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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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의 서울캠퍼스(본교)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ERICA캠퍼스(분교)에 관련된 내용은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문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실천(愛之實踐)

Love in Deed and Truth

The Engine of Korea, Hanyang University

한양대학교 홍보영상

목차

1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상징

1.1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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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좌측 건물이 신본관, 우측 건물이 구본관(1954년 완공)이다. 한양대역 2번 출구인 '애지문'에서 나오면 바로 이 거대한 건물들이 맞이해줄 것이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들어가 볼 일이 그다지 없는 건물들이지만, 그래도 졸업사진을 찍을 때는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가을철 본관 앞 광장에서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졸업사진 찍는 사람들일 것이다.

구본관 옆에 자리한 신본관의 설계는 류춘수(건축 70년 졸)씨가 담당했다. 신본관과 구본관은 옆구리가 구름다리로 이어져있다. 구름다리 성애자 신본관 앞에 학교 설립자인 백남 김연준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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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경 까지 사자상 주변에 조경이 꾸며져 있었다.

2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특징

2.1 캠퍼스 내의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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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내에는 지하철역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내부에는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2번 출구가 있다. 이 2번 출구의 이름은 '애지문(愛智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애지문'은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인 '愛之實踐'에서 사랑 '愛'와 지혜로운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의 지혜 '智'를 합성해 만든 명칭으로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으로 통하는 문이며 지혜로운 사랑의 실천자들이 더 큰 세계로 나가는 문'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정문 역할을 한다. 거기에 2009년경에 현 의대 건물 근처에 있던 학교 정문이 철거되면서 학교 외부와 학교를 잇는 정문은 이 애지문밖에 남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아침 8시 56분에 내려도 (체력만 받쳐준다면), 1공학관에 있는 9시 첫수업에 지각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제3캠은 이런 거 없다. 그냥 뛰는거다.

2.2 한양공법

캠퍼스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건물간 이동에 있어 적잖은 체력이 소모된다. 인문대, 자연대, 사범대는 언덕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밤에는 서울의 야경이 보이며,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꽤나 가깝게 느껴진다. 이처럼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점 때문에 생긴 한양공법이라고 불리우는 건축 방식이 눈에 띈다, 1층이 아닌 3층에 정문과 로비가 건설되는 기이한 모습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한편 한양대학교 건물 특징 중 하나로 출입구가 2개 이상인 경우엔 각각의 출입구의 층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이 있다. 이 역시 한양공법으로 불리는데, 지형의 고저차가 심한 학교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건물의 여러 층에 입구를 낸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학생이 지나다니는 사회대의 경우는 1, 3, 4층에 출입구가 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1층과 4층 사이를 많이 이동한다. 학생회관 건물은 2, 3, 4, 5층에 출구가 있고, 제1공학관은 1층과 3층에 출구가 있다. 법학관은 제1법학관 1층으로 들어가 조금만 걸으면 어느새 제2법학관, 그리고는 제3법학관 4층이 되어 있다. FTC도 모두 1층으로 알고 있는 층이 3층이다. 또한 IT/BT 건물의 로비 역시 3층이다.학교의 경사가 가파르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학생들은 이런 출구들을 이용해서 건물들 사이를 이동하는데 이를 '포탈'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게다가 건물들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구름다리 에드 온 를 만들어 놓아서, 학교의 절반을 구름다리만 건너서도 이동할 수도 있다.[1] 심지어는 학교의 상징이 되는 구본관 건물과 신본관 건물도 옆구리를 서로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역사적인 건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 안되나? 아니야 그런 공중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는 것도 한양대이기에 가능한거겠지

정말 엄청난 수준의 쇼미더머니를 보여주는 학교. 심지어 SK하고 LG그룹에서 지원을 해 줄 요망이 있었는데,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매년 건물을 엄청나게 새로 짓는다. 거의 매년 공사를 한다고 보면 된다. 복학후 달라진 캠퍼스를 돌아보다 보면 같은 다른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다. 여하튼 대학 여기저기에 학생 편의 시설이 리모델링 & 신축 되고 있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나름 좋을 듯. 오늘도 학교 어딘가에서 새로운 건물이 리모델링 & 신축 되고 있다.[2] 2015년 4~5월 경에 완공된 '정몽구 미래자동차 센터'는 미래자동차 공학과 학생들과 현대맨들을 위해 만든 강의동 겸 연구센터로 완공 전까지는 여러가지 별칭이 있었다. 공대 건물인 공업 센터에서 따온 몽구스센터(일명 몽센), 제 1,2 공학관에서 따온 제 3 몽학관 등이 있다. 완공 전부터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받은셈이다.

2015년 9월 경에는 의대 계단 강의동 바로 옆 자리에 기숙사가 신축되고 있고, 병원 동관 근처에서 의대 연구동이 하나 신축되고 있는 중이다.근데 10월이 되니 연구동이 지어지다가 사라졌다.

3 개설 학과FM

이하의 개설 학과들은 공식 사이트에 나오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3.1 학부

공과대학 - 선봉공대[3][4]

의과대학

  • 의예과/의학과 - 단결의대

인문과학대학 - 청년인문[15]

사회과학대학 - 진군사회(대)

자연과학대학 - 혁신자연

정책과학대학 - 진리정책[17]

법과대학[19]

  • 법학과 - 해방법대

경제금융대학[20]

  • 경제금융학부 - 전진경금[21]

경영대학 - 민주경영

사범대학 - 실천사범

생활과학대학 - 주체생활

음악대학 - 민족음대

예술체육대학 - 불꽃예체

국제학부 - 자유국제

간호학부 - 민중간호

산업융합학부 - ?

3.2 대학원

일반대학원
일반대학원의 학과편제는 기본적으로 윗단락의 학부 학과편제와 동일하다(5계열, 92개 학과). 그리고 그에 더해 학연산협동과정(34개 기관)과 학과간협동과정(나노반도체공학과, 과학기술정책학과 등 21개 학과)이 추가로 더 있다.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3.3 학과 명칭 변경사

과거 서울캠퍼스의 컴퓨터 관련 학과 명칭은 공과대학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였다. 참고로 공과대학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의 04학번 당시 명칭은 공과대학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였다. 더 정확히는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가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와 전기생체제어공학부로 나뉘어졌다. 게다가 09학번부터는 또 다시 공과대학이 개편되면서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는 전자통신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 두개의 학부로 나누어지고, 정보통신대학과 건축대학이 공과대학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개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10학번부터는 전자통신공학부가 융합전자공학부[25]로 개편되고, 12학번부터는 컴퓨터공학부에서 컴퓨터전공 외에 소프트웨어전공[26]이 신설되었다. 최근 한양대 공대(정통대 중심)의 변천사를 알려면 특성화 학과 문서의 융합전자공학부 항목 참조.

한편 연극영화학과는 타 학교와는 달리 오랫동안 인문과학대학 소속이었다가 2006년 2학기에 체육대학 소속이었던 무용학과와 함께 예술학부로 분리되었으며 이듬해 연극학전공(연극학과), 영화학전공으(영화학과)로 나뉘었다. 이후 2011년부터 다시 연극영화학과로 통합되었다. 한편 통합 이후 2013년부터는 체육학부와, 무용학과 등과 함께 예술체육대학 소속이 되었다.

4 프로그램

4.1 다이아몬드 프로그램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젝트. 2012학년도에 신설된 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전공 및 2014학년도부터는 행정학과를 포함해 7개의 다이아몬드학과와 2개의 특별인재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이아몬드학과에 입학하거나 특별인재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등록금 면제, 장학금 지급, 해외 연수 프로그램, 취업 보장 등 다양한 혜택이 있으며 이 혜택은 학과와 프로그램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4년 전액 장학금은 모두 주어진다. 다만 직전학기 학점 3.5 이상이 지급기준[27]. 2012학년도에 신설된 컴퓨터공학부 소프트웨어전공은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학과로서[28], 현재는 LG전자의 지원도 추가되었다. 그리고 2014학년도부터 이전까지 사회과학대학 소속이었던 행정학과가 정책과학대학으로 이동하면서 다이아몬드학과에 합류했다.

4.1.1 다이아몬드학과

  • 공과대학 융합전자공학부
  • 공과대학 미래자동차공학과
  • 공과대학 에너지공학과
  • 공과대학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29]
  • 경영대학 파이낸스경영학과
  • 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
  • 정책과학대학 행정학과

4.2 특별인재 프로그램

  • 한양예비교수 인재[30] 현재는 장학 소개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아 폐지된것 같다.
  • Honors Program[31]

5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지리, 명물

한양대학교의 캠퍼스 건물에는 번호가 붙어있다. 과거에는 건물이름 대신 번호로 불렀다고 하나, 현재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다만, 수강신청 시스템 등에서 건물이름 대신 번호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어 건물들의 번호를 정리하였다. 건물외부에 번호 좀 써주면 좋을걸... 50번까지는 완공순서에 따라 번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예외가 있어 정확한 규칙을 알 수가 없다.이럴꺼면 번호를 애초에 왜 붙였는지...

번호이름번호이름번호이름번호이름번호이름
1역사관(구본관)2한양플라자(학생복지관)3백남학술정보관4사회과학관5제1공학관
6인문과학관7의과대학 본관8제1의학관9제2의학관10제2음악관
11국제관(구.대학원)12사범대학 본관13공업센터 본관14신소재공학관15병원 본관
16학군단17경제금융관/법학학술정보관18학생회관19한양여대 본관20한양초등학교
21제1음악관22박물관23제1학생생활관24의대 계단강의동25병원 동관
26백남음악관27제2공학관2829병원 신관30
3132올림픽체육관33공업센터 별관34생활과학관35
36자연과학관37제1법학관3839제2학생생활관40과학기술관
4142동문회관43사범대학 별관4445병원 서관
46산학기술관47제2법학관48HIT(한양종합기술원)4950제3학생생활관
53행원파크74사자가 군것질 할 때77IT/BT관88제3법학관89경영관
90신본관91개나리관(여자기숙사)92국제관(외국인기숙사)[32]94한양테크노숙사(대학원생기숙사)100FTC
101재성토목관126노천극장127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33]953융합교육관

비어있는 칸은 한양여대 혹은 한양사이버대학교 소속 건물이거나 병원 부속 건물이다.

5.1 구본관(역사관), 신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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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관(좌측), 구본관(우측)

서울캠퍼스 조성 당시 지어진 구본관의 노후화와 공간 협소의 문제가 제기되었었고, 개교 70주년 기념으로 좌측에 신본관을 신축하였다.

5.2 한양플라자(학생복지관), 학생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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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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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

정식 명칭 진사로(애지문-정문을 잇는 길)[34]한마당에 접해있는 건물들이다. 한양대의 상업시설과 학생복지 및 자치공간 등으로 활용된다. 두 건물 모두 1층에는 이런저런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위에는 총학생회 등의 자치조직들과 다수의 중앙동아리, 학내 언론사들이 입주해 있다. 보통의 학생들은 두 건물에 자리한 학생식당들(학생식당[35], 사랑방[36], 한양중식당[37])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각 직녀관, 견우관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그냥 한양플라자(혹은 줄여서 '한플')와 학생회관으로 부른다. 두 건물 모두 오래 전부터 철거 내지 리모델링 떡밥이 존재해왔다.

  • 한양플라자

한양플라자 건물의 경우 묘하게 신본관과 각도가 맞지 않는데다가 신본관의 일부를 가린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서울캠퍼스 조성 후 본관에 이어 두번째로 지어진 건물으로 낙후된 정도가 상당하다. 철거 떡밥도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실제로 철거계획이 있는것도 확인되었으나, 결국 2015년 여름 리모델링을 하였고, 비트플렉스와 전대차 계약을 맺었다. 전대차 계약기간은 5년이다. 최소 5년간 철거는 못한다 한양플라자의 1층에는 편의점, 카페, 푸드코트, 문구점, 복사실, 사진관, 기념품점 등의 복지,상업시설이 존재하며, 2층에는 사회봉사단, 3층에는 학생식당이 위치한다. 나머지 공간에는 동아리연합회 소속의 동아리방들이 존재한다. 의외로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6층 건물이다.

  • 학생회관

6층 건물인 학생회관에는 2, 3, 4, 5층에 각각 출입구가 있는데 막상 1층에서 건물 내부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원래 이 건물 2층에는 한양서비스센터가 위치하여 각종 문서발급, 학생증 재발급 등의 민원업무가 이루어졌으나, 2013년에 조직개편을 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한동안 비어있던 학생회관 2층 가장 넓은 자리에 북카페가 들어섰다(엄청 쾌적). 학생회관에는 교내서점비싸다과 교내문구점비쌌지만 한양플라자에 모닝글로리가 들어오고나서 조금 저렴해졌다이 1층에 있으며, 3층에는 사랑방 학생식당과 장학복지회, 4층에는 양성평등센터와 여학생휴게실, 5층에는 총학생회, 신문사, 영자신문사 그리고 6층에는 방송국과 피트니스센터가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한마당'이라고 불리는 광장이 있는데, 88계단과 158계단이 연결되어 있고, 정문과도 바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다. 동아리 가두모집이나 축제 주점, 가설무대를 이용한 공연 등의 행사들이 자주 열린다. 최근에 교내 주차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마당에 전체적으로 주차장 도색이 이루어졌는데, 국제관(구.대학원)공사가 끝나고 주차장이 확보되어 현재는 주차장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보행자 안전문제때문에 우체국 트럭을 제외한 차량의 출입도 현재는 제한되고 있다.

5.3 제1, 제2공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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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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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학관
  • 제1공학관

본관 사이 계단으로 올라오면 왼쪽에 보이는 건물. 공과대학의 강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진행된다. 서울캠퍼스 조성과 동시에 지어진 건물으로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오래된 건물이다. 2003 ~ 2004년에 리모델링을 겸한 증축공사를 하여 4층에서 6층으로 증축하였다. 평균적으로 50명이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 약 40개가 있다. 그 덕분에 매해 신입학 전형시험(수시)과 편입학시험 뿐만 아니라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변호사시험 등 각종 외부 시험의 장소로 자주 대관된다. 그 때마다 건물이 폐쇄되는 경우가 많아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시험기간을 전후해서 건물이 폐쇄되면... 이는 공대 학생회의 해묵은 떡밥 중 하나이고, 일단 공간분리를 통해서 공대도서관과 사물함 공간을 이동하는 정도의 선에서 조치가 이루어졌다. 수업이 많고 사람도 많다. 공대생 전부가 동시에 시험을 보는 기초과학(미적분, 일반물리, 일반화학) 과 공업수학 시험이 치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1층에는 복사실, 공과대학 학생회실, 열람실, 사물함실이 있으며, 3층에는 제1공학관 수업지원실과 PC실, 휴게실, 6층에는 공학대학원의 행정팀이 위치하고있다.

  • 제2공학관

2공학관의 경우 상당히 아스트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 출입구는 3층. 건물전체높이는 8층이여서 그냥 건물전체가 4층인줄 알지만 대운동장쪽에서 보면 8층높이의 높은 건물일 뿐만 아니라, 지하 2층이지만 실제로는 지상에 있다. 따라서 지상 1층과 지하 2층에 각각 출입구가 한개 씩 더 있다. (이...이게뭐야...지하지만 지상이잖아)
200명가량 수용가능한 계단식 대형 강의실이 8개 있어서 대형강좌가 개설되는 강의동이다.
건물의 거의 대부분이 강의실인 1공학관과 달리 6층에는 정보통신처, 1층에는 언론정보대학원, 3층에는 관리처 설계팀, 4층에는 창의·융합교육원[38]이 입주해있다.

이 건물의 4층에는 PC실[39]과 스터디룸, 그리고 제2공학관 수업지원실이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건물 번호를 따서 오다시(5-) 와 이칠다시(27-) 로 주로 불렀지만 역시 요즘엔 별로 쓰이지 않는 호칭이다.

