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9년~2000년까지 활동했던 일본의 포스트 펑크[1]/뉴웨이브/일렉트로닉 밴드. 리더는 히라사와 스스무. 당시에는 테크노 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프릭션, 플라스틱스, Sheena and the Rokkets. 히카슈등 당대의 일본 펑크 록/뉴웨이브 시대를 주름잡은 밴드.
비록 이들은 197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들이지만, 뉴웨이브 시대에 빛을 발했다.
2 역사
2.1 P-MODEL의 전신 맨드레이크(1973 ~ 1978)
1973년 히라사와 스스무와 아베 후미야스, 그리고 그의 섭외로 온 타나카 야스미, 타이나카 사다토시가 모임으로서 하드 록/헤비메탈 록 밴드 맨드레이크가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엔 타이나카를 제외한 전원이 기타를 원해 연주배틀을 하여 포지션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결성 초기엔 블랙 사바스의 곡들을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하드 록 밴드였으나 나중에 아베 후미야스가 바이올린을 가지고 오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전향하고 착란의 문(錯乱の扉)[2][3]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베 후미야스가 갑자기 잠수를 타 공석이 생겼고 히라사와 스스무가 억지로 보컬을 맡고 타나카 야스미가 키보드를 연주하게 되고, 공석이 된 베이시스트는 히라사와의 절친이었던 세키 히로미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변화가 생겼다.
이후 적극적으로 라이브를 해왔지만 대부분 다른 밴드와 같이 공연을 한 경우였고 원맨 라이브를 열었을 때엔 관객이 3명 남짓하는 등 인지도가 한참 부족했다. 이 날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에 호응해준 관객이 있었으니 아키야마 카츠히코였다.
세키 히로미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니가타로 내려갔고, 리허설이나 라이브 때마다 돌아오긴 했지만 나중엔 탈퇴한다.
세키의 후임으로 프로그레시브 밴드 破天荒의 베이스였고 新●月의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었던 아쿠츠 토오루가 들어온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형 히라사와 유이치(平沢裕一)는 맨드레이크의 연출팀 디바이스・맨드라고라를 이끌며 비싼 연주장비를 싼 값에 구해오는 등 수완이 좋아 맨드레이크가 돈이 많은 밴드처럼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1978년경 히라사와는 여러 사람과 인연을 쌓았는데, 신디사이저 세션 알바에 응모를 한 날에 카미오 메이로(神尾明朗)[4] 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주간 플레이보이의 신디사이저 다중녹음 콘테스트에 『필요한 벌의 유혹(いりよう蜂の誘惑)』을 출품하고, 이게 심사위원 토미다 이사오의 호평을 받으며 입상을 하게 돼 앨범 「SYNTHETIC SPACE 무서운 두뇌집단」에 수록되었다.
같은 시기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를 하면서 나중에 P-MODEL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키쿠치 타츠야, 나중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프로듀스한 밴드인 Shampoo의 멤버가 되는 오리모 마사미(折茂昌美)를 만나게 되고 옆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미우라 슌이치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멤버들은 섹스 피스톨즈가 큰 인기를 끌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동안의 대작주의에서 벗어나 향후 초기 P-MODEL의 음악성과 유사한 뉴웨이브와 펑크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결국 78년 맨드레이크는 해체를 맞았다. 마지막 라이브에서는 초반엔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연주하고 후반엔 뉴웨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등 새로 결성될 밴드의 음악성을 암시하는 연출을 하였고 거기에 아키야마도 참가했다.
그 후 프로그레시브 록에 미련이 남아있던 아쿠츠 토오루가 떠나고 아키야마 카츠히코를 맞아 1979년 1월 1일 P-MODEL이 결성되었다.
2.2 초기 P-MODEL(1979.1 ~ 1988.12)
1979년 1월 1일, 도쿄 카메아리에서 히라사와 스스무를 중심으로 맨드레이크의 前멤버였던 타나카 야스미와 타이나카 사다토시, 그들의 팬이었던 아키야마 카츠히코가 모인 밴드 P-MODEL이 탄생했다.
