. 그럼 영웅이 된다!였다면 후자는 죽어라! 그럼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신이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정신 못차리고 가이텐에다가 어뢰 2발 더 달아놓은 급인 카이류도 개발했다는 것이다. 답이 없다.

5 운용 및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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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중순부터 가이텐은 서서히 그 숫자를 증가시켜 나갔지만 제일 큰 문제는 승조원을 뽑아 자살공격대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이로서 앞서 설명한 승조원들의 사기진작(?)이 헛소리였음이 입증되었다.[8] 10월 초부터 카이텐 탑재의 공사가 마무리된 제 15잠수대의 카이텐이 최종훈련을 마치자 제6함대사령부에서 겐(玄)작전을 입안해 이 카이텐 공격대에는 기쿠스이 대(菊水隊)라 이름붙여졌다.

1944년 11월 캐롤라인 제도의 울리시 환초에서 미군 급유함을 격침시키며 요란(?)하게 데뷔. 단 거기 탄 조종사는 그날로 끝났다 이후 미군이 항구의 경비를 강화하자 가이텐은 해상에서의 공격으로 전법을 바꾸고 키쿠스이 대 이후 콘고대(金剛隊), 치하대(千早隊), 진부대(神武隊), 타다라대(多々良隊), 텐부대(天武隊), 신부대(振武隊), 코우대(轟隊), 다몬대(多聞隊)라는 가이텐 부대를 창설하고, 해당 인원들이 패전 일주일 전까지 148기의 카이텐에 타고 출격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년이 안 되는 기간동안 격침 4척(구축함, 수송함, 급유함, 상륙정 각1), 대파(大破) 2척(구축함, 수송함 각1), 소파(小破) 6척(구축함, 수송함 각3)...한마디로 말해서 개조한 비용도 제대로 못 뽑고 끝났다. 당장 일본에서의 추산도 해당 전과를 기록하면서 106기의 가이텐 대원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며, 종전 당시까지 가이텐의 대원들은 총 1,375명이었는데 정비도중 사망한 자까지 합하면 총 사망자는 145명으로 적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에서 확인된 미군 사망자는 187명이라고 한다. 개조까지해서 자폭무기를 운용한 것치고는 비참한 교환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주옥같은 단점 외에도 가이텐을 싣고 출격할 잠수함 자체도 부족한 상태였으며, 그나마 출격한 잠수함도 가이텐을 출격시키기도 전에 들켜서 격침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훈련 중 전쟁이 끝나서 생존한 케이스도 있었다.

6 여담

지금도 야스쿠니 신사의 기념관에는 살아남은 가이텐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놓인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역설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2009년 가을 일본의 '쉽스'라는 회사에서 가이텐과 오카의 휴대폰 고리를 해상자위대 기지에서 판매하는 초유의 병크를 터트려 각계의 비판이 일자 결국 2010년 1월에 전량 회수하였다. 기사링크 하지만 제품이 품절되자 일본 경매사이트에서는 최고 1만 2,000엔에 경매에 나오기도 하는 등 이상과열 현상도 빚어졌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역사공부 좀 해라. 당연히, 이걸 사려는 이들은 제국주의 뽕에 취한 이들보담은 단종된 레어템에 하앍대는 수집가들이었음은 생각해 봐야 한다.

파일:Attachment/kaiten cellphone chain.jpg

자폭하러 가는 수병의 표정이 참으로 해맑다. 이야! 드디어 현세를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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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별개로 파인몰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이텐을 모델화 시켜왔다.

[1]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을 구현했...는데, 여기서 I-58에 가이텐까지 달아버렸다.(...)