5.4 공업센터, 신소재공학관, F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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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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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센터 본관(좌)과 신소재공학관(우)
  • FTC(Fusion Technology Center)

자연대와 공대의 교수님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노과학기술연구소와 의생명공학대학원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원이 위치해 있으며 각종 벤처기업의 연구시설 또한 입주해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서울지부, 삼성전자-하이닉스 공동 반도체 연구센터 또한 입주해있는 건물이다. 3층에는 국제협력처와 CNN cafe가 있다. 에너지공학과 학생이라면 강의 들으러 올때가 있으며, 국제협력처가 위치해있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왔다갔다 한다. 융합전자공학부 실험실, 기계공학부 실험실, 에너지공학부 실험실이 위치해있다. 건물을 보고 눈치채기 힘들겠지만 우리가 1층이라 인지하는 입구가 바로 3층이다! Honors Program 학생 휴게실이 위치한 건물이기도 하다.
원래 이곳은 대운동장과 그 가장자리를 달리는 도로였으나, 어느샌가 대운동장 크기를 조금 줄이고 도로를 옆으로 조금 밀더니 저렇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지어놓았다. 그 덕에 건물 평면이 삼각형이 되어서 사다리꼴 모양의 강의실이 있는 등 특이한 건물이다.

  • 공업센터 본관

전자, 전기, 기계, 산업공학과(제2공대, 제4공대) 교수님들의 연구실과 실험실, 그리고 공과대학 행정팀과 과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의 3층은 왕십리역을 연상케하는 환승의 거점이다. 건물 오른편의 구름다리를 통해 제2공학관 2층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계단 쪽에 연결된 통로를 통해 공업센터 별관 5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건물 우측의 구름다리는 신소재공학관 3층으로 이어져 있다.

  • 공업센터 별관

본관과 마찬가지로 공대 교수님들 연구실이 모여있는 곳이다. 현재 서울시로부터 증축허가를 받았으며, 리모델링을 통해 융복합 연구를 위한 Media Lab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구름다리를 통해 FTC와 공업센터 본관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업센터 별관 또한 괴상한 층 구조를 보이는데, 공업센터 3층에서 별관으로 들어가면 5층이 되어있는 기적을 보여준다.
별관 5층에서 구름다리를 타면 FTC 4층에 도착하게되고, 4층에서 한층만 내려가면 3층 인데건물 출입구가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 신소재공학관

지하1층에는 학생식당, CU, 문구점, 복사실이, 7층에는 교직원식당이 있다. 화학공학과, 유기나노공학과, 신소재공학과(제3공대) 교수님들의 연구실과 실험실, 그리고 과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도시대학원이 이 건물 6층에 있으며 도시대학원 사무실과 연구실, 강의실이 위치해있다. 3층에 공업센터, 과학기술관과 연결되는 구름다리가 있다.

  • Student Computing Lab(예정)

공업센터 앞 넓은 주차장부지를 활용한 지하캠퍼스 계획이다. 대규모 컨퍼런스홀과 재학생 컴퓨터 교육 및 학습공간 확보를 위한 공간확보가 목표이다. 언제쯤 지어질까 주차장이나 넓혀라 아침마다 전쟁

  • 구름다리 정리
제2공학관공업센터 본관공업센터 별관FTC
6층7층8층↑
5층6층7층
4층5층7층6층
3층(출입구)4층6층5층
2층3층(신소재공학관 연결)5층4층
1층(출입구)2층4층3층(출입구)
지하1층1층(출입구)3층(출입구)2층
지하2층(출입구)2층1층(출입구)
1층(출입구)

5.5 재성토목관, 과학기술관, 국제관, 건축관(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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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토목관건축관 조감도국제관(구.대학원)
  • 재성토목관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50학번인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이 기부하신 55억원에 학교 발전기금을 더하여 신축한 건설환경공학과(토목공학) 전용 건물. 지하 2층 지상 7층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 건물 역시 지하의 경우에는 경사 때문에 반지하의 형태를 하고 있다. 디자인도 수려하여 제3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차지하였다. 건물의 기본 디자인은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배의 형상이다. 실제로 살곶이 다리를 건너 청계천 위에 보이는 재성토목관을 보면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로지 건설환경공학과(토목공학)을 위한 건물이다.

한해 정원이 5~60명 사이인 건설환경공학과 학부생, 교수진, 연구진이 사용하며 2학년부터는 모든 전공수업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재성토목관은 한양대학교에서 가장 낮은 고도에 위치하기 떄문에 2학년 이상이 되면 교양교과목 외에는 행당산을 탈 필요가 없다. 등하교도 애지문(2번출구)으로 하지 않고 3번출구로 다닌다. 건물 내에 학과 전용 도서관이 존재한다. (물론 타 단과대학 건물에도 학과 전용 도서관은 있다)

지하에는 양옆 총길이 32미터가 넘는 조파수조가 있으며 대규모 해안 항만 실험을 진행한다. 지진해일 및 방재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재난 영화 자문을 많이 맡는 편이며, 실제로 영화 해운대의 자문을 조용식 교수님 연구실이 맡아서 진행하였다. 건물 어딘가에 432코어 슈퍼컴퓨터를 숨겨 놓고 연구를 한다. 슈퍼컴퓨터는 주로 시뮬레이션 및 수치해석을 수행하는데에 활용되며 일례로 원전 구조물에 비행기를 충돌시켰을때 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선배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장학금 등) 연구분야(서울대도 떨어진 BK21플러스 사업을 따내기도 한다)와 실무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2014 QS세계대학평가 학과별 평가 기준에서 51~100위에 랭크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에 이은 2위) 기술고시 토목직렬에서도 꾸준히 많은 합격자를 배출해오고 있다.

  • 과학기술관

과학기술관에는 주로 건축공학과, 건축학부생들의 실습실, 스튜디오 그리고 건축학부, 건축공학, 도시공학, 자원환경공학과(제1공대) 교수님들의 연구실이 있다.

  • 국제관

구. 대학원 건물. 굉장히 허름한 건물이었으나 신한은행이 85억을 기부하여 국제관으로 새롭게 리모델링 및 증축을 하였다. 이름이 바뀌며 대학원 행정팀은 신본관으로 쫓겨났다이사를 하였다.
국제학부, 원자력공학과공대는 안끼는 곳이 없다에서 주로 사용하는 건물이며, 사회교육원과 국제어학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CNN카페 한양대3호점도 지하에 있다.

  • 건축관(예정)

2016년 6월 착공했다.

5.6 IT/BT관, 산학기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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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BT관(제2산학기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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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기술관

다른 공대건물들과 달리 떨어져 있는 유이한 건물이다. 공대건물들 끼리는 붙어있거나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지만, 지리적인 문제때문에 이 두 건물만 따로 떨어져서 한동안 제3캠퍼스로 분류되었었다. 현재는 공대소속감 때문인지 제3캠퍼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다.

  • IT/BT관(제2산학기술관)

건물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름은 어느 건물보다 많이 바뀌었다. 원래 제2산학기술관으로 지어졌으나, 정보통신대학이 사용하여 정보통신관으로 불렸다가, 정보통신대학이 공과대학에 통합되면서 IT/BT관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학교는 다시 제2산학기술관이라는 이름을 공식명칭으로 밀고있는 것 같다. 포털(HY-in) 시스템 상에서는 제2산학기술관(IT/BT관)으로 표시된다. 다만 택배를 시키는 등 주소지로 사용할 때는 ITBT관, 정보통신관을 사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IT계열 학과인 컴퓨터공학부, 융합전자공학부, 정보시스템학과와 BT학과인 생명공학과 교수님들의 연구실과 실험실이 주로 있는 건물이다. 과거에 정보통신대학이 있었을 때, 정통대 소속의 교수님들이 이곳에 연구실을 만들었고, 공대와 통합된 현재 연구실을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시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사실 여기도 지하나 다름없다은 연극영화학과가 사용하며 건물 한쪽에는 무용학부가 사용하는 연습실도 있다.3층로비에 이쁜 여학생이 지나가면 십중팔구 무용과 학생이다
건물 주출입구가 3층에 있는 괴랄한 구조이다. 이쯤 되면 이게 정상인 것 같다

  • 산학기술관

이런저런 이유[40] 로 다른 공대건물에 연구실을 마련하지 못하신 교수님들과 도시공학과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이다. 이름만 산학기술관이지 사실 산학기술과 큰 연관이 있는 건물은 아니다. 오히려 FTC나 HIT가 기업공동연구실이나, 산학협력단 사무실이 위치하는 등 산학협력과 관련된 역할을 하고있다.

역시 한양대 건물스럽게(?) 주출입구는 1층이 아닌 2층이다.

같은 공대건물이지만 이 두건물만 묘하게 소외된 느낌이다. 한동안 공대학생회의 공약으로 IT/BT가 주 생활권인 학생들도 열심히 챙기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5.7 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공사당시 조감도
준공식 직전의 모습.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인재산 수백억원을 기부하여 건립된 건물이다. 2015년 5월 29일에 준공되었다. 준공식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한 현대차그룹의 임원진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한양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과 및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의 연구진들이 입주하고 있으며, BMW 산학연구실도 5층에 있다. 정몽구 회장 개인 기부금 외에도 기타 자동차 기업들의 기부금도 적지 않았기에 이러한 산학연구실이 이 건물에 위치하게 되었다. 건물 앞에 있는 길을 통해서 본관에서 제2공학관으로 갈 수 있다.

지상 5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지하 1층에는 차량실습실과 지하주차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BBQ매장을 비롯한 학생편의시설 등도 입주할 예정이다. 노천극장 방면 지하 공간은 학교 측과의 협의 문제로 인해 빈공간으로 남아있다고 전해지는데 확인이 필요하다. 지상 1층에는 정몽구 컨퍼런스홀을 비롯한 강의실들이 만들어졌는데, 한양대에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2층에는 넓은 스터디 공간과 스터디룸, 실습실이 마련되어 많은 학생들이 이용 중이다. 3층은 현재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는 공간이고, 4층은 대학원 연구실 및 교수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5층에는 현대차를 제외한 기업들의 산학 연구실과 대학원 연구실이 있다.

건물 3층 출입구는 현대자동차 연구실들의 산업기술 보안 문제로 인해 상시 폐쇄 상태이고,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진과 현대자동차 관련자만 통행이 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고 현재 통행 가능한 문은 정면에 위치한 정문이고, 이외의 출입문들은 모두 출입할 수 없다. 2층 출입문의 경우 미래자동차공학과 소속 학생만 출입이 가능했으나, 타과생들의 반대로 인하여 폐쇄되었다. 따라서 현재 출입 가능한 문은 1층 정문 뿐. 제2공학관 - 제1공학관 포탈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3층과 5층에는 정원이 있는데, 빼어난 조경으로 인해 외부인의 이용이 많았던 터라 관리가 쉽지 않았고, 결국 현재 3층은 잠정 폐쇄된 상태다근데 안쓸거면 왜 만든거야

2015년에 사회과학대와 한양플라자, 신본관 사이에서 발생한 차량 사고로 차량 통제가 강화되어 한양대학교 건물 중 제 2공학관과 함께 정면으로의 차량접근이 전면 통제되어 있다.

2016년에 지하 1층의 상가가 열렸다. 위드미 편의점, 카페 티아모, 크라제버거 등이 입점해 있는 상태.

5.8 노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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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극장

제 2공학관의 정문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커다란 무대. 설립자가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출신이라서 노천극장에 대한 애정이 있어 서울캠퍼스 조성 당시 모교에 버금가는 노천극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스테이지 앞의 운동장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캐치볼을 하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운동장을 둘러싼 계단에는 점심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도시락을 까먹는 등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가을이라 잔디가 노래서 황폐해 보이지만 여름이면 전망이 무척 괜찮다. 축제 기간에는 운동장에 의자를 몇 백개 가져다 놓고 초청 가수를 불러 공연을 하기도 한다. 2010년 월드컵 때는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여 수천 명의 학생들이 응원전을 펼쳤었다. 2011년에는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10-11의 결승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2014년 CJ와 함께 노천 극장을 허물고 상업시설과 뮤지컬공연장을 짓기로 하였으나, 학생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여 철회되었다. 노천극장은 학생들의 휴식공간 /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5.9 고공캠퍼스(인문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사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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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학 본관자연과학대학인문과학대학

사범대 본관. 왼쪽에 별관도 있다. 앞에 있는 조형물은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1989년에 세운 것. (사회과학대학을 제외하면) 고공캠퍼스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이곳과 백남학술정보관 일대가 언덕 정상이다.

  • 자연과학관

자연대는 문리대에서 분리된 후, 본래 지금의 한양플라자 건물을 쓰고 있다가, 한양대역 개통 후 진동 때문에 정밀기기를 쓰기가 힘들어져 이곳으로 이사왔다(...). 인문과학관과 마주보는 구관과 뒷쪽의 신관이 있는데, 구관이 상당히 노후했지만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여름까지 리모델링을 하였다. 리모델링 이후에는 내부가 매우 깔끔해졌고 구관과 신관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자연과학대학 소속의 4개 학과(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가 층별로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행당산의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이라 등교하기가 험난하다. 월요일 1교시에 이곳에서 수업이 있다면(...)

  • 인문관

인문관은 최근까지 무허가 건물이었다. 건물이 바위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서울시에서 무허가 건물이니 허물라고 했지만 학교에서 배째라는 식으로 버텨서 시에서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그래서 07년 국문과 학생회 이름이 무허가 학생회구나 실제로 인문과학관 뒤쪽은 바위절벽... 오래된 된 건물들이었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차례대로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다. 인문대 옥상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방향을 구분하지 않고 감탄을 자아냈었다. 그러나 2015년에 큰화재가 발생할 뻔한 사고가 있은 후로는 옥상이 폐쇄되었다. 현재 한양둘레길 사업의 일환으로 인문대 뒷쪽에 길을 추가로 내어 벤치 등을 설치하였다. 인문대 옥상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야경도 좋은 편이다.

  • 사범대학 본관/별관

사범대학 건물도 과거에는 투박하고 멋이 없는 건물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 새로 리모델링하면서 학교에서 손꼽히는 멋진 건물이 되었다. 현재는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이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5.10 사회과학관/공공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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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책대학원(사회과학관)

원래 사회과학대학은 현재 경제금융관/법학학술정보관으로 쓰이는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과대학, 상과대학 설립 등으로 현재의 건물로 수십년 전에이사왔다. 현재 건물은 원래 제1교육관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건물이고, 제1공학관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리모델링을 하였지만, 건물 외벽등에서 오래된 느낌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과학관은 리모델링 및 공공정책대학원 증측 후 고공캠퍼스 쪽에 새로 출입구가 생겼는데[41], 이곳이 고공캠퍼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새로운 통로로 각광받게 되었다.(...) 공공정책대학원 측에서는 면학 분위기를 저해한다며 싫어하고 또한 전기료 절감이라는 이유로 한 때 공공정책대학원 측 엘리베이터(전층 운행. 사회대 엘리베이터는 사회대 소속인 1층과 3층 사이만 운행한다.)를 폐쇄했지만 학생들의 극렬한 항의에 부딪쳐 철회. 현재는 싫어해도 별 수 없는지 건들지 않는다.
현재 사회과학대학, 국제관광대학원, 공공정책대학원이 사용중이다.
강의실 번호의 가운데 5가 있으면(X5Y꼴) 증축된 공공정책대학원 부분의 강의실이다.

5.11 백남학술정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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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학술정보관

한양대학교의 중앙에 위치한 크고 아름다운 지하 3층, 지상 6층짜리 중앙도서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마징가 몸통으로 불리우며 공대생들에게는 원자력 발전소를 연상시킨다. 소문에 따르면 이 건물의 원래 디자인은 지금 형태와 달랐다고 한다. 백남학술정보관의 형태는 옆으로 긴 상자+원통이지만 원래 디자인은 큐브+원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설계디자인 안 발표 날 CG와 모형을 보고 총장이 돈이 너무 많이 들 것이라 판단했던지 "도서관은 자고로 성냥갑같이 생겨야지"라고 말하고 옆으로 긴 상자 모양으로 만들라 지시했다고 한다. 도서관 설계를 맡았던 건축학과 교수는 "그렇다면 원통 하나만 끼워넣어도 되겠습니까" 물었고 그렇게 현재 백남학술정보관의 형태가 생겨났다고 한다.(..)
한양대역에서 내려서 본관 계단을 오른 뒤 언덕을 조금만(?) 타고 올라가면 볼 수 있다. 학생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으며[42] 학생증이 없는 졸업생의 경우 한양대학교 사이트에서 졸업생용 패스를 받으면 입장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도 열람증을 발급받으면 입장 가능하다.