무대에 첫 데뷔한 것은 같은 해 3월 미국의 록밴드인 밴 헤일런의 일본 라이브의 오프닝을 맡은 것이었다.
이게 반응이 좋아 당시 플라스틱스음?의 키보디스트였던 사쿠마 마사히데(佐久間正英)[5]와의 공동 프로듀싱으로[6] 7월에 싱글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이지 (美術館であった人だろ)』를 발매, 8월에 앨범 In A Model Room을 발매하면서 메이저 데뷔해 일본 테크노 팝 열풍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밴드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 5월 일본 내 테크노 붐이 과열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히라사와는 탈 테크노를 선언하고 P-MODEL의 음악성을 대대적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키야마 카츠히코와 멤버 사이에서 밴드의 방향을 놓고 갈등이 생겨버렸고 결국 아키야마는 탈퇴당한다.
1981년 3월 P-MODEL은 기존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앨범인 Potpourri를 발매하였다. 앨범 녹음은 히라사와가 베이스까지 담당하였고, 라이브에서는 히라사와가 강사로 일하던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의 수강생이었던 키쿠치 타츠야가 세션으로 참가해 나중에 정식 멤버가 된다.
1983년엔 타나카 야스미가 아이디어 고갈을 이유로 탈퇴하고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우라 슌이치가 뒤를 잇게 되었다.
84년 8월엔 베이시스트인 키쿠치가 탈퇴하고 요코가와 타다히코(横川理彦)가 가입. 10월엔 드러머 타이나카가 탈퇴하고 밴드 "알레르기"의 아라키 야스히로가 가입한다.
85년엔 KARKADOR를 발매하고 12월엔 키보디스트 미우라와 베이시스트 요코가와가 동시에 탈퇴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베이시스트 나카노 테루오[7], 키보디스트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자리잡는다. 워낙 멤버교체가 많아 나카노가 들어왔을 땐 "또 멤버 교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잡지에 실릴 정도였다.
87년엔 차기 P-MODEL 앨범인 '몬스터'의 제작에 들어가지만 레코드 레이블과의 계약이 난항을 겪어 무산되었고, 4월에는 아라키 야스히로가 탈퇴하고 초기 멤버인 타이나카가 다시 복귀한다. 타카하시도 P-MODEL에서 탈퇴하고 그 자리를 코토부키 히카루가 대신한다.
1988년 12월. 시부야 CLUB QUATTRO에서 동결 라이브를 열었고, 결국 P-MODEL은 잠정 활동중지에 들어갔다. 이후 밴드의 리더 히라사와 스스무는 시공의 물을 발매해 솔로활동에 들어갔다.
탈 테크노 선언 이후~동결까지의 라이브 녹음자료가 유튜브, 니코니코 동화 등지에 모여있는데 공식 팬클럽에서 녹음해 회원들에게 배송해준 게 대부분이다. 키보드 음을 다르게 하거나 템포를 더 빠르게 하는 등 원곡과 라이브의 이질감이 큰 것이 특징.
2.3 P-MODEL 동결기
이후 히라사와 스스무는 백 밴드를 모아 솔로 활동에 전념하며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애니메이션 OST 등을 제작하며 음악성의 범위를 넓혀갔으며, 코토부키 히카루는 새로운 밴드에 합류함과 함께 는 P-MODEL 동결 이후엔 히라사와 솔로 백 밴드에서 여전히 히라사와와 함께 활동을 했다. 당시 P-MODEL을 나와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아키야마 카츠히코도 히라사와 솔로 활동 이후 89~90년까지 베이스 세션을 맡게 되었다. 나카노 테루오는 이후 KERA, 근육소녀대의 미노스케와 함께 유닛 LONG VACATION을 결성해 음악활동을 계속하였다.
