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인천+경기도+강원도+이북5도를 광역 연고지로 했던 프로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를 합쳐 이르는 말.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왕조를 이룩했지만, 현대를 제외하면 팀 모두 야구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고 하위권을 전전했다.[1] 하지만 삼미 데이-태평양 데이 혹은 넥센 히어로즈의 역사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일부 야구팬들은 삼청태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연고이전을 했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경우도 있어 이 문서는 삼청태로도 리다이렉트된다. 다만 크보 공식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가 삼청태를 계승한 팀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항목 자체는 삼청태현으로 하였다.
비슷한 예로 프로농구의 나산 플라망스-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를 언급하는 단어인 나골코가 있다. 나골코 역시 전신이 줄곧 하위권을 전전했다는 점마저도 삼청태와 매우 유사하다.
2 후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1996년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을 변경한 후, 현대는 1998년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의 우승을 기록했으나, 모그룹의 기대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2] 이후 2000년 1월에 현대그룹에서 주도해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연고지 서울로 옮기겠다고 공언[3]하면서 인천을 뛰쳐 나갔다가 2000년 시즌 중반에 터진 모기업의 부도 +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후 소위 그룹내부에서 터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찢어지는 위기로 인해 생긴 재정 문제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기존의 제2홈구장이 위치한 경기도 수원시를 임시연고라 쓰고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로 삼게 된다. 이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인기구단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인기는 수원으로의 임시 연고 이전 이후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4]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유니콘스가 연고지를 이전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런 변명거리에도 불구하고 유니콘스가 뜬금없이 연고를 이전하여 인천을 떠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한편, 2000년 SK 와이번스가 퇴출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신하여 신생팀으로 창단[5]되었고, 새로운 인천 연고팀으로 출범[6][7]하게 된다.[8]
이렇게 현대의 연고지 이전과 SK의 인천 연고팀 창단으로 2000년 겨울 큰 소용돌가 일단락 됐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인천 지역의 야구팬들은 엄청난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 인천으로 정착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 비록 연고지를 이전했지만 선수만큼은 온전히 있는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는 팬, 그리고 새로 온 SK의 이질감과 현대의 연고지 이전에 배신감을 느껴 야구 자체에 관심을 끊은 팬 이렇게 3등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이런 팬덤이 분열된 양상은 자신과의 싸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팬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던 수원구장에서의 경기, SK팬+SK 직원과 소수의 현대팬으로 어색하게 나눠져 응원전을 펼쳤던 문학구장에서의 경기, 그리고 현대 직원과 SK 직원이 동원된 잠실구장 중립경기의 결과는 KBO 한국시리즈 역대 최악의 흥행참패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3년에 남은 건 이승엽, 심정수의 홈런 경쟁뿐이었다.
3 종말을 고한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그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 이전을 시도하나 목동 야구장 리모델링 문제와 서울 연고 두 팀에게 줄 보상금 문제 때문에 바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임시 연고지로 수원시에 머물게 됐다. 그러나 수원시는 자타 공인의 축구도시로, 바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연고지인지라 마케팅부터가 게임이 안 됐다. 게다가 수원시민으로서도 언젠가는 서울로 떠날 현대 유니콘스에 큰 정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이렇듯 아무런 대책없이 불도저식의 무리한 연고이전을 강행한 현대 유니콘스는 크보에서 흥행 최악의 구단의 오명을 썼다.그래도 맨날 꼴찌나 해대는 팀보다야 사정이 나았…으려나? 거기에 현대 유니콘스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계속되는 적자와 범 현대그룹 후계구도 싸움인 왕자의 난을 거치며 모기업마저 암운이 드리워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과 현대전자(現 SK하이닉스)의 지원 중단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현대는 KBO와 야구단 대주주였던 하이닉스 스스로의 뻘짓[9]에 힘입어 종말을 고했고, STX, 농협, KT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 시도가 차례로 무산되면서 KBO가 보험 성격으로 접근해 놓았던 이장석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스가 현대를 해체 후 선수단만 인수[10]해서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우리 히어로즈가 신생구단으로서 창단된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면서 계보가 단절된 신생구단이라는 모순이 발생했던 이유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막장 상황에 기인하는데, 우선 하이닉스가 진작에 GG를 친 상황에서 근근히 이어지던 범현대가의 지원도 끊긴 2007년의 유니콘스는 순전히 KBO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과는 달리 하이닉스는 인수금을 내놓으라고 큰소리 칠 상황이 아니었던 것. 또한 자금력이 빈약했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재창단의 적절한 예와는 달리 KBO 가입비 120억 원의 분납을 조건으로 유니콘스의 인적 자산, 즉 선수단은 대부분 고용승계하는 대신, 물적 자산이라고 쓰고 빚이라고 읽는다은 포기하고 외형상 별개의 법인으로 신생구단을 탄생시키겠다는 제안을 걸었다. 밑에서도 언급되겠지만 당시 이장석은 현대의 승계보다는 신생구단의 창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야구팬들이 바라던 대기업의 인수도 아니었고 재창단이라 부르기도 뭔가 미묘한 모습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유니콘스의 명줄을 쥐고 있던, 그리고 아무도 야구단을 인수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8구단 운영의 파행은 막아야 했던 KBO가 센테니얼의 제안에 콜을 부르면서 유니콘스의 해체와 함께 히어로즈가 창단된 것.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히어로즈와 삼청태현의 연계성은 법적으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KBO는 현대가 다 까먹은 기금을 채울 길이 요원해졌고(…) 훗날 9구단 10구단에게 가입비 명목으로 삥을 뜯게 되는데
