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램스

(LA 램스에서 넘어옴)
National Football Conference
서부지구 소속구단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San Francisco 49ers)
로스앤젤레스 램스
(Los Angeles Rams)
시애틀 시호크스
(Seattle Seahawks)
애리조나 카디널스
(Arizona Cardinals)
로고워드마크
로스앤젤레스 램스
Los Angeles Rams
창단1936년
NFL 가입1937년
현재 연고지로 이동2016년
연고지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1]
구단 연고지 변천클리블랜드(1936~1945)
로스앤젤레스(1946~1979)
애너하임(1980~1994)
세인트루이스(1995~2015)
로스앤젤레스(2016~)
구단명 변천클리블랜드 램스(1936~1945)
로스앤젤레스 램스(1946~1994)
세인트루이스 램스(1995~2015)
로스앤젤레스 램스(2016~)
홈 구장클리블랜드 뮤니시펄 스타디움(1936~1937, 1939~1941, 1945)
리그 파크(1937, 1942, 1944~1945)
쇼 스타디움(1938)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1946~1979)
애너하임 스타디움(1980~1994)
부시 메모리얼 스타디움(1995)
에드워드 존스 돔(1995~2015)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2016~)[2]
시티 오브 챔피언스 스타디움(2019~)
구단주스탠 크랑키(Stan Kroenke)[3]
사장없음
단장레스 스네드(Les Snead)
감독제프 피셔(Jeff Fisher)
약칭LAR
홈페이지
우승: 3회
NFL 우승1945, 1951
슈퍼볼 우승
(1회)
XXXIV(1999)
컨퍼런스 우승: 6회
NFL1950, 1951
NFL Western1955
NFC1979, 1999, 2001
디비전 우승: 15회
NFL West1945, 1949
NFC Central1967, 1969
NFC West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5, 1999, 2001
2003
플레이오프 진출: 27회
NFL1945, 1949, 1950, 1951, 1952, 1955, 1967, 1969,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3, 1984, 1985, 1986,
1988, 1989, 1999, 2000, 2001, 2003, 2004

NFL미식축구팀. NFC 서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팀의 별명인 램스의 램은 산양이라는 뜻이다. 이사를 꽤 많이 다닌 팀이다.

1 역사

1.1 초창기

1937년 오하이오클리블랜드에서 창단해 클리블랜드 램스라는 이름으로 NFL에 참여했다. 클리블랜드에서 8년동안 활동하던 이 팀은 약체팀이었지만 점차 성장해 1945년 9승 1패의 성적으로 NFL 우승을 차지한다.

1.2 로스앤젤레스 이전

하지만 팀의 구단주 댄 리브스는 터가 안좋은 클리블랜드의 미래에 회의를 느꼈는지 당시에는 굉장히 먼 곳[4]이었던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에 연고이전을 선언했고, 1932년 LA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메모리얼 콜로세움과 임대계약을 맺어 로스앤젤레스 램스로 팀 이름도 바꾸었다.

로스앤젤레스 램스로 재출발하면서 쿼터백 밥 워터필드를 뽑은 팀은 와이드 리시버 엘로이 허쉬,톰 피어스등을 앞세운 쓰리엔드 포메이션을 앞세워 당시 미식축구 스타일에 정면도전하는 중장거리 패스어택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낸다. 이를 완성한 쿼터백은 밥 워터필드의 후임은 놈 반 브롱클린으로 1949년부터 1952년까지 4년연속 8~9승의 고승률팀을 만들고 1951년 NFL 우승을 차지하는 등 초창기 미식축구 패싱전술 정립에 램스는 상당한 공헌을 했다. 50년대 후반은 다소 침체기를 겪었으나 60년대 중반에는 로지 그리어, 멀린 올슨, 디컨 존스, 라마 런디로 구성된 'Fearsome Foursome'이라는 강력한 수비라인맨 4인방을 앞세워 수비팀으로 강력하게 성장했으며 이를 더 업그레이드 시킨 헤드코치 척 녹스의 등장으로 1973년부터 1980년까지 8년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서부지구의 강팀으로 입지를 굳혔다. 다만 아쉬운 것은 1974~1976년 3년 내리 슈퍼볼 직전에 컨파에서 탈락해 콩라인이 된 것. 마지막 기회였던 1979년 플레이오프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꺾고 창단 후 처음으로 제14회 슈퍼볼(Super Bowl XIV)에 진출했지만, 홈이나 다름없던 LA 근교 패서디나에 위치한 로즈보울 스타디움에서 열화와 같은 응원을 받았음에도 테리 브래드쇼가 이끄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게 19:31로 패해 결국 우승이 좌절되었다.

