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1세

1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3세프리드리히 1세하인리히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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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년(?) ~ 1190년 6월10일

신성 로마 제국황제(1155 ~ 1190)
붉은 턱수염 때문에 별명은 바르바롯사, 즉 붉은 수염이라 불렸고 후대 프로이센의 동명 국왕인 프리드리히 1세와 오인하지 않기 위해 바르바롯사라고 더 많이 불린다.

1.1 생애

슈바벤 공 프리드리히의 아들로 1152년 슈타우펜 왕조(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연 작은 아버지 콘라트 3세의 지명으로 독일 왕위(로마인의 왕)에 올랐다. 황제가 된것은 1155년 부터. 즉위하자마자 독일 국내의 안정에 주력해 "국내 평화령"을 발표해 치안안정에 주력하는 한편, 대립관계에 있던 벨펜가의 하인리히 사자공에게 바이에른을 양보한 후 일단 화해했다.

1154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이탈리아 원정에 나서 롬바르디아를 장악하고 롬바르디아 왕에 올라 교황을 억눌렀다. 그러나 교황과 대립하여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구엘프당(교황지지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고 1176년, 레나노 전투에서 결국 패배하여 화의를 맺게 된다. 왕권 강화를 위해 오스트리아 제후국 등을 신설했고 폴란드, 헝가리, 덴마크를 굴복시켰으며 부르군트의 왕위를 획득하여 위세를 전 유럽에 떨쳤다.

1180년에는 자신을 원조하지 않던 하인리히 사자공을 추방하고 그 영지를 부하들에게 분할하여 나누어 주었고, 1186년에는 아들인 하인리히 6세를 위해 시칠리아 왕위계승권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1세의 중앙집권적 봉건주의식 통치는 영방국가들의 발전으로 이어져 후에 황제권 약화의 길을 열고 만다.

십자군 전쟁 3차 원정(1189-1191)에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소아시아의 살레프강을 건너던 중 사망했다. 사인으로는 심장마비 혹은 익사가 거론된다. 아마도 고령에 찬물에 입수한 것이 원인인 모양.[1] 미디블2: 토탈 워에서도 십자군 캠페인을 하다보면 이 이벤트가 떠버린다.

죽은 뒤 그의 시체를 예루살렘에 매장하기 위해 식초에 절여서 부패를 막아보려 했지만,[2] 결국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썩어가는 시체는 어쩔 수 없이 뼈와 살을 분리해서 살은 안티오키아의 대성당에, 뼈는 티레 대성당에, 심장과 다른 장기들은 타르수스에 각각 매장했다.

1.2 평가

프리드리히 1세의 사제였던 자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인격은 그의 힘을 시기하는 자조차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균형잡힌 사람이다. 그는 매우 큰 키의 사람보다는 작지만 보통 키의 사람보다는 더 크고 고귀하다. 그는 금발이고 이마에서 웨이브가 있다. 그의 눈은 날카롭고, 그의 수염은 붉고, 그의 입술은 곱다. 그의 모습은 밝고 기운차다. 그의 이빨은 눈 같이 희다. 분노 대신 겸손으로 그는 얼굴을 붉힌다. 그의 어깨는 넓은 편이고, 건장한 체격이다.'

무장으로서의 완전한 자질과 예리한 웅변술을 갖추었고, 인재등용에도 뛰어나 라이나르트, 오토 폰 프라이징 등의 성직자를 등용하였다. 중세 말기 이후에는 곤궁과 오욕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으로서 황제 전설 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었다.

1.3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제3제국소련 침공 작전명으로 이름붙여지기도 했다.원정나갔다가 급사한 사람 이름따서 그런지 처음에는 승승장구했으나 이후에 역관광 당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마지막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나왔고, 거기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한사람의 의지로 제국을 통일한 사람이다.정작 캠페인에서 쓸 수 있는 영웅으로는 나오지 않았다[3]. 그리고 캠페인 내레이터의 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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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4 일러스트

코에이징기스칸 4에서는 시나리오 1의 신성로마 국왕으로 등장. 정치 76, 전투 84, 지모 74. A급의 능력치를 받았지만 함께 3차 십자군에 참전한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영국의 리처드 1세가 이 게임에서 워낙 먼치킨이라 이 둘에 비해 약간 딸리는 느낌. 하지만 신성로마의 세력 자체가 워낙 크고 프리드리히 1세의 수명도 사고사 취급되어서인지 사실보다 제법 긴 편이라 게다가 아들인 하인리히 6세도 있으니 무난히 플레이 가능하다.