1990년도에 팬 서비스로 잠시 P-MODEL을 다시 모은 적이 있었다. 멤버는 히라사와 스스무, 아키야마 카츠히코, 코토부키 히카루, 타이나카 사다토시. #이러니 완벽한 방과후 티타임 초기 멤버
2.4 해동 P-MODEL(1991.9 ~ 1993.10)
해동P-MODEL의 로고
왼쪽부터 코토부키 히카루, 히라사와 스스무, 아키야마 카츠히코, 후지이 야스치카.
1991년 9월. P-MODEL이 새로운 음악성으로 부활하였다. 멤버 구성원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 창설 멤버였던 아키야마 카츠히코(베이스, 키보드), 잠정해체 직전 멤버이자 히라사와 솔로 세션이었던 코토부키 히카루(키보드, 신디사이저) R&B 밴드 The GROOVERS의 드러머 후지이 야스치카이다.
탈 테크노 선언 이후로 11년만의 테크노 음악으로의 복귀였으며 이전 P-MODEL의 곡들 역시 테크노로 리믹스하여 연주되었다.
P-MODEL, big body 이 두 앨범을 내놓은 해동P-MODEL은 1993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다시 활동을 중지하고 1년간 새단장에 들어가게 된다.
2.5 개정 P-MODEL(1994.12 ~ 2000.12)
개정P-MODEL의 로고. 후반엔 잘 안쓰이게 된다.
1994년 12월. P-MODEL은 히라사와를 제외한 멤버를 전부 변경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멤버는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시스템-1 후쿠마 하지메, 시스템-2 코니시 켄지, 드러머 카미료 와타루.
1995년 12월 개정 P-MODEL의 첫 앨범 舟가 발매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인터넷이 활성화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며 이것이 P-MODEL의 활동 컨셉이 되어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라이브를 중계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1996년 10월에는 멤버들이 잠시 떨어져서 음악활동을 하는 프로젝트인 "Unfix"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11월 15일 도쿄 신주쿠 리퀴드 룸에 멤버들이 모여 솔로 라이브를 하는 이벤트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결석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탭 측은 일단 감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후일 히라사와가 직접 인터넷에 "나는 감기 따위로 쉴 인간이 아니다. 쉰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이라는 발언을 했고, 이듬해 1997년에는 자신의 소속사인 I3 프로모션(アイスリープロモーション)을 탈퇴하고 자회사인 케이오스 유니온(ケイオス・ユニオン)을 설립하게 되었다.
같은 해 카미료는 솔로 활동을 위해 P-MODEL을 탈퇴하였다. 이후엔 그 빈자리를 오와쿠 마사루(大和久マサル)[8] 作 버츄얼 드러머 TAINACO가 대체하게 되었다. P-MODEL의 라이브 배치 스타일도 달라져 밴드의 모습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1999년에는 MP3의 가능성을 보고 음반 레이블인 일본 컬럼비아를 박차고 나와 P-PLANT을 출범시키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MP3 음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프로 뮤지션들 중에선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특히 히라사와 스스무는 음반 레이블의 간섭에서 벗어나 아티스트들이 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2000년 12월 P-MODEL은 인터넷을 통해 배양선언, 다시 활동을 중지한다. 사실상의 완전 해산이었다. P-MODEL의 전 멤버들은 향후 P-MODEL의 재결성에 호의적이었으나 정작 리더는 P-MODEL의 재결성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이제 P-MODEL을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2.6 핵(核)P-MODEL(2004~)
그런데 원맨 밴드지만 부활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P-MODEL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2004년 핵P-MODEL의 데뷔 앨범 비스트론(ビストロン)을 내놓았다. 히라사와 스스무답게 컨셉이 기괴한데, 라이브에 원자로가 설치된다. 물론 모형일 뿐이다.