1.3 애너하임으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문서에도 나오지만, 1970년에 구단주 댄 리브스가 사망한 뒤인 1972년에 이 팀은 원래 콜츠 구단주인 로버트 어세이가 팀을 매입했는데 예전의 콜츠 구단주였던 캐롤 로젠블룸이 부인이 서부로 가고싶다는 요청때문에 구단 소유권을 어세이와 맞바꾸어 로젠블룸이 구단주가 되었다. 그런데 이 구단주 캐롤 로젠블룸이 1979년 플로리다 해변에서 휴양을 즐기다 익사사고를 당해 72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때문에 구단 소유권이 계승되는 과정에서 내분으로 재산 손실이 났고, 거기에 1970년대부터 피트 로젤리 커미셔너에 의해 실시된 블랙아웃제도[5]로 인해 총 입장인원 10만명에 달하는 초거대 구장인 메모리얼 콜로세움의 만원관중을 채울 능력이 되지 않았던 램스는 어쩔수 없이 당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가 사용하던 애너하임 스타디움에 들어가 야구장을 6만 5천석대의 겸용구장으로 개조하고 홈구장을 이전했다. 그리고 비어있는 메모리얼 콜리시엄에는 2년 후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덜컥 들어온다. 레이더스는 이전 2년만에 슈퍼볼 우승과 더불어 LA지역에 처음으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30년 가까이 어중간한 성적만 내던 램스와는 뭔가 다른 강렬한 한 방을 보여줬다. 이 우승은 2013년 까지도 LA 지역의 유일한 슈퍼볼 우승이며 이 덕분에 레이더스는 LA 지역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우승의 영향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이 좀 있는 LA 지역 NFL팬들은 레이더스와 램스로 팬덤이 나뉘게 되는데 아직도 레이더스 팬덤이 우세한 상황이다. 물론 차저스 팬들도 조금 있기는 하다.

이런 와중에서도 존 로빈슨 헤드코치와 쿼터백 짐 에버렛, 그리고 한시즌 최장 러싱야드 기록인 2150야드 기록을 가진 레전드 러닝백 에릭 디커슨을 앞세워서 팀을 재정비하고 강팀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80년대 NFC 서부지구에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워싱턴 레드스킨스등 전통의 강호들이 득세가 엄청났던지라 램스의 전력은 이들과 맞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90년대부터는 전력도 쇠퇴하고 팀의 인기도 줄어들며 구장의 노후화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애너하임은 LA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오렌지 카운티에 있었고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거주지인 교외지역이라 대도시인 LA와는 정서상 맞지 않는 곳이었다. 홈구장은 애너하임으로 옮겼지만 팀 이름은 로스앤젤레스를 고수하는 가운데 LA 시내에 레이더스라는 팀이 들어오면서 LA도 아니고 오렌지카운티도 아닌 램스의 어정쩡한 정체성과 부진한 성적은 팀의 인기하락에 일조하게 된다. 거기다 야구의 다저스를 비롯하여 농구의 레이커스, UCLA 대학농구[6]전설 웨인 그레츠키를 영입한 NHL킹스 등이 치열하게 마켓 경쟁을 하면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램스는 LA 마켓에서 서서히 입지를 잃어가게 된다.

1.4 세인트루이스로

이 때문에 로젠블룸의 미망인인 구단주 조지아 프런티어는 역시나 새 구장을 찾고 있었으며 연고이전 계획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 눈에 들어온 곳은 원래 로젠블룸과 살던 메릴랜드볼티모어였다. 볼티모어는 콜츠의 야반도주로 비어있는 상태에서 NFL팀 유치를 위해 입질을 계속 해오고 있었고, 램스 구단은 LA지역의 살인적인 주차문제 등으로 인해 구단 유지비가 늘어나는 것을 이유로 팀을 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볼티모어 이전계획은 취소되고 폴 태글리아부 커미셔너와 구단주 회의의 조정끝에 볼티모어가 아닌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 팀을 옮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세인트루이스 이전 후 1995년에는 잠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시 스타디움[7]을 빌려쓰다가 새로 지은 돔경기장인 에드워드 존스 돔으로 팀을 옮긴다.

