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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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일부.

1 개요

한반도에서 고대부터 전해졌다고 알려진 일종의 힘겨루기스포츠다.

2 경기 방식

모래판이나 매트 위에서 샅바를 허리춤에 둘러맨 두 선수가 상대편의 샅바[1]를 잡고, 다리 기술이나 허리 기술 등으로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경기다. 발바닥을 제외한 상대의 신체 어느 부분이라도 땅에 닿으면 승부가 나기 때문에 무척이나 단순한 경기이긴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기술을 넘어 심리적인 부분 역시 크게 작용하는 운동이다.

레슬링과 유도처럼 손싸움이나 깃싸움이 없고, 상대방을 미리 잡고 경기를 시작하는 탓에 일각에서는 힘 싸움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붙잡은 상황에서 테이크 다운 공방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접전상황에서 유도레슬링은 크게 붙잡히지 않으면서 점수를 따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지만, 맞붙잡고 경기를 치루는 씨름의 규칙때문에 씨름선수들은 균형감각이 매우 좋은편이다. 실제로 중심을 잡기 어려운 모래판에서, 샅바로 상대방의 손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버티고 반격하는 것은 기술과 균형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그저 그런 국가로 있던 시절, 우리나라 유도 선수들이 씨름을 배워서 벨트라인을 잡는 씨름기술을 유도에서 쓰기도 했으며, 상대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대응하지 못하여 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2] 일본 사람들이 이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고전 유도소녀만화 《야와라》에서도 언급이 된다.

다만, 한국씨름선수들이 다른 종목에 진출했을 때, 맞붙잡힌 상황에서 테이크 다운 공방 능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가늠하는데에 취약하여 스탠딩 상황에서 매우 취약했다.

2.1 씨름 기술

2.1.1 샅바 잡기

샅바 잡기는 샅바의 고리부분이 걸린 다리나 샅바를 잡는 팔이 상대의 팔보다 위에 있는 경우에 따라, 보통 왼샅바, 오른샅바, 양샅바로 나뉜다. 체계화된 공식경기에서는 왼샅바가 정식이지만, 지역별로는 각기 다르다. 한국의 경우에는 앉아서 샅바를 잡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한국 프로 씨름의 더잡기 때처럼 서서 샅바를 잡는것이 보통이다.

2.1.2 다리 기술

다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걸고넘어지는 기술이로 주로 유도의 다리 기술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게 특징이다.

  • 안다리 걸기 - 씨름에서, 자신의 오른쪽 다리로 상대편의 왼쪽 다리를 걸어 샅바를 당기며 상대편의 상체를 자기의 가슴과 어깨로 밀어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비슷한 말로는 안걸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Inside Hook이라고 한다.
  • 밭다리 걸기 - 씨름에서, 상대편의 오른쪽 다리가 앞으로 나와 있거나 몸무게 중심이 오른쪽에 있을 때, 자신의 오른쪽 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다리를 걸어 넘기는 기술로 비슷한 말로는 바깥다리 걸기 혹은 밭걸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Outside Hook.
  • 밭다리 후리기 - 밭다리걸기기술과 비슷한 동작에서 상대를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면서 공격자의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아 후리치는 모양으로 다리를 감아올리면서 넘어뜨린다.
  • 밭다리 감아 돌리기 - 밭다리걸기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재빨리 오른쪽 어깨를 빼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감겨 있는 오른다리를 올리면서 감아돌린다. 영어로는 Outer leg Winding and turning
  • 오금걸이 - 맞배지기 싸움에서 힘씨름이 되었을 때 상대의 오른쪽 오금을 안쪽으로 걸어 밀어젖혀 넘어뜨린다.
  • 호미걸이 - 상대방을 앞으로 당겨 들어 올렸을 때, 상대방의 오른쪽 발목이 자기의 양 다리 사이에 들어왔을 때, 자기의 왼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오른쪽 발뒤꿈치 목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발목을 걸어 당기며 뒤로 넘어뜨린다.
  • 낚시걸이 - 두 선수가 맞배지기로 샅바를 당겨 상체가 붙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공격수가 오른무릎을 밖으로 굽히면서 발목을 상대의 오른발 바깥 발목에 걸어서 낚아 젖혀 넘어뜨린다.
  • 뒷발목걸이 - 상대가 왼다리자세일 때 오른쪽 다리 발목으로 상대의 왼발 발목을 바깥으로 걸어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 뒤축 걸어 밀기 - 상대를 들어올리지 않고 서 있는 자세에서 오른쪽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뒤로 넘어뜨린다.
  • 발목 걸어 틀기 - 샅바를 단단히 잡고 공격자의 오른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발목을 안으로 걸어 왼쪽으로 틀어 젖혀서 상대를 넘어뜨린다.
  • 앞다리 차기 - 바른 기본자세에서 앞으로 나와 있는 상대의 오른다리 발목을 발바닥으로 오른편에서 왼편 앞으로 차서 낚아채 넘어뜨린다.
  • 모둠 앞무릎 차기 - 상대편의 오른쪽 무릎과 발목의 안쪽을 손과 발목으로 동시에 쳐서 앞으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 무릎 대어 돌리기 - 상대편의 왼쪽 무릎에 오른쪽 발을 딛고 버티어 옆으로 돌리면서 던지는 기술이다.
  • 연장걸이 - 오른 다리로 상대편의 오른 다리를 밖으로 꼬아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2.1.3 허리 기술