문명 시리즈에서는 2, 6에서 독일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에서도 주요 등장인물인데, 성질이 급하지만 뒤끝 없고, 성실하고 현명한 어진 임금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우돌리노가 살던 마을을 공격했지만 어린 바우돌리노의 계략에 공격을 그만두었고 이를 영특하게 여기어 바우돌리노를 양자로 삼는다. 이후 바우돌리노의 도움을 간간히 받으며 나중에 바우돌리노로 하여금 프레스터 존 왕국을 찾도록 후원해준다. 바우돌리노 본인도 친부와 함께 양부로서 극진히 사랑하고 모신다.

2 프로이센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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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역대 군주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프리드리히 1세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1657.7.11~1713.2.25

프로이센의 초대 왕. (재위 1688~1713)

프리드리히 빌헬름 선제후의 아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신성 로마 제국황제 레오폴트 1세에게 원군을 제공한 공으로 공작에서 왕으로 승격했다.(1701) [4] 전쟁과 행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낭비벽이 심했으나 예술과 학문을 좋아하여 라이프니츠의 헌책을 받아들여 1700년 베를린에 과학아카데미를 창설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아들, 손자를 잘 뒀다.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때는 부국강병을 적극 추진하였고, 손자 프리드리히 2세 때로 오면 부국강병정책을 바탕으로 영토를 마구 넓히면서 프로이센은 북부 독일의 절대강자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1.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에 의하면 "분명 더운 날씨였을 거고(아나톨리아 반도가 더운 지역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막대한 군장은 군사들을 지치게 했다. 그런데 강이 나타났다? 식수다! 피서지다! 프리드리히 1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체통은 지켜야겠지만 강도 건너면서 그짓도 할겸 들어갔다 군장에 나이가 나이라 그대로 꼬르륵......(즉위한 당시 나이 30 추정, 이미 60은 넘었다)". "늙은이의 냉수"(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 경거망동과 어느정도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라는 일본 속담은 덤.
  2. 사실 시체는 식초로 보존하는게 아니라 소금으로 했어야 한다. 식초로 보존하면 단백질이 변형되어서 금방 부스러지게 된다.
  3.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더 포가튼에서 드디어 영웅 유닛으로 구현되었으나, 여전히 캠페인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외에도 살라딘, 쿠아우테목도 영웅 유닛으로 구현되었지만, 캠페인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왜 만든 거?
  4. 원래 신성로마제국 법상 왕호는 오직 보헤미아의 국왕만이 칭할 수 있었으나, 프리드리히는 참전의 대가로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폴란드의 봉신이었다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 시절 독립한 프로이센 공작령에 통합시켜,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한다. 문제는 이때 프리드리히의 영지는 동프로이센에 한정되었고, 서프로이센을 차지한 폴란드 국왕이 이미 프로이센 국왕의 칭호를 점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폴란드 국왕을 겸하던 작센 선제후는 프리드리희 1세의 프로이센의 왕위 즉위에 동의했으나, 폴란드의 세임이 반대했다. 해서 프리드리히는 외왕내제 비슷한 형식으로 "King of Prussia" 대신 "King in Prussia"를 칭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프리드리히의 프로이센 왕호는 그의 영지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국제 무대에서 여전히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 국왕이 아닌, 신성로마황제의 일개 선제후 봉신이었다. 그러다가 손자인 프리드리히 2세 대왕에 이르러 서프로이센에서 폴란드 세력을 쫓아내고 정식으로 "King of Prussia"를 칭한다. 그러나 프로이센 국왕은 이후에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지위도 역시 유지하며 황제 선출에 계속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