1990년부터 줄곧 루징시즌을 이어왔던 램스는 세인트루이스 이전후 리치 브룩스 헤드코치를 선임해 리빌딩에 들어가고 1982년 필라델피아 이글스 헤드코치를 사임한뒤 1997년까지 CBS, ABC에서 방송 활동했던 딕 버밀을 헤드코치로 선임한다. 딕 버밀은 공격총괄코치(Offensive Coordinator)로 마이크 마츠를 영입하는데, 이 마이크 마츠는 와이드 리시버 3명을 전진배치시키며 빠르게 공격해가는 닥공풋볼에 능한 코치였으며 램스에는 이를 수행할 와이드 리시버 아이작 브루스와 99년 입단한 슈퍼루키 토리 홀트, 그리고 1998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영입한 사상 최고의 멀티백중 하나인 마셜 포크, 이를 받쳐줄 역사상 최고의 왼쪽태클중 하나인 올랜도 페이스까지 영입해 공격진용을 최상으로 갖춰놨다. 그리고 이를 지휘할 쿼터백으로 트렌트 그린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가 시즌 시작도 전에 부상으로 쓰러져 망했어요를 외칠뻔했다. 그리고... 커트 워너가 나타났다.

커트 워너와 저 화려한 공격진이 1999년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잔디 위에서 벌어지는 최고의 쇼(The Greatest Show on Turf)라는 별명이 나올 정도로 강력했다. 이들은 압도적인 닥공으로 정규시즌을 씹어먹고 플레이오프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연파하며 슈퍼볼에 진출했고, 조지아돔에서 열린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제34회 슈퍼볼(Super Bowl XXXIV)에서는 그야말로 피터지는 혈전끝에 동점 터치다운 1야드를 못넘는 간발의 차이로 23:16으로 승리하며 팀 창단 첫 슈퍼볼 우승의 영예를 안는다. 그리고 커트 워너는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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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시절의 홈구장이었던 에드워드 존스 돔(Edward Jones Dome)>

2000년에는 딕 버밀이 고령을 이유로 계약만료뒤 연장계약을 하지 않고, 버밀 밑에서 그들의 공격진을 이끌던 마이크 마츠가 헤드코치로 올라왔다. 2000년 시즌에는 수비에서 문제를 일으켜 조기 탈락하긴 했지만 닥공풋볼의 위력은 건재했다. 2001년 다시 한 번 팀을 정비해 닥공풋볼로 밀어붙인 램스는 그린베이 패커스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연파하고 제36회 슈퍼볼(Super Bowl XXXVI)에 진출했다. 상대팀은 주전 쿼터백 드류 블렛소가 시즌 2경기만에 드러누워 톰 브래디라는 듣보잡 루키와 수비로 버텨오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그리고 슈퍼볼 경기는 2년전과 마찬가지로 램스에게 익숙한 돔구장인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열렸다.[8] 전문가들은 불과 2년전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전들의 경험이 풍부한 램스의 낙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빌 벨리칙이 이끄는 패트리어츠의 짠물수비에 램스가 의외로 흔들리며 경기는 난타전이 아닌 진흙탕 수비경기가 되었다. 예상밖의 저득점 경기로 전개되는 가운데 17 대 17로 맞선 4쿼터 1분 27초를 남긴 패트리어츠의 공격기회에서 톰 브래디가 신인답지 않은 침착한 리드로 램스의 수비진을 뚫고 필드골 사정권에 진입해, 종료 7초 남기고 키커 아담 비나티어리의 48야드 필드골을 허용하며 17 대 20으로 패배하면서 2번째 슈퍼볼 우승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화려하게 강팀으로 부상한 램스의 운이 여기서 다 했는지, 호화 공격진을 이끌던 커트 워너는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2002, 2003시즌을 몽땅 말아먹었다. 결국 팀은 커트 워너를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하고 마크 벌저라는 신예 쿼터백을 주전으로 올리며 다시 닥공풋볼을 꺼내들었지만 슈퍼볼 진출 해와 달리 수비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팀은 닥공에 성공하고도 더 많은 실점을 맞아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슈퍼볼 우승 당시의 주축들이 노쇠화하면서 팀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츠가 사임한 이후에는 후임 헤드코치들이 기대에 못미치는 팀 지도로 완전히 몰락했다. 그 사이에 팀의 구단주였던 조지아 프런티어가 2008년에 세상을 떠난 뒤 제2주주였던 스탄 크론케[9] 가 팀의 지분 대다수를 인수하였다.
램스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동료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팀을 떠나는 가운데 홀로 팀을 외롭게 지키던 와이드 리시버 토리 홀트도 잭슨빌 재규어스로 떠났고 팀의 중심이었던 러닝백 스티브 잭슨도 2013년 애틀랜타 팰컨스로 팀을 옮겼다. 2012년부터는 테네시 타이탄스를 이끌던 과거의 적장 제프 피셔를 헤드코치로 영입해 팀의 재건을 노렸으나 좀처럼 성적을 반등하지 못한 채 4년을 보냈다.

