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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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세계 최대의 레슬링 단체인 WWE의 대략적인 역사를 설명하는 항목이다. 본 항목은 어디까지나 각 시대별로 있었던 특징과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했을 뿐임을 알린다.

2 C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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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맨 가문의 제 1세대 인물은 권투 프로모터였던 로데릭 제스 맥맨이었다. 그는 원래 프로레슬링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그 당시 조셉 몬트라고 하는 사람이 조금더 대중에게 호응하는 스타일의 프로레슬링 단체를 만들게 된다. 몬트는 동업자가 죽은 뒤 뉴욕으로 활동 지역을 옮기게 되는데 거기서 제스 맥맨과 만나서 협업을 결심하게 된다. 이들은 1953년 Captitol Wrestling Corporation을 세우게 되고 NWA 체제에 가입하게 된다. 제스 맥맨의 자리는 그의 아들인 빈스 맥맨 시니어가 물려 받게 되었고, 두 사람은 좋은 파트너로서 단체를 성장 시켜 나간다.

3 WW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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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접어들면서 CWC는 NWA와 마찰을 겪게 되는데 당시 NWA 월드 챔피언은 CWC 소속의 버디 로저스였다.[1] 하지만 버디 로저스는 연맹 규약을 어기고, 자신이 속한 지역을 넘어서도 경기를 하곤 했는데 이런 문제로 NWA와 마찰을 겪게 된다. 몬트와 맥맨은 로저스가 계속 챔피언을 유지하길 바랬지만 로저스는 당시 규칙이었던 NWA 월드 챔피언이 연맹에 내야하는 25000 달러의 벨트에 대한 명예에 대한 의미의 보험금을 내지 않았고, 결국 빼앗기게 된다.

당시 NWA의 여러 프로모터들이 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CWC 역시 이런 불만 대열에 참가하면서 연맹을 탈퇴한 다음 단체명을 World Wide Wrestling Federtation으로 개명하고, 버디 로저스에게 첫 챔피언의 자리를 수여했다.[2] 이후 몬트가 고령의 나이로 물러나면서 빈스 시니어는 WWWF의 유일한 소유주가 된다.

4 골든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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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인트로

1979년 이름을 다시 WWF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1982년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빈스 맥맨 주니어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 받게 되면서 실소유주가 된다.

그때를 기점으로 WWF는 기존의 평화로운 지역구 체제를 탈피하고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데 자신들의 전용 흥행 체육관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아닌 다른 지역의 체육관에서 흥행을 열고, 자신들의 비디오를 역시 외부 지역에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금이 모이기 시작한 WWF는 본격적인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이 전설적인 선수들인 헐크 호건, 랜디 새비지, 로디 파이퍼, 앙드레 더 자이언트 같은 사람들이었다.[3]

실제로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자금력에서 부족했던 WWF는 위기에 처하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게 바로 프로레슬링의 슈퍼볼인 레슬매니아였다. 빈스 맥맨은 NWA의 스타케이드에서 그 아이디어를 따왔는데 그 정도가 아닌 더 크게 판을 키워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데 모으기로 결심했고 당시 문화 트렌드를 주도했던 가수 신디 로퍼와 복서 무하마드 알리, 배우 미스터 T를 섭외한 뒤 일명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을 통해 전 미국인의 관심을 WWF로 집중 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1985년에 열린 레슬매니아 1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WWF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레슬링 단체로 키우는데 성공했고, 전성기를 맞게 된다. 헐크 호건의 애국자 기믹을 통해서 수 많은 미국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 체제가 굳건할 것이라고 여겼다.

