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타이탄스

American Football Conference
남부지구 소속 구단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Indianapolis Colts)
잭슨빌 재규어스
(Jacksonville Jaguars)
테네시 타이탄스
(Tennessee Titans)
휴스턴 텍산스
(Houston Tex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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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워드마크
테네시 타이탄스
Tennessee Titans
창단1960년(AFL 창립멤버)
NFL가입1970년(AFL-NFL 합병)
현재 연고지로 이동1997년
연고지테네시 주 내슈빌
구단 연고지 변천휴스턴(1960~1996)
멤피스(1997)
내슈빌(1998~)
구단명 변천휴스턴 오일러스(1960~1996)
테네시 오일러스(1997~1998)
테네시 타이탄스(1999~)
홈 구장제페센 스타디움(1960~1964)
라이스 스타디움(1965~1967)
휴스턴 애스트로돔(1968~1996)
리버티 볼 메모리얼 스타디움(1997)
밴더빌트 스타디움(1998)
닛산 스타디움(1999~)[1]
구단주KSA 인더스트리스(KSA Industries)
사장스티브 언더우드(Steve Underwood)
단장러스턴 웹스터(Ruston Webster)
감독켄 위센헌트(Ken Whisenhunt)
약칭TEN
홈페이지
우승: 2회
AFL(2회)1960, 1961
슈퍼볼 우승-
컨퍼런스 우승: 1회
AFC1999
디비전 우승: 9회
AFL East(4회)1960, 1961, 1962, 1967
AFC Central(3회)1991, 1993, 2000
AFL South(2회)2002, 2008
플레이오프 진출: 21회
AFL(5회)1960, 1961, 1962, 1967, 1969
NFL(16회)1978, 1979, 1980,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9, 2000, 2002, 2003, 2007, 2008

NFL미식축구팀. AFC 남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내슈빌. AFL 창단멤버로 휴스턴에서 창단한뒤 테네시주 내쉬빌로 이전해 타이탄스가 되었다.

1 휴스턴 오일러스


(휴스턴/테네시 오일러스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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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아버지 버드 아담스 구단주 (1923~2013)

NFL의 영업망 헛점을 찔러 프로리그를 만든 AFL에서 풋볼 열기가 뜨거운 미국 남부지역에 진출하기 위해 먼저 진출한 댈러스 텍산스에 이어 풋볼 타운 텍사스의 대도시인 휴스턴에 팀을 창단한 것이 시작이다. 오일러스라는 이름은 휴스턴에 엔론사를 비롯한 주요 정유시설이 밀집해있기 때문. 초대 구단주는 텍사스 주의 사업가 버드 아담스였다.

휴스턴 오일러스는 AFL 창단 첫해 시카고 베어스키커/쿼터백 듀얼 플레이어였던 33살의 베테랑 조지 블랜다[2],LSU 타이거스에서 하이즈맨 트로피를 수상한 러닝백 빌리 캐넌을 앞세워 3년 연속 10승을 거두고 첫해와 두번째해 2년 연속 샌디에이고 차저스[3]를 꺾고 AFL 우승을 차지한다.

이 첫 세번째 해 이후 오일러스는 내리막길을 걸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오랫동안 약체팀의 길을 걸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1978년 드래프트 1순위로 텍사스 롱혼스의 레전드이자 명예의 전당 러닝백 얼 캠벨을 영입한 것. 범 필립스 헤드코치의 지휘와 얼 캠벨의 원맨쇼로 오일러스는 1978,79년 AFC 챔피언쉽에 오르나 그때마다 테리 브래드쇼피츠버그 스틸러스에 발목이 잡혀 슈퍼보울 진출에 실패한다.

얼 캠벨은 데뷔 첫해부터 3년 연속 러싱야드 1위, 러싱 터치다운 1위 2번을 기록하는 등 휴스턴의 공격을 거의 혼자서 이끌다시피 했지만, 첫해부터 매년 300번이 넘는 러싱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혹사를 당했으며 이때문에 4년차때 이미 기량이 쇠퇴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오일러스의 경기력도 급전직하 했으며 또다시 팀은 밑바닥을 전전했다.

