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

이 문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생긴 의견 충돌로 이 문서의 토론방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수정을 원하는 사용자는 이 토론 에서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문서에서 토론하고 있는 부분을 토론 합의 없이 수정 시 문서 훼손으로 간주되어 차단될 수 있습니다.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클럽별 감독
50px45px50px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레스터)
위르겐 클롭
(리버풀)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주제 무리뉴
(맨유)
45px40px50px
스티브 애그뉴
(미들즈브러)
션 다이크
(번리)
에디 하우
(본머스)
클로드 퓌엘
(사우스햄튼)
65px50px50px50px
데이비드 모예스
(선덜랜드)
폴 클레멘트
(스완지)
마크 휴즈
(스토크)
아르센 벵거
(아스날)
50px50px40px
로날드 쿠만
(에버튼)
발테르 마차리
(왓포드)
토니 풀리스
(웨스트 브롬)
슬라벤 빌리치
(웨스트 햄)
50px45px30px
안토니오 콘테
(첼시)
샘 알라다이스
(크리스탈 팰리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마르코 실바
()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게오르게 포페스쿠
(1996~1997)
페프 과르디올라
(1997~2001)
세르지 바르주안
(2001~2002)
FC 바르셀로나 역대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
(2003~2008)
페프 과르디올라
(2008~2012)
티토 빌라노바
(2012~2013)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감독
유프 하인케스
(2011~2013)
페프 과르디올라
(2013~2016)
카를로 안첼로티
(2016~ )
맨체스터 시티 FC 역대 감독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3~2016)
페프 과르디올라
(2016~)
(현임)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주제프 "페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1]
(Josep "Pep" Guardiola i Sala)
생년월일1971년 1월 18일
국적스페인
출신지카탈루냐 산트페도르
신체 조건183cm, 76kg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소속선수FC 바르셀로나 B (1990-1992)
FC 바르셀로나 (1990-2001)
브레시아 칼치오 (2001-2002)
AS 로마 (2002-2003)
브레시아 칼치오 (2003)
알 아흘리 도하 (2003-2005)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2005-2006)
감독FC 바르셀로나 B (2007-2008)
FC 바르셀로나 (2008-2012)
FC 바이에른 뮌헨 (2013-2016)
맨체스터 시티 FC (2016-)
국가 대표47경기, 5골

1 개요

현대 축구가 만들어낸 최고의 전술가.

세계 최초로 클럽 축구 단일 시즌 6관왕을 달성한 유일한 축구 감독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감독으로, 페프(Pep)[2]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현재 맨체스터 시티 FC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바에 힘입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감독으로서도 훌륭했는데, 자신의 친정 팀인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아서 첫 시즌부터 엄청난 우승 행진을 벌였고 FC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리그 3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70%가 넘는 승률을 자랑하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2 선수 생활

width=100%
1992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3]FC 바르셀로나 선수 시절

2.1 리그 경력

53210883-7557-44b7-b21e-1cda8f962008.jpg
비록 원 클럽 맨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바르사 성골 중의 성골이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카탈루냐 출생으로, 외국인과 바스크 선수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팀의 몇 안 되는 카탈루냐 출신 선수였다. 당연하겠지만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팀에서 성장했고, 1990년 12월 16일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요한 크루이프의 지휘 아래에서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팀에게 여섯 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안겼다.

당연히 뼛속까지 카탈루냐인이었기 때문에 FC 바르셀로나에서 인기는 엄청났다. 스페인 국대와 카탈루냐 대표를 동시에 뛰기도 했다.

그러나 펩의 선수 시절 말년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약물 복용 의혹과, 외지의 클럽 저니맨을 '좋은 말년'이라 하기는 힘들 것이다. 펩은 FC 바르셀로나에서 정신적 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꼬박 11시즌[4]을 뛰고 이적한다. 이때 펩의 나이는 고작 30세였고, 유리몸이라는 단점 때문에 일찍 노쇠했다는 평은 있었지만 '퇴물'이나 '흘러간 레전드' 같은 수식어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에는 한참 젊은 나이였다.

그 이후의 행보가 특히 의혹 투성이인데, 그가 카탈루냐를 떠나 선택한 클럽부터가 다소 의외였다. 그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하려 하자 뉴캐슬, 맨유, 웨스트햄, 토트넘, 리버풀, AC 밀란, 인테르에서 링크가 떴다. 30세로 나이는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빅 클럽에서 뛰기에는 무리가 없는 선수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전술을 배워 보고 싶다는 마음에 세리에행을 선택한다. 이때 그가 이적한 클럽이 브레시아 칼초이다. 브레시아 칼초는 그 전 시즌 승격해 로베르토 바조의 활약으로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세리에 A 7위를 거뒀다. 펩이 브레시아에서 뛴 것은 01-02 한 시즌 뿐인데, 브레시아는 이때 14위를 하게 된다. 펩은 다시 세리에 내에서 AS 로마로 이적한다. 00-01 우승, 01-02 준우승을 했던 명문 로마는, 펩이 온 02-03 시즌에 8위로 추락하게 된다.

사실 펩은 브레시아에서 실질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그는 01-02 전반기를 마친 뒤인 2002년 1월 약물 복용으로 기소되어 4개월간 출전 금지를 당한다. 이에 대해 펩은 바르셀로나 B팀 감독이 된 후 항소했지만, 항소에서도 그의 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되었다. 결국 그가 바르셀로나 A팀 감독이 된 후에야 의혹이 무죄 처리되었다. 선수 시절의 약물 복용 문제가, 상식적으로 너무나 긴 시간인 무려 7년 6개월이 지나 바르셀로나 감독이 되어서야 무혐의 처리되었기 때문에 많은 의혹이 있다.있다.

브레시아에서의 후반기에는 출장을 못한 채 로마로 이적을 한다. 그는 로마에서 02-03 시즌을 뛰었는데, 오히려 리그는 전반기만 뛴 브레시아에서보다도 더 적은 단 4회 출장만 하게 된다. 로마 올드팬들은 최악의 영입에 펩을 꼽기도 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 그의 로마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로마는 아예 펩을 포기했고, 결국 몇 달을 다시 브레시아에서 뛰게 된다. 브레시아는 10위로 리그를 마감한다.[5]

세리에에서 나온 펩이 향한 곳은 축구 선수들의 은퇴지인 중동 리그이다. 카타르의 알 아흘리로 이적한다. 이번에도 세리에를 떠났을 때 맨유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카타르 리그에 있을 때 맨유, 맨시티, 첼시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리그에 머무른다. 03-04, 04-05 두 시즌 카타르에서 뛰면서 그는 세리에에서와는 달리 주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때 팀의 성적은 03-04 때 10팀 중 4위, 04-05 때 10팀 중 8위였다.

알 아흘리에 있을 때, 펩은 약물 복용 혐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7개월 징역을 선고받는다. 이는 위키피디아의 펩 항목에도 누락된 내용이다. 2005년 약물 복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보류되었고, 2007년 B팀 감독으로서 항소한 후에는 혐의만 남은 채 징역형은 말소된다. 그리고 2009년에서야 그의 약물 복용이 무혐의로 처리된다. 기욤 발라그가 쓴 펩 과르디올라 전기에 따르면 인간은 9나노그램 이하의 약물을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펩에게서 검출된 난드롤론은 2나노그램 이하였기 때문에 이 연구 결과에 따라 무죄가 확정되었다.

알 아흘리에서 나온 펩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지금은 2부 리그 팀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에 가게 되고, 이때 팀은 6팀 중 4위라는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이때, Axocopan에서 감독 일을 배우게 된다.

2.2 국가 대표 경력

유로 2000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라울 곤잘레스와 함께

과르디올라는 자국에서 개최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국가 대표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여기서 스페인은 2004년 올림픽과 2008년 올림픽에서의 아르헨티나처럼 막강한 화력을 구사하며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 결승전에서 폴란드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게 된다. 과르디올라가 뛰던 스페인은 당시 기준으로 디펜딩 챔피언 독일, 남미의 복병 볼리비아,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같은 조가 되었다. 과르디올라는 대한민국전에는 출장하지 않았으며, 볼리비아전에서 골을 넣어 천금 같은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독일, 대한민국과 둘 다 비기는 바람에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도 스위스를 상대로 직접 골을 넣진 못했지만 승리를 거두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이탈리아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림픽 금메달의 저주

유로 1996에서는 조별 리그에서는 잘했으나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승부차기로 덜미를 잡히고 탈락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가 현역으로 뛰던 시기의 스페인 대표팀은 페르난도 이에로, 미구엘 앙헬 나달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카스티야 파벌과 펩 과르디올라, 호세 마리 바케로, 훌리오 살리나스, 이온 고이코체아[6] 등으로 대표되는 카탈루냐 파벌이 여전히 갈라져 있던 시기라 이름값에 비하면 팀워크가 좋지 않았으며, 과르디올라가 부상이 잦아서 국대에 꾸준히 출전을 못했기 때문에 이 시기 스페인 대표 팀의 실력은 톱클래스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2.3 플레이 성향

선수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 더 정확히는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어진 볼란치 중에서도 세계적인 선수이다. 한국 선수로는 조광래가 대표적이고 당대 선수들로는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네덜란드와 AC 밀란의 프랑크 레이카르트, 브라질의 둥가, 아르헨티나와 옆동네 레알 마드리드의 페르난도 레돈도, 그리고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의 주제프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 수비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공을 잡으면 정확한 패스를 통해 경기를 정교하게 전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바르셀로나식 볼란치의 계보를 시작한 인물로, 샤비 에르난데스가 그 후계자이자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비 알론소 혹은 이탈리아의 피를로와 같은 후방형 플레이메이커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들 같은 초일류 레지스타가 되기엔 피지컬이 떨어졌고 부상이 잦아서 실력이나 카리스마에 비하면 빠르게 후계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잊힌 편.