매니아에게만 인기가 있던 언더그라운드 프로레슬링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아니 실질적으로 메인스트림 프로레슬링을 이룬 전무후무 유일한 단체. 그 시작은 역시 80년대 헐크 호건이라는 전설적인 레슬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헐크 호건안드레 더 자이언트, 얼티밋 워리어 간의 대립은 전 세계적인 이슈와 관심을 일으켰고 특히 헐크 호건 vs 안드레 더 자이언트를 메인 이벤트로 내세운 레슬매니아 3는 9만명이 넘는 관중이 몰리는 등의 흥행 대박을 이루기도 했다. 이 레슬매니아 3는 공식 기록상 프로레슬링 흥행 중 두번째로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경기이기도 하다.[4] 참고로 비공식으로는 북한에서 릭 플레어 vs 안토니오 이노키의 경기가 약 15만 명의 관중을 모았지만 북한 내의 실태로 미루어 보면 관중을 강제로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관람이 자유롭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흥행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5 뉴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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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기세는 1994년 터진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되는데[5] 헐크 호건WWF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헐크 호건이 경쟁 단체이던 WCW로 이적하게 되면서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지로서는 최강이었지만 실제 경기로써는 원패턴만을 고수하던 재미없는 챔피언 헐크 호건 이후, 걸출한 테크니션으로서 각광받던 브렛 하트가 챔피언을 이어받게 되면서 경기 내적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 등이 이 시기 메인이벤터로서 각광받은 선수들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인재의 발굴을 일컬어 뉴 제너레이션 시대라고 부르게 되지만 당시 WWF의 상황은 너무 좋지 못했다. 주력 선수들 대다수는 WCW로 간 상황이라 그들을 보기 위해 많은 팬층을 빼앗겼고, 약물 파동 이후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빈스 맥맨은 여전히 80년대에나 하던 유치하기 그지 없던 기믹을[6] 고수해 많은 팬들의 야유를 듣게 되었다. 브렛 하트는 자신의 자켓을 도둑맞았다는 이유로 해적 레슬러와 대립하는 등 이미지가 아주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위기에 빠져서 40%의 사원들을 해고했고 그로 인해 로얄럼블에 나갈 선수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6 애티튜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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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대반전을 이끌어 낸 인물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물론 그 전의 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항목 참조.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통해 빈스 맥마흔은 악덕 기업주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런 이미지를 오히려 기믹으로 활용하는 영민함을 보여준 빈스 맥마흔과, 악덕 기업주를 겁없이 마구 응징하는 사원 vs 사장 각본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 낸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그 둘 덕분에 다시금 WCW를 앞서나가기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당시 WCW가 보여준 안습함도 한 몫했다. nWo라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악역 집단도 그 카리스마를 잃어가고 정치판보다 더 심각한 백스테이지 세력간 다툼[7], 젊고 능력있는 레슬러들을 키우지 못하고 올드 레슬러들의 잔치로만 부각되는 각본 등, 이 기간 중 경기력 좋은 레슬러들이 WWF로 이적해 활약하면서 단체간의 수준차도 커지기 시작했다.[8] 물론 빌 골드버그의 173연승 신화가 큰 임팩트를 주긴 했지만 스톤 콜드의 엄청난 인기를 이기지는 못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시청률상 최전성기로 보는데, 역사상 가장 높은 RAW의 시청률은 1999년 5월 10일 기록한 8.1 레이팅이고 역대 2위는 오웬 하트 추모 특집으로 열린 5월 24일에 기록한 7.2이다. 물론 이는 TV 쇼의 전체 시청률이고 세그먼트 중 가장 높았던 것은 1999년 9월 27일 믹 폴리와 더 락의 The Rock This Is Your Life 세그먼트가 기록한 8.4로, 오늘날 3.0을 기준으로 왔다갔다 하고 4.0 근처만 가도 대박이라 치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물론 지금은 예전에 비해 방송국이나 경쟁 프로그램의 수가 훨씬 많아진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기록인 건 맞다. 게다가 2010년에 RAW는 2.8이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해 빈스의 주름살을 늘어나게 만들었다.[9]

7 Ruthless Aggression의 시대와 PG Era

체어샷으로 인한 선수들의 뇌 손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던 와중에 크리스 벤와의 일가족 살해 사건이 터지면서 WWE는 여론의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노선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한 WWE는 시청 등급을 Rated PG-13에서 Rated PG로 낮추면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면들을 순화, '온 가족의 WWE'라는 목표를 가지고 PG 시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존 시나, 랜디 오턴, CM 펑크 등의 젊은 레슬러들이 잘 자라줘 단체를 이끌고 있으나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 언더테이커 등이 단체를 이끌던 애티튜드 시절을 더욱 그리워하는 매니아들도 많다. 반대로 2008년 이후 PG 시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애티튜드 때의 유혈이 낭자한 WWE가 너무 자극적이라 부담스러워서 보기 힘들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애티튜드 시대의 지나친 폭력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말이 많기도 했고 상업성으로 따지면 오히려 PG 시대의 수익이 더 많기 때문에 PG 시대가 장기화되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거기다 PG시대에는 다수의 인디 레슬러들이 영입되고 멕시코나 일본 쪽의 레슬링도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화려한 경기운영 능력으로 인해 애티튜드보다 경기력 면에서 확장되었다.[10]

아쉽게도 수익은 둘째치고 현재 1위 단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악역 선수들이 부족한 편이다... 그나마 현재 로스터 중 가장 포스가 쩔어주는 브록 레스너는 파트 타임인데다 브록을 제외하면 탑 힐로 키우는 세스 롤린스는 너무 찌질하게 그려지는데다 브레이 와이어트나 루세프는 경기력 등에 문제가 존재해 미적지근해서... 덕분에 재미도 감동도 없는 어쏘리티 각본이 어느새 햇수로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브록 레스너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는데 레슬링 단체의 핵심 중 하나인 파워 하우스의 부재도 크다.[11][12]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지만 스맥다운은 처음부터 PG등급이었다!

