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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cheism
1 개요
유대교, 영지주의 크리스트교, 조로아스터교에다가 지역에 따라선 불교까지 복합으로 짬뽕해 생긴 이란 출신의 종교. 창시자인 마니(Mani)[1]의 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한다. 많이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하긴 종교를 많이 짬뽕시켰으니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다만. 마니가 마니마니 섞어만든 마니교 참고로 마니아(Mania)란 말이 이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짬뽕 종교라는 점에서 시크교를 떠올려 볼 수 있다.
2 역사
마니가 서기 216년 오늘날의 이라크 영토인 크테시폰에서 태어나 12살 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에게 새로운 종교를 만들라는 계시를 받고 25살 때부터 자신이 살던 제국 파르티아 주요한 종교였던 조로아스터를 비롯해 중동 각지에 퍼져 있던 크리스트교와 유대교의 교리를 짬뽕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니교를 창시한다. 241년에 마니가 교리를 전파하러 인도 지역으로 떠나 여행하면서 불교와 자이나교를 많이 접하게 되고, 또 이를 마니교 교리에 흡수(!)하여 마니교 교리를 완성시켰다. 레알 짬뽕의 대가
3 특징
최대 특징은 조로아스터교를 넘어서는 극한의 이원성으로, 조로아스터교 때부터 강조되던 선악의 대립을 넘어서 육체와 영혼의 대립까지 교리에 포함하니 철저한 자기 단속과 철저한 구원론을 한 성격으로 포함하게 되었다. 예컨대 마니교 교리 중에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을 파괴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있다. 우상이라면 환장하는 유일신교가 싫어할 만하다 이 말에 따라서 마니교 교리대로라면 목욕해서도 안 되고(목욕하면서 물의 형상을 파괴하기 때문), 땅에 농사해서도 안 된다(경작할 때 흙의 형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이 원칙을 그대로 지킬 때 마니교도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엄격하다는 자이나교의 교리가 겨우(?) '생명을 파괴하지 말라'인데도 상업 정도 외에 제대로 발 붙일 업종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흠좀무. 그래서 마니교에서는 성직자들에게는 이런 원칙을 최대한 요구하고 평신도는 조금 널널하게 풀어 주는 대신 자기들이 왕이 되어 갖은 재물과 음식을 가져다 바치도록 평신도층이 성직자들을 먹여살리는 의무를 지도록 했다.[2] 또한 식생활에서는 채식, 특히 과일을 요구했다. 마니교 최대 축일인 마니가 순교한 날에도 과일을 먹었다.
또 다른 특징은 그 막장 같은 짬뽕성. 창조 설화부터가 유대교, 크리스트교, 조로아스터교에 등장하는 신들을 마구마구 버무린 환상스러운 구성을 자랑하니 여타 종교에서 핍박받을 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마니교도는 비밀 종교집단 일종으로 자신들끼리만 접촉하면서 살았는데 이것도 권력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앙 무대로는 거의 올라오지 못한 채 반정부다운 민간 종교(선악 구도가 크게 작용하므로)로만 역사에서 존속하였다.
마니교의 세계관은 당대 유대교와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 신화를 모두 합쳐 재구성했으므로 매우 복잡하고 방대하다. 아주 체계 있고 복잡하다.
4 교리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적 선악 구도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에서 '어찌되었든 믿으라'는 어조와는 달리, 마니교는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종교인 중에서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등의 파급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성경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내용으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마니교는 금욕주의를 강조하기도 해서, 마니교의 고위 성직자는 독신으로 산다.
마니교의 '마니'는 신의 최후의 예언자로서 신을 믿는 종교다. 따라서, 기독교와 같이 예수를 인정한다. 이렇게 신을 믿고, 예수; 부처; 조로아스터 등을 과거의 예언자로 이해했다. '마니'는 빛의 예언자라고 불리며, 빛을 선한 개념으로 여겼다. 이러한 빛과 어둠의 대립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빌려왔다.
게다가 마니교는 보편 종교로서의 역할을 자처했다. 기존의 종교가 타민족이나 타종교인을 박해하기 바빴던 것과는 달리 매우 평화적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 매력적인 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특한 점은 '영지주의'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수행을 하거나, 돈을 내거나, 선행을 하거나 하는 등 일상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을 행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달랐다. 마니교에서는 '지식'을 쌓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인간의 타락을 막아주고 빛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악이란 절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보았다.
5 영향
이렇듯 창시자이자 교주였던 마니가 불에 타 순교당해 죽은 후 주류로서 인정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종교로 그 역사 자체가 피압의 역사라 할 종교이나 이란을 벗어난 국외에서는 민간에서나마 크게 유행해 동서 종교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었다.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 인도, 중국, 한국에 이르기 까지 사실 상 구대륙 전체를 휩쓴 종교다. 중세 시대의 전파력 치고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 어떤 메이저 종교보다 파급력은 더 앞서나갔다.
서방로는 2세기 이후에 로마 제국에서 상당 기간 융성하고서 크리스트교 교부로서 추앙되는 아우구스티누스도 한때 마니교 신자였을 정도. 그 후에도 선악을 극단으로 강조하고 구원을 중시하는 중세의 이단 교파는 대개 마니교에 많이 영향받았는데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것이 11세기·12세기 알비 카타르파.
동방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뻗어나간 후 민간 신앙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먼저 위구르 제국을 위시해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잠시 국교로 정해졌던 적이 있다. 중국식 마니교는 당나라 9세기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북송 말에 강남에서 반란한 방랍의 집단에 채식주의자로 마귀를 섬긴다는 끽채사마교 신자가 포함됐던 일변으로 마니교는 미륵 신앙과 합해지면서 소위 명교, 혹은 백련교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15세기 후 마니교도는 소멸했으나 백련교도는 19세기까지 청을 괴롭힐 정도로 크게 융성한 바 있었다.
6 기타
아랍에서 보는 십자군으로 유명한 작가 아민 말루프는 <마니>라는 소설을 썼는데 말루프 자신이 레바논 태생 무슬림 출신(프랑스에서 거주중)이지만 마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다만 비난도 했지만 서문에서는 다양한 종교 장점을 넣으며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을 넣기도 했다. 사실 이 사람은 종교 연구도 하면서 데바닷타(국내에도 정발됨)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에서 데바닷타에 대하여 좀 좋은 면도 있다고 봤으나. 광신적인 한계로 가서 스스로 파멸하니 안타깝다고 결국 결말이나 그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문에서 패자이기에 더더욱 기록에서 불리하게, 왜곡되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쓸 정도로 다양한 종교에 대하여 연구하고 소설을 쓰며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실제 마니교와는 상관없지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주 이름이 이만희라서 그 종교가 마니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백괴사전에서 마니교는 이쪽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