특히 그의 기량은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지도하의 바르셀로나 드림팀 1기에서 빛을 발했는데, 이때는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치키 베히리스타인 등의 공격진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주고 로날드 쿠만이 지휘하는 포백 라인의 앞을 보호하는 등 그야말로 현재의 샤비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다.

다만 안습한 건 몇 번이고 언급하듯 부상 때문에 내구력은 약했고, 그 때문에 선수 말년에 이곳저곳으로부터 시련에 빠지고, 본인도 슬럼프에 빠졌으며 그의 스타일 자체가 자기 혼자 잘한다고 팀의 기량이 한순간에 올라가는 게 아닌, 그와 함께 패스를 잘 받아먹을 공격수가 있어야 사는 스타일이라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커리어가 모자람은 아쉬움이 있다. 펩 자신은 시대가 자신과 같은 유형의 선수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펩의 선수 생활이 저물어가던 시기는 클로드 마켈렐레 유형의 선수가 빛을 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3 감독 생활

2008년 FC 바르셀로나 감독 부임2009년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및 6관왕
2013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부임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마지막 DFB-포칼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2016년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부임

3.1 FC 바르셀로나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팀을 만들다

바르셀로나 레전드인지라 은퇴 직후 2007년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과르디올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이를 눈여겨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 회장은 당시에 부진하여 경질을 앞두고 있던 레이카르트 감독 다음으로 과르디올라가 지휘봉을 잡을 거라고 밝혔다. 처음에 과르디올라는 감독보다는 바르셀로나 구단 프런트가 되길 원했고, A팀 감독 경력이 짧은 과르디올라가 팀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시즌 초반 그는 간지 넘치는 말로 팬들을 안정시켰으며 시즌 후 결과는 우승 트로피로 나타났다. 과르디올라는 팀을 리빌딩하기로 결정, 과감하게 호나우지뉴데쿠, 사무엘 에투[7] 같은 선수들을 팀에서 내보냈다. 그 후 바르셀로나의 극강의 점유율 패스 축구를 완성[8]하면서 바르셀로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강팀이 되었다.[9]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리오넬 메시를 발견한 것이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 과르디올라 감독이 아니어도 메시는 언젠가 빛을 보게 될 케이스였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의 능력을 효율적이게 활용하는 걸 보면 감독의 공로도 크다는 걸 알 수 있다.[10]

정확히 말하자면 메시는 과르디올라 부임 전부터 떠오르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레이카르트 감독 말기, 즉 호나우지뉴가 막장화된 07/08 시즌에는 빼도 박도 못할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이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으므로 메시의 발견을 과르디올라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때 메시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약점은 '도자기 스타'로 불릴 정도로 유리몸이었다는 것. 그러나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메시는 호날두에 버금가는 금강불괴가 되었다. 또한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메시에게 측면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주문했으며 결국 제로톱의 중심에 메시를 놓으면서 메시의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했으며 메시는 뛰어난 경기력과 가공할만한 스탯을 동시에 거머쥐며 호날두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물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 같은 잘못도 있었지만,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돈을 날리는 일도 적은 편. 다만 선수를 영입할 때의 보는 눈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 25M을 허공에 흩뿌린 영입과 같았던 치그린스키[11]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워낙 튼튼한 이유도 있다. 또한 영입 자체도 위의 두개가 워낙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꽤 준수한 영입이었다. 특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영입은 처음에는 돈낭비라고 까였으나 마쉐를 센터백으로 전업시키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마스체라노가 없었다면 얇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으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맥스웰, 아드리아누,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도 제 값 이상은 했다는 평. 비야세스크 같은 경우는 본인 의사만으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12]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선수들 각각 움직일 수 있는 경로나 포지션 같은 걸 따로 연구하며, 온갖 컨디셔닝은 물론 선수단 식단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극도로 완벽주의적 매니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매일 밤 12시에 아무 선수에게나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다. 선수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클럽에서 노는 등 집 밖에 있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즉각 불이익이 돌아갔다. 젊은 선수은 잘 따랐지만 앙리나 아비달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고. 또한 일에 매달려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쉬고 싶은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머지 않아 그만두고, 휴식 후 다른 팀의 감독을 맡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진이 워낙 좋아서 선수빨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그래서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팀의 감독을 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바르셀로나 선수단과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과르디올라의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으로 그의 능력을 폄하하기엔 그 이전까지의 바르셀로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밥상을 그가 직접 차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13] 또한 세르히오 부스케츠페드로 로드리게스, 제라르 피케 등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시킨 것에도 그의 공이 아주 크다.

부임 이후 3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 우승 타이틀은 바르셀로나가 차지했으며,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역시 각각 두 번씩 우승을 차지했다. 코파 델 레이도 한 번 우승했다. 어쨌든 과르디올라가 부임 이후 바르셀로나가 차지한 트로피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괜히 불과 4년에 불과한 1군 감독 경력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무리뉴와 함께 본좌급 감독으로 꼽히는게 아니다. 적어도 전술적인 역량에 있어서는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width=100%
부임하자마자 08-09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다

하지만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가 무관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곳저곳으로부터 링크설이 뜨고 바르셀로나 사임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11-12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표명했다. 과르디올라의 평전을 작성한 스카이 스포츠의 기옘 발라게에 의하면 펩은 승리를 거둘수록 높아져만 가는 기대치와 요구와 강행군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였으며 오래전부터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한 상태였다고 한다. 세 시간에 이르는 회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무제한 선수 영입을 보장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1년간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하였다.#1년의 휴식 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그런데 벌써 첼시, AC밀란, 인테르와 같은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링크가 나고있다. 12-13시즌이 끝난후 여름에는 돌풍의 핵이 될듯. 사실 이전부터 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았고, 감독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었으며, 계약 자체도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결국 4시즌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르샤를 우주 최강팀으로 만든 과르디올라는 갑작스레 떠났다.

웸블리에서 다시한번 빅이어를 들어올린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뮌헨, 첼시, 맨유 등의 빅클럽과 꾸준히 링크가 나던 끝에 마침내 2013-2014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이 확정되었다. 뮌헨이 부인기사 낸지 불과 12시간도 안되어서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라고.

파일:Attachment/펩 과르디올라/pg1.jpg
바이에른 뮌헨 공홈에 뜬 오피셜

근데 12-13시즌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뮌헨이 무려 트레블을 달성했기 때문에 펩의 입장에서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엄청나게 될 듯 하다.

3.2 FC 바이에른 뮌헨

3.2.1 13-14 시즌

결국 12-13시즌 트레블 팀바이에른 뮌헨의 사령탑에 부임했다. 뮌헨을 택한 이유는 수많은 레전드와 전통, 유스시스템 등 본인의 축구철학과 가장 잘 맞는 팀이었기 때문.

