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


禁酒法

미국에서 금주법이 실행되던 때에 술을 버리는 장면.
술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 마르코 복음서 7:15

1 정의

법제화된 금주령. 말 그대로 을 제조/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1920~30년대의 금주법이 있다.

, 담배, 마약 등의 중독성 기호식품/약물이나 도박, 성매매 등의 쾌락적 행위나 문화는, 그를 향유하는 개인이 직접 소비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외부적 정책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것들을 '나쁘니 무조건 금지해야 해' 라는 식의 도덕적 접근이 실현되기 어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면, 국가의 금지령이 틈새시장과 시장의 가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2 한국과 아시아권의 금주법

아시아권의 경우, 금주법은 대개 식량 보존, 절약 등의 이유로 시행되었다. 아시아권 국가들의 전통주는 포도주 같은 과실주가 없고, 거의 전부가 이나 같은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이기 때문에, 빚는 만큼 지을 곡물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소주처럼 증류 과정이 들어가면 곡물이 훨씬 더 소모되기 마련이라, 주로 기근이 들면 금주령을 시행했다.

조선 시대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기근이 들었을 때 식량 절약 차원에서 종종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후술할 미국의 경우처럼,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쌀 꽤나 있다는 양반가에서는 몰래 소주를 만들어먹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러다 포도청 강제정모를 하였다는 기록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술은 유교 제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음식이라, 술을 죄악시하거나 오랫동안 금주령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영조 통치 시기인데,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술을 절대 금지시켰다. 처음에는 새 정권 퍼포먼스(…)라고 생각한 신하들도 영조가 "아예 조선 팔도에서 술 자체를 영원히 없애버리겠다!"고 나오자 항의를 좀 했다고 한다. 거기에 술 먹다가 걸리면 닥치고 사형이었다. 나중에는 관직박탈이나 귀양으로 처벌이 약화되었지만, 그 나중이 거의 40년인지라(…) 40년 동안은 진짜 목숨 걸고 술을 마셔야 했다. 실제 병마절도사 윤구연이 술을 마신다는 제보가 접수되자, 2주일 만에 남대문에서 참수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이때 영조가 직접 숭례문까지 나아가 참관했다고. 그리고 증거불충분으로(증거가 술 냄새가 나는 항아리 1개 뿐이었다) 윤구언 처벌을 반대하는 재상급 대신들도 모두 파직해버렸다(영조 38년 9월 17일).[1][2][3]

게다가 영조는 조선에서 가장 오래 즉위(53년)한 왕이었다(…). 망했어요 하지만 위의 미국의 사례에서도 그렇듯, 이래도 만들어 먹을 사람은 결국은 또 만들어 먹었고, 능력 되는 사람은 사와서 먹었다. 사실상 영조 본인 빼고 다들 불만으로 가득했던 것…. 결국 바로 다음 대 국왕인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시원하게 금주령을 바로 풀었는데, 정조가 술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아싸! 비슷하게 영조가 연애소설을 좋아했는데, 정조가 즉위한 뒤에는 서고의 소설을 다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다. 소설대신 담배 할아버지 때문에 술 못 마신 거 복수하는 정조 근데 순조는 또 혐연자라….

여담으로 영조는 자기가 금주령을 내렸음에도 술을 계속 마신다는 소문이 있어 신하들이 영조에게 묻자, 영조는 '난 다만 오미자차를 마실 뿐인데 그게 소주로 의심받는다' 라고 답하기도 했다(영조 12년 4월 24일). 실제로 영조는 중종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조 최고의 근검절약형 군주.[4][5][6] 하여간 당시 금주령이 매우 철저히, 그리고 장기간 이어졌기 때문에 이 당시 몰래 술 먹다 걸리는 유의 야사도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조는 차례에서 쓰이는 로 대신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 추가바람

일제강점기 때에는 세수확보를 위해서, 정식 양조장(술도가)이 아닌 일반 민가에서 술을 빚는 것을 '밀주'라고 하여 금지시켰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도 이를 그대로 답습했다. 덕분에 지방마다 가문마다 있던 전통주는 대부분 대가 끊기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먹을 게 부족해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사람들이 내일 굶어죽을건 생각도 않고 술만 빚어댄다!'는 식의 기록이 있고 특히 한국전쟁 이후의 삶은 시궁창 그 자체였다. 식량 문제는 60년대에도 이어져 쌀밥만 싸온 애들 단속하기 위해 아이들 도시락까지 검사했을 정도니 술이라고 어련했을까.

