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마오리어에서 넘어옴)

maori-warrior-2.jpg

따이아하(taiaha)라고 불리는 무기를 든 마오리 전사의 모습

1 Māori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평화로운[1] 원주민. 흔히 마오리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오리어로 māori는 '보통의', '일반적인'이라는 형용사이며 자신들은 스스로를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라고 칭한다. '땅의 사람'이란 뜻. 한국사람들에게는 보통 코와 코를 비비는 인사법인 호옹이'홍이'(hongi)와 박력있는 전투춤인 하카(haka)로 잘 알려져있다.[2]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10~11세기 경이다. 이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오리족의 정착에 대해서는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신화전설들을 통해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은 하와이키(hawaiki)라는 섬이었다.[3] 하와이키에는 여러 부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전쟁과 부족해진 식량으로 인해 배를 타고 새로운 섬을 찾아 정착하려 하는 부족들이 생겨났다. 어느 날 하와이키의 대족장인 쿠페(Kupe)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도중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쿠페의 아내는 뉴질랜드 남섬 특유의 만년설을 멀리서 보고 "저기는 섬이 아니라 긴 흰구름이에요."라고 말하며 상륙을 말렸다. 하지만 쿠페는 그곳으로 가 보았고, 이렇게해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마오리어로 뉴질랜드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하는데, '긴(roa) 흰구름(aotea)'이라는 아내의 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마오리족이 상륙하기 이전에 뉴질랜드는 무인도였으며, 섬에는 모아, 하스트 독수리 같은 거대한 조류들이 서식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이 얼마나 위협스러운 종족인지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에 몇백년 만에 마오리족으로 인해 모두 깡그리 씨가 말랐다.(...) 마오리족은 고구마[4]를 경작하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는데, 특히 돼지가 이러한 새들의 알을 잘 파먹었기 때문에 더더욱 개체수가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의 환경에 잘 적응했는데, 이들의 집은 화산섬인 뉴질랜드의 지열을 이용한 난방효과를 얻기 위해 땅을 파서 지붕을 낮게 올렸으며 구덩이를 파서 고구마와 돼지고기등을 묻고 뜨겁게 달군 자갈돌을 그 위에 덮어놓아서 음식을 요리하는 항이(hangi)라는 요리법을 발달시켰다.[5]

2 마나와 터부의 사회

마오리족의 사회는 매우 엄격한 신분질서로 움직였다. 상위계급에는 족장과 전사들이 있었으며, 여자와 노예는 하위계급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마나(mana)였다.

마오리족은 모든 이들에게 서로 다른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마나는 마나가 높은 이로부터 물려받거나 - 즉 족장이나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 공을 세워 부족 전체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죽은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다.RPG게임?마오리족은 의식적으로 식인을 행했는데,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의 마나를 흡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643년에 네덜란드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이끄는 탐험대가[6] 뉴질랜드에 상륙했을 때, 마오리족은 이들을 공격하고 죽은 선원들의 시체를 먹었다. 이에 질려버린 아벨 타스만은 그대로 철수, 마오리족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다고 한다.[7]

마나에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제약이 가해졌는데, 이를 마오리어로 타푸(tapu)라고 부른다. 영어의 터부와 같은 의미이다.[8] 타푸는 조상들의 무덤같은 신성한 장소와 마나가 높은 족장이나 전사들의 집, 티키(tiki)라고 부르는 우상들을 모셔놓은 성소같은 곳의 출입을 제한하는 금기와 특정 음식에 대한 금기, 그리고 행동에 대한 금기로 나타났다. 가령 마나가 높은 이들만이 복잡한 문신을 할 수 있었고, 또 노예와 많은 부인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마오리족의 마을은 파(pā)라고 불리는 요새로, 높은 망루와 목책, 구덩이 등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타뿌가 존재하는 조상들의 무덤 또한 파 못지않게 요새화되어 있었다. 19세기 중엽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마오리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풍습에 익숙치 않던 영국군은 마오리족의 무덤을 마을로 오인하고 포격을 가하기도 했는데, 자신들의 마나를 훼손당한 것으로 생각한 마오리족의 분노앞에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괜히 전투종족이 아니다.

