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게레로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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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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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La Raza!"

Latino Heat

Eddie Guerrero. 미국프로레슬링 선수

에디 게레로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타이탄트론.

생전 마지막 경기까지도 그다운 승리였다.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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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Eduardo Gory "Eddie" Guerrero
별칭Latino Heat
생몰년월일1967년 10월 9일
~2005년 11월 13일
신장173cm (5' 8")
체중100kg (220 lbs)
출생지미국 텍사스 엘 파소
피니시프로그 스플래시
라쏘 프롬 엘 파소
테마곡Latino Heat
Can You Feel The Heat?
Gangsta Lane[1]
Lie, Cheat, Steal[2]
그랜드 슬램 달성자
(이전 규칙 기준) 달성자
숀 마이클스트리플 H케인
크리스 제리코커트 앵글에디 게레로
랍 밴 댐부커 T제프 하디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크리스찬빅 쇼
총 12명
(현행 규칙 기준) 달성자
커트 앵글에디 게레로빅 쇼
에지미즈대니얼 브라이언
크리스 제리코
총 7명
같이 보기: 트리플 크라운 (하위 등급) / 달성자

2 이력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테크니션중 하나였고, 기믹과 연기 모두에 능했던 레슬링계의 거목 중 한 사람. WWE에서는 비겁한 선역이라는 특이한 컨셉을 자랑했는데, 선역이지만 적절한 반칙으로 악역들을 골탕먹이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는 악역일때도 해당되서 악역일때는 얄미운 악동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2.1 WWE 데뷔 전

멕시코의 유명한 레슬러 가문인 게레로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나 자연스레 레슬링에 입문하였다. 초창기에는 일본과 멕시코의 중소 단체에서 활약했으며, 1987년 매직 마스크라는 링네임으로 멕시코에서 정식 데뷔를 치렀고 1992년부터 멕시코의 AAA에서 태그팀 '라파제라 아토미카'로 활동했으나 팀동료였던 아트 바가 1994년 28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리자 이후 추모의 의미에서 아트 바의 피니시였던 프로그 스플래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3]

1993년부터 96년까지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블랙 타이거 2세라는 링네임으로 마스크를 쓰고 활동했으며, 이 당시 페가수스 키드라는 링네임으로 같이 신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크리스 벤와와 각별한 관계로 남게 된다. 이 기간 도중 AAA에서 아트 바와 태그팀을 맺어서 데이브 멜처로부터 별 5개짜리 경기를 하나 만들어낸다.

이후 1995년 ECW에서 짤막하게 활동하다가 WCW에 데뷔해 U.S 타이틀 및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을 석권하며 미드카더 입지로써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고 nWo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절엔 이에 대항하기 위해 LWO(Latino World Order)라는 스테이블을 결성해 그 수장으로써 활약하기도 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공백을 가지게 되어 LWO는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부상에서 회복하여 복귀한 이후에는 코난, 레이 미스테리오, 빌리 키드먼과 함께 필시 애니멀즈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어 활약하기도 했으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너무 커서 진통제에 중독되다시피했다.

2.2 WWE 데뷔

2000년에는 절친들인 딘 말렝코, 페리 새턴, 크리스 벤와와 함께 당시 망조를 걷고 있던 WCW를 벗어나 1월 31일의 RAW에서 뉴 에이지 아웃 러즈를 집단구타하며 래디컬즈라는 이름의 팀으로 WWE(당시 WWF)에 데뷔했다. WWF의 링은 다른 단체들에 비해 큰데 적응을 못해 프로그 스플래시를 잘못 써 팔을 다쳤다.

차이나의 도움으로 유로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뒤에는 자신에게 라티노 히트라는 별명을 붙이고 차이나를 마마시타라 부르며 연인 관계로 나왔지만 쓰러진 차이나를 보살펴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커버해 차이나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챙겨가거나 차이나를 이용해 타이틀전에서 DQ패로 타이틀을 방어해내는 등 야비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어진 각본과 캐릭터를 잘 수행했다. 그러나 차이나와의 관계는 에디의 배신으로 깨졌고, 레슬매니아 17에서 테스트를 상대로 유러피언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으며 리타와 얽히는 각본을 진행하던 중 진통제 중독과 음주운전 사건으로 2001년 5월 WWF에서 방출당했다.

