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TAI 하이타이라고 읽으면 세제말하는게 된다. 이 애니도 아니다
1 개요
1945년 해태제과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규모 기업집단 (재벌). 해태 타이거즈 등으로 명성을 떨쳤다. 1996년 말 기준, 재계 24위로 국내 30대 기업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상당한 곳이였다.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하여 해태제과 등이 부도나면서 각 계열사들이 청산하거나 매각되었다. 2006년 해태유통을 이랜드그룹에서 인수하며 완전히 해체되었다.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라고 하여 호남 출신인 김병조는 해태그룹이 무너질 때 일부러라도 부라보콘만 먹고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를 꼭 사먹게 하곤 했는데 라며 당시 비통한 마음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2 매각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하여 그룹은 1998년 6월 해체되었고 각 계열사들은 청산 및 매각되었다.
- 해태제과 : 해태그룹의 주축이었다. 현재 크라운제과에 인수[1]되었다. 과거에도 홈런볼, 맛동산 등 주력상품 몇개로 버티는 이미지였고, 그 타개책이었던 해태-가루비 주식회사도 그룹 해체 후 해태제과 사업부와 함께 인수합병되었다.
- 해태음료 : 일본 아사히맥주에 경영권이 넘어갔었다가, LG생활건강에게 인수되었다. 코카콜라음료(주)를 산하에 둔 기업이다.
- 해태주류(구 해태산업) : [2]는 국순당에 인수되었다.
- 해태유통 : 이랜드그룹에 인수되어 해태슈퍼가 킴스클럽마트로 운영되다가, 2011년 신세계에 재매각되어 현재 '이마트에브리데이'로 운영중이다.[3]
- 해태 타이거즈 :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가 되었다.
- 해태유업 : 1980년대 초에 그룹에서 분리된 상태였으나 해태 계열사로 인식된 게 아킬레스 건이 되어 해태그룹이 망할때 같이 망했다. 동원그룹에 인수되어 덴마크 밀크(DM푸드)와 합쳐져 현재 '동원데어리푸드'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동원F&B'로 통합되었다.
3 사업 분야
3.1 해태제과
3.2 해태음료
3.3 해태전자
제과회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해태전자'라는 전자회사가 있었는데[4]전자업체로 진출하려는 무리한 시도가 결국 그룹 해체의 주원인이 되었다.
해태전자는 70~80년대 당시 오디오 턴테이블[5]을 생산, 각 전자회사에 납품하는 것을 주로 하는 B2B 업체였고 이 분야에서 국내 1위의 업체였다.[6]. 즉 '제과업체'라는 아이덴티티에 만족하지 않고 첨단기술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해태전자를 발판삼아 전자,전기분야로 진출하게 되는데 자체기술로 CDP를 개발한 뒤, 한때 인켈브랜드로 유명했던 오디오 메이커 동원전자를 인수했었고[7] , 또한 바텔(Vatal)이란 상표로 TV광고를 하던 전화기 전문 제조업체 나우정밀[8]을 인수하기도 했었으며[9], 사업 다각화를 위해 해태 보일러와 해태 라이터라는 사업체도 두었고 아래에서 언급한 게임기까지 만들게 된다. 그 외에 무궁화호 해태특실 객차로 유명한 해태중공업도 있었고, 건설업까지 진출했다.
이 때 제과계 라이벌인 롯데는 더 일찍 오디오 업계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롯데 오디오는 일본 파이오니어와 기술제휴한 뒤 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롯데 파이오니아라는 상표를 쓰다가 다시 롯데 매니아(...정말로 이 상표로 TV광고도 했었다)라는 상표로 바꿔 동원전자 인켈, 아남전자 테크닉스, 태광 에로이카와 더불어 4대 메이커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디오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자 빠르게 정리해버렸지만.
