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마이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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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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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96년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디젤숀 마이클스딘 말렝코
Shawn Michaels
1995, 1996년 WWF 로얄럼블 우승자
렉스 루거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
그랜드 슬램 달성자
(이전 규칙 기준) 달성자
숀 마이클스트리플 H케인
크리스 제리코커트 앵글에디 게레로
랍 밴 댐부커 T제프 하디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크리스찬빅 쇼
총 12명
(현행 규칙 기준) 달성자
커트 앵글에디 게레로빅 쇼
에지미즈대니얼 브라이언
크리스 제리코
총 7명
같이 보기: 트리플 크라운 (하위 등급) / 달성자
WWE의 前 프로레슬러.

1 프로필

본명마이클 숀 히킨보텀
Michael Shawn Hickenbottom[1]
생년월일1965년 7월 22일
신장179cm[2]
체중103kg
출생지미국 텍사스[3] 샌안토니오
피니시스윗 친 뮤직
테마곡Sexy Boy
종교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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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트리플 H뉴 에이지 아웃로즈X-PAC차이나

숀이 직접 부르고 계속 써왔던 타이탄트론. [4]

2 소개

1984년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1990년대 중반 WWE가 암흑기를 버텨내는데 큰 도움을 준 2명 중 1명이며[5] 플라잉 레슬링이 주류로 올라오게 되는데 많은 공헌을 한 레슬러. 또한 그는 WWE의 첫 래더매치의 주인공이었다.[6] 여기에 브렛 하트와 함께 체구가 작은 테크니션 계열 메인 이벤터의 길을 닦은 인물로 꼽힌다[7].

1998년 부상으로 잠시 은퇴했으나 2002년 WWE로 다시 복귀해 2010년 3월 29일 RAW에서 은퇴할 때까지 많은 팬들에게 수많은 명경기들과 명장면들을 만들어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8]

엄청난 인기를 받았던 선수답게 닉네임도 굉장히 많은 편인데, 가장 잘 사용되는 HBK(Heart Break Kid, 현재 본명 만큼이나 많이 사용되는 말.)를 비롯해, 헤드 라이너, 아이콘, 메인이벤터, 미스터 레슬매니아, 섹시 보이, 쇼 스타퍼까지 많은 수식어들을 가진 선수다.

피니쉬 무브는 스윗 친 뮤직(Sweet Chin Music)이며[9] 보통 상대방을 다운 시킨뒤 시전한다. 다운된 상대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링 바닥을 발로 차서 리듬을 타다가 점점 빠르게 발을 차며, 상대방이 몸을 일으켜 이쪽을 돌아보면 턱에 하이앵글 옆차기를 먹이는 것. 기술 자체는 단순하지만 킥이지만 준비동작이 임팩트가 있으며, 예측할 수 없이 기습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을 가져 인기가 많은 피니셔. 킥을 시전할 때 '짝!' 하고 나는 작렬음은 사실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내는 소리. 태그 팀 락커스 시절부터 사용해왔지만 이때는 일반 기술로 타점이 안면이 아닌 가슴쪽이었다.

그 외에 자주 사용하는 기술로는 탑로프에서 시전되는 다이빙 엘보 드롭, 인버티드 아토믹 드롭, 티어드랍 수플렉스[10], 파일 드라이버, 락커 드랍, 러닝 엘보우, DDT 등이 있다.
이외에도 브렛 하트와 대립하던 시절엔 샤프슈터도 자주 썼고, 크리스 벤와 사후엔 크리플러 크로스 페이스도 간간히 사용하는가 하면 레슬매니아 같은 큰 무대에선 문설트[11]도 쓰는 편이었다.

2010년 3월 28일 레슬매니아 26에서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11일 RAW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등록되어 출연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양손잡이이다.

WWE 선수들이 꼽은 최고의 슈퍼스타 1위다. 라이벌인 브렛 하트가 4위, 스티브 오스틴이 3위, 언더테이커가 2위라는 것을 감안하면...이를 반영하듯 WWE 2K14에선 능력치 총합이 존 시나와 함께 최고 수치인 95점이다.

