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미국


After one year from the ratification of this article the manufacture, sale, or transportation of intoxicating liquors within, the importation thereof into, or the exportation thereof from the United States and all the territory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for beverage purposes is hereby prohibited.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에서 음료용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금지된다.

-미국 수정헌법 18조 1항

술을 금지하던 수정헌법 18조를 일컫는 말로, 줄여서 Prohibition라 부른다. 이 수정헌법이 적용되던 1920~1933년을 Prohibition Era라 칭한다.

1 금주 운동

금주 운동의 시작은 사회적인 이유 와 종교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였다.
19 세기 말부터 20 세기 초반은 구미 제국에서 사회 개선 운동이나 도덕 재건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라 마침 금주 운동도 최고 고조의 시기였다. 이미 유럽 각국에서는 금주 운동 단체가 발족 되였으며 영국에서는 1835 년 에 전국 절대 금주 교회 가 발족되어 금주 집회가 열었다. 또한 술의 대안으로 홍차을 밀면서 금주 운동은 전세계 퍼졌으며, 19 세기 후반에 스위스,독일,프랑스,러시아,일본등에서도 금주 단체가 성립하게 되었다.

2 입법 과정

미국도 초기 식민지 시대때 매사추세츠의 법원에서 럼,위스키,와인,브랜디 같은 주류을 불법 규정한적이 있다.
그러다 1840 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금주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주도 한 것은 근본주의 계열 종파 특히 감리교 주도 하였다. 특히 목사 마크 A. 매튜스는정치적 부패와 성매매 연관 시키서 금주운동을 전개 나갔는데, 그 결과 메인주 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어 1851년에 법률로 통과 된적이 있다.
1890대 들어서 금주동맹이 결성되면서 금주법 연방 입법 제정 본격화되었다. 금주법 입법 제정을 주도한 것은 농촌지역의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과 로비 단체인 안티살롱 동맹, 기독교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었다. 특히 금주주의 운동가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은, 자신을 "예수의 불독"으로 자칭하며 술집을 폐쇄시키기 위해 직접 도끼질을 벌이다가 30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1910~20년대 들어서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도시 이주민 유입, 대량의 범죄 발생등을 구조적인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인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 한 것과 이민자 들에게 일자리 소개하는 술집을 정치 부패 온상으로 간주하여 몇몇 정치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금주법 주도해 나갔다. 또한 여성 참정권 운동단체와 음료 업체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으로 금주법에 지지 하였다.

그 결과 1917년에는 이미 미국의 모든 주 중 2/3가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었고, 연방헌법에 금주법을 넣는 Volstead Act 법률안이 1917년 8월 1일에 제출되었으며, 1919년에 상원을 통과했다, 이에 민주당의 윌슨 대통령은 국회가 제정한 이 Volstead Act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당시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인 상황이라 재상정을 거쳐 그대로 통과시킨 후 미국 법률[1]에 따라서 1920년부터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전국에 걸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명분상으로는 그랬다.

3 실제로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달은 미국독일 양국 간의 외교 감정으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1919년 1월에 수정헌법 18조를 제정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당시 손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양조업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 목표. 훗날 만들어지는 WONPR 같은 경우를 보면, 초기에는 이 법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어? 이게 아닌데??"하고 깨달아 대대적으로 발족된 단체이다. 지지자들이었던 자들도, 정작 완성된 걸 보고나니 이건 아니다, 할 만큼 법이 엉터리로 만들어졌음을 시사하는 실례(實例)이다.

당시에 만들어진 수정헌법 18조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에 따르면, 알코올농도가 0.5% 이상이면 불법으로 규정지었는데, 당시 시판 중이었던 맥주의 알코올농도가 2.5% 내지는 3% 미만이었다. 즉, 맥주뿐만 아니고 모든 술이 다 걸릴 수밖에 없는 기준이다. 결국은 헌법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위법으로 만들어 버린 셈. 이는 1920년,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었다.