1집 비스트론은 Big Brother 등 극초기 P-MODEL 이후론 매우 오랜만에 사회비판적인 가사의 곡들이 수록되어있다. 이후 핵P-MODEL은 9년간 아무런 활동이 없었으나 2013년 여름에 2번째의 앨범 발매를 예고하고 11월에 2집 Гипноза를 발매한다. 그리고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P-MODEL의 카피 밴드 PEVO의 멤버인 PEVO 1호가 이 앨범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정식 멤버로 떠오른다.
2014년 1월에는 라이브 패러렐·코자크가 개최되었고, 9월엔 히라사와 스스무의 솔로곡도 같이 연주하는 라이브인 HYBRID PHONON이 개최되었다. 이후에 딱히 활동은 없으나 향후 이 앨범의 스토리가 그의 새 솔로 앨범의 스토리와 연결된다. 이후의 활동은 아직 예정에 없다.
이외의 내용이나 잘못된 정보 수정 및 추가 바람.
3 디스코그래피
P-MODEL/음반 목록 항목 참조.
4 역대 멤버
- 멤버 지속 시기 단위로 서술.
- 교체/재입단한 멤버는 볼드 처리.
4.1 맨드레이크 시대(1973 ~ 1978)
초기
- 기타: 히라사와 스스무(1954. 4. 2~)[9]
- 보컬/바이올린: 아베 후미야스
- 베이스: 타나카 야스미(1953. 12. 5~)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1953. 10. 29~)
중기
후기
4.2 초기P 시대(1979.1 ~ 1988.12)
파일:Attachment/P-MODEL/1st P-MODEL.jpg
1. 1979.1 ~ 1980.11[11]
2. 1980.11 ~ 1983.3
3. 1983.3 ~ 1984.8
4. 1984.8 ~ 1984.12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요코가와 타다히코(1957. 1. 29~)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
- 키보드/신디사이저: 미우라 슌이치
5. 1985.1 ~ 1985.12
6. 1986.1 ~ 1987.3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키보드: 나카노 테루오(1963. 8. 12~) 트위터 1 트위터 2 페이스북 홈페이지
- 드럼: 아라키 야스히로
- 시스템(키보드/신디사이저): 타카하시 요시카즈(1961. 8. 2~)[16] 트위터 페이스북 홈페이지
7. 1987.3 ~ 1987.9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베이스: 나카노 테루오
- 드럼: 타이나카 사다토시(2년만에 재입단)[17]
- 시스템(키보드/신디사이저): 타카하시 요시카즈
8. 1987.9 ~ 1988.12
4.3 해동P 시대(1991.9 ~ 1993.10)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키보드/신디사이저: 코토부키 히카루[18]
- 키보드/베이스[19]/
마라카스/댄서: 아키야마 카츠히코(11년만에 재입단) - 드럼: 후지이 야스치카(1967~)
4.4 개정P 시대(1994.12 ~ 2000.12)
1. 1994.12 ~ 1997.4
- 기타/보컬: 히라사와 스스무
- 시스템-1(키보드/신디사이저): 후쿠마 하지메(1970. 11. 10~) 트위터 블로그
- 시스템-2(키보드/베이스): 코니시 켄지(1955~)
- 알고리즘(드럼): 카미료 와타루(1964. 9. 3~)[20]
2. 1997.5 ~ 2000.12
- ↑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포스트 펑크로도 분류하고 있다.
- ↑ 모 대학의 축제에서 이 곡을 처음 공연했던 도중에 휴지통이 날아와 연주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 ↑ 이후 초반부를 재작업하여 In A Model Room에 偉大なる頭脳라는 이름으로 수록된다.
- ↑ 후일 히라사와 솔로 앨범에 한 늙은 노인의 목소리로 등장한 적이 있다.
- ↑ 1952~2014. 일본의 연주자(키보드&베이스&기타)/작곡가/프로듀서. 당시 P-MODEL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테크노 팝 밴드 '플라스틱스'의 키보디스트였으며, 이후 BOØWY나 GLAY 등등의 유명한 밴드와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아키야마가 주로 사용했던 베이스인 '에피폰 뉴포트 베이스'는 이 사람한테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 ↑ 사쿠마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아티스트가 P-MODEL이라고 한다.
