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곤잘레스

Luis Gonzalez. "루이스 곤살레스"라고 쓰기도 하며, 흔히 애칭삼아 루이곤조라고도 불리는 모양.

1 풀럼의 축구 선수

브라이언 루이스 참조.

2 전직 메이저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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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기 안타를 치고 환호하는 루이곤조

이름Luis Emilio Gonzalez
생년월일1967년 9월 3일
국적미국
출신지플로리다 주, 탬파[1]
포지션외야수 (주로 좌익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1988년 드래프트 4라운드
소속팀휴스턴 애스트로스 (1990-1995, 1997)
시카고 컵스 (1995-1996)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9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2006)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7)
플로리다 말린스 (2008)
200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제이슨 지암비
(뉴욕 양키스)
1999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안타왕
단테 비솃
(콜로라도 로키스)
루이스 곤잘레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영구결번
204251
루이스 곤잘레스재키 로빈슨랜디 존슨


전직 메이저리그 외야수. 흔히 루이곤조라 불린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BK" 김병현과 한솥밥을 먹을 때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2] 별명은 곤조 (Gonzo)[3]

2.1 현역 시절

2.1.1 안습한 시절

부모가 쿠바 망명객 출신으로[4]의 집권 이후 탬파 시의 서부에 있는 동네에서 자라, 토마스 제퍼슨 고교를 졸업했다. 이 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티노 마르티네즈. (아래 이야깃거리 참조) 그 후 사우스앨라배마 대학을 거쳐 1988년 드래프트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1990년 더블A에서 24홈런을 치고 시즌 후반에 빅리그로 콜업되었...지만 빅리그 울렁증에 시달렸는지 겨우 1할의 타율만을 기록한다. 하지만 1991년에는 시카고 컵스에 있던 그렉 매덕스를 상대로 한 경기 2홈런을 작렬하고, 50개의 장타 (2루타+3루타+홈런)를 치면서 애스트로스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심지어 한 경기에 5타점이나 먹는 영양사 노릇까지 도맡았...지만 시즌이 한창 달아오른 그 해 8월에 어깨 부상이 터지는 바람에 암흑기가 시작된다.

1992년에는 2할 4푼의 타율과 10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제대로 부진했으며, 1993년 3할대의 타율과 15개의 홈런을 기록한 뒤로, 1994년 ~ 1997년 4시즌 동안 고작 79타점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1995년 한때 컵스로 트레이드되기까지 했으나 1997년 FA 자격을 얻고 휴스턴으로 돌아온다.돌곤돌

그렇지만 돌아온 휴스턴에서 곤잘레스는 부진하기만 했고, 휴스턴은 밀접한 트레이드 관계를 맺고 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곤잘레스를 보내버린다. 그런데 곤잘레스는 디트로이트 때부터 오픈 스탠스 타격폼을 쓰기 시작했고, 그 덕인지 처음으로 20홈런을 넘겼을 뿐만 아니라 통산 1,000안타와 500타점을 디트로이트에서 기록하기도 했다. 게다가 같은 해 아내가 세 쌍둥이를 낳기까지 했으니, 디트로이트에서 성적이 좋아진 이유는 혹시 분유버프 때문은 아닐까? (...)

2.1.2 디백스에서 터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꼴트로이트 옆동네의 힘세고 강했던 탑리블랜드에게 묻히면서 꼴찌로 전락했고, 리빌딩의 하나로 카림 가르시아와 곤잘레스를 트레이드시켜 버린다.[5]

처음에 디백스는 곤잘레스를 뉴욕 메츠에서 데리고 온 버나드 길키와 좌익수 플래툰을 돌렸으나, 우익수 토니 워맥이 부상으로 폭망하자 길키를 우익수로 돌리면서 마침내 곤잘레스는 주전 좌익수 자리를 찾게 된다.

1999년 디백스는 우타자 약쟁이맷 윌리엄스-제이 벨스티브 핀리-루이스 곤잘레스가 터지면서 무려 100승을 거두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같은 해 곤잘레스는 30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고 3할 26홈런 111타점 (그리고 45개의 2루타)을 기록하며 올스타전에까지 출장하게 된다. 2000년에는 투수진이 패망했음에도 불구하고 3할 31홈런 114타점과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으며, 미일 슈퍼 게임에도 출장한다.

