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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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코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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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코치시절 무관의 제왕 앞에있는 선수는 2012년 신인 서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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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코치시절 걍 다시 돌아가
SK 와이번스 No.72
김무관(金武寬 / Do-Kwan Kim)
생년월일1953년 11월 29일[1]
국적대한민국
신체173cm, 82kg
출신지인천광역시
학력숭의초-상인천중-인천고 - 건국대
프로입단1982년 원년 멤버
소속팀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
지도자경력청보 핀토스 주루 코치 (1986~1988)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 (1989~1995)
현대 유니콘스 타격코치 (1996~2000)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2001~2003, 2006~2011)[2]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2~2013)
LG 트윈스 2군 감독 (2014)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14)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1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16~)

1 소개

SK 와이번스의 2군 타격코치. 현역 시절은 쉬어 가는 타순이었으나, 타격코치로써는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황금기를 이끌며 인정받았다. 수많은 강타자들을 배출한 마이더스의 손.

2 선수 시절

안 좋은 의미로 전설적인 인천 연고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원년 멤버다.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팀의 사정상 내야수도 맡는 등 멀티플레이어로 뛰었다. 주로 삼미의 1번 타자를 맡았고 양승관, 이선웅, 정구선, 금광옥, 김진우 등과 더불어 1983년 삼미의 돌풍에 일조했다. 물론 장명부가 없었으면 이런 돌풍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83년 이후 활약은 희미해졌고, 이후 선수층이 얕은 삼미에서조차 백업 선수로 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선수 시절은 그다지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이름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선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현역 4년간의 통산 타율은 0.199(35안타/326타수)... 2할도 안 되는 타율로서 이것만 보면 절대로 타격코치를 할 사람이 아니다... 이런 현역 기록으로 타격코치계의 甲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미라클이다 실제로 선수 시절에 무명이었다는 이유로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야구도 못 했는데 코치를 한다고 선수들이 따르겠냐"며 멸시를 당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후 외국으로 매번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반드시 미국일본에서 야구 관련 원서를 잔뜩 사들인 후 번역까지 맡겨 가며 독학에 몰두했다.#

3 지도자 시절

1986년에 은퇴한 후 청보 핀토스의 주루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청태현 시절만 해도 존재감 없는 코치였으나...

3.1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코치로서의 이름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시즌 전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부임하여 이대호, 전준우 등 수준급 타자들을 많이 키워내면서부터다. 사실상 롯데 자이언츠의 막강한 타선을 구축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 까이는 코치다. 다만 몇몇 팬들에게는 김무관 코치가 롯데의 암흑기 시절에 붙박이 1군 타격코치였던지라 롯데 코치 중 평가에 가장 거품이 낀 코치소리를 듣기도 한다.[3] 그러나 -포 해체 이후 똑딱이 일색이었던 롯데 타선을 가 조화를 이룬 최강 타선으로 재구축한 건 분명 김무관 코치의 업적이다. 김무관 코치가 떠나고 후임으로 타격코치를 맡게 된 박정태 코치 시절에는 주구장장 밀어치기만을 강조한 결과 타선의 장타력이 크게 줄면서 타격이 폭망했다[4]. 때문에 박정태 코치는 레전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주님태라며 무섭게 까였다. 있을 때 잘해 김무관 코치는 2000년대 이후 흥식매직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타격코치이다. SK팬: 걍 돌아가

3.2 LG 트윈스 코치 시절

2011년 시즌 후 김기태가 감독으로 취임하자 LG 트윈스타격코치로 부임했다. 터지지 않는 LG의 많은 우타자들의 포텐을 터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LG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기에 의외라는 평이었으나 사실은 인천고 직계 후배이자 같은 삼미 원년 멤버였던 김진철 스카우트팀장 인맥으로 들어온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이대호도 나간 마당에 또 한명의 타선 버프를 책임쳤던 김무관 타격코치마저 나가자 절망 상태에 빠졌으나 다수의 팬들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꼴런트를 신나게 깠다. 떠난 건 김무관이 먼저인데다 매년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연봉은 1억 원을 넘지 않았다는 것. 코치의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롯데가 김무관 코치에 대한 처우가 나빴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김무관 코치의 독보적인 업적을 낸 만큼 롯데 프런트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어야 했다. 과거 김무관을 데려올 때 구단에서 먼저 러브 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연봉을 깎아서 데려왔다고 한다. 참 대단한 꼴런트. 물론 안 좋은 의미에서. 아무튼 김무관 코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LG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고, LG로 옮긴 이후 억대 연봉을 받았다. 또 서울 생활의 메리트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의 연습경기에서 활약을 보고 일본프로야구 코치들이 "어디서 그런 좋은 스윙을 배웠냐? 그 스윙을 익히려면 1~2년은 힘써야 되는데..."라고 평가를 내렸다. 일본에서도 인정받은 지도력!