- ↑ 원래 P-MODEL의 로디였다.
- ↑ CG디자이너. 히라사와 스스무 솔로활동의 가장 큰 이벤트인 인터랙티브 라이브의 CG영상을 제작해오고 있다.
- ↑ 여담으로 맨드레이크 때만 해도 히라사와는 레스폴 유저였다(…). '그레코'에서 만든 'EG-360'이라는 짝퉁이긴 했지만…
거기다 금색이다. - ↑ 링크되어 있는 동명의 캐릭터와는 한자도 다르고 아무 관련이 없으며, 이 인물은 1987년 旬IV(슌IV)에도 참여하였다.
- ↑ P-MODEL과 히라사와 스스무가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던 시기이지만 P-MODEL이 가장 빈곤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멤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얼굴이 알려져있는 탓에 알바를 하기가 곤란했던 히라사와는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 ↑ 히라사와가 말하길, 아이돌같은 존재가 필요해서 섭외했다고 한다(…). 원래 신디사이저를 연주해왔지만 타나카 야스미가 키보드/신디사이저 자리를 완고하게 요구한 탓에 익숙치 않은 베이스를 치게 된다.
오히려 타나카가 원래 베이시스트였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탈퇴 후에는 1982년에 일본대학 치대에 진학하기도 했으나, 85년에 중퇴했다. - ↑ 입단 당시 라이브 세션 멤버였으며(이 때가 고등학교 2학년.), 1982년부터 정식 멤버가 된다. 여담으로 일본의 2인조 그룹 marble의 기타리스트 겸 베이시스트 키쿠치 타츠야와는 동명이인으로, 둘 다 한자가 菊池達也로 한자도 같다.
일단 활동 시기가 20년 정도 차이가 난다(…). - ↑ 이후 아이디어 부족을 이유로 탈퇴한다. 89년 히라사와가 공개했던 CG연하장에서도 한쪽 팔을 잃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P-MODEL에서 히라사와와 더불어 음악적인 투톱이었다.(갈수록 타나카의 작곡 비율이 줄어들긴 했지만)
- ↑ 원래 알레르기라는 밴드의 드러머로,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부모님에겐 직장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활동을 해왔다. P-MODEL 탈퇴 후 알레르기로 돌아갔다. 2012년 PHONON2555 VISION 라이브에 참여하였다.
- ↑ 입단 당시 키보드는 칠 줄 알았지만, 스테이지에서는 베이스 경험만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P-MODEL 이전까지 있던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었다고.
뭔 생각으로 베이시스트를 키보디스트로 데려온 겨 히라사와1991년부터 'UTS'(Under Techno System)이라는 솔로 프로젝트 활동 중. - ↑ 이 시기의 드럼 연주 스타일이 호불호를 많이 타는 편이다. 비트가 강해 라이브 분위기를 잘 띄워준다는 쪽과 템포가 느리고 잔잔한 곡에서는 연주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 ↑ 이 때부터 특이하게 키보드를 세워놓고 매우 현란한 연주를 선보인다. 이 특이한 연주 덕에 키보드 연주로 관객의 영혼을 가져가버린다는 키보드요괴(キーボード妖怪)라는 별명이 붙었다.
- ↑ 이 시기부터 베이시스트가 키보드도 겸하면서(물론 메인 악기는 키보드) 트윈 키보드 체제로 변경되었다.
- ↑ P-MODEL 합류 전에는 1990년까지 GRASS VALLEY의 멤버, 1990년부터 1991년까지 Soft Ballet의 서포트 멤버로 있었다. 히라사와 스스무가 솔로 활동을 할 적 드러머로서 히라사와의 백 밴드를 하기도 했다.
- ↑ 1999년 P-MODEL 데뷔 20주년을 맞아 실사로 제작되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그의 근황은 여기까지가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