쌀 수탈을 위해 일제가 주세법을 시행하자, 여기저기서 술을 숨겨서 몰래 마시기 시작했는데, 충남 당진과 아산지역의 농민들 가운데 일부는 두툼한 짚가리 속에 술을 숨겼다. 그런데 짚가리 속에서 익은 술 맛이 의외로 좋아 계속 담가마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짚가리술'이다. 일부에선 짚동가리술이란 이름으로도 판매한다. 물론 이마저도 일제와 남한의 오랜 주세법 전통으로 인해 많이 실전(失傳)되어,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집은 찾기 힘들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1961년, 주세법이 개정되어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1965년부터 모든 알곡으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는 막걸리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래도 술을 빚던 집은 몰래 만들어서라도 빚었다. 당시의 TV 영상을 보면[7], 개밥을 먹이는 것과 술을 집에서 빚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모든 술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엔 국민들이 지금처럼 와인이나 맥주 같은 '서양주'를 즐기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막걸리 금지 조치만 해도 제법 센 조치긴 했다. 이로 인해 증류식 소주 대신, 희석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8]

지금에 와서 만약 미국과 같은 금주법이 이라면 환장하는 한국에서 시행된다면 미국을 능가하는 헬게이트 오픈이 가능하다. 사실 주요 주류인 소주만 금지시켜도 엄청난 파장이 생길 가능성이 99%이다. 약국의 소독용 알코올이 초 매진 사례 이렇게 된 이상 증류식 소주로 간다 물론 이제는 시대가 달라서, 술을 금지시켰다간 자유무역 때문에 수입 술이 문제가 되고, 수입 술도 금지시켰다간 국제통상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고[9] 그렇다고 수입 술만 허용했다간 대량의 외화 유출 가능성이 100%이니 그러진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술을 밀수출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두고, 러시아 레드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와 토종 조폭 간의 대립으로, 이들이 주로 드나드는 인천부산에는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4대 중독법의 발의로 대한민국판 금주법이 실현될 뻔했다. 본격 대 금주법시대 개막! 이게 역사상 금주법이랑은 차원이 다른 게, 술뿐만 아니라 '술의 원료까지 규제한다. 뭐?! 술의 원료는 곡식이나 과일, 젖 등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들인데, 극단적으로 보면 이것들까지 모조리 규제 당한다는 것이다. 소일렌트 그린이라도 만들 생각인 건가 대한민국에서는 쌀, 과일, 우유도 규제합니다!!

중국의 삼국 시대 유비가 금주령을 내린 적이 있었는데, 간옹의 음담패설로 금주령을 폐지한 사례가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3 가톨릭의 금주법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1고린도 11:23-25, 공동번역성서 -
예수께서는 "너희도 이렇게 알아듣지를 못하느냐?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모두 뱃속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뒤로 나가버리지 않느냐? 그것들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지는 못한다." 하시며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하셨다.
- 마르코 복음서 1:18~19, 공동번역성서 -
기독교권 특히 가톨릭의 경우, 동아시아와 달리 거의 실행된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유는 우선 양 지역의 의 원자재의 차이 때문인데, 서구의 경우 술은 거의가 과실주, 즉 주식으로 쓰지 않는 포도사과 등으로 담그는 술이었기 때문에, 술을 암만 많이 담가도 주식에 미치는 영향이 일절 없으니 담그는 게 문제되지 않았고, 게다가 과일을 장기 보존할 방법이 없었던 고대엔 술을 담그는 것만이 그나마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더불어 그나마 주식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즉 곡물로 만든 술맥주 같은 케이스도, 애초에 맥주가 서구권에서 소모되는 술의 비중을 그렇게 많이 잡아먹는 술도 아닐 뿐더러, 사용 곡물도 서구인의 주식인 감자이 아닌 보리라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부러워하는 우리 조상들