마오리족의 마을 모습. 콘스탄티노폴리스 삼중성벽이냐 생긴게 꼭 Piha에 있던 Pa (요새화된 거주지)같다

먼저 마을에 들어오려면 그 마을의 추장에게 입장하려는 "부족"[9]의 "족장"[10]이 선물을 바친 다음[11], 서로 마오리어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족은 이런 역사를 지녔다던가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옛날에는 이런식으로 부족으로 들어오려는 허락을 받았는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방문하는 부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죽을때까지 싸우는 배틀이 일어났다고 한다. 흠좀무. 그 때문에 추장 뒤에 마오리 남성들이 있고, 그 뒤에 여성이 있다. 혹 싸움이 붙으면 남성이 대를 이을 수 있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들어오려는 부족장의 말이 끝나면, 부족의 사람들이 "후이에 타이에 타이키에"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족장이 말한) 이 말에 동의한다."라는 뜻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들어가려는 마을 부족 추장이 아무리 환영하고 싶어해도 현대화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을 간직하고자 매우 진지하고 마치 화난 듯하게 말하는데, 진짜 화난게 아니다. 실제 일어난 일로, 마을의 8살쯤 되는 마오리 아이가 개념이 없어서 (..) 부족장이 말하는 도중에 앞에 나타나서 방해를 하자, 부족장이 잠깐 말을 멈추고 웃으며 아이를 방에 들여보냈다 (..). 옛날과 다르다.

적절히 협상이 끝나면 두 부족 사이는 적개심을 풀고 바로 위에 말한 얼굴 부비는 인사인 홍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땅에 뜨거운 돌덩이와 음식을 넣어서 만드는 항이 (hangi)라는 전통 저녁을 만들어 방문하는 부족과 같이 식사를 한다.

95861-004-C16A9543.jpg

마오리족 마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화레 누낭아 - whare rūnanga)의 모습[12]

보통 이곳 안에는 돌아가신 조상님 사진 혹은 그림이 달려있다. 조상님 나이와 마찬가지로 건물도 무지 오래된게 대부분[13]. 또한, 마오리족이 세상을 떠났을때, 그 몸을 이곳에서 2~3일 정도 놔둔다고 한다. 그 동안은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고. 뭔가 으시시하지만 조상님들이 보살펴주는 곳이라 한다.

참고로 시체를 자신의 부족의 화레에 모시는게 매우 큰 의미이자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심지어 어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부모와 남편이 시체를 서로 모시겠다고 맞짱을 뜬 경우가 있다. (..) 이런식으로 싸우는 것 또한 그 사람에게 존경심과 중요성을 표현하는 일로서, 그다지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뜨면 먼 친척과 아는 사람도 전부 와서 하루쯤 지내고 가는데[14] , 마오리 왕족이 죽었을때 2만 5천명이 왔다 갔다고 (..)

이 마을 회관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바로 사랑방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손님이 오면 여기에 담요나 매트리스 등을 깔고 잔다는 건데, 마오리 조상님 사진이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 뉴질랜드의 일부 학교에서는 한국의 수련회 비슷한 개념으로 이런 화레가 있는 마오리촌으로 캠핑을 가기도 한다. 넓은 화레에 학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는데, 마오리 특유의 토템문양들로 도배된 천장과 섬뜩한 문신을 한 조상의 사진을 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3 전투종족?



뉴질랜드 럭비팀과 호주 럭비팀이 각각 마오리 하카와 어보리진 전투함성으로 서로 도발하는 장면호주인들은 이럴 자격 없을텐데.

마오리족은 평상시에는 tangata whenua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구마 농사를 짓고, 돼지를 기르며 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붙으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싸웠다. 보통 싸움이 끝나면 패배한 부족은 모두 노예가 되고 이들을 이끄는 상위계급 전사나 족장들은 마나를 흡수할 요량으로 먹혔기 때문에 부족간의 전쟁이 끝나면, 이기는 쪽은 한번에 두배씩 커졌다. 하지만 이렇게 세를 불린 부족이 생기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섬인 뉴질랜드에서 이런식으로 싸웠다간 손해도 손해지만, 언젠간 마오리족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결국 하카(haka)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15]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모욕하면서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는데,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16] 양쪽 모두의 하카가 끝나고, 한쪽 부족의 추장이 자신들의 세가 밀린다고 싶으면 그들은 말없이 물러났으며 전쟁은 그걸로 끝났다.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마나를 흡수했다고 여겼으며, 패배한 부족도 자신들의 소중한 인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익인 셈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하카를 끝나고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때는 알짤없이 공격에 들어갔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파투(patu)라는 초록빛 옥으로 만든 몽둥이와 타이아하(taiaha)라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싸웠지만, 19세기에 들면 유럽상인들을 통해 머스킷총을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투는 더더욱 처절한 양상을 띄었다.(이걸 일명 머스킷전쟁이라고 부름) 1840년 마오리 부족들간의 갈등을 중재한 영국과 마오리 부족장들 사이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이후 부족들의 갈등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때까지 마오리족은 이미 서로 2만명 이상을 살상한 상태였다.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직전의 인구추정이 10만명정도인데 이 머스킷전쟁이후에는 전쟁과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5만이하로 줄어들은것으로 추정한다. 머스킷총을 갖추지 못한 부족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마오리 부족들도 이 시기 상당히 정리되었다.