파일:Attachment/펩 과르디올라/2 171422200 2963478.jpg

펩은 부임 후 콤팩트한 패스축구를 뮌헨에 재현하기 위해 적합한 선수들을 속속 영입해온다. 4월에 이적을 확정한 마리오 괴체 역시 펩이 원했고, 선수 본인도 과르디올라 밑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 그 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유력했던 옛 제자 티아고 알칸타라 역시 옛 스승을 찾아 뮌헨으로 이적했고, 그 외에 기존 선수들 중에 부진하던 하피냐디에고 콘텐토를 재발견하는 한편, 성향상 방출이 예상된 아르연 로번의 활용과 필립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핵심 선수들의 이탈도 만만치않다. 독일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는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더 많은 출전기회를 위해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루이즈 구스타보 또한 월드컵을 염두해두고 많은 출전을 위해 VfL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펩은 부임당시 모든 선수들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을거라 밝혔고, 실제로 현재까지도 디에고 콘텐토, 클라우디오 피사로, 하피냐, 다니엘 반 바이텐 등 많은 서브자원들에게 프리시즌/정규시즌을 가리지 않고 출전기회를 부여해줬다.[14] 하지만 월드컵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보니 바쁜 주전경쟁속에 있는 구스타보와 고메즈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파일:Attachment/펩 과르디올라/1.jpg
팀의 부주장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모습이 포착된 펩

부임 후 울리회네스컵, 텔레콤컵, 리가토탈컵, 아우디컵 등 많은 프리시즌 대회들에서 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7월 2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부임 후 첫 데어 클라시커에서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해 티아고 알칸타라를 볼란치로 내리는 변형적인 포메이션으로 도박수를 던졌다가 2대4로 패하며 첫 공식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처럼 시원시원한 공격력이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점유율만 높지 득점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않고 리가, 컵, 챔스 가리지않고 무패행진을 달리고있으며,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행진 또한 이어가고있다.
UEFA 슈퍼컵에서 수많은 엘 클라시코에서 맞붙었던 적장 조세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를 만났다. 경기는 바이에른이 드라마틱한 PK승을 거두며[15] 펩은 바이에른 감독 취임 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개막전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대1로 시원하게 꺾으며 좋은 정규리그 스타트를 끊었다. 챔스에서도 PFC CSKA 모스크바맨체스터 시티, 빅토리아 플젠압도적으로 털었다. 게다가 맨시티전 3-1승리는 자그마치 맨시티 원정에서 승리한것.[16] 현재 5승0패 15골 2실점으로 조1위를 확정한 상태다. 흠좀무. 하지만 2013년 12월 11일 알리안츠에서 벌어진 對맨시티 전에서는 전반 10분 전후로 뮐러와 괴체가 각각 한 골씩 두 골을 넣으며 쉽게 승리를 챙기는 듯 하였으나 실바의 골, 콜라로프의 pk와 보아텡의 삽질로 인한 제임스 밀너의 골로 3:2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토마스 뮐러와 21명의 바보들'이라는 짤이 등장하였다.

분데스리가 12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3대0 승리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다 무패기록인 36경기 무패를 경신했다.
13-14 리가 우승의 패권을 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치른 데어 클라시커에서 마리오 괴체티아고 알칸타라를 연이어 투입시키는 후반 승부수를 통해 3대0으로 도르트문트를 원정에서 털었다. 무패행진은 38경기로 늘었으며 현재 11승2무 승점35점으로 리가 단독선두를 이어가는 중.

그리고 3일 뒤 CSKA 모스크바 원정에서 폭설 속에서도 클래스 차이를 보여주며 3대1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 시즌 8강 유벤투스전 승리 이후 챔스 10연승을 달성했고, 02-03시즌 FC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뜨렸다.

이후 52경기 무패 행진, 리그 1경기당 2골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3월 26일, 유럽 5대 리그 사상 최단 기간 우승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14년 3월 우승확정 이후 선수들의 미칠듯한 동기저하가 찾아왔고 최근 10경기에서 4승만을 거두었다. 또한 가장 최근 챔스에서 레알과의 준결승전에서 작년 챔스에서 바르샤를 찢던 포스는 사라지고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털려 1차전에서는 1:0 2차전에서는 4:0으로 통합스코어 5:0이라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볼 소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후 전 시즌 12월부터 급격한 바르셀로나화를 불만족스러하고 팀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며 펩과 티키타카를 디스했던 프란츠 베켄바워 명예회장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레알에게 참패를 당한 후 인터뷰에서 뮌헨선수들의 멘탈을 디스하면서 동시에 펩의 전술을 다시금 디스하였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처럼 "팀을 생각 안하는 행동은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라는 말로 대변하듯 사무엘 에투, 야야 투레 그리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팀규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선수들은 스타플레이어일지라도 떠나 보낼 정도로 선수들의 기만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감독이였고 마리오 만주키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불화를 겪다가 떠나게 되었다. 시즌초반에 출장을 못 하면서 불화설이 돌다가 골을 자주 넣자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하고 불화설도 사그라들었으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영입으로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고, 포칼 컵 결승에서는 아예 선발에서 제외해버리고 "다음 클럽에서 행운을 빈다"라는 말까지 하여 만주키치를 제대로 빡치게 했다. 결국 만주키치는 라커룸에 짐 다 싸들고 대표팀으로 갔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리고 마리오 괴체,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로도 모자랐는지 마르코 로이스를 원한다는 루머가 생겼다.링크 그러나 그 루머를 반박하듯이 영입은 이번 여름엔 더이상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

전통적으로 바이에른은 월드컵 종료후 바로 다음 시즌에 아주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았는데[17][18], 레전드들과 팀의 높으신 분들도 많은 우려를 하고 있으나 펩은 "이 난관은 이미 헤쳐봤다."라고 이 우려를 종식시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펩은 남아공월드컵을 우승하면서 7경기를 모조리 뛰고 돌아온 스페인 국대의 주전들을 이끌고도 바로 다음 시즌인 10-11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뮌헨에서도 그의 마법이 통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3.2.2 14-15 시즌

14-15시즌을 앞두고 브라질 월드컵 우승멤버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들이 휴가중이어서 리베리, 알라바, 레반도프스키를 빼고는 거의 2군들로 시즌을 준비중인데도 텔레콤컵 등 프리시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19] 그리고 뮌헨 팬들이 희망에 젖을 발언을 자서전 발간을 위한 밀착취재도중 직접 했는데, 드디어 자신이 완성시키고 성공가도를 이끈 티키타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새로운 전술을 모색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13-14 DFB-포칼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썼던 변형3백을 이용한 빠른 템포의 공격을 사용할 수도 있고, 유프 하인케스의 피지컬과 페이스로 찍어누르는 깡패스러운 닥공축구가 재현되기를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다. 그리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 메흐디 베나티아등의 보강을 통해 유럽 최정상급의 스쿼드를 구성했기에 구단과 팬들의 요구수준역시 매우 높아졌다. 적어도 리가 우승,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 정도는 해야 불만이 없을 시즌이기에 펩이 어떻게 시즌을 지휘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


2014년 바이에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옥토버페스트에 뮌헨선수단과 함께 참여하였다

14-15시즌, 그가 말한대로 월드컵 징크스따윈 눈씻고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으나 이건 월드컵과 휴가로 독일 국대의 주축들이 복귀한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터라 조직력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크게 문제가되진 않았다. 그리고 정규리그경기에서 승리하며 복수하는데도 성공했다.
현재 리가에서 무패행진을 기록중인데다 포칼도 가볍게 8강 진출, 12라운드까지 단 3실점만 허용했을 정도로 승승장구중이고, 챔스에서도 4연승으로 가장 먼저 조별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5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2대3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른시간 메흐디 베나티아가 퇴장당해 무려 70분동안 10명이서 싸웠으나 머릿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팀의 클래스를 여실없이 보여주며 선전한 경기였다. 막판 수비들의 어이없는 연속된 실수가 화를 불러왔을 뿐 오히려 경기력은 칭찬해줘야하는 점이다. 유럽 최정상의 스쿼드 뎁스라는 평이 무색할정도로 부상신이 강림하여 스쿼드가 반토막이 났지만 펩의 적절한 용병술로 계속해서 승리를 챙기고 있다.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은 무재배였으나 홈경기에서 7:0으로 처바르며 가볍게 8강에 진출시켰다.