7 대중매체에서의 가이텐

  • 가가탐정사무소의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2차대전 참전 군인으로 가이텐으로 훈련을 받다 전역한 노인이 늘그막에 지난날을 회상하며 모형을 만들다가 무개념 밀덕에게 발견, 납치되어 양도해 달라고 떼를 쓰다 듣지 않자 납치극을 벌였다가 탐정 일행에게 제압당한다. 노인은 그 시절을 끔찍했다고 회상하면서도 누군가는 기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모형을 제작했다고 말한다.
  • 고르고13 3권 17화에서 고르고 13이 이것을 1인용 잠수함으로 개조해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목표물을 공격했다던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던지 위 항목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웃지 못할 오류를 써 놨다. 완전히 미친 짓이라는 평가를 달긴 했지만 가이텐보다는 시중에 판매되는 고속 잠수정을 사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게다가 사용 용도는 단순한 해적 소탕. 이건 작가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누가 이겼는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이미;; 사실 미국을 승리로 이끌어서 그렇다 카더라
  • 태평양 전쟁 말기 잠수함전을 다룬 일본 영화 한여름의 오리온에서 주인공인 함장이 모는 잠수함이 가이텐의 모함으로 나온다. 함장이 흔한 일본군들과는 달리 꽤나 개념인으로 나오는데, 가이텐 승조원들이 위기시마다 출격시켜 달라고 조르나 매번 "아깝다."며 거절한다. 그러다가 미 해군 구축함에 발각되어 부상하지 못해 산소 부족으로 승조원이 질식사하게 생겼을 때, 가이텐의 연료통을 째서 100% 순산소를 함내에 가득 뿌려 공기 정화용으로 쓴다(...). 벙쪄있는 가이텐 승조원들에게 함장은 다시 한 번 "이런 좋은 산소를 고작 자살 공격 따위에 쓰다니 아깝잖아."라고 웃으며 말한다. 물론 순도 100%의 산소는 오히려 독이지만, 좁은 잠수함내가 이산화탄소로 가득찬 산소부족인 상황에서, 연료통 내에 들어있는 산소를 뿌리는 정도로는 산소중독에 이를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 일본 영화 출구없는 바다가 가이텐을 소재로 하였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이 원작이며, 출연진도 이세야 유스케, 이치카와 에비조, 우에노 주리 등 호화라인업을 자랑. 난해하던 가이텐 발사과정을 어느정도 알 수 있게 묘사해놓은 것, 훈련과정 등이 나온다. 작중 전과는 수송함에 적중해서 1척 격침하는 걸로 나온다.
  • 함대 컬렉션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제작진이 못 박았다.왜냐면 가이텐은 어디까지나 함이 아니라 유인유도어뢰니까... 작중 몇몇 칸무스들은 가이텐이라면 질색을 하는 묘사가 있다.(예: 키타카미, 이58)
  • 레드얼럿3에서는 욱일제국군의 해상유닛인 야리 소형 잠수정이 가진 특수공격인 Last voyage(마지막 항해)로 구현된다. 이 공격을 활성화할 때의 대사는 "반자이!"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 Kaiten Carrier라는 명칭으로 B형 잠수함을 개조한 가이텐 탑재 잠수함이 나온다. 위력은 현실과 달리 약해도 유도가 가능해서 상당히 강력하다.
  • 영화 로렐라이에서 주인공인 오리카사 마사토는 전사와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가족의 원수 갚기 위해 카이텐에 지원하였다.
  • 보스의 두얼굴에서 야쿠자들이 마피아의 잠수함을 잡기 위해 가이텐 한 기를 사용한다. 승조원은 극중묘사로 가장 불운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부하 야쿠자. 이 부하는 건강상태도 불운해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생겼다. 가뜩이나 구린 조종성에다 골골을 넘어서 숨이 넘어갈 듯 헐떡대는 승조원으로 가이텐은 무용지물이 되는 줄 알았으나... 적의 잠수함을 향해 비실비실 하게 나아가던 가이텐은 마지막 순간에 정신 차리고 충돌한다. 묘사를 보면 마지막 순간에 사신이 찾아온 듯 한데... 하지만 불운하게도 불발(...) 가이텐이 잠수함에 박히고 더이상 잠수가 불가능해진 잠수함이 떠올랐는데, 부하는 충돌 충격 때문인지 몸이 반 쯤 가이텐 밖으로 튀어나왔고 잠수함의 항행 파도 때문에 몸이 흔들린다. 이걸 본 야쿠자들은 마치 죽음의 손짓을 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 부하 살아남는다? 방사능 가득한 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골골대던 몸이 방사능 때문에 오히려 쌩쌩해진다? 간부까지 된다? 우와아앙??
  1. 실제로 가이텐의 모태인 산소어뢰는 780kg짜리 탄두를 단 버전도 있다.
  2. 승조원 탈출은 가이텐이 쓰일 정도의 바다에서는 탈출한다 쳐도 근처의 선박이나 수상기 등이 구해주러 오지 않는 이상 생존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전 말기 일본 해군이 과연 가이텐에서 탈출한 승조원을 일일히 구하러 올 역량, 혹은 의지가 있었냐는것을 생각하면, 그냥 가이텐 타면 탈출하건 못하건 무조건 죽는다고 보면 된다.
  3. 현대의 중어뢰가 대개 300kg대 탄두중량이고, 이것만으로도 1만톤 넘는 군함을 일격에 격침시킬수 있다. 물론 성능이 향상된 현대의 폭약도 감안해야 한다.
  4. 카미카제의 압도적인 인지도에 가려서 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의 전과도 올린 바 있다. 효율이 영 별로여서 그렇지...
  5. 잠수복에 이상이 생겨서 오랫동안 차가운 물 속을 다니는게 힘들어 잠시 떠올랐다가 발각당했다.
  6. 당시 이탈리아 해군의 주력 수상함대는 연합군과의 교전을 피해서 꼭꼭 숨어 다녔다.
  7. 위에서 언급한 이탈리아 부대가 연합군 소속이 되자 이 유인어뢰를 사용했다
  8. 최소한 임무취소, 불시착 등으로 1%라도 살 가능성이 있는 카미카제와 비교하면, 해치 닫고 모선과 분리하자마자 100% 사망 확정인 카이텐에 대한 승조원들의 공포가 이해가 된다. (초기)카미카제 조종사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공중전을 겪어서 악에 받친 엘리트 조종사들이었다는 점 또한 감안해야 한다. 그러한 정예병도 아닌 일반 수병이나 하사관, 위관급 장교들한테 100% 폭사 or 익사 or 질식사로 끝나는 금속제 관짝에 타라고 하면 결과는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