이들의 대범함은 해외원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1850년대 일부 부족들이 영국 상선을 고용해서 평화로운 원주민과 풍부한 사냥감이 있다는 채텀 제도[17]로 쳐들어가서 그곳 원주민들을 정복한 사건도 있었다. 채텀제도의 원주민들은 마오리족에게 잡아먹혀서 멸족당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 나오는 이야기로, 마오리족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원정이라고...[18]

양차대전, 특히 제1차 세계대전참호전에서 마오리족의 용맹은 유명했으며 그곳에서도 하카를 추는 대범함으로 용맹을 떨쳤다(2차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선 주로 노획한 독일군 무기를 애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상대해야 했던 추축군 군인들은 "이건 뭐, 총을 갈겨도 맞고 쓰러져도 신음소리도 안 내고, 또 다른 놈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개돌해서 아군 진지를 케첩범벅으로 만들더라..."라고 하며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히틀러가 '만약 마오리족이 독일을 도왔다면 전쟁을 이겼을 것'이라고 한탄했다는 카더라가 존재할 정도이다.

E_003261_E_Maoris_in_North_Africa_July_1941.jpg
2차대전 아프리카 전선에서 하카를 추는 마오리 전사들 주먹감자

또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대인배 원주민 부족인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리족 역시 자신들의 의지로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파병을 자청했다. 이 당시 뉴질랜드 지상군이이었던 Kayforce의 마오리족 비율은 7.5%였지만 전쟁 후반부에는 지원군의 약 1/4 가량이 마오리 전사들이었다. 출처 "창과 화살을 들고 갔기 때문에 미군에서 총을 얻어다가 참전했다"라는 말도 안되는 루머가 있으나 위에 사진을 보면 알수있겠지만 2차 세계대전당시 총과 폭탄등으로 싸운 마오리족이 활과 창을 들고 6.25에 참전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때 참전용사들에 의해 마오리족 민요인 Pokarekare ana가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이 곡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연가로 번안되어 불리었다.Pokarekare Ana, 우리나라에 알려진 연가 버전.

전투종족이지만 Deadliest Warrior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소림승에게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시즌 2까지 시대상 불평등한 대결이나 편파적인 요소가 많았고 무기 데이터 뽑을 때도 비전문가가 나와서 들고 설치는 것도 있었다(특히 사무라이vs 바이킹). 그래도 시즌 3 부턴 전술 전문가로 전 네이비 씰이였던 사람이 오고 난 뒤 기존 데이터에 x펙터로 역사적 기록이나 전술같은 변수를 넣어준 후부터 나아졌다.

4 백인들과의 공존

아벨 타스만의 항해 이후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뉴질랜드에는 18세기 중후반부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경선원들이 오가기 시작했으며, 곧 선교사들이 뒤를 따랐다.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들과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마오리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학교를 세웠고, 이미 19세기 초반에 이르면 마오리족 중에서도 유럽 상인에게 머스킷총을 구입하고,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와이탕이 조약 당시 마오리족의 족장이었던 호네 헤케(Hone Heke)도 영어를 알고 있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 당시 마오리족은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았으며 [19], 이들에게는 영국에 충성할 것을 조건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토에 대한 영유권과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백인 이주민들과 마오리족과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이 터졌다.[20]



와이탕이 조약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로, 영국인과 마오리족의 관점의 차이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깨알같은 How do you do Mr.Governor드립

뉴질랜드 정부는 자국의 공용어로 마오리어와 영어를 모두 인정했으며, 심지어 국가도 마오리어와 영어 순서로 부른다. 정부 홈페이지도 마오리어와 영어 모두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6, 70년대 마오리족은 대부분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대다수가 고유문화로부터 이탈해 있었으며, 80년대 들어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족을 대상으로 마오리어 보급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한때 사멸위기에 처한 마오리어는 다시금 화자수가 늘기 시작한 추세이다.