1층 보안센터를 통과하면 정면에 커다란 북카페가 있고 우측에는 전자정보검색실이 있는데, 비도서 자료를 열람할 수 있고 DVD실이 있어 시청할 수 있으며 PC도 90대 가량 설치되어 있다. 2층에는 과학기술실이 위치하고 있는데, 컴퓨터, 자연과학, 응용과학, 예술체육 관련 서적들을 열람 및 대여할 수 있다. 3층지하 2층은 연속간행물실인데,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정기 간행물들을 읽을 수 있다. 단 이 자료들은 대여불가. 북한 관련 서적들을 모아놓은 자료실도 이곳에 있다. 4층에는 종교학, 사회과학, 경영/경제학 관련 자료들이 있으며 동양문집과 고전 자료들도 이곳에 모여있다. 5층은 철학, 어학, 문학, 역사 등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유용한 서적들을 비치해놓았다. 6층에는 회의실과 세미나실이 있는데, 기업 설명회나 취업 관련 세미나들은 HIT 혹은 이곳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지하 1층에는 그룹 스터디룸이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2시간 단위로 예약할 수 있으며, 연속해서 4시간을 예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리 예약한 사람이 없다면 예약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니 팀플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지하 3층은 논문과 신문 보존서고가 있는데 보통은 들어갈 수 없다. 자료이용 신청을 따로 해서 허가를 받아야 입장 가능하다.

2015년 12월~2016년 2월까지 부분적인 공사를 통해 시설 일부가 변경되며 아래와 같다.
지상 6층 : 국제회의실, 세미나실
지상 5층 : 인문과학실, 담헌문고, 신용하문고1,2,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서고
지상 4층 : 사회과학실, 고전자료실, 조창현문고
지상 3층 : 제3열람실, 제4열람실, 휴게실, 전자사물함실, 그룹스터디룸
지상 2층 : 과학기술실
지상 1층 : 통합인포메이션센터, 전자정보검색실, 북카페, 더불어숲(장애학생지원센터), 학술정보관 행정팀
지하 1층 : 제1열람실, 제2열람실, 휴게실, 그룹스터디름, 교육/정보검색실, 복사실, 북한자료실, 연속간행물 보존서고
지하 2층 : 연속간행물실, 보존서고
지하 3층 : 학위논문서고/동양문집실, 신문보전서고

이 건물을 정식 명칭인 백남학술정보관이라고 부르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도(중앙도서관의 약칭)라 부른다. 실제로 오래된 책들의 경우 바코드에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이라 명기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오덕스런 책이 별로 없다. 있어도 다 에리카 쪽에 몰려있다. 애니화된 소설은 가끔 보인다. 빙과나 신세계에서.
세상에 빙과 진짜 있네

은근히 규모가 큰 데다가 안 그래도 산지인 한양대에서도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중도 앞 벤치나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야경이 꽤 괜찮다. 고지에 위치한 만큼 서울숲에서도 보인다.

5.12 생활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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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학관

의류학과, 식품영양학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학생들의 거점. 생활과학관의 교직원식당은 많은 한양대 학식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맛있는 편이다. 다른 학과 학생들도 많이들 이용한다. [43] 다만 가격은 학식치곤 비싼 편. (4500-5000원 대)또한 매점인 싸군과의 지리적 접근성이 매우 좋아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카더라
11-1시 사이에 점심시간에는 7층에 있는 학식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전공수업을 들을려고 하는 학생들이 겹쳐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2013년부로 리모델링 됐다. 사진은 리모델링 전의 모습이다.

5.13 제1음악관, 제2음악관

추가바람.

5.14 백남음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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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음악관

학군단 바로 옆에 위치한 음악관. 복층으로 관객석이 구성되어 58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이 위치하고 있으며 1, 2음악관과 매우 가까워 음대생들이 이용한다. 보통 학생들은 2학점짜리 P/F강의인 한양글로벌인재특강 등 초청강연을 수강하기 위해 들르게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또한 필수 이수 과목인 한양사회봉사 오리엔테이션이나 입학설명회 등 대량의 인원을 수용할 장소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동원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왔다. 유재하는 한양대학교 음대 출신이다.

음대생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콘서트홀 밑에는 수많은 강의실과 연습실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제3음악관의 역할을 한다. 대운동장 쪽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고층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다수의 동아리들이 공연장소로 탐을 내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음대 측에서는 순수무대예술을 제외하고는 대관을 제한하고 있다. 대학 본부 직할 행사가 아닌 이상 예외가 없다.

5.15 한양종합과학기술원(HIT), 한양사이버대학(HY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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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한양종합기술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종합과학기술원 건물. HIT는 Hanyang Institute of Technology의 첫글자를 딴 약자다. 삼성전자, 포스코, GS건설이 공동으로 185억원을 출연하여 건설되었다. 지하 2층, 지상 6층이며 중앙도서관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어서 인문대나 제3캠 학생이라면 하루에 두세 번은 보게 된다. 그러나 강의가 이루어지는 건물이 아니라 산학협력 테크노파크 사업을 위해 건설되었으므로 학부생들이 들어갈 일은 별로 없는 건물이다. 상당히 많은 협력기관들이 입주해 있으며 6층에는 큰 세미나실이 있어 취업 설명회가 자주 열린다. 참고로 현재 HIT가 들어서 있는 자리는 원래 한양대학교 소운동장이 위치해 있던 자리였다. 대운동장이 왜 대운동장이겠나? 소운동장이 있(었)으니 대운동장이지

한편 한양사이버대학 건물은 HIT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보통 한양대 학생들에겐 싸대라고 불리며, 한양대학교 학부생들도 출입할 수 있다. 건물 1층과 2층에 카페와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다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건물의 삼면이 유리로 되어있다. 3층에는 토론학습실이 있으며 4,5층에 마련된 세미나실에서는 사이버대학에 있는 오프라인 수업이 이루어진다.

5.16 학군단, 까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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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단

제1공학관 뒤편의 골짜기...스러운 구역. 까치골은 건물 구조가 실로 해괴한데, 제 1공학관 뒤에 작은 주차장이 있는 평지가 까치골 건물의 옥상이다. 그래서 자기 발 밑에 건물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까치골은 주로 동아리연합회 소속 동아리들의 동아리방으로 활용된다. 실제로 까치골 건물 바로 앞에 학군단 건물이 육중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골짜기'란 말이 왜 붙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학군단 건물의 정문은 위에서 말한 까치골 옥상과 이어져 있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지형이다.

5.17 제3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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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대학. 경영대 앞의 정원은 행원파크이다.

폭풍의 언덕으로 인해 고립된 법학관, 경영관, 경제금융관, IT/BT관, 올림픽체육관, 연구동 등의 구역을 이르는 별명이다. 이곳이 제 3캠이라 불리는 이유는 워낙 다른 학과 건물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캠이 제 1캠, 에리카가 제 2캠, 그리고 이곳이 제 3캠(...)이라는 것. 또한 이곳이 유달리 세련되고 깨끗한 건물이 많다는 이유도 한 몫한다.

여담이지만 한양대역 2번출구에서 이 곳까지 가기 위해선 많은 길이 있는데 결과는 같다. 아무리 뛰어도 10분 안에는 강의실 입장은 거의 불가능...거리도 멀지만 최단거리로 가려면 언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경제금융대학의 경우 애지문에서 대학 건물까지 성인 남성 빠른 걸음으로 약 8분 소요) [44][45]

사실 제3캠으로 등교하기 위한 최적 루트는 한양대역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2호선 지선 용답역에서 가는 것이다. 용답역에서 내려서 한양여대 교정을 가로질러 행원파크를 통해 진입하면 법대, 경금대, 경영관 등 제3캠 대부분의 건물에 빠르게 걸으면 5분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양대역에서 내릴 경우 어느 루트로 가더라도 언덕을 넘어야 하지만, 용답역에서 올 경우 계단이 거의 없어 체력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혹시 등교/출근 루트가 2호선 성수역을 통하는 2호선 외선순환 루트를 이용한다면 성수역에서 내려서 지선을 타고 용답역으로 가는 방법도 고려해봄직하다. 특히 외선순환을 타고 오다 성수역에서 내리면 바로 코앞이 지선 플랫폼이므로 환승에 따른 시간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기대하진 말자. 다리를 건너 강을 통해야 하는데다가, 거리로 따지자면 애지문을 통해 가는게 훨씬 가깝고, 언덕이 없는건 아니므로...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05년도부터 제3캠 음악제(PAPE BELI) 등 제3캠퍼스에 해당하는 단과대학들이 모여 따로 행사를 하고 있다.

올림픽체육관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배구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위의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2014년 경영대학관 왼쪽에 연구동을 신축, 완공하였는데, 법학관에 세들어(?) 살던 기존 정책과학대학의 정책학과 및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책과학대학으로 이속된) 행정학과가 입주하였다. 새 건물이라 좋기는 한데 위치가 완전 구석이라 등하교하기 힘들다 그리고 제발 강의실은 지하에 두지 맙시다 환기가 안됩니다. 전화도 안 터집니다. 지하강의실에 복도와 연결되는 창문은 쪽창문 2개. 이건 한양공법의 전통이란 말입니다! 불만 표출은 다른 곳에서 합시다. 법대도 그렇다는게 함정. 3법학관 강의실에는 창문도 없음.
자과대는 지하에 있지만 환기는 된다 하하하하!!!

5.18 제1, 제2의학관, 계단강의동, 의과대학 본관, 한양대학교 병원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및 간호대학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실습을 받는 곳.

수업은 주로 한양대 병원 언덕 너머 주차장옆 구름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계단강의동에서 진행되는데, 정문에서 계단강의동까지 가려면 언덕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학생들 중 일부는 아예 계단강의동과 위치상 가까운 사근동 쪽에서 자취를 하는 경우도 많다. 왕십리역에서 내리게 되면 언덕길을 포함해서 15분은 걸리게 되는데, 굉장히 귀찮다. 왕십리역에서 오는 학생들은 여유가 있을 경우 4211번 버스를 타면 여름에 힘들게 언덕을 오르지 않고 계단강의동에 도착 할 수가 있다. 4211번 버스를 타고 사근동주민센터나 성동제일새마을금고 정류장에서 내리면된다. 다만 4211번 버스의 배차간격은 상당하기 때문에 지나갈 때 미리 스마트폰 어플등을 이용해서 확인을 하면 좋다.

의과대학의 일부 PBL수업 및 실습을 제외한 수업들은 계단강의동에서 이루어지고, 의과대학 교수님들의 연구실과 실습실들은 제 1의학관에 위치해있고,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의 동아리방들은 제 2의학관 1층에 있고, 간호학과 학생들의 강의실과 교수 연구실은 제2의학관 2층부터 위치해 있다. 간호학과 역시 신입생 때는 계단강의동을 이용한다.
역시 한양공법으로 지어진 건물들답게 각 건물들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있다. 우선 제 1의학관과 제 2의학관을 이어주는 다리가 하나있으며, 병원과 의대본관을 이어주는 다리가 높게 솟아있다. 제2의학관은 추후 Biomedical Center로 신축될 예정인데, 의학과, 생명공학과, 생명과학과 등 의생명 관련 학과들을 Biomedical Center로 집중시킬 예정이다. 의과대학 본관 2층에 의학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의대 본관에서 중앙도서관을 가는 포털이 있다. 의대본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다리를 타고 건너가고 다시 다리를 또 타고 건너간..다-계속 직진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양산을 오른 모습을 발견하게된다. 다만 단점은 오래 걸어야만 하고 외부로 노출된 다리가 통유리이기 때문에 여름엔 찜통이고, 비오거나 추운날엔 밖보다 더 춥다는 점이다.

5.19 동문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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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회관

후문을 통해 왕십리로 내려가다 보면 보이는 건물이다. 로비층(3층, 엘리베이터에 L층 표시)에 신한은행 한양대지점이 있기 때문에 인근 왕십리 주민들도 많이 찾는 건물이다. 1층은 주차장이며 왕십리역 방향으로 출구가 나 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은 이 은행에서 학생증에 체크카드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한양대 학생증의 카드 업무는 이곳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제3캠퍼스나 ITBT관, 체육관 같이 신한은행 한양여대출장소가 더 가까운 건물에서도 다른 은행 업무는 상관없지만 학생증 문제는 이곳으로 와야 한다. 타 은행들[46]을 이용하려면 왕십리로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한양대 학생들은 신한은행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47] 건물 4층에는 하객 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식장이 있는데, 한양대 졸업생에게는 피로연 때 제공되는 술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혜택을 준다고 한다. 건물 내에 소극장이 있어서 한양대학교 각 동아리들이 공연등을 위해 대관하기도 한다. 6층에는 주로 교수님들이 이용하시는 청킹(중경)이라는 고급 중국음식점이 있다

5.20 학생생활관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이나 외국인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이다. 서울/경기권 학생들은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

  • 제1학생생활관
  • 제2학생생활관
  • 제3학생생활관
  • 제4학생생활관[48]
  • 제5학생생활관[49]
  • 제6학생생활관[50]
  • 제7학생생활관[51]
  • 한양테크노숙사
  • 개나리관
  • 국제관

5.21 폭풍의 언덕

법학관, 경영관, 경제금융관 구역과 본관쪽 구역을 갈라놓는 백남학술정보관 옆 언덕이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람이 분다. 낮 동안 캠퍼스의 비탈면이 햇빛에 가열돼, 이를 따라 위로 부는 골바람 때문이다. 생활과학대 건물과 음대 건물 사이에 비밀길이 있다. 이 언덕을 자주 자나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찾아두는게 좋을 것이다.

5.22 88계단 (A/F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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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 광장(한마당)과 사회대 1층 출입구를 잇는 계단이다. 계단의 개수가 88개라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52]

A/F 계단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가운데 손잡이를 기준으로 애용하는 계단의 방향에 따라 학점이 A와 F로 갈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좌측 계단을 쓴다.[53] 실제로는 좌편에는 붉은 글씨로 애국(A 계단), 우편에는 파란 글씨로 한양(F 계단)이 칠해져 있다. [54] 과거 사회대 앞에서 김밥을 파시던 할머니(2013년 현재 기숙사 매점에 입주해 계신다.)께서 학생들이 한 쪽으로 많이 몰려다니도록 유도하기 위해 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역시 설 중의 하나 일뿐, 확실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말 경에는 현재의 A계단을 연애결혼계단, F계단을 중매결혼계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국문과 모 교수님께 직접 확인). 휠체어용 리프트가 F계단 쪽에 설치되어 있다. 대학생 민주화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이 '쌍팔88계단위에서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지면 백골단도 감히 진격을 못할 정도로 난공불락의 성벽이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만큼이나 경사가 가파르다. 신본관 개관 이후 구본관과 신본관 사이에 새로운 계단이 하나 생겨서 많은 이들은 계단 수가 더 적은 이쪽을 선호하는 듯 하다.

5.23 158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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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나 자연대를 가기 위해 한마당에서 올라가야 하는 계단. 올라가려면 엄청난 체력소모를 해야한다. 평소에는 사회대(엘리베이터 탑승) → 사범대를 거치는 무계단 코스를 이용하고, 수업에 늦었을 때만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올라가게 되는 곳. 돌아가기 귀찮아서 오르기도 한다. 물론 후술하는 108계단보다는 난이도가 낮다. 한양대 3대 계단 중 오르는 데 있어서의 난이도로는 2번째 정도가 된다. 즉 108(94)계단 > 158계단 > 88계단 순이다.

중간에 박목월 시인의 시비도 세워져 있고, 암벽등반(!) 포인트로 가는 통로도 존재한다.[55] 박목월 시비는 매년 시인의 기일(3월 24일)을 전후해서 열리는 추도행사일 오전에 국문과 학생회 학생들이 남자 새내기들을 데리고 박박 닦는다. 그리고 박목월 시비 뒤켠에는 작은 벤치들이 여러 개 놓여있어 쉴 곳이 마련되어 있으나, 거의 아는 사람은 없으며 인적이 매우 드물어 연인들의 데이트장소 혹은 고백을 위한 장소로 자주 쓰인다.어느 솔로가 혼자 여유를 즐기러 갔더니 커플이 키스하고 있었다 하더라 봄에는 벚꽃이 매우 아름답다. 진심 아름답다. 꼭 봐라. 두 번 봐라. 맞은 편에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산화한 선배열사들의 추모비들이 세워진 추모공원이 있다. 지금도 동문회에서 기일마다 종종 꽃을 놓고 가시는 등 한양대의 뜨거웠던 기억이 있는 공간...

