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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4선 당선 직후.
참으로 화려한 커리어만큼 명암이 엇갈리는 대표적 정치인.
엘리트 관료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등록금 발언은 그의 정치 커리어에서 부인할 수 없는 흑역사로 유명하다.
이름 | 김진표(金振杓) | ||||||||||||||||||||||||||||||||||||||||||||||||||||||||||||||||||||||||||||||||||||||||||||||||||
출생 | 1947년 5월 4일, 경기도 수원시 | ||||||||||||||||||||||||||||||||||||||||||||||||||||||||||||||||||||||||||||||||||||||||||||||||||
본관 | 김녕 김씨 | ||||||||||||||||||||||||||||||||||||||||||||||||||||||||||||||||||||||||||||||||||||||||||||||||||
학력 |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 ||||||||||||||||||||||||||||||||||||||||||||||||||||||||||||||||||||||||||||||||||||||||||||||||||
가족 | 배우자 신중희, 슬하 1남1녀 |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
지역구 | 경기 수원시 무 | ||||||||||||||||||||||||||||||||||||||||||||||||||||||||||||||||||||||||||||||||||||||||||||||||||
의원 선수 | 4 | ||||||||||||||||||||||||||||||||||||||||||||||||||||||||||||||||||||||||||||||||||||||||||||||||||
의원 대수 | 17, 18, 19, 20 | ||||||||||||||||||||||||||||||||||||||||||||||||||||||||||||||||||||||||||||||||||||||||||||||||||
종교 | 침례교 | ||||||||||||||||||||||||||||||||||||||||||||||||||||||||||||||||||||||||||||||||||||||||||||||||||
경력 | (현) 제20대 국희의원 (전)제17~19대 국회의원 (전)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전)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전)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침례교)이다.[1]
1947년 경기도 수원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황해도 연백군 출신으로 월남해서 수원에 정착했다.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재경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하였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비밀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할 때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 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계속 고위경제관료직을 역임했는데, 두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바 있다. 때문에 보수층에서는 평가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야권 지지자들 및 진보층에게는 꽤 비판을 받는 편.
2007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1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세월호라는 호재로 유리한 구도였다는 전망과는 달리 새누리당의 남경필 후보에게 1%차이로 석패하면서 잠시 야인 신분이 되었다.
사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성향이 비교적 보수적인 인물 중 하나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김진표는 새누리당에, 남경필은 민주당에 가야하지 않겠냐"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보수정당으로서 개혁소장파에 속하는 남경필 후보와 민주당계에서는 보수파에 속하는 김진표 후보의 대결이었기에 후보간의 이념적 스펙트럼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낙선 후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비리사범 수사대상에 올라갔으며 조병돈 이천시장과 함께 산악회 회원 30명에게 1인당 시가 2만원 상당의 쌀을 나눠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만약 유죄로 결정나 징역 또는 2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은 무효가 되고 해당지역구는 보궐선거를 하게 된다. 참고로 20대 총선에서는 총 30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 중 무려 104명이 선거비리사범으로 입건되어 새누리당의 황영철 당선인은 재판에 넘겨지고 5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98명은 현재 수사중이다.
2 등록금과 관련된 논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 당시 국립대학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기사)라는 그의 망언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약 7~8년 후, 이명박 정부 당시엔 야당이 되다보니 반값 등록금을 주장(기사)하는 이중잣대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3 선거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시 영통구) | 열린우리당 | 49,155(48.3%) | 당선(1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시 영통구) | 통합민주당 | 40,781(49.8%) | 당선(1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시 정) | 민주통합당 | 68,274(61.0%) | 당선(1위) |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 새정치민주연합 | 2,478,667(49.6%) | 낙선(2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시 무) | 더불어민주당 | 62,408(51.5%) | 당선(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