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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
이름 | 링고 스타 RINGO STARR |
분야 | 음악 |
입성날짜 | 2010년 2월 8일 |
위치 | 1752 Vine Street |
MBE | |
이름 | 링고 스타(Ringo Starr) |
본명 | 리처드 스타키(Richard Starkey) |
생년월일 | 1940년 7월 7일 |
평화와 사랑을!(Peace and Love)[1]
1 개요
전설의 Fab3(레논, 폴, 조지)에 가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지만, 당당히 비틀즈의 한 축을 이루었던 대인배
비틀즈의 드러머(Drummer)고리(link)
--비틀즈의 메트로놈 링고는 팬들 사이에서도 종종 애정어린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아무도 그가 비틀즈에 끼친 영향을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비틀즈의 뿌리이자 연결고리. 사실상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던 비틀즈의 해체를 그나마 막아온 사람이다.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Richard Starkey)로, 링고 스타는 예명이다.
2 경력
2.1 비틀즈 이전의 링고 스타
리버풀의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링고 스타가 아주 어릴적에 집을 떠났고, 결국 편모가정에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어린시절에는 건강이 안 좋아서,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전이되는가 하면 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꽤 오래 입원하는 동안 기타를 배웠고 간단한 드럼 연주도 배웠다고 한다. 13세가 될 무렵 어머니 엘지 스타키는 해리 그레이브스라는 런던 출신 남자와 결혼했고, 해리는 링고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해리도 당시 빅 밴드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린 링고에게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링고 스타가 살던 리버풀의 딩글 지역은 험한 노동자 동네였기 때문에 범죄도 빈번했고 분위기도 살벌했다고 한다. 링고 스타는 이 시기에 테디 보이 패션을 하고 다녔는데, 이유는 단 한가지, "얕보였다간 큰일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리버풀의 많은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살벌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링고는 철도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여객선의 웨이터로 근무하기도 했다. 다만 여객선 웨이터 일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배에서 일을 하다가 해군에 징집될 것이 두려워서였다.[2] 여튼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직장에서 알게된 친구와 함께 스키플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해리 그레이브스는 1957년 크리스마스에 링고에게 중고 드럼세트를 선물하게 되고, 이후 링고의 음악 취향은 미국의 로큰롤로 바뀌게 된다. 이때는 아직 로큰롤이 영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기 전이었다.
1959년 그는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즈(Rory Storm and Hurricanes)'의 드러머가 되었고 이때 즈음해서 '링고 스타'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1960년경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즈는 리버풀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로 성장했고 함부르크 공연에서 토니 셰리던과 비틀즈를 처음 만나게 된다. 평소 자신들과 마찰이 잦았던 피트 베스트를 못마땅해하고 있던 비틀즈 멤버들은[3] 나이도 많고 성격도 좋은 링고에게 밴드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고 토니 셰리던도 링고에게 더 나은 밴드에서 활동하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링고가 비틀즈에 합류하기 까지는 꽤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즈는 로컬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였고, 비틀즈는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즈보다 한참 낮은 페이를 받는 풋내기들이었다. 게다가 링고 스타는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즈의 스테이지 수입으로 (비록 악기 운반때문에 장만한 싸구려 자동차이긴 해도 ) 이미 차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충분히 먹고 살 수준이었고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교적 나이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링고는 비틀즈의 제안을 수락하여 피트 베스트의 자리를 대신해 영입되었다. 그리고 비록 비틀즈 1집 때까지도 전문 세션 드러머인 앤디 화이트가 대신 드럼을 치는 등 자리를 위협받았고 공연 때 돌까지 맞는 등 초기 멤버로 인정받기까지는 험한 길을 걸었지만 비틀즈 역사 마지막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2.2 비틀즈 시절
비틀즈 초창기 아이돌 시절의 링고스타. |
초기의 음악 활동은 거의 없으나, 비틀즈는 아이돌이었으므로 링고 스타는 귀여워서 소녀팬들이 가장 많았다. 비틀즈가 주연한 영화 '헬프!'를 비롯해 비틀즈 주연의 여러영화에서 링고 스타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5] 그러나 왠지 동명의 곡 연주 때는 우산받이가 되었다... 귀...귀여워!