더군다나 서양 문명에 있어서 술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품이었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마시기 어려운 물이 많았기에, 술을 담가 마시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물을 깨끗하게 먹는 방법이었다. 어린아이도 술을 먹는 것이 일상적이었다(그거 아니면 마실 물이 없으니까). 더불어 수도원에서도 종종 금식기도를 할 땐, 물 말고 아무것도 먹어선 안 되었는데, 상술했듯 유럽에서 마실 물이라곤 술 밖에 없으니, 그걸 금지하면 말 그대로 큰일이 나므로 더더욱 금지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시대가 흘러, 중세 유럽은 성직자의 권한이 막강하여 국왕은 물론 심지어 황제조차 우습게 알 정도였는데, 이 성직자들이 주로 한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담그는 일이었다. 이유는 상술한대로 마실 물이 필요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특히 포도주는 신약성서의 맹물을 포도주로 바꾼 카나의 혼인잔치같은 기적이나,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말하며 제자들에게 먹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냥 먹고 뿅 가는 음료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의미가 깊은 아주 음료였기 때문이다.[10] 즉 가톨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포도주를 마셔야만 했고, 그런 성직자들에게 술을 못 만들게 요구하면 생존권 위협 + 이단으로 간주당해 요구한 당사자가 데꿀멍하게 된다.[11]

따라서 유럽에서 술을 금지하려 했다간 말 그대로 아래로는 백성들은, '우린 그냥 다 갈증으로 죽으라는 거냐!'며 들고 일어나고, 위로는 성직자와 교황이 '지금 감히 너님의 창조주인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거냐?너 이단'이라며 성을 낼 게 뻔한데다가, 애초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왕이나 영주도 마실 물이 술 밖에 없는데다가, 기독교 신자라서(…) 술을 금지하는 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술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톨릭개신교 모두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듯. 술을 마시되 술 취하지는 말라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 에페소서 5:18(가톨릭 성경)
빛깔이 좋다고 술을 들여다보지 마라. 그것이 잔 속에서 광채를 낸다 해도, 목구멍에 매끄럽게 넘어간다 해도 그러지 마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독을 쏜다. 네 눈은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되고 네 마음은 괴상한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 누운 자와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자와 같아진다. "사람들이 날 때려도 난 아프지 않아. 사람들이 날 쳐도 난 아무렇지 않아. 언제면 술이 깨지? 그러면 다시 술을 찾아 나서야지!" 하고 말한다.
- 잠언 23:31~35(가톨릭 성경)

그리고 정교회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러시아가 지리적, 문화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 대신 기독교를 택한 이유가 바로 술 때문이었다는 농담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무리 부탁해도 음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4 개신교의 금주운동

하지만 같은 서구권이라도 종교개혁을 거친 북유럽이나 영국은 사정이 달랐다.

  • 냉대기후 혹은 비교적 추운 온대기후권으로 술을 담글만한 과일이 자라지 못해[12] 동양권 못지않게 밀, 호밀, 귀리 등 곡류로 담그는 독한 증류주(위스키, 아크바비트)가 대부분이었고[13] 당연히 이러한 술들은 이미 과거부터 간간이 사회적, 종교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특유의 청교도적인 문화는 북유럽/북미권 금주문화의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일단 가톨릭과 달리, '성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았다. 칼뱅과 츠빙글리는 아예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루터는 그저 '임재'만 할뿐 그 자체가 피와 살이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성만찬은 성경에 근거한 최소한의 선만 지키면 뭐로 해도 장땡이었다. 물론 칼뱅이나 루터 등 초창기 종교개혁가들은 천주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해서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정도는 금지보다는 '절제'를 주장했다. 당장 칼뱅 본인조차 포도주를 제법 즐긴 편이고 루터는 아예 맥주 애호가였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개신교에선 술 자체에 대한 반감이 강해졌다.
  • 밑의 이슬람권처럼(…) 커피[15]홍차[16]로 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질 핑계대면서 술 마실 이유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렇게 남유럽과 전혀 다른 곡물주 위주의 문화+이에 대한 개신교적 반감이 겹쳐져서 나온 게 바로 후술할 금주 및 절주/주류판매 통제 정책들이다. 이런 청교도식 금주/절주 의식은 이후 미국의 개신교에 큰 영향을 주었고, 미국 개신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의 개신교에도 마찬가지로 강하게 자리잡았다.