뮌헨에서의 2년차 시즌 절반쯤 지난 시점에서, 이번 시즌도 VfL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다 아르연 로번 활용의 극대화,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핑을 겸비한 높은 라인배치로 점유율을 확보하고 수비까지 겸하며 유럽리그 최소실점을 이어가며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비드 알라바필립 람도 매우 잘 다루는데, 두 선수에게 중앙지향적인 임무를 부여해 점유율 확보와 공-수 양면에서 고루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단점도 적잖게 보이는데, 우선 토마스 뮐러의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게 아쉬운데 뮐러도 스탯을 평타 정도는 쌓고있지만 침투와 공간 확보에 강점이 있는 뮐러가 그냥 2선에서 물러나 볼만 돌리고 있는건 좋은 장면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큰 기대를 모았던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 조합도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만으로 평가하자면 실망스러움 그 자체인데, 플랫 3백이나 4-1-4-1을 즐겨쓰는 펩의 성향상 둘을 함께 기용하기엔 전술 자체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물론 알론소나 슈슈 중 한 명만 선발로 세울 경우에는 경기력이 확연히 좋아진다. 후반기 샬케전 무재배 이후 4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때려박으며 연승행진중인 것에서 증명된다.
그 후 리그에서는 무난하게 양학을 하면서 리그 우승을 빠르게 확정짓는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FC 포르투와의 원정 경기에서 3:1로 패하면서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이라는 감독이 로베리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가져온 플랜B로 한심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8강 2차전 홈경기에서는 다시 6:1이라는 깡패 스코어로 승리하면서 비판을 잠재웠다. 하지만 포칼컵 4강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경기도 패하고 부상 복귀한 아르옌 로벤이 다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레반도프스키까지 부상으로 나가면서 앞날이 캄캄해졌다.
거기다 다음 챔스 4강 상대는 MSN을 장착한 FC 바르셀로나.. 여러모로 관심받는 매치가 성사됐다.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끈 펩과 바르셀로나의 대결, 티키타카로 바뀐 뮌헨과 반대로 티키타카를 점점 버려가는 바르셀로나라는 점은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차 캄프누 원정에서 3:0으로 패했다. 하인케스한테 뺨 맞고 과르디올라한테 푼다 전반전에 펩이 들고나온 전술은 무려 3백 대인마크!! 무려 MSN을 상대로 3백을 세웠으며 바르셀로나선수단 전원에게 맨마킹을 건다, 부상신 강림으로 개박살난 팀으로
이런걸 들고나온것조차 엄청 대단하지만 문제는 경기시작 15분만에 파훼되버렸다. MSN이 3백을 상대로 물만난 고기처럼 뛰어댕긴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펩이 전술에 수정을 가한 이유는 바로 바르셀로나의 골기퍼 테어슈테켄!.
슈테켄의 장기인 정확한 롱킥이 메시의 마리오같은 백헤딩을 맞고 수아레즈가 엄습한 수비 뒷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실점 기회를 맞았다.
아마 테어슈테켄이라는 선수를 분석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한방 먹고나선 다시금 4백 형태로 축구 역사상 손에 꼽을 명경기를 잘 이어나가다가 70분경 원정골을 위해 프레싱을 시도하자마자 메시에게 완벽하게 털렸다. 펩 입장에선 원정골이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였으니 라인을 높인것이 이해가 가지만 본인이 메시를 완성했으면서 최악의 수까지 생각을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20] 국내 해축팬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폭풍까임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팬들의 입장에선 2년 전 7:0으로 바르셀로나를 두둘겨 패던 팀이 3:0으로 지는 상황에서 화가 안날 수가 없는 듯하다. 거기다가 국내 몇몇 축구 사이트에서는 펩 광신도들의 쉴드까지 합쳐지면서 펩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21] 그 후 대망의 2차전에서는 베나티아의 선제골로 희망이 생기나 했으나 그 후 네이마르에게 원정 골로 두 골을 먹히면서 사실상 올라갈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 후반에 루이스 수아레스가 햄스트링으로 인해 교체되고, 바르샤가 이후 리그 컵과 리그 경기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체력관리를 위해 느긋느긋 경기를 진행한 덕분에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추가 득점으로 홈경기는 3:2로 승리하면서 체면치레는 했다.

14-15시즌 결과는 리그 우승,포칼 4강,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마쳤다.
아무래도 13-14시즌은 부임 시즌이었고, 리그,리그컵 더블에 챔스 4강은 나쁜 성과는 아닌지라 큰 비판도 없었고 2년차를 기대하는 시각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부임 시즌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되면서 독일내에서도 펩에 대한 시각이 많이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리그 우승은 빠르게 달성하였지만, 그 뮌헨의 리그 연속 우승이 시작되기 전의 우승 팀이 어디인지, 그 팀 에이스들이 어디있는지를 보면 그다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할 순 없고, 차포 떼진 도르트문트에게 일격을 당한 포칼컵 4강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챔스 4강 바르셀로나 전의 패배는 펩이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 시즌이었다. 부임 첫 해 만에 트레블을 달성한 바르샤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으로 인해 여태까지의 호성적이 단순 빨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3.2.3 15-16 시즌

뮌헨 구단에서도 유임이냐 모가지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일단 유임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15-16시즌에도 뮌헨을 지휘하게 됐다. 15-16시즌에는 과연 뮌헨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라이벌레알 마드리드 시절과 같이 흑역사가 될지 판가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첫 경기부터 졌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8월 2일 오전 3시 30분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볼프스부르크와의 슈퍼컵 경기에서 1:1(PK 5:4)로 졌다. 덕분에 펩빡이 언제 잘리나며 폭풍같이 까이고있다....였지만 시즌 전반기가 지난 현재 뮌헨 걱정은 쓸데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듯이 모든 대회에서 순항중이다.

15-16시즌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고있는데다가 맨시티등과 계속해서 링크가 뜨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15-16시즌 전반기가 끝난 뒤에 구단과 재계약에 대해 의논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타블로이드 발이 전부이긴 하지만 맨유와의 링크가 났다. 현재 감독인 판 할이 챔스에서도 떨어지고 본머스에게도 지는 등 똥을 싸지르고있기 때문에 과르디올라에게 접근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정황상 맨시티는 바르샤 황금세대 당시 보드진[22]을 앞세워 펩과 이야기를 상당히 마무리 지은 상황.[23] 더군다나 펩의 형 페레 과르디올라는 이미 2013년부터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본인의 에이전트 회사 오피스를 옮겼으며 소리아노 맨시티 회장 주도하에 시티측과 함께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에 있는 히로나 FC의 지분을 공동으로 사들이고 투자하며 뉴욕시티 마냥 위성구단을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24] 처음부터 펩의 맨시티행은 정해져있던 셈.[25] 결국 맨유 보드진은 간보다가 포기하고 차기감독으로 무리뉴 쪽으로 선회한듯하다.

독일의 '스포르트1'에서 안첼로티가 뮌헨과 다음시즌부터 3년간의 계약에 합의에 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빌트와 스카이스포트 등 공신력있다는 언론들도 과르디올라가 뮌헨을 떠날 것을 점치고, 안첼로티도 뮌헨의 감독이 될 "가능성은 90%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펩이 이번시즌이 끝나고 뮌헨을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화 되었다. 오피셜은 아니지만, '빌트와 키커(!!!)에서 펩의 맨시티행을 보도하는 기사가 떴다! 사실상 오피셜만 없을 뿐 기정사실화 된 것 같다.

15-1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강호 유벤투스를 만나서 1차전 원정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골을 내리 실점하며 2:2 무승부에 만족해야만했다. 그래도 원정 2:2면 좋은결과고 2차전은 홈인지라 바이에른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판짜기에 말려들어가면서 홈에서 전반을 0:2로 밀린채 마치게 되었다. 감독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챔스 16강 광탈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으나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헤더골로 극적으로 경기를 2:2 원점으로 만들며 연장전에 돌입, 결국 교체투입한 티아고 알칸타라와 킹슬리 코망의 골로 4:2로 역전하며 구사일생으로 8강에 진출했다. 전반 판짜기에서는 패배했지만 후반전과 연장전에서의 적절한 교체카드 투입과 전술수정으로 만회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SL 벤피카에게 1차전 홈에서 1:0 승, 2차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둬 다시한번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감독으로서 참가한 챔피언스리그 7시즌에서 모두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게되었다.

그리고 4강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랑 만나게 되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지휘하에 라리가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양강의 독주체제에서 기적적으로 이뤄낸 13/14 시즌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유럽 탑클래스급의 강호로 올라섰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공식전은 1974년 유로피언컵 결승전(재경기 포함) 2경기가 전부였기에 매우 흥미로운 매치업. 시메오네 감독과의 지략싸움이 기대된다.

하지만 비센테 칼데론에서 치뤄진 원정 1차전에서, 다소 의아한 선발 라인업을 보여주면서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올 시즌 팀내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는 뮐러를 벤치에 놓고 코망을 선발로 기용한 점이 중심적인 비판. [26] 이 외에도 부상으로 인해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했다는 리베리를 후반에 교체로 내보낸 것,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리면서 베르나트를 레프트로 기용한 것[27] 등에 대해서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비판이지만, 0:1의 패배를 맞이한 순간부터 펩 역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전반전 압도적인 경기력끝에 사비 알론소의 프리킥 선제골로 기세를 올렸고, 페널티킥까지 얻어내어 2차전 스코어 2:0, 전체스코어를 2:1로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토마스 뮐러의 킥이 얀 오블락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후반전에 페르난도 토레스앙투안 그리즈만의 역습에 치명적인 원정골을 실점하고 말았다. 그래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희망을 살리는 골을 넣었으며 마누엘 노이어가 토레스의 페널티킥을 막는등 마지막까지 1골싸움으로 몰고갔지만 결국 2:1로 경기종료. 승리는 거뒀지만 합산스코어 2:2 원정골 우선원칙에 의해 또다시 펩의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펩 부임후 뮌헨은 3번의 챔스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는 라리가 3강을 만났고 결국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 부분이 전임 감독 유프 하인케스의 경우 라리가 클럽에 굉장히 강했고, 특히 11-12시즌 4강, 12-13시즌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를 연속으로 꺾고 올라갔기에 여기에 대비되어 더더욱 안티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이후, 15-16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의 4연패로 이끌었다.[28] 리그 내 우승 경쟁자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팀 역사상 최다 승점을 기록하였음에도 이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뮌헨에게 리그 4연패를 안기고 맨체스터 시티 FC로 떠나게 되었다.

리그 최종전 후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결과를 내지 못해 팬들과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써 임했던 마지막 대회인 DFB 포칼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 뒤 눈물을 보였다.

