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黃順元, 1915년 3월 26일 ~ 2000년 9월 14일). 자(字)는 만강(晩岡). 시인 및 소설가.
현대문학계의 거목이자 소설 문학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극대화한 작가. 그리고 친일과 친독재를 거부한 진정한 문인.
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1915년 출생. 2000년 사망. 대표작은 소나기와 카인의 후예, 학,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이 있다. 아들은 <풍장> 연작과 <즐거운 편지>, <삼남에 내리는 눈>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영문학자 황동규이다. 그리고 손녀인 황시내 씨 레이싱모델 아니다 도 최근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그래서 3대째 문인 집안이 되었다.
김동리와 함께 한국 현대 소설의 두 거장으로 우뚝 서 있는 소설가. 그리고 수능이나 교사임용시험에서는 매년 출제 0순위에 김동리와 황순원을 꼽는다.[1]
2 생애
젊었을 적엔 대단한 미남이었다. |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부유한 지주계급이였는데,[2] 평양 숭덕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배포하다 체포되며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와세다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며 이해랑 등과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부터 신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 무려 17세의 나이에 문학지 동광에서 <나의 꿈>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하게 된다. 이후 1935년 발족한 동인 삼사문학의 일원이기도 하였다.
1937년부터 소설 창작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1940년 <늪>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42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이 시작되자 평양의 빙장리로 낙향, 은둔하게 된다.[3] 그리고 1945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4]
광복 이후 <목넘이 마을의 개> 등을 발표, 활동을 재개하며 한국전쟁이후에는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등의 장편소설을 주로 쓰게 된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다. 훗날 '경희사단'이라고 불리며 문단의 큰 축을 차지한 경희대 출신 문인들은, 모두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었다. 류시화, 정호승, 조세희, 전상국, 한수산, 고원정, 이문재, 박주택, 이성부 등 문단에서 쟁쟁한 이름을 떨치는 문인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1985년, 산문집 <말과 삶과 자유>를 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 2000년 타계할 때까지 간간이 시를 발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된다.
3 창작 경향
초기 단편소설, 즉 단편집 <늪>(1940)에 발표된 작품들에서 현재형 표현[5]이 주로 쓰였고 감각적 묘사가 두드러졌다.[6] 그리고 이 경향은 훗날 발표되는 소설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순원의 소설을 '시적인 소설'이라 말하게 된다.
그 외로는 설화체 문장이 특이하다 할 수 있는데, 이는 대화나 묘사를 서술에서 따로 분리시키기보다는 서술하는 문장 속에 모두 녹여버리는 기법이다.[7]
4 그 외의 이야기
- 그의 8대조 방계 조상 중에 황고집이라 불린 효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고집이라는 놈이 집안 내력이었는지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할 것 없이 모두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윤승운 화백의 <우리 겨레 위인 이야기>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그리고 그도 이 집안 내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버린다.
- 어느 해 신춘문예 심사 과정에서 동참한 심사위원이 당선권으로 미는 작품이 제자의 것인데도 차석으로 내려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깐깐한 스승님을 만난 제자 지못미그 사람이 '빙벽'의 작가 고원정이었다.
- 보통 작가가 사망하고 나면 그 유고집이나 교정하지 않았던 원본을 찾아 읽어보는 재미가 있을 법한데, 황순원에 대해서 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상황. 이미 당신의 생전에 전집을 내었고 책을 제외한 교정본이나 교정본 이전의 원고들은 모두 치워버리는 깐깐함
후대를 위한 배려, 오오 황순원 오오...을 발휘해 버린다. 때문에 후대의 연구가들은 땅을 치고 비통해하고 있다.그리고 학도들은 기뻐하고 있다. 공부할 거 줄어드니까신문기사, 신문기사
- 웬만해서는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도 유명했는데, 1990년대 후반에 월간조선에서 당시 원로 문인과 예술인들을 몇 사람 선정해서 인터뷰하러 집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을 정도.