2.3 WWE 재복귀

WWE에서 방출당한 에디 게레로는 재활의 기간을 거치며 WWA, ROH 등의 인디단체를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가지는 한편 진통제 중독에서 벗어나 2002년 WWE RAW에 복귀해 랍 밴 댐이 가지고 있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빼앗아오며 악역으로써 다시 자리를 잡는다. RVD와의 대립이 끝난 후엔 역시 로우 소속이었지만 부상으로 오랫동안 출연을 하지 못하던 절친 크리스 벤와가 복귀하자 태그팀으로 활동해 버버레이&스파이크 형제와 대립하다가 크리스 벤와와 같이 스맥다운으로 이적한다.[4]

스맥다운에서 에디는 자신의 조카인 차보 게레로와 로스 게레로스라는 태그팀을 결성해 WWE 태그팀 타이틀을 몇 차례 획득했다. 또한 이 당시부터 Lie, Steal, Cheat라는 구호 아래 얍삽한 기믹과 날렵한 테크닉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차보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겼을 땐 대신 타지리와 함께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RAW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에 대응하기 위해 스맥다운에서는 WCW의 U.S 타이틀을 부활시키고 토너먼트를 열었는데 에디가 라이노의 난입 덕에 벤와를 이기고 우승해 WWE의 초대 U.S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뒤 존 시나와 주차장 매치로 격돌했으며, 빅 쇼와 대립할 때는 설사약이 든 브리또를 먹이고 조롱하거나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이다가 노 머시에서 빅 쇼에게 U.S 타이틀을 내줬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태그팀 타이틀마저 바샴 브라더즈에게 빼앗기면서 점차 갈등이 커져만 가던 차보 게레로와 그의 아버지 차보 게레로 시니어하고 대립해 04년 로얄 럼블에서 차보 게레로와 싱글 매치를 가져 승리를 거뒀다.

로얄럼블 우승자인 크리스 벤와마저 로우로 이적하면서 그 직후에 열린 스맥다운 15인 로얄럼블에서 우승한 에디는 당시 브록 레스너가 가지고 있던 WWE 타이틀에 도전할 권리를 얻게 되고, 레슬매니아 직전의 PPV 2004 노 웨이 아웃[5]에서 브록 레스너F5#s-3를 WWE 벨트 위 토네이도 DDT로 반격한 뒤 프로그 스플래시로 핀폴을 얻으며 WWE 챔피언에 등극해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월드 타이틀을 거머쥔다.[6] 에디 게레로는 이로서 WWE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한다. 이어진 WWE 레슬매니아 XX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커트 앵글을 물리치며 타이틀을 방어했고, 메인 이벤트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른 오랜 지기 크리스 벤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감동적인 피날레를 만들어낸다.

이전까지 에디 게레로가 익살스러운 태도로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농락하면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던 것에 반해서 커트 앵글, JBL과 대립하던 때의 에디 게레로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챔피언으로서의 중압감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팬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하자 시청률 하락에 부담감을 느낀 에디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름과 기믹을 새롭게 바꾼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JBL)에게 텍사스 불로프 매치를 통해 WWE 타이틀을 내줬다.