마침내 2001년에는 커리어하이를 찍는데, 시즌 초반부터 약쟁이 신이 된 배리 본즈, 새미 소사와 홈런 레이스를 벌이며 57홈런 142타점을 기록한다! 오오 곤조신 오오.. 게다가 이 해에 디백스는 랜디 존슨커트 실링의 활약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월드시리즈 진출에도 성공한다.

그리고 그 상대는 뉴욕 양키스. 하지만 디백스는 존슨-실링과 마무리 김병현의 활약, 그리고 7차전에서 곤잘레스가 터뜨린 끝내기 안타로 (그리고 그 상대는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2.1.3 부진과 은퇴

곤조는 2002년과 2003년에도 25홈런을 넘기며 활약했지만, 세월이 따라주지를 않아 2004년부터 부진을 거듭하더니, 포풍현질의 부작용으로 재정적으로 흔들리던 디백스는 결국 2006년 곤잘레스를 놓아주기에 이른다. 왜냐면 우린 하얗게 불태웠거든... 그 후 다저스와 말린스를 전전하다 2008년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통산성적은 2할8푼3리의 타율에2591안타 354홈런 128도루[6]

여담으로 디백스에서 옵션이 거절되어 홈경기에 들어선 마지막 날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김병현이 당시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발투수였고 그날 김병현은 신발끈을 고쳐묶으면서 디백스의 레전드가 기립박수를 받는 시간을 오래 갖게 해준바 있다.

2.2 이야깃거리

  • 피트 로즈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2001년 4월 한 달에 13홈런이나 치는 타이 기록을 세우자, 로즈가 루이곤조한테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 위에서도 밝혔듯, 티노 마르티네즈와는 죽마고우 사이이다.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는 루이곤조가 디백스 소속으로, 마르티네즈가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나와, 친구의 대결이라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티노 마르티네즈와 미겔 바티스타과 빈볼 시비 때문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때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 친구를 말렸다. 오프 시즌에는 가족끼리 밥도 함께 먹을 만큼 절친이고 티노가 처음 내셔널리그로 왔을 때 조언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 실력 만큼이나 팀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리더 스타일이다. 민훈기 기자는 "빅리그를 취재하면서 만난 많은 선수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인간적으로 괜찮았던 선수가 루이스 곤잘레스였습니다. 과거 김병현을 가끔 취재하러 가면 늘 친절한 미소와 호의를 보였던 그에 대한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안타 직후, 그에게 수많은 선수들이 몰려와 끌어안고 환호하는 와중에, 루이곤조는 누군가를 찾아서 두리번 거리며 돌아다니다 발견하고 힘껏 안아주는데..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김병현 선수였다. 2001년 월드시리즈 DVD에도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BK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모든 한국인이 지켜보고 있어.'라고 활짝 웃으며 격려하는 모습이 나온다.
  • 2002년 시즌 시작을 앞둔 인터뷰에서 디백스 라커룸에는 주로 크리드와 같은 미국 락밴드의 음악을 틀고 있는데, BK가 한국 음악을 가져오면 틀어줄 거라고 답했다. 본인도 한국 음악이 궁금했던 모양.
  • 단점이 지적되면 본인이 이를 커버하려 노력하는 성실한 스타일. 오픈 스탠스이면 장타를 쳐내는데 불리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을 늘려 손목힘을 강화, 20홈런 이상 꾸준히 쳐주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외야 송구의 스피드나 파워는 부족한 편인데 타격 실력이 좋아지면서 외야수 출장 회수가 많아지자,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한 홈 송구로 주자를 아웃시키는 장면이 자주 잡혔다.
  • 2011년 피닉스에서 열린 올스타 전야 퓨처스게임에서 월드팀 (그러니까, 해외 출신으로 입단했거나, 히스패닉/아시안계 등등인 선수들로 모인 팀)의 감독을 맡았는데, 미국팀의 감독을 맡은 마이크 피아자가 영어로 유창하게 영어식 선수 이름들을 달달 읽어내고 윙크까지 날리는 동안 우리의 곤조는 생소한 중국계 이름, 히스패닉계 이름 (쿠바계이긴 하지만 루이곤조는 일단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니깐..), 한국 선수 이름을 읽으나 생고생을 했다.
  • 피닉스의 체이스 필드가 타자친화구장이긴 하지만, 디백스에서 터진 엄청난 장타력에 사실은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의 힘이 작용했다, 하는 설이 돌고 있다. 안 그래도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 (심지어 동료 빅유닛핵이빨 골쑤 공화당원도...) 호프집에서 후보로 버틸 수 있을까 말까 한 애매한 상황에서, 약을 한 게 사실인 것으로 밝혀진다면...게다가 약물 복용으로 퇴출된 팀메이트 제이슨 그림즐리가 루이곤조를 한 패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곤조 본인은 강경하게 부정하고 있다. 루이곤조의 약물설은 그다지 무게가 실리지 않는데 근육 벌크업이 두드러지진 않았기 때문. 그의 홈런 치는 스타일 자체가 오픈 스탠스를 이용하여 몸을 빠르게 회전, 배트에 공이 맞는 임팩트 순간에 힘을 집중시키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국내 팬들이 루이곤조를 보면서 '일견 호리호리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홈런을 쳐내는 걸까' 궁금해 했을 만큼 체형 변화가 심하지 않았다.