근데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자금력 부족 때문에 센테니얼에서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애초에 KBO 입장에서는 누가 사가건 이렇게 팔 수밖에 없었다. 만약 MBC-LG 때처럼 넘긴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주주인 하이닉스가 운영권을 양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회사가 어려웠던 하이닉스 측에서 뻔뻔하게도 초기투자비용 운운하며 양도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는 권리가 있으므로 그 돈을 줘야 된다.[11]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안 팔리는데 인수 비용이 올라가게 되는 건 둘째치고, 현대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아서 KBO 기금으로 운영했건만, 구단 팔린 뒤에는 하이닉스가 인수 비용을 챙겨가는 꼴이 되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봐도 기존 구단들이나 KBO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유니콘스 팬들의 생각및 미화된 기억과는 달리 2007년 kt는 고작 60억원대의 가입금에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KBO와 합의를 보았다. 금액으로 따지자면 센테니얼은 오히려 kt의 2배인 120억을 가입금으로 지불했으니 센테니얼이 자금부족으로 승계실패 운운은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다. 결국 센테니얼이 아니었어도 어찌 되었든 삼청태현 계보의 단절은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SK 와이번스는 2000년에 현대에서 기량이 쇠해서 쩌리가 되었다지만 '인천 야구의 적자'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던 김경기를 데려오고,[12][13] 2002년 8월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이벤트성 유니폼 데이를 펼치면서 삼미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이벤트 유니폼을 선보이는 등[14]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 자체에 발길을 끊은 인천시민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 SK표 스포테인먼트가 정착하고, 김성근 감독 체제 첫 해에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등에 업고 점점 인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야구 팬덤을 뒤흔드는 한 사건이 일어난다.
3.1 SK의 태평양 데이 행사와 그에 따른 후폭풍
SK 와이번스가 2008년 5월 4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태평양 데이를 실시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히어로즈를 상대로. 이 행사는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던 일방적인 행사였다.[15] 이날 마침 히어로즈-SK 전의 MBC SPORTS+ 중계방송 해설로 나왔던 박동희는 SK의 행동을 동북공정이라고 하며 크게 깠다. 안 그래도 미묘한 관계이던 히어로즈 팬들은 '태평양의 후신은 현대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며 크게 반발, SK의 올드 데이 이벤트에 항의하는 성격의 걸개를 들고 온 히어로즈 팬들도 있었다.
반대로 SK 팬들은 '태평양 돌핀스는 인천야구 역사인데, 없어진 팀 추억하자는 뜻에서 한 이벤트에 신생팀에서 뭔소리를 하냐?'고 맞대응했다. 제2홈구장 수원의 역사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럼 연고지 버리고 간 현대 유니폼 입고 올드 데이 행사할까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무너트린 김재현[16]이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있고, 그러한 모습을 이숭용, 전준호[17] 등 태평양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해왔던 히어로즈의 선수들이 지켜보는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SK엔 조웅천과 김경기가 있었지 [18]
어찌됐든 이 행사는 인천야구로서 SK를 응원했던 팬들에게는 좋은 평을 들었던 반면 히어로즈 팬들에게는 악담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양 팀 팬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19]
한편 이 사건 이후 히어로즈의 행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창단 초기 히어로즈의 구단주 이장석은 히어로즈가 신생 서울팀으로 비춰지길 바라고 있었다.[20] 물론 히어로즈야 과거 유니콘스가 사용했던 KBO의 기금 채무를 탕감한다는 조건 하에 법적으로는 삼청태현의 기록을 이어받지 못하는 별개의 팀으로 창단되었다는 점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낯선 지역에 창단한 신생구단이 안고 가기에는 한때 왕조라고까지 불렸던 유니콘스, 그리고 현대란 상징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멍에인 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침몰하는 난파선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현대 유니콘스에 남았던 김시진을 위시한 코칭스탭들을 대거 잘라버렸으며[21], 전준호와 같이 연봉의 고하를 막론하고 현대색이 짙으면서 은퇴가 가까운 선수들을 푸대접하거나, 아예 그냥 방출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오히려 이러한 '현대색 지우기'는 히어로즈 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구 현대 팬들의 반발과 팬이탈을 불러왔었고[22], 그런 구단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것이 위의 태평양데이 이벤트였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삼청태현 계보에 대한 논란 역시 재점화되었고, 이에 대한 히어로즈 구단의 태도 역시 이 시점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조태룡 단장이 부임하면서 팬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삼청태현 역사의 필요성을 주장, 구단주 이장석을 설득해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김시진을 다시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이후 목동구장 전광판을 통해 히어로즈가 삼청태현의 역사를 이어받았음을 알리는 한편, 2009년 9월 삼미-청보-태평양의 유니폼 모양의 LED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구단 홈페이지에 삼청태현 히스토리를 실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트레이드 절대 불가라던 황재균을 팔면서 뜬금없이 황재균은 히어로즈 고유 프랜차이즈가 아니라는 드립을 쳐서 팬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다.