3.2.4 뮌헨 시절 비판

과르디올라가 전 구단인 바르셀로나에서 역대급 성적을 거두었으며 그 경기의 모습 하나하나도 워낙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뮌헨은 강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5년간 맨유와 바르샤, 레알에 밀려 임팩트를 주지 못했지만, 하인케스가 은퇴하기 바로 직전 시즌에 트레블과 역대급 승률을 달성하여 챔스 준결승(4강)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신 펩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3.2.4.1 약화된 측면 공격력

소위 레바뮌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고 봐도 무방한 12/13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이 의미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비교대상인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리오넬 메시와 같은 역대급 득점력을 가진 크랙이 없는 상태에서 팀 자체가 엄청난 공격력으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강 윙어들이라고 볼 수 있는 로베리 라인[29]과 그 뒤를 받쳐주는 필립 람, 다비드 알라바 풀백 라인으로 대표되는 황금날개진이 한 몫했다. 이들은 빠른 스피드와 측면에서 상대를 썰어가며 수비진을 와해시키는 정교한 플레이를 통해 당시 게겐 프레싱 열풍이 불던 분데스리가의 중원을 붕괴시켰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선 제대로 된 압박조차 하지 못하는 타 리그 팀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체제의 뮌헨은 필립 람과 알라바를 중원으로 올려 중원 장악력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는데, 그 선수들이야 월드클래스급이라 중원에서도 역대급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문제는 그 두 선수의 측면 대체자들이 클래스에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측면의 공격력은 아군 측면의 수비력까지 상승시키는 부가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속도[30]를 가지고 있는 윙어진 상대로 상대 수비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속도에서 털리지 않도록 측면 라인을 내리는 것 뿐이다. 거기에 람과 알라바 같은 월드클래스 풀백의 지원까지 기대된다면 상대 풀백은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허나 람과 알라바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측면 공격력이 반토막나자 더 이상 풀백의 오버래핑이 위험부담이 크지 않게 되었고, 로베리마저 부상으로 붕괴되자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들이 14/15 리가 볼프스부르크전 4:1 대패와 14/15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 원정 3:0 대패. 람과 알라바의 대체 풀백들은 수비력 조차 뮌헨 기준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고 결국 충분한 기량의 윙어를 상대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측면 수비까지 무너지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15-16시즌. 코망, 코스타의 가세와 리베리의 부상 복귀 후 완벽한 폼, 그리고 아직 정정한 로벤 등 아주 강력한 윙어진을 갖추게 되며 거의 해결된 상태다. 특히 람이 측면으로 다시 복귀하고, 코망을 레프트 윙으로 세우면서 코스타를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워 번갈아가며 측면을 교란하는 변태 전술 또한 선보이며 단점을 상당 부분 메꾸는 중이다. 근데 그 측면 교란도 중앙으로의 롱크로스로 전환한다는 것은 함정

결론적으로 측면 공격력은 하인케스 시절의 뮌헨 보다 약해졌으나, 그 대신 중원장악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 때문에 하인케스 시절만큼의 폭발적인 경기력은 보여주지 못하였으나, 안정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경겨력은 많이 보여주었고, 이에 대해선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렸다. 결론 적으로 펩의 최종 성적이, 리그에서 3연패/챔스 3연속 4강 이라는... 직전 트레블한 팀의 성적으로서는 꽤나 애매한 성적이 나와 버렸기에, 여기에 대한 평가가 더욱 갈리는 편이다.

3.2.4.2 아쉬운 플랜 B 전술

과르디올라의 뮌헨이 전술적으로 경직되었다는 것은 흔히 퍼져있는 오해 중 하나인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적어도 과르디올라가 시즌 내내 선보인 전술은 매우 다양한 편이었다. 문제는 경기 내에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플랜 B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점에 있다. 과르디올라의 뮌헨이 강팀을 만나 애를 먹을 때 전술적 변화는 크게 정리하면 2가지였는데, 3백에서 4백으로의 변화와 라인올리기였다. 측면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의미의 전자는 람과 알라바의 대체자가 시원찮은 상황에서 그 둘이 없는 플랜 B로 갈 경우에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고, 후자는 역습에 능한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종종 헛점을 드러내곤 하였다.

이는 15-16 시즌에 와서 상당수가 개선이 되었다. 점유율을 기본으로 깔고가면서 공수 전환에 있어 하인케스 시절 이상으로 굉장히 능란한 팀으로 바뀌긴 하였다. 사실 14-15 시즌부터 경기가 안풀리면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후반에 갑자기 경기력이 호전되어 이긴 경기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챔스 토너먼트에만 올라가면 꼭 부상 악령에 시달려서 플랜 B를 가동할수 없던 상황이 많았다. 쉽게 말해 부상때문에 플랜 B를 가동을 "안"한게 아니라 "못"한 거라고 보는게 맞다.
대표적으로 14-15 시즌 주전만 7명 부상당한 바이에른은(...)[31] 하필 리그나 코파델레이에서 MSN의 화력으로 걸핏하면 6-0, 7-0 승리를 거두는, 부상자도 없는 FC 바르셀로나를 만나버렸고, 공격 전개에 있어 마땅한 대응책도 없이 3대0으로 패하고 말았다. 2차전에서도 바꿀 수 있는건 많지 않았다. 그러나 2차전에서는 필립 람-슈바인슈타이거-사비 알론소-티아고 알칸타라의 다이아몬드 중원을 촘촘히 구성해 중앙만 냅다 후려파서 2대 1로 쫒기면서 전반을 끝냈는데 플랜 B를 가동 못하고도 체면을 치르는 3대2 승리를 거뒀다. 이 시즌 트레블을 기록한 바르샤를 상대로 이마저도 기적이었다.
15-16 시즌은 전 시즌보단 낫지만 이번엔 로베리가 몽땅 쓰러지고 센터백이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제롬 보아텡을 잃은 바이에른은 최후방에서 한번에 넘어가는 보아텡의 롱패스를 이용한 공격루트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나이 먹은 사비 알론소 혼자서 이를 전부 짊어져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홀거 바트슈투버는 유스 출신이라 응원만 해줄 뿐이지 바이에른 팬들도 기대를 버린지 오래고, 메흐디 베나티아, 하비 마르티네즈마저 부상으로 쓰러지자 세트피스에서의 화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 심각한건 요주아 키미히, 다비드 알라바로 센터백을 구성하다보니 전문 센터백들이 아니라서 수비라인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사울 니게즈알바로 모라타가 보여줬듯 드리블러 한명이 수비라인 전체를 농락하는 장면도 보여줄 지경이었다. 여기에 중원에서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 폭발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더글라스 코스타킹슬리 코망도 공격작업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 수비라인을 파괴하고,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크랙이 있어야 하는데 로베리는 장기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둘 다 누워있었다. 저 센터백 라인을 가지고 더블을 기록한 것도 기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3.2.5 임기 종료 후 평가

리그에서의 대 성공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팬들의 기대치를 크게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펩이 뮌헨에서 성공했다 못했다 떠드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으로 실제로 펩의 계약이 만료가 될 지음에 뮌헨은 바짓가랑이를 붙잡다시피 붙들었다.

기어코 펩이 계약연장을 하지 않고 뮌헨을 떠나자 독일팬들은 이에 크게 실망했으며, 일부는 분노로 이어졌다.
당시 독일에서는 맨시티와 체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선수와 구단과 팬 대다수가 모두 3년간 일을 했던 펩이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때문에 펩은 시즌 내내 뮌헨과의 계약 연장 압박에 엄청나게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맨시티와 펩은 시즌 중간에 자신들의 새로운 감독계약을 공표하게 이르게 된 것이다.

실제로 펩은 계약만료 즈음하여 첼시와 맨유, 맨시티 구단의 어마어마한 구애를 받았는데, 결국 펩은 사상 최고의 연봉 계약을 체결하며 맨시티로 갔다. 첼시가 백지수표를 제시한 것과 맨유의 퍼거슨이 직접 호소를 한 것은 매우 널리 알려진 사실.

이것으로 미루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펩이 뮌헨에서 망했다느니 떠들거나,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른다는 뉘앙스는 펩에게 압박을 주려는 사실상의 정치적 언론플레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언론 뿐 아니라, 무리뉴와 대척점에 있으며 맨유와 대척점에 있는 맨시티 감독으로서 짊어지고 갈 숙명.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펩의 임기 종료 후, 대척점에 선 팬들을 대리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매체에서 그의 바이에른에서의 행적, 리그 3연패, 3연속 챔피언스 리그 4강, 포칼컵 2회 우승을 두고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 많은 기사 및 분석들을 쏟아냈다.

그러므로 펩이 명장이라는 자신의 타이틀과 바이에른 뮌헨의 명성에 걸맞는 실적을 냈는지 판단은 알아서 해야할 것이다.

3.3 맨체스터 시티 FC

3.3.1 부임 전후

_88041845_welcome_to_manchester.jpg
2016년 2월 1일,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계약이 오피셜로 떴다. 2016~17 시즌 부터 부임하며, 계약 기간은 총 3년이다.