- 황순원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에 대하여 어떠한 비판이나 칭송을 거부하고 침묵을 지켜왔다. 이때문에 전두환하고 사이가 엄청나게 나빴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행보로 수많은 문인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생몰년이 완전히 같으나 일제나 독재 정권 때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인 이 양반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부분.[8]
- 황순원 본인이 엮인 건 아니지만, 옛날 모 방송국 아나운서가 라디오 방송 도중에 스튜디오 밖에 소나기가 쏟아지자 "아 지금 소나기가 오고 있군요. 여류소설가 황순원의 소나기가 불현듯 생각납니다" 라고 멘트를 했다가 청취자들에게 신나게 털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류만 뺐으면 적절한 라디오 방송용 멘트였을텐데, 아나운서가 이름만 보고 순간적으로 여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잘생긴 여자가 있을리가
- 상당한 골초라 '흡연은 막힌 생각을 틔워주고, 근심을 가라앉히고 권태를 달래주며 피곤을 덜어준다'라는 말을 했으며, 담배에 대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제목은 '대'이다. 그러나 금연에 성공했는데, 이후 담배를 일부러 앞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안 피는 초인적인 자제력을 보여줬다. 금연을 시도해 본 사람들이라면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것이다.
'슬픈 일을 태우려 담배를 뻐끔여 온 때문에 이젠 담뱃대만 들면 슬픈 일이 반짝인다' |
- 그에게서 수업을 받았던 나이 지긋하신 국어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일명 막걸리 강의라고 1달에 1번 수업을 막걸리집에서 했다고 한다(...) 그릇에 동동주 따르고 젓가락으로 그릇을 두드리며 연주하셨다고.
- 2015년 3월 26일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 구글에서 이 날을 기념하여 그의 대표작 소나기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구글 두들을 만들어 공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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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표작 (가나다순)
- 나무들 비탈에 서다
- 너와 나만의 시간
- 독 짓는 늙은이
뚜왕! 뚜왕! 뚜왕! - 목넘이 마을의 개
- 기러기 [9]
- 소나기원제는 소녀少女[10]
- 신들의 주사위
- 움직이는 성 [11]
- 카인의 후예 [12]
- 학 [13]
- ↑ 그런데 김동리는 2002년에 화랑의 후예가 출제된 적이 있는 반면, 황순원의 작품은 지금까지 수능 문제에 출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만약 출제가 된다면 수정바람.
- ↑ 이 때문에 이북이 공산화 되자 지주계급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월남을 선택하게 된다. 그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바로 카인의 후예이다.
- ↑ 서정주와 가장 대조되는 내용. 사실 그도 어용시를 적어달라고 일제가 강요했지만 쿨하게 씹었다.
- ↑ 이 기간 동안 써둔 글 중 대표적인 것이 독 짓는 늙은이다.
- ↑ 보통 소설의 문체는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 한 과거형 표현을 주로 쓴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 ↑ 이를 두고 평론가 김현은 "그가 단편까지를 시의 연장으로 본 것이 아닐까"(「안과 밖의 변증법」)하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 ↑ 이는 고전소설과 같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현대소설이 설화체 문장에서 벗어나면서 그 생명력을 얻었던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황순원은 이러한 설화체 문장으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특성을 얻었던 셈이다. 물론 이런 설화체 문장을 이전에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황순원만의 특수한 기법은 아니다.
- ↑ 전두환의 생일 때 서정주가 그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찬양시를 쓴 반면, 황순원은 정말 형식적으로 '생일을 축하합니다'란 문구만 보낸 사례도 있다.
- ↑ 1951년 출간된 단편집의 표제작이다. 이외에도 <별>, <산골아이>, <그늘>, <저녁놀>, <병든 나비>, <애>, <황노인>, <머리>, <세레나데>, <노새>, <맹산할머니>, <물 한 모금>, <독 짓는 늙은이>, <눈> 등 총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 ↑ 발표는 소나기가 1953년 5월 '신문학'에 먼저 발표하였지만 원본은 1953년 11월 '협동'에 발표된 소녀라는 연구결과가 한성대 김동환 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 근거와 차이점은 앞의 신문기사를 참조할 것.
- ↑ 1973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 ↑ 195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단편만 잘 쓴다'고 알려진 황순원이 장편도 잘 쓸 수 있음을 보여준 명작이다.
- ↑ 1956년 이를 표제작으로 하여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학>을 비롯하여 <왕모래>, <소나기>, <맹아원에서>, <청산가리>, <참외>, <부끄러움>, <몰이꾼>, <매>, <여인들>, <사나이>, <두메>, <필묵장수>, <과부> 등 14편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