1.5 다시 로스엔젤레스로

2015년 시즌 종료 직후, 램스 구단은 오클랜드 레이더스, 샌디에이고 차저스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의 연고이전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2014시즌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구단주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근처에 땅을 크게 사놓은 상태이고 그곳에 복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지으려는 구상을 한 상태인데, 구장 역시 그곳에 지으려고 하려는 것. 결국 2016년 1월13일 휴스턴에서 열린 NFL 구단주 미팅에서 찬성 30표, 반대 2표로 램스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무려 22년만에 로스엔젤레스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즉, 같이 LA 이전신청을 제출한 차저스와 레이더스만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뜻이다. 전체 32개 팀 중 4분의 3인 24개 팀이 승인을 해야 연고지 이전이 허락되는데, 램스는 그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10]. 그 전까지는 차저스-레이더스 컨소시엄이 유리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구단주 회의에서 영향력이 큰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구단주 제리 존스가 램스를 지지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11] 아니 이 영감이 왜 남의 일까지 훼방을 놓아?

램스의 구단주인 스탠 크론키는 지난해 5월부터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인근에 신축구장을 지을 60에이커(약 24만2800㎡) 규모의 땅을 사들이며 연고지 이전을 추진해왔다. 크론키는 약 8만석 규모가 될 신축 구장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그 주위에 공연장과 쇼핑몰, 사무실, 호텔, 그리고 주택까지 건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램스는 신축 구장이 다 지어질 때까지 LA 시절 홈구장으로 써왔던 메모리얼 콜리시엄에서 홈경기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LA 연고이전이 받아들여졌지만 최종결정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얻은 샌디에이고 차저스 또한 LA로 이전을 하게 된다면 램스와 같이 잉글우드(Inglewood)지역에 신축되는 경기장으로 들어올 것인지, 아니면 새로 다른 구장을 지어 들어올 것인지가 추후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램스와의 협상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차저스는 샌디에이고에 남는다는 선택도 가능하고, 이 경우 후순위로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램스와의 홈구장 공유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2 각 시즌 리뷰 (2013 시즌 이후)

2.1 2013 시즌

제프 피셔 체제의 첫해가 순탄치 않다. 입단 당시 고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NFL에 입성한 프로 4년차 샘 브래포드는 좀처럼 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6주차에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다음 해에는 램스의 주전 쿼터백 자리를 장담하기 힘들거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 어지간히 급했던지 램스 프런트는 대체 쿼터백을 알아보기 위해 은퇴한지 2년이 지난 브렛 파브에게 까지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당했고 램스는 전미의 미식축구팬들한테 웃음거리가 되었다. 백업 쿼터백들의 수준이 절망에 가까운 상황에서 초반 8경기에서 이미 3승 5패를 기록한 램스는 속절없이 다음 해를 기약하게 됐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샘 브래포드를 선택하고 2010년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로버트 그리핀 3세를 포기하는 대신 얻은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3년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이 대박이 터지면서 팀의 수비진에 알짜배기 신인들을 보강하는데 성공한 것. 그렇게 얻은 팀의 에이스 수비수인 수비엔드 로버트 퀸의 맹활약에 힘입어 7승 9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거기다 마지막 1장 남은 2014년 스킨스 1라운드 픽이 전체 2순위가 되는 로또대박이 터졌다.

2.2 2014 시즌

프런트와 현장의 불협화음으로 삽질만 하다 보냈다.

