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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명은 권하자(1940~2013). 서울 정동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에 '맥도날드 할머니'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2 과거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권하자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당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웠으나 셋방살이를 하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어서 등록금을 대었다고 한다.
권하자가 이렇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8남매 중 7번째였는데 6번째 형제의 죽음 이후에 어렵게 얻게 된 자식이라 그렇다고 한다. "완전히 (언니가) 공주로, 어머니가 시녀로 살았어요"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권하자의 여동생은 그때 자신은 직장에 다니면서 스스로 일해서 결혼을 했다고 토로하면서 부모에게 언니와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 억울하고 성격도 맞지 않기 때문에 언니와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피를 나눈 자매로서 이런 얘기는 뭐하지만, 지금도 난 언니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게 두려워요" 라고 말했다.
권하자는 결혼을 한 적이 없는데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권하자의 어머니가 눈이 높아서 생전에 계속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면서 결혼을 막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죽는 순간까지도 권하자는 자신과 결혼할 사람은 국가의 지도자급이어야 하고 1주일에 한 번 호텔 사우나에서 목욕할 정도여야 한다고 말했다.
외무부 시절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외무부에서 근무하던 1970~1980년대에도 어묵을 사먹어도 꼭 백화점에서 샀다고 할 정도로 사치가 심했다고 한다.
3 노숙 생활
어떤 경위로 몰락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락 등이 단절되었고 주소지도 불명하게 되었다.
2005년 무렵부터 몇 년 동안이나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날드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교회를 오가면서 지인이 보내주는 약간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고급 커피만을 마시고 살았다고.
2010년 12월 12일 가수 겸 생명운동가 이광필이 이 할머니의 사연을 널리 알리고 돕기 위해 인터뷰 영상을 작성하여 유튜브에 올리고 신문기사가 나는 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씨는 2005년에 자신이 운영하던 커피숍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를 5개월 가량 쉬어가게 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맥도날드 할머니가 가게에 오지 않게 되어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아쉬웠던 차에 11월에 우연히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의 사연을 알리고자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할머니는 그쪽에서는 나름 명물이자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매점 직원들과 손님들에게도 자주 행패를 부려서 커피 전문점 주인들이 합의하고 가게 내에서 못 자게 했었다. 잘 하면 긴급출동 SOS 24에 출연할 뻔했는데….
방송을 보고 외무부 시절 후배와 지인, 고등학교 동창들이 찾아와 거주지를 마련해주려 하는 등 도움을 주려 했으나 곧 백마 탄 왕자님이 오시니 도움을 거절한다고 한다(후배가 양재동에 산다고 하니 그 집으로 가지 않고 용돈만 받았다).
4 언론 보도
대신에 같은 방송국의 휴먼다큐인 2010년 12월 24일에는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에서 사연이 방송되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2011년 1월 14일에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좀 더 자세한 취재를 하였다.
1차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맥도날드 할머니의 본명은 권하자라고 한다. 권하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했으며 1976년부터 1991년까지 외무부(현재의 외교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당시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고 한다.
또한 늘 가지고 다니는 쇼핑백에는 영어 신문이 가득 차있었는데, 할머니는 이 신문을 막힘없이 술술 읽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프랑스어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엘리트.
이 방송이 나가자 많은 네티즌들은 할머니의 사연에 안타까워했고 이씨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문제를 들고 일어났다.
2차 방송에서 공개하기를 외무부에서 퇴직한 뒤에 어떻게 지내왔는지 상세한 것은 불명이나 동사무소의 기록에 의하면 2005년 1월 24일에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고 현재 국내에 권하자의 가족(다른 형제는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가운데서는 여동생이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5 반응
할머니가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지원을 해주자마자 비싼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한우 갈비 등 고급 음식을 선뜻 주문하는 등 사치스러운 일을 하며 한식집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도 제작진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고 한식점이 이전해서 찾기 어렵자 신경질을 내는 등 안하무인의 행동을 서슴치 않았고 또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기관을 20년 이상 이용한 적 없다는 발언 등을 두고 '원조 된장녀'라고 비아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솔직히 이쯤되면 권하자씨 본인의 인격 문제가 아닌가? 그런것 보다는 배워먹은게 있어서..