2월 1일 오피셜 이후로 맨체스터 시티 선수단에 벌써부터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티 보드진과 꾸준히 접촉하는 것으로 보여지며 예를 들면 아이메릭 라포르테라든지 일카이 귄도간 등 3월 이후로 링크가 강력하게 뜨는 것을 보면 사전에 일을 시작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준다. 노쇠화된 시티 선수단을 통째로 세대교체 시키려는 듯.

3.3.2 16-17시즌

펩의 16-17시즌에 대해서는 맨체스터 시티 FC/2016-17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4 감독으로서의 전술

4.1 일반적 평가

공간, 점유율, 압박.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적으로 한 뒤, 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인 티키타카를 선호한다. 다만 과르디올라 본인은 티키타카를 언론이 만든 허상이라고 말하며, 티키타카라는 단어조차도 싫어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펩 하면 티키타카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실상 티키타카가 팀의 아이덴티티로 정착된 팀은 펩이 커쳐간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 불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어 펩이 2010년대 축구 트렌드에 미친 영향은 다른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첫째, 후방 빌드업의 정착이다. 물론 후방 빌드업의 개념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가 정착시킨 후방 빌드업은 변형 백3를 활용한 것이다. 이를 창안한 아르헨티나 감독 리카르도 라 볼페의 이름을 딴 라볼피아나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인데, 빌드업 리더를 센터백 사이로 내려[32] 일시적으로 백3 라인을 형성하고 골키퍼까지 포함한 4인의 후방 선수가 공을 돌리며 전방 압박 라인을 끌어당겨 상대 압박 라인의 간격을 벌리거나, 혹은 대형을 무너트린다. 이렇게 상대의 대형을 흔들고 나면 아군 미드필더들이 공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한층 수월해진다. 현재 웬만한 팀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수용해서 빌드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대책들도 발전해서 위르겐 클롭처럼 1~2선의 기동력을 활용해 매우 집요하게 상대 후방 빌드업을 방해하는 대책이 나오는가 하면, 디에고 시메오네처럼 아예 전방 압박은 적당히 시간을 늦추는 수준으로만 하고 아군의 타이트한 대형 유지를 중시하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둘째, 점유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켰다. 펩 이전에도 점유는 중요했다. 다만 이는 점유에 이어 간결하고 신속하게 공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키이즘의 영향을 듬뿍 받은 것이었다. 즉, 신속한 공수의 전환이 더 중요했으며, 점유는 단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기 위한 방법에 가까웠다. 아예 전환의 신속성이라는 아이디어만 뽑아 먹는 선수비 마인드의 축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펩이 느린 템포와 점유를 접목하면서 점유란 상대에게 있어 기회의 박탈과도 같은 말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게 되면서 설령 공을 빼앗기더라도 신속하게 질서 있는 압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펩의 훈련에서 수비훈련이 전체훈련의 80%를 차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거쳐온 팀들이 강한 압박을 통한 수비가 가능 했던 이유이다. 물론 이후 모든 팀들이 펩의 팀처럼 높은 점유율을 찍으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쉽게 상대에게 점유를 내주려 하지 않는 태도는 기본 장착하고 있으며, 점유를 내주더라도 곧장 질서정연한 압박으로 전환하여 치열하게 점유 대 압박 간 경쟁을 펼치는 경기 양상이 펼쳐지게 되었다. 때문에 위험 지역에서 걷어내는 것 외에는 롱킥을 볼 기회가 없다. 골킥마저도 패스로 처리한다. 하지만 뮌헨에서부터는 롱볼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된다.

펩이 2010년대 축구에 미친 영향력 외에 개인의 코칭 스타일을 보면 대개 극도로 편집증적이라거나, 진성 축덕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축구 생각만 하는 기계 수준. 하루에 열몇 시간씩 일을 하는 워커홀릭인데, 훈련이 끝나면 어두컴컴한 감독실에 틀어박혀서 경기에 쓸 전술에 대힌 답이 나올 때까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메모해서 경기를 준비한다. 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스타일인데, 바르셀로나 시절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든 것은 유명하며[33] 훈련을 할 때도 공격 훈련을 하는 경우 선수들의 동선을 일일이 정해 두고 선수들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미친 듯이 패턴 플레이를 반복한다고 한다.과르디올라 뮌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12

5 이야깃거리

5.1 무리뉴와의 인연

0770027001447280114_filepicker.jpg

8살 차이의 주제 무리뉴와는 기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96년,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서 코치 겸 통역사로 일하던 시절 둘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같은 팀에서 일하는 사이인 그때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96/97 시즌 바르셀로나가 라리가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패한 이후 경기 내내 계속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에 흥분해있던 무리뉴가 빌바오 감독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자식관련 패드립을 해가며 욕설을 했고 분개한 페르난데스가 무리뉴에게 다가갔는데. 팀의 주장인 펩이 막아서서 무리뉴 대신 싸워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세월이 흘러 2008년, 레이카르트가 경질되자 첼시 감독에서 경질된 이후 휴식 중이던 무리뉴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원하게 된다. 이 계획에는 펩을 자신의 수석코치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애초에 바르셀로나는 무리뉴를 선임할 생각이 없었고 차기 감독은 과르디올라가 되었다. 이 결정에 무리뉴는 자신이 아닌 펩을 감독으로 선택한 것에 실망하였고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jose-pep_3074421a.jpg

2010년 둘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무리뉴는 인터 밀란 감독직으로 재직하면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끝끝내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이룬다. 이때 준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꺾게 되는데, 경기 중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교체 준비하던 펩에게 무리뉴가 다가가 "이봐, 아직 경기는 안 끝났다고?" 라고 귓속말로 얘기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서 세레머니를 하던 무리뉴를 바르셀로나 골키퍼인 발데스가 억지로 잡아끄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여러 논란이 일었다.

이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직하면서 역시나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를 향한 특유의 언플을 시전하고[34]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지고 말았다.[35] 오죽했으면 그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의 언론 플레이에 빡쳐서 인터뷰 도중 욕지거리를 했을 정도였다.[36][37][38]

인터뷰할때는 정확한 사실만을 전하고 그다지 립서비스를 하지 않는것에 대해[39] 스페인 언론들은 그를 위선자라 부르기도 한다. 너무 냉소적이고 침착하게 말하니까. 하지만 2011/12 시즌 챔스 8강 후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를 잘근잘근 씹었던 즐라탄이 무리뉴가 했던 말을 언급하며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자 드디어 빡쳤는지 이런 인터뷰를 했다. 그 외에도, 리그 우승이 멀어지면서 비꼬는 어조의 인터뷰를 많이 보여주어 신사적인 이미지에 상당히 타격을 입었다. 감독 등 축구계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존재들이라고 인터뷰한 무리뉴에게 대고 "당신이랑 내가 비슷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고 무리뉴가 우승이 확정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과르디올라의 사임 결정에 그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란다며 예의를 지킨 인사를 했는데도 "레알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바르셀로나)의 침묵으로 가려진 많은 것들로 뒷받침된 승리지만."라며 뒤끝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해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무리뉴는 평소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자신을 잘근잘근 씹어왔으니 서로 감정이 좋을리가 없고 사실상 뒤끝 인터뷰와 음모론 드립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의 승리시 자주 시전하는 스킬이었으므로 이 건수 역시 무리뉴와 원투펀치 주고 받았다고 보는게 맞다. 한마디로 자기 기술에 자기가 당한 것 물론 무리뉴의 저 인사만큼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과르디올라에게 감독 대 감독으로서 동업자에 대한 격려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게 맞고. 어쨌든 피치 밖의 신사로도 불렸던 과르디올라가 무리뉴 부임 2시즌만에 불만을 주고 받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에서 알다시피 사실 이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무리뉴의 바르셀로나 코치시절.

1.gif

mou-pep.jpg
이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시기를 봐선 2010년 UEFA 코치 컨퍼런스 때로 추정된다.

mou-pep.jpg
펩이 바르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의 엘 클라시코. 경기 전 악수는 나누었지만 둘의 표정으로 봐선 사이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

무리뉴와의 앙숙관계는 계속되어 2014년 유럽 빅클럽 감독모임에서 펩이 무리뉴에게 "무리뉴는 우아한 축구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만 좋아한다"라고 비판하였고 무리뉴는 이에 "펩이 대머리가 된거는 축구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펩의 신체적 약점을 들어 비꼬아 파문이 되었다.

2F7BB48A00000578-0-image-a-60_1450440905414.jpg

그리고 16-17시즌, 펩은 맨시티의 감독으로, 무리뉴는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들은 EPL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맨체스터 더비는 더욱 흥미로워질 예정이다.

mourinhoguardiolaPA.jpg

다만 많은 사람들과의 예상과는 다르게 서로간의 관계가 어느정도 누그러진것으로 보인다.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에 관해 인터뷰를 할때도 도발성 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를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실제로 맨더비에서 만났을때도 이전처럼 눈도 안마주치고 억지악수를 할때와 달리 나름 포옹(!)도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3주전쯤 모든 명장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을때 어느정도의 화해가 있었지 않았을까하고 추측중.