8 리얼리티 에라

PG 시대로 접어들고 존 시나가 정상을 차지하면서 수익성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존 시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인재는 오랜 동안 나오지 않았다. 랜디 오턴이 제일 강력했지만 시나에 미치지는 못했으며, 여러 빅맨들이 푸쉬를 받았지만 날려먹었다. 그런 이유로 존 시나는 10년 가까이 레슬매니아에서 메인이벤트를 도맡았고, 상품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WWE는 더 락,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와 같은 기존 레전드들에게 여전히 많이 의존해야 했다. 심지어 미즈가 레매 메인이벤트를 차지하기도 하면서 경기력 면에서는 상당히 질이 낮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준 것은 ROH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쌓은 선수들이다. CM 펑크가 준수한 경기력과 함께 엔터테이너로서도 최상급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메인이벤터 반열에 올랐고, 최고의 테크니션 대니얼 브라이언 역시 엄청난 기믹 소화력을 보여주었고 CM 펑크의 탈단을 메우면서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터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기존의 육성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NXT라는 별도 브랜드로 만들고 여기서 다양한 기믹을 먼저 실험하는가 하면 인디에서 명성을 날리던 선수들을 끌어오는 데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물이 쉴드와이어트 패밀리. 이로서 WWE는 PG 등급을 지키면서 선수들의 전반적인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성공했으며 2015년 현재 WWE의 인재 풀은 PPV나 RAW 세 시간이 좁을 정도로 정상급의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인재풀이 들어차면서 기존의 라이트한 여성과 아이들 팬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대해 WWE의 열성적인 레슬링 팬들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결과 새롭게 무적 선역 기믹으로 키우려던 로만 레인즈에 대해서 엄청난 역반응과 야유가 일어났고, 루세프를 상대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프로모를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슬매니아 31에서 존 시나에게 돌아온 것은 7만명의 야유 합창이었다. 존시나썩 WWE가 이런 취향의 충돌을 어떻게 조율하고 극복해 낼지가 향후 WWE의 관건이다. 일단 NXT는 2015년 안에 하우스 쇼를 더욱 늘리고 월간 PPV 체제로 증편하여 더욱 그 덩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레슬매니아 31에서 트리플 H와 스팅의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NXT 출신들이 참여했고[13] 게다가 메인 이벤트를 2년 연속으로 NXT 출신 선수가 장식하면서 앞으로 더욱 많은 활약을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메인쇼인 RAW와 스맥다운은 현재 점점 더 막장이 되어가는 각본[14], 팬층을 무시한 무조건적이고 기준이 없는 푸쉬로 그렇게 들여온 환호받는 인디 괴물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시청률도 역대 최악의 시청률이 나올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아이콘 후보들을 그들의 개성으로 선수를 키울려는게 아닌 '차세대 존 시나'로만 만들려는 이상한 집착도 한 몫한다.