얼 캠벨이 30세도 되기 전에 몰락하며 NFL 커리어를 마감한 가운데 오일러스의 새로운 구세주가 된 선수는 바로 NFL 최초로 흑인 쿼터백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워렌 문의 등장. 흑인 쿼터백에 대한 인종차별에 가까운 불신때문에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NFL에 입성한 워렌 문은 CFL등의 바깥에서 배워온 패싱 오펜스와 워렌 문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한 스크램블 러싱 공격으로 오일러스를 이끌며 1987년부터 1993년간 7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아쉽게도 슈퍼볼에 도전하기에는 2% 부족했지만 휴스턴 오일러스는 강팀으로써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입성한 워렌 문이 38세가 되면서 눈에 띄게 발이 느려진 것. 이 때문에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느꼈고 오일러스는 워렌 문과의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그를 대체할 쿼터백을 구하는데 실패하고 팀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2 테네시 타이탄스

휴스턴 오일러스의 홈구장은 1966년부터 사용한 미국 최초의 돔경기장이자 애스트로터프로 유명한 애스트로 돔. 지은지 30년이 다되어 재개축이 필요했던 애스트로돔의 사용문제에 봉착한 오일러스는 휴스턴 시장 밥 레이니어[4]에게 풋볼구장 신축 로비를 시도했지만 무산되었고, 애스트로돔을 같이 사용하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시의 승인을 받아 엔론 필드(現 미닛메이드 파크)의 신축에 들어간 상태. 이러니 오일러스 입장에서는 과거 볼티모어 콜츠구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때처럼 시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구단 관중은 격감했다. 그리고 이들 구단처럼 오일러스가 꺼내든 카드는 연고이전. 오일러스의 연고이전 카드를 받아문건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내쉬빌은 새구장 아델피아[5] 콜로세움(현재의 명칭은 닛산 스타디움)을 지어 오일러스를 초대했고 오일러스는 1997년 테네시로 연고 이전해 2년동안은 닉네임을 바꾸지 않고 테네시 오일러스라는 이름을 쓰다가 아무래도 테네시주와 석유는 큰 연관이 없는 관계로 새구장 아델피아 콜로세움에 입주한 1999년부터 테네시 타이탄스로 이름을 바꾸고 새출발한다.[6] 오일러스가 이전할 당시에는 새 구장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테네시로 옮긴 첫 해인 1997년에는 테네시주의 대도시 멤피스에 있는 리버티 볼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1998년에 내쉬빌에 입성하게 된다. 1998년에도 새 구장이 여전히 공사 중이라 내쉬빌 입성 첫해에는 밴더빌트 대학교의 홈구장인 밴더빌트 스타디움을 빌려서 사용하다가 1999년에야 아델피아 콜로세움에 입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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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타이탄스에 헤드코치로 등장한 사람은 연고이전 3년 전인 1994년, 당시 36세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사령탑으로 등장한 콧수염이 인상적인 제프 피셔. 제프 피셔는 터프한 피지컬 풋볼을 중요시 했으며 쿼터백에게도 모빌리티를 요구했기 때문에 워렌 문의 기억을 되살려 1995년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알컨 스테잇이라는 듣보잡대학교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받던 쿼터백 스티브 맥네어를 지명하고, 맥네어가 본격적으로 선발 쿼터백으로 등장한 1997년부터 오하이오 주립대의 파워풀한 러닝백 에디 조지, 와이드리시버 데릭 메이슨,케빈 다이슨, 타이트엔드 프랭크 와이첵등 힘과 체격이 좋은 공격진에 라인배커 키스 불럭, 수비 엔드 제본 커시, 코너백 사마리 롤등 타이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강력한 피지컬을 갖춘 라인업을 만들어 AFC의 강호로 성장했고, 특히 1999년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 버펄로 빌스와의 경기에서 NFL 역사상 최고의 뒤집기 명승부중 하나인 Music City Miracle[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결국 팀 창단 최초로 제34회 슈퍼볼에 진출한다. 하지만 상대는 커트 워너가 이끄는 NFL 대표 막강 공격의 팀 세인트루이스 램스. 타이탄스와 램스는 처절한 공방을 주고받은 끝에 23-16, 터치다운+PAT로 동점이 가능한 7점차 승부에서 경기종료 6초를 남기고 엔드존 10야드 전까지 육박했다. 당연히 타이탄스는 마지막 남은 타임아웃을 사용해서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8] 동점을 향한 최후의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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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짤