상대의 허리춤을 강하게 잡아 허리힘으로 상대를 메치는 기술이다.

  • 배지기 - 씨름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공격재간의 하나이다. 바른 자세에서 왼쪽 아래 복부와 왼허리로서 상대를 들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상대의 몸안으로 들어가면서 발은 뒤꿈치를 들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던진다.
  • 오른 배지기 -바깥샅바잡기 또는 왼어깨자세가 되었을 경우에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상대의 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배를 공격하여 던진다.
  • 맞배지기 -서로가 샅바를 단단히 휘어잡고 일어나자마자 몸의 중심을 낮추고 무릎을 굽혀 상대를 정면으로 맞대어 끌어붙여서 뽑아 던진다.
  • 엉덩배지기 - 바른 기본자세에서 공격자가 어깨로 상대를 미는 순간 오른편으로 공격자의 몸을 크게 회전시켜 엉덩이를 상대의 배 깊숙이 돌려대어 힘차게 당기면서 상대를 돌려 던진다. 여자 선수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기술로 알려져있다.
  • 돌림배지기 - 두 선수가 기본자세로 맞잡은 상태에서 팔과 몸의 힘의 중심을 차츰 오른편 위로 올리는 ‘나선형’회전을 취하면서 상대를 배지기 형태로 돌려 던진다.
  • 들배지기 - 샅바를 단단히 잡아 무릎을 굽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약간 앞뒤로 붙여서 상대를 무릎 위까지 높이 들어올려 배지기기술로 연결시켜 던진다. 이 기술로 유명한 선수는 바로 국민MC 강호동.
  • 들어 놓기 - 상대를 무릎 위 또는 가슴 부근까지 들어올려 몸에다 바싹 붙여 허리를 당겨 조이면서 그대로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게 하고 힘을 가하여 온몸으로 누른다.
  • 들안아놓기 - 양 무릎을 굽히면서 상대의 왼편무릎을 안다리 오금 안쪽으로 당겨서 상대를 무릎 위에 높이 들어올리면서 띠를 놓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두 다리를 오금을 감는 듯 짚으면서 윗몸으로 밀어붙인다.
  • 돌려 뿌리기 - 돌려뿌리치기라고도 하는 기술로 두 선수가 무릎을 맞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돌면서 그 탄력과 회전속도에 의하여 상대를 떨어뜨린다.
  • 공중던지기 - 어깨를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빼면서 뒷무릎을 굽혀 약간 앞으로 나오는 동시에 상대를 비껴 앞 위로 당기며 온몸의 힘을 위로 솟구쳐 올리면서 고리와 띠를 잡은 손과 팔을 크게 왼편 위로 올려서 상대를 몸에 붙이지 않고 던진다.
  • 허리 꺾기 - 상대를 끌어당겨 허리띠를 깊숙이 잡고 고리를 잡은 손과 같이 손목을 안으로 굽히면서 허리를 꺾어 당긴다.
  • 밀어 던지기 - 바른 자세에서 뒷무릎을 약간 굽혀서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어졌을 때 샅바를 당기면서 밀어붙인다. 이 기술을 시전한 선수는 윤정수 장사이며 당한 사람은 214kg 거구 김상중 장사.
  • 차 돌리기 -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상대의 뒷발목 및 다리를 옆으로 후려차며 돌려 던진다.