현재는 뉴질랜드 인구의 1/6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이 그나마 백인에게 꿀리지 않고 저항한 역사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어보리진이나 북미 원주민들에 비하면 나은 사회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편이고, 마오리족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각종 복지 해택과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이와 관련된 음모론이 하나 있다. 대외적으로는 유화정책을 써서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지원금으로 마오리족이 일할 이유를 박탈하여 그들을 사회 하층민으로 만드는것이 숨은 진짜 정책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음모론은 한마디로 다방면에서 마오리족들을 잘 대우해줘 그들이 배부른 노예가 되길 원하는것이 뉴질랜드 정부의 숨은 의도라는 것. 당연하지만 말만 존재하지 확인된 바가 없다.

이러다 보니 백인극우들을 포함한 몇몇 비마오리 뉴질랜드인들은 마오리족을 마냥 좋게만 보지 않는다. 땅 뺏고 눌러 산게 누군데?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쟤네들을 먹여살리냐 라는 주장인데 좀 심한 경우는 마오리족을 기생충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종종 발생하는 역차별 문제가 이러한 마오리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

하지만 여전히 전통문화를 잃어가며 가난 속에서 고통받는 마오리족도 적지 않은 편이다. 가난한 마오리족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워, 2005년에는 전체 감옥 수감자 비율의 절반 가량이 마오리족일 때도 있었다. 기사 실제로 오클랜드 남부의 일부 지역 (오타라 라던지..)들은 슬럼에 비유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주민들이 마오리를 포함한 남태평양 원주민 계이기는 하다. 뉴질랜드 정부는 범죄에 노출되는 마오리를 보호하고자 각종 복지 사업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로인한 역차별 문제도 발생하고 있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다.

29g1h1i.png

1994년에 개봉된 뉴질랜드 영화 'Once were warriors'(한국 개봉명은 '전사의 후예')는 도시에서 빈민층으로 살아가는 마오리족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니 마오리족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한번 보자.[21]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 스타워즈장고 펫으로 유명한 테무에라 모리슨. 감독은 마오리와 백인 혼혈로 어나더데이(영화)를 감독하게 되는 리 타마호리.

5 뉴질랜드 영어속의 마오리어

마오리어(Te reo māori)는 굉장히 단순한 발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어와 비슷한 음절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되는 글자도 a, e, h, i, k, m, n, o, p, r, t, u, w, ng, wh, ā, ē, ī, ō, ū[22] 가 전부다. 여기서 모음은 장모음과 단모음으로 구분되며, 자음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외래어를 번역할때 일본어 만큼이나 괴악스러운 발음이 된다. 게다가 f 발음을 f라는 한 글자가 있는데도 굳이 wh로 쓰기 때문에 더 길어진다. 그래서 처음 뉴질랜드에 온 한인들은 팡가레이를 황가레이라고 발음한다 가령 축구(football)은 마오리어로 whutoporo(후토포로), 경찰(policeman)은 pirihimana(피리히마나)가 된다.(...)[23] 영어에서 비롯된 단어들 조차도 마오리어 조음방식의 한계로 인해 영국은 Engarani(엥아라니, <- England), 총독은 Kāwana(카-와나, Governor), 엘리자베스 2세는 Irihapeti te Tuarua (이리하페티 테 투아루아)식으로 쓴다. 단순한 발음을 커버하기 위해 마오리어는 대량의 전치사와 후치사를 사용하고, 또 접두사와 접미사도 모두 써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문법구조를 갖고 있는데, 다른 언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언 어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구조언어학에서는 아예 포합어라는 새로운 언어 형식으로 분류하는데, 폴리네시아 계열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계열, 아이누 쪽에서 보이는 형식이다. Taumata가 대표적인 포합어의 예시로, 단어 하나가 문장 하나가 되는 성질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본어보다 심한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Kei te tuhituhi whārangi ipurangi o te namuwiki au.[24]
지금 (그) 쓰고있다 페이지 인터넷 (~의)(그)나무위키 나는.