SK00701_20110417_100701.jpg

그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감독. 보통 '수트 입었을때 간지나는 감독 이미지'를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감독이다. 180이라는 우월한 기럭지를 가지고 있어 사실 어느 옷을 입어도 대부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요즘은 배나온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있다.

Pep-Guarddiola-Football-Manager-STyle-Icon-1.jpg-greay-suit.jpg

pep-guardiola.jpg
수트 입는 센스도 훌륭하다.

x_cd3c6f0d.jpg

무리뉴와는 여러모로 얽힐 수 밖에 없는데, 수트 잘 입기로 유명한 두 감독의 스타일을 남성 패션지 GQ에서 다루기도 했다. 두 감독의 패션은 클래식 vs 모던이다. 왠지 수비축구 vs 티키타카라는 팀의 스타일하고도 비슷한듯? 무리뉴는 주로 무채색의 포멀한 스타일의 수트에 컬러타이, 혹은 노타이로 포인트를 준다. 그리고 겨울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아르마니 회색 오버코트에 머플러를 코디한 모습은 중년 남성 패션의 교본과도 같다. 펩은 보다 활동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중시한다. 타이트한 핏의 수트를 즐겨 입고 언제나 셔츠에 다양한 색상의 풀오버를 매칭시켜 포인트를 준다. 때로는 자켓 없이 셔츠 소매를 롤업하기도 하고, 슬랙스나 슬림핏 데님을 입어 캐주얼한 느낌을 살리는 편이다. 펩의 스타일은 보다 캐주얼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성에게 좋은 모범이다. 남성들에게 좋은 패션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두 미중년 감독이다. 미노년의 패션의 본보기는 아르센 벵거

5.2 언제나 좋지못한 이별

과르디올라가 팀 운영에 있어서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유독 자기 스타일과 플랜에 안맞는 선수를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것과 그와 동시에 해당 선수와 불화를 일으키며 좋지 못하게 이별한다는 것이다.

이는 펩이 첫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르셀로나 시절에서도 잘 드러났는데 부임당시 데쿠호나우지뉴[40]등을 팀에서 내쳐버렸고 이후 야야 투레역시 자신의 전술과 안맞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전력에서 제외시켜 버렸고 사무엘 에투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맞교환을 했지만 이후 즐라탄과는 원수사이가 되고 말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부임 당시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전 스트라이커 였던 마리오 만주키치를 13-14시즌 이후 이적시켜 버렸고 팀의 레전드중의 한명이였던 슈바인슈타이거토니 크로스[41] 등 실력이 있던 미드필더 선수들을 내치고 말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과르디올라에게서 중용받지 못하고, 같이 성공하지 못한, 당시의 S급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영향력은 있으나, 큰 신빙성은 없다.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과르디올라에게서 중용받고, 같이 우승컵을 든 선수들은 과르디올라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기존의 자원을 대상으로 전술을 짜는 감독이 아닌,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감독임은 분명하며. 직접적인 대화와 면담을 선호하지 않는 것 또한 분명해보인다.

맨시티에 부임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났는데 맨시티에서 지금까지 활약을 잘 해온 주전 골키퍼인 조 하트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결국 하트는 토리노 FC로 임대를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후 자신이 아는 스위퍼 키퍼인 클라우디오 브라보를 영입하였다.심지어 브라보는 손발을 맞추지도 않은 상태로 맨유와의 원정 더비 무대를 데뷔전으로 갖는다.

스카이스포츠는 과르디올라가 내친 선수들로 베스트 11을 구성을 하기도 했다.

펩이 내친 선수들
FW
호나우지뉴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W
사무엘 에투
MF
데쿠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토니 크로스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당치
DF
야야 투레
DF
엠레 찬
GK
조 하트

이상한 한 명[42]시엔 아예 이 있는거 같지만 넘어가자

5.3 기타

흔히들 부르는 '펩(Pep)'라는 이름은 애칭이다. 본래의 이름은 카탈루냐식으로 조제프(Josep)이다.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맨시티 감독 취임 기자회견 동영상 참고(추가바람)

축구 감독 중에서 특히 국내외로 개인 팬덤이 많은 감독이다. 주로 바르셀로나 시절 팬이 된 케이스가 많은듯 하며, 이 팬들이 과르디올라 감독을 따라 응원 팀을 옮겨가서 그 팀의 원래 팬들과 다투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6 기록

6.1 선수 시절

6.1.1 우승 경력

6.1.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0/91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401000
1991/92FC 바르셀로나 B스페인 라 리가92----
1991/92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6030110
1992/93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805160
1993/94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3405090
1994/95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424060
1995/96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3217071
1996/97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3808071
1997/98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603050
1998/99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213010
1999/00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500000
2000/01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444380
2001/02브레시아 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11210--
2002/03AS 로마이탈리아 세리에 A403110
2002/03브레시아 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13131--
2003/04알 아흘리카타르 스타즈 리그1820000
2004/05알 아흘리카타르 스타즈 리그1850000
2005/06도라도스 데 시날로아멕시코 리가 MX1010000

6.2 감독 시절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 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주제 무리뉴
3위
알렉스 퍼거슨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 보스케
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2015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루이스 엔리케
2위
펩 과르디올라
3위
호르헤 삼파올리

6.2.1 감독 기록

  • 바르셀로나 B (2007/08)
    • 스페인 테르세라 (1)  : 2007/08

6.2.2 리그 기록

연도리그구단순위경기승점
2007/08스페인 테르세라[43]FC 바르셀로나 B1382585704183
2008/09스페인 라 리가FC 바르셀로나13827651053587
2009/10스페인 라 리가FC 바르셀로나1383161982499
2010/11스페인 라 리가FC 바르셀로나1383062952196
2011/12스페인 라 리가FC 바르셀로나23828731142991
2013/14독일 분데스리가FC 바이에른 뮌헨1342932942390
2014/15독일 분데스리가FC 바이에른 뮌헨1342545801879
2015/16독일 분데스리가FC 바이에른 뮌헨1342842801788