실제로 북유럽이나 캐나다 일부 지방의 경우, 술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국가나 주정부에서 술 판매를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의 [시스템볼라겟]이나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LCBO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모든 개신교가 이렇게 강한 금주 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고 교파마다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다. 특히 성공회의 경우 천주교식 교리와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다 보니 금주 의식이 매우 희박한 편.

5 이슬람의 금주법

이슬람에서는 이슬람 성립 이전부터 물이 부족해서[17] 이미 자발적으로 술을 금기시하던 부족들의 전통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무함마드의 명령 이후 교리상 술을 엄금하고 있지만, 뒷구멍으로 마실 사람은 다 마시는 듯하다. 바레인처럼 이슬람권이면서 관광, 무역 등이 주(主)산업이다 보니 술을 허락하는 나라도 있는데, 술의 판매와 생산이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등 주변 아랍 국가들의 부자들이 이 나라에 와서 술과 안주를 먹고 놀다 갈 정도이다.

사실 이슬람권이라도 나라마다 규제가 다르다. 이집트모로코, 터키, 튀니지,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알바니아등 개방적이거나 어느 정도 개방화된 국가들에서는 맥주나 포도주 같은 술 제조 밑 수입을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판매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 세속적인 국가로 유명한 터키튀니지, 레바논에서는 오히려 술을 금지시키자는 말을 하면 역으로 욕을 먹는다(…) 이란은 술 마시면 징역을 살아야 하는 나라이지만, 대신 [술 배달 사업이 성업 중이다]. 배달만 하는 거지, 안 마시면 되잖아? 게다가 외국인의 경우, 남 보는 앞에서 대놓고 마시지만 않으면 묵인해 준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1인당 술 소비량이 아시아 상위권(…)에 속할 정도. 80년대에 사우디로 일하러 간 한국인 노동자들도, 숙소의 발전실이나 기계실에서 몰래 증류기를 만들어 소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오오, 한국인의 기상, 오오 당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비교적 관대하여 숙소나 현장구역에서 술 마시는 것은 어느 정도 눈 감아 주었으나, 그 외의 다른 구역에서 적발되면 강제추방 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곳도 없잖아 있었다. 이란 같은 경우에는 이슬람 역사보다도 훨씬 오래된 페르시아 전통 포도주인 쉬라즈 지역의 특산물 쉬라즈 포도주가 있는데, 그것도 다 없어졌다[18]가 현대에 와서 조금씩 복원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몇 천 년 동안 포도주맥주를 마셔왔는데, 종교 때문에 천년이 넘은 음식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여하튼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공적으로는' 금지이다. 그러나 술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 이슬람 학파[19]부터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마시되 취하지 않으면 된다는 부류도 있고, 포도주[20]와 같은 특정 술만 금지하고, 대추야자[21]이나 우유 등 동물의 젖으로 만든 술 등은 허락하는 부류도 있다. 게다가 학파를 막론하고,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경우에는 술을 마실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숨을 잃는 것[22]보다는, 일단 술 마시고 목숨을 구한 뒤 나중에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낫다는 것. 알코올 중독 같은 건가 근데 알코올 중독도 일단 술을 마셔야 걸리는 거잖아

물론 찾아보면, 분명한 중동계임에도 술 마시고 돼지고기 구워먹고 할 거 다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이 경우는 셋 중 하나이다. 하나는 중동계는 맞지만 미국 등 제3국가에서 나고 자란 이민가정 2세대 이상 출신이라 무슬림이 아니거나, 터키나 이집트처럼 세속주의가 강해서 처음부터 신경 안 쓰던 부류이거나, 아니면 어차피 빡빡하게 구는 사람이 없는 외국이니까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대놓고 씹고 다니는 케이스(…). 3번째의 경우 "너 그러면 안 되지 않냐"고 하면, "여긴 외국이잖은가 친구"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저는 무슬림이긴 한데 나쁜 무슬림이라 괜찮아요"가 있다(…). 다만 이래보여도 공개적으로 이러한 '금기'들을 즐기는 모습을 남기진 않는다. 혹여나 나중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터키 출신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는 전 세계를 떠돌며 사진촬영을 하다가, 한국에 왔을 때 술과 돼지고기를 대놓고 실컷 즐겼고(…), 나중에 자신의 사진집에서 한국에서 술과 돼지고기를 입에 댔다는 점을 언급하며, "알라께 용서를 구하겠지만 그래도 삼겹살에 복분자 맛은 죽여줬다"고 써놓기도 했다(…). 무슬림도 인정하는 삼겹살과 복분자주