2.1.4 혼합 기술

  • 무릎대어돌리기 -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발바닥으로 상대편 왼다리 바깥무릎에 대어 오른쪽으로 돌려 던진다.
  • 등채기 - 허리띠를 잡고 있는 오른편 손이 상대의 어깨너머로 띠를 잡아서 앞으로 힘껏 잡아당기면서 던진다.
  • 등쳐감아돌리기 -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바깥 오금을 감는 동시에 등띠를 잡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왼편으로 중심회전을 하되 감겨 있는 다리를 위로 올리면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크게 회전한다.
  • 등쳐감아젖히기 - 등띠를 잡은 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고 등쳐감아돌리기의 기술과 반대로 몸을 뒤로 당겨 젖힌다.
  • 연장걸이 - 바른기본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꼬아 감아서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중심이동하여 돌며 감아 던진다.
  • 잡채기 - 기본자세에서 순간적 순발력으로 힘껏 샅바를 당겨 오른쪽 허리를 상대의 허리 및 몸에 붙이는 동시에 상대의 허리를 꺾는듯 젖혀 던진다. 스타킹에서 최홍만이 커티스 존슨에게 시전해 이긴 기술이 이것이다.
  • 애목잡채기 - 허리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목을 감아 잡채기 기술요령에 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하여 던진다.
  • 들어잡채기 -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넣고 상대방을 가슴 가까이 당겨 든 자세에서 왼쪽으로 젖혀 넘어뜨린다.
  • 옆채기 - 바깥잡기에서 고리를 잡은 왼손을 놓고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깊숙이 넣고 허리샅바를 당기면서 옆으로 채올려 넘어뜨린다.
  • 업어던지기 - 상대의 허리샅바를 놓고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오른허리를 상대의 허리부분에 밀착시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대를 업어서 던진다.
  • 어깨넘어던지기 - 겹쳐잡기 상태에서 상대편 몸 안에 있던 선수가 뒤로 뒤집는 자세로써 상대를 어깨너머로 던진다.
  • 자반뒤지기(뒤집기) - 뒤집기는 기술씨름의 최고 난이도의 기술로, 경량급 선수들이 이따금 보여주는 기술로 유명하다. 기본자세에서 장기전 상태로 돌입하여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등띠를 잡고 위에서 등을 누를 때 상대편 몸 아래 있는 선수가 뒤집어 젖힌다.
  • 샅들어치기 - 겹쳐잡은 상태에서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가서 머리와 목으로 흔들어 중심을 잃게 하여 뒤로 넘어뜨린다.
  • 꼭뒤집기 - 상대의 바깥다리를 피하면서 뒷덜미를 손으로 누르고 왼쪽 다리 고리의 손을 틀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넘어뜨린다.
  • 밀어치기(앞으로 누르기) - 항목 참조.
  • 빗장걸이 - 상대편의 안다리걸기가 성립되었을 때 상대편의 다리를 사타구니로 죄어 붙여 발목으로 상대편의 왼 다리 오금을 걸어 왼쪽으로 넘기는 기술이다.
  • 무릎 틀기 - 기본자세에서 맞배지기 형태로 쌍방 무릎이 굽은 상태에서 쌍방이 오른쪽 부분이 맞닿아 있을 때 상대의 옆무릎을 붙여 왼편으로 틀어젖힌다.
  • 덧걸이 - 상대방이 자기를 들려고 자세를 위로 세웠을 때, 왼쪽 다리 샅바와 허리 샅바를 앞으로 당기고, 상대방의 왼쪽 다리를 자기의 오른쪽 다리로 밖에서 안으로 걸어 당기며, 가슴으로 밀어 상대자의 허리를 뒤로 젖혀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2.1.5 반격 기술

상대가 공격을 할 때 반격을 하는 기술이다.

  • 되치기

3 역사

3.1 현대 이전

고구려 시대의 고분 중 씨름도 벽화에서 알 수 있듯, 그 역사가 유구한 놀이이자 스포츠다. 한국의 전통 무술이라 할만한 것들 중에서도 특히 투기 중에서는 태껸과 함께 그나마 씨름 정도가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수박이나 격구 같은 무술이 성행했지만, 조선시대는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고 문치주의가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무술을 천한 것으로 보는 풍조가 생겼고, 단체로 무술을 수련하는 것을 반역과 같은 것으로 보게 되어 전통 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기게 된다. 그러나 씨름이나 택견은 둘 다 무술이라기보단 일종의 놀이, 즉 스포츠의 개념이 매우 강해서, 조선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일제시대까지 버텨냈기 때문이다.[3] 현대에 와선 무협영화격투기붐 덕분에 무술이란 게 1대1의 격투술인 형태로 인식하지만, 과거에 무술이라 하면, 전쟁을 비롯한 다수 대 다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무기술 위주에 맨몸격투가 보조[4]인 형태였다. 애초에 복싱이든 레슬링이든 종합격투기 건 간에, 현대식 격투 스포츠는 모두 일정한 '규칙' 하에서 진행되는 놀이이다. 규정이라는 것은 결국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전성을 어느 정도 희생한 것이다. 정말로 실전이 벌어진다면, 규칙? 그런 거 없다. 맨손이라도 다구리는 기본에, 과거 농경사회엔 당장 무기가 될 만한 낫, 스랑, 괭이 등 농기구이긴 해도, 사람에게 쓰면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기구들이 지천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맨손 격투를 연마해 실전에서 사용한다는 건 엄청난 비효율 이었다. 하다못해 호미 하나만 들고 있어도 맨손보단 엄청나게 유리하다. 날붙이 등을 든 상대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건 영화나 소설, 게임에서나 쉬워 보이지, 실제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무모한 일에 가깝다.