4 시행 결과

망했어요!! 그리고 헬게이트 오픈!!! 사실 안 망하면 이상한 거다

마피아 전성시대의 시발점[2]

당장 금주법 직후, 미국 정부는 100억달러 이상의 주세[3] 포기해야 했다. 정부: 아까운 내 돈! 더불어 농부들 입장에선 금주법 때문에 아주 쌍욕이 나왔다. 술의 원료는 보리, 옥수수, 포도 같은 농산물이라, 술도가들은 농부들에게는 큰 고객들이었다. 그런데 그 고객들이 하루아침에 문 닫으니, 당연히 농부들 입장에서는 돈도 못 벌고 잉여 농산물은 쌓여만 가는데, 이게 그렇다고 하룻밤 사이 다른 루트로 판매량이 확 늘어날 리도 없고, 그렇다고 꿍쳐두고 있자니 관리비가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소량 생산만 하자니 노동 대비 효율이 개판이니, 이건 뭐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말 그대로 애먼 농부들만 잡는 꼴이 되었기 때문.

그래도 공화당과 금주법 지지자들은, 이런 희생을 감수하고 금주법을 통해서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고 역으로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똑같이 술이 금지된 이슬람권의 경우 금주 문화가 꽤나 오래전부터 존재해와서 술을 잘 마시지 않아서 커피만으로도 버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미국 국민들은 술을 대대로 먹어왔다가 하루아침에 먹지 말라 하니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그나마 합법적인 루트라고 할 수 있는 종교용 포도주(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의 성체성사에서 쓰이는 포도주)의 수요 및 의료용 브랜디의 소비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했으며,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공해에서 자국 코스트 가드들에게 법규를 날리며 술잔치를 벌이는 유람선이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생각과는 반대로 알코올중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술을 구해서 마시는 게 불법[4]이라 알코올중독자들이 제대로 치료도 못 받아서, 알코올중독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밀주산업도 기승이었는데, 인접국에서 술 밀수가 급증했고, 미국 내에서도 밀주가 엄청나게 생산되었다. 이런 고수익 불법산업에 조폭들이 꼬이는 건 당연지사. 때마침 20세기 초에 시칠리아에서 대규모 경찰수사가 있었고,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이탈리아 이민자들 사이에 숨어서 미국으로 도피해서 동네 불량배로 있었는데, 이런 시칠리아 출신 불량배들이 술 밀수 사업에 뛰어들면서 엄청나게 성장해서 전국적인 조폭인 미국 마피아가 되었다, 당연히 밀주산업을 둘러싼 조폭들의 강력범죄와, 집단패싸움은 수시로 벌어졌고, 조폭의 규모가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강도도 같이 악화(惡化)되었다. 그 결과 조폭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시카고 타자기를 두들겨 댔으며, 일반시민들도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술 좀 마시는 게 범죄행위가 되자 자연스럽게 더 큰 범죄에 손을 데게 되고, 거기에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범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와중에 조폭들은 정부에 지속적으로 뇌물을 바쳤고, 그 결과 시카고 같은 곳은 시장부터 말단 경찰까지 알 카포네의 뇌물을 안 받는 공무원이 거의 없었고, 결국 엘리엇 네스도 밀주산업이나 청부살인으로 기소하지 못하고, 탈세혐의로 겨우 기소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밀주도 멀쩡히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불법산업이라서 품질관리가 개판이었다. 썩은 양조주를 팔아서 식중독으로 앓는 경우는 약과고, 증류주는 진짜 독극물을 섞어서 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술을 증류할 때는 마실 수 있는 에탄올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독극물인 메탄올도 같이 나와서 이를 세심하게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5] 그런 기술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냥 생산비 줄이려고 메탄올이 섞인 술을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후술할 뻥튀기 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알코올 도수를 맞추었지만, 일부 밀주업자들은 생산비 줄이려고 에탄올이 아니라 싼 메탄올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대로 미국정부는 공업용 에탄올에 메탄올을 섞어서 뻥튀기 술을 막으려고 했지만, 밀주 만든 밀주업자가 자기가 만든 술을 그대로 마시리란 보장이 없는 건 당연하니, 뻥튀기 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 버렸다. 그나마 여러 법의학자들이 밀주는 목숨에 위험하다고 꾸준히 잔소리 해주지 않았다면 사망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술이 불법이 되니 자연스럽게 술의 기준을 감독할 장치도 없어지므로, 중구난방으로 기준도 없이 만들어지게 되어,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6]을 먹고 취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했다. 참고로 이 술은 살인용으로도 쓰였다.