2008년 여름 동안에 한참동안 공사를 한 후, 계단이 무려 20개나 늘어서 지금은 158개다. (종종 동문회 등에서 회원들을 학번으로 나눌때 138/158로 나누는 경우가 있다)[56] 목월시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이상한 숲(?)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따라 내려가면 조그만 평지가 있어 "옹달샘"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둘러앉아 막걸리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57]

참고로 이 계단을 굳이 올라가고 싶지 않다면 한양플라자와 신본관 혹은 구본관과 신본관 사이에 있는 계단 혹은 88계단을 올라온 다음 사회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사범대 앞에서 다시 조금만 올라가면 금방 인문대에 도착할 수 있다.

추가로 2015년 11월 현재, 둘레길이 조정되어 인문대 지하 그러나 한양공법답게 태양빛과 야경이 보인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둘레길은 한양대 캠퍼스를 대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게 구성되어있는데, 그래서 이름도 둘레길.

5.24 108계단

서울 캠퍼스 동문회관 쪽 후문에서 올라오다 한양대 병원 맞은 편에서 보았을 때 나오는 계단이다. 의대 바로 옆에 나 있는 작은 콘크리트 계단을 일컫는다. 2009년 9월경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나무 계단으로 일부를 개장하는 공사를 마쳤다. 최종 목적지는 인문과학대학과 자연과학대학 사이의 쉼터인 자주광장혁신광장. 인문대생이나 자연대생 혹은 사범대생이 왕십리역에서 내려 등교할 때 주로 이용하는 계단이다.

108 계단이라는 별칭이 붙은 유래에 대해서는, 점심 식사 후 수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택하는 일이 많아 108계단, 즉 번뇌의 계단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점심 식사 후 부른 배를 부여안고 오르다보면 그냥 수업을 빠질까하는 고뇌가 계단을 오르는 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다른 계단들 보다 좁고 경사가 상당히 급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 계단을 자주 이용하게 되는 인문대/자연대/사범대생들은 '사다리를 오른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중간에 한 번 쉬지 않으면 단숨에 오르기는 힘들다.

최근에는 이 계단을 94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단이 94개라서 94계단이라고 하는데 실제 계단의 개수는 93개 or 94개이다.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정확히 셀 정신이 없다(...) 또한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이곳에 콘크리트 계단이 없던 시절, 경찰에 쫓기던 운동권 학생들이 이곳을 통해 무사히 달아난 적도 있다고 한다. 한양대 지리를 잘 몰랐던 경찰은 '설마 이런 급경사를 타고 도망갔겠나' 싶어 무시했다고(...) 신입생때는 헉헉대며 오르지만 2학년만 되어도 여유롭게 오르며 연륜을 과시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곳에는 경사면을 따라 의대 본관 옆으로 가는 샛길[58]도 존재한다.

일부 학생들[59]에 의해 '정력계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5.25 교내 복지시설

식당
매장명위치비고
학생식당한양플라자 3층직영
신학생식당신소재공학관 지하1층한화푸디스트
사랑방학생회관 2층한화푸디스트
교직원식당생활과학관 7층한화푸디스트
신교직원식당신소재공학관 7층한화푸디스트
나누리식당행원파크 지하1층
푸드코트한양플라자 1층롯데리아,김밥나라 등등
이름 공모 중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지하1층크라제버거 등등
편의점 및 매점
매장명위치비고
사자가 군것질 할 때제1공학관 뒷편CU
신소재 편의점신소재공학관 지하 1층CU
복지관 편의점한양플라자 1층CU
사이버대 편의점사이버2관 1층세븐일레븐
행원파크 편의점행원파크 지하1층CU
노천극장 편의점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지하1층위드미
1생활관 매점1생활관 1층 식당 내부CU
2생활관 매점2생활관 1층 식당 내부
체육관 매점올림픽체육관 내부
인문관 매점인문관 입구 앞
카페
매장명위치비고
투썸플레이스한양플라자 1층학생 및 교직원 20% 할인
코페아한양플라자 1층
헬리팜한양플라자 1층
브라우나비한양플라자 3층
북카페(그라지에)학생회관 1층
카페 띠아모제1공학관 뒷편
카페 띠아모정몽구 미래자동차연구센터 지하1층
카페 띠아모행원파크 지하1층
CNN 카페FTC 3층(현관층)
CNN 카페국제관 1층
카페아이사이버2관 1층
뉴욕핫도그사이버2관 1층
2생활관 카페제2생활관 1층
카페큐스택ITBT관 1층
복사실
위치비고
백남학술정보관 지하 1층
백남학술정보관 1층애드투페이퍼
백남학술정보관 3층무인 결제
제1공학관 1층
인문관 지하 1층
경제금융관 지하 1층
공업센터 본관 4층
의과대학 계단강의실 2층
의과대학 본관 2층
신소재공학관 지하 1층
ITBT관 1층
한양플라자 1층

이외 에도 각 단과대학 PC실에서 인쇄 및 복사 가능.

ATM
위치비고
한마당국민은행,신한은행
제1공학관 1층신한은행
백남학술정보관 1층신한은행
자연과학관 1층신한은행
생활과학관 1층신한은행
사이버2관 1층신한은행
경영관 2층신한은행
행원파크 지하 1층신한은행
ITBT관 3층신한은행
신소재공학관 지하1층신한은행
동문회관 3층신한은행,신한은행 한양대지점과 함께 있다
제2생활관 1층신한은행
한양대병원 서관 6층국민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
한양대병원 본관 1층,3층신한은행
한양대병원 동관 1층신한은행

5.25.1 사자가 군것질 할 때

img_16485_2.jpg[60]
약칭 싸군/사군질.[61]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약칭 중도) 앞에 위치한 편의점이다. 편의점 완공 시 학생 공모로 뽑은 이름이라고 한다. 상금까지 걸고. 하지만 그 결과는 총장이 제시한 '사자가 군것질할 때'. 한양대의 상징 동물이 사자[62]이긴 하고 편의점이니 군것질하는 곳은 맞는데... 그거 참... 그런데 사자육식동물이니 편의점보다는 정육점이 어울리지 않을까? 본격 대학교 내 최초로 개업한 정육점... (...) 2001년 처음 지어졌을 때는 학생들이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사자가 배고플 때, 사자가 출출할 때 등으로 부르기도. 누군가 잘못된 이름을 말해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이름으로 기억하다보니... 특히 그 시절 졸업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사자가 울부짖을 때라고 기억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 (...)

한양대 내에서 유동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첫 번째는 사회대 앞) 곳에 위치한 입지조건과 교내 편의점이라는 이유로 매출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63][64]

이 편의점이 커버하는 한양대 내 지역 자체는 그렇게 크진 않다.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다른 편의점이나 매점을 만날 수 있기 때문. 확실한 이곳이 이용하기 제일 편한 곳은 중도와 제1공학관, 생활과학관 정도로 다른 지역은 다른 매점이 가까이 있다. 사실상 도서관의 존재와 다른 단과대학으로 옮겨가는 중간에 위치하기 쉽다는 점이 제일 크다.

실제로 시험기간에는 물건이 날개돋힌 듯이 팔리며[65] 2005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의 어느 날에는 삼각김밥 리필하러 미니스탑 탑차가 6번 오기도(...), 한양대생들이 멋모르고 알바한다고 덤볐다가 지옥을 보고 그만두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바도 자주 바뀐다. 가격도 학교 내부 매점 중에선 저렴한 편. 2011년에 유제품 가격이 인상되었을 때 다른 매점이 100~200원, 혹은 그 이상 가격을 올렸는데 상대적으로 적게 올려서 결과적으론 다른 곳보다 50원~100원정도 싼 곳이 되었다. 똑같은 미니스톱인 한양 플라자 미니스톱도 마찬가지.

2007년 이전까지는 외국산 담배를 팔지 않았다. 덕분에 낮시간대 알바가 어서오세요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국산 밖에 없는데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참고로 컵라면을 팔지 않으나, 일반 라면과 오뎅용기를 판매하므로 이것으로 간이 컵라면을 먹는 사람은 많다.[66] 국물을 버리는 곳과 뜨거운 물, 전자렌지가 있으므로 참고할 것.

옆에는 커피 체인점인 쿠벅(coobuck)카페가 존재했었으나 매출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2012년 여름을 기점으로 자리를 빼고 마구 공사를 하더니 2학기를 시작하면서 카페 티아모가 들어섰다.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에 야외에까지 세련되게 꾸며놔서 점심시간 일부러 왕십리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싸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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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중순 MINISTOP이 영업을 종료하고 CU로 변경되었다. 2015년 12월 현재 여신금융업법 개정으로 인해 카드 결제가 IC단말기로 이루어진다.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므로 바쁜 시간에는 이용에 주의할 것.

5.26 언덕을 피하는 방법

사실 언덕 위를 그냥 오르내리는 것은 갓 입학한 신입생이나 처음 듣는 교양수업 등의 이유로 그쪽 루트를 처음 타보는 경우들 뿐이며, 해당 건물에서 전공수업을 받는 어느 정도 짬밥(?)이 되는 학우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최대한 언덕을 피해 다닌다. 하지만 모든 학우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은 그런 거 없다 이를 모르는 신입생들은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그래서 이 항목에서는 언덕을 피하는 갖가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한양대 특유의 지형과 한양공법(...) 덕분에 캠퍼스 이곳저곳에는 숨겨진 포탈들이 많다. 특정 건물을 자주 이용하는 전공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학우들의 많은 추가바람.

  • 한플 포탈(애지문 → 사회과학대학 방향): 사실 여기는 엘리베이터는 없다. 다만 여름이라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으니 고려해봄직하다. 이용방법은 애지문쪽에서 곧바로 한양플라자로 들어가서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는 것. 3층에 다다르면 학생식당이 있고, 그 앞에 출입구가 있다. 이곳으로 나오면 왼쪽에 5초 거리에 있는 사회대를 발견할 수 있다. 쪄죽을것 같은 날씨라면 88계단 대신 이쪽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한플을 쓰느니 신본관과 한플 사잇길로 가겠다. [67]
  • 사회대 포탈(사회과학대학 → 고공캠퍼스 방향): 위의 한플 포탈과 연계해서 사용하면 좋다. 이용방법은 88계단 옆에있는 입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이용, 3층또는 4층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3층에 내린경우, 복도를 따라가다보면 오른쪽에 출입구가 있다. 이쪽으로 나오면 두개의 길이 나 있는데, 계단이 나있는 정면방향 길로 나가면 왼쪽에 여전히 더 올라가야 하지만 백남 도서관과 고공캠퍼스가 있다. 그리고 계단이 아니라 빗면으로 되어있는 오른쪽 길로 나가면 정면에 싸군 미니스탑이 보인다. 4층의 경우에는 복도로 나와서 공공정책대학원으로 나가면 고공캠퍼스가 코앞에! 올레! 물론 여전히 더 올라가야 한다 현재 사회대 엘리베이터에는 타 과 학생의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붙어있으니 정말 덥거나 힘든게 아니라면 경고문대로 자제해주자. 애초에 포탈은 덜 힘들게 이동하려고 쓰는거지 빠르게 이동하려고 쓰는게 아니다. 빠르게 가야한다면 그냥 언덕으로 뛰어가는게 훨씬 낫다.
  • 제3캠퍼스 학생들의 한 줄기 빛법대 포탈(애지문 → 제3캠퍼스 방향): 제3캠퍼스 학우라면 언덕을 올라가는것 뿐만 아니라 언덕을 내려가기까지 해야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쪽 루트라면 내려가기 한번만 하면 된다! 이용방법은 애지문에서 나와 구본관측 노천극장 계단으로 내려간다. 계속 내려가서 노천극장 뒤측까지 간다. 이제 그 길을 따라 대운동장을 반바퀴 돌아 구령대까지 간다. 구령대 뒤쪽으로 나가면 바로 법대건물이 하나 있다. 여기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 4층에서 내리면 법학학술정보관(법도)쪽에 출입구가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나오면 거짓말같이 정면에는 경영대가, 오른쪽엔 경금대가 있다! 여기는 사용 자제 경고문이 없으니 마음껏 쓰자 솔직히 법대 없으면 안됩니다 참고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언덕길로 가는 것보다 1분정도 늦는다고 한다.
  • 제2공학관 샛길: 법대 포탈의 바리에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법대포탈 가는길 중에서 대운동장을 돌아가는 루트를 걷다보면 제2공학관 쪽 수풀(?)중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듯한 작은 샛길이 있다. 이 샛길로 아주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쪽에 제2공학관 후문이 있다! 심지어 여기를 들어가자마자 고맙게도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자기 강의실을 찾아가면 된다. 제2공학관에서 진행되는 교양수업이 많은만큼 제3캠퍼스 학우들은 자주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역시 여기도 사용자제 경고문은 없다. 다만 가끔씩 후문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 제2공학관 1층문을 지나서 더 가면 기계공학부 소모임 RACE가 있고차량정비소가 아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까치골과 학군단이 나온다. 이곳은 제2공학관 매점, 제1공학관 뒷문, 백남음학관등으로 빠져나갈수 있다. 다만 길이 복잡하고 협소하므로 초행길이라면 주의하길 바란다.
  • 공대 구름다리: 한양공법의 결정체. 이것만 있으면 비 오는날 우산 없이도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 사용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해당 공대건물의 구름다리가 몇층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층에 가서 열심히 돌아다니면 된다(...) 예를 들면 제2공학관으로 들어가 구름다리를 통해 공업센터 본관을 거쳐 신소재 공학관에 가는 식. 만약 자전거를 통해 신소재공학관 뒤쪽의 출입구로 통학하는 학우라면 그런 사람이 있긴 한가 학교에 올수는 있어도 자전거를 끌고 학교로 올라올수는 없을텐데 자전거는 신소재 공학관에 세워두고 자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여기저기로 나있는 구름다리로 이동하면 된다. 그리고 구름다리 없는 문과 학우들은 지못미 구름다리 연결망은 공업센터IC를 중심으로 공업센터 별관을 거쳐 FTC로 가는 길[68], 2공으로 가는 길, 신소재를 거쳐 자연과학관으로 가는 길이 있다. 자연과학관과 재성토목관은 연결되어있지 않지만 입구가 마주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국제관의 애지문쪽 출구로 나올 수도 있다.
  • HIT-사이버대학교 포탈(제3캠퍼스 → 고공캠퍼스 방향 반대 방향으로는 별로 안 쓴다): 거의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미지의 포탈이다. 사실 알고있어도 별로 쓸일은 없다. 이 포탈은 고공캠퍼스와 제3캠퍼스 사이를 편하게 이동하게 해주는 루트이다. 이용방법은 한양사이버대학교 건물 1층(흔히 아이카페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으로 가면 HIT 건물 1층(...)과 연결된 복도가 있다. 이곳으로 가서 HIT의 정문으로 나오면 백남학술정보관의 지하가 보일것이다. 지하가 지상에서 보이는 한양공법의 위엄 나온길로 쭉 가다보면 도로가 하나 있는데, 그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바로 고공캠퍼스+백남학술정보관이 나온다.
  • 동문회관 포탈: 왕십리역에서 나오는 학생이라면 피할수 없는 의대정문이 기다린다. 이 언덕 기울기는 실로 살인적이기 때문에 장거리(?)를 가야하는 학생에겐 입구부터 체력을 모두 잃을 위험이 있다. 동문회관 건물의 분명 지상1층이지만지하1층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3층 신한은행을 통해 지상으로 나올수 있다. 나오면 의대와 언덕을 올라가면 병원등이 바로 보이므로 이 엘리베이터 사용자의 상당수는 의대생이다. 의대를 돌아 한마당으로 쉽게 갈수 있어 타과생도 많이 이용한다.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대정문을 뛰어 올라가는게(?) 더 빠르니 정확한 시간계산을 통해 최소 체력으로 지각을 피할수 있도록하자. 찾기 힘들다면 동문회관 신한은행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찾기 쉬울것이다. 이용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밤늦게는 이용할수 없다.
  • 의대 포탈: 반드시 학생증을 소지해야 이용가능한 길. 벽면에 한양대 의과대학이라 크게 써져있는 의대본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 그 후 국제병원과 연결된 다리를 타고 건너간다. 우회전하여 병원 본관 3층과 연결된 다리를 타고 건너간다. 계속 직진하다보면 병원 응급실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단점은 오래 걸어야만 할뿐더러 외부로 노출된 다리가 통유리라 여름엔 찜통이고, 비오거나 추운날엔 밖보다 더 춥다는점이다.의대본관이 상당히 높이 있다는건 비밀
  • HIT 지하주차장: 포탈은 아니지만 병원-싸대를 잇는 길이다. 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중도 방향이 아닌 주차장 방향을 통해 내려가 쭉 가다보면 찾을수 있다. 이 길을 이용하면 자대뒷길을 지나 중도뒷길로 이어지는 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서도 제3캠퍼스, 음대, 생과대 등으로 갈수 있다. 주차장 입구는 기숙사로 내려가는 길에 있으므로 찾기 힘들다면 기숙사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자. 다만 이용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너무 늦은 밤에는 지하주차장이 폐쇄되므로 괜히 이 길로 내려가다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여담으로 지하주차장의 형광등은 평소엔 어둡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밝아진다.
  • 정책대 포탈: 정책대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 생겨난 길. HIT 정문으로 들어가서 주욱 걸어가면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여기를 단지 담배피러 나가는 곳으로 알고있지만 정작 나가보면 웬 계단이 하나 있는데 이 계단을 다 내려가면 문이 하나 나온다. (문이 잠겨있으면 학생증으로 열 수 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정책대 2층이다. 정책대 포탈 덕분에 HIT에서 경영대까지 고시반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가다가 갈림길에서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빙 돌아가면 경영대 뒤편이 나온다.)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6 캠퍼스 주변 지역

과거 한양대 주변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밥집이나 술집, 하숙집 등이 대부분이었다.때문에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다른 지역(대학로 혹은 건대 등지)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양대 부근도 장족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6.1 베버리

어원은 헐리우드 부근의 부촌인 '베버리힐스'. 왕십리역 6번 출구 부근에 위치한 이 곳은 빌라촌 및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구조인데, 역과 가깝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임대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다. 때문에 베버리라고 불린다. 실제로 술에 잔뜩 취해도 집에 들어가기가 매우 편하다.정신차리면 집 이 베버리의 임대료는 최근들어서 계속 상승중인데, 한양대의 지역적 특성상 동쪽으로는 청계천, 남쪽으로는 중랑천이 흘러 사람이 살 수 있는 주변지역은 서쪽과 북쪽뿐이다. 게다가 학교의 서쪽인 베버리힐스는 철길로 인해 확장이 불가능하고 더군다나 분당선 개통으로 강남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까지 모여 하숙비나 원룸의 임대료는 매번 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하지만 통학하기에는 거리가 제법 먼 편이며, 병원 후문을 통해 학교에 진입해도 상당 시간을 걸어가야 실질적인 캠퍼스가 등장한다. 만약 정력계단을 통해 고공캠퍼스를 뛰어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도 벌어졌다간... 또한 술집 밀집지역이다 보니 밤엔 좀 시끄럽다. 물론 마장동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조용하다.