조선은 동 시대의 국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정부와 세밀한 지방통제가 가능했던 국가이다.[5]. 그렇기 때문에 무슨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어디 으슥한 곳에서 비기가 전해지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고, 씨름과 태껸도 음지에서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형태가 아닌, 양지에서 당당하게 스포츠로 자리잡는 것을 택했다. 오히려 스포츠화는 현대의 격투기가 지향하는 방향이며, 스포츠가 아닌 비밀스러운 살인술로서의 격투기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사회가 혼란하다는 증거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놀이 취급이었던 저런 것들을 포함, 석전이나 국궁 이외에 단체로 모여서 무술을 수련하는 행위 자체가 반역 도모 등으로 취급되어, 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한다(대표적인 예로 검계). 거기다 일제시대에도 탄압이 심했으니, 중국과는 달리 한참 전에 명맥이 끊겨, '산속에 올라갔더니 무술 고수가…!'라는 것은 한국에선 99%가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 정도 진짜가 있긴 하겠지만, 그런 이들은 그들 나름의 수련을 할 뿐이었다.

어쨌든 몸을 이용하여 승부를 내는 놀이이자 누구든지 즐길 수 있던 놀이였고, 동네마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상품을 걸고 천하장사를 뽑는 대회도 열었을 정도였으니, 상기한 현대 스포츠로의 발전에도 부합되는 등, 그 오랜 명맥을 자랑하는 스포츠이다.

3.2 현대의 씨름

해방 후에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오다가, 1980년대에 이만기라는 엄청난 스타가 씨름계의 제왕이 되면서[6]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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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인기는 오직 프로야구만이 경쟁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천하장사 결승전을 할 때는 길거리가 텅텅 비었다고 한다.

씨름이 프로화 되기 이전인 1950~60년대에는, 명절 때 지역마다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을 돌면서 소를 타가는 반(半)직업적인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동네 단위로 씨름대회도 있었다. 특히, 큰 동네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다 하면, 힘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출전했다. 상품으로 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실 고려 시대 때는 삼베가 상품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차등을 줘서 상품을 줬다고 한다.[7] 무조건 소를 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상품 대신 상금을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라고 전해진다.

이만기가 국민 천하장사가 되어 1980년대를 호령하면서 폭발했던 국민적인 인기는 훗날 강호동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만기와 라이벌로 활약한 199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급격히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여자씨름의 경우 해방 전까지 명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해방 전후인 1940~50년대에 영남 일부지역에서 간헐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1970년대에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정식으로 여자씨름대회[8]를 개최하면서 최초의 전국규모 대회가 되었고, 1991년부터 대통령배 대회가 개최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3.3 프로씨름의 몰락

프로씨름이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몰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만기 식의 키가 작고 덩치가 작은 선수들이, 현란한 속도와 몸놀림으로 큰 덩치에게 기술을 거는 화려한 씨름이 점점 쇠퇴하고, 덩치로 승부하는 빅맨들[9]의 게임이 씨름의 주류가 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게 중론(衆論).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를 화려한 콤보 기술로 내다꽂던 이만기, 이준희, 고경철,강호동 등의 기술씨름에서, 샅바 잡고 주구장창 밀고 당기기만 하다가 끝나는[10] 지루한 씨름이 대세가 되니,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거기에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미남 신사 이만기, 그리고 이만기의 라이벌로서 당돌하고 건방진 악동 캐릭터로 인기 있었던 강호동의 은퇴 후에, 씨름계를 이끌 대형스타를 만들지 못한 것도 씨름이 쇠퇴한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 '제2의 강호동'으로 불린 백승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등이 1990년대 중후반 씨름판의 인기스타로 군림하기도 했었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이 호령하던 그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여러 유망주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1990년대 내내 씨름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면서, 대회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 외환위기 크리까지 겹쳐 한두 개씩 팀이 해체되고, 공중파 TV 중계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씨름연맹은 대책은커녕 미봉책조차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하여 K-1에서 성공하고, 이태현, 김영현 등도 씨름판을 떠나 이종격투기로 옮긴 일은 씨름판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어떻게든 씨름 인기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만기를 씨름연맹은 시끄럽다고 영구제명해버렸다. 이것은 씨름연맹의 가장 큰 삽질로 평가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로, 씨름이 이 정도까지 몰락하게 된 배경으로는, 씨름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도 무사안일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하여 프로씨름을 망하게 만들다시피 한 한국씨름연맹이 있다. 대한빙상연맹, KESPA, 한국성우협회 등 일 못한다고 욕먹는 협회야 많긴 하지만, 그래도 판 자체를 부숴버릴 수준으로 일을 개판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예 리그 자체를 망하게 할 정도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협회는, 한국 역사상 한국씨름연맹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악의 근원이 되어 전설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인기 있는 스포츠라도, 스타의 부재와 무능한 협회의 이중고가 작렬하면 리그가 망한다는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처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10팀이 넘어가던 프로팀은 최홍만이 속해있던 LG투자증권이 해체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고,[11]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현대중공업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운영권을 넘기고 실업팀으로 전환했다. 현재는 각 지역 실업팀들 위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로 옮긴 전직 씨름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은퇴하거나 씨름계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