위에도 서술한 2014년도 드래프트 픽이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삽질로 대박이 터져 전체 2번픽이 되어 돌아왔지만, 정작 제프 피셔는 이 픽으로 뭘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고, 그냥 지명할 수 있던 최고의 선수였던 라인맨 그렉 로빈슨을 지명했지만 선수를 어떻게 쓸지도 정하지도 않고 영입한 탓에 전체 2픽 선수가 건강문제도 아닌데 6주 동안 벤치에 앉아있었다. 거기에 이후 지명한 선수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펜스는 샘 브래포드의 부상 재발로 시작도 하기 전에 망했다. 샘 브래포드는 거의 금지어 수준의 부상 먹튀 행각으로 백업인 오스틴 데이비스가 주전 쿼터백으로 등장하고, 공격진은 발전이 없는 모습으로 리그 최하위 수준의 공격진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서술되어있는 현상금 게이트의 장본인 수비총괄코치(Defensive Coordinator) 그렉 윌리엄스를 과거 자신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복귀시킨 제프 피셔의 결정은 2014년 최악의 선택이 되고 있다. 윌리엄스가 맡은 램스의 수비는 전년도 만도 못한 상황, 팀을 이끌던 수비엔드 로버트 퀸, 크리스 롱 콤비는 시즌 절반이 지나간 9주차까지 겨우 5개의 색에 머무는 부진을 보였다.

이 때문에 15주차까지 6승 8패로 최하위에 처졌으며, 쟁쟁한 지구 타팀의 경쟁력에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한편 구단주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근처의 잉글우드(inglewood)에 위치한 땅을 구입하였고, 홈구장인 에드워드 존스 돔의 계약이 매년마다 갱신되고 있다는 점, NFL 사무국이 LA에 2개의 팀을 유치하길 원한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오클랜드 레이더스, 샌디에이고 차저스와 더불어 2015 시즌부터 LA로 연고이전을 할 매우 유력한 팀으로 꼽혔다.

2.3 2015 시즌

팀의 암덩어리 샘 브래드포드를 떼버린 2015년, 한결 가벼워진 선수단의 힘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노릴 수 있다와 진출한다는 다르다.

주전 쿼터백 샘 브래드포드의 거액 계약으로 팀 유동성이 엉망이 될 상황에서 의외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샘 브래포드를 받으면서 이글스의 주전 쿼터백 닉 폴스를 얻었고, 이미 다른 자원들이 착착 쌓여있는 램스는 폴스의 지휘로 상승세를 타며 9주차 종료 후 4승 4패로 지구 2위를 차지하면서 예년에 비해 순항하는듯 했으나... 폴스는 그 이후로 심각한 부진을 겪게 되면서 결국 주전 자리를 케이스 키넘에게 뺏기기까지 한다.

그 뒤로 시카고 베어스, 볼티모어 레이븐스. 신시내티 벵갈스에게 차례로 패배하며 4승 7패로 지구 3위로 내려앉았고, 와일드카드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최종 성적 7승 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세인트루이스에서의 20년간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헤드코치 제프 피셔의 거취도 불안정해질것으로 보인다. 램스에 있던 4년동안 한번도 플레이오프는 커녕 위닝 시즌을 거둔 적이 없으며 공격진은 꾸준함을 찾아볼수 없는 상황에서, 리그 내에서도 상위권인 7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연봉을 받는 감독라는 점에서라는 것이 이유. 하지만, 이미 연고지 이전을 경험해본 감독[12]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2016 시즌까지는 감독직을 유지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체적인 의견이다.

2.4 2016 시즌

오랜 세월이 지나 예전의 홈인 로스앤젤레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것도 과거 구장의 수용규모와 관중동원능력, 블랙아웃 룰 등으로 이름만 로스앤젤레스를 달고 경기를 하던 오렌지 카운티의 애너하임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의 잉글우드로 복귀할 예정이다. 램스의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연고이전을 반대하는 세인트루이스의 팬들과 연고이전을 환영하는 LA팬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단지, 램스 구단은 세인트루이스의 팬들에게 어떠한 말 없이 LA로의 이전을 홍보하는 포스트만 올리고 있어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빈축을 사는 중. [13] 실제로 세인트루이스 출신 FOX의 스포츠 명캐스터인 조 벅[14] 직접 램스의 연고이전 및 세인트루이스 무시, 구단주의 행동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을 올리기도 했을 정도로 여론이 상당히 나쁘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때 램스 표값을 생각한다면...[15]