6.2 사근동

사근동은 기숙사와 한양여대[69] 부근에 위치한 동네이다. 왕십리에서 접근하려면 사근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한다고. 특히 매년 기숙사에 새로 입사하는 신입생들은 '특유의 높은 고개 + 통금시간'이라는 조합에 치여 살다가 해가 바뀌면 비버리든 할렘이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다만 위의 법대, 경영대, 경제금융대 등 '제3캠퍼스' 또는 의과대학 계단강의동과는 매우 가까워서, 집에서 8시 55분에 나와도 9시 수업에 늦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70]

또 근처의 제1,2생활관 학생들과 주변 원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보니 나름대로 상권을 갖추고 성업하는 곳. 근데 분명 아파트단지도 있고 제법 사람 많이 사는 동네임에 불구하고 2008년까지 서울 한복판인데도 편의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냐, 골목에 있긴 있었어. 포시즌 마트라고. 큰 길 따라서는 안 보였을 뿐이지 2014년 현재 한양여대 방면과 사근고개 넘어서 두개의 편의점이 신설되며 총 3개의 편의점이 들어섰다. 가까운 접근 방법으로는 2호선 용답역[71]이나 사근동 마을버스서울 버스 4211번, 혹은 청계천을 따라 걷는 방법 등이 있다.

6.3 슬럼

중앙선 철길 너머에 자리한 동네. 역시 할렘과 마찬가지로 시설이 다소 노후화되고 지형이 복잡하여 '슬럼'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 하다. 주변에는 성동구 도서관과 중대형 할인마트가 있는 등 살기에는 나쁜 편이 아니지만, 학생들이 이 곳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현재 일부 지역은 왕십리 뉴타운 재개발 중이다.

6.4 왕십리역

한양대 전역에서 보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사실 민자역사 관리주체는 비트플렉스고, 그 안에 엔터식스라는 쇼핑몰이 입점해있는 상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냥 엔터식스라고 부르고 있다.엔터식스는 직역하면 6번 출구 쇼핑몰에는 왕십리역 연결통로 및 이마트, CGV, VIPS, 워터파크, 패션쇼핑몰 등 다양한 위락시설이 입점해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하다.

6.5 한양 부페(개미굴)

왕십리역에서 한양대앞 사거리 사이의 시장 안에 위치하는 분식집들의 총칭. 원래는 그 시장안에 좌판을 벌려놓은 분식집들을 말하지만, 그 좌판들을 에워싼 저렴한 밥집들까지 통칭하는 경우도 많다.[72] 2006년까지는 한양부페라는 상호의 음식점이 시장 안에 존재했다. 이곳의 식당들은 대부분 매우 저렴하며 매우 크고 아름다운 양을 자랑한다."이모님, 많이 주세요!!" 라고 하면 하루치 식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카더라. 다만 이곳의 위치가 모르고 찾아가기에는 애매하고,[73]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요즘 학생들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지라 점점 쇠락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자취생들한테는 여전히 삶의 젖줄이다. 한양부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 선배들이 술을 몇차 한후 신입생들한테 "부페가자!"고 낚아서 여기로 데려가서 떡볶이, 순대를 안주 삼아 밤을 샜기 때문. 최근에는 시장통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74]

한양대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알촌이라는 알밥 프랜차이즈는 이 한양부페에 있던 '노벨분식' 이라는 작은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현재 알촌 한양대 본점은 한양부페에서 조금 떨어진 좀 더 넓은 곳[75]으로 이전한 상태. 장소를 이전한 뒤에도 한동안은 '노벨' 이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에 이 식당을 알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노벨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간혹 보인다.

6.6 할렘[76]

한양대 정문 뒤편에 있는 하숙집 밀집지역. 비버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가격과, 다소 오래된 방 구조 및 주택가 특유의 어두침침함으로 인해 '할렘'이라고 불리는 듯. 하지만 통학하기에는 상당히 편하고 가까운 구조로, 한양대역을 통해 가는 방법과 진사로를 통해 올라가는 방법 등 배리에이션도 있다.

하지만 08년을 즈음하여 하숙집들이 전면 개보수를 통해 원룸으로 전환되면서, 2011년 현재는 사실상 원룸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하숙집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매년 1월을 전후해 방을 구해야 하는 신입생들이 합격자 발표 후 할렘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7 커뮤니티 사이트

7.1 위한(WEEHAN)

전술한 경영대학 커뮤니티 HYUBIZ가 운영을 맡고, 리눅스유저 그룹 HLUG가 기술과 제작을 맡았으며 기계공학부 커뮤니티 WELIX에서 DB를 공유해서 탄생한 서울캠퍼스 중심 커뮤니티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자유게시판이 쇠락하면서 2011년 제39대 총학생회 터미네이터에서 추진한 사이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대, 기계과 등의 정보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교내에서 많은 광고도 하고 있다. 가입자 수가 재학생 수를 초과할 만큼 발전했으며 일일 방문자 수도 상당하다. 수업정보, 취업정보, 주변정보 등도 제공하니 유용한 정보가 많으며며 특히 강의평가를 미리 정독해보면 수강신청 및 시험대비에 대단히 큰 도움과 조언이 된다.

사실 여타 게시판보다는 익명게시판(미나스티리스)[77]에 이용자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상황인데. 한양대 게시판 중에서 가장 글 리젠이 빠르고 새벽이나 아침시간대에도 댓글들이 바로 달리는 등 활동이 상당히 활발하다. [78]

실명이나 고정아이디를 까고 말하기 곤란한 교내 뒷사정이나 수업 및 교수에 대한 매우 진솔한(.....)평가 같은 정보가 오가는 반면 걸핏하면 어그로, 키배, 병림픽이 난무하는 이면을 가지고 있는 등, 익명게시판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라 논란이 뜨겁다. 반말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3, 4학년 및 복학생, 고학번, 대학원생이나 이미 사회에 진출한 직장인 등 의외로 이용자 나이대가 높은 편이라 1,2학년이 진지한 질문 글 들을 올릴 때면 자신이 1, 2학년임을 밝히고 존댓말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나름 예를 갖추고 상세하게 대답해 주는 편이다.

7.2 자유게시판

한양대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자유게시판이 학내 커뮤니티로서 매우 활성화 되어있었다. 그러나 2011년 홈페이지 개편으로 인해 이전 게시글이 날라가버리고, 게시판에 플래시를 깔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접근이 어려워져 이용자 수가 급감했다. 현재는 속도나 접근성에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당시 이용자수가 급감한 이후로 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다.

7.3 휴비즈(HYUBIZ)

경영대학 커뮤니티 사이트. 한양대학교 전체 여러학과 자체 커뮤티니들 중에서도 순위권의 사이트로 경영대학 소속 동아리 휴비즈에서 운용한다. 학번만 있을 경우 가입신청 후 약 24시간 안에 등록이 되고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타과학생들도 물론 이용이 가능하다. 원래 학교내 경영대학 홈피내 자유게시판이 있었는데 학사과의 불친절함을 불평하는글을 올린 사람한테 댓글로 XXX 학생 학사과가서 물건 찾아가세요 하는 직원의 친절한(?) 댓글이 달리고 나서 직원들이 관리자아이디를 마음껏 이용해서 신상정보가 보호안된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경악. 가장 활발하던 경영자게가 거의 폐지크리 당하고 경영대학생이 사비로 서버를 두고 만들게 되어 휴비즈가 생겼다. 문제의 직원은 아무 사과 조치도 하지않았다.

8 총학생회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양대=운동권'이라는 도식이 낯설었지만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한양대는 과거 선배들의 훌륭한 전적(?)에 힘입어 한국 학생운동사에서 네임드 대학[79]이었다.[80] 따라서 한양대의 총학생회 선거는 각 정파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고지 쟁탈전의 성격을 띠었고 선거시즌, 전국적으로 굉장히 관심을 많이 받았다. [81][82]

사실 한양대가 학생운동으로 주목받게된 계기는 1986년 건대사태가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그 때까지 학생운동사에서 볼수 없었던 1525명 연행 1288명 구속이라는 초유의 구속사태로 인해 그 동안 학생운동을 이끌어 오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운동권 선배들이 몽땅 잡혀가게 되면서 그 주도권을 후발 주자였던 한양대가 가져가게 되었고, 6월 항쟁 이후 국면부터 그리고 90년대 내내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다.[83]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비/반운동 세력의 성장이 두드러지며 2000년대 중반,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의 패배, 학생운동 조직의 대중력 상실, 96년 연대사태 및 98년 한총련 이적단체판결 등의 사건의 여파, 게다가 내부 분열[84]까지 일어나면서 운동권 학생회는 학내에서 지분을 점점 상실해 가며 쇠락의 길을 걷는... 듯 했다. 2007년에 총학생회를 당선시켰지만 이는 뒤에 말하듯이 전년도 총학의 내분과 팀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었고.[85] 하지만 2011년 당선된 반운동 성향의 총학생회가 새누리당 청년학생위원회에 들어가버리면서 해당 학생회도 몰락했고, 2012년에 다시 출마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불공정하다며 투표 직전에 사퇴하는 자폭을 보여줬다. 2년 뒤, 2014년도 선거에 출마했지만 재투표 끝에 패배. 그렇게 한동안 한양대에 있었던 반운동 계열은 사라졌다. 그리하여 2014년부터 다시 운동권 총학생회가 집권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무리수를 두지는 않고, NL계열이라고 해도 학내에서는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2년연속 운동권계열의 선본만 출마하여 찬반투표를 통해 당선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한양대 총학생회 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86]

2002~2006년 : 제30~34대 총학생회 소리없는 99%의 혁명(소명) - 비운동(표면적)/반운동(이면적)
고려대의 '최초를 꿈꾸는 사람들'(최꿈사) 총학생회와 같이, 일회성이 아닌 체계성을 띠고 당선된 비운동 총학생회.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점차 소명의 배후에 있던 인물[87]의 노골적인 반운동 성향이 드러나면서 서서히 내려가게 된다. 그럼에도 5년 동안이나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거듭 말하지만 학내 학생운동 조직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인문대를 빼면 거의 모든 단위가 다 소명에게 넘어간 적이 있었을 만큼 이 분열은 매우 심각했다. 그러다가 2005년도 무렵에야 다시 통합하게 되었고, 2006년도까지는 패배했지만 마침내 2007년도에 체인지 포유[88]로 당선하게 된다.

2007~2008년 : 제35~36대 총학생회 체인지 포유 - 운동(단결/혁신 연합)
2006년도가 끝날 무렵 소명은 두 집 살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2007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 독자 출마를 하게 되었으며, 여기에다가 2006년도 소명이 총학생회 예산으로 2006년도 선거에서 생긴 부채를 청산했다는 제보까지 들어오면서 분열->팀킬->동반 폭사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사실 체인지 포유의 당선은 이러한 병림픽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고 자력 당선까지는 7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89] 그런데 어렵게 당선된 체인지 포유도 2008년도에 회계 부실로 중도 사퇴를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여파로 학내의 셀 수 없는 운동 성향 학생회[90]들이 무너지게 되었다.

2008년: 비상대책위원회 및 정상화운영위원회
해당항목 참조

2009~2010년 : 제37~38대 총학생회 Same As You(SAY) - 비운동
체인지 포유의 사퇴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비대위는 회계사 자격을 가진 학생을 섭외하여 감사를 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당시 비대위를 이끌었던 경금대 모 학생도 소명의 모 회장처럼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학생들은 그렇다고 비대위가 쭉 하라고 놔두지도 않았다. 그렇게 2009년도에 당선된 SAY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거의 모든 학생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교지[91]조차도 SAY를 호평했고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재선까지 해냈다. 인사법과의 사이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교육대책위원회의 위원장 직을 전문성[92]을 믿고 넘겨줬을 만큼.

2011년 : 제39대 총학생회 터미네이터 - 반운동
왜 한양대의 운동 성향(인사법) 학생회가 한대련과 등 돌리게 되었나
먼저 2010년에 살곶이 공원에서 있었던 8.15 대회부터 말해야 될 것 같다. 8.15 대회는 전국의 진보 단체들[93]이 모여서 진행하는 행사인데 2010년도에는 한양대 옆 살곶이 공원에서 열기로 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인사법 쪽에서도 반대를 하였는데, 바로 지난 2009년에 홍익대에서 열었다가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94] 학생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곧바로 그 다음 해 선거에서 박살났기 때문이다. [95]그런데 당시 공대 학생회장이 살곶이 8.15를 밀어붙이면서 한양대에서 Again 2009(...)가 일어났고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 동안 있어왔던 공대 학생회에 대한 호평도 하루아침에 지워졌고.[96]

시간이 흘러 2011년도 선거. 선거는 무려 4파전으로 진행되었는데 3선을 노리는 SAY, 편입생의 도전기로 회자되었던 터미네이터, 인사법의 탄탄함과 교대위에서 쌓은 이름값을 믿고 나온 하이라이트, 그리고 그 해 공대 회장이 막무가내로 출마한 샤우팅 한양이었다. (...) 당연히 하이라이트와 샤우팅의 사이가 좋았을 리가 없었고 정파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교지의 제보에 따르면) NL-PD의 극한 대립으로 오해하기도 했다.[97] 4파전 끝에 선거는 SAY와 터미네이터의 결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터미네이터가 당선되었고, 선거가 끝나고 나서 샤우팅의 트롤이 없었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하이라이트 쪽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터미네이터로 당선된 총학생회장은 이후 새누리당 청년학생위원회에 가입하면서 출마 당시의 비정치성 표방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으나, 이는 임기종료 후의 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타 대학의 경우 임기 종료후 정치활동을 선언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비난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이 후 학내 언론사들의 기자들의 취재에 따르면 토사구팽당했다고.[98]


2012년 : 제40대 총학생회 Real Plan H - 운동(인사법)
2012년도 선거는 재선거 끝에 마무리가 되었는데 두 번 다 터미네이터[99]와 하이라이트의 뒤를 이어 나온 Real Plan H의 경선이었다. 11월 선거에서도 논란 끝에 무산이 되었는데[100] 3월 선거에서는 (터미네이터에서 이름을 바꾼) HY-er 쪽의 네거티브가 그칠 새가 없었다. 이를테면 Real Plan H의 정후보가 민주노동당원이며 한대련 간부라고 하는데 사실을 밝히라던가[101] 이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 규칙 위반으로 판정하여 경고를 부여하고, 투표 당일 '징계 여부를 확인하고 투표할 것'이라는 안내를 하자[102] 불공정 선거라며 사퇴하였다. 선관위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로스쿨 교수의 자문[103]끝에 투표를 속개, Real Plan H가 재선거 끝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속개 과정에서 HY-er와 같은 성향의 단과대에서 투표를 보이콧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경금대에서는 투표함을 파손시켰고, 또 어떤 곳[104]에서는 투표소를 파괴했다고 할만큼 파장이 상당했으며 터미네이터로 대표되는 반운동 진영은 그나마 남아있던 지지마저 잃어버린다.[105] 하지만...