3.4 씨름계 내홍의 소용돌이 이후

씨름의 침체기 이후로 1980년대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천하장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늘어났다.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광고모델은 물론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던 이만기강호동이나 최홍만까지는 지금도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는 편이나, 요즘에는 천하장사가 탄생하거나 배출되어도,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씨름이 심하게 침체되고 쇠락한 것이다. 과연 이들의 대를 이을 유명한 천하장사는 없는가? 그래도 설날추석 연휴가 되면, KBS 1TV에서 14~17시 시간대에 꾸준히 편성을 해주니, 중계조차 끊어진 다른 종목들에 비하면 민속 종목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는 편이다.[12]

그나마 예전에 살덩이들이 시간만 질질 끄는 지루한 경기 패턴을 버리고, 경기의 재미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선수들도 예전 같이 나이 많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들로 바뀌었고,[13]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 이 때문에 눈요기 삼아 씨름을 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근육질 남자들이 트렁크만 입고 샅바만 두르고 나오니까. 게다가 둘이 밀착해서 격렬하게 움직인다. 시합 자체도 꽤나 빠르고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명절 때 TV에서 시합을 하면, 구경삼아 한두 번 정도는 보길 권장. 일단 선수들 체격도 뭔가 운동선수답게 바뀌었고, 예전보다 기술씨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략적인 측면도 보강되는 듯.

일부에서는 씨름을 일본스모 등과 같이 세계적인 스포츠로 육성, 발전시켜, 한식이나 K-POP 못지않은 또 하나의 한류문화 및 스포츠로 정착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2008년에 대한씨름협회가 주도하여 세계씨름연맹이 발족,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씨름의 세계화에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몽골부흐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씨름선수로 등록하여 대회에 나오기도 하고, 국제교류전을 가져 각지의 민속씨름, 전통씨름과 레슬링등과 교류를 맺고 친선경기와 교류경기를 가지기도 한다. 2014년에는 터키, 스페인, 스위스, 몽골 등 각지의 전통씨름선수들을 초청하여 각개의 룰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4 경기 주관 단체와 씨름단

4.1 씨름협회의 변천사

씨름의 주관 단체로는 현재 통합씨름협회가 유일하다. 과거 민속씨름(프로)과 아마씨름이 분리됐을 때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연맹 두 단체가 나뉜 적이 있고 여자 씨름의 경우는 국민생활체육회 전국씨름연합회가 주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씨름협회는 프로씨름의 폭망 때문에 결국 유명무실해졌고 대한씨름협회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고 국민생활체육회 전국씨름연합회도 결국 대한씨름협회와 통합해 통합 대한씨름협회가 유일한 주관 단체다.

대한씨름협회는 1927년에 창립한 씨름계의 대표 조직으로, 현재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이다. 주로 초/중/고/대학부 아마추어 씨름을 관리한다. 재밌는 것은 이 협회 초대 회장이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이시다. 몽양 선생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스포츠광이신 듯. 오오.

그리고 1983년 프로씨름이 출범하면서 탄생한 민속씨름위원회가 훗날 이름을 바꾼 게 한국씨름연맹이다. 즉 대한씨름협회와는 별도로, 프로씨름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대한야구협회와 KBO의 관계로 보면 된다. 이만기를 제명하는 등 온갖 벙크를 저지른 건 한국씨름연맹이다. 하지만 씨름계의 무능과 정치적인 내홍으로 프로 씨름단이 모두 해체되고, 한국씨름연맹만 남게 되자, 이만기는 독자적인 프로씨름 조직 창설을 준비하기에 이르고, 이에 씨름연맹이 발끈해서 이만기를 제명했는데, 그 이후 조직은 공중 분해되면서 연맹의 공금은 증발됐다.(…)