여담이지만, 이슬람에서 술을 금하고 새로운 기호식품으로 나온 것이 커피이다. 커피의 어원이 아랍어로 와인을 뜻하는 카화(qahwa)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또한 새로운 기호식품으로 물담배가 있는데, 일반 담배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독하며, 중동 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역시 금주법으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기호에 대한 욕구가 표출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문화권이든 인간은 반드시 쾌락을 추구하며, 그 쾌락을 얻을 요소를, 이유가 뭐든 강제로 막으려 들면 다른 방향으로 쾌락을 추구하려 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


6 캐나다의 금주법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이 미국보다 먼저 금주법을 실시했던 나라이다. 다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된 건 아니었고, 지방마다 실시년도와 폐지년도가 다르다. 그래서 미국에서 금주법이 통과되자, 캐나다 지역의 술 산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것(…). 가장 금주법이 늦게 폐지된 주는 《빨간머리 앤》으로 유명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1901년 금주법이 제정된 이후, 반세기가 약간 지난 1948년에야 금주법이 폐지되고 술이 허용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 위키피디아 문서]를 볼 것. 상술한 리쿼스토어도 사실 금주법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7 미국의 금주법

항목참조.

8 소련의 금주법

러시아 인민 전체에 대한 선전포고.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보드카가 없다니!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가 금주령을 내렸다. 술 자체를 아주 금지한건 아니었지만, 밤 11시 이후에나 술을 구입할 수 있게 하였고, 그것도 1인당 보드카 2병씩만 사올 수 있게 하였다. 고르바초프가 이 법을 시행한 데에는 알콜 중독 문제로 인한 평균수명 상승 적체현상 해소와, 을 만드는 데 쓰는 곡물을 줄여서, 소련의 고질적인 식량 문제도 일정부분 해결하고, 의료비용도 줄여 정부예산을 아끼려고[23] 시행한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반발이 극심했다. 러시아인에게서 보드카를 빼앗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런데 실제로 고르바초프의 금주령 기간 중 소련의 남성 자살률이 감소했고, 남녀 간 수명격차도 다소 줄어드는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닌 시절에 알코올 중독문제를 줄이겠다고 민간에서의 보드카 제조를 금했다가, 오히려 밀주가 성행하는 바람에 보드카 민간제조금지 법이 철폐되었듯, 고르바초프가 금주령을 시행한 뒤에 밀주가 성행하는 문제점 역시 발생하였고, 기대했던 예산절감도 주세감소로 인해서 있으나 마나한 효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소련인들이 술을 마시고자 분투한 위대한 기상의 흔적] 근데 크바스로 술을 만든다는 생각을 왜 아무도 안 한 거지? 도수가 낮잖아 바보야 남자들 사이에서 고르바초프의 인기가 엄청나게 떨어져버린 건 당연지사, 결국 고르바초프도 버티지 못하고, 1980년대 말에 금주령이 철회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옐친 시절에 공공의료보건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옐친이 인기를 위해서 보드카를 의도적으로[24] 값싸게 보급하는 정책을 펴면서 다시 평균수명이 줄어들었고, 남성의 평균수명은 50세를 기록, 1960년대만도 못했고, 이 여파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보드카! 눈이 좋아! 보드카! 진짜 남자! 보드카! 없어져라, 금주법!!!
  1. 세종 같이 의정부서사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한 경우나, 왕권이 약했던 왕들을 제외하고, 세조, 숙종, 영조 등의 강력한 왕권을 쥔 군주들은 꽤나 자주 관료들을 파직시켰다가 불쌍해서 봐준다, 언로(言路)를 막을 수는 없다며 복직시켜 주는 나는 관대하다 식의 처사를 반복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2. 이 일을 두고 영조가 직접 참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문은 '上御崇禮門, 斬南兵使尹九淵'으로 '영조가 직접 참하다'로는 국역할 수 없다. 더구나 바로 몇 줄 밑에 親御南門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은 '남문에 친히 남셨다'는 뜻이며, 윤구연을 '직접' 베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특히 斬의 의미는 단순히 '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수형을 집행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영조가 직접 베었다면 斬앞에 '親'자가 붙었을 것이다.
  3. 후에 윤구연은 무죄로 판명이 나서 복권된다.
  4. 둘 다 자식 관리 제대로 못한 것도 똑같다.(…)