중기 이후에는 몇 번 보컬을 맡았는데,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음색이다. 'I wanna be your man' 'What Goes On',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 'Yellow Submarine', 'Good Night' 등에서 대신 보컬을 맡았으며, 특히 'Yellow Submarine'은 아이들에게까지 반응이 무척 좋아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비틀즈 후기에는 2곡을 작곡했다. 더 비틀즈의 'Don't Pass Me By'와 애비 로드의 'Octopus's Garden'은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편하게 듣기 좋다. 이 때 조지 해리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3 비틀즈 이후의 링고 스타
비틀즈 해체 이후에도 비틀즈 활동 초기의 "돈 벌면 미용실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발언과는 달리 음악 활동을 계속했으며, 직접 작곡한 'It Don't Come Easy 똥컴이지','Photograph', 'Back off Boogaloo'[6] 등의 곡이 호평을 받았다.[7] 여담이지만 그의 음반에는 비틀즈 해체 이후 비틀즈 멤버가 모두 참여하기도 했고, 수많은 스타들이 그의 음반에 피처링을 해주는 등 인간 관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링고 스타의 작곡 실력이 절정에 달했을 시절의 앨범은 1973년작 "Ringo"로, 모든 비틀즈 멤버들이 참여해준 앨범이기도 하다. 링고의 인맥이 빛을 발한 또다른 앨범은 1974년작인 "Goodnight Vienna". 이 때 정점을 찍고서 이후의 싱글들은 잘 팔리긴 하지만, 차트 상위권은 아닌 정도의 성과를 냈다. 1981년작 Stop and Smell the Roses도 조지 해리슨과 폴 매카트니의 도움으로 음악적 완성도가 꽤 높다.
1980년대에는 상업적 실패들을 연이어 맛보게 된다. Old Wave 앨범 즈음에는 완전히 망했어요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9년만에 발표한 앨범 Time Takes Time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음악적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고, 투어를 중심으로 간간히 앨범을 발매하는 형식으로 활동을 진행하였다.
중간에 영화 활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한때 알콜 중독에 빠지기도 했지만 현재는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2년 간격으로 꾸준히 새 앨범들을 내주며, 자신의 밴드인 "All-Starr Band"를 이끌며 활발히 투어도 진행중.
3 드러머로서의 링고 스타
어째 한국에서는 드러머로서 별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록 드럼의 기본을 정리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링고 스타 이후에 비로소 록 드럼이라는 것이 정리되었다. 기본 비트에 충실하고 절제된 필인으로 곡 자체의 흐름을 잘 타는, 소위 말하는 밸런스가 잘 정리되어있는 드러머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링고 스타가 테크니션이자 뮤지션으로서 잘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테크니션에 맞춰져 있는 한국밴드의 관념 때문이다. 달리 말해, 존 본햄이나 진저 베이커는 평가하면서, 롤링스톤즈의 찰리 와츠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8] 덜 화려해 보이는 펑크 록이나 뉴웨이브 뮤지션들이 저평가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틀즈가 한낱 아이돌 취급받는 한국의 상황도 문제일 것이다
거기에 링고가 평가 절하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폴의 드럼 연주 실력 때문이다. Back in the USSR 같은 노래에서는 폴이 드럼을 쳤는데 링고에 전혀 꿀리지 않는 실력을 뽐내는 바람에...[9] 이는 정말로 링고 잘못이 아니라 폴이 사기캐릭터인 것이다. 사실 비틀즈에 관한 논란의 대부분이 존과 폴의 말도 안 되는 능력 때문.
링고 스타의 드러밍의 특징은 언제나 탄탄한 기본기였다. 사실 당시 록 뮤지션들 중에 전문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고, 대중음악은 언제나 "많이 배우지 못한" 뮤지션들의 무대였다. 하지만 링고 스타는 그러한 시절에도 상당히 기본기를 잘 쌓은 드러머로서 정확한 박자감각을 잘 유지했다고 한다. 항상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곡을 잘 채우는 드러머로 평가된다. 어째 성격따라 가는거 같다
링고 스타는 항상 루딕(Ludwig) 드럼 세트를 사용했는데, 초기에는 잠시 프리미어 드럼 세트도 사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루딕을 선호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당시의 드러머들이 그러하듯, 초기에는 베이스 드럼의 구경이 20인치의 작은 것이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커져서 22인치를 사용한다.[10] 링고 스타의 드럼세트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곳
4 여담
어린시절에는 건강이 너무 나빠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해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그나마 심적으로 의존했던 일렉기타와 드럼이 링고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팬이었던 여성과 결혼했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이혼했다[11]. 이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본드걸이었던 바버라 바크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링고가 마흔, 바버라가 서른 넷이었다.