= 나는 지금 나무위키 페이지를 쓰고 있다.

뉴질랜드식 영어에는 상당히 많은 마오리어 어휘가 존재하며, 그 중 몇가지는 일반적으로 쓰인다. 아마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정말로 반가워할지도 모른다.[25]

Haere mai 환영합니다. (하에레 마이)
Kia ora! 안녕! (키아 오라)

Ka pai! 고맙습니다! (카 파이!) - 붙여쓰면 '정말 좋은', '맛있는'등의 뜻으로 쓰인다. It's kapai! (좋아요!), What a kapai kai! (이 음식 정말 맛있네요!)처럼...

tama 아들, 혹은 남자어린이 (타마)
tamahine 딸, 혹은 여자어린이 (타마히네) - 애칭으로 쓰인다.

whare 오두막, 별장 (파레[26]) - 본래 '집'이란 뜻이지만 영어에선 hut의 대용으로 쓰는듯.

pākehā 백인 (파케하) - 백인 이주 시기에 생겨난 단어로, 그 어원은 Fuck You(...)를 음차한 것. 오늘날에는 주로 뉴질랜드 출신이 아닌 백인들을 지칭할때 쓴다.

Aroha 사랑합니다. (아로하)[27]

kumara 고구마 (쿠마라, 코무라)쿠므라 라고 발음하면 편하다

아마도 최고의 전투민족중 하나일 듯.