근데 서프라이즈에서는 미국정부가 일부러 밀주를 만드는 업자와 손을 잡아서 모든 밀주에 클로로폼 등의 독약을 넣는 미친짓을 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데보라 블럼이라는 여성 작가에 의해 제기된 음모론인데, 금주법이 효과를 잘 거두지 못하자 술에 독까지 타가면서 술을 못마시게 할려고 하였다고. 이렇게 금주법이 끝날 때까지 1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물론 이건 일종의 음모론이라서 아닐수도 있으니 자세한 건 추가 바람.

5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5.1 수요 측면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국민의 절대 다수는 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으로 이뤄진 나라였다. 유럽은 자연적인 수질이 매우 좋지 않아 물을 먹을 수 있게 만들려면 가공이 필수였는데 가장 간편한 가공법이 바로 술을 담그는 것이였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술이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었던 곳이다. 즉 먹고 살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조상 대대로 아예 음주가 기본 생활이자 문화로 자리 잡은 지역인 것이다. 물론 만취해서 주폭을 부리는건 아니다.

종교적인 이유도 문제였는데 미국인들의 원류인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크리스천 계열 종교를 지녀왔고 여기서 성만찬, 성체성사 등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최후의 만찬을 가지면서 하신 말씀 중 하나가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주면서 "이것이 나의 피이니라"였으니...

속칭 반주가 생활화 되었던 정도 바로 그런 곳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미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20세기 초에는 그런 유럽계 중에서도 아예 이 법이 생긴 간접적인 원인들이자, 술을 단어 그대로 물처럼 마시는 독일계와 오스트리아계, 술 없는 천국에 갈 바에야 술 있는 지옥을 선택할지도 모를 프랑스계와 이탈리아계, 술 없으면 얼어 죽는 러시아계와 폴란드계[7]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모르몬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안마시던 문화를 지닌 경우였다면 몰라도[8] 그동안 조상 대대로 술을 물마시듯 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술을 못 마시게 된 이상,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술을 구하기 위해 힘을 쏟았고, 마침내 캐나다나 영국에서 3달러 정도에 마실 수 있는 술을, 10달러가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마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원래 술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조차 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서 술의 수요와 가격이 급상승하여, 술의 밀수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 되자 너도나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골 때리는 건, 이전에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안 대던 사람들도, 금주법이 시행된 이후 술을 마시는 것이 정부에 의해 침해된 신성한 권리라고 여기며 술을 펑펑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 안 하던 짓도 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하는 일이 사회 단위로 벌어진 셈.

5.2 공급 측면

개인이 구하기 힘든 원료가 잔뜩 필요하고, 제조에 필요한 고급 기술이 요구되는 마약과는 다르게, 술은 곡식이나 과일에 물과 곰팡이를 넣고 소독된 통에 넣고 기다리면 끝이다. 예를 들면 한국 전통주는 쌀, 누룩(곰팡이),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와인은 적당한 포도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증류기만 갖추면 고농도의 알코올로 증류주도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만들 재료가 사방에 깔렸고, 만드는 방법도 상품의 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금주법 시행 이후, 주류단속원에게 적발된 사람들 중 전문적으로 대량생산을 하던 술도가 말고도, 자기 집 욕조 안에 보리와 맥아(麥芽), 물을 섞어 넣고 술이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잡힌 사람도 상당수 있었고, 가끔 유아가 자기 집 술독, 즉 욕조에 빠져 죽는 사고도 간간히 있었다. 사람 수가 적어 드문드문 살다보니 감시가 힘든 미국 남부 등 시골에서는 문샤인 같은 밀주를 만들어 먹거나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로오리스》(Lawless, 국내 개봉명은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가 이 금주법 시기에 문샤인 밀조업을 했던 3형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실화 기반의 소설이 원작).

그리고 미국 북쪽과 남쪽에는, 금주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캐나다멕시코라는 완벽한 주류 공급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두 국가가 술 산업 규모가 작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산 주류는 미국 사이에는 오대호라는 완벽한 밀수무역로[9]디트로이트, 시카고, 뉴욕이라는 최적의 소비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캐나다산 주류는 엄청나게 밀수입되고, 이 과정에서 마피아가 당연히 연계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가장 유명한 마피아인 알 카포네도 캐나다산 위스키 중계업이 주요 자금원들 중 하나였다. 그가 벌인 성 밸런타인데이 대학살도 캐나다 위스키 사업 문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