2009년 당시 목동구장 전광판의 모습. 별도의 설명이 없기에 흔히들 조작된 사진이라는 말과 히어로즈가 문구만 적당히 바꿨다는 밑장빼기주장이 상반되어 나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두 모습은 모두 실존했다. 정확히는 전광판에 번갈아서 나왔다.[23] 어떻게 보면, 구단측이 삼청태현의 계보 승계에 대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짤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신생구단이긴 하지만 전통은 이어받았다구요 그 와중에 영원히 고통받는 심수창 팬들의 반응은 차라리 아예 쳐낼거면 확실하게 쳐내던가 아니면 확실하게 후신이라고 얘기하던가 둘 중 하나만 하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이후에는 완전히 갈피를 잡은 듯, 태평양의 최후의 선수이자 현대의 상징이였던 이숭용을 한 팀에서만 2,000경기를 뛴 선수라고 소개하며 성대하게 은퇴식을 치러주었으며, 당시 스포츠 언론 역시 '최초로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 하면서 2천 경기 출장'이란 타이틀을 붙여 이후 넥센 팬덤이 스포츠 언론계도 태평양-현대-넥센을 하나의 계보로 간주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였다. KBO 역시 공식보도 자료로 저 내용을 돌렸는데, SK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정작 문제는 이후 인천야구의 계보에 대한 방송에서 당시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선수 본인이
삼청태현과 히어로즈의 연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버린 것(...) 그런데 태평양-현대 연고 이전 혼란기 때의 선수들한테 물어보면 비슷한 대답 나올거 같다 이 난리에 극심한 피해를 본 것은 바로 해당 시기의 선수들. 연고 인맥이 상당한 힘을 차지하는 야구판에서 인천 출신 선수들은 비빌 언덕이라도 있지만, 이숭용 선수처럼 공중에 붕 떠버린 선수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숭용 선수는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태평양, 현대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이기에 이런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2013년 시즌 이후에는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게 된 배경으로 염 감독이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출신이기에 선임했다고 이장석 사장이 직접 언급했다.# 게다가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고문이었던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후임 감독으로 박흥식 당시 타격코치를 원했다고. 그 분 귀신같이 도망가셨답니다 참고로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현대 유니콘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현대해상은 2010년부터 계속 넥센 히어로즈의 스폰서를 해왔다.
결과적으로, 삼청태현의 계보는 팬들뿐만 아니라 양 팀에서도 서로 계승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이 부분은 너무 안타까운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게 갈라진 팬들은 한때 같은 한 지붕에 있던 사람들 사이였는데 말이다.[24] 최소한 넥센이 삼청태현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연고지 이전 직후 현대를 응원했고, 지금 넥센을 응원하고 있는 인천 야구팬들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넥센이나 SK나 어느 쪽이라도 삼청태현과 공식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현대라는 구단이 해체된 이상 어느 팀도 삼청태현의 후손일 수 없으며, 굳이 따지자면 약 20년간 그들과 함께 했던 인천 야구 역사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핵심은 SK - 넥센 모두 이전 팀이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다는 점이다. 연고를 옮긴 뒤 공식적으로 해체된 구단이 어떻게 이전 연고지에 있던 팀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는가? 반대로, 이전 연고팀과 아무런 상관 없는 구단이 이전 주인이 떠난 연고에 들어왔다고 이전 연고지 구단의 역사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사람을 이었다고 해서 인천 야구의 역사를 통째로 다른 연고지로 가져갈 수 없는 일이며, 태평양 선수였던 염경엽 감독이 넥센에 있다고 삼청태 역사가 넥센 거라면, 김무관 코치 영입한 SK는 삼청태 적자가 되냐 마찬가지로 지금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SK도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신생 구단을 창단한 것인만큼 삼청태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삼청태 유니폼 맘대로 입어도 되는 사람은 도원 구장에서 그물 탔던 도원전사들뿐
3.2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 사건
이런 양측의 갈등은 2014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2014년 9월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25]이 출판되었고 넥센구단의 입장에 동조하여 '넥센의 역사는 삼청태현을 계승한다'라고 나오는 바람에 양측에서 각각 '서울 신생구단인 넥센이 인천야구의 역사인 삼청태를 지들거라고 겆북공정[26]을 시도한다','니들은 삼청태 자격없는데 웬 참견이냐?' 등으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다.사실 둘 다 자격없다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동네에서 팬질하던 사람들이 뻔히 살아 있는데 해당 팀도 해체된 마당에 그 시절 역사까지 슬쩍 끼워 가져가면 어느 동네가 참을 수 있겠나 사실 히어로즈 팬덤에서도 좀 억울한 게, 김은식 작가가 쓴 다른 팀의'XX 때문에 산다' 시리즈와 달리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만 고유라 기자가 저술했고, 책의 저자인 고유라 기자는 이 시기 한창 '코유라'[27]로 불리며 혀갤에서 까이고 있던 판이었기 때문. 당장 저 책이 나오자마자 혀갤에서는 삼청태현 부분을 포함해 이 책을 냄비받침 취급했고 고유라 기자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회복된 2015년 현재도 해당 책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게 없다.
