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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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No.78
홍원기(洪源基 / Won-ki Hong)
생년월일1973년 6월 5일
출신지충청남도 공주시
학력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고려대
포지션3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드래프트 1차 지명 (한화 이글스)
소속팀한화 이글스(1996~1999)
두산 베어스(1999~2005)
현대 유니콘스(2006~2007)
지도자넥센 히어로즈 전력분석관(2008)
넥센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2009~현재)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8번(2009~)
김정수(2008)홍원기(2009~)현직
2001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양대리그홍원기(두산 베어스)최동수(LG 트윈스)

1 소개

前 프로야구 선수. 현 넥센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한화 이글스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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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박찬호, 손혁공주고 동기생으로[1] 고려대학교를 거쳐서, 1996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 포지션인 3루수 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고 그저 2할 6푼 ~ 2할 7푼 타자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홍원기가 그만큼 파워가 있는 타자는 아니라 클러치 정도는 어느정도 있기에 3루수는 반 고정이면서 하위타선/대타로 주로 나오는 선수,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 이영우, 송지만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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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1999 시즌 중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했고[2],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의 활약덕분에,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 2001년 준 PO MVP에 오르는 등,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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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그 뒤로도 준수한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2005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안경현-손시헌-김동주 라는 내야진이 있었고, 준수한 백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해서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았고, 하마터면 FA 미아가 될 뻔했다. 다행히 사인 &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장교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가게 된다.

한편 현대 팬들과는 여러가지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현대만 만나면 타이론 우즈, 장원진과 더불어 날아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4] 더군다나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맹 활약을 해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으니.... 결국 몇 경기에 못 나왔으며, 2008 시즌 초에 박노준 단장에게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전력분석원을 거쳐서 2군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2011시즌을 앞두고 김성갑 1군 수비코치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자, 1군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2011시즌부터 2015시즌 현재까지 꾸준히 1군 수비코치를 맡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팀이 암흑기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준 12시즌 이후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야수비가 발목을 잡았지만,나쁘지는 않았다.

팀 DER수치를 보면 넥센은 항상 하위권이며, 12시즌 이후로는 오히려 매년 퇴보하고 있다. 내야수비진 한명 한명의 이름값은 국가대표 수준이지만, 실제 내야수비 조직력이 좋다고 보긴 힘들며 페넌트레이스나 포스트시즌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불안한 수비가 팀을 무너뜨리곤 했다. 그래도 죄만호보다는 나은편이다. 그래도 강정호가 버텨주던 14시즌까지는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강정호가 피츠버그로 떠나고 서건창이 부상후유증으로 수비가 무너진 2015시즌 들어 히어로즈 수비의 실체가 드러나며 슬슬 까임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도 가장 잘한 일로는 김하성을 키워낸 일같다. 그리고 항상 선수들이 주변에 많은 코치인걸 보면 성격이 좋고 친근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4 황금학번 세대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중 한명이다. 하지만 아마야구 시절의 기대에 비해선 프로야구에 들어와선 많이 꽃피우지 못한 선수.

5 기타

  • 선수시절때부터 별명이 원기옥이었다. 처음엔 이 별명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져서 홈런포 못날리면 욕먹을까봐 꺼림직스러웠지만, 세월이 지나고나서 예전부터 동료와 팬들과 오랫동안 정들었던 별명이었기에 익숙해졌다고한다. 이미 별명은 원기옥으로 아예 굳혀진 듯...
  • '넥센팬이 선수에게 준 초콜렛을 선수몰래 빼돌려서 딸에게 선물했고 그걸 아내는 SNS에 인증하는 병크를 저질렀다'는 오해가 있었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를 비롯한 넥센 팬덤에서 들고 일어났었는데 이후 딸의 sns에 이는 사실이 아니고 그냥 한 투수가 조공받은 물품을 버리고 간 걸 가져왔다는 말로 해명했다.
  • 박찬호 와는 학창시절 동기로 절친한 친구사이. 박찬호의 비공개결혼식에 지인 30명만 초대했을때 초대받은 유이한 야구인이다. 다른 한 명은 노모 히데오.

6 통산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6한화 이글스123382.26210020094746553.385.347
199790253.2656713143021120.372.318
19982863.222142029617.349.292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9두산 베어스98118.161196041314013.314.242
2000113221.271608253031231.394.360
200184242.2646413164234134.401.353
2002109170.171296011117117.224.242
2003124384.27310513184243057.375.365
2004101160.213345021816022.281.303
200592139.230326132217018.353.316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6현대 유니콘스56148.270406042016015.392.335
20072528.07120000203.071.161
통산(12시즌)10432308.2455669864828426111270.355.326
  1. 박찬호와 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되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썬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2. 이 때문에 홍원기는 직후 롯데팬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마산아재 항목 참조. 그런데 박정태는 오히려 홍원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면서 고맙게 여겼다.
  3. KBS N SPORTS 더 레전드 "믿음으로 이룬다 국민감독 김인식"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다만 이때는 배경이 PO. 1차전 1:1 동점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책으로 분위기를 현대에 내어준 후 5:1로 경기가 종료된 후 홍원기는 메일로 욕을 수십 통 받고 새벽 4,5시까지 못 자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도 모르게 '아 오늘 선발 라인업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인식은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발휘, 그냥 유격수 9번타자로 넣었다고. 그에 감명받아서 무엇인가라도 보답할 생각이었나 홈런을 계속 때렸다고. 김인식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잘 보여준 사례로 나온다.
  4.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다면 MVP는 홍원기가 받았을 것이 유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