문제는 비록 옛 연고지였다고는 하나 램스의 LA에서의 입지가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것이 문제. 과거 LA에 머물렀을 당시 슈퍼볼 우승을 했던 레이더스를 여전히 응원하는 팬덤이 훨씬 강하고, 램스는 LA에 있을 당시 슈퍼볼 1회 진출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적이 없는데다가 램스가 LA를 떠날 무렵은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성기라 매번 샌프란시스코에게 깨지는 모습만 보여줬고, 램스가 LA에 있던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램스가 LA를 떠날 당시 꼬꼬마에 지나지 않았던 현재의 LA의 20대 풋볼팬들은 램스에 큰 애착이 없는 상황이다. 이 친구들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면 UCLAUSC대학 풋볼이 더 큰 관심사였다. 따라서 램스의 연고정착을 위해서는 시간과 성적이 필요할 듯 하다. LA는 NFL 말고도 즐길 게 많기 때문에 예전같은 어중간한 성적이면 다시 짐싸고 떠나야 할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또 다른 떡밥으로 유니폼 색깔이 있다. LA에 있었던 시기인 파랑+노랑의 색깔로 복귀할 것인가 세인트루이스 시절에 사용했던 네이비+크림 색깔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도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LA에서의 새출발을 위해서 심기일전한다는 제스처라도 취하려는 것인지 과거 슈퍼볼 XXXIV에서의 적수였던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타이탄스가 보유하던 2016년 전체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4라운드, 6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오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이를 위해서 타이탄스에게 2016년 1, 2, 3라운드 지명권과 2017년도 1, 3라운드 지명권을 퍼주었다. 목적은 수년간 구멍이었던 쿼터백 포지션의 보강으로 보이는데 2016년 드래프트에 페이튼 매닝이나 앤드류 럭급의 쿼터백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드래프트를 신청한 일부 쿼터백 유망주들은 드래프트 컴바인[16] 후에 도리어 평가가 하락한 상황에서 알렉스 스미스급의 준척급 쿼터백을 뽑기 위해서 너무 많은 드래프트 픽을 희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중이다.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 픽으로 쿼터백 최대어로 평가받은 제러드 고프를 뽑았다.

개막전부터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게 0대 28로 처참하게 패했으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리그 최하위권을 마크하는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리그 평균급은 하고있는 수비진 덕분에 2~4주간 기묘하기 짝이 없는 3연승을 거뒀다가 정작 5,6주차에는 수비진이 무너지며 2연패. 막상 픽을 꼬라박은 제러드 고프는 출장도 못하고 있다는게...

3 홈구장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2016년~)시티 오브 챔피언스 스타디움 (2019년 예정)