4 그럼 후계자는 누구인가
“정확히 10년 전인 2006년 사업을 하기로 결의하고 2007년 회사를 설립해 2008년 서울 히어로즈를 창단하게 됐다. 우리 구단의 역사의 효시가 10년이라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삼청태현으로 끝이며, 어느 구단도 계승하지 못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넥센 히어로즈가 인적 구성을 근거로 삼청태현 족보의 계승자라는 논리는 구단이 해체한 뒤 새로 창단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SK 와이번스는 삼청태현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프로 스포츠 팀은 당연히 팀의 연속성이 우선이며, 실제로 연고를 이전하며 역사를 이어온 스포츠팀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은 두 팀 모두 과거 팀들을 해체한 뒤 창단했다는 것이다. 만약 넥센 히어로즈가 인적 구성의 계승으로 족보의 공식 상속을 주장한다면 SK 와이번스 역시 신생 창단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쌍방울 레이더스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 넥센은 그렇다 쳐도 SK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인적 자원의 계승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이적이 흔한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선수의 존재만으로 구단 공식 역사를 정의해야 한다는 비약으로 번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팀의 족보를 좌지우지 하는 선수로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 스타 5명 정도가 다른 팀으로 가고, 나머지 선수 대부분이 또 다른 팀으로 갔다면 이 팀의 정체성은 프랜차이즈 스타 5명이 간 팀인가? 아니면 그 외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간 팀인가? 넥센 히어로즈가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을 대부분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희박한 삼미, 청보 때의 역사의 소유권까지 주장하는 것은 팀을 공식적으로 해체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무시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만약 SK 와이번스 팬덤에서 김경기의 상징성은 다른 선수 10명과 맞먹기 때문에 족보 계승 정통성은 SK에게 있다라는 어거지를 쓴다면 그 어처구니 없음을 인정할 것인가? 당연히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고지가 우선이다라는 주장은 팀의 연속성이라는 요건에서 본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프로 스포츠 구단에게 연고지 이전은 드문 일은 아니며, 연고지를 기준으로 팀의 족보를 정의할 수는 없다. 삼청태현 후계자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연고지를 따지기 이전에 이 팀들의 역사는 공식 해체로 끝났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넥센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구단을 만든 것이 맞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와 연관성을 강조할 수는 있어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마당에 그 인적 구성원들과의 연관성이 희박한 이전 연고지 팀 역사 소유권까지 주장하는 것은 상대 팬덤에게 지나친, 완전한 굴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SK 와이번스는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 선수들을 기반으로 만든 신생 구단이며, 삼청태가 야구했던 동네에서 다시 야구 한다는 단순한 사실 외에는 삼청태와 1%의 연관성도 없다. 이 논쟁은 삼청태 + 현의 계승자라는 넥센 팬덤과 삼청태를 왜 너희들이 가져가냐는 인천 야구 팬덤 사이의 답 없는 논쟁이다.
어떤 구단도 삼청태현을 계승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삼청태현은 삼청태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신생 구단들은 과거는 잊고 신생 구단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만약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나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KIA 타이거즈처럼 넥센이 현대를 인수해서 창단했다면 삼청태 역사는 넥센의 것이다. 이장석이 그 때 판단을 잘못했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당시 실질적으로 해체 후 신생 창단이라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만약 현대가 애초에 인천을 떠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정들은 전부 의미 없다. 야구에, 아니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것이다.
타협안을 찾는다면, NBA팀인 샬럿 호네츠의 연고지 이전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샬럿 호네츠가 2002-03 시즌을 앞두고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이전을 한 뒤, 샬럿의 시민은 NBA팀을 돌려달라고 사무국에 매달렸고 결국 2004년에 NBA의 30번째 팀인 샬럿 밥캣츠를 이 지역에 새로 창단하게 되었다. 이 팀의 현재 구단주는 그 분. 뉴올리언스로 간 호네츠는 2013-14 시즌을 앞두고 팀 이름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개명했고, 이 때를 놓칠세라 샬럿 밥캣츠는 예전 이름인 호네츠를 되찾았다. 그 분이 힘 좀 쓰신 듯 이 때 펠리컨스와 밥캣츠 사이에 삼청태 논란과 비슷한 족보 문제가 발생했는데, 밥캣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1988~2002)를,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 시절의 호네츠 역사(2002~2013)를 가져가는 방향으로 족보를 정리했다. 이 경우를 참고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SK 와이번스는 삼청태와 현대 유니콘스 인천 연고 시절의 역사(1982~1999)를 가져간다. 넥센은 이후의 현대 유니콘스 역사(2000~2007)를 가져간다. 2. SK 와이번스는 삼청태 역사(1982~1995)를 가져가고, 넥센은 현대 유니콘스 역사(1996~2007)를 가져간다. 3. 지금 이대로 두 팀 모두 공식적으로 삼청태현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포기한다(...). |
1번안은 샬럿 호네츠의 사례와 비슷하게, 연고 역사를 기준으로 족보를 정리하는 방안이다. 넥센이 손해인데 그래도 왕조 시절 역사를 대부분 먹잖아? 그 짧은 시기에 우승을 3번이나 해먹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연속적인 역사가 연고지에 따라 잘린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가장 기계적인 방안.
2번안은 인적 구성원 계승을 기준으로, 완전히 넥센에서 현대 유니콘스 역사를 계승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인천 연고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현대 유니콘스가 아니라 SK 와이번스가 되며, 인천 야구는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기까지 26년이 걸린 셈이 된다. 인천 야구 팬덤에서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애증의 대상인 현대 유니콘스를 양보하고 삼청태 역사를 공식 계승하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 있는 방안이다.