여기에 마피아들은 이렇게 수입한 술을 이용하여 술을 뻥튀기[10]할 수 있는 불법 양조장을 건설, 관리하였고, 이렇게 뻥튀기 된 술을 통해 얻은 이익이 마피아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이것이 천조국의 연금술, 오오 이 뻥튀기 술을 막고자, 미국정부는 공업용 알코올의 메탄올 비중을 높였다. 뻥튀기 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알코올 도수를 맞추는데, 메탄올은 사람이 잘못 섭취하면 죽을 수도 있기에, 이렇게 하면 밀주업자들이 위험하니깐 공업용 알코올로 술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 그렇지만 이 조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뻥튀기 술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미국판 러시안 룰렛

이렇게 제조, 밀수 연성된 술들은, 최종적으로 과거 술을 팔던 주점이나 음식점들이 술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납품받아서 팔았고, 사람들은 이런 불법 주점을 "Speakeasy" 라고 불렀다[11] 당시 이러한 주류점(酒類店)들 중 하나로 시작되었던 뉴욕의 "21 Club" 은 지금까지도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바꿔서 남아 있다. 이런 곳에서 서민은 밀조주나 뻥튀기 술을, 상류층들은 밀수입한 외국산 술을 소비했고, 이 돈들은 고스란히 마피아의 자금원이 되었다.

5.3 관리 측면

금주 단속에 나설 공무원의 숫자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12], 마침내는 연방정부의 단속능력도 점차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13] 단속 집행에도 예산이 필요한 법인데 상기한대로 술을 금지시키니 주세가 걷히지 않아 예산은 부족하고... 애초에 완벽한 단속은 불가능하다는 게 명확해지고, 술의 밀수나 밀주 제조가 갈수록 짭짤한 돈벌이가 되자, 결국은 이 시절을 다룬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 나오는 것 마냥 주류단속원의 절반 가까이가 뇌물을 받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일선의 말단 공무원도 부패했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도 심각해서 시카고의 경우 말단부터 시장까지 금주법을 역이용해 돈 꽤나 만진 알 카포네의 뇌물을 받아 처먹어서, 나중에 어쩌다 알 카포네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알 카포네가 '니들 내 돈(& 술) 받아먹었잖아? 나 빵보내면 늬덜은 무사할 거 같냐?'라는 말로 데꿀멍시킬 수 있었다.

6 금주법 폐지 여론

금주법으로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자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AAPA[14]가 있었고, GE, 듀폰 같은, 1차대전으로 성장한 거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듀퐁사의 피에르 듀퐁은 댈러웨이 주 지역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상임위원회를 압박할 정도였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술을 금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렬히 침탈하는 행위이며, 이는 수정헌법이 잘못된 것이다." 라며, 금주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이라 주장했다

AAPA는 금주법의 악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때 나온 보고서에서는, 1920년과 1921년 사이에 범죄 증가율이 총 24%에 이른다고 보고했을 정도였고, 술이 금지된 탓에, 약물에 중독된 것이 보고된 사례만 40%가 넘었다고 미 정부에 경고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보고가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컸는데, 이는 마피아에 의한 '암시장의 폭력'을 암시하고 있었으므로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여기에 여성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금주법 초기에는 "내 아들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술 없는 세상은 매우 좋을 것"이라며 금주법 초기에 금주법을 열렬히 찬성했지만, 금주법의 악영향을 체험하면서, 1926년에는 "법으로 술을 막으면 만사 OK일 줄 알았는데, 막으니까 오히려 건전한 시민들이 술을 입에 대고 타락해가고 있으며, 이는 여성과 청소년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쳐,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 버렸다." 라면서 자아비판했고, 결국 1929년에는 WONPR[15]이라는, AAPA와 유사한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성들은 금주법을 찬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완전히 박살나 버렸고, 금주법은 당시 유행어대로 public enemy, 즉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1922년, Literary Digest에서 미국인 7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60%가 금주법에 회의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았으며, 결국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주법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28년, 콜럼비아 대학의 니콜라스 버틀러 총장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사설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에 철저히 반(反)하는, 미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법"이라며 나노단위로 까댔다. 이후 1932년에는 연설을 통해 아예 쿼크단위로 까댔다.

그러다가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맥주를 포함시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 의회에서 있었지만, AAPA는 맥주 하나 허용한다고 해서 금주법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완전한 금주법의 퇴출을 주장하며 미 행정부에 강력히 압박을 넣었다.