여담이지만 사실 약간 늦게 현대전자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즉 자체기술로 개발한 CDP하나 가지고 오디오 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해태처럼 다른 오디오 회사를 인수한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 이외의 다른 콤포넌트를 아남으로부터 OEM공급을 받았다. 현대전자는 그후 반도체와 컴퓨터를 사업의 핵심으로 삼았지만 카 오디오를 생산하면서 음향업계에도 계속 발을 걸쳐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무리한 기업 인수가 1990년대 중반에 집중되었고, 그로 인해 1997년 외환 위기때 그룹 해체의 주 원인이 되었다.[10]
한때 해태에서 해태전자라는 사명으로 '슈퍼콤'이라는 이름의 패미컴 호환기종(=패미클론) 게임기를 발매했고(당연히 닌텐도 정식 라이센스 제품은 아니었고 대만산 클론 기종이었다.), 이후에는 NEC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슈퍼콤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PC엔진을 발매했다(그런데 PC엔진은 8비트 게임기인데도 불구하고 슈퍼콤 바이스타는 겉포장에 16비트라고 적혀있었다... 어?[11])
1997년에는 Tube 105 라는 미니 노트북을 해태전자에서 발매하기도 했는데, 일본 RIOS[12]의 Chandra 라는 기종을 OEM으로 수입한 제품으로 펜티엄 120MHz, 8MB램(최대 72MB까지 확장가능), 815MB 하드디스크의 스펙을 가지고도 1.24kg에 불과한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이 제품은 해태전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의 미니노트북 인데도 불구하고 확장성이 올인원 노트북과 다름없는데가, 일반적인 캠코더 배터리를 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배터리 걱정도 없다보니 중고로 제법 거래되던 물건이었다.
3.4 해태 타이거즈
해태는 프로야구에 원년부터 참여했다. 지역 연고제로 출범했던 프로야구는 출범을 준비하던 당시 호남 연고 기업을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막판에 해태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호남 연고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LG트윈스가 서울 연고를 포기하고 전북으로 갔으면 좋았잖아. 전북에 LG계열사들이 몇 있는데 LG생명과학(구 안진제약/럭키제약), 해태음료(익산공장 한정 구 영진약품)가 있잖아. 한편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다른 기업들의 반발이 거셌는데 해태가 프로야구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프로야구에서 발빼겠다고 반발한 기업도 있었다.[13] 한편 프로야구 출범 당시 참여 기업들 간에 동종업계의 기업은 배제한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막판에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동종업계였던 롯데(음료,제과,전자,주류,유통 등..)가 반발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출범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롯데가 양보했다. 참고로 롯데는 부산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롯데는 넥센이나 NC가 참여할 때에도 꼬박 꼬박 반발했다
4 기타
미국, 캐나다 쪽 한인마트에 가면 '해태' 상표를 아직도 볼 수 있다. 현지 한국식품 업체가 쓰고 있는 듯. 예컨대 해태쌀이라던지...
여담이지만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사립중학교인 안용중학교가 해태그룹 재단이었다. 안용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었는데, 해태그룹 해체 후 그냥 평범한 사립중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해태그룹 전성기 시절에도 그다지 지원은 해주지 않았다고 하는듯(...)#- ↑ 살짝 덧붙이면, 크라운제과도 IMF 구제금융 시절에 화의를 신청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상태였다.
- ↑ 버킹검 런던 드라이진, 나폴레온 등 생산
- ↑ 규모가 큰 일부 매장은 이마트메트로 로 운영되고 있다.
- ↑ IMF 직전에는 대기업들이 원래 주력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까지 문어발 확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해태전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 ↑ CD가 없었던 LP 전성시대에는 오디오에 꼭 필요한 물품.
- ↑ 1980년대에는, 해태음료 전용 자판기도 생산했었다.
- ↑ 이 때 인켈이 해태를 인수한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로 의외였다
- ↑ 무선전화기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이미 타 업체를 인수했던 업체였는데 그로 인해 자금난에 빠져 해태전자에 인수
- ↑ 사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오디오로 유명한 태광에서도 전화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 ↑ 이후 인켈은 그룹해체뒤에 이트로닉스라는 이름으로 법정관리상태에 있다가 2007년에 인켈로 회사이름을 바꿨다
- ↑ 그래픽 칩셋은 16비트였으니 이걸 의미했을지도.
- ↑ 일본 IBM과 리코의 공동출자로 만든 업체.
- ↑ 그러나 럭키금성(현 LG트윈스. 서울 잠실), 현대(현 넥센 히어로즈. 현대당시 인천,수원. 지금은 서울 고척) 등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프로야구 참여를 고사하자 막판에는 해태보다도 훨씬 규모가 작은 삼미(현 넥센 히어로즈. 연고지만 따지면 현 SK 와이번스)까지 끌어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