3번안은 양쪽 팬덤에서 타협 없이 ALL or NOTHING을 고수한다면 그냥 이대로 두는 방안이다. 사실 방안이랄 것도 없는데, 역사적 사실과 현재 '아무 것도 안한다' 분위기를 볼 때, 누구도 잠잠해지려는 논란에 기름을 붓고 싶지 않을 것이다. ??? : 쯧쯧쯧...[28]
4.1 넥센 히어로즈 팬덤 관점
넥센 히어로즈의 경우 현대가 망한 후 현대의 기존 선수를 흡수하였으므로 적통자라는 주장을 하며 실질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다. 히어로즈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정하는 삼청태현이라는 계보의 마지막 현대 유니콘스를 요상한 형태일지라도 계승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SK측에서는 인천 연고인 것이 삼청태이라는 족보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넥센 히어로즈 팬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고지라는 지역 밀착적인 형태가 존재한다고 해도 연고지 이전이라는 요소를 무시하고 지역만이 팀의 족보를 계승한다고 하는 점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만약 지역을 바꾸었다고 해서 족보가 끊어진다고 하면 지금 현대 유니콘스 항목은 '현대 유니콘스/인천', '현대 유니콘스/수원'과 같은 식으로 나뉘어야만 할 것이다. 현대가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애정을 저버린 것은 맞다. 하지만 스포츠의 역사는 결국 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이전 팀에 있었던 인적 구성을 계승했다는 명목이 있는 히어로즈는 적어도 삼청태현넥이라는 계보에 대한 구색은 갖춘 셈이다.
4.2 SK 와이번스 팬덤 관점
SK 와이번스의 경우 현재 인천야구의 연고구장이라는 점에서 삼청태를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SK는 선수단의 인적 구성이 쌍방울이라는 비인천 출신을 주축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여러 방법을 통해 인천 연고로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29] 특히 삼청태의 전성기 시절 지도자인 김성근 감독의 재임기에 3회 우승, 1회 준우승 등 프로야구계의 왕조를 세움으로써 이를 달성하였다. 비록 인적 승계의 측면에서 결격 사유가 크다고 해도, SK는 분명 현재의 인천 연고구단이며, 따라서 삼청태 등 인천 연고구단의 역사를 포함한 인천지역 야구의 전통을 계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념한다는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SK 와이번스 팬덤에서는, SK 와이번스가 직접 삼청태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신생 구단임을 인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삼청태 역사는 인천 야구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다른 프로 스포츠와 달리, 프로 야구는 지역 연고가 매우 잘 정착되었기 때문이고,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답 없는 지역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제기하는 주장이다.
4.3 정답
사실 저 두 팀 팬들이 어떻게 싸우든 간에 이 사정을 아는 야구 팬들은 냉정하게 잘라 말하자면 삼청태현의 계보는 끊어졌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두 팀 팬들이 어떻게 싸우건 간에 당연히 이게 정답이며 이게 히어로즈 구단의 창단일을 2008년으로 표기하고 있는 KBO(한국야구위원회)의 공식적인 해석이다.
"현대 기아니깐 기아가 현대 후신이다"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30] 삼청태현의 역사는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하며 끝났고 넥센 히어로즈는 일부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만을 인수했을 뿐이고 SK 와이번스는 현대가 떠난 인천의 빈자리를 이어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었을 뿐이지 삼청태현이라는 구단의 역사를 이어간 것은 아니다. 그저 유니콘스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팬들이 히어로즈를 응원하고, 인천의 야구를 사랑하던 인천 팬들이 연고지를 떠난 유니콘스 대신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것일 뿐이다. 삼청태의 수난 가득한 역사와 현대 유니콘스의 영광의 V4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은 공식적으로 모두 끊어져 버렸고 이젠 사라진 팀이다. 단지 옛 인천야구 혹은 삼청태현을 응원하던 팬들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지 공식적인 계승, 족보, 계보 따위를 따지는 건 이미 팀이 해체되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소용없는 일이다.
히어로즈 구단이 삼청태현의 역사를 자칭 구단의 역사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히어로즈가 우승했을 때 유니콘스의 4번 우승을 포함한 n번째 우승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며 구단의 공식적인 역사는 2008년에 시작하는 것이 자명하며 그저 삼청태현의 정신적 후신이라는 명분을 글자가 아닌 마음속으로만이라도 가진다 해도 팬들과 구단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SK 와이번스 역시 인천에 있었던 삼청태현의 존재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팀들의 성적과 역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데 이미 SK구단은 본인들의 우승을 3회 우승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의 SK팬들 역시 비록 성적은 거의 늘 하위권이었으나 인천에서 본인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옛날 그 팀들에 대한 향수를 지금처럼 가끔 그시절 유니폼들을 통해 느끼는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SK팬이라면 넥센의 비공식적인 명분에도 태클을 걸것이요. 넥센 팬이라면 SK가 옛 인천 야구단의 유니폼을 입는것에 태클을 걸것이니 엄밀히 따지면 둘 다 후신이 아니지만 이 두 팀 사이는 와장창!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 삼청태현과 직접적은 관련은 없고 여기에 부합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없으나 선수단 대부분이 SK 와이번스로 흡수되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차라리 돈이 깨지더라도 SK가 쌍방울을 인수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테니...
kt wiz의 경우 삼청태현, SK, 넥센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나, 파토가 나버렸긴 했지만 kt가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인수 우선 협상자였고, 이 일이 있은 지 6년 후에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였던 수원시를 연고로한 제10구단을 새로 창단한다. 한편, kt 위즈의 비공식 서포터즈인 'Kaizers'에서는 8년 만에 프로야구가 다시 열린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제작한 바가 있는데, 여기서 현대 유니콘스의 원정 유니폼을 입은 턱돌이가 타버린 야구방망이를 들고있는 그림을 넣어 간접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넥센 히어로즈를 디스했다. kt도 SK마냥 지역중심으로 수원 야구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해버리면 바로 3파전. 사실 kt로 갈아타거나 신규 유입된 팬들은 현대와 수원의 연관점 자체를 부정하고 kt가 최초이자 유일한 수원야구구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야구단인 KIA 타이거즈의 경우 일단 이름이 KIA라서 직접적으로 잘 언급되지는 않으나 사실 범 현대그룹의 계열사라서 농담삼아 '현 현대그룹 야구단 = KIA 타이거즈'인것이 언급되며 또 삼청태현 역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 한때 모그룹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 했다는 점도 언급된다.[31] 하지만 현기차그룹의 경우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광주광역시 연고의 옛 아시아자동차의 공장도 인수했고, 현기차가 타이거즈 인수 초기에 연고지를 이전하려는 뻘짓을 좀 용서해준다 치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건립 지원이 사실상 광주에 완전히 정착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현기차그룹이 삼청태현 논쟁의 핵심 논점인 '인천야구'의 계승에 끼어드는 것은 전혀 거리가 멀다.