결국 프로팀이 모두 해체되면서, 한국씨름연맹은 대한씨름협회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이후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인 대한씨름협회 쪽에서 실업팀을 중심으로 부흥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씨름협회가 일을 잘한다는 건 절대 아니고. 다만 한쪽이 너무 막장이다 보니, 그나마 심한 삽질이 별로 없는 쪽이 상대적으로 더 괜찮아 보이는 효과랄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대한씨름협회도 국민생활체육회 가맹단체인 전국씨름연합회와 통합에 합의해 통합씨름협회로 새롭게 출범했고 2016년 5월 첫 이사회를 열었다. 2016년 추석장사씨름대회부터는 통합씨름협회가 모든 전국단위 대회를 주최한다.

해외의 경우에는 미국 뉴욕에 뉴욕씨름협회가 있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233 cm의 거구 커티스 존슨과 그의 라이벌인 잭슨 하비도 뉴욕씨름협회 소속의 선수이다.

4.2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씨름단

4.2.1 한국씨름연맹에 등록됐던 프로씨름단

민속씨름 전성기를 함께 했던 팀들이 많다. 민속씨름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후반의 팀으로는 일양약품, 럭키금성, 현대, 삼익가구 등이며 1990년대 중반에 창단된 청구 씨름단이 강호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각 기업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씨름단 운영을 포기하면서 수많은 팀들이 사라졌고 결국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 씨름단을 빼고는 모조리 해체되는 비운을 맞는다. 홀로 남은 현대삼호중공업도 2016년 연말까지만 팀을 운영하고 선수단 전원을 새로 창단하는 영암군청 씨름단에 인계한다. #

4.2.2 현재 통합씨름협회에 등록된 씨름단

대부분 지자체 산하의 실업팀들이다. 세미프로의 형태를 띄고 있는 팀은 현대 씨름단이 사실상 유일하다.

5 체급

씨름/체급 문서 참고

6 외국인 씨름

외국인의 경우 선수들의 국적 상관없이 남성/여성으로 따로 구분하나 사실상 체급 구분은 없다. 외국인도 남자 프로부와 마찬가지로 결승전은 5판 3선승제를 취한다. 여성 외국인의 경우에는 한국 여자부들과 같이 통합하여 진행한다. 즉 여자 외국인들도 여자부에 참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참고로 외국인의 경우에는 신장 제한이 없다.

6.1 현역 외국인 씨름선수 명단

  • 몽골
    • 산자담바
    • 우스키바야르
    • 바양뭉흥
    • 어뜨레겔
  • 스페인 - 비슷한 경기인 루차카나리아의 선수들이 한국에서 현역 외국인 선수로도 활동한다.
    • 엘리세르 구띠에레스 페레스[23]
    • 마르코스 페레스[24]
    • 웬디(여성)
    • 마티야(여성)[25]
    • 모니카
    • 레데스마 페레즈
    • 루이스 산주안
    • 알바노 데니스 크루즈[26]
  • 미국 - 미국의 경우 뉴욕에 씨름협회가 있다. 뉴욕씨름협회라는 명칭으로 씨름 협회가 존재하며, 김일태 회장이 협회장으로 있다. 아래 선수들은 뉴욕 씨름협회에 등록된 선수들.
    • 커티스 존슨[27]
    • 잭슨 하비[28]
    • 알프레도 그리니은
    • 무스 베네토
    • 조셉 고
    • 한영덕
  • 중국 - 조선족들이 한국의 씨름을 실제로 하고 있다.
    • 김해권
    • 리흥철
    • 류례

6.2 세계 속의 씨름

좀 우려되는 게, 이젠 중국에서 조선족이 한다고 이것까지도 중국 스포츠라고 들먹이는 자들이 있다. 우리네 환빠와 달리, 유네스코에 이걸 중국 것이라고 등록하고 해외에 소개하니 더 문제인데, 이미 내몽골을 두고 부흐(몽골 씨름)까지도 이랬다가, 몽골에서도 엄청나게 반발한 바 있다.

단, 씨름을 중국 조선족의 민속으로서 소개하는 건 문제가 없다. 중국 기원이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현재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풍습이란 점은 분명 사실이니까. 문화와 풍습의 경계는 국경과 동일하지 않다. 때문에 압록강-두만강 너머의 중국 땅에서도 씨름이 그 지역의 풍습이 된 것이고, 중국과 상당히 떨어진 한국 강원도에서 '단오제'의 풍습이 내려오는 것. 단오제가 단오절의 한국 현지화이듯, 중국 조선족의 씨름 역시 우리문화의 중국 현지화 사례이다. 사실 'XX이 우리 것을 자기들 것이라 우긴다'는 주장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오해가 많다.