3 경기력

두말 하면 입아픈 WWE 역사상 최고의 경기력을 지닌 선수들 중 하나

하이 플라이어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에 훨훨 날아다니는 경기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거기에 온갖 오버 접수등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으며, 숀 본인이 WWE 기준으로 그다지 큰 덩치가 아니다보니[12]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하는 장점도 있었다. 여기에 숀의 미칠듯한 카리스마도 한 몫했다.

특히 부상 복귀 이후로는 정말 갖은 고초 끝에 끝내 경기를 뒤집어내는 언더독형의 경기 운영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숀 본인의 프로레슬러로선 작은 체구와 번개같은 일발역전기 스위트 친 뮤직, 그리고 링 안에서의 빼어난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0년대 숀의 경기를 보면 링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실감나는데, 사실 실제로 고통을 극심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숀 마이클스는 오랫동안 등 부상으로 고통받았는데, 링위에서도 고통을 참기 힘들어 심하게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온갖 고통을 감수해내며 레슬링을 한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 철인이라 부를만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거기에 브렛 하트가 말하기를 굉장히 안전하게 경기를 한다고 한다. 세스 롤린스와 비교하면서 숀과는 경기하면서 위험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고.

4 경력

숀 마이클스/경력

5 기타 잡다한 이야기

여담이지만 WWE에서 숀 마이클스와 함께 일했던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의하면 깔끔한 외모와 옷걸이에 비해 옷은 참 못 입는 편이라고 한다. 2002년에 처음 복귀한 이래 입은 경기복들도 대부분이 1990년대에 입었던 옷들을 그대로 입은 것. 은퇴한 이후 2013년에 들어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몰라볼 정도.점점 텍사스에 사는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가는 HBK 어느 정도냐 하면 제자인 대니얼 브라이언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

은퇴 이후에 사냥꾼으로 전업한 HBK?? 아무래도 은퇴 후에는 사냥 장비 쪽 일을 하는 모양이다.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선 트리플 H와 대니얼 브라이언에 관련된 스토리라인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얼마 전까지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던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대니얼 브라이언이 현재 WWE의 대세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줬다. 2010년 대니얼 브라이언이 링 아나운서의 목을 조르는 세그먼트가 PG 등급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데뷔하자마자 방출당하는 불운을 겪었는데 이에 HBK가 어느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이 WWE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WWE가 가장 싫어하는 단체에 출연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 이로 인해 WWE는 다시 브라이언을 WWE에 복직시켰다. 그의 발언이 없었다면 레슬매니아 30 메인이벤트 경기가 정말로 에볼루션 3인의 대결이 되어 망 PPV가 될 뻔했다.

브렛 하트와는 앙숙겸 라이벌이었지만 그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의외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당시엔 메인 이벤터는 오직 호건이나 워리어같은 근육질 선수들만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만연했는데, 브렛이나 숀이나 둘 다 이런 편견을 타파하려고 고생했던 것. 짐 로스 진행의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대담을 보면 브렛이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것이 희망을 줬느냐는 짐 로스의 말에 인터콘티넨탈로는 안된다. 브렛이 WWE 챔피언 정도는 돼야 우리가 인정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브렛은 이 대담에서 호건이나 워리어는 근육만 많고 로프 흔드는 것밖에 못하는 지루한 인물들이라고 깠다. 한마디로 같은 배를 탄 입장이었다가 나중에 사이가 갈라진 것. 아예 2015년 11월의 인터뷰에서 브렛 하트는 헐크 호건등의 덩치들이 빠져나간 뒤엔 당시엔 자신과 숀만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92년 둘이 처음 붙었을땐 숀이 싱글 경험이 적을때라 브렛에게 캐리 해달라고 부탁하는등 선후배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90년대의 숀 마이클스는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인물로 꼽힐 정도의 사고뭉치에 망나니였지만 개신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숀에게 가장 원한을 가졌던 브렛 하트가 결국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도 했으며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던 90년대의 숀과는 달리 후배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챔피언 각본을 거부하는 등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성의 발전뿐 아니라 경기력도 변함없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괜히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숀의 데뷔부터 첫번째 은퇴 시절과 복귀후 두번째 은퇴때의 별점들을 비교해서 어느 시절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나 비교한 사람이 있었는데 데뷔 직후부터 첫 은퇴까지가 불과 0.05점 높아서, 어느 시절이든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래도 두번째 시절이 더 대단한건 당시의 숀은 등부상 등으로 몸이 전같지 않았는데도 같은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거기다가 WWE에서 선정한 꼭 봐야되는 경기들 리스트를 보면 복귀 이후 시절 경기가 상위권에 더 많다.

