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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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장
10대 정문화11대 김기재12대 문정수

金杞載
1946년 09월 06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1946년 경상남도 진주부에서 태어났다.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부산광역시장,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국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을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안상영 후보에게 불과 1.7%P(2만여표)차로 낙선하였다.[1] 바로 이듬해인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고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로는 같은 민주계 출신인 이인제 계파로 분류되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경선 때 이인제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지만 정작 이인제는 탈당해버렸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 비리 문제로 대통령 후보 노무현의 지지율까지 급락하자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노무현을 사사건건 흔들었다. 하지만 단일 후보로 노무현이 확정되자 곧바로 부산지역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무현을 적극 지원했으며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도 참여하면서[2]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었지만[3] 어찌된 일인지 출마하지 않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이명박 캠프에도 참여했지만 별다른 활동없이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을)신한국당-당선
1998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무소속-낙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당선
  1. 참고로 이 때 새정치국민회의 하일민 후보가 가져간 표만 11%(14만여표)에 달했는데, 사실 국민회의 일각에서도 차라리 후보를 내지 말고 김기재를 지원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한나라당 출신인 김기재가 당선되면 어차피 복당할게 뻔했고, 오히려 역풍이 불어 한나라당에 표가 결집될거라는 우려가 힘을 얻어 부산대 철학과 교수였던 하일민을 공천했는데 도리어 부산의 여당 표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버린 것. (...)
  2.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이면서 신당 창당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까였다. 결국 다른 의원들은 자진 탈당해 의원직을 잃었지만 김기재는 끝까지 사퇴하지 않았다.
  3. 2004년 2월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우리당 공천을 받아 부산 연제구에 출마하겠다는 발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