  5. 수랏상의 찬을 줄이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고, 고기보다는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짜기도 했으며, 부마 되는 이들이 문안을 드릴 때, 식사로 잡곡밥을 주며 일반 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리라는 말도 했다고. 시대를 500년 앞서 간 식단이다. 이러면서도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회의 중 신하들은 밥 안 먹고 쫄쫄 굶는데(…) 본인은 식사 때 되면 바로 밥 먹으러 갔다고 한다. 밥도 안 주면서 일시키는 전형적인 악덕상사의 위용. 이걸 정치적 전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신하들이 쫄쫄 굶고 있으면 회의고 뭐고 빨리 끝내고 밥 먹으러 가고 싶을 테니,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
  6. 아예 세손보고 정식느로 후계자가 되는 책봉식때 쓸 옷을 자기가 쓰던거 입으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중종은 자기만 검소했다면 영조는 아예 검소함을 장려할 정도
  7. 오늘날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은 빚을 내어 만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사치라고 하긴 좀 곤란하다. 그러나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식의 공동체의식이나, 나쁘게 말하면 남 잘 되는 꼴은 못 보는 심리 등을 감안하면, 당시에는 그리 생각할 개연성도 없진 않았을 듯.
  8. 그러나 막걸리 금지법과 어울리지 않게 박정희 본인은 상당한 애주가였으며 측근인 김종필의 증언에 의하면 평소 막걸리에 시바스 리갈을 섞은 막걸리 폭탄주도 즐겨마셨다고 한다.
  9. 사실 자유무역의 핵심 이념은, 내국민대우(NT)와 최혜국대우(MFN), 즉 수입품과 수입품 간, 수입품과 국내품 간에 부과되는 세금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나도 술 안 만들고 너네 술도 수입 안 하겠다'는 정책이 자유무역의 본질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다만 개별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내용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10. 다만 포도주 그 자체를 신성하다고 본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미사에서 성혈로 성변화한 것만이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11.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에서 포도주는 술 중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취급을 받았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포도주가 그냥 술이라는 점은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술은 안 마셔도 포도주만은 예외로 두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12. 포도재배의 한계선은 독일 중부지방까지로, 당연히 그 이북지역들은 포도주를 전량 수입해야만 했다.
  13. 물론 콜럼버스 이후로는 주재료가 옥수수감자로 바뀌긴 했다. 근데 옥수수와 감자도 결국 식량이잖아.
  14. 현무암 토질인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지금까지도 남유럽, 서유럽인들이 보고 컬처쇼크를 느끼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15. 사족으로 유럽에서 가장 커피 소비량이 높은 나라가 바로 핀란드와 네덜란드이다.
  16. 영국의 홍차 문화도, 술을 피하면서 석회질 물을 마실 수 있는 고육책으로 발달된 것이다.
  17. 술 빚는 데 물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수분이 엄청나게 필요해서, 증류주 같은 술은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진다.
  18. 오늘날 파는 쉬라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쉬라즈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시라포도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민간설화에 따르면, 이란 쉬라즈 포도를 프랑스에서 재배한 게 시라포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19. 이슬람은 성직자가 없는 대신, 이슬람 교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파의 중요도가 크다.
  20. 굳이 포도주인 이유는,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포도주가 술의 대명사라고 할 정도로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21. 무함마드의 행적을 기록한 하디스에서도, 무함마드는 생전에 대추야자술을 마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22.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포기하는 것은 자살로 보며, 이슬람에서 자살은 매우 큰 죄로 여긴다.
  23. 일단 술을 만들 곡물을 사들이기 위해,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지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서 상당한 양의 외화가 낭비되는 데다가, 소련은 무상의료제도를 시행했기에, 알코울 중독증이나 성인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상당한 재정이 지출되었다.
  24. 마침 옐친도 애주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