1929년, 결국 금주법으로 인한 위법행위들을 줄이기 위해서, '법의 준수와 집행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16]' 혹은 '위커샴 위원회'가 1929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놈의 위원회가 하라는 금주법 이후의 역학관계 조사는 안 하고 메탄올 들어간 밀주라도 마셨는지 자신들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홍보나 하고 있었고, 덤으로 위원회 내에서 하버드 학장 프라우드와 같은 하버드 교수 프랭크 퍼터간의 파벌싸움까지 벌어져서 국민의 분노를 사서 해산되었다.[17]

1929년 10월,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은 금주법을 해제하는 데 커다란 단초를 마련하였다. 일단 대공황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 세금이 안 거둬지다보니, 정부가 돈이 없고, 이를 어떻게 이겨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수(稅收)를 어떻게든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무턱대고 세금을 높이면 반발이 불 보듯 뻔하므로,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른 방법으로 술을 통해 세금을 거두는 것, 즉 간접세가 효과적이었기 때문. 그리고 음지로 빠져든 양조업계를 다시 양지로 끌어올려 고용을 확충시키면, 이 역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정계, 재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주법은 수정헌법 18조로 규정된 엄연히 명문화된 헌법 조항이었고,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은 자기들이 자신만만하게 만든 법인지라 이를 함부로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민주당프랭클린 루즈벨트나를 밀어주면 금주법은 폐지시키겠다면서 금주법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AAPA에서도 이 공약에 넘어가 "솔직히 우리 단체 성향이랑 너님이랑은 별로 맞지 않는데[18] 금주법만 없애주면 공화당 조까고 당신한테 붙겠음"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금주법의 폐지는 뉴욕타임즈 1932년 8월 10일자 사설에서 언급되었듯이,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이슈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렸다. 앞서 기술한대로, AAPA의 주요 지도층은 GE와 듀퐁을 위시한 공룡기업들이 주축이었다. 즉 반목해야 정상인 두 세력이 겨우 술 허용하는 문제 하나 때문에 술심으로 대동단결을 하게 만든 셈(…). 위 아 더 월드

결국 1932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고, 제1공약을 수행하기 위해서 같은 해 2월 수정헌법 21조가 의회의 동의를 받아 수정헌법 18조는 폐지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전 미주(美州)가 이를 동의함에 따라 13년 만에 금주법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법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와 역효과가 발생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수백, 수천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정책을 안이하게 법제화했다가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후에야 폐지시켰으니, 법의 권위가 안 떨어지는 게 이상하다. 의도는 좋았다의 가장 커다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중독은 단순한 금지나 규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실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마피아는 미국 깊숙이 자리 잡아 전국적인 범죄조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고작 술이 아니라 헤로인을 밀수하기 시작했고, 단순한 범죄조직을 넘어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 쿠바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거대세력으로 성장해서 미국에서 엄청난 해악으로 자리 잡았고, 1960년대 FBI가 공공의 적으로 본격적으로 개입해 때려잡기 시작할 때까지, 근 수십 년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7 여담