한동안 WWE 챔피언쉽에서 멀어져서 커트 앵글 사단과 대립해 오던 에디 게레로는 부커 T와 함께 태그팀을 이뤄서 활동하다가 2005년에 들어서는 레이 미스테리오와 WWE 태그팀 챔피언이 된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21을 시작으로, 레이 미스테리오를 상대로 경기할 때는 항상 패배했기 때문에 에디 게레로는 점점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레이 미스테리오를 공격하고 나서 감정적인 대립을 시작한다. 에디 게레로는 레이 미스테리오의 아들 도미닉이 자신의 친자라는 것(물론 각본상으로)을 폭로하고 도미닉의 양육권을 요구하기 시작해 섬머슬램에서 래더매치를 가져 에디 게레로가 다시 한 번 패했다. 그 다음 스맥다운에서 열린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스틸 케이지 경기에서, 철창을 빠져나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프로그 스플래쉬로 핀폴승을 거두며 대립을 종결했다.[7]

에디 게레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데이브 바티스타의 도전자가 되어 겉으로는 호의적으로 다가가면서 속으로는 바티스타의 빈틈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 야비하기보다는 익살스러웠고, 바티스타에게 심리전에서 역관광을 당하는 해학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에디 게레로의 팬층이 되살아났다. 바티스타와 불안불안한 관계가 이어지던 중 갈수록 팬들이 에디 게레로를 바티스타보다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자 에디가 태그팀 경기 중에 자신의 파트너인 바티스타가 미스터 케네디에게 체어샷을 당할 위험에 처할 때 자신이 대신 맞기도 했으며, 레이 미스테리오를 괴롭혔던 일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며 턴페이스했다.

바티스타가 케인&빅 쇼에게 더블 초크슬램을 맞고 나서 어깨에 부상을 입어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바티스타(c) vs 에디 게레로 vs 랜디 오턴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대진이 잡혔는데, 랜디 오턴은 언더테이커와 대립하던 중이라 사실상 에디 게레로가 챔피언에 오를 상황이었다.

3 별세

하지만 2005년 11월 13일에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으며, 당일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쿠당탕 소리를 듣고 같은 호텔 방에 묵던 조카 차보 게레로가 급히 들어갔지만 끝내 그는 하늘나라의 링으로 떠났다. 이에 RAW 및 스맥다운은 에디 게레로를 추모하는 헌정 쇼로 진행되었으며 WWE의 선악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그의 이니셜인 EG가 새겨진 팔찌를 차고 다니는 선수들도 있었다.

크리스 제리코가 그의 두번째 자서전 Undisputed에 따르면 어느날 같이 식사를 하고 제리코가 10%의 팁만 남기자 에디는 "적어도 20%는 줘야지. 너야 2달러나 4달러나 큰 차이는 없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 돈이 한달 전기세를 낼 수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제리코는 항상 팁을 최소 20%를 낸다고 한다. 레슬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배려를 볼수 있는 일화다.

항상 정통 백인이 최고 자리에 오르는 WWE에서도 뛰어난 입담과 유머 그리고 정열적인 경기로 팬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원래 작은 키(175cm)로 스피디한 테크니션 레슬링을 주로 하던 그가 WWE에서 거구의 레슬러들과 체격적으로 어느정도 맞춰야 했기에 스테로이드 등 무리한 약물복용으로 늘린 체중은(100kg) 건강에 심한 무리를 줬으며, 교통사고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과용하게 된 진통제는 그의 삶을 갉아먹었다.

크리스 벤와, 레이 미스테리오, 차보 게레로에 의해 2006년 WWE 명예의 전당에 당시엔 가장 젊은 나이로 헌액됐다.[8]

생전 WWE 관련 게임에서의 능력치나 위상은 뛰어나지 못한 편이였으나 사후 최상위권 능력치를 보유한 캐릭터가 되었다. 또한 해금조건도 존재하는 히든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9]

4 유족들

아버지 고리 게레로는 멕시코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레슬러로서[10], 텍사스주 엘 파소에 엘 파소 콜로세움이라는 레슬링 도장을 만들었다.

아버지 고리 게레로의 영향으로 형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11], 핵터 게레로, 만도 게레로 또한 레슬링 업계로 진출했다. 그중 핵터 게레로는 TNA의 스페인어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WWE에서는 Gobbledy Gooker로 유명하다(...)

삼촌인 엔리크 레인즈와 그의 아들인 헤비어 레인즈도 멕시코에서 레슬러로 활동중.