  1. 과거 도덕 교과서에서 아래에 나오는 마오리족 특유의 코 비비는 인사 사진을 넣으면서 아주 평화로운 이미지로 묘사한 바 있다. 속지마
  2. 뉴질랜드의 럭비팀인 All blacks는 경기 전마다 하카를 추는걸로 유명하다.
  3. 하와이키와 비슷한 전설은 폴리네시아 동부에 여럿 존재한다. "Avaiki" (소시에테 제도) "Savai'i" (사모아), "Havaiki" (레오 타히티).
  4. 폴리네시아인들의 조상들이 남미까지 건너가 수입해왔다.
  5. 지열난방의 효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겨울철이면 눈까지 내리는 남섬에서 마오리족은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었다. ㄷㄷㄷ
  6. 이 탐험대는 뉴질랜드 상륙후에 호주로 향한다. 안타깝게도 시드니 근처에서 배를 돌리는 바람에 호주의 새로운 신천지를 발견하지 못한 셈. 남방대륙 탐사와 식민지 개척의 주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인도 회사에서 비난을 받았고 말년이 비참해졌다. 타즈메니아 섬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땄다.
  7. 번개를 쏘는 우상까지 들고 있는 낯선 전사들을 본 마오리족은 분명 이들의 마나가 자신들보다 높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8. 사실 taboo는 같은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인 통가족의 언어 'tabu'에서 기원했다.
  9. 여행객이라면 여행 같이 하는 분들
  10. 가이드라든가... 다만 마오리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11. 옛날엔 동물 등이였겠지만 요즘은 그냥 지폐 (..)
  12. 2011년 뉴질랜드 지진사태 이후 이 화레누낭아를 중심으로 지진피해자들의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마오리족들이 지진피해복구과 구호활동에 앞장서서 이목을 끌고 있다. 보통 때의 쓰임새와 비슷하다. 관련자료.
  13. 50년대 만들어진것도 수두룩하다.
  14. 가까운 친척은 며칠을 화레에서 시체와 같이 잔다고 한다(!) 물론 붙어서 자는건 아니고 그냥 같은 방에서...
  15. 비단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문화권 및 고립된 특징이 있는 섬나라 전반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단적인 예가 일본의 와(和)사상과 영국의 블랙 유머.
  16. 마오리족 특유의 혀를 내미는 동작은 사실 너를 잡아먹어버리겠다!라는 뜻의 위협이다.(!)
  17.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으로 부터 동쪽으로 800Km 떨어진 제도로 현재는 뉴질랜드의 자치령이다.
  18. 총, 균, 쇠 권두에 여러민족들의 사진이 몇 장 실려있는데 여기에 그 채텀 원주민의 최후의 후예라는 어떤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19. 그런데 영문과 마오리어 조약의 내용이 달라서 논란이 많았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해당 조약문을 마오리어로 번역한 사람은 법적 지식이 전혀 없던 선교사였고, 단 하룻밤만에 번역하는 바람에 검토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훌륭한 조약문 만들다: 마오리 왈도전환 마오리어에 원래 없던 표현을 창조해내거나(...) 기존에 마오리족 사이에서 통용되던 용어를 "이교도적이다!"이라며 억지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오역으로 kāwanatanga(카-와나탕아)가 있는데, 영어로 직역하면 Governorship 정도 되는 단어이다. 애초에 카와나라는 단어부터가 영어의 Governor를 마오리 음운에 따라 바꾼것에 불구하고, tanga라는 접미사는 영어의 -ship과 대응된다. 즉 영어 원문에서는 왕권 신수설에 의한 주권(sovereignty)을 번역하려 했는데 애초에 억지로 만들어낸 kāwanatanga(카-와나탕아)대신 Te mana o iwi (부족의 마나)를 사용했다면 그나마 각 부족들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한다는 영어 원문의 취지에 적합하게 번역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이교도적인 표현이라며 배제되었다.
  20. 전쟁 당시 마오리족은 이미 머스킷과 장검,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때문에 식민정부는 다른 식민지들과 달리 뉴질랜드를 요새화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전쟁전에도 총독 관저를 마오리들이 태워버려 초대 총독인 윌리엄 홉슨은 군함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21. 옛날 외화로 더빙해서 방영해 주었다. 특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베스 성우로는 최문자. 영화 이야기는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마우리족 한 가정을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성실한 것 같던 가장이 그냥 실업수당이나 받아 챙기면서 살려고 한다. 당연히 아내는 화를 내는데 이 가장이라는 놈이 폭력을 마구 휘두른다. 결국 첫째 아들은 갱단에 들어가고 둘째는 소년원 등 막장이 따로 없다. 심지어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보는데 자신은 아버지 같은 것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나중에 아버지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성실하고 대학의 갈 수 있던 딸은 결국 자살한다. 이렇게 가족이 붕괴 될 것 같은데 다행히 첫째 아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 마우리족의 기상을 배우고 베스도 아이들을 대리고 남편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여기에서 폭력 가장은 다시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개소리를 하지만 베스는 미련 없이 떠난다.
  22. 라틴 문자 26자 중 안 쓰는 문자가 b,c,d,f,j,l,q,s,v,x,y,z로 총 12개가 있다. 사용되는 알파벳이 14개이고,그중에서도 합자는 ng,wh가 전부다. 그리고 장음을 표기하기 위해 ā, ē, ī, ō, ū가 추가됐다.
  23. book은 마오리어로 pukapuka라고 하는데, 이미 존재하는 마오리어 단어와 혼동되지 않게 중복한것. 이런 단어도 상당히 많다.
  24. 발음은 "케이 떼 투히투히 파랑이 이뿌랑이 오 떼 나무위키 아우"
  25. 그런데 유럽계 뉴질랜드인에게는 Haere mai, kia ora, whanau, whare, pakeha나 kumara, hangi같은 음식 관련 단어가 자주 쓰이지 아래에 Ka pai같은 단어는 마오리족이 아닌 이상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교에 마오리 시간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고 이 각주를 다는 위키러도 마오리어 시간이 있어 배웠으나 wai가 물이라던지 이런걸 제외하면 기억나는것도 없고 결정적으로 배워도 쓰는 단어나 기억하게된다. 즉 마오리들과 어울려 사는게 아니라면 배워도 쓸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아 현지인들도 그게 뭔데 하는 단어들이 많다.
  26. 과거 화레라 써있었는데 화레가 아니다. 마오리 어에서 wh는 영어의 f 발음과 같다.
  27. 아마 하와이 언어의 aloha를 떠올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 '알로하'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그 말인 즉, 사랑합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더 있다는 것. 하와이어도 마오리어와 같은 폴리네시아계 언어로, 서로 상당기간 교류없이 떨어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비슷하다. 가령 마오리어로 하늘은 te rangi(떼 랑이)인데, 하와이어로는 ka lani(카 라니)가 된다. 그리고 하와이인들은 자신들을 maoli(마올리)라고 칭한다.(!) 다만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중 폴리네시아 제어의 대부분이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