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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10월 26일 ~ 1757년 7월 23일
풀네임은 주세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Giuseppe Domenico Scarlatti).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 바로크에서 고전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특히 소나타 형식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 건반 소나타 K.183. 연주 Christian Zacharias.
1 생애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당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본좌 작곡가였던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매우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당대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교사들이었던 가에타노 그레코,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베르나르도 파스키니 등에게 하프시코드 연주법과 작곡, 이론, 화성법, 대위법을 배운 뒤 1701년에 나폴리 궁정 예배당 전속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다.
1704년에 아버지 알레산드로는 아들을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의 베네치아로 보내 음악적인 경험을 더 쌓도록 했는데, 이 시기 동안 초기 건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을 작곡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활동 양상이나 일화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이후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망명 왕실의 여왕 마리 카시미르의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고, 이 시기 동안 하프시코드 명연주자로 명성을 떨치면서 심지어 독일 출신의 동년배 라이벌 조지 프레드릭 헨델과 현피연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이 연주 대결은 그냥 높으신 분들의 여흥을 위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두 거장은 서로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남았다.
로마 부임기에는 건반 소나타 외에도 여왕이 운영하던 사설 극장을 위해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1715년부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영국 런던에서 자작 오페라를 상연하는 등 명망있는 작곡가로 입지를 굳혔고, 1719년 포르투갈 왕실에서 초빙 제의를 받고 성가대장을 사임한 뒤 리스본에서 당시 포르투갈 공주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바르바라의 전속 음악교사 겸 쳄발리스트로 활동했다.
1727~28년에는 잠시 로마로 돌아가 일하면서 첫 아내 마리아 카테리나 젠틸리와 결혼했고, 1729년에 다시 스페인의 세비야로 가 4년 동안 부임하면서 그 지방의 민속 춤곡인 플라멩코를 비롯한 스페인 전통 음악의 강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1733년에는 이전 고용주였고 1729년 스페인 왕세자와 결혼해 스페인 왕가의 일원이 된 바르바라 공주의 부름을 받고 왕실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고, 이후 평생 동안 직책을 유임하면서 수백 편에 이르는 건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1742년에 첫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스페인 여성인 아나스타시아 마하르티 히메네스와 재혼해 여생을 보냈고, 당대 본좌 카스트라토였던 파리넬리와 친교를 맺고 그를 위해 성악 작품들을 써주기도 했다. 1757년에 마드리드에서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산 노르베르토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2 주요 작품들
- 건반 소나타 555곡+α[1]
- K.1 L.366 (듣기) - 이보 포고렐리치
- K.25 L.481 (듣기)[2] - 미하일 플레트뇨프
- K.27 L.449 (듣기) - 에밀 길렐스
- K.30 L.499 "고양이 푸가" (듣기)
- 이 곡은 스카를라티의 애완 고양이가 건반을 밟고 지나가자 그 음들을 주제로 만든 푸가라고 알려져 있다(...).
판사님 제가 아니라 고양이가 쳤습니다다만 학계에서는 고양이 설은 그냥 근거없는 일화일 뿐이며, 실제로는 스카를라티가 자신의 대위법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무조에 가까운 주제를 설정해 작곡한 것이 이후 와전된 것으로 본다.
- 이 곡은 스카를라티의 애완 고양이가 건반을 밟고 지나가자 그 음들을 주제로 만든 푸가라고 알려져 있다(...).
- K.32 L.423 (듣기)
- K.96 L.465 "사냥" (듣기) - 조르주 치프라
- K.141 L.422 (듣기) - 마르타 아르헤리치
- K.380 L.23 (듣기)[3] - Vadim Chaimovich
- K.431 L.164 (듣기) - 트레버 피노크
- 신포니아 약 17곡
- 종교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살베 레지나 등)
3 창작 성향
여러 장르에 걸쳐 작품을 쓰기는 했지만, 당대 여느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중 출판된 곡은 1738년에 '30개의 연습곡(30 Essercizi)' 이라고 이름붙여 자가 출판한 30곡의 건반 소나타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극소수고 나머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악보가 이리저리 흩어지거나 소실되었다. 하지만 그 중 500곡을 넘는 엄청난 수의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들은 상당수가 살아남았고, 이후 1906년에 스카를라티와 동향인인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 알레산드로 롱고에 의해 처음 Longo/L. 번호로 정리되어 출판되었다.
