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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로코에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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فاس, Fès
로마자 표기로는 페즈, 페스[1], 파스[2]등 다양하게 불리는 도시. 인구는 100만명이 넘으며, 모로코에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베르베르인이 세운 이드리시 왕조의 이드리시1세에 의해서 요새도시로 건설이 시작된 페즈는 이드리시1세 왕이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면서 아들인 이드리시2세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페즈는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과 건물들, 출입문을 통해 한꺼번에 수많은 병사들이 출입하지 못하고 화살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또한 이드리시 1세가 이 도시를 만들 때 '만인이 평등한 도시' 를 꿈꾸었기 때문에 외관 상으로 보았을 때는 부유함의 정도를 알 수 없이 똑같은 창문과 출입문, 장식 없는 벽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집의 화려함과 크기가 매우 차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드리시1세 또한 왕궁이 아닌 백성들과 똑같은 구조의 집에 살았던 것을 보면 나름 깨어있는 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도시 안에는 최초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알카라위 대학이 859년에 세워졌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 유도 장식이 붙어있는 등 나름 선진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드리시 왕조에 의해 세워진 구역을 구 페스지역, 후에 13세기 때 역시 베르베르인 왕조였던 마리니드 왕조에 의해서 강 양쪽에 건설된 것이 신 페스지역으로 이곳에는 모스크와 왕궁이 건설되었다.
789년에 도시가 세워진 후 마리니드 왕조등 마그레브 지역의 다양한 이슬람 왕국의 수도로 기능했으며, 모로코가 보호령일 무렵 1925년에 라바트로 천도하기 전 까지만 해도 수도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예 터키어로 모로코를 뜻하는 말이 페스의 터키어식인 파스일 정도.
구시장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시나고그 또한 소재하고 있다. 그밖에 LG TV광고에도 나왔던 유서깊은 천연가죽염색공장과 전통의상 상점, 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혼합되어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근처에 있는 도시인 메크네스와 외곽에 있는 로마유적을 보기위해 많이 세트(?)로 방문하는 도시이다.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인구수만 보면 두 도시 규모가 비슷하다.
2 오스만 제국 말기에 쓰였던 모자
터키어: Fes
영어 : Fez
아랍어: طربوش ṭarbūsh
빨간색에 긴 술이 달려있는 옛 오스만 제국시기의 공식 모자.
2.1 개요
2차원 사람이 끼면 3차원을 인지할 수 있다 카더라 누구말로는 끼면 멋있다 카더라
원래 오스만 제국에서는 터번을 착용했지만, 착용 방법이 매우 번거롭고 특히 높으신 분들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수십미터에 달하는 천, 심지어 비단을 머리에 둘러 낭비를 조장했기 때문에 1826년에 오스만 제국의 30번째 술탄인 마흐무트 2세가 서구적 근대화 개혁에 맞춰 관복을 프랑스식 제복으로 대체하고 여기에 모든 신분을 막론하고 착용하도록 한 모자이다.
원래 페스는 모로코,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대의 아랍인들이 착용하던 전통 모자인데[3]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점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동서 문명의 교차로이자 터키 특유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점에선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다만 모든 신분을 막론하고 착용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은 그분들의 특유의 권위 의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페스의 높이와 술의 두께로 자신들을 차별화했으며, 때문에 고위 관료들이 착용하던 페스는 매우 높다. 전통적으로 페스는 양털을 붉은색으로 물들여서 만들었으며 꼭대기에 다는 술은 말총(말의 꼬리털)[4]으로 만든다.
2.2 착용 모습
복식개혁(1826년) 이전에 그린 마흐무트 2세의 초상화
복식개혁 이후 서구식 군복과 페스를 쓴 마흐무트 2세의 초상화
간지폭풍의 압뒬하미트 2세의 공식초상화
페스를 착용한 군인의 모습 (1880년대로 추정)
오스만 제국 후기 터키 오리엔탈리스트 화풍의 거장 '오스만 함디 베이'의 흑백사진
세브르 조약 당시 술탄의 대표였던 다마트 페리드 파샤의 모습
오스만 제국 시기 한 가족사진
다만 하층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통 복식이 애용되었으며, 혹은 전통 복식 위에 페스를 쓰는 정도로 절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합(guild) 체제로 운영하는 직공인, 장인, 요리사 같은 조직은 자신들만의 고유의상을 고수했다. 특히 페스를 쓰고 그 위에 다시 천을 둘러 터번처럼 쓰는 모습도 많았다.