시범경기가 중계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타격코치가 고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이대형의 저주받은 하체가 확연히 고정된 모습을 보여 줘 수많은 LG 팬들이 쥐레발을 떨게 만들었다. 그 놈의 엉덩이부터 1루로 달려가는 타격이 어느 정도나마 고쳐진 모습이라 벌써부터 무관매직! 등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

하지만 시즌에 들어가자 그런 거 없다... 팬들을 희망에 부풀게 만들었던 이대형은 어느샌가 그놈의 깝깝한 타격 자세로 복귀해 겨우 2할에 머무는 모습을 보여 줬던지라, 역시 안될 놈은 안되는구나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었다. 대신 이병규의 초반 부상 이후 LG의 4번 타자가 된 정성훈이 4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한 귀신 같은 활약으로 팀 상승세를 이끌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더욱이 정성훈이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김무관 타격코치의 지도에 감사를 표하자 무관매직의 실존이라며 감격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물론 FA로이드가 더 크기는 하겠으나 정성훈 이외에도 오지환, 이병규 등이 전보다 명백히 밀어치는데 능숙한 모습을 보여줘 김무관이 가진 지도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수비형 수비밖에 못 하는 포수 김태군도 서서히 밀어치는 타격으로 타율이 올라갔고, 엘지의 하위 타선들은 철저한 밀어치기를 통해 어떻게든 바깥쪽 공에 대한 대처능력을 올렸다. 그리고 2013 시즌에는 오지환이 리드오프로 자리매김했고, 타격에 재능이 없다던 손주인이 LG 이적 후 각성하는 등 무관 매직은 여전히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신 김무관도 못 고치는 이대형의 타격은 다들 포기하는 상황. 이대형까지 고치면 그건 매직이 아니라 무관미라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무관미라클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2014 시즌에는 LG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노장들을 대체할 2군 내 타자 유망주들의 기량을 2군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5] 2014년 4월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 후 양상문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조계현 前 수석코치가 새로운 2군 감독으로 임명되자, 1군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3.3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2014년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고향 팀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겼다. 김용희 신임 감독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개막 후 2개월이 지난 지금, 타격 부분에서 모두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서 현재에는 SK 팬들의 역적 상태이다.(극혐)
작년 그렇게 좋던 이명기를 망치고... 박계현 등등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다. 아직 정규 시즌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많이 무리수이다. 다만 스프링캠프에서 타자들의 스윙에 지나치게 손을 많이 댔다는 기사가 나와서 팬들이 우려하는 것이다.오히려 그 김용달은 타어강의 해 이밈때 타선이 불을 뿜고 있었다

5월 25일 기준으로 SK 와이번스의 팀 순위는 4위이지만 타격지표들은 이런 순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타율,출루율은 6위 장타율은 8위이며 2루타는 59개로 10위다.[6] 팬들은 현재의 타격 지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SK 와이번스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문제는 새 메인 타격코치가 물타선의 주범인 슼무원 정경배라는 것. 타격보조 코치로는 강혁이 올라왔다.
  1. KBO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에는 1955년 3월 2일
  2. http://news.chol.com/index.php?cmd=doc&sd=20031010&ed=20031010&cat=SPO&newsid=STOO_16677
  3. 그러나 당시 감독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나? 다이어트랍시고 사직구장 스탠드를 오리걸음 돌려서 이대호의 무릎을 아작낸 어떤 골프중독자좌완투수가 선발이라고 해담선생을 9번으로 돌린 플래툰 오타쿠 아니었던가? 잘 키워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면 답이 없는 거다.
  4. 밀어치기의 강조는 사실 박정태 본인의 의중이라기보다 양승호 감독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박정태양승호 감독이나 모두 밀어치기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5. 공식적으로 김기태 1군 감독의 말에 따르면,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종국에는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1군 감독을 맡기 위해서 2군 감독 경력은 필수나 마찬가지고 김무관 코치의 경력과 나이를 봤을 때 2군 감독을 할 시기였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김기태 본인도 어느 정도 타격 쪽에는 조예가 있다 보니 2군에서 타자 유망주 육성에 전념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
  6. 9위 KIA 70개, 8위 삼성, kt 7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