아내였던 비키 게레로와는 1990년 결혼해 장녀인 샤울 게레로와 차녀인 셰레린 게레로를 낳았으나, 에디의 약물과 음주문제 때문에 잠시 이혼했었다. 이혼 당시에도 비키는 에디를 챙겼으며, 셋째 딸 케이린 게레로를 낳았다. 후에 에디가 사랑을 고백하며 재혼하였다.

에디 게레로 사후 3명의 딸을 먹여살려야 했던 비키 게레로는 WWE에 고용되어 스맥다운의 단장으로도 임명되었었고, RAW에서는 단장을 2번이나 했었다. 이후 스맥다운의 이미지 컨설턴트 및 돌프 지글러의 애인 기믹으로 놓여져 악역을 수행하다가 2014년 6월 WWE와 결별하고 제약 회사 직원으로 입사했다. 장녀 샤울 게레로 또한 한때 라켈 디아즈라는 링네임으로 WWE의 산하단체에서 활동하다 그만두고 수의학을 전공했다. 이후 보드빌런스에이든 잉글리쉬가 샤울 게레로와 약혼을 발표했다.

조카인 차보 게레로 Jr.은 2011년 스스로 방출을 요구해 WWE를 떠나 루차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한다.
  1. 이 테마곡은 원본이 사라진 관계로 풀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은 모두 다 특정 부분을 루프시킨 것.
  2. 차보와 함께한 태그팀 로스 게레로스 일때도 이 테마곡이다. 차이라면 주어가 We냐 I정도.
  3. 실제로 아트 바에게 프로그 스플래시를 전수한건 에디 게레로다.
  4. 이 이적은 당시 스맥다운 각본진 수장을 맡기도 한 폴 헤이먼이 적극적으로 그 두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RAW의 시청률 하락이 계속 되자 스맥다운의 여러 선수들이 RAW로 이적하게 되고, 결국 크리스 제리코마저 이적하면서 폴 헤이먼이 빈스 맥맨에게 건의했다. 당시 빈스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그의 요구를 비웃었으나, 이를 시작으로 폴 헤이먼은 스맥다운의 경기력과 각본을 모두 수준급으로 만들었다.
  5. 에디 게레로의 우승 때문에 잘 언급이 되지 않지만, 차보 게레로도 이날 레이 미스테리오를 이기고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이 된다. 한 PPV에서 삼촌과 조카가 동시에 챔프가 된 것.
  6. 로얄럼블 2004에서의 앙금이 남아있던 빌 골드버그가 난입해 브록 레스너에게 스피어를 날린 것도 한몫했다.
  7. 이 스토리는 WWE 사상 최악의 스토리 중 하나로 꼽히는데, 에디 게레로는 워낙 팬들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는 선수였기 때문에 레이 미스테리오를 공격하고 나서 성사되었던 2005 저지먼트 데이까지만 해도 에디를 응원하는 팬들이 레이를 응원하는 팬들보다 많았다. 그래서 양육권 분쟁이라는 희대의 막장 각본을 투입하고나서야 에디 게레로를 응원하는 팬들이 좀 없어졌다.
  8. 그리고 이 최연소 헌액자 기록은 에지가 경신했다.
  9. WWE 2K14에서는 생애 첫 WWE 챔피언을 브록 레스너에게 따낸 것을 반영해서 최고 난이도 노 웨이 아웃에서 브록을 상대로 승리해야 해금된다. 오버롤도 93으로 전체 선수중 헐크 호건 등을 포함하여 공동 2위. 똑같은 개발사에서 만든 WWE 슈퍼카드에서는 레전드 티어까지 존재하던 시절 숀 마이클스, 더 락과 함께 3대장이라 불리는 끝판카드였다.
  10. 차보 게레로가 피니쉬로 사용했던 '페이스버스터 고리 밤'이나 카멜 클러치 같은 유명 기술의 창시자이다.
  11. 차보 게레로의 아버지로 차보 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