가문을 지역에, 혈통을 선수단에 비유하자면 넥센은 '가문을 떠난 장손의 친자이며 장손이 죽은 뒤 새 족보를 만들어서 성을 새로 판 경우', SK는 '가문의 제사를 대신 지내기 위해 들여온 다른 성의 양자'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결론은 둘 다 족보도 다르고 성도 다르며 공식적으로 가문을 이어가는 자손은 없다. 그리고 야구라는 종목이 '프랜차이즈 역사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종목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넥센 팬덤이든 SK 팬덤이든 삼청태현에 대한 정통성 얘기를 해봤자 결국 죽은 아들 거시기 만지기나 다름 없다.
5 기타
-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현대건설이 시공하였고, 현대 유니콘스가 홈구장으로 쓰려고 계획했으나, 결국 현대그룹 차원으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하면서 2002년에 SK 와이번스가 사용하게 된다.
- 자신과의 싸움으로 유명한 2003년 한국시리즈는 SK팬들이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현대를 족보로 언급할 때 넥샌 팬들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자주 쓰는 예시이며 그 어떤 SK팬도 반박할 수 없는 마법의 말. SK가 현대를 이어받은 거면 SK와 현대의 한국시리즈는 자기자신과의 싸움, 혹은 청백전이냐는 이야기.
진짜 청백전 한국시리즈가 나올 뻔했지만…
- 마스코트가 슈퍼히어로 → 말(조랑말) → 돌고래 → 말(유니콘) 순서로 바뀌었다.
말을 좋아하는 팀
- 디시위키에서는 팬을 이어받은 롯데(...)가 삼청태현의 주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묘하게 말이 되서 더 웃긴다. 따지고보면 아예 틀린말도 아닌게 함정
- 일부 게임에서는 선수단 계승 문제로 삼청태현넥이나 쌍방울-SK를 동일구단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6 같이보기
6.1 넥센 히어로즈
- 넥센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의 삼청태현 히스토리
- 최훈 카툰 영웅의 꿈[32]
- 삼청태현에 관한 올드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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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태어난 희대의 엄친아가수 김광진은 삼미 슈퍼스타즈 때부터 삼청태현을 응원해오던 대표적인 팬이며, 지금은 SK 와이번스보다 후신격인 넥센 히어로즈를 좋아한다고 하며, 스스로를 "히어로즈 지킴이"로 자청하고 있다... 가끔 트위터에 삼청태현과 넥센 히어로즈에 대한 얘기를 올리기도 한다. - 2008년 재창단 당시의 현대 선수단 중에선 현재 코치 5명, 선수 6명(...)[33]이 넥센에 남아있으며, 그 외의 삼청태현 출신은 감독과 코치 3명[34]이 있다.
6.2 SK 와이번스
- 짠물야구 인천야구의 역사.[35] 인천야구 팬덤을 대표하는 김훈희 씨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인천야구의 역사박물관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인천 야구팬의 심정을 옅볼 수 있다. 다만 운영자가 2009년 이후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니 참고할 것.
- 개그맨 이혁재는 인천 토박이로 SK의 광팬이기도 하다. 인천야구를 다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금광옥 역을 맡기도 했고 종종 SK의 시구자로 나오기도 했다. 연고이전 당시 엄청 화냈다고 하며 인터뷰에서 대놓고 "현대 개새끼"라고 욕을 했을 정도였다.
- ↑ 삼미와 태평양이 시즌 2위 한 번씩, 한국시리즈 진출은 1994년의 태평양이 유일하다. 삼미와 청보가 하위권에 머문 이유는 이 두 구단이 넥센처럼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결국 삼미와 청보 시절에는 경영난으로 인해 타 기업에게 구단이 팔렸다.
- ↑ 금광옥 현 동산고 감독은 1998년 우승 후 1999시즌 개막전의 관객이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던 것이 현대의 연고지 이전 시도에 결정타였다고 밝히고 있다. 인천 토박이들에게야 당연히 인기가 높았었지만, 사실 인천은 전라도+충청도 출신 이주민이 많은 도시다.