존은 비틀즈의 영혼이었고, 조지는 비틀즈의 정신이었으며, 폴은 비틀즈의 심장이었고, 링고는 비틀즈의 드러머였다.(...) (세계팝대사전 비틀즈 항목) |
허나 링고 스타가 없었으면 비틀즈는 전설을 완성하기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이라는 세 명의 괴물 사이에서 왠지 모르게 안습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 Help! 영상에서의 우산받이 링고도 그렇고, 1971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언급도 안 됐다...호머 심슨이 '됐어! 그래, 난 필요없는 존재야! 비틀즈로 치면 링고 스타 같은 존재라고!'라는 대사를 치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해당 에피소드를 봤는데 저 대사가 나오는 부분에서 호쾌하게 웃더니 '저런 소리 20년도 넘게 들어왔는데 이제와서 뭘'이라는 대인배스러운 성격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500일의 썸머에서도 이 같은 발언이 나오는데 작중 조이 데이셔넬이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이유가 아무도 안 좋아해서..지못미.
사실 링고 형님은 2000년대 들어 2년 간격으로 꾸준히 정규 앨범을 내주고 계신다. 폴 매카트니는 텀이 4~5년으로 꽤 길다. 하지만 이걸로 폴을 깔 수도 없는 게 폴은 중간에 '파이어맨(Fireman)'이란 이름으로 일렉트로니카 앨범을 내기도 했으며, 라이브 음반까지 따지면 링고 스타보다 더 자주 음반을 냈다. 나이 많이 먹은 레전드 팝 스타는 대부분 신보 안 내고 과거 곡으로 순회 공연 다니면서 간지나게 산다. 이 경우는 링고 스타의 창작 활동이 특출나게 부지런한 편. 또한 링고 스타 신보에는 폴 매카트니가 피처링한 곡도 있다.
하지만 주름살 때문에 상당히 많이 나이들어 보이는 폴 매카트니와는 달리[12] 검은 머리, 구레나룻, 수염, 선글라스 등으로 호쾌한 외모를 계속 갖추고 있다. 외모의 특징은 그 거대한 코로써, A Hard Day's Night 등의 시절부터 이미 그 코로 놀림을 받았다.
이름 덕분에 일본 사과 음료 광고에도 출연했다. 그의 이름인 '링고'는 일본어로 '사과'라는 뜻이고, '스타'와 발음이 비슷한 '슷타'는 '갈았다'라는 뜻. 그러니까 '사과를 갈았다'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 잭 스타키는 더 후 등의 밴드에서 객원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아시스의 객원 드러머로도 활동한 바 있다. 두 밴드 다 스타키에게 정식으로 가입하라고 제안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 실력도 뛰어난 축이다.
세 명의 굇수들 사이에 있다보면 질투심에 당장 때려치웠을텐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세 명과 친하게 잘 지낸 대인배. 혹자는 링고덕분에 비틀즈가 10년 가까이 갔다는 말을 할 정도.[13][14] 심지어 그룹 해체 후 따로따로 떨어졌을 때도 멤버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그들 사이의 다툼을 조정했다.[15]
비틀즈 화이트 앨범에 실린 "Helter Skelter" 끝나기 직전에 링고 스타의 외마디 절규를 들을 수 있다(스테레오 앨범 기준). "I got blisters on my fingers! (손가락에 물집 났어)" ~~별로 어려운 연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발매된 곡이 4분 내외 정도라 그렇지 실제 녹음은 30분 내외로 연속해서 세 태이크나 녹음되었다. 즉 한 곡을 논스톱으로 1시간 30분 가까이 연주한 것. 그러니 물집 나는 게 당연하다. 인터뷰를 들어보면 총 3시간 연속으로 드럼을 치고 있었던 듯.