6.3 수상 기록

  • 2008/09 미구엘 무뇨스[44]
  • 2008/09 UEFA 올해의 감독
  • 2009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09 IFFHS 세계 올해의 감독
  • 2009 돈 발론 어워드 올해의 감독
  • 2009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09 카탈루냐 어워드
  • 2009/10 미구엘 무뇨스
  • 2010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0/11 UEFA 올해의 감독
  • 2011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1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11 FIFA 올해의 감독
  • 2011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 2012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2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13 글로브 어워드 올해의 감독
선수/감독 생활 합쳐서 라 리가 9회, 코파 델 레이 4회, 수페르코파 델 에스파냐 7회, 챔피언스 리그 3회, UEFA 수퍼컵 4회, 올림픽 금메달 1회, 기타 3회 등 수집한 트로피가 서른 개가 넘는다.
  1. 2009년 7월 29일에 열린 제85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심의에서 그의 이름을 이와 같이 표기한다고 결정되었다. 펩이 아니라 페프가 옳다.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겠지만.
  2. 흔히 '펩'으로 불리지만, 바른 표기는 펩이 아니라 '페프'이다.
  3. 요한 크루이프도 같이 있는 모습이다.
  4. B팀에서 2시즌(1990-1992), A팀에서 9시즌(1992-2001).
  5. 펩과 AS 로마에 관한 재미 있는 인터뷰가 있다. 2014/15 챔피언스리그에서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이 AS 로마와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AS 로마와의 조별 예선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과르디올라는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를 언급하며, "나와 현역 시절을 함께 했던 토티가 여전히 경기를 뛴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이다. 내일 경기에서 그는 그라운드에, 나는 벤치에 있을 것이다. 내가 AS 로마의 선수였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라는 나름의 자학성 멘트를 남겼다.
  6. 살리나스와 고이코체아가 한국전에서 각각 골을 넣었다.
  7. 데쿠와 호나우지뉴는 곧바로 팀에서 방출된 반면, 에투는 과르디올라 부임 첫 시즌만 같이 보내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어 나갔다.
  8.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때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오늘날의 펩.
  9.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축구 팀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10. 메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제대로 활용할 여건도 되지 못하긴 하지만...
  11. 치그린스키의 수비 기량 자체는 좋았으나, 바르셀로나의 팀스타일과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12. 파브레가스는 유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바르셀로나라는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못 하였다. 그를 오랜만에 본 코치가 볼터치가 왜 이리 나빠졌냐며 놀라기도 했다.
  13. 사실 과르디올라는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잘하는 것은 항상 'xx빨'이라며 까이는 경우가 있다. 메시가 잘하는 것은 샤비, 이니에스타빨이며 샤비가 잘하는 것은 메시 혹은 팀빨, 과르디올라는 선수빨... 그냥 당시 바르셀로나 자체를 서로가 서로빨인 것으로 보는 게 맘 편할 듯 좋게 말하면 조직력이 탄탄하다는 이야기다.
  14. 단, 구스타보는 단 한경기도 쓰지 않았는데 이미 구스타보가 스콜라리 감독의 조언에 따라 팀을 떠날 마음을 굳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5. 전반 7분만에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먹혔다가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시작하자마자 에당 아자르에게 실점했으나 경기 종료 10초전연장후반121분하비 마르티네즈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원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마누엘 노이어가 첼시의 마지막 키커 로멜루 루카쿠의 슛을 선방하며 뮌헨이 우승했다.
  16. 참고로 맨시티는 2013-14시즌 11월까지 뮌헨전을 빼면 단 한 경기도 홈에서 지지 않았다.
  17.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직후 뮌헨은 다음 시즌에서 챔스는 우승했지만 리그는 10위까지 쳐지는 등 유례없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여타 월드컵 직후 시즌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직후에도 06/07시즌은 펠릭스 마가트가 그야말로 똥을 뿌직뿌직싸며 팀을 11위까지 곤두박질 치게 만들어 경질되어 UEFA컵에 나가게 됐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바로 다음 10/11시즌도 월드컵때문에 부상당한 아르연 로번이 전반기를 통째로 쉬어야했고, 루이스 반 할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유망주 기용과 토탈 풋볼을 고집하다가 챔스티켓도 잃을뻔하고 결국 무관에 그치고 반할도 경질됐다. 그나마 02/03시즌은 월드컵 직후시즌임에도 더블을 했는데, 당시 독일 베스트11에 뮌헨선수라고는 올리버 칸카르스텐 얀커 정도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01-02 레버쿠젠의 콩트레블 멤버거나 유망주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어스텐 프링스 등으로 채워졌다.
  18.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이 자국 국대로 뛰는데다, 특히 독일은 메이저대회만 나가면 기본 8강은 찍으니 체력소모도 많고 부상위험도 크다.
  19. 대표적인 포지션 변환으로 피에르-에밀 호이베르그의 풀백 기용, 알라바의 중앙미드필더 기용 등으로 포지션 변화를 주고 있다.
  20. 이 경기에서 메시의 2번째 골 장면에서 제롬 보아텡은 페이크 모션에 속아 자빠지면서 해외에서 합성요소가 되었다.
  21. 특히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에 대해서 운이 없다고 쉴드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부상으로 인한 전력 누수는 펩의 로테이션을 안돌리는 강행군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특히 바르샤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가 리그에서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물론 패 할 당시엔 메시와 불화설까지 나면서 폭풍같이 까였다 주력 선수들을 꾸준히 로테이션으로 관리하면서 챔스 결승까지 베스트 11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한 것에 비교하면 매년 후반기에 부상병동으로 전력이 약화 되는 펩의 뮌헨은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22. 바르샤 전 부회장이자 현재 맨시티 CEO인 페란 소리아노, 바르샤 전 기술이사이자 현재 맨시티 기술이사인 티키 베기리스타인. 바르샤 전 수석 스카우트이자 현재 맨시티 수석 스카우트인 보얀 크르키치 시니어. 티키는 특히 펩을 바르샤 1군 감독으로 키워준 당사자라 펩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 만수르 구단주는 애시당초 펩을 위해 이 보드진들을 임명했다.
  23. 맨시티는 무려 지난 3년간 펩 한 명 모시기 위해 유스 스텝들을 포함해서 스카우트 등 전부 바르샤 출신에 펩과 친분있는 인물들로 구성한데다 링크도 이미 펩 재계약 논의가 시작된 여름부터 나기 시작했다.
  24.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특급 유망주, 파블로 마페오가 이 구단으로 현재 임대 가 있다. 맨시티의 실력있는 유망주들은 거의 이 구단으로 보낼 플랜.
  25. 맨시티 자체가 팬덤이 국내에선 비교적 작은 편이다보니 이런 자세한 소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6. 올 시즌 뮐러는 키커 평점 기준으로 분데스 전체에서도 2.66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12-13시즌의 리베리나 14-15시즌 전반기의 로벤이 보여준 2점 초반대의 리그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할 것이나, 중추적인 선수로 볼 것임은 당연하다.
  27. 물론 알라바는 보아텡, 하비 마르티네스, 바트슈투버 등의 부상으로 센터백 라인이 붕괴된 상황에서 키미히와 함께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면서 위기를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베나티아가 센터백으로 기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함정은 베나티아 또한 엄청 못한다는 점 굳이 리그에서 별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베르나트를 선발로 기용하면서까지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나 베르나트는 이번 경기 키커지 기준 평점 5점으로 최악의 활약을 보여준 상황.
  28. 하인케스의 리그 우승 1회를 포함
  29. 그런데 정작 로벤은 후반기 바르셀로나 전부터 각성했지 그 이전엔 로테이션 자원에 불과했다. 펩 이전 바이에른 뮌헨이 그만큼이나 스쿼드가 두텁고, 어느 한 명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공격루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30. 순간 속도로는 상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선수를 압도한다는 의미. 실제로 로벤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시속 37km라는 안드로메다급 순속을 보여준 바 있다.
  31. 그나마 티아고 알칸타라가 챔스 8강에서 복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메흐디 베나티아는 챔스 4강에서야 복귀했는데 복귀 후 첫경기니 폼이 정상적일리는 없고.. 로베리는 떨어져나간지 오래고 홀거 바트슈투버는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안했다. 여기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마저 DFB-포칼 4강에서 미첼 랑게락 골키퍼와의 충돌로 코뼈 부상을 입은 채로 무리하게 경기에 뛰어야 했다. 여기에 다비드 알라바의 장기부상은 쐐기를 박는 가장 뼈아픈 치명타였고, 바르샤전에서 실점의 원흉이 그 대체 자원인 후안 베르나트하피냐였던걸 생각하면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었다.
  32. 물론 펩이 바르셀로나 감독이던 시절에는 아우베스를 올려서 만든 비대칭 백3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다.
  33.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이를 두고 바르셀로나는 학교라고 깠다.
  34. 특히 무리뉴가 레알에 온 이후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언플을 시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35. 단 즐라탄의 자서전에 따르면 무리뉴가 인테르 감독이던 시절에도 과르디올라는 물론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선수들이 반감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리뉴가 첼시 감독이던 시절 챔스에서 맞붙으면서 했던 언플과 디스 때문으로 추정된다.
  36. 무리뉴에게 "El puto amo"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씨발새끼 정도의 뜻이다.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수있는 대목. 다만 el puto가 무리뉴를 지칭하는 욕설이 아니라 한국어로는 "존나"쯤 되는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 양반 존나 말 험하게 하네" 였다고 한다. 정확한 워딩은 "Mourinho es el puto jefe, el puto amo(Mourinho is fucking boss, fucking darling in the press room)", 번역하면 "무리뉴 씨발새끼는 언론 플레이의 천재다. 언론에서 예뻐하는 씨발새끼다" 정도의 뜻. 이날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에게 친히 '프레스 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내용상으로도 맞는다.
  37. 당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정당한 심판 판정을 비난한 것에 어이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 말을 험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날 말을 험하게 한 것은 과르디올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리뉴도 잘한 것은 없다.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신사적인 성격이라 인터뷰 등도 꽤나 신중한 편이지만 무리뉴는 평소 바르사는 챔스 협회의 가호를 받는다며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을 시전하다 다른 감독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레알이 진 경기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돌출발언을 일삼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왔으므로 둘이 원투 펀치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리뉴는 평소 신사적인 성격도 아니고 경기 외적으로도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감독인 반면, 과르디올라는 첫 시즌 때만 해도 매너있는 신사라고 추앙받았으니.. 둘이 같은 급이 됐다는 것은 결국 과르디올라가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듯.
  38. 후에 밝힌 바로는 무리뉴의 도발에 대해 바르셀로나 수뇌부에서 신사적인 인터뷰를 하도록 종용했고 그래서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수 년간 구단 내 파워 게임 등에까지 얽혀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상황에 몰리자 그냥 확 질러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후 무리뉴에 대해 내 보인 날선 발언들은 사실상 바르셀로나 생활을 청산할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봐도 무방할 듯.
  39. 물론 소속팀 선수 제외.
  40. 다만 호나우지뉴는 펩이 부임했을 당시 막장화가 진행중이였다.
  41. 과르디올라는 크로스를 원했지만 크로스와 구단의 사이가 악화된 것이다.
  42. 엠레 찬은 지금이야 잘하지만 뮌헨 시절엔 갓 유스에서 올라온 선수에 가까웠으며, 그 때문에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고 다른 팀으로 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저 위 선수들 대부분은 지뉴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팀에서 잘하고 있는데 펩이 내친 것이다.
  43. 스페인 4부리그
  44. 라 리가 올해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