- ↑ 김용휘 전 사장은 연고지 이전은 야구단에서 추진한 것이 아닌 그룹에서 강행해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2008년에 스포츠 2.0에서 밝혔다. 프런트는 물론 선수단의 의견수련 없이 일방적으로 모기업에서 '불도저'식으로 강행했던 것. 당시의 연고이전 강행에 대해 선수단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박재홍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눈물로 호소하면서까지 구단의 연고이전을 반대했었던 반면, 몇몇 선수들은 연고이전 소식에 반색하며 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 ↑ 수원은 전통적으로 축구가 인기가 많으며 그 당시 시장도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단에 링크된 최훈의 만화 '영웅의 꿈'을 보면 유니콘이 잠시 동거하던 '수원'이란 여자의 옷이 바로 블루윙즈의 파란색 유니폼이다. 더구나 수원이 현대에게 있어 임시 연고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수원시민들이 현대에 정을 줄 리가 없었다. 거기다 2000년대 초반은 야구의 암흑기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 ↑ 당시 기업이 어려웠던 쌍방울로서는 SK가 구단을 인수해주길 바랐지만, 기한을 넘기면 자연히 퇴출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SK는 그럴 생각조차 갖지 않았다. 이윽고 쌍방울이 자동 퇴출됨과 동시에 SK는 신규 구단을 출범시켰고, 웨이버 공시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과는 개별 계약을 맺음으로서 레이더스와의 연계성을 차단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SK는 쌍방울이 마지막으로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해서 행사한 신인 지명권을 대가 없이 그대로 가져가 모두 써먹었고, 그것만으로는 선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용병 세 명 계약 허용 및 나머지 7개 구단에서 드래프트 방식으로 선수들을 두 명씩 수급받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이호준이 그 예. 그는 해태에서 뛰다가 위의 과정을 거쳐 SK로 이적했다. 이런 SK의 '날로먹기' 행보는 결과적으로 SK의 아킬레스건이 되는데, 정통성 시비가 발생했을 때 이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SK로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게 된다.
- ↑ 이 과정에는 사연이 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창단 초 SK도 역시 서울로 연고 이전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무렵 현대그룹에서도 야구단 연고 이전을 서울로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충돌하게 되었고, KBO가 중재한 끝에 현대그룹 손을 들어주어 야구단 현대유니콘스를 서울(목동)으로 이전시키고, SK를 인천으로 연고지하도록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더 복잡한 것은 이러한 결정이 있기 전 SK는 기존 두 구단의 반발에도 서울 아니면 안하겠다는 주장에서 갑자기 한발 물러나서 서울 아니면 수도권 광역시 아니면 창단 안하겠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즉, 현대가 먼저 서울로 가고 비어있는 인천을 SK가 어쩔수 없이 들어간 게 아니다. 물론 두 그룹 중 어디가 더 먼저 그 말을 깨냈는지는 현재로선 알 겨를이 없다.
- ↑ 당시 프로야구의 연고지 변경과 인수, 재창단에는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는 썰이 파다하게 퍼졌다.
- ↑ 이 때문에 당시 야구팬덤에서는 SK 와이번스를 쌍방울 레이더스의 후신으로 치는 경향이 있었고, 이런 분위기를 아는 SK 프런트에서도 연고지 인천에 대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했다. 이 때문에 SK는 제2 연고인 경기도 지역을 홀대하게 되었고(물론 일각에서는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수원에서 일부 홈 경기를 치르자는 주장을 꾸준히 했으나 인천 SK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수원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KT가 제10구단 kt wiz로 수원에 입성함에 따라 SK의 경기도권 연고는 상실했다.
- ↑ 후술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 인수를 제안했으나 대주주였던 하이닉스가 인수금액 900억드립을 치면서 결렬되게 만들었다.
- ↑ 정확히는 현대 유니콘스가 권리를 가지고 있던 선수들. 이때문에 2008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했던 신인선수들은 그대로 히어로즈로 입단했으며, 현대 소속의 군복무 선수들도 제대후에 모두 히어로즈 소속이 되었다.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했던 김병현도 2012시즌을 앞두고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 ↑ 사실 잘하면 돈을 주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하이닉스와 인수자, KBO 사이에 꽤 복잡한 법정 다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법정 간다고 100%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고. 더구나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야구단과 KBO가 법정에서 운영권 문제로 소송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좋을 리가 없다.
- ↑ 사실 김경기도 SK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경기 자신이 인천에 대한 애착심이 컸던 선수였던 데다, 선수협을 지지했던 전준호를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의 행위를 해 현대 선수단 내에서의 입지도 상당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2000년 이후로 현대-넥센의 팬이 된 사람들은 김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 ↑ 사실 김경기는 1999시즌부터 용병타자의 도입과 부상으로 팀 내에서 자리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준호 폭행사건이 터지자 아예 자리를 잃고 말았다.
- ↑ 뒤에서 언급될 태평양 데이와 엮어 이 행사를 삼미 데이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 이름은 "꿈★의 이벤트" 였다. 당시 2002 월드컵에서 등장했던 "꿈★은이루어진다!" 키워드에 맞춰 SK의 포스트시즌 진출 염원을 담았다. 하지만 이는 구단측의 설명일 뿐이고, 실제로는 당시 현대측의 반발로 삼미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 ↑ 태평양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통보할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 ↑ 김재현은 LG 트윈스 당시 태평양-현대 상대로 유독 강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90년대 LG 트윈스는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강했고, 그 가운데 김재현하고 유지현, 김동수는 태평양-현대 팬들 입장에서 매우 얄미운 존재였다.