다만 롱고의 연구에는 오류가 많아서, 이후 미국의 쳄발리스트 겸 음악학자 랄프 커크패트릭(1953. 약칭 K 혹은 Kk)과 이탈리아의 음악학자 조르조 페스텔리(1967. 약칭 P)에 의해 새로 번호가 매겨졌다. 현재 많이 쓰이는 번호 분류는 커크패트릭 번호다. 이후에도 계속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스카를라티 혹은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보가 발굴되고 있어서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는 대부분 단악장에 A-B 2부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은 도돌이표가 붙어 한 번씩 반복된다. 길이도 짧은 것은 불과 1분 정도, 길어 봐야 10분 내외일 정도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K.78이나 K.81, K.88~91처럼 바로크 춤곡을 섞은 모음곡이나 트리오 소나타 양식을 취한 다악장 곡들도 종종 있는데, 이 곡들은 건반악기 하나 외에 특정한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단성부 하나가 추가되어 있어서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나 리코더, 플루트 등의 관악기가 해당 성부를 건반 주자와 함께 연주한다.
이렇게 고전 이후의 소나타와 비교하면 얼핏 단순유치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향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음악 특유의 낭랑한 선율미가 녹아있는가 하면 당시 관행을 상당 부분 거스르는 대담한 조바꿈이나 화음 밖의 비화성음 중 하나인 강한 악센트의 아차카투라(Acciaccatura. 짧은 전타음), 기타의 라스게아도 주법을 연상시키는 불협화음의 강렬한 연속 난타,[4]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선법인 프리기아 선법의 도입 같은 (당시 기준의) 음악적인 파격이 더해진 곡도 상당히 많다.
이외에도 왼손과 오른손을 엇갈리게 하는 주법이나 한 음을 손가락만 바꿔가며 연타하는 주법 등 당시에는 매우 새롭고 또 어려운 연주 기교였지만 이후 건반악기 연주법 전반에 걸쳐 상용되는 여러 기교들도 선보이고 있어서, 피아노를 비롯해 건반악기 전반을 다루는 연주자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곡들이 많다. 특히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에게는 프랑수아 쿠프랭이나 쟝 필리프 라모 등의 모음곡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다만 워낙 곡 수가 많다 보니 바흐의 칸타타나 하이든의 교향곡처럼 전곡 연주나 녹음에 도전하는 이들은 아직도 거의 없는데, 1984~85년 동안 프랑스의 방송국인 라디오 프랑스에서 스카를라티 탄생 300주년 기념으로 미국 쳄발리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스콧 로스에게 위촉해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전곡이 녹음되었다. 이 녹음은 이후 프랑스 음반사 에라토에서 34장 분량의 CD로 발매되었고, 로스 이후에는 영국 쳄발리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리처드 레스터가 2001~06년까지 6년 동안 연속 제작한 전곡 녹음을 자국 음반사 님버스에서 출반했다. 레스터의 전집에는 롱고와 커크패트릭, 페스텔리가 발견 또는 분류하지 못한 미발표 소나타들의 녹음도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주 시절에 남긴 소나타들은 그 지역의 전통 음악 어법의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종종 기타 독주 혹은 2중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한다. 스카를라티 생전에 막 발명되어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 피아노인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는 시대연주 건반 주자들도 있고, 비교적 느린 템포의 곡은 하프시코드 대신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시대연주 이전에 이 곡을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시도도 상당히 자주 있었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의 본좌 피아니스트들이 명연을 남긴 바 있다. 특히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의 깔끔하고 투명한 음색의 연주는 많은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 독주곡인 소나타를 더 큰 편성의 협주곡으로 편곡하는 시도도 있었다. 스카를라티의 후배였던 영국 작곡가 찰스 애비슨(Charles Avison, 1709-1770)은 스카를라티의 음악을 자국에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동기로 적지 않은 건반 작품들을 다악장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들로 편곡했다. 대표적으로는 합주 협주곡 5번 같은 사례가 있다. #[5] 그리고... 스카를라티 역시 이 분의 연주자 학대급 마개조를 피할 수는 없었다.(…) ## 물론 바로크적인 악상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스카를라티가 자주 활용하던 주법과 악곡의 형태를 많이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건반 소나타의 넘사벽 인지도에는 못미치지만, 2차대전 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전 이전의 음악 연구에 힘입어 건반 소나타 이외의 작품들에 대한 리바이벌과 재평가도 진행되고 있다.- ↑ 이하의 목록은 그의 수많은 명작 중 극히 일부만 소개한 것이며,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카를라티 음악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청취자들이 많이 접하는 곡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 ↑ 단, K.32도 그렇지만, 바로크 시대의 건반 작품을 이처럼 낭만적인 접근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주자의 "이 곡에 가장 잘 어울리리라 생각되는" 해석일 뿐이다.
- ↑ 게임 문명 4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대면하면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원곡을 그대로 하프시코드와 기타로 연주한 것과 원곡을 기반으로 편곡한 것 세 종류가 있다. 편곡판의 소리는 하프시코드가 아니라 그리스 민속악기인 부주키에 가깝다.
- ↑ 특히 K.175 같은 경우 악보에 불협화음이 무슨 탑처럼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마디 25부터.
- ↑ 1악장은 직접 작곡. 2악장은 K.11, 3악장은 K.41, 4악장은 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