한편 Real Plan H에는 공대의 비 한대련 계 학생들이 합류하면서 2013년도 공대 선거는 마침내 경선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3년 : 제41대 총학생회 Togather - 비운동 / 공대 : 인사이드 - 운동(인사법)-회장 손주형(컴공 06), 부회장 김웅(수학 08)
회장의 8.15 대회 단독 감행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공대 학생회는 2011년도에 들어서 2010년도 회장을 비롯한 경기동부-한대련 계를 쫓아냈지만 내쫓고 보니 남은 사람들로는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2012년, GG를 치고 다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자 다시금 공대 학생회의 이름으로 인사법에서도 하지 않는 무리수를 거듭하면서 학생들의 비난... 을 총학생회(...)가 얻어 걸리게 만들었다. (!!!) 총학생회에서는 해당 행사 등은 공대 혼자서 치르는 것이라고 거듭 내보냈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그 놈이 그 놈이지. 게다가 인사이드로 재선을 노리던 Real Plan H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3년도 총학 부후보가 중앙 동아리에서 활동할 때 회계 문제가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는 진작에 처리되었고, 해당 후보는 과오를 시인하고 동아리연합회 부회장까지 지내면서 이미 전과를 확실하게 청산했지만 워낙 여론이 좋지 않았던 때라[106] 결국 석패. 총학실을 비운동 성향의 Togather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다만 반운동성을 지닌 것은 아니라서 교육정책위원회(교육대책위원회에서 이름이 바뀜)는 인사이드 쪽 인물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Togather 총학은 소통에 굉장히 힘을 썼던 총학이었다. 매주 수요일 T.O.P라는 행사를 캠퍼스 곳곳에서 진행(주로 한마당)하며 '찾아가는 총학'을 표방했다. 학기중은 물론 방학에도 진행하였으며 심지어는 설날과 추석에도 진행되었다. 또한 회계는 구글독스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공개하였고, 당시 학사관련 최대 현안이었던 수업일수 16주 환원을 이끌어 내었다.

한편 공대에서는 나름대로 파란이 일어났으니, 기존 공대 학생회가 마침내 물러나게 되었고 새로운 학생회 인사이드가 자리잡았다. Real Plan H 출신의 인물들로. 인사이드가 당선되면서 물갈이가 드디어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경기동부와 한대련은 학내에서 사라지는 줄 알았으나...


2014년 : 제42대 총학생회 클래스업 - 운동(Real Plan H-인사이드-클래스업)[107]-회장 김창식(기계 08), 부회장 신하섭(국문 10)
터미네이터/HY-er로 알려진, 보이콧으로 자폭한 반운동 진영은 다시금 크레센도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다. 공대가 합류한 인사이드 학생회는 클래스업으로 이름을 바꿔서 나왔으며 Togather는 선거 운동 참여를 위한 사퇴나 출마 없이 임기를 마쳤으므로 선거는 크레센도와 클래스업의 경선으로 이어졌다. 공대/사범대/사회대/인문대(78%! 다만 부후보가 인문대생) 등은 클래스업을, 경금대(77%!)/경영대/생활대(선본장이 생활대생)/의대(과거 HY-er 부후보가 의대생) 등은 크레센도를 지지했으며 나머지 단위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개표 결과 표차가 오차범위 이내로 나왔기에 바로 재선거를 실시했다. 재선거 결과 클래스업의 신승[108][109]. 이를 계기로 반운동 진영은 더는 선거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묻지마 몰빵 투표를 빼면 뚜렷한 지지세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드러났고 계보를 이을 후속이 더는 없었기 때문에.

공대에서는 아직까지 애문연[110]을 장악한 경기동부-한대련 계가 또 다시 출마해서 경선을 만들었지만 굳이 따로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평이 있었을만큼 무리수 오브 무리수였고, 아니나다를까 처참하게 깨지면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선거를 마친 뒤 애문연에서도 물갈이가 이루어졌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물론 운동 성향을 버린 건 아니고 대학 외부 단체들(=경기동부-한대련)과의 연관성과 무리수를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111]

2015년 : 제43대 총학생회 솔루션 - 운동(클래스업-솔루션)-회장 박종진(정책 10), 부회장 박창근(기계 10)
2015년도 선거는 오랜만에(!) 사건사고 없이 빠르게 끝났다. 투표 이틀만에 유효 투표율을 찍었고, (대안이 없는 단선이었기에) 높은 찬성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사실 2015년에는 선거보다 상대평가 강행 문제가 더 큰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과거와 달리 묻지마 투표를 하던 경금대, 경영대 등에서도 높은 찬성표를 얻은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

2016년 : 제44대 총학생회 솔루션 - 운동(재선[112])-회장 오규민(사학 12), 부회장 장세훈(화공 14)
2015년에 이어 무난했다. 단선, 찬성 고득표. 그런데 임기 시작하자마자 대학 측의 국가 장학금 축소 문제가 터졌고, 천막농성 끝에 축소 철회를 받아냈다.[113]

이상의 내력에 따르면 현재 총학생회가 어쨌거나 지지율이 높은 것은 대안의 부재[114]가 가장 큰 이유이며, 깽판(...) 축출, 그리고 과거 운동권 총학과는 달리 공약을 일정부분 실제로 이행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8.1 제36대 총학 학생회비 횡령의혹 및 중도사퇴

2008년 당시 서울캠퍼스의 총학생회인 체인지 포유(Change4U)가 회계관리 부실을 원인으로 사퇴한 사건이다. 당시 교내 언론은 물론, 공중파 및 일간지도 떠들썩하게 했다.

체인지 포유는 한총련 계열의 총학으로, 2007년에 한총련 관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35대 총학생회로 당선되었고[115], 2008년에 제 36대 총학생회 연임에 성공하였다. 선거 당시 체인지포유 측에서는 학생들이 원치 않으면 한총련에 관한 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공약 사실 이 때 쯤 되면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이 한대련으로 넘어간지 오래였다.을 내세웠는데, 2008년 3월에 한총련 의장선거를 한양대에서 개최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총학 측에 항의를 하였고, 5명의 일반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총학생회에 공식적인 공청회를 요청했다. 총학생회가 해당 일에 대해 사과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비대위는 이후 회계 관련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위해 총학생회에 청문회를 제의했다. 한대신문과 한대방송국의 주관으로 한마당에서 청문회가 열렸으나 총학생회는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이유로 청문회를 거부 및 불참했다. 청문회가 무산되자 비대위는 일반 학생들과 함께 총학생회실을 항의 방문했다. 결국 총학생회는 허위장부기재 의혹을 인정했으며 간이 영수증 사용 등 회계 관리를 소홀히 했던 점도 사과했다. 이후 비대위는 이에 대한 책임소재 및 정확한 감사를 위해 외부 회계감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의 답변이 없었고, 이에 비대위 측 학생 10명들은 2차 항의방문을 했다. 그런데 총학생회는 학생자치기구가 무슨 회계감사를 받냐고 감사요구를 거부하려 하였으나, 비대위 측은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2008년 5월 21일에 체인지 포유 총학은 사퇴를 선언하게 되었다.[116]네이버 뉴스

9 운동부

전통적으로 한양대학교 야구부는 대학야구의 전통적인 명문이라 과거 및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 족적을 남긴 유명 야구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름만대도 ㅎㄷㄷ한 선수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장효조, 김시진, 이만수, 류중일, 김일권, 정민태, 구대성, 성준, 유지현...그리고 박찬호(2학년 중퇴)까지...참고로 이승엽도 한양대학교에서 스카우트 해서 특기자 입학 결정까지 났었다...[117] 재미있게도, 2012년과 2013년 기준으로 야구 구단 감독 대부분이 고려대-OB 테크를 탄 사람들인데, 여기에 한발짝이라도 안 담근 감독 셋은(김시진, 류중일, 이만수) 죄다 한양대-삼성 테크를 탔다(...) 그리고 이 셋은 모두 자팀 팬들에게 돌 소리를 듣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편 국내 대학 운동부의 고질적 병폐인 체육특기생 입시비리는 한양대 야구부도 비켜가지 못했는데.2012년 8월에 고등학교 야구부 학생을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켜주겠다며 천보성 전 야구부 감독이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고 부정입학을 시도하려했던 것이 적발된 것. 2012년 3월에 한 고등학교 야구부 학생의 학부모가 감독을 통해서 천보성 전 감독을 통하면 대학 입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4월에 현금 7000만원을 천보성 전 감독에게 건냈다고... 이후 천보성 감독은 5월 31일에 학생들에게 수백만 원의 전지훈련비를 요구한 사실이 학부모의 투서를 통해 드러나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는데, 천 감독이 해임되자 현금 7천만원을 건낸 해당 학부모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정을 넣으면서 입시부정이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학부모에게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천보성은 징역 2년과 추징금 6000만 원을 선고받는다.

한양대학교 축구부도 야구부 못지 않게 강팀이다. 한국 축구는 4-4-2가 다해먹는다는 말에서 4-4-2가 (연대,고대, 한대:썰전에서 이철희소장님 말씀)일정도, 이회택 부터 시작해 박경훈, 박항서 를 비롯해, 신홍기, 정재권, 이원식, 이관우, 김남일 최근에는 주민규까지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많다.

그밖에 농구부와 배구부도 정상권에 있다. 한양대 출신으로 유명한 농구선수는 역시 추승균. 그 이후에도 양동근ㅡ조성민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가드진의 에이스를 배출했고 10학번 이재도는 대학시절 육상농구 돌풍 을 이끌며 팀을 하드캐리했으나 동기인 경희대 빅3(김종규,김민구,두경민)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프로 2년차만에 JD4(nba의 스타인 크리스폴의 별명이 (CP3인데 이재도는 그 활약을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의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활약했다. 그 때문에 믿고 쓰는 한양대가드라는 드립도 나왔고 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한양대 12학번이자 LG에 지명된 한상혁이 '믿고 쓰는 한양대가드의 계보를 잇겠습니다'라는 지명소감을 밝혔을 정도 였다. 한편 배구부는 1991년 대통령배 대회(백구의 대제전)에서 대학팀 유일의 우승을 기록했다.[118] 이 시절 간판선수가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장재원, 문양훈 등이었고 이후 김세진, 최태웅, 석진욱, 이경수, 윤봉우, 이선규, 한선수 등이 한양대 배구부를 빛냈다.

10 기타

10.1 공대생들의 ENDLESS PAIN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 사이에서 미적분학1,2와 공업수학1,2 중에서 F를 한번도 안맞고 한번에 통과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괴물 혹은 미친놈이라고 불린다. 한학기마다 수강인원의 30퍼센트가 의무적으로 F를 맞게 되므로 4학기 연속 F를 맞지 않고 한번에 통과하는 확률을 단순히 계산해 보면 0.7^4=0.2401=24%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다수인 76%는 한번이라도 F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통과한 24%에는 C학점을 맞는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미적분학1,2나 공업수학1,2를 한번도 재수강없이 졸업하는 학생은 더더욱 적다고 할 수 있다.다만 원래 학점은 특별한 경우만 크게 떨어지거나 오르진 않고, F받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실제로 저 비율만큼 높지는 않다.

공과대학에서는 F융단폭격 뿐만 아니라 전문 교수진, 공업수학 경시대회를 통해 미적분학과 공업수학에 대한 교육의 열의를 보인다. 실제로 미적분학과 공업수학을 가르치는 정식으로 임용된 교수님들이 계시며 정선영 교수님 강의노트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처럼 한양대학교 공대생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공업수학 바이블로 불린다. 정선영 교수님 강의노트 하나만 있으면 공업수학 책은 과제를 위한 연습문제 확인용일 뿐 책내용을 한글자도 보지 않고 정선영 교수님 강의노트로만 열심히 공부하고도 A를 맞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다.

10.1.1 공업수학과 F학점

컴퓨터전공, 정보시스템학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공대생들이 2학년 때 들어야하는 필수 과목인 공업수학 1,2도 당연히(?) 미적분학 1,2처럼 하위 30% 학생들에게 매 학기 무자비한 F를 부여한다.
A와 B의 비율도 다른 상대평가 과목과 달리 A는 상위20%까지, B는 상위20%~50%까지이. B만 맞아도 중간안에는 들어간 셈. 영어전용강의도 별도의 기준없이 국문강의와 동일한 평가쳬계로 성적을 준다.

반별 평가가 아닌 공대의 모든 학과가 같은 시간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본다. 전 공대생 연합 학력평가 당연히 성적은 반별 퍼센티지가 아닌 전체 수강생 기준 퍼센티지로 나간다.다만 계절학기는 반별 자체시험 및 자체평가다.
시험유형은 증명 등의 유형은 거의 없고 문제를 열심히 풀면된다. 6문제만 막힘없이 풀면된다. 여기까지만 듣고 별거아니네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제한시간은 50분으로 6문제를 풀기에는 다소 빠듯한 시간이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적급간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많은 공대생에게 부담과 공포를 주는 시험이다.

10.1.2 미적분학과 F학점

공과대학 1학년 때 수강하게 되는 필수 과목들 중 미적분학 과목[119]은 열심히 공부하는게 좋다. 타 공과대학 과목의 권장기준인 A + B=30 + 40% 상대평가를 과감히 씹어버리고 매우 무자비한 평점을 자랑하며(!) 약 30%의 학생들이 F를 맞는 무시무시한 기초필수 수업이다. 출결F인 학생은 이 30%에 포함되지 않아 체감 F 빈도는 40%에 육박한다[120] 다시 말하지만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시험의 난이도는 매년 상당히 달라지며, 2010년 이전의 족보를 보는 것은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최근엔 매우 어렵게 출제된다. 또한 미적분학1 과목이 F라면, 2학기 때 듣는 역시 기초필수인 미적분학2의 이수가 불가능하다. 2014학년도부터는 F학점도 성적기록에 남기 때문인지 미적분학1을 F를 받더라도 2를 이수할 수는 있다.연쇄적으로 F를 받을수도 있다. 따라서 열심히 해서 잘 해두자. 정 수학에 자신이 없다면 정규학기에 듣기보다는 계절학기때 듣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정규학기보다 훨씬 학점을 따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수학에 재능이 없다면 이마저도... 1~4학년, 여름계절, 겨울계절 재수강 11번 풀수강해서 D를 받고 졸업한 사람도 있다. 진짜다

10.2 공업수학 경시대회

공과대학에서는 매년 공업수학 경시대회를 개최하며 우승자들에게 현금으로 수십만원씩 꽂아준다. 혹시 학자금대출이 있어도 한국장학재단에서 안 뺏어간다. 세금은 약간 떼지만 혹시 신경쓰인다면 다음 해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 하면 다 환급 해준다 간혹 수학과 대학원과정을 씹어먹는 무시무시한 난이도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백점을 맞고 상금을 쓸어가는 괴수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증명보다는 혹독한 계산을 요구하는 테크닉이 중요시되는데 인간계산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외부(연구원이나 기업)에서는 '한양대학교 공대생들은 수학을 잘한다'는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며(물론 편차가 존재하지만...) 혹독한 교육으로 갈고 닦은 공학기초 수학실력에 대한 졸업생들의 자부심이 상당하다.

또한 이 대회는 교내 공모전의 성격[121]과 유사하며 수상 실적은 전공과 연계가 매우 강력하여 취업 및 대학원 진학시 이력서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 실적이다.