사실 2001년도 쯤에 빈스에게 "브렛이 보고 싶다"며 그와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등 몬트리올 사건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기에 2010년도에 브렛과 화해한 것은 숀에게도 큰 안도감을 주었다. 브렛이 말하기를 자신과 화해하고 난 뒤에는 숀도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어서 자신도 편해졌다고 할 정도.

작은 덩치로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회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 부담감 때문에 백스테이지에서 온갖 사고를 쳤다는 것. 스트레스 받는 것은 이해해줄만 하나 그 행동이 문제였다. 레슬매니아 14 직전의 세그먼트를 보면 프로모하다가 날아온 배터리에 맞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링을 떠나는 행각을 보였으며 당시 그와 대립하던 스티브 오스틴이 "나에게 챔피언 자리 주고 도와준건 좋은데 이룰거 다 이룬 양반이 너무 이기적이다"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망나니적인 행동이 본성보단 스트레스로 인해 성격이 꼬인 덕분이었기 때문인지 종교로 그런 부분이 해소되고 나선 평판이 좋아졌다. 그레고리 헴즈 등은 숀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깠지만, 일단 링위에서 보인 행보만 봐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을 알수 있다.[13]

재능을 타고난 브록레스너가 WWE의 빡빡한 스케줄에 부담을 느껴 얼마 못버티다가 스스로 나간 것을 고려해보자. 80년대부터 지금까지 WWE를 책임지며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란 것만으로도 엄청 성실한 인물이란 것이다. 특히 90년대 후반 WCW가 급부상하며 헐크호건,워리어,마초맨 등 간판스타들이 대거 WCW로 이적하고 WWE가 2위단체로 전락하며 큰 위기를 보였을때도 WWE를 책임지며 당시 DX라는 악역으로 경기력은 물론 쇼맨십 등 최고의 퍼포먼스로 WWE가 다시 1위를 탈환하는데 1등공신인 셈이었으니 팩트만 놓고 봐도 원래 성실한 인물이었다.[14]

WWE에서 활동했던 자버 후나키와 의외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원래 후나키는 숀 마이클스를 우상으로 삼고 있었고, 쇼가 끝난 무대 뒤에서는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졌다. 후나키는 후에 NXT로 WWE에 데뷔한 이타미 히데오에게 트위터로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꼭 챙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아예 후나키는 자신의 우상과 가까운 곳에 살기위해서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숀 마이클스의 고향인 텍사스에 레슬링 도장을 차려 운영중이다.

인기가 한창 높았던 시기에 플레이걸에 이런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이 사진은 숀의 은퇴이후 잊혀지는가 싶더니 DX와 Rated RKO와의 세그먼트에서 다시 공개되었는데, 숀은 이때 일을 철없던 시절의 치기로 생각하고 있는듯. 사진이 공개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장 저 사진 치우지 못해! 내가 미쳤지, 저런걸 왜 찍어가지고 ㅠㅠ" 라며 절규했다. 후에 RAW 1000회 특집에서 DX 1,2 멤버들이 다시 뭉칠때 저 사진에 대해 언급되었다. 이때도 숀은 멍청한 짓이었다고 자조하면서도 "그래도 돈은 짭짤하게 받았어 ㅎ" 라고 해 큰 웃음을 주었다.

2017년 초에 개봉예정인 WWE 스튜디오의 기독교 영화인 '개빈 스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Gavin Stone)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6 통산 업적

챔피언 역임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회
AWA 남부 태그팀 챔피언 2회
TASW 텍사스 태그팀 챔피언 2회
T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챔피언 3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3회
WWF/E 월드 태그팀 챔피언 5회[15]
WWE 태그팀 챔피언 1회[16]
WWF 유로피언 챔피언 1회