오스만 제국 시기 한 카흐베하네(kahvehane, 커피집) 풍경[5]
2.3 금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고 터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페스를 옛 오스만 제국의 잔재이자 청산해야 할 전통으로 주장했으며, 결국 1925년에 "모자법"을 통과시켜 페스의 착용을 금지시킨다. 1년만 채웠어도 100년 채우는건데 대신 도입한 모자가 파나마모자라고 부르는 챙모자와 베레모. 아타튀르크는 친 이슬람 구태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본격적인 서구화와 근대화의 행보를 걷기 위해 우선적으로 복식과 옛날의 전통을 청산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때문에 제일 먼저 타겟이 된게 히잡과 페스였던 것. 물론 보수 이슬람주의자들과 왕당파들은 반발했지만 아타튀르크는 군부의 힘을 이용해 깡그리 짓밟아 버린다[6]. 때문에 오늘날에는 터키에서 페스를 공식적으로 착용하지 않으며, 극우파 이슬람주의자가 아닌 이상 일상적으로 착용하지도 않는다. 터키의 옥션이라 할 수 있는 기티기디요르(GittiGidiyor)에서는 오래된 페스를 경매에 내놓기도 하는데, 여기서 터키인들의 취급은 그저 골동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4 오늘날의 위상
11대 닥터가 좋아합니다!
그렁클 스탠이 좋아합니다!
고메즈가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는 터키의 전통 문화로 살아남아 관광지에서 기념품으로 팔고있으며 [7] 케밥 장수나 돈두르마 장수가 착용하기도 한다. 서구에서는 무언가 터키적인 요소를 드러내고자 할 때 페스를 등장시키며, 특히 19세기 이후 서구에서는 페스를 쓰고 파자마를 입어 터키인처럼 보이는 것이 상류 계급에서 일종의 유행으로 퍼지기도 했었다[8].
다만 페스는 앞서 서술했지만 모로코와 알제리에선 오래 전부터 착용해 왔던 모자이며 오늘날까지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쪽 사람들한테 페스는 터키 모자임이라고 말하면 화낸다. 주의하자.
어린 왕자에 나온 소행성 B612를 발견한 터키인 천문학자도 소설에선 1909년 페즈 차림으로 나와 국제 천문학 회의에 이 소행성 발견을 알렸지만 무시당하고 11년 뒤에 페즈를 금하고 양복을 입게 한 독재자의 명령으로 멋진 양복차림을 하고 다시 나와 이 소행성 발견을 설명하자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고 나오기도 한다.
보스니아인으로 구성된 SS의 외인부대인 한트사르 산악사단은 페스를 정모로 착용했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아민 알 후세이니.
영국 SF 드라마 닥터후의 11대 닥터가 엄청 좋아하는 물건으로 나오기도 한다. 에피소드에서 페스를 쓰고 있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11대 닥터의 트레이드 중 하나. 작중 본인의 입으로 페스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하고, 50주년 에피소드에서는 세 닥터를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주요 물품이 되기도...
2.5 착용하는 인물
- ↑ 모로코 아랍어 방언
- ↑ 표준 아랍어, 베르베르어. 터키어에서 모로코를 가리키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다만 도시는 페스라고 구분한다.
- ↑ 이름부터가 모로코의 도시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모로코에서는 이 모자를 '타르부쉬'라고 부른다.
- ↑ 갓을 만들 때 쓰는 그 재료다!
- ↑ 오스만 시절만 해도 터키 커피가 주요 음료수였지만, 공화국 시대 이후 찻집이 그 풍경을 대신하고 있다.
- ↑ 근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페즈도 오스만 제국의 오랜 전통 의상인 터번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던 것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 ↑ 보통 비싸봐야 10리라를 넘지 않으며 매우 저렴한 기념품이면서도 가장 터키적인 기념품으로 여겨진다.
- ↑ 다만 오스만 제국의 문화가 유럽에도 유행한 것은 그 역사가 깊어서, 이미 16세기 때부터 융단이나 음악, 의복 등이 유행했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 부자(父子)의 경우 오스만 투르크산 융단 위에 올라선 채로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으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이 작곡한 터키 행진곡도 괜히 '터키' 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