10.3 왕십리의 풍수지리

왕십리가 조선의 도읍지가 되었다고 가정하면[122], 풍수지리로 볼 때 내산(뒷산)이 되는 행당산 위에 위치해 있는지라, 한양대에서 제일 높은 인문대 옥상[123]에서 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용마산), 관악산, 청계산, 남산 등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산들이 병풍처럼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청계천, 중랑천[124]한강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위치로 인해, 무학대사궁궐을 현 한양대 캠퍼스 부지에 지으려고 했다.[125]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위치한 만큼 주경, 야경 모두 정말 멋있다.

10.4 학생운동과 대학문화

과거 한양대는 전국조직에서 네임드[126]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5기 한총련 이적단체 판결 이후 한총련이 망테크를 타기 전까지[127] 10명의 의장중 3명이 한양대 출신이다.[128] 구체적으로 전대협 3기의장 임종석(무기재료 86), 5기의장 김종식(사회87), 한총련 1기의장 김재용(정외88) 등,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학생운동의 파급력이 대단했던 8-90년대 사회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의장을 배출한 학교가 주목 받는 건 더 설명이 필요한지... 덕분에 8-90년대 학번 일반 학생들이 전의경에 들어가서 학교가 한양대라고 하면 그 이유만으로 엄청난 비난과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이는 이 학번대 한양대를 나온 자교 출신 교수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특히 임종석(前 국회의원 現현서울시부시장)의장은 워낙 경찰에 안잡혀 별명이 임길동이었는데, 인문대 올라가는 계단에 비트이거 뭐야 무서워..를 파고 일주일간 숨어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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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당연한 이야기 겠지만, 네임드들이 많아서 전국적 행사 무슨 무슨 출범식, 무슨 무슨 대회는 계획대로 잘 안된다 싶으면 한양대를 배경으로.. 참고로 한양대 사수대 이름은 행당불패[130]였다. 학생운동 역사상 가장 유명한 tac도 한양대를 배경으로시위학생들을 가득실은 전철이 학생들이 한양대역에 내릴 것을 우려해서 정차하지 않고 바로 뚝섬역으로 직행하자 뚝섬역에서 학생들이 모두 내린다음 지하철 철로를 뛰어내려 한양대역으로, 그다음 한양대에서 미리 만들어둔 사다리를 내려주자 그걸 타고 한양대 입성..당시 성동경찰서 정보과에서 오늘은 우리가 졌다. 고 총학생회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야기 오오 정보과장님 대인배 때문에 당시 군대 자대에서 한양대 출신이라고 하면 중대장의 의심어린 눈초리와 함께 면담을 한번 더.. 해야했다는 웃지못할 선배들의 얘기도 전해진다.

대학문화의 쇠퇴와 더불어 지금은 FM이라고 불리는 각 단위 꾸밈말[131]을 통한 자기 소개는 봄만 되면 캠퍼스 곳곳과 왕십리 술집과 한양부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심지어 자기 이름 앞에다도 붙였다.

90년대에는 학생들이 주옥같은 한양대의 지리적 특징들을 이용해서 시위진압 중인 경찰들에게 어느새 고지점령전을 선물해주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게 되어 캠퍼스 자체가 한양요새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예비역 복학생들이 길에 마음먹고 바리케이트를 쌓은 후 군대에서 배운 각종 전술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백골단도 쉽게 손대지 못했다고 한다.사실 학교 안으로 쫓겨서 들어온 적도 없다고 선배님들은 말하신다흠좀무 실제로 96년도 연대사태 시절 한양대 고지[132]를 점령한 학생 시위대가 화단 등의 벽돌을 떼어내 투척하는 바람에 학교 내 벽돌들이 흉물스러운 몰골이 되었던 일도 있었다. 사족으로 예나 지금이나 한양대의 건축공학과토목공학과는 국내에서 톱의 위치를 달리고 있다.그런 사람들이 학교 지도 한장 펴들고 전략요지에 바리케이트를 쌓았다면? 심지어 인문대 옥상에는 투석기가 있었다는 80년대 90년대 학번의 증언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며 사거리는 대략 한마당까지였던 걸로 기억되고 있다.이 곳이 미나스 티리스다! 1997년도에는 한양대에서 개최된 한총련 행사에서 경찰 프락치 오인 사건이 발생했다. 구체적 내용은 이석씨 치사 사건 문서 참조

과거 한양대는 운동권이미지가 강했으나 2008년 체인지 포유(Change4U) 총학생회 한총련 사건(항목 8.1 참조), 통진당 이정희 한양대 강연 취소 사건기사, 나꼼수의 김용민 한양대 강연은 파리를 날리기도 하는 등 기사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권의 색채를 많이 벗어내고있다. 다 옛날얘기.

10.5 행당캠퍼스의 유래

예전에는 서울캠퍼스라는 명칭 외에 행당캠퍼스라는 명칭도 간혹 불려지곤 했는데, 이 명칭은 서울캠퍼스가 위치하는 동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즉 서울캠퍼스가 위치하는 행정구역이 바로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캠퍼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반드시 특정 행정구역과 연계를 지어야 할 필요가 없고, 자신들이 불러주길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줘야 하기 때문에 엄연히 잘못된 명칭이다. 학칙에서도 서울캠퍼스라고 명명하고 있다. 실제로 행당캠이라는 단어는 2014년 현재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다.

10.6 HELP

Hanyang Essential Leadership Plus Program이 아니다. 절대로.

교육공학과 송영수교수의 주도로 한양리더십센터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이다. 재학 중인 서울캠퍼스 한양인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는 과목이기도 하다. HELP1 ~ HELP4까지 4개의 강의를 매년 하나씩 들어야한다. 각 강좌들은 '휴먼리더십', '글로벌리더십', '비즈니스리더십', '셀프리더십'을 주제로 한학기동안 진행되며, 교과서에서 접하기 힘든 지식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정치편향적인 내용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매년 논란이 되는 수업이다.물론 제대로 수업듣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2009년까지는 온라인으로 시험을 실시하였으나, 워낙에 많은 인원이 응시하는 시험인 탓에 서버가 버티지 못하여 시험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취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고, 결국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오프라인 기말고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오프라인 시험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학업부담을 가중시키는 과목이라는 비판이 많았고, 결국 2015년부터는 매주 온라인퀴즈와 기말과제로 대체되어 불만이 다소 줄어들었다.