  • 당시 술 관련 문제로 벌어진 재판에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물로 원고가 제시한 술을 어느 배심원이 '술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는 핑계로 마셔버리고는, 증거 불충분(그야 방금 증거인 술을 마셔서 없애버렸으니…)으로 피고를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무슨 마약… 아니, 술을 드셨기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 술 밀수로 떼돈을 번 알 카포네의 형은 금주법 단속반 소속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의 극치.
  • 금주법을 만든 공화당[19], 워런 하딩 대통령은 취미가 백악관에서 술 처먹고 포커 하는 거였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파티때 영부인이 폭탄주를 말아주셨다고….
  • 그 다다음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금주법을 신성한 의무라 평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엔 미국 법이 적용되지 않는 벨기에 대사관에 자주 찾아가 술을 퍼마셨다고 한다. 후버의 정적들은 이를 두고, 후버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신성했던 짐이라고 깐 건 덤.
  • 금주법과 마피아 덕분에 재즈, 그 중에서도 특히 빅밴드 편성의 스윙 재즈가 유행했다고 한다. 비밀 술집이 성황을 이루면서 더 많은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해야 했던 것. '비밀' 술집이라는데 이렇게 대놓고 홍보를 했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 원인은 그런 술집들은 대개 높으신 분들이 단골이었기 때문에….
  • 심슨》에서도 이 금주법을 깐 에피소드가 있다. 8시즌 18번째 에피소드로 이름은 "Homer vs. the Eighteenth Amendment"(호머 대 수정 헌법 18조(금주법을 규정한 헌법조항)). 밀주 제작, 마피아의 개입, 암암리에서 벌어지는 주류 유통 등 금주령이 내렸을 때 생기는 일을 한 에피소드로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스프링필드에서 성 패트릭의 날 기념 축제 때, 바트가 호스로 발사하는 맥주를 마시고 취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과거 발령된 금주법이 다시 발령되자, 수많은 맥주가 땅 속으로 매장되고 더프 맥주 회사가 '더프 제로'라는 루트비어 팔다가 망하는 등[20] 진전이 보이는 둥 하더니 하루도 못가서 경찰서장 위검이 술 먹고 취한 모습을 보여줘 빡친 여성들이 시청에 가서 항의를 한다. 결국 위검은 무기한 정직을 당하고, 렉스 배너가 새로운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술 밀수를 철저히 막아버리고, 길거리에서 술과 범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허나 호머는 TV에 나온 더프 맥주 회사를 보고는, 바트와 함께 맥주 매장지에서 맥주들을 꺼내 물장사를 시작해 맥주 남작이라 불리게 되고, 꺼낸 맥주가 다 떨어지자 밀주까지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호머는 위검에게 알아서 붙잡히지만 형벌은 다름 아닌 투석기에 실려 날아가는 것. 허나 렉스 베너의 뻘짓으로 그가 투석기로 사출당하고, 과거 발령되었던 금주법은 1년 후 사라진지라 스프링필드에 다시 맥주가 돌아온다.
  •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마피아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자동차 경주를 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 나스카의 기원이 되었다. 또, 이때 자동차의 껍데기, 뼈대만 놔두고 엔진을 바꾸는 등의 개조를 통해 성능을 올리는 방식의 자동차 튜닝이 발전해서, 오늘날 스톡카 레이스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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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통령이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 했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상정해서 통과되면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
  2. 실제로 이 금주법 덕분에 마피아들의 배만 채우는 격이 되었다. 만약 이 시기에 금주법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마피아 세력은 한낱 동네 불량배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3. 술에 붙이는 주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지역, 모든 정치체제의 주요수입원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고.
  4.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금주법 하에서도 술 마시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술의 제조와 매매만 불법이었다. 따라서 의료용 브랜디나 종교용 포도주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외의 술은 "그 술 어디서 났수?" 라고 물으면 답할 말이 없으니 그게 그거였다.
  5. 끓는점이 다르다는 걸 이용한 분별증류법으로 분리한다.
  6. 심지어는 그냥 100% 알코올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술이야? 알코올이지.
  7. 기후가 춥기 때문에 체온을 높이고자 술을 자주 마셨으며 요리도 상당한 고열량, 고지방 위주이다. 그리고 그런 늬끼한 요리를 먹으면 또 술이 땡기는지라...
  8. 당시 모르몬은 이단 판정으로 하도 두들겨 맞아 극소수만 존재했다. 지금도 메이저라 보긴 어렵겠지만.
  9. 내륙호수는 바람과 조류가 적어서 소형선박을 사용하기 쉽고, 때문에 단속이 더 어렵다.
  10.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말로는 5배까지 뻥튀기 할 수 있다 카더라.
  11. 다른 은어로는 Blind Pig 혹은 Blind Tiger. 여기서 유래된 용어로 암거래 시세를 의미하는 "speak-easy prices" 가 있다.
  12. 수천 명에 이르는 연방정부의 금주단속요원들이 있었지만, 미국의 땅 넓이와 국경의 길이, 해안의 면적을 감안하면 늘 태부족이었다.
  13. 각 주, 시, 카운티 정부도 연방정부의 금주법을 집행할 책임이 있었지만, 늘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14. 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
  15. Women's Oganization for National Prohibition Reform
  16. National Commission on Law Observance and Enforcement
  17. 이후 프라우드 학장은 위원회가 해산된 이후 하버드 내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18. 당시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을 앞세운 계획경제모델을 제시했었으므로, 어찌 보면 자본가들이 중심이었던 AAPA가 적대하면 적대했지 밀어줄 이유가 없었다.
  19.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법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금주법에 반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20. 더프 맥주 사장은 사람들이 맥주를 맛 때문에 산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알코올 때문에 산 거였다… 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