3 일본프로야구 소속 야구 선수

한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내야수를 보았던 모양이지만, 위의 루이곤조랑 동명이인인지라 상대적으로 묻혔다. 이쪽은 오른손잡이. 이승엽과 함께 뛰긴 했지만 이승엽도 이 시기에는 부진했던지라... 그 후 2008년 방출되어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했지만 몇년 째 소식이 없다. 추가바람.
  1. 플로리다가 워낙 따뜻한 지방이다보니 스프링 캠프도 플로리다의 탬파나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아니면 애리조나라든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이너리그 팀들도 탬파를 중심으로 몰려 있고. 그래서인지 탬파 출신이거나 탬파에서 야구를 배운 선수들이 꽤 많다. 스티브 가비 (LA 다저스),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웨이드 보그스 (탬파베이 레이스), 게리 셰필드 (저니맨), 프레드 맥그리프 (역시 저니맨), 티노 마르티네즈 (뉴욕 양키스), 루 피넬라 (전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 토니 라루사 (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등등...도저히 셀 수가 없이 많다!
  2. 2001년 월드시리즈 당시 홈런을 맞고 주저앉은 BK를 마크 그레이스가 얼른 가서 일으켜주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달리 고참이 많았던 디백스에서 김병현은 여러 모로 챙겨주고픈 막둥이 포지션이었다. 김병현이 타석에서 활약하자 커트 실링이 배트를 쿠킹호일로 말아 김병현에게 실버 슬러거 트로피를 만들어준 것도 유명한 일. 월드시리즈 DVD에도 고참 선수들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병현 킴에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라며 활짝 웃으며 인터뷰할 때 김병현이 우승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삽입하기도 했다.
  3. 곤조는 흔히 곤잘레스의 애칭으로 자주 쓰이며, MLB에서 가장 유명한 곤조는 MVP출신 거포 약쟁이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였으나, 혹자는 구분을 위해 후안곤조/루이곤조라고 나누기도 한다. 후안 곤잘레스는 다른 닉네임인 이고르를 쓰기도 하고.
  4. 따...딱히 쿠바 사람들이 흑화되어버린 독재자 풀겐치오 바티스타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혁명으로 집권한 카스트로도 만만치않게 자유주의자들을 갈궈댔다. 아마 곤조의 아버지도 카스트로가 싫어서 미국으로 왔을지도..
  5. 그리고 곤잘레스 대신 데려온 그렉 제퍼리스는... 그리고 호랑이네는 멸망했다.
  6. 출루율 0.367 장타율 0.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