추가로 기자와 대화할 때의 태도도 대단히 일방적이고 자기 생각에 안 맞는 말 같으면 기자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며 기본적인 소통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고 핵심적인 내용에 가려지긴 했지만 기자가 할머니의 짐에서 뭔가를 꺼내려 하면서 물어보자 기자의 손을 확 뿌리치면서 이건 내 비밀이라고 못 건드리게 하는 통에 기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보여주기 싫은 것일 수도 있지만 대번에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을 본다면 기본적으로 대화하는데 있어서 고집스러운 성격일 가능성이 많다. 거기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모습도 있었다. 물론 잘 살다가 갑자기 망한 사람들이 이런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딱히 깔 것만은 아니지만... 할머니 자신이 현실을 보지 못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도 없다.
사실 긴급출동 SOS 24와 달리 이 방송에서 훈훈한 휴먼다큐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당사자의 안하무인과 황당함 때문에 결국 그 주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할머니 자신의 실상을 까발리게 되었다. 결국 미모 화제만 언론에서 실어주는 형편. 말하자면 방송 컨셉을 처음부터 잘못 잡은 대표적인 케이스. '다큐가 아닌 솔루션 형식으로 갔어야 했다'는 말이 많았다. 이 할머니의 케이스는 그 뒤에 나온 화장실 3남매[1]의 아버지가 보이는 모습과도 꽤 유사한 상황이다. 역시 나름 잘 살던 가장이었지만 사업이 망한 뒤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꽤 유사하다.
'방송사에서 흥미 위주로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캐는 것이 불쾌하다' 는 반응도 있는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나 긴급출동 SOS 24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도 마찬가지이니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상황이 저렇게 되면 이미 '개인의 사생활'이라기보다는 '사회문제'에 더 가깝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노숙하면서 사는 것을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1년 2월달 이후 한동안 언론보도가 나오지 않았지만 커뮤니티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여전히 기존의 자기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설득하긴 힘들겠고 전문가들이 나서서 설득을 해야 할 듯. 아울러 후속 방송이 필요하긴 한데 이 할머니의 비정상적인 생활과 행동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자잘한 개인 문제 이런 거 떠나서 고령인 데다 저 생활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경우 갑자기 건강 악화가 올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나선다고 해도 쉽게 설득하기는 어려울 듯. 긴급출동 SOS 24에서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나서도 설득하는데 진땀 빼는 광경이 자주 벌어지는 걸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맥도날드 할머니 사연도 사실 긴급출동 SOS 24에 나왔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방송을 탄 2011년 1월 이후 5월까지 전혀 변화가 없다. SBS에서는 한 번 이 문제를 다뤘다면 끝까지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너무 소극적인 방법을 쓰는 거 같은데 긴급출동 SOS 24를 방송하던 때처럼 더 적극적인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할머니의 지인들이나 후배들은 심리상담가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6 논란
'왜 쉼터에 안 가냐'는 댓글들도 많았는데 이건 무책임한 소리일 수 있다. 제법 노숙 생활 산전수전 겪었다는 일명 왕고 노숙자들도 쉼터를 기피하며 질색까지 한다. 쉼터에서 워낙 통제가 심한 데다가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거칠다는 소리를 듣는 남자 노숙자들조차 기피하며 들어간다 해도 얼마 못 가 제 발로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기에 맥도날드 할머니의 경우 70이 넘은 고령인데 과연 쉼터로 가게 했을 경우 적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듯하다. 이런저런 사정 제껴두고 노숙자들 기준으로 보면 엄연히 할머니는 약자이다. 남성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나이는 별 소용 없고 주먹 잘 쓰는 순서대로 서열 정해지는 거 보면 '왜 쉼터에 안 들어가냐'고 하는 소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과 같다. 고령의 노숙자들을 상습 폭행과 구타에 갈취까지 하는 젊은 노숙자들이 많다는 걸 잘 생각해두자.