한편, K-1에서 성공을 한 최홍만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연예인들이 씨름을 한국 스모라고 이야기하는 동영상들이 알려진 적도 있다. 사실 많은 경우,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슷한 운동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건 흔한 예이다. 영어권의 경우, 씨름이나 부흐, 스모의 경우, 처음엔 그냥 앞에 나라 이름을 붙여서 XXX레슬링 정도로 표현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엔 스모를 설명할 땐 일본 씨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엔 스모가 인지도가 높아 일본 씨름이라고 잘 안하지만, 같은 예로 몽골 씨름 또한 부흐라는 이름이 있는데, 한국에선 부흐라고 해봐야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몽골 씨름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또한 모로코 옆에 위치한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도 한국의 씨름과 거의 비슷한 루차 카나리아(la Lucha Canaria)[29]라는 힘겨루기 경기가 존재하나, 영어로 로컬라이징하면서 Canarian Wrestling이 돼버렸다. 다만 우습게도 한국 측은 씨름이란 말을 영어로 코리아 레슬링이라고 병크같은 표기를 하다가, 욕 처먹고 취소한 적까지 있다. 현재는 주로 SsiRum으로 표기한다.

스위스에서도 한국 씨름과 비슷한 슈빙겐이 있다. 한국 씨름과 동일하게 모래판에서 경기가 치뤄지며 샅바 대신 경기용 반바지를 착용한다. 샅바와 잡는 위치가 비슷하다.

7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

최상위급 대회는 연맹이 무너지고 흥행도 망해서 예전보다 인기가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각 학교나 각종 단체의 체육대회 종목으로 꼭 껴 있다. 방송 등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스포츠 아이템. 예전에는 남성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들도 씨름을 직접 즐기는 사람도 꽤 있다. 아예 여성 씨름대회가 생활체육으로 활성화 돼 있기도 하다. 심지어 지상파에서 해주는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씨름대회에도 여성부가 있다.

다른 격투종목과는 달리, 폭력성이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TV 프로그램에서 대항전 아이템으로 쓰기 좋다. 정규 예능에서도 한 꼭지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히 명절 특선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씨름대회가 거의 100% 편성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괴력을 부인하려는 모 소녀장사의 주종목이기도 하다. 응?### 그러니까 아육대에서 씨름 종목 도입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2015년 추석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씨름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한 지는 씨름도 있으며, 여기선 자신의 신체가 먼저 땅에 닿아야 하고, 상대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하면 나름 긴장감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30]

이만기가 한국씨름연맹의 공중분해 사태 후, "그래도 씨름은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다시 씨름이 인기를 얻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즐기는 의미의 씨름,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의 위치는 지금도 확고하다.