2016년 1학기 9주차 강의에 사용된 자료에서 여성혐오 및 편견을 조장할 여지가 있는 사진이 사용되어 논란이 되었다. 해당 자료는 '마음을 훔쳐라! 욕망을 자극하라! 꿈을 팔아라!'라는 소주제 하에서 이루어진 수업에 사용되었는데,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에게 남성이 반지를 내밀자 여성이 다리를 벌리는 사진이 연달아 게재된 것.
총학생회에서는 "(해당 사진 자료가)강의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데다 내용 자체가 심각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수업자료에 포함된 사진의 삭제와 리더십센터의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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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재학생들의 HELP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온라인 강의 틀어놓고 하스스톤 한다는 반응이 압권사진은 2016년 6월 9일에 사회대 앞에 붙은 대자보이다. 이후 2016년 10월에는 총학생회에서 HELP 필수수업 제외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HELP 3의 과제에서 시장경제적 측면을 옹호하는 내용을 정답으로 요구하는 과제를 낸 데에 반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11 출신 인물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출신 인물
  1. 제2공학관에서 공업센터 본관을 거쳐 신소재공학관으로 가거나 혹은 공업센터 본관에서 공업센터 별관으로 이동한 다음 FTC로 이동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2. 이사장이 생전에 한시라도 건물 증개축을 멈추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말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항상 어딘가에서 증개축이 일어나고 있다!! 심시티 자제요
  3. 정보통신대학과 건축대학이 별도의 독립된 단과대로 존재하던 시절, 정통대의 FM은 '자주정통'이었고 건축대의 FM은 지금도 건축계열에서 사용하는 '통일건축'이었다.
  4. 성우 박일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5. 건축학부와 함께 과거 건축대 소속학과. 지금도 학생회는 건축계열이 독립되어 있다.
  6. 과거 원자력공학과, 산업공학과와 함께 시스템응용공학부로 운영되었고 학과제로 복귀한 지금도 각 학과간에 과방 공유와 더불어 친목행사를 같이한다.
  7. 컴퓨터공학부 내에서 신입생 모집 단위만 별도의 전형이 있는 세부전공이라서 FM은 같다.
  8. 소프트웨어전공에서 컴퓨터전공과 별개의 행사를 진행할 때 비공식적으로 별도의 FM을 사용하기도 한다.
  9. 정보통신대학이 있던 시절 정통대 산하에 컴퓨터전공, 미디어통신공학과, 정보기술경영학과가 존재했다. 신입생을 모집할 때 1~3반은 자연계 학생, 4반은 인문계 학생을 선발하였으며 2학년이 되어 학과로 진입할 때 1~3반은 컴퓨터전공/미디어통신공학과를 선택하고, 4반은 정보기술경영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4반 학생이라고 컴퓨터/미디어통신을 못 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4반 학생들은 학교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보기술경영학과로의 진입이었고 실제로도 주로 그랬다)
  10. 학교 행정으로 정보통신대학이 공과대학으로 통합되면서 정보기술경영학과는 정보시스템학과로 개편되었고, 신입생을 학과로 모집하면서 모집 단위 자체를 인문계(상경계열)로 분류했다. 학과분리는 09학번부터 했지만 확정된 것은 09-10 쯤. 지금도 컴퓨터공학부와 정보시스템학과는 정보통신계열로 엮이며 동아리나 친목행사 등을 같이한다. 얼마 전까지는 학생회도 계승되었으나(2013년 현재 총학생회장이 정보통신계열 학생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학생회 선거가 진행되지 않아서 결국 공대와 통합되었다. 한편 미디어통신공학과는 전자통신공학부와 함께 융합전자공학부로 통합되어 정통대를 이어오게 된 의미는 희석된 편.
  11. 기존 학과명이 응용화공생명공학부였는데 화학공학과, 생명공학과(현재 화공생명공학부 세부 전공), 그리고 지금의 유기나노공학과인 분자시스템공학과로 구성되어있었다. 2011년 분자시스템공학과는 유기나노공학과로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학생회는 응용화공생명공학부 소속.2014학년도까지는 신입생을 화공생명공학부 단위로 모집해 2학년때부터 화학공학과와 생명공학과로 분리되었으나 2015학년도부터 신입생도 화학공학과, 생명공학과 단위로 분할모집한다.
  12. 2010년 한양대가 WCU 사업에 선정되면서 신설한 특성화 학과이다.
  13. 우스개소리로 암욜에너지가 있다. (...)
  14. 1994년 기계공학부로 통합되었다가 2011년 미래자동차공학과로 17년만에 특성화 학과의 형태로 독립, 부활하였다.
  15. 06년도 이전에는 연극영화학과도 있었으나 학교 행정으로 인해 07년도부터 연영과는 예술학부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16. 구 신문방송학과에서 개칭되었다. 신방과 시절에는 '선전선동 신문방송'이었다.
  17.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편으로 인해 09학년도부터 법대를 계승하면서 개편된 단과대학이다. 정책대는 법대와 동아리나 학회 활동 등 학교 생활을 같이 해 왔다가(건물도 법학관을 공용), 정책과학관 완공과 더불어 법학관 생활을 (일부) 마감하고 14학년도 2학기부터는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책과학대학으로 넘어온 행정학과와 함께 정책과학관으로 입주하였다. 물론 동아리나 학회 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18. 원래 사회과학대학 소속이었으나, 14학년도부터 정책과학대학으로 이속되었다.
  19.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편으로 인해 09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
  20. 01학년도에 상경대학(민주상경)에서 경영학과가 경영대학으로 독립하면서 경제학과도 경제금융대학으로 분리되었다. 분리 당시에는 서울대처럼 사회과학대학에 편제하려고 했으나 극렬한 반발에 부딪혀서 경제금융학부로 독립했다고 한다.
  21. 우스개소리로 후진경금이 있다. (...)
  22. 정예1반, 청춘2반, 강력3반, 단결4반, 열정5반
  23. 체육학과와 무용학과는 별도의 사이트가 없다. 왜냐하면 예체대 사이트는 과거의 체대 사이트에 연영과 사이트만 연동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 준비가 미비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는 막장 사례. 그러게 왜 연영과를 멀쩡한 인문대에서 빼앗아가냐
  24. FM이 중간에 바꼈다. 이는 인문대 노래패 '다살놀애'의 주제가인 '다살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애국한양을 굽어보는 청년인문 노래패! 혁명의 노래 건설의 노래 창조의 노래 다/살/놀/애! 이와 같이 다살가를 통하여 다살의 창립멤버는 연영과(승리연영), 사학과(건설사학), 영문과(창조영문)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현재 인문대 학생회에서 '혁명'을 사용하는 과는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연영과의 FM은 혁명연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서술했지만 연영과는 06년도까지 인문대 소속이었다.
  25. 다이아몬드 학과
  26. 역시 다이아몬드 학과
  27. 다행히도 여러학기 연속으로 3.5를 못넘어도 다시 3.5를 넘기만 하면 장학금이 지급된다.
  28. 소프트웨어 전공이고, 기업의 지원을 받는 학과라는 점에서 성균관대학교의 소프트웨어학과와 유사해보이지만,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는 삼성SDS가 지원하는 학과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9. 2017학년도부터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가 통합되었다.
  30. 매년 평균 10명 이하 정도 선발되며 한양대 교수임용을 보장받는다. 컷은 문과 기준 연고대 경영 정도
  31.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 합격자중 선발하며 노벨상 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각종 혜택을 지원받는다
  32. 11번 국제관과는 다르다. 대학원 건물 명칭을 변경하며 중복되었다
  33. 과거 엔지니어링하우스로 계획되었을 때는 60번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127번으로 정해졌다
  34. 아무도 부르지 않는 선봉공대가 2절에 흔적이 남아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구 신문방송학과) 과가는 '진사로 한마당을 질주하는 젊은 사자들'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35. 영업종료 예정
  36. 한화푸디스트 위탁운영
  37. 2014년 문을 닫고 피트니스 클럽이 들어섰다.
  38. 구.기초융합교육원. 다른 대학의 학부대학, 교양학부와 같은 역할이다
  39. Core i7사양의 PC와 Mac이 있다!!
  40.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연구실 입주 타이밍에 다른 건물에 자리가 없어서...
  41. 건물 뒤에 공공정책대학원 건물을 붙여 지으면서 생겼다.
  42. 최근에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도서관 이용수칙 교육을 이수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물론 학생증은 여전히 필요하다. 2015년 기준.
  43. 특히 사범대, 인문대, 사회과학대, 중앙도서관에서 머무르던 학생들이 아래로 내려가기 싫을 때 애용한다.
  44. 10분 안에 입장은 어렵지만, 애지문→노천광장→대운동장→법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경우 체력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죽기살기로 뛴다면 늦지 않을 수 있다. 이 루트를 역으로 탈 경우, 제3캠퍼스에서 제2공학관까지 5분만에 갈 수도 있다. 법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3법학관으로 나온 후 대운동장을 주파하면 바로 제2공학관 후문이 보인다. 건물 밖의 길 뿐만 아니라 건물 내부의 지형지물도 잘 활용하는 것이 한양대학교 생활의 주요 Tip.
  45.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오르막이든 뭐든 계속 달리기만 하면 한양대역 대합실에서 ITBT관 까지 3분 안에도 도착할 수 있다.
  46. 주요 은행 지점을 기준으로 우리은행농협은행-왕십리역 11번 출구, 국민은행-왕십리역사 1층 혹은 락스타 한양대점, 하나은행-학교 정문 맞은편, SC제일은행 마장역 삼거리, 씨티은행 성수동 등 주요 은행이 꽤나 거리가 있다. 사실 SC나 씨티는 지점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정도면 학생들이 업무를 보러 갈만한 위치긴 하다.
  47. 사실 지점보다 ATM이 문제인데, 학교 내부에서 접근할 수 있는 타은행 ATM이 학생회관 앞마당의 국민은행 뿐이다. 때문에 농협과 우리은행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골치아프다.
  48. 낭설에따르면 1생활관 철거후 지을 예정이라고...
  49. 현재 건설중
  50. 서울특별시 고시에 따르면 마장캠퍼스에 건축예정으로 되어있다.
  51.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협약식에서 언급되었다.
  52. 실제로 세보면 85개이다. 예전 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는 88개가 맞았으나 현재는 공사로 인해 계단 3개가 사라졌기 때문에 85개가 된 것이라 한다
  53. 하지만 속설 때문이라기보단 이 쪽으로 가는것이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최단거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이 속설 때문이라면 학생이 아닌 대학 견학생이라든가 다른학교 학생, 속설을 모르는 학생 그리고 교수님들은 우측 계단도 써야할텐데 그렇지 않다. 어쩌면 '다들 저쪽으로 걸어가니 나도 저쪽으로 가야한다'는 무의식이 불러일으키는 집단행동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54. 과거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F계단 쪽으로 내려간 학생들의 검거율이 월등히 높아서 '왼쪽 계단으로 가야 운이 좋다'라는 말이 생겼고, 이것이 후에 A/F로 와전됐다는 설도 있다.
  55. 이는 한양대학교 산악부가 암벽등반 연습용으로 오래 전에 만들어 둔 것이다. 보는 건 좋은데 혹시라도 호기심에 매달려 보려고 한다면, 하지 마라. 관리가 되지 않은 지 오래되어 홀드가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다.
  56. 아주 옛날에는 117계단이라고도 불렸었다.그때는 계단이 117개였는듯. 90년대 후반 계단 보수공사이후 이름이 바뀐거보면 그 때 쯤 계단 수가 늘었던 듯 하다.
  57. 위에서 말한 암벽등반장이 이곳이다. 다만 현재는 관리가 되지 않아 풀숲이 우거져 있다.
  58. 의대 건물을 공사하면서 2013년 6월까지 94계단이 폐쇄되었기에 13학번 새내기들은 이 샛길'만' 이용했다. 샛길이라지만 나름 계단도 있다! 이 계단을 94계단으로 착각하는 새내기도 있는데 실제로 세어본 결과 94개에 턱없이 못 미친다. 현재는 다시 통행 가능.
  59. 인문대 2000년대 중반 학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정력계단이라고 불렀다. 오히려 다른 명칭들이 생소한 수준. 다른 학번들 추가바람.
  60. 싸군이 씨유로 바뀌기 전 미니스톱이었던 시절의 사진.
  61. 처음엔 신입생들이 싸군 싸군 했는데, 그 신입생들이 선배가 되고, 그렇게 가르쳐주다보니 굳어졌다. 사군사자의 군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62. 사실 이걸 의식해서 지은 이름인데 이 편의점이 위치한 장소를 생각하면 약간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국가가 집행하는 국가오례의 중에 하나였던 '마조제'(馬祖祭)를 지내는 옛 마조단(馬祖壇) 터가 이 편의점 바로 옆에 있는 것. 본래 한양대가 위치한 행당동 및 마장동이 원나라의 고려 침입 이후 군마를 기르는 지역이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수도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바로 이 부근에서 말의 조상인 천사성(天駟星)에게 말의 건강과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냈었다. 한양대 본교 내부와 그 일대가 실은 말(馬)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었다는 건 한양대생들도 잘 모르는 사실. 그러니까 사자 이빨이 매년 부러지는 거다. 최근 한양대 후문의 도로 이름도 이를 반영해 '마조로(馬祖路)'로 바뀌었다.
  63. 미니스탑 전 지점 중에서 매출이 제일 높다. 2위는 한양플라자(구 직녀관) 1층에 있는 미니스탑이다. (단, 이것은 시험기간에 한정된 이야기 이다. 시험기간이 아닌 날에는 한양대 병원점보다도 매출이 적은 날이 더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하다가 뭐 사먹으려고 하면 바로 앞에 보이기 때문. 한양대생들은 산을 내려갔다가 지옥을 초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뭐 사러 내려갔다가는 당장에 등산 모드이니...
  64. 매출은 높은데 한양대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학생 측에서 얘기하다보니 조금은 깎아주는 편의점이 되었다고 한다. 07' 정보통신대학(현재는 공과대학으로 복귀) 회장의 증언.
  65. 다른 편의점에 비해 규모가 꽤 넓고 물건도 꽤 많이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꽉 차 있던 삼각김밥 냉장고가 오후쯤에 들어오면 텅 비어있다.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66. 원래 오뎅용기는 판매용이 아니지만 2005년 당 편의점에 오뎅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 할 무렵, 야간에 뽀글이를 먹으러 온 학생들이 오뎅용기를 발견하고 그냥 집어가서 임의로 컵라면을 만들어 먹다 보니 정작 오뎅을 담을 용기가 없어 오뎅을 팔 수 없게 되자 당시 아르바이트생이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예 오뎅용기의 발주량을 늘렸다.
  67. 다만 이 곳에서 연구하시는 교수님들이 시끄러우셨는지 2016년 현재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 있다.
  68. 단, FTC 출구는 출입권한이 필요하게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
  69. 한양여자대학. 한양학원에서 운영하는 2/3년제 전문대학이다.
  70. 병원 주차장 쪽의 샛길을 통해 갈 경우 정말 5분만에 등/하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급경사 크리(…)
  71. 그러나 노선을 잘 보고 타지 않으면 망한다.
  72. 좁아 보이는 구역이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식당이 있다.
  73. 미아된다.
  74. 사실 2006년 당시까지 이곳의 명칭은 시장통, 시장골목이었으며 실제로 한양부페를 가자하면 실제 그 식당에 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 당시에는 신입생들의 신고식은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부페가자며 신입생들의 환호를 받은 후 시장 골목에 들어가 한양부페 식당에서(절대 부페식이 아니다!!) 이모님 소주 4병이랑 제육 하나요를 외치며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한양부페가 사라지고 이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로 신입생들을 신나게 낚으며 이곳이 한양 부페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이라 추측된다.나만 당할 수 없다는 06학번들의 물귀신작전
  75. 알촌뿐 아니라 와와, 호코리, 행운돈가스 등등 한양대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식당들이 전부 모여 있는 곳이다.
  76. Halem. 하렘이 아니다!
  77. 24시간을 주기로 이용자에게 다른 필명이 랜덤으로 제공되므로 사실상 익명게시판이나 다름없다.
  78. 여담이지만, 댓글 신고 버튼 옆의 아이콘이 철컹철컹이다(...).
  79.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의장을 역임하였던 임종석 전 국회의원(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한총련 1기 의장이었던 김재용이 있다.
  80. 한 때는 천하통일(총학생회부터 과 학생회까지 모든 단위가 운동 계보)을 이룬 적도 있었으니...
  81. 심지어 김일성종합대학 자매결연 대학이 서울대가 아닌 한양대였으니... 2000년대 초반까지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축전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82. 현재도 총학생회는 NL계 인천연합 계열이다. 하지만 뒤에 말하게 될 일이 있고 나서는 한대련으로 일컬어지는 경기동부연합과의 사이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의당으로 넘어간 건 아니고, (경기동부에 진절머리가 난 몇몇은 넘어가기도 했지만) 비 정의당 인천연합 소속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한양대는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PD계라고 볼 수 있는 정의당과 노동당 그리고 정파를 떠나서 다른 전국단위 연합 조직들의 세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온니 총학생회. 덧붙이자면 이러한 구도를 보고 총학 혼자 다 해먹냐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걸 바꿔보면, 총학마저 없다면... 망했어요...
  83. 심지어 한총련 사무실이 한양대 안에... 더불어 5.18을 정면으로 다룬 첫번째 영화인 부활의 노래(1991, 이정국 감독)에 학생운동 배경장면으로 노천이 등장한다. 90년대 초반 노천극장을 감상가능.
  84. 공대/자연대/사범대/생활대/애문연 등이 들어가 있는 단결계(경기동부연합. 대표적으로 한대련)와 인문대/사회대/법대/상경대(이후 경금/경영대로 나뉘면서 반운동화)/음대 등이 들어가 있는 혁신계(인천연합)로의 분화는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2001년도까지만 하더라도 통합되어 있었으나 한총련의 분열과 더불어 학내에서도 분열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에 말하게 될 과정을 거치면서 학내에서 경기동부 쪽은 쫓겨났고, 현재는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 정책대(법대의 후신), 공대 등이 총학과 동일 성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공대는 2013년도에 들어서야 혁신계가 당선이 되었기에 학내의 혁신계를 흔히 '인사법'이라고 부른다.
  85. 그나마도 2008년에 재선했더니 회계 부실로 중도사퇴했다.
  86. 공대 학생회가 중간에 들어가는데, 이는 한양대 특징상 공대가 전체 학생들의 1/3을 차지하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공대
  87. 2003년도 소명 총학생회장
  88. 여담으로 2006년도에도 같은 선본 명으로 나왔다. 낙선했지만.
  89. 2012년도 선거는 3월 재선거+상대 선본의 사퇴 자폭 속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자력이라고 보기 어렵다.
  90. 자연대, 생활대 등은 이 때 계보가 단절되었고 사범대는 간당간당했다가 인사법으로 합류. 다만 공대처럼 명확한 교체나 전환이 있는 건 아니라서 현재까지도 선본-학생회 명칭은 따로 쓴다.
  91. 자치독립언론이므로 다른 언론사와 달리 학생회로 대표되는 학생자치에의 참여는 가능하지만, 어쨌거나 언론기관이므로 노골적 편파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비슷한 성향의 학생회라고 하더라도 일단 모두까기를 하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 교지조차도 SAY에게 비판한 것이 없었고, 호평일색이었다.
  92. 학생운동 조직은 해마다 교육투쟁을 펼치기 때문에 대학의 교육정책에 있어서는 전문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93. 주로 NL. 물론 100%는 아니지만...
  94. 참가자들이 무단으로 대학 내 건물에서 잤다던가...
  95. 그리고 홍익대는 그 다음부터 총학생회에서 운동 진영이 당선된 적이 전혀 없었다.
  96. 뒷말에 따르면 이는 회장 본인의 의지보다는 동부대련의 지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97. 다시 말하지만 한양대에서 PD는 전멸한지 오래다. 2008년도 한총련 대회를 한양대에서 열 수도 있다는 고려 사항을 유출한 쪽이 PD쪽이라는 뒷말도 있었고... 아무튼 한양대에 다른 세력이 있더라도, 이를테면 정의당 당원들이 있더라도, 2012년도 분당 때 경기동부에 진절머리가 나서 아예 갈아타버렸거나 아니면 신입이지, 정통 PD는 없다고 봐도 좋다. 2016년 현재 한양대에도 노동당 등의 당원은 있지만, 이들은 신생, 자발적 인물이고 (정통) PD라기 보다는 신좌파에 속하며 당연히 계보상으로는 단절되어 있다.
  98. 2016년 뉴스타파의 청년, 안녕들 하십니까?의 영상에 위원장의 신분으로 출연하였지만 그것 뿐이다. 어떠한 실권도 없다고.
  99. 재선거에서는 HY-er로 이름을 바꾸지만 정후보는 동일 인물
  100. 이 때 그 다음 해 3월 재선거에 부후보로 나가는 학생이 상대 선본에 폭행 위협을 가했다. 본인도 시인하였다.
  101. 선거 내용과 무관한데다, 앞서 말했듯이 하이라이트-Real Plan H로 이어지는 인사법은 한대련과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 당원 사실 여부는 규칙에 후보자의 당적 명시 내지는 제한 사항이 없으므로 빼도박도 못하는 흑색선전.
  102. 총선 등에서는 공보물에 전과 사항이 기록되고 이것이 안내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총학 선거 도중에 받은 경고이므로 공보물에 넣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남은 선택지는 투표소에서의 징계 여부 안내 뿐.
  103. 해당 교수는 제3대 대선(이승만 vs 신익희)의 사례를 들면서 중도 사퇴가 있더라도 투표를 속개할 수 있다고 자문하였다.
  104. 국제학부라는 말이 있으나 국제학부의 규모(연인원 50명 내외)를 볼 때 과연 국제학부였을지는 의문이다.
  105. 운동 진영에서 빠져나간 뒤 해마다 단일 선본으로 이어지고, 이 해 정후보를 내보낸 경금대조차도 이 일이 있고나서 학을 떼면서 반운동성을 지웠다고 하니 뭐... 물론 고인 물 경영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106. 이 무렵에 다카키 마사오 발언이 나왔다.
  107. 공대가 합류하고 나서는 인사법이라는 이름을 딱히 쓰지 않게 되었다.
  108. 214표 차이로 당선
  109. 개표방송 영상 마지막 개표함에서 역전한다
  110. 애국한양문학예술학생연합. 중앙 동아리뿐만 아니라 단과대의 문예 동아리들의 연합체. 이 때까지 학내 한대련 계의 거점이었다.
  111. 계보상 선배들의 요청에는 여전히 호응한다. 이를테면 각종 행사에서의 풍물패 출연 제의라던가.
  112. 동일 선본으로 재선. 클래스업까지 넣으면 3선
  113. 여담으로 직원들은 천막이 강풍에 날아갔어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농성장에서 밤에 공동체 놀이를 한 것을 시끄러운 술게임을 한다고 지적한 것도 학생 제보가 아닌 자작극이라고 카더라. 또다른 카더라에 따르면 이미 학교본부측과 농성에 대한 사전조율이 끝나고 보여주기식 농성을 했다는 제보도 있다. 카더라와는 별개로 실제 총학이 원했던 것은 국장2유형의 5억3천만원 이상 증액이었으나, 학교는 그 대신 총학이 관여하는 생활비장학금(미생장학금) 1억을 확충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로 학교는 약 4억3천만원의 예산을 아꼈고 총학은 장학금 확충이라는 명분과 총학이 주도하는 장학금사업을 늘리는 실리를 모두 챙기긴 하였다.
  114. 경기동부-한대련은 쫓겨났고, 다른 계파(연합조직, 비/반운동 계보)는 이제 없는 셈이며 신좌파는 학생회 선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현재 총학과의 사이도 소원하지 않으므로, 대안 세력이 될만큼 대립적인 구도도 아니다.
  115.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있었으나 조용히 묻혔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체인지 포유가 아닌 2006년도 소명 총학생회의 문제점을 다룬 것이다.
  116. 이는 체인지 포유의 잘못이지만, 체인지 포유에서 볼 때에는 얻어 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향을 막론하고 회계 부실 및 영수증 문제(가라 영수증으로 알려진)는 그 때 어디서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 이를 거름삼아서 2012년도부터는 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단과대까지 달마다 공개 게시하고 있다.
  117. 이승엽 본인이 프로에 가고 싶어서 수능 보는 중간에 화장실로 탈출해서 결국은 성사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다. 수능점수 미달은 맞지만.
  118. 이게 어느정도냐 하면, 농구대잔치 시절로 치면,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의 대학세가 실업무대를 장악한 것보다도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서비스, LG화재, 상무 등의 실업팀의 실력이 견고한데다 대학부에서는 성균관대와 라이벌이었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올라간 셈. 물론 당시 고려증권, 현대자동차의 노쇠화가 좀 있어서...
  119. 미적분학 1과 미적분학 2라는 이름하에 2개 학기 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
  120. 2002년 월드컵 4강 광풍이 불어닥치던 당시에는 시험을 보러 들어가기만 해도 C를 받았다고 한다(...)
  121. 경쟁을 통해 우열을 가려 별도의 참가비 없이 학교 예산으로 상금을 수여함.
  122. 무학대사가 왕십리에 도읍을 세우려다 10리를 더 갔다는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의 뜻을 생각해 볼 것.
  123. 엄밀히 말해 백남학술정보관(중앙도서관)이 제일 높지만, 옥상에 갈 수 없다.
  124. 이 일대가 청계천이 중랑천에 합류하는 곳이다.
  125. 10리를 더 가지 않았더라면 경복궁은 이곳에 세워졌을 것이고, 북악산은 행당산이 되었을 것이며, 서울의 중심지는 지금의 종로구 일대가 아닌 성동구였을 것이다.
  126. 전대협 한총련 의장
  127. 한총련 4기 이전 이후 역사는 생략한다
  128. 고려대 3명 전남대 3명, 나머지는 서울대 한 명
  129. 덤으로 워낙 수려한 외모로 당시 여고생 인기투표에서 연예인을 제치고 1위를 할 정도 였다. 당시 잡혔을때 인터뷰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뉴스가 될 정도.
  130. 전남대는 오월대, 조선대는 녹두대
  131. 90년대 선배들 왈 '사실 한양대에서는 FM이라는 국적 불명의 말 쓰지도 않았음. 고대애들이나 되도않게 FM 이라 불렀지, 우린 언제나 아지라 그랬다.' 참고로, 아지는 agitation의 준말
  132. 사회교육원 앞 주차장. 한양대역 지붕과 그 옆의 왕십리로를 내려다보는 곳이라서 말 그대로 요새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