과거 팬들이 보내는 팬레터에 사인 답장을 거의 다 해줬으나 2008년 10월 20일부터는 길거리 사인조차도 더 이상 안해주고있다. 이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림으로서 알렸는데, 영상의 대략적인 내용이 "너무 바쁘니까 제발 그만 좀 보내달라. 이제부터 오는 팬레터는 죄다 쓰레기통에 버릴거다" 라는 내용이라 비난을 좀 받았다. 영상
한동안 링고의 앨범은 하나도 문서화되지 않았다. 제일 명반으로 꼽히는 Ringo 앨범마저 문서화된 것은 2013년 1월이었다. 그 사이에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모든 정규 앨범 문서 작성이 완료되어 음반 목록 문서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위키니트의 근성(...)으로 2013년 5월 23일, 드디어 링고 스타의 2012년 앨범 Ringo 2012 문서 작성을 끝으로 링고 스타의 모든 정규 앨범도 문서화되어 음반 목록 문서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나무위키로 넘어오면서 나무위키 음악 프로젝트에서 음반들을 분류에 넣을때 가장 먼저 모든 솔로 앨범이 분류되었다.
링고 스타도 빌보드 Hot 100위 안에 든 곡이 4곡 있다. You're Sixteen(1위), Photograph(1위). Only You(6위), Snokeroo(3위). 참고로 비틀즈는 4명 모두 해체 후 빌보드 Hot 100 1위에 한 번씩은 올라봤다.
2015년 3월 새 앨범을 발표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함으로서 비틀즈 멤버 모두 개인으로서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16년 11월 내한공연 확정 기사가 떴다! #
그에 앞서 11월 3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생방송으로 출연한다.#
5 디스코그래피
- 링고 스타/음반 목록 참고.
- ↑ 링고의 말버릇.유투브 인사영상이나 트위터에서 많이 쓴다.
- ↑ 당시 영국은 아직 징병제가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배에서 일한 경력이라거나 특정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특정 병과나 군으로 배치될 수 있었다.
- ↑ 피트 베스트는 다른 멤버들이 모두 머리를 내릴 때 본인만 올림 머리를 유지했고 조지 해리슨과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조지는 실제로 링고의 밴드 가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피트가 밴드에서 쫒겨나자 분노한 피트 빠순이들에게 링고 영입의 주범으로 주목되어 계란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조지와 링고의 친한 사이는 비틀즈 해체 후까지 이어져 조지가 링고에게 곡을 써주기도 하였다.
- ↑ 정작 나이로 따지면 존 레논과 동갑으로 레논보다 생일이 빨라서 최고령이었다.
사실 제일 늦게 들어왔으니 연공서열로 따지면 막내 맞다. - ↑ 링고 스타가 비틀즈 멤버들 중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도 사실.
- ↑ 이 곡을 잘 들어보면 30년 뒤에 프란츠 퍼디난드가 발표한 Take Me Out과 매우 흡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 그런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코드는 3개 뿐이라고...조지 해리슨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 이는 상대적으로 1960년대 이전의 뮤지션들에 대한 평가가 박한 한국의 흐름도 관련이 있는듯 하다. 사실 연주해보면 알겠지만, 악기를 절제해서 적재 적소에 노트를 쏙쏙 박아넣어가며 치는것이 더욱 어렵다. 이러한 연주는 헤비메탈의 속주연주 도래 이전까지는 오히려 더 중요한 척도였다.
고놈의 속주 좀 고만해 미친놈들아 - ↑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 경은 폴이 링고보다 롤주법을 더 잘 연주한다고 평가했다. 당시 링고가 드럼을 안 친 것도 폴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 ↑ 사실 대부분의 록 드러머들이 60년대 중반까지는 재즈나 블루스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드럼과 별 다를바 없이 작은 드럼 세트를 사용했다.
- ↑ 그 여러가지 문제중 가장 압권은 조지 해리슨과 바람이 났다라는 것이지만, 그 당시 조지 해리슨도 유부남으로 자기 아내는 내버려두고 있었고, 여기에 또 엮이는게 에릭 클랩튼. 락계를 빛낸 비틀즈, 크림, 롤링스톤즈 등은 여자문제가 얽혀있다. 록스타들 바람나는 이야기가 요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거다.
- ↑ 정작 나이는 본인이 더 많다.
- ↑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 경은 링고 스타가 없었다면 비틀즈는 1집만 내고 해체했을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 천재형 굇수들만 모인 팀은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최초의 슈퍼트리오 크림(밴드)부터 증명된 사실이다. 견해차이로 라이브 한번, 앨범 한장으로 끝나는게 보통이다.
그럼 20년 넘은 포플레이는? - ↑ 사례로 비틀즈 해체 직후 폴과 존이 서로를 디스해가며 싸워댔는데, 링고가 나서서 이들을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