동점까지 갈 수 있었던 터치다운에 불과 1야드 못미치는 위치에서 램스 라인배커 마이크 존스에게 저지당한 케빈 다이슨의 마지막 전진실패로 16대 23으로 너무나도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 플레이는 램스 입장에서는 The Tackle, 타이탄스 입장에서는 One yard short혹은 The Longest Yard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며, 뮤직 시티 미라클과 함께 영문 위키에 플레이 하나가 단독 문서로 남아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34회 슈퍼볼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도 전력보존에 성공한 타이탄스는 절치부심해 2000년 시즌 13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예상치못한 볼티모어 레이븐스에게 완패를 당해 슈퍼볼 진출이 좌절되었고 그 레이븐스는 타이탄스를 격파한 여세를 몰아 슈퍼볼 우승까지 차지한다. 타이탄스는 스티브 맥네어가 2003년 MVP를 차지하는 등 선수들의 활약은 꾸준히 지속되었지만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라는 초강팀의 등장앞에 슈퍼볼 문턱은 너무 높았고 오랫동안 주축전력이었던 선수들의 노쇠화와 샐러리캡 폭발의 압박속에서 결국 주축 선수들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스티브 맥네어도 2005년 샐러리캡 문제로 팀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워렌 문-스티브 맥네어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쿼터백은 2005년 로즈보울에서 텍사스대학의 역전승을 이끌며 슈퍼스타로 인정받은 쿼터백 빈스 영. 과거 문, 맥네어처럼 흑인 모바일 쿼터백을 다루는데 능했던 제프 피셔의 생각이나 이들의 성공사례때문에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빈스 영이 맥네어를 잇는 쿼터백이 될거라 기대가 컸건만... 빈스 영은 인성문제나 NFL 전술적응에 실패하면서 무참히 망했다. 그리고 빈스 영은 테네시의 흑역사로 전락하며 18년 동안 팀을 이끌어온 제프 피셔가 타이탄스 헤드코치를 관두는 결정타가 된다.[9] 이 와중에 게다가 2013년에 팀의 아버지 그 자체인 버드 아담스 구단주도 9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2013년부터 제프 피셔 시절의 어시스턴트 코치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오일러스 시절 레전드 가드 마이크 문첵이 팀을 맡아 리빌딩중이다. 201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8번픽으로 예상을 깨고 워싱턴 허스키스의 스타 쿼터백이자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에 야구선수로 지명된 제이크 라커를 픽했는데 1년간의 적응을 마치고 2012 시즌에 꽤 괜찮은 기록을 찍었다.

2.1 2013년 시즌

제이크 라커가 프로 3년차에 접어드는 만큼 진가를 발휘해야할 시즌이나 아쉽게도 부상이 겹쳐 버렸다. 시즌 초반 3승 1패로 산뜻한 출발을 보인 타이탄스였으나 라커가 결장한 두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그다음 경기까지 내리 내주는 바람에 3연패의 수렁에 빠진 상황.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제몫을 해줘야 될 것은 리그 최고의 러닝백, 크리스 존슨이지만 8주차까지 터치다운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최악의 부진에 빠진 것이 걸림돌이다.

수비진은 지난해 바운티게이트때문에 자격정지먹고 뉴올리언즈 세인츠에서 짤린 그렉 윌리엄스가 자격정지 해제후 친정팀 테네시로 돌아와 상당한 수준으로 정비된 만큼 치고나올 능력은 가졌지만, 결국 제이크 라커가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뒤 백업인 피츠패트릭이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수비진도 전반기만큼의 위력을 유지하지 못해 7승 9패로 시즌을 마감한다.