실제로 모 신문과 인터뷰에서 쉼터 입소 얘기 나오자마자 할머니가 질색을 하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다'라고 못을 박았는데 이건 할머니를 비난만 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후배가 양재동에 집을 마련해준다고 했는데 그걸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후배들이 준 돈을 택시 타는데 쓰고 막 쓰는 모습은 자기 자신은 고급스럽게 산다고 인식을 하는 듯한데 제 3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할머니의 코트는 시커멓게 때가 탔으며 머리를 오랫동안 손질 안해서 코트 밑까지 머리가 자란 게 보일 정도였다. 후배의 권유대로 그 집에 살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인이라도 오래 돌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혈연이 이어진 친 여동생도 질색하는 사람을 후배라고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전문가들이 나서서 설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PD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렇긴 한데...
7 사망
이후 2013년 5월 29일, 서울역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되어 검사한 결과 암 말기로 밝혀졌다. 이후 2013년 7월 12일 송파 새희망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 중에 세상을 떠났으며 무연고 변사자로서 화장되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언론사 등을 통해 2013년 10월 14일 이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던 외국인과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캐나다 여성인 스테파니 씨는 우연히 할머니와 대화하게 되면서 서로 절친해졌고, 만남을 지속하며 풍부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긴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고. 또한 몸이 편찮아 보이는 할머니를 설득해서 보호소에 가시도록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할머니가 임종 직전에 그녀에게 "이제 당신이 제 유일한 가족이군요."라고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그녀가 과거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단순히 정신이상자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그녀 또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소중한 친구였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정작 이 할머니를 임종 때까지 보살핀 건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같은 한국인은 이 할머니를 비난하고 놀려대고, 정작 그녀를 끝까지 도와준 건 외국인이냐'며 반성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리고 할머니를 도와주고자 했었던 이광필도 2013년 10월 10일 마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몇 네티즌은 언플이라며 달갑지 않아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애초에 권하자가 그동안 도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권하자가 가족을 너무 괴롭혀서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말 전도에 불과한 악의적인 비방이다. 실제로 권하자는 악질적인 행동을 반복하다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고 실제로 권하자가 이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려 했다면 충분히 안락하게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권하자는 이광필 씨를 비롯해 도움을 주려던 사람들을 도움을 모두 거부했다. 그것도 누가 협박을 했거나 무슨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거나 한 특수한 상황이 아닌, 순전히 자의로 모든 도움을 직접 거부했다.
8 그 외
2011년 7월 31일자 보도에 의하면 처음 이 사연을 방송에 알렸던 이광필 씨를 우산으로 폭행해 왼쪽 눈을 실명시킬 뻔했다고 한다.(...) 우산으로 때린 것도 모자라 우산 꼭지로 정면으로 눈을 찔렀다고. 하지만 이광필 씨는 법적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고, 눈 치료가 끝나는 대로 할머니를 또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입장에 따르면 할머니는 아무 이유 없이 옷을 입으라고 고집을 부리는 이광필 씨가 무서워서 장소를 옮겼지만 이광필 씨는 계속 따라왔고, 이광필 씨가 자신의 팔목을 잡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우산을 휘둘렀지만 그를 다치게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당시의 목격자들도 할머니의 진술을 확인해줬다.
이광필 씨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옷을 갔다줬을 때 할머니에게 욕을 먹기는 했는데, 할머니가 욕을 먹게 될까봐 사건 당시에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눈의 상태가 안 좋아서 시력 회복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 상에서 '과연 그 할머니를 도와주는 게 옳은가'라고 논쟁이 일었고, 설상가상으로 이광필 씨가 하리수의 트랜스젠더 사진전 참가에 대해 음란하다며 하리수 씨를 음란물 유포죄로 고소한 것 때문에 네티즌들이 이씨의 딸인 이나비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마구 올리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씨는 악플러들을 즉각 고소했고, 이후 이씨는 2011년 8월 11일에 자신에게 악플을 단 1,200명의 네티즌들을(청소년 포함) 악플 삭제 여부와 상관없이 악플들을 미리 캡처해 놓고 형사고발과 민사소송을 동시에 진행해 무자비하게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았다. 이를 의식한 구 리그베다 위키도 이광필 항목을 편집제한(작성금지)시킨 바 있다.