WWF 로얄럼블 우승 -1995년-
WWF 로얄럼블 우승 -1996년-
트리플 크라운 달성
첫 그랜드 슬램 달성
PWI 선정 1995년도 인기 레슬러
PWI 선정 1996년도 인기 레슬러
PWI 선정 1993년의 경기 (vs 마티 자네티)
PWI 선정 1994년의 경기 (vs 레이저 라몬)
PWI 선정 1995년의 경기 (vs 디젤)
PWI 선정 1996년의 경기 (vs 브렛 하트)
PWI 선정 2004년의 경기 (vs 크리스 벤와 vs 트리플 H)
PWI 선정 2005년의 경기 (vs 커트 앵글)
PWI 선정 2006년의 경기 (vs 빈스 맥마흔)
PWI 선정 2007의 경기 (vs 존 시나)
PWI 선정 2008년의 경기 (vs 릭 플레어)
PWI 선정 2009년의 경기 (vs 언더테이커)

PWI 선정 2010년의 경기 (vs 언더테이커)
  1. 자서전에 의하면 어렸을 적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2. 참고.
  3. 재밌게도 애티튜드 시절을 함께 한 스티브 오스틴언더테이커도 텍사스 주 출신이다. 오스틴은 빅토리아, 언더테이커는 휴스턴 출신.
  4. 원래 이 곡의 노래는 솔로 독립때의 매니저인 센세이셔널 셰리가 불렀던 것이지만, 정말 못 불러서(...) 숀 마이클스가 직접 다시 불러 제작하였다. 센세이셔널 세리 버전의 원곡보다 훨씬 낫다 는 평을 받고 있다.궁금한 사람은 센세이셔널 셰리의 원곡 노래를 들어보자. 그리고 후에 커트앵글이 숀 마이클스와 대립했을때 셰리가 직접나와 다시 한번 불렀다..영상
  5. 또 다른 한 명은 브렛 하트. 이후, 스티브 오스틴의 가세로 WWE는 암흑기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6. 공식적으로는 레슬매니아 11에서의 래더 매치로 상대는 레이저 라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스캇 홀. 비공식적으로도 브렛 하트와의 래더 매치였기에 이러나 저러나 숀이 최초의 래더 매치 주인공인건 변하지 않는다.
  7. 숀 마이클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때 트리플 H는 "숀이 날아가지 않도록 차고 문을 닫아둬야했다"고 조크를 했었다. 실제로 숀과 브렛이 초창기 친해진건 덩치 큰 레슬러들에게 맞서는 동병상련 때문이었다.
  8. 멜쳐가 선정한 WWE에서 나온 별 5개 경기는 총 5개인데, 그 중 2개를 만들어냈다. 또다른 별 5개 경기 두개를 만든 WWE의 선수가 라이벌인 브렛 하트.
  9. 숀 마이클스의 조카인 맷 벤틀리 역시 '마이클 셰인'이란 링 네임으로 활동할 때 '스윗 셰인 뮤직'이라고 이름 붙인 슈퍼킥을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다.
  10. 사실 싱글 커리어 초기에는 이 기술을 피니쉬로 썼었다. 다만 별 임팩이 없는 기본기스런 기술이라 그런지 오래 못가 대신 준 피니쉬였던 슈퍼킥을 피니셔로 쓰기 시작했다.
  11. 숀 마이클스가 신인이던 시절엔 아직 문설트가 많이 보급화 되기 전이다 보니 구사 가능한 레슬러가 많지 않았는데 덕분에 신인시절의 숀은 문설트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배 레슬러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었다고 한다(...).
  12. 오죽하면 트리플 H가 차고 문 열면 숀이 날이간다고 농담을 할 정도
  13. 90년대 당시 멘탈이 안좋을때의 숀은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해주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복귀 후의 숀은 레슬매니아에서 커트 앵글의 앵클 락에 탭아웃을 한다거나 후배들에게 패배하고, 챔피언이 되는 각본을 거부하는등 이미 TV에서 보여준 것 만으로도 인성의 발전을 보였으니 그리 깔 건덕지가 없었다
  14. 다만 친구들이 있는 WCW로 가고 싶다고 몇번이나 빈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한 적은 있다. 언더와는 대조적으로 한때 WCW로 가려는 의지가 분명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빈스가 'WCW는 너 같은 선수들을 활용할 줄 모른다'고 인내심 있게 설득해서 이적의 위기를 넘겼다. 본인의 은퇴식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며 '날 잡아준 빈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으며, 실제로 WCW에서 제리코와 같은 크루저웨이트 선수나 브렛 하트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15. 이 중 1회는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
  16. 참고로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