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02

미국의 제트전투기
1940년대FH 팬텀FJ-1 퓨리F-2 (F2H 밴시)F9F 팬서F-86 세이버F-84 썬더제트F-80 슈팅스타F6U 파이어릿
1950년대F-89 스콜피온F-94 스타파이어F-9 쿠거F-10(F3D)
스카이나이트
F-100
슈퍼 세이버
F-1(FJ-2/3)
F7U 커틀러스F-1E(FJ-4)F-7 (F2Y)
씨다트
F-11(F11F)
타이거
F-3(F3H)
데몬
F-102
델타 대거
F-6(F4D)
스카이레이
F-8(F8U)
크루세이더
F-101
부두
F-104
스타파이터
F-105
썬더 치프
F-106
델타 다트
1960년대F-4(F4H)팬텀 IIF-5 프리덤 파이터 / 타이거 IIF5D 스카이랜서YF-12F-111
1970년대F-14 톰캣F-15 이글F-16 파이팅 팰콘YF-17 코브라
1980년대F-20 타이거 샤크F/A-18 호넷
1990년대YF-23 그레이 고스트
/블랙 위도우 II
F-22 랩터F/A-18E/F 슈퍼호넷
2000년대F-35 라이트닝 IIX-32
2010년대F-15SE 사일런트 이글
2020년대F/A-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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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102 델타대거(Delta Da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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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길이 - 20.83 m
날개길이 - 11.61 m
높이 - 6.45 m
무게 - 14,300 kg(maximum)
무기 - Twenty-four unguided 2.75 inch rockets and six guided missiles.
엔진 - One Pratt & Whitney J57; 16,000 lbs. of thrust, with afterburner.
가격 - $1,184,000
최대속도 - 마하 1.25 (1,304 km/h)
항속속도 - 966 km/h
항속거리 - 2,175 km
상승고도 - 16,800 m

1.1 개발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 공군에게 최고의 문제점으로 대두된것이 바로 소련의 핵폭격기 전력이었다. 미 공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성능의 요격전투기를 개발하고 방공공군을 창설하여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였다. F-102 델타대거는 미 공군 최초로 순수 요격을 목적으로 개발된 전투기이다. 이 뾰적하고 날카롭게 생겨먹은 삼각날개를 가진 전투기는 1949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F-86/89, F-94등의 제공전투기와 요격기가 개발 되던 시기이다. 미 공군은 이들 전투기의 차세대급 전투기는 15,000m 이상의 운용고도와 초음속 요격능력이 있는 기체였다. 이랬던 것이 1950년 9월에 운용고도 20,000m, 마하1.3에서의 요격이 가능하도록 성능을 상향조정하라는 요구와 1955~59년 사이에 개발을 완료 하라는 미 공군의 압박이 있었다.구체적인 후보선정에 앞서 휴즈사는 XM-1179라 명명된 FCS의 개발을 시작하였고 공군은 총 19개사가 제시한 기체들을 살펴보며 고심하였다. 결국 Convair사의 F-102요격기 안이 선정되었으니 이 때가 1951년이다. Convair사의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1948년 9월에 최초비행한 XF-92A란 전투기가 모체였는데 이는 델타익 전투기로서 세계최초로 비행한 델타익전투기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Convair사의 안은 이 XF-92A보다 1.5배 대형화 되어있었다. 당시로선 이런 수평미익이 없는 델타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또한 Convair사는 미공군의 성능에 만족시키기 위해 미사일을 내부에 수납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1.2 시제기

미 공군은 YF-102 2대와 양산형 25대를 발주하여 1959년 안에 후딱 해치우려는 의지를 보여 시제1호기가 1953년 10월 24일에 첫 비행을 성공시키지만 정확히 8일후에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직후 추락하는 바람에 1954년 시제2호기가 완성되기까지 시험비행은 지연된다.여기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데... 시제2호기의 시험비행에 앞서 풍동시험 도중 F-102의 외형 때문에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Convair사의 설계팀은 F-102의 재설계에 착수하였다. 구체적인 개수사항은 이렇다.

-동체 2m 연장
-캐노피 형상 변경 (3각형)
-주익과 수직미익의 후퇴
-앞전후퇴각 60도로 변경
-주익 앞전에 코니컬 커버 신설
-주익 상면에 경계층 패널 신설
-좀더 추력이 높은 P&W사의 J57엔진 채택
-면적법칙의 적용

특히 이 면적법칙은 YF-102의 속도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것은 항력이 동체와 날개의 단면적의 합으로서 이루어저야 한다는 법칙이다. 따라서 이 법칙을 적용시키면 큰 항력이 발생하는 날개와 동채의 연결부위를 오목하게 만들어서 동체의 단면적에 날개의 단면적을 흡수시킬 수 있게된다.

이러한 대수술 끝에 재탄생한 F-102는 다시금 1954년 12월 20일 첫비행에 성공하고 이윽고 초음속 비행에도 성공하여 원래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1.3 양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F-102A는 시제기에 비해 업그레이드 된 곳이 많은데 살펴보면 휴즈사에서 개발한 MG-10 FCS가 기수에 장착되었다. 이것은 광역수색성능과 완전자동추적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캐노피에는 IR센서가 장착되었고 방공공군에 투입되는 기체들은 SAGE와의 링크를 위해 ARR-39 링크시스템을 장비하였다. 무장을 보면 내부의 미사일 수납고에 빔 라이딩/적외선추적방식의 GAR-1(AIM-4A/C)공대공 미사일 3발과 미사일 창의 측면 안쪽에 2.75인치 공대공 로켓탄 24발을 수용하였다. 그러다가 2.75인치 로켓탄은 폐지되고 AIM-4E/F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AIM-26 지니 1발을 탑재하게 된다. F-102A는 1956년 제327요격비행대대에 최초로 배치도어 총 875대가 양산된다.

훈련형은 조종훈련과 기량유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하게 Side by Side의 형태이다. 기수의 FCS는 제거되어있고 길이는 19.21m로 축소된 반면 중량은 12,600 kg으로 증가하였다. 훈련형의 제식명칭은 TF-102A이고 총 111대가 양산되었다.

1.4 실전

1968년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면서 남한/미국과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일본의 나하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제82요격비행대대의 F-102가 오산 공군기지로 임시 파견되기도 하였고 1971년 까지 일본과 남한을 오가며 북한의 견제세력으로 이용되었다.

F-102는 단일목적 전투기인 관계로 주로 요격임무에만 투입되었는데 나중에는 B-52를 엄호하는 호위기로 점차 변경되어서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다. 북폭임무를 맡은 B-52와 함께 들어가던 F-102가 MiG-21에 격추되어 버리자 F-102는 고성능의 요격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되어 점차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편 그리스와 터키는 F-102를 가지고 서로 공중전을 하기도 하였다.

1.5 퇴역

F-102는 1970년에 전 기체가 모두 일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후계기 성격으로 등장한 F-4 팬텀과 F-106 델타다트의 요격성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후 F-102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QF-102로 활약아닌 활약을하며 AIM-120의 표적이 되어 하나둘 씩 사라져 버렸고 일부는 F-102를 보유한 터키와 그리스의 후속지원용 부품으로 하나 둘씩 뜯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