- ↑ 전준호는 이 상황을 보고 "우리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 ↑ 이 둘은 '이적'이라는 행위를 통해 팀을 옮긴 선수들이라, 무이적 선수들인 이숭용, 전준호와의 동일선상 비교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후 전준호는 SK로 이적했다심지어 그 당시 김경기는 선수가 아닌 코치 신분이었으며, 굳이 여기서 김경기를 운운해야 한다면 히어로즈에는한 팀에 23년간 쭉 있어 왔다고 본인 입으로 직접 밝힌정명원이 있었음 역시 언급해 줘야 한다. 애당초 선수와는 달리 직장 옮기는 일이 다반사인 코치 세계에서 지금의 소속팀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 ↑ 메이저리그의 경우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워싱턴 내셔널스는 자신들이 캐나다 몬트리올을 연고로 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이어받았다기보다, 워싱턴 세네터스의 연고 이전으로 끊어진 워싱턴DC의 야구 역사를 계승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엑스포스 유니폼을 입는 행사는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현재 미네소타 트윈스, 텍사스 레인저스인 워싱턴 세네터스의 유니폼을 입는 행사를 여러 번 개최했다. 심지어 이 팀은 자신들의 홈구장인 내셔널스 파크에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제정되었던 영구결번들보다 워싱턴 세네터스의 레전드들을 먼저 기렸다. 또, 1969년에 시애틀에서 창단한 뒤 딱 1년 후에 밀워키로 이전해 현 밀워키 브루어스가 된 시애틀 파일럿츠의 유니폼을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이 입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 팀의 프랜차이즈 역사를 강하게 내세우는 편이다. 한 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가 각각 예전 난카이 시절과 니시테츠 시절의 올드 유니폼을 입고 뛴 이벤트가 있었다. 난카이가 오사카, 니시테츠가 후쿠오카를 연고로 했던 팀이나 이 팀들이 훗날 연고지 이전을 하여, 옛날엔 후쿠오카 팀었던 팀이 사이타마에서 후쿠오카 시절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거시기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 이후의 인터뷰를 보면, 이장석은 당시의 판단에 대해 본인이 무지했었다며 크게 후회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족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자의 비극 - ↑ 2006시즌을 마치고 유니콘스 왕조를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과 상당수 코치, 프런트가 LG트윈스로 옮겨가자 상당수 현대팬들은 '이제 끝이구나...'라는 심정을 보였다. 이와중에 타팀들의 무수한 제안을 거절하고 팀에 대한 애정으로 잔류한 김시진 감독, 이광근, 김성갑 코치 등에게는 깊은 애착을 나타내었다. 그런데 이장석이 들어서자마자 이들을 모조리 잘라버린 것이다.
- ↑ 이장석은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무리한 현대색 지우기는 마케팅 측면에서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이미 LG와 두산이라는 양대 인기구단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선수와 코칭스탭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기존 팬들은 모조리 내치면서 자금력도 없으면서 신생구단이라고 맨땅에 헤딩식으로 들이댔으니...말 그대로 목동 야구장이 텅텅 비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거기에 구 현대 시절 코칭스탭을 내치고 데려온 박노준 단장, 이광환 감독, 강병철 2군 감독 등 같은 외부인사들은 선수단, 프런트 모두와 삐걱대면서 팀운영도 엉망진창이었다.
- ↑ 윗 사진은 7월 21일, 아래 사진은 7월 31일 경기다.
- ↑ 그런데 인천 외 타 지역이나 2000년 이후 현대 팬이된 사람들에게는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타 지역 팬들에게는 연고지 이전은 별 충격이 아니였으며 되려 연고지 이전을 반기는 팬들도 있었다.
그 팬들이 먼저냐 인천에서 그물 탔던 사람들이 먼저냐 숫자로 비교해보자또한 2000년 이후 현대 팬이 된 현 히어로즈 팬들에게도 위의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김경기에 대한 2000년대 전후 현대 팬들의 시선 차이가 그 대표적인 예다. - ↑ 각각 구단별로 출판되었다.
- ↑ 사실 정통성 문제와 별개로 겆북공정이란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동북공정의 경우 중국의 영토를 기준으로 그 지역에 있던 역사를 편입하려는 시도인데 그것은 SK의 현재 연고지인 인천을 기점으로 삼청태현의 역사를 편입하려는것과 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기때문이다.
- ↑ 야구에 대해 무지한 코갤 출신 야갤러들을 비하하는 말인 '코갤러'와 고유라 기자의 이름을 합성한 것. 이전 시즌 이런저런 코갤러짓으로 빈축을 샀던 고유라 기자가 2014 시즌에는 그야말로 포텐을 터뜨린 탓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 ↑ 이 팀은 예전 팀의 족보를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그 팀 상징을 토막내기까지 했다.
- ↑ 물론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쌍방울과의 선을 그으면서 쌍방울의 존재가 야구계에서 소멸되는 나쁜 결과가 생긴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때문에 전북에서의 야구 인기는 다른곳에 비해 뜨뜻미지근 해졌고 이후 연고지 축구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자 거진 그쪽으로 몰리게 되었다.
- ↑ 그런데 단순 드립이 아닌게 현대차 측은 해태를 인수하려는 과정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인수 또한 같이 고려했었다. 그런데 현대의 대주주였던 하이닉스는 당시 그야말로 오늘내일 하던 상황이라 인수 대금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었던 900억원을 불렀는데, 이것에 정나미가 떨어진 정몽구 회장은 현대를 쌩까버리고 비교적 싼 가격을 부른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 ↑ 기아 농구단이 기아에 그대로 있고 현대모비스 타이거즈(...)가 되었다면 엄청난 개족보가 되엇을 것이다.
- ↑ 최훈 본인은 LG팬이지만 삼청태현넥쪽으로 보고 있는걸로 보인다.
- ↑ 코치는 송지만, 강병식, 홍원기, 정수성, 박승민, 선수는 오주원, 김세현, 이보근, 임태준, 이택근, 유재신. 그러나 임태준과 유재신은 현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 적이 없어서 실질적으론 선수 4명으로 봐야 한다. 홍원기는 재창단 직후 은퇴.
- ↑ 최상덕, 심재학, 채종국.
- ↑ 2016년 9월 현재 접속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