8 나무위키에 등록된 전/현직 씨름선수 혹은 씨름선수 출신 인물들

추가 바람

  1. 청샅바와 홍샅바가 공식 규정이다. 여기에 군부대의 경우에는 국방색 샅바가 등장하기도 한다.(1박 2일 시즌 1 백령도 편에서 확인된다.)
  2. 부흐를 익힌 몽골 유도선수들도 간혹 유도경기에서 부흐기술을 쓰기도 한다. 특히 벨트를 붙잡고 매치는 기술
  3. 다만 태껸은 사실상 사멸 직전 단계까지 갔었다.
  4. 잘 쳐줘봐야 보조지, 그냥 준비운동 비슷한 정도였다.
  5. 중국은 굉장히 정교하고 선진적인 국가구조를 가지긴 했으나, 아시다시피 워낙에 국가 자체가 크고 아름다운 규모라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안습이었다. 사실 그나마도 대부분의 중국 권법들은 명말청초나 일제침략시기 같은 혼란기에 체계화되어 정립되었다.
  6. 사실 프로씨름 첫 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천하장사 우승후보로 예상되던 선수는 그 직전까지 아마씨름대회 정상을 달리던 이준희, 홍현욱 등이었고, 그 전까지는 무명의 대학생 선수일 뿐이었던 이만기는, 자신의 체급이었던 제1회 한라장사 대회에서는 2위에 그쳤다. 그러나 체급 구별 없이 치러진 천하장사 대회에서, 이만기는 제1회 백두장사를 차지한 우승후보 이준희를 준결승에서 꺾고, 그 여세를 몰아 첫 번째 천하장사까지 차지하며,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스타'가 되었다.
  7. 다만 어떤 상품인지는 문헌에 없다.
  8. 이 대회는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여자씨름에서 권위있는 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9. 프로씨름 초기에는 체중 무제한인 백두급 선수라고 해도 120~130kg 정도가 최고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박광덕, 김정필, 김영현 등의 150kg대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이 점점 단조로워지는 경향을 띠었다. 심지어 200kg가 넘는 씨름선수가 등장하기도 했으니 말 다한 셈. 이런 빅맨들 중에서도 박광덕이 람바다를 추고, 최홍만이 테크노를 추는 등 쇼맨십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
  10. 무승부가 되면 양 선수의 몸무게를 달아서 가벼운 쪽이 이기는 계체량 승패제를 실시했다.
  11. 이때 최홍만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몇 달간 농성까지 했지만, 해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인기가 바닥이라 홍보효과가 전혀 없는데, 대기업이 큰 돈 들여서 운영할리가 있겠는가.
  12. 2000년대까지는 전국노래자랑과 연계해, 설/추석노래자랑을 씨름이 열리는 체육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13. 2003년부터 무제한급에도 체중제한을 도입했다. 그 이전엔 백두급 선수들 대부분이 130~150Kg의 육중한 비곗덩어리들이었다.
  14. 민속씨름 전성기 당시 현대, LG,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하던 팀. 강호동의 현역 전성기 시절 소속팀이었다. 1980년대 후반 아진탈 포르테 등 일양약품 제품 CF에 강호동이 출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15. 민속씨름 전성기 당시 현대, 일양약품,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하던 팀. 프로씨름 최후의 팀이기도 했다. 대대로 키가 큰 선수들이 많았는데 이봉걸, 김영현, 최홍만 등이 이 팀의 선수였다. '들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경수도 이 팀에서 뛰었다.
  16. 민속씨름 초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유일의 팀. 창단 당시 오너인 정주영 당시 회장이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현장에서 직관할 정도로 열혈 씨름팬이었다. 현대는 민속씨름 전성기 당시 LG, 일양약품,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하던 팀이었다. 2005년 1월부터 팀의 운영권이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이관됐다. 이만기의 현역 시절 소속팀이었다.
  17. '불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강호 황대웅의 소속팀이었다. 삼익가구 측이 1995년 1월 씨름단을 건설업체였던 세경진흥에 매각했으나 훗날 세경진흥도 회사 경영난을 이유로 팀을 해체한다.
  18. 부산지역 최대 상호신용금고였던 조흥금고가 운영했던 팀. 강호동이 일양약품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뛰었던 프로 최초 입단팀이었다.
  19. 대구지역을 연고로 한 건설업체 ㈜청구가 운영했던 팀. 이태현과 백승일 등 당대 최고의 소년장사들을 필두로 창단했던 팀. 1990년대 중반 최강의 면모를 구축했으나 경영난을 이유로 팀을 해체한다.
  20. 진로 씨름단이 1999년 경영난을 이유로 해체를 선언한 뒤 부산 연고 금융기업이던 삼익파이낸스가 씨름단을 창단해 진로 씨름단 선수들을 인수했으나 이 팀도 얼마 못 가 해체됐다.
  21. 현대 코끼리, LG투자증권 황소와 더불어 프로씨름 최후의 3팀이었다.
  22. 1984년에 창단된 프로씨름단의 법통을 이어가면서 실업 씨름단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3. 초대 외국인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외국인이다.
  24. 루차카나리아 선수로도 활동중이다.
  25. 2014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여자부 4강까지 올라갔다.
  26. 2013/2014 세계특별장사씨름대회 2연속 천하장사를 지냈다.
  27. 흑인 장신으로 220cm(한국 활동시 233cm)의 거구. 초대 뉴욕 천하장사를 지냈으며 스타킹에 출연해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에게 잡채기로 패배한 적 있으며, 한국에서는 미국 선수들을 전담으로 하는 김진수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뉴욕 씨름협회 회장인 김일태 회장의 지도를 받는다. 미국에서 은행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씨름 연마를 위해서 직장을 옮겼다고 전해진다. 들배지기와 밀어치기를 주특기로 하고 있으며, 안다리 기술에는 약점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라이벌 급 선수로는 한국의 안태민과 같은 미국인인 잭슨 하비가 있다.
  28. 여자친구 아버지 덕분에 씨름에 입문. 커티스 존슨의 라이벌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커티스 존슨과 마찬가지로 뉴욕 씨름협회 회장인 김일태 회장의 지도를 받는다.
  29. 샅바가 없다는 점을 빼면, 거의 똑같은 수준이다. 실제 1990년대 초반에 루차 카나리아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 쪽 씨름 선수들과 친선 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당장 용병으로 뛰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스페인 선수들 말로는 샅바가 있으니 더 편하다고.
  30. 그리고 실제로 씨름장사들의 훈련 방식 가운데 하나. 대단한 도전에서 최홍만이 알려줬다. 그렇게 해서 밸런스 패치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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