항목 참고

4 기타

  • 브루클린 다저스재키 로빈슨이 워낙 유명해서 잘 알려져있진 않지만, NFL에서도 1945년까지는 인종차별주의때문에 흑인 선수가 NFL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를 깬 팀이 바로 램스. 램스는 1946년 LA로 이전함과 동시에 UCLA를 졸업한 흑인 선수인 케니 워싱턴과 우디 스트로드를 영입했다. NFL에서 최초로 흑인의 벽을 깬 팀인 셈. 이후 모든 팀이 흑인 선수를 받아들이게 되는데는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7]
  • 이 때문에 2001년 커트 워너를 앞세워 우승을 거두었음에도 먼저 세인트루이스에 왔다가 쪽박차고 간 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으며 서부지역 연고 이전설이 계속 돌고 있었다. 팀의 구단주이자 한국인들이라면 아스날 FC의 구단주(최대 주주)로 알고 있을 스탠 크론키는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미주리주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미주리 사람이지만 지역연고의식은 없고 중서부지역의 부동산과 스포츠 관련 시설투자자로 성공한 인물로 그가 소유한 펩시 센터[19]의 수익을 보면서, 스포츠 시설투자에 집중했고 NFL이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하는 미국 제2의 빅마켓인 로스앤젤레스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연고이전을 준비중이었다. 그리고 결국, 2015년 정규시즌 종료와 함께 연고이전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성사되어 2016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램스로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1. 정확히는 2019년부터 로스앤젤레스의 남서쪽,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잉글우드(Inglewood)에 홈구장을 가진다.
  2. 2019년에 잉글우드에 건설중인 스타디움이 완공되기전까지 임시 홈구장
  3. 아스날 FC의 구단주인 그 사람 맞다.
  4. NFL에서 최초로 서부지역에 연고를 두고 뛰던 팀은 로스앤젤레스 버커니어스라는 팀이었지만 1시즌을 겨우 버티고 해체되었다.
  5. NFL 문서에 나와있는 그것 맞다. 경기장을 매진시키지 못하면 홈팀의 TV 중계는 없다.
  6. 실제로 1995년 NCAA 토너먼트에서 20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가가 폭등하던 중이었다.
  7. 현재의 부시 스타디움이 아닌 현재 구장 옆자리에 있던 과거의 구장을 의미한다. 과거의 부시 스타디움은 전형적인 쿠키커터형 구장으로서 야구와 풋볼을 겸용할 수 있는 다목적 구장이었고, 램스 이전에 애리조나 카디널스가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시절에 이 구장을 홈으로 썼었다. 참고로 램스가 부시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던 시절에 부시 스타디움은 인조잔디를 썼고, 이후 천연잔디로 잔디갈이를 하며 야구전용 구장으로 탈바꿈한다.
  8. 2년전에 우승을 차지한 장소도 역시 돔구장인 애틀랜타의 조지아 돔이었다. 램스는 돔구장을 홈팀으로 사용하는 팀 중에서는 최초로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는데(그래서 그 전에는 슈퍼볼볼에 소위 돔구장팀 징크스라는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환경이 조절된 돔구장에 익숙한 팀들은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아서 환경이 통제되지 않는 실외구장에서 주로 벌어지는 슈퍼볼에는 약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 그 우승의 원동력 중에 하나가 경기 장소가 돔구장이었기 때문(실제로 램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차지했기 때문에 슈퍼볼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홈구장인 에드워드 존스 돔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슈퍼볼조차도 돔구장인 조지아 돔에서 개최되었다.)이라는 분석을 한 전문가도 있었을 정도. 참고로 돔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 중에서 처음으로 실외구장에서 열린 슈퍼볼에서 우승한 건 그로부터 7년이나 더 지나서 제41회 슈퍼볼을 우승한 페이튼 매닝인디애나폴리스 콜츠였다. 더구나 그 경기는 슈퍼볼 사상 최초의 우중전으로 치러졌는데 페이튼 매닝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돔구장팀은 온실 속의 화초와 같다던 좆문가전문가들을 머쓱하게 했다.
  9. 스포츠 구단 운영에 깊이 관여하는 사업가이다. NHL콜로라도 애벌랜치, NBA덴버 너겟츠의 구단주이기도 하며, EPL아스널의 최대 주주이다. 참고로 아내는 월마트의 창립자 샘 월튼의 조카이다.
  10. 사실 뉴욕에 이은 미국 제2의 대도시라는 시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라는 또 다른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와 관중 동원성을 볼때 로스엔젤레스에 필적할 만한 곳을 찾기는 힘들뿐더러 USCUCLA같은 미식축구 명문대학을 가진 엄청난 팬베이스 역시 그냥 놔두기에는 아깝기도 하다.
  11. 제리 존스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라는 명문팀을 등에 업고 NFL에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구단주회의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CBA, NBC, ABC의 기존 공중파 3사가 안정적으로 중계권을 분할하던 구도에 FOX를 끌어들이고 CBS를 축출하면서 NFL의 중계권 시장 판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 있다.
  12. 휴스턴 오일러스가 테네시로 이전할때 감독이였다. 이후 오일러스는 타이탄스로 팀명을 변경.
  13. 세인트루이스의 풋볼팬들은 애리조나로 이전한 카디널스에 이어 2번째로 지역풋볼팀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두 팀 다 원래부터 세인트루이스 팀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이사온 팀이었다는 것은 함정. 그나마 램스는 카디널스에 비해 정을 준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슈퍼볼 우승을 해줬기 때문에.
  14. 조 벅의 아버지는 오랜기간 야구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 잭 벅이고 조 벅 본인도 커리어 초기에 카디널스의 전담 캐스터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세인트루이스에게 애착을 보이는 것이 이해가 되는 상황.
  15. 실제로 2013년 월드시리즈 때 램스의 평균 티켓가격이 22달러대로 떨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일부 좌석은 잠실야구장 외야석 수준 가격인 8달러까지 가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16. 드래프트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행하는 공개 트라이아웃
  17. 이 과정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댈러스 카우보이스의 라이벌리가 폭발하기도 했다.
  18. 캔자스항목에도 일부 설명되어 있으며 그 유명한 세인트루이스 게이트웨이 아치가 서부로 향하는 관문을 형상화한 구조물이다.
  19. 덴버 너기츠,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공동 홈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