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

耳塚(미미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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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의 오륜. 측면에 세겨진 것은 실담(悉曇, Siddham. 범어(梵語)의 자모(字母)를 뜻한다.) 문자로, 각 글자마다 아래에서부터 (地), (水), (火), (風), (空)을 상징한다고 한다. 본 항목에는 교토의 귀무덤을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 전국에 귀무덤이 많은 것 같다. 자세한 것은 하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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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대로는 를 묻은 무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묻힌 것은 대부분 사람의 [1], 임진왜란일본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군이 죽인 조선인들의 수급 대신 베어갔던 코를 묻은 무덤이다. 당연스럽게도 본래 이름은 "코무덤(鼻塚)"이었으나, 이름이 섬뜩하다고 하여 "귀무덤(耳塚)"으로 바뀌었다. 뭔 차이야. 귀 한 짝 없는 모습 보다는 얼굴 전면에 비강이 뻥 뚫려 보이는게 확실히 훨씬 섬뜩하거덩 [2]

그 유래는 정유재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부피가 큰 수급 대신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내도록 하여 각자 벤 수에 따라 포상을 내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막상 모아놓고 나니 처치가 곤란한 데다가 일을 지시한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조선에 돌려줄 수도 없게 되자 그냥 한 곳에 파묻은 것(…)이다. 이는 임진왜란 때의 민간인에 대한 비교적 온화한 태도와는 사뭇 대조되는 것으로 당시 히데요시가 심각하게 미쳐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일본군이게 미친 짓인 건 알고 있었는지 코만 베고 살려준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그래서 종전 후 호남을 중심으로 코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에비'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비’, ‘에비야’ ‘이비야’ ‘어비야’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에비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를 뜻하는데 “계속 울면 에비 온단다”, “에비, 이런 거 만지면 안 된다.” 등의 경우로 쓰인다.

에비는 ‘이비야(耳鼻爺)’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귀(耳), 코(鼻), 사람(爺)이 합쳐진 말로 귀나 코를 베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유재란 떄 종군한 승려 게이넨이 쓴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도 나오는 내용이며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순사를 에비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일부는 1990년, 1992년 경상남도 사천시전라북도 부안군이장됐으나, 오늘날에도 완전한 이장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일본에서도 별도의 관리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별도의 예산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3대째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가 언젠가부터 교토시에서 관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필 임진왜란의 원흉 히데요시을 받드는 토요쿠니 신사(豊國神社) 건너편 공원[3]에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바로 옆 호코지(方広寺)[4]의 대불전터(大仏殿跡) 및 석축과 함께 쇼와 44년(1969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설명판은 헤이세이 15년(2003년) 세워졌다.

징비록 48화에서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실제로 정유재란이 임진왜란보다 더 잔혹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코베기 때문이다.

교토에 있는 귀무덤이 유명하고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일본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1992년 오카야마 비젠시 가카토 구마카와산 기슭에서 귀무덤, 1995년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귀무덤을 발견되었다. 2014년 쓰시마 가미쓰시마 히코텐성 남쪽에서 적석묘로 된 귀무덤이 발견되었다. 쓰시마 지역의 역사 문헌인 '카미쓰시마지'에서 일본군이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고 현장 조사를 벌여 찾아냈다. 교토나 다른 곳에 있는 귀무덤과 형태가 다르고 다른 무덤과는 달리 표지석 등은 없었지만 현지인들의 진술과 사료가 일치한다고 한다. 2016년] 초에는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가스이엔 옆 언덕 숲 속에서도 귀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돌로 만든 높이 1.2m 정도의 사당 양쪽 기둥에 '괵총(馘塚)'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괵총의 괵(馘)은 '귀를 베다'는 뜻으로 곧 귀무덤을 뜻한다. 이들 귀무덤들이 고니시 유키나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등과 연관되어 있는 걸 보면 정유재란 때 베어온 코나 귀가 일본 여기저기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모두 환수해 오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당장 교토 귀무덤도 완전히 환수되지 않고 있는데다가, 국내에 일부나마 환수된 귀무덤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찾아가려면 교토국립박물관 북쪽에 있는 도요쿠니 신사, 호코지 건너편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관련 항목

  1. 야사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리품으로 날아온 귀를 보고는 "사람에게 는 하나뿐이지만 는 둘이니 하나를 죽이고도 둘의 수급으로 늘릴 수 있다"며 코를 베라 했다고 한다.
  2. 묻힌 대상과는 다른 '귀무덤'이라는 표현으로 돌려 말해 불길함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한다.
  3. 공원 이름도 미미즈카 공원이다.
  4.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치기 위해 생트집을 잡았던 문구가 새겨진 범종으로 유명한 절이며, 이 범종은 중요문화재 공예품 제223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