무적 선역 기믹의 필요성은 단체를 먹여살릴 정도로 중요하고 존 시나가 차차 다른 활동을 병행할 준비를 하는 WWE 입장에서 차세대 무적 선역 기믹을 만드는 것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시청률도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고, 한때 금요일로 옮겼던 스맥다운이 2015년 1월 다시 목요일로 돌아오고 더 나아가 2016년 초에는 RAW가 방송되는 USA 네트워크로 옮기는 것이 확정되었다. CM 펑크의 탈단 이후 대니얼 브라이언의 심각한 부상, 존 시나의 휴식과 WWE 네트워크의 출범이 겹쳐지면서 2014년 이후 WWE는 또다른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러나 2015년 12월 10일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찍었던 2주만에 최저 시청률을 다시 갱신하면서 사실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빈스가 "시청률은 신경쓰지 않겠다." 라는걸로 보아 시청률이 아닌 다른 컨탠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지만 밀어주는 무적 선역 기믹 로만 레인즈의 판매율은 부진한데다[15] WWE네트워크 가입자 수도 늘어가긴 하나 점차 증가폭이 감소하고 있는 실정. 오히려 본격적으로 밀어주는 메인급의 악역 선역보다 개그캐로 밀고있는 더 뉴 데이의 상품이 더 잘팔리는 기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거기다 2015년 12월 8일 Raw에선 메인이벤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사실도 들어나 WWE가 받던 비판들이 어느새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2016년에는 어소리티 스토리가 레슬매니아 32를 기점으로 사실상 끝이 나고 셰인 맥맨이 돌아오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스 롤린스가 돌아오고 AJ 스타일스가 더 클럽이라는 악역 스테이블을 이끌면서 악역의 위상을 높였고 세자로, 세미 제인, 케빈 오웬스에 기존의 미즈, 크리스 제리코, 알베르토 델 리오 등 중견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허리도 상당히 두터워졌다. 또, NXT에서 뛰어난 신인들이 다수 수급되었고 태그 팀도 많이 늘었다. 부상 선수들도 위의 세스 롤린스, 세자로 외에도 존 시나, 와이어트 패밀리도 돌아왔다. 이로 인해 레슬매니아 32 이후 스페셜 이벤트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아서 팬들이 즐거울만한 경기가 다수 나왔으며 딘 앰브로스가 챔피언이 되면서 흥미도도 많이 늘었다. 그리고 Raw와 SmackDown Live로 로스터 분리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기존에 푸쉬에서 소외됐던 레슬러들에게 로스터 분리로 인한 기회가 주어지면서 팬들의 호응도 또한 높아졌다.
  1. 원조 네이쳐 보이로 릭 플레어가 그를 동경해 별명을 따랐다고 한다.
  2. 이런 탈퇴가 있었지만 NWA와는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3. 하지만 이런 무리한 확장을 우려한 빈스 맥맨 시니어는 "그러다가 강물만 흐려놓는다."면서 주의를 줬다고 한다.
  4. 지금은 레슬매니아 32에서 기록이 경신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호왈 9만이지만 실제로는 약 7~8만 정도였다고.
  5. 이때 빈스 맥맨은 가족들을 모아두고 자신이 감옥에 갈지도 모르며, "감옥에서 청부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WWF의 확장 과정에서 전국의 프로모터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기 때문이라고(WWE 50에서)
  6. 귀족, 치과 의사(이 기믹으로 유명했던 것이 글렌 제이콥스, 바로 케인이었다), 쓰레기 청소부 같은 기믹도 있었다. 심지어는 소도 있었다.
  7. WCW는 오너인 테드 터너가 프로레슬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보니 유명 레슬러(헐크 호건, 케빈 내쉬 등)나 프로모터(에릭 비숍)들이 백스테이지를 좌지우지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에 WWE는 예나 지금이나 프로레슬링에 잔뼈가 굵은 빈스 맥마혼이 권력을 꽉 잡고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는 거의 없고 심지어 사위인 HHH조차도 빈스 맥마혼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기껏해야 과거에 클릭(The Kliq)정도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지만 정작 이들이 돈이 안되자 대부분을 쫒아내버렸다. 그리고 이들은 WCW로 건너가서 WWE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하다가 WCW를 망쳤다.
  8. 이때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같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WCW를 떠나 WWE로 이적했고 WWE에서는 이들을 메인으로 내세워서 다수의 명경기들을 뽑아냈다.
  9. 현재는 WWE 자체 방송국인 WWE 네트워크가 생겼고 회원수가 150만을 넘을 정도라서 이젠 시청률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10. 물론 시대가 지난 만큼 레슬링 기술도 발전되어 경기력이 향상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성 면에서는 분명이 애티튜드 시대에 비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11. WWE가 욕을 먹으면서도 로만 레인즈를 밀어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작 로만 레인즈 본인은 파워하우스라고 불리기에는 힘이 딸린다(...). 무엇보다 과거에 WWE에 큰 수익을 가져다 줬던 무적 선역들은 대부분 파워하우스 계열이다.
  12. 최근에는 인디 등에서 선수들이 유입되면서 이런 파워하우스나 몬스터 계열 선수들이 많이 줄은 편이다. 또, 몬스터 계열(언더테이커, 케인, 빅 쇼)들은 대부분 나이를 많이 먹은 편이다.
  13. 경기에 참여한건 아니지만 NXT소속 멤버중 일부가 트리플 H의 등장신에서 터미네이터로 분한 트리플 H와 함께 등장한 저항군들로 등장했다. 레슬메니아 22의 존 시나 등장신때 수행원으로 당시 산하단체 소속이던 CM 펑크가 등장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것까지 치면 진짜로 모든 경기에 NXT 출신들이 등장한게 된다.
  14. 현재 WWE의 각본은 최악이라고 뽑힐 정도로 개연성없고 선수를 제대로 밀어주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을 선수가 푸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며 선수 탓으로 돌려 더 이상 그 선수에게 푸쉬를 주지 않는다.
  15. 역대 최악의 시청률인 2.15레이팅을 비웃으며 어떤 팬은 로만 2:15절 티셔츠를 제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