2.2 2014년 시즌

답이 없다

주전 쿼터백 제이크 라커는 또다시 부상을 당했고 공격진 수비진 할 것 없이 제대로 하는 선수가 없어 9주차까지 2승 6패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잭슨빌 재규어스와 나란히 AFC 남부지구의 승점자판기 노릇을 하며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탈락했다. 결국 2승 14패 전체 공동 꼴찌를 차지했으나 그러고도 의도적인 탱킹 작전에 나선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게 밀려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2순위 지명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제이크 라커가 은퇴했다![10]

2.3 2015년 시즌

결국 또 리빌딩 해야하는 타이탄스. 그나마 이번엔 주전 쿼터백이 있다.

전체 2순위 픽으로 오레건 덕스의 쿼터백 마커스 마리오타를 지명한 타이탄스는 마리오타를 중심으로 팀 재건중이다. 마리오타도 괜찮은 신인 시즌을 보내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게 됐다. 하지만 역시 팀의 문제는 쿼터백만이 아니어서 시즌 패배의 아이콘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도 쉬어가는 해가 될 듯. 팀의 헤드코치 켄 위즌헌트도 짤리게 됐다.

그리고 결국 3승 13패로 리그 전체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201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2.4 2016년 시즌

아무래도 지난 시즌 보여준 전력이 전력이다보니 전체 1번픽 갖고는 쉽게 보강될 전력이 아니다라고 평가를 받던 도중... 프리 에이전트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러닝백 디마코 머레이 등 탄실한 보강을 이뤄내더니 4월 드래프트를 얼마 안남긴 시점에서 LA 램스에게 1번픽과 4라운드 6라운드 픽을 내주고 1, 2, 3 라운드와 내년 드래프트의 1, 3 라운드 픽을 트레이드했다는 엄청난 뉴스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쿼터백이 급한 램스라지만 드래프트 탑 쿼터백인 카슨 웬츠와 재러드 고프는 탑 5 밑에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던데다가 1번 픽을 얻자고 타이탄스에게 너무 많은 픽까지 내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 상황. 거기다 타이탄스는 이곳 저곳 구멍을 매꿀 수 있게 된데다가 드래프트 픽의 질보다 양이 팀 성적 상승과 연관이 있다는 통계까지 있어 타이탄스 팬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3 홈구장

닛산 스타디움 항목 참고
  1. 이전 명칭은 LP필드
  2. 블랜다는 휴스턴에서 주전 쿼터백으로 39세 시즌까지 뛰다가 40세가 되던해 쿼터백을 포기하고 전문 키커로 전업해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 48세까지 키커로 선수생활을 이어간다.
  3. 두번째 해인 1962년의 경우 차저스는 LA로 연고지를 이전 해 LA 차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4. 여담이지만 명예의 전당 농구선수인 밥 레이니어와는 스펠링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
  5. 미국의 거대 케이블 TV회사였으나 방만한 경영에 불경기의 여파로 파산하고 산하에 있던 지역 케이블 TV 독점권은 타임워너와 컴캐스트에게 넘겨졌다.
  6. 캐스트 어웨이에 이와 관련한 대사가 등장한다. 척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복귀한 후 회사직원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휴스턴 오일러스가 테네시 타이탄스가 됐다고?"라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뒷 장면에서 직원이 '작년에 수퍼볼까지 진출했다.'고 설명해 주는 대사도 나온다.
  7. 내쉬빌의 별명중 하나가 뮤직 시티. 알다시피 컨트리음악의 본고장이다.
  8. 그 전까지는 타이탄스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해설자인 부머 어사이어슨이 왜 이 긴박한 순간에서 타임아웃을 쓰지않고 시간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고 신나게 까다가 여기까지 오자 "이게 바로 타이탄스가 타임아웃을 쓰지 않은 이유입니다!"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뒤집기도 했다(...).
  9. 그리고 제프 피셔는 1년간 쉬다가 자신에게 통한의 패배를 안겨준 세인트루이스 램스 헤드코치로 부임한다.
  10. 타이탄스 입장에서 안습인게 쿼터백이 주전으로 올라선지 두시즌만에 은퇴한 것 자체도 대단히 골때리는 사태이거니와 이제와서 돌이켜보건대 2011년 드래프트 8번픽이 제이크 라커였는데 9번픽이 리그 최고의 공격태클로 성장한 타이론 스미스이고 11번픽이 바로 다름아닌 J.J. 왓이다. 이런